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콜로니
최돈미 지음, 정은귀 옮김 / 문학사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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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이 시집에 나오는 한 구절일 뿐인데... '이이이'


시인은 '이'를 참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이'라고 쓰면 읽는 사람은 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 저것 할 때의 '이'. 이때의 '이'는 상대를 지칭하는 언어가 된다. 이봐 할 때의 이. 그리고 둘을 의미하는 이. 이 '이'를 시집 제목과 연결지으면 남과 북이 될 수 있다. 또한 몸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는 '이'를 뜻할 수도 있는데, 이는 분단이나 반공에 기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빨을 뜻하는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때의 '이'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 자칫하면 상대를 물어뜯는 이가 될 수도 있고.


이런 사전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를 떠나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때 입에서 신음처럼 나오는 소리로 '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시집에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니, 그에게 언어는 불필요하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 '으'보다 더 이를 악물고 참아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소리 '이'를 낼 수밖에 없다.,


참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를 시인은 그냥 '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이이'라고 중첩이 되고 있는데,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반복을 통해서 각인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언어로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처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내는 말. '이이이'


시집을 읽으면 이 '이이이'를 '아아아'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이렇게 분단 상황에서 겪은 우리 현실을 이런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자료와 사진과 다른 사람의 글들, 그리고 시인 자신이 쓴 글씨와 자신의 가족사까지... 시에 모두 들어 있다. 어느 하나로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여러 요소들이 모여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


'DMZ' 비무장지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장이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대. 무장한 군인들이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아닌가. 그러니 비무장지대라는 말을 거울에 비춰 거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에 나오는 거울 단어처럼... 그냥 글자가 거꾸로 뒤집힌 것이 아니라 의미도 뒤집힌. 그렇다면 '콜로니'는 무엇인가? 식민지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어떤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이 '콜로니'라는 말도 거울에 비춰보자. 


그냥 볼 수 없는 말을 찾아내야 한다. 이 시를 읽으려면. 'DMZ'가 냉전시대 분단을 상징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과거 비극을 담고 있는 말이지만, 이곳은 평화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자연이 풍부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바로 'DMZ' 아닌가.


지금 이곳에는 지뢰를 비롯한 온갖 무기들도 있지만 인간에 의해서 멸종이 될 뻔한 많은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장소로 존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콜로니 역시 (식)식민지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가 지금은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생명들이 살아가는 집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강자의 이데올로기가 점령하고 있는 말의 뜻을 재해석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시에서 말하는 '거울 단어'인데... 


그렇다면 '좌빨'이라는 말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그들을 배척만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계몽령'이라는 말을 쓰면서 '어게인'이라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들을 거꾸로 보여주자. 


그들의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 말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쓰여야 하는지를 살피게... 시집에 이런 시가 있다. 보자.



문장을 거꾸로 읽으면 된다. 아마 이 시집을 읽는다면 '좌빨'이란 말도 '계몽령'이란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다. '이이이' 정말, 그런 말을 쓸 수 있단 말이야? 하면서.


말이 필요없다. 이 시집, 읽으면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고, 그러한 과거에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언어에 대해서... 


그런 언어를 한번 거울에 비춰보자고... 그 언어가 보여주지 않고 있는 면을 찾아보자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시집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번역 후기'와 '추천사'에 잘 나와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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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5-29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당히 눈길을 끄는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잘 전달한 것 같아요. 좋은 시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kinye91 2026-05-29 09:18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역사는 반복되면 안 되겠죠. 제겐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신선한 충격을 준 시집이었어요.
 
비인간 포션 4
최의택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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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인간' 


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말들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즉 비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무언가 옳지 않음, 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열등한 존재나 배제되어야 할, 아니면 고쳐야 할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란 생각.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다. 그러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두 없어진다면 인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


최의택이 쓴 이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이다. 그런데 제목이 된 소설은 없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들 중 대부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들, 특히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세상이 소설에 나온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그램 보육교사가 등장하고('보육교사 죽이기'),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노인과 노봇'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아닐 터. 기술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세상이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러다가 '경계선, 인격, 장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섬뜩해졌는데...


인간을 배려하는 로봇과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 등장하여 도대체 어떤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막 대하는 인물에 비해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는 로봇이라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비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는 범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돌보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여러 존재 중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하여 '비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그런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는 소설이 좀비로 변한 아내, 남편과 함께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증상 완화제로 어느 정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좀비를 '비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좀비 딸]을 떠올렸으니...


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을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최의택의 이 소설집에서는 좀비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이 소설 속 '비인간'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 혹 외계존재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물학적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권 선언에 있는 성별, 피부색, 종교, 성적 지향, 나라, 신체적 특성 등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들을 '비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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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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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읽을 때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 하게 된다.


그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풍자, 비판을 찾아내야 작품을 즐길 수가 있다. 적어도 작품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게 된다.


'고양이 요람' 세상에, 이게 무슨 뜻이야? 했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니, 실뜨기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실을 가지고 노는 장난.


실뜨기를 하면서 여러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낸 모양은 가상이다. 현실이 아니다. 즉 진실이 아닌데, 그것을 진실인 양 믿고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아이 때 그런 놀이는 가능하다. 아이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즉 실뜨기로 만들어낸 것이 진짜가 아니라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놀이로 즐기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것에 의존하는 순간, 현실에 눈 감게 된다. 현실에 눈 감은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게 현실에 눈 감은 사람들이 도달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나를 조나라고 부르라'(15쪽)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조나'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를 '요나'로 바꾸면 연상되는 인물이 있으리라.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사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상한 세계에 도달한 사람.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어김없이 나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데려다놓았기 때문이다.'(15쪽)고 하기 때문에 자신을 '조나'라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한 나라가 파괴되기까지의 현장에 있게 되고, 그것을 글로 남기에 된다.


따라서 '조나'로 시작한 소설이 한 나라의 파괴로 끝난다. 그가 도착해서 살아가려고 한 나라가 어떤 물질 때문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까지 죽어가게 되는 현실.


액체를 또는 진흙을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 '아이스-나인'이 등장한다. 이것을 만든 과학자는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런 물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었고, 자신도 흥미를 느꼈으며,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었으니, 만들었으리라. 만든 다음 그 결과에 자신이 놀랐을지라도.


무언가가 연상되는 전개 아닌가.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물질, 아니 무기. 그런 무기가 개발되고, 핵무기로 인해 핵전쟁 위기까지 가는 상황을 목격한 작가는 침묵할 수 없었으리라.


게다가 이 작가는 2차 대전 때 포로가 되고, 무고한 시민들이 폭격으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던가. 반전을 외치는 작가가 핵전쟁의 위협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이러한 핵전쟁의 위험, 핵무기의 위험을 어떤 식으로 알려야 할까? 정공법으로 기록하는 것도 있겠다.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보고서, 르포르타쥬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러면 내용은 건조해지겠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겠지. 


최근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정공법으로 핵개발의 위험성이나 전쟁의 참상을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커트 보니것은 이런 방법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으로 핵무기의 위험이나 전쟁의 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로 풍자다. 신랄하게 비꼬는, 또는 가볍게 농담하는 것처럼 툭툭 던지는 어투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웃으며 읽는데,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뒤통수가 켕긴다.


마음에 무언가가 들어차서 그것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가벼운 문장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가는데 읽어갈수록 문장들이 묵직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적은 양의 '아이스-나인'으로도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바로 핵폭탄 아니겠는가. 그런 핵폭탄을 사용하는데 여러 제한 장치를 두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실수로 인해 핵폭탄이 사용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소설이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러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연상하게 전개되는데, 그 전에 그러한 물질(무기)를 개발한 과학자의 모습,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나누어주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연히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엿보게 된다. 이것이 커트 보니것 소설의 장점이다.


앞부분에서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질 때 정작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가 한 짓이 바로 '고양이 요람'을 만든 것이었다는데... 이 고양이 요람이 지닌 의미를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양이 요람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종류의 거짓을 상징한다.'(346쪽)


태평양 건너 편에 있는 나라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그 후손들까지 대대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정작 그러한 무기를 개발한 사람은 자신의 방 안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면?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 아비규환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방에서 평온하고 한가하게 실뜨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이렇게 잘못 쓰일 수도 있는데, 과연 과학-기술자들은 그 쓰임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커트 보니것은 과학-기술의 책임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기술자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보여주면서 인간의 행복을 위한다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그러한 것이 어쩌면 실뜨기(고양이 요람)처럼 실재하지 않는데, 실재하는 것처럼 우리를 잘못 이끌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커트 보니것이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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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생태설화 - 기후위기 시대, 옛이야기에서 발견한 공생의 삶
권혁래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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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라는 한자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면,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여기에 옛이야기라고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또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왔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살아가니까.


이야기는 우리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게모르게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들 중에 환경에 대한 것이 있다. 물론 이 책은 환경이라는 말보다는 생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생태라는 말에는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공생하는 관계, 그런 관계를 생태라는 말은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생태설화라는 말은 다른 존재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이 공존이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설화는 '한 나라의 기층문화, 정서, 가치관, 생활사, 민속 등을 보여주는 문화자료'(53쪽)라고 하니, 설화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스레 자신들의 문화, 가치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설화를 아시아라는 우리가 속한 대륙으로 확장해서 비슷한 설화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단지 설화를 비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설화들을 통해서 '자연과 생태적 삶, 공생의 정신, 화해와 소통, 평화의 정신에 대해 상상하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연대 방안을 상상하게 될 것'(17쪽)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의 설화를 살피고 있는데, 비슷한 설화들이 많다. 그러한 비슷한 설화들을 통해서 예전 아시아에서 지니고 있던 생태적 관점을 살필 수 있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역시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라면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 자연과 또 다른 동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꽤 있기 때문인데...


동물을 구해줘서 보은을 받거나 동물을 학대에서 벌을 받는 내용은 지금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여기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고, 그것이 자연만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삶도 파괴하게 되는지를 옛이야기들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저자의 바람대로 이러한 옛이야기는 자주 들려줘야 한다.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생태적 관점을 지니게 되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책은 아시아의 생태설화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그러한 설화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 옛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옛이야기를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다.


이 책엔 두 편 정도 외국의 옛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그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볼 수는 있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왜 옛이야기가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맺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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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판사가 왔다 앤드 앤솔러지
정보라 외 지음 / &(앤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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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어떤 직업이 가장 먼저 사라질까?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함.


이런 시대를 상상하면서, 작가들이 인공지능 판사가 대두하는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인공지능 판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인간 판사보다 인공지능 판사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감정이나 편견이 작동하는 인간 판사보다는 철저하게 자료를 통해 판단하는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인공지능 판사가 판결을 한다면, 변호사와 검사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개요을 입력하는 존재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인공지능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다 하면서 사건에 맞는 판결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까? 그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이 될까? 정보라가 쓴 소설 '일반교통방해죄'를 보면 인공지능 판사가 도입되어도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음을, 또한 재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가능성이 나타난다.


문구대로만 해석하고 판단한다면, 과연 윤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선한 동기가 좋지 않은 결과를 나았다면, 과연 선한 동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한 곁가지로 계속 나타나는 여러 일들을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받아들일 것인가?


정보라 소설에서는 인공지능 판사가 여러 갈래의 일들을 하나로 꿰지 못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조광희가 쓴 '이성의 책략'을 보면 인공지능이 그마저도 넘어설 수 있음을, 오히려 정치적인 판단을 법적 판결에 도입할 수 있음을 상상하게 한다.


법 조항에 국한하지 않고, 그 법 조항이 초래할 결과를 판단해서 종합적인 판결을 하는 인공지능 판사. 이 소설에서는 헌법재판관 중 하나를 인공지능 판사에 할당을 한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 헌법재판관은 명료한 법해석을 제공해준다.


단지 명료한 법해석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과를 예측해 판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결국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인간을 보조할 인공지능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책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


결국 제 꾀에 제가 빠진 셈인데... 이러한 반전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곽재식이 쓴 '누벨리온'은 인공지능이 법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법 기술자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


너무도 많은 법령들, 인간이 찾아보기 힘든 법령을 아주 간단하게 제정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그 많은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공지능. 이러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존재들을 그려내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법이 너무도 많다. 누군가 그랬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그만큼 법이 많아서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인공지능으로 더 많은 법들을 만들면, 그 법을 인간들이 과연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넘기게 되고, 특정한 부류에게 권한을 넘겨 그들의 뜻대로 법이 적용되는 세상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박진규가 쓴 '타락판사 :몹스터월드 프로젝트 2' 에는 인공지능 판사가 나온다. 아주 친절한, 법을 세심하게 적용하는, 그래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그것이 해킹에 의해서 일어난 인공지능 판사라면, 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공지능 판사가 되게 했을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인공지능 판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사기꾼'의 모습과 같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책략을 감추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사람을 이용하는 쪽으로 가는 인공지능 판사이지 않을까 하는데... 자신을 해킹한 전직 판사를 살해한 인공지능 판사. 그러면서 자신을 판결하는 재판에 참여하기를 권유하고 있는데...


네 소설이 모두 법을 다루는 인공지능을 등장시키고 있다. 때로는 유머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한다. 과연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한다면?


사건에 대한 판단을 자료(데이터)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기에 '동기'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윤리가 없는 법 해석만 난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인공지능 판사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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