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홍세화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평등해 보인다. 능력주의란 말.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다는 말. 그래 자신이 한 만큼 대우를 받는다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능력만큼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이 능력일까?


능력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능력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이 책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이 오로지 나로서만 얻어진 것인가 하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때 유행했던 아이큐 검사를 요즘은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큐 검사가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과도 특정 집단에 유리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능력도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능력의 출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족간 릴레이 경주라고 한다. 이미 한참 앞서 달린 가족에게서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과 한참 뒤쳐진 가족에게서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은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들이 발휘하는 능력은 이미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능력주의가 평등하다고? 이 책은 능력주의가 또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능력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능력주의를 내면화하는 것이 바로 학교다. 학교는 시험을 통해서, 서열을 정함으로써 능력주의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한다.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학교를 12년간 다니다보면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반대하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렇게 대학까지 16년을 다니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이념이 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공정을 외치게 된다. 결과의 공정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이다. 기회가 균등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능력에 따른 결과를 오로지 개인에게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만의 능력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환경들의 총합이 능력으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선이 잘못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회가 평등하지 않음을, 능력은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과를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배분할 수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한다. 필요에 따른 결과의 배분은 기회의 불평등을 보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는 이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해결책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공립대학의 평준화 이야기도 나오고, 학교에서 서열화하는 시험을 폐기하는 방안도 나오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최소한의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하자는 방안도 나오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 책은 소중하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불평등을 낳는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공유한다면, 그 다음에는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딱 한 가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은 착각이라고. 능력에 따른 차별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진정한 공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 페미니즘의 관점
김동진 외 지음, 김동진 기획 / 학이시습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초에 우리나라를 흔들었던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N번방 사건이었다. 우리가 흔히 너무나 많아서 숫자를 붙이기 힘들 때 알파벳 N을 쓴다. 가령 몇 사람이 동등하게 나눌 때 사람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1/N'하자라고 이야기 한다. 이 N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래서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어느 누구라고 꼭 정하지 않더라도 흔하게 하는 일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N번방, 마찬가지다. 1번방, 2번방이 아니라 N번방이다. 그만큼 방이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방이 많아졌다를 다른 말로 하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단속되지 않도록 방을 바꾸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다. 범죄인 줄 알면서도 안 걸린다고 방을 만들면서 큰소리를 친 사람이 있었고, 그 큰소리를 믿고, 안 걸릴 줄 알고 참여한 사람도 있고, 그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가 된 이후에 N번방을 만들거나 적극 참여한 사람들이 체포되고, 입건이 되면서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적어도 그 사실만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자신도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N번방이라는 말보다는 성착취범죄방이라고 하는 편이 사람들에게 더 조심하게 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게, 그것이 범죄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언론이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단지 언론에서만 그렇게 하면 되나? 아니다. 끊이지 않고 나오는 성폭력 사건들을 보라. 그것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이것은 특정한 못된 범죄자들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선량한 사람들을, 특히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비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N번방 사건과 같은 일이 특정한 못된 흉악한 범죄자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는 말은 그러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으며, 그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예전 소설에서 남자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무슨 통과의례처럼 사창가에 가는 일들이 너무도 흔하게 나타났다. 또 여자들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 행동들도 무척 많이 나타났고.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많이 나타났다는 것은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행위가 일종의 관습처럼, 남자들 세계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라. 여기에 선녀의 인권은, 자기결정권은 어디에 있는가? 자, 나는 나무꾼이 아니라고? 그렇담 생각해 보자. 나무꾼이 당당하게 선녀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을에서도 그런 행동이 용인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무꾼이 아니라고 나는 선녀의 그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지 말라고 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 어떤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어쩌면 너무도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불편해져야 한다. 자신을 돌아봐야 하니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 봐야 하니까. 그리고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N번방이 우리에게 지닌 의미를.


그래서 이 책은 유치원부터, 초-중-고-대, 그리고 성인까지를 아우르면서 성평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계기는 N번방이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을 보는 관점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N번방은 그야말로 또 다른 방을 불러오는 N번방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 그들 말대로 하면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신과 관계 있는 분야의 대담, 글을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주욱 읽어가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유-초-중-고-대-사회'에서 노력하는 모습, 어떻게 해왔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분야가 있지만,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내가 살아온 날들도 있고,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살아온 또는 살아갈 날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관계되는 장소,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한 분야에서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 상대방의 연령, 학력, 성별, 경제적 상황, 신체 등등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 그러나 나와는 다른 사람, 그래서 더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존중은 다름에서 나온다. 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독립된 존재임을, 나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할 사람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부터 한다면 상대를 짓누르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 교육사회학 관점
성열관 지음 / 학이시습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제목을 보면 우리나라 학교 교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교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모습만 떠오른다.


상록수에서 영신이 일제의 탄압으로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의 인원수를 제한하자, 창문에 매달려 공부하겠다고 애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어쩌면 사토 마나부의 말처럼 배움으로부터 탈주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지울 수 있을까? 학생들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 의지박약으로, 성취 의욕의 상실로 돌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너희들의 의지 문제야! 하려고만 해봐, 다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말하기는 쉽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교육에 관계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를 담당하고 있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당신들 책임이야 라고.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교육은 한 학생도 소외됨 없이 모든 학생들이 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의 책임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소외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인권이나 교육권 측면에서 큰 훼손이다. 그러므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소외는 것은 전적으로 공교육의 책임이라 볼 수 있다. 이에 수업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의식적 회복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단지 활성화된 수업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수업 소외를 인권, 사회정의, 인정, 권리 옹호의 문제로 인식하고 수업 자체가 평등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언제나 수업을 바꾸려는 행위는 변별 시스템으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와 대결을 벌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358쪽)


책임이 학생에게 있지 않고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아니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것은 기존의 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예측불가능의 세계에서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학습량이나 학업 목표때문에 자연스레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런 소외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가에 대해서 번스타인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 앞부분에 이어,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우리나라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이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이론에서 학업에 대한 질서와 생활에 대한 질서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하는데, 둘 다 잘하는 학생을 '성실'의 분류 항목에, 학업 성취는 어느 정도 이루지만 생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분리'에, 생활 질서에는 적응하지만 학업 성취에는 부족한 학생을 '간극'에, 그리고 둘 다 안 되는 학생을 '소외'라는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분류의 장점은 수업을 재조직할 때 고려할 사항을 찾기 쉽다는 것이다.(그만큼 분류는 문제를 단순하게 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그래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단순화는 문제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 학생들이 생활 질서에, 또는 학업 성취에 문제를 보일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책임을 학생에게 묻게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번스타인 이론이 지닌 장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의 저자인 성열관은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 당연이 당연이 되지 않음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교육이었으니...


교실사회학적 관점 취하기

모두가 존엄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존엄한 수업을 운영하기

국가교육과정 난도를 낮추기

1교시에서 6교시까지 협력의 매개로 수업하기

절대평가를 중심에 놓기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이 여섯 가지를 보면 학생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관료들이나 교사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즉,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교육관료,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단지 교육 분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교육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져야 한다. 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문제를 사회에 자꾸 제기해야 할 책임은 바로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사들은 어느 정도는 수업 시간에 자는 책임이 학생에게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는 학생들을 대할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고. 또 그런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협력 수업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혁신학교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다만, 교사들 역시 교육이라는 큰 체제에서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교육관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그대로 통보하는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저자가 제안한 여섯 가지가 요원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메리토크라시가 판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런 제안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당연하지 않게도 하지 않고 있는,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고 하지도 않는 관료들. 교사들이 혁신학교 운동으로 수업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한 노력은 전체 틀을 바꾸지 않는 한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결코 학생들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기성세대 책임이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책임지고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이 되도록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이 시급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 - 대한민국 교사로 살아남기
최선경 지음 / 프로방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텔레마케터를 비롯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이들은 손님을 대할 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만큼 감정노동을 하는 집단이 교사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는 확실히 감정노동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의 모습을 통해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매일매일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학생들 앞에 서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사는 절대로 군림하지 못한다. 오히려 학생들의 감정에 맞춰 교육활동을 하려고 몸부림친다. 학생들과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면 지식 전달부터 행동방식까지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의 관계만이 그런가. 아니다. 학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교사들, 또 교육관료들도 관계된다. 이 많은 사람들과 날마다 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교사는 감정노동자로서 나날이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자칫하면 이 많은 관계들 속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과정을 한참 거치게 되면 교사들은 자포자기가 된다.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억누르고 주어진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면 그다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해진다.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이런 교사들과 정서적인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학생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요원해진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 다르다. 그렇게 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진정성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진정성. 그런 진정성을 지니고 지내다 보면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때부터는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꽤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저자가 지키는 태도는 바로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다. 그런 태도가 학생들에게 전해지게 노력을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교사가 되어서 한 활동들, 다양한 수업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의 저자인 최선경 교사가 말하는 것은 수업 방법보다는 왜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가르쳐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학생 입장에서는 왜 배워야 하는가로 치환될 수 있다. 즉 의미를 발견해야만 그 다음 활동들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교과 지식이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러니 다양한 수업 방식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을 습득하게 한다기보다는 삶의 태도를 형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사가 긍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생활을 하면 더 도움이 되고.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생활해야 하는 사람이 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교사가 얼굴을 찌푸리고 수업을 하면 학생들에게 지식전달에서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까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늘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 교사는 자신의 표정, 행동 하나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긍정의 힘을 전파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최선경 교사는 한 해에 단 한 명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단 한 사람조차도 변화시키기 힘들다. 다만, 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교사는 그렇게 학생들에게 단 한번이 아닌 수많은 기회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교사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긍정의 힘으로 교직에 있어야 한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나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는 교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교사 자신도 긍정적이어야겠지만 교사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긍정적이어야 한다.

 

자신과 만나는 사람을 부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자신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니까.

 

이 책은 이렇듯 어려서부터 교사가 되어 지내온 20여 년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특히 교사들에게 긍정의 힘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책 읽기 수업 - 어디로 튈지 모를 학생들과 함께한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실제
송승훈 지음 / 나무연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자매체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전자책이 나와 종이책이 없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시대라고 해도,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질 수가 없다. 전자책 읽기와 종이책 읽기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이사전과 전자사전을 예로 들어보면, 이제는 종이사전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검색하면 뜻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종이사전을 굳이 들고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사전은 종이사전만이 지닌 특징이 있다. 강점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 단어를 찾기 위해서 여러 장을 넘기면서 우연히 다른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의도와 무관하게 더 많은 낱말들을, 더 많은 쓰임을 종이사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과 다른 장점이 있기에 이 시대에도 종이책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과서가 전자책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으로 이루어진 교과서가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더 오랜 시간 잡고 있을 수 있끼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종이책 읽기, 과연 학생들이 많이 하고 있을까? 책은 넘쳐나지만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은 더 없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책읽기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왜? 책읽기는 곧 삶 읽기고,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책읽기 교육을 꾸준히 해온 교사가 있다. 그가 그동안 책읽기에 관해 낸 책만 해도 여러 권인데.. 이번엔 자신이 수업 시간에 한 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읽기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정시 확대를 논의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오히려 정시 확대가 왜 문제가 되는지, 정시 확대가 어떻게 학교 교육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도 해준다. 책읽기 교육과 정시, 수시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왜냐하면 정시가 확대되면 이 책을 쓴 교사가 한 책읽기 수업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송승훈은 이렇게 주장한다. 한 학기에 한 번만 지필고사를 보자고. 문제풀기로 학생들을 측정하지 말고 평소 수업시간에 한 활동으로 평가하자고.

 

그런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필고사를 줄여야 한다고. 소위 말하는 수행평가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수행평가를 늘린다는 말은 과정중심 평가를 한다는 말이고,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깊이 있는 활동을 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 시간을 지필고사를 한 번만 줄여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적어도 20%정도의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학 입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대학 입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으니, 결국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문제가 해결되고, 학력으로 차별받지 않는, 자격증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야 교육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책읽기를 통해서 키울 수 있다고 하는데, 단지 읽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글로 써보고, 글쓴이를 만나 인터뷰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여러 방법이 함께 어우러진 교육이 바로 책읽기 교육이다.

 

그런 책읽기 교육, 한번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 여러 차례 실패를 하고, 그 실패를 통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한데, 이 책을 읽다보면 송승훈의 책읽기 교육이 자리를 잡은 것은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정시보다 많은 것에 큰 도움을 받는다. 우선 지필고사 비중을 줄이고, 수행평가 비중을 높였기에 문제풀이식 교육을 하기 보다는 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부터 다양한 활동을 쓸 수 있는 책읽기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 대학 입시과 관련이 있나 하는 마음에 편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사고력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또 책에 관심을 갖게도 된다. 물론 송승훈이 다양한 분야, 다양한 수준의 책들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된 책읽기 교육 방법은 받아들일 점이 여럿이다.

 

문제는 송승훈의 책읽기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이 근무하는 학교 현실에 맞게,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펀해야 한다.

 

책읽기 교육에 관한 책이라고 꼭 교사들만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는 가정에서 책읽기 교육을 하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아이들이 책읽기 습관은 어릴 적에 형성이 되는데, 송승훈은 초등학교 5학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때 책읽기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때까지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조금 아쉬운 점은, 그렇지 못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힘든 방법이지 않나 싶다.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사라고 하는데, 책을 집 곳곳에 두라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지 않은가. 이들은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다. 그럼에도 책읽기 교육을 해야 한다.

 

어떻게? 송승훈은 부모들에게 이 방법을 제안한다. 물론 이 방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겠지만, 이 방법은 이들의 자식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로 교육감이나 교육장을 찾아가 학교에서 책읽기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면담 요청을 하라는 것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위해서, 또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면담을 제시하고 있는데, 결국 여유가 있는 층은 가정에서도 책읽기 교육을 할 수 있지만, 없는 층에서는 학교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런 책읽기 교육을 담보하고 책임져 주어야 한다. 그것이 송승훈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각 교과에서 수업시간에, 절대로 학교 밖의 시간이 아닌, 수업 시간에 책읽기 수업을 해야 한다는 송승훈의 주장에 동감한다.

 

숙제? 하지 못한다. 아니면 베낀다. 그러니 이 둘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학교 수업시간에 해야 한다. 그 점이 핵심이다.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교육 정책이 실시해야 한다. 지필고사를 줄이고,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 등 책읽기를 할 수 있는 기반부터 조성해야 한다.

 

이 기반 위에서 교사들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책읽기 교육을 하면 된다. 그런 책읽기 교육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에서 점점 멀어지는 학생들을 책을 가까이 하는 학생들로 변하게 하는 그런 책읽기 수업. 한번 해볼 만하다. 아니, 해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