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 1934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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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골랐을 때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상상했다.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을 했다고 했으니...


하지만 역장도 메텔도 나오지 않는 이 소설은 만화와는 좀 다르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은하를 여행하는 장면에서는 비슷한 면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조반니라는 소년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꿈을 꾸게 된다. 그는 꿈 속에서 은하철도를 타고 은하역에서 출발해 남십자역까지 가는데, 이 열차에는 자신의 친구인 -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반니를 옹호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조반니의 친구라 할 수 있는 - 캄파넬라가 타고 있다.


캄파넬라와 같은 칸에 타고 은하를 여행하면서 여러 일들을 겪는데, 그런 일들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무한한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열차에는 여러 사람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는데, 여기에 이미 죽은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소설에서 직접 제시되어 있는데, 그들은 이미 죽은 엄마 곁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소녀와 소년 장면에서 의문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캄파넬라는?


소설은 마지막에서 캄파넬라가 왜 은하열차에 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조반니가 캄파넬라에게 '우리 끝까지 함께 가는 거다'라고 말을 하지만 순간 캄파넬라는 사라지고 없고, 조반니는 꿈에서 깨게 된다.


그렇다. 현실에서 외로움을 타고,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은하철도를 따라 여행을 하면서 다른 세계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소설.


그리 길지 않다. 이 소설집에는 다른 소설세 편이 더 실려 있는데, 일본에서 1934년에 출판된 초판본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미야자와 겐지가 완성을 하지 못한 소설이라 군데군데 알 수 없고, 삭제된 글자와 문장들이 있어서 그것을 []로 처리하고 있고, 또 그때의 디자인이라 세로로 인쇄되었다.


세로로 인쇄된 책을 읽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읽기가 되겠지만, 일본어가 세로로 쓰인 경우가 많으니, 일본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또 예전 우리나라도 세로쓰기를 많이 했으니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디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은하철도의 밤'도 그렇지만 함께 수록된 '고양이 사무소'라는 소설에도 따돌림의 문제가 나오고, '바람의 마타사부로'는 1930년대 시골 마을의 일본 아이들의 순수한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인데, 비극으로 이야기를 맺지 않아서 좋다. 


특히 '은하철도의 밤'은 아이들에게 우주를 상상하고 경험하게 해준다. 현실이 막막할 때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 지닌 힘이기도 하고, 일본이 근대화되는 시절에 일본 국민을 계몽하려 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사상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에서 그가 살아남았다면 어떤 작품을 썼을지? 적어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다른 국민을 억압하는 그런 군국주의를 작가는 찬성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것은 이 작품집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데...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에서 아이들이 적어도 그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꿈꾸며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예전 세로쓰기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은, 또 '은하철도 999'와 비교해보고 싶은 사람은 한번쯤 읽으면 좋을 소설집이다.


'은하철도의 밤'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괴로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겠지요.'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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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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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 솔직히 모르는 작가다. 일본 소설은 예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홍보해서 알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그리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정도만 읽은 셈. 기타 몇몇 작품이 더 있지만 일본 소설은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추리소설(미스터리 소설 작가) 작가로 알려진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가 데뷔한 지 35년을 맞아 후배 작가들이 헌정소설을 썼다고 한다. 작가도 모르는데 헌정 소설집이라니...


출판사의 기획이지만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한 작가들이었다고, 게다가 이들은 일본에서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이미 인정을 받고 있다고.


이런 작가들이 참여해서 헌정 소설집을 낼 정도면 꽤나 알려진, 또는 문인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를 헌정하는 작품이라면 분명 추리소설일 테고, 소설집의 제목에도 '수수께끼'라는 말이 들어가니,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 여기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어느 정도 반영할 테니,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총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재미 있다. 읽으면서 범인을 추측하는 재미도 있고, 뜻밖의 반전에 감탄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살인 사건이라고 해도 잔혹하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따스함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도 하니 따스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들에게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살인사건이 아닌 소설도 있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셜록 홈즈'시리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 또는 애거사(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생각해도 좋겠다. 아니면 만화로 나온 '명탐정 코난'을 생각해도 좋고.


각 작품을 읽으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찾는 재미도 있고, 그런 인물이나 내용을 통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이와 비슷한 작품을 썼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집이다.


특히 이 소설은 제목과는 반대로 거의 노골적이라 할 만큼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칭송하고 있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이다. 하, 이런 식으로 작가에게 헌정하는구나, 이런 칭송이 그리 거슬리지 않으니 이것도 재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고.


내용으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작품은 '클로드즈 클로즈'라는 소설. 여자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복 도난 사건. 이 도난 사건을 외부로 알리지 않으려는 학교의 방침은 좀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학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모습과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동기, 과정, 그리고 해결이 되었을 때의 결과 등은 마음을 잔잔한 감동으로 채운다.


여기에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통해서 그러한 소설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단서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끈기 있고 충실하게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작품인데, 한 사건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이해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찾아가게 하는 과정. 다 읽은 다음에는 아, 이것이 단서였구나, 이 단서를 이런 식으로 꿰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작품들.


다른 무엇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고 싶어진다는 점, 그 점에서 헌정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작품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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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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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2024년 12월 3일.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리가 일구었던 성과들에 자부심을 가지던 때.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을 때, 그러한 자부심, 자긍심을 한 번에 무너뜨린 사건.


그건 사건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천만다행으로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니, 2차, 3차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비상계엄 포고문에 나오는 '처단한다'는 말. 도대체 누가 누구를 처단한다는 말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자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자신들임을 그들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무속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었는데, 진정 무속을 믿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무속은 '인과응보'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란 결국'권선징악'아닌가. 


악을 아무리 선으로 포장하려 해도 악은 악으로 밝혀진다. 이것이 권선징악, 인과응보다. 그리고 이 명제는 무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원한이 쌓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원한을 해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무속 아닌가.


그런데 무속을 믿는다는 자들이 원한을 쌓는다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다니... 무속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성공 이전에 이미 실패를 안고 있는 행위인데, 그것을 실행하다니.


이미 경제로 선진국, 문화로도 선진국이 된 이 나라 국민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고, 광장으로 나와 비상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했고, 주모자는 탄핵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했으니,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은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소설은 2차 계엄으로 시작한다. 1차 계엄의 실패를 경험한 자들은 2차 계엄 때 국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서술. '총소리가 울렸다. 피가 튀었다', '총을 쏘았다','계엄군은 발포했다', '계엄군이 사격했다'와 같은 말들. 실제로 2차 계엄이 성공했다면 소설 속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감정이 없는 행위를 하는 존재들에 맞선 사람들은 연대를 한다. 그들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농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자신도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더한 사람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려는 간호사 등등.


비상계엄에 맞서는 이러한 연대를 통해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들의 비인간성에 비해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사람들이 계엄군의 머리에, 어깨에, 다리에, 팔에 매달려 결국 그들을 포위하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이미 그들이 처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법 심판 전에 이미 그들은 그들이 믿던 무속에 의해서도 처단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

 반란군은 포위되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어야 할 국가와 국민에 항적한 반란군은 피해자들에게 소리 없이 산 채로 먹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반란군이 남긴 총탄과 무기를 들고 원한을 풀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39-140쪽)


다행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 국민이 막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만약 막지 못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그야말로 처단 당해야 할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처단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리라.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 말고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비극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이 겪은 비극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음을, 그러한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지 못했음을, 그것이 비상계엄을 초래한 것 이유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상계엄 전에도 고통을 겪던 이들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비상계엄으로 더한 고통을 겪게 된다. 비상계엄을 이겨낸 우리는 이제 이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작가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서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결코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만약 2차 비상계엄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재난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처단당하는 것은 그들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제목이 '처단'이다. 누가 처단되어야 할지 읽어보라.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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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카티트
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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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문구에 현혹되었다. '핵전쟁과 원자로 문제를 예견한 최초의 SF'라는 말에. 차페크 하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작품에 쓴 사람 아닌가. 우리가 로봇이라는 말을 쓰게 한 사람이고, 로봇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한 사람이기도 하니, 이 소설도 그런가 하는 생각.


[절대제조공장](압솔루트노공장이라고도 번역이 되었다)을 읽어봐도 기계문명의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도룡뇽과의 전쟁]도 그렇고. 하여 이 소설도 기대를 했다. 차페크라면 핵무기와 비슷한 위력을 지닌 무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하는 호기심.


그런데 읽다보니 압도적인 무기는 나오지만 그것을 둘러싼 과정이 더 자세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주인공인 프로코프가 만나는 여인이 4명이다. 프로코프가 먼 길을 떠나게 하는 소포를 맡긴 여인, 소포를 들고 찾아간 집에서 만난 여인, 다시 그 집에서 나와 만난 공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소녀. 


이런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여기에 압도적인 무기인 '크라카티트'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무기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 그것의 폭발력.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피해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무기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펼쳐지고 있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확보하려는 사람들. 그런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는 사람들.


그러나 프로코프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길 원하지 않는다. 그 무기의 해악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무엇이었는지, 또 만드는 법을 잊어버리는 결말에서는 그런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는 차페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지구를 위한다는,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무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보라. 이 무기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터진다. 사람들이 통제할 수가 없다. 


통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기. 이 무기를 확보하려는 사람들. 한때 전세계는 서로 핵개발을 하려 했다. 핵억지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다 몇몇 강대국들이 자신들끼리 협정을 맺어 이제 다른 나라들이 핵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들은 수많은 핵무기를 지니고 있으면서. 이런 전력 비대칭. 이것이 몇몇 강대국들이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공멸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 사용을 하지 않지만, 그에 준하는 무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다른 나라를 공습하는 현재 인류의 모습 아닌가.


그 무기로 누가 죽어나가는가? 이 소설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 영문도 모르고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야욕에 찬 사람들로 인해 이러한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나온 폭발력 강한 무기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무기들이 실제 전쟁에서 쓰이고 있으니, 차페크가 쓴 이 소설을 보면 이것은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될 수도 있다. 차페크는 이 점을 우려했을 것이고... 그가 원자폭탄의 개발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가 소설에서 쓴 크라카티트는 원자폭탄만큼의 위력이 있는 폭탄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폭탄은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에 소설을 통해서 이러한 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그동안 우리 인류는 얼마나 평화를 위해 나아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러한 무기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인류의 공존을 위해 또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쪽으로 과학기술의 방향을 잡도록 해야 한다.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해 그간 읽어온 차페크의 소설과 다른 느낌을 주고, 전개가 조금 느리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런 사랑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인간들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사랑이 -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는 프로코프가 자신을 감시하는 인물인 홀츠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프로코프는 '홀츠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장애인 누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의 인생은 ... 나나 당신의 인생보다 열배나 더 중요해요.'(412쪽)라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 인류를 파멸로 이끌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차페크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무기를 둘러싼 이 소설의 내용을 현재의 우리가 참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무기를 확보한 사람들의 정의 여부를 떠나 무기 자체가 지닌 위험성을 우리가 인지하고, 그러한 무기들이 개발되지 않도록, 또 점차적으로 폐기되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핵폭탄의 피해를 이미 경험한 인류 아니던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참조할 만한 점이 있다.


덧글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오탈자들이, 또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 점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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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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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헌터' 생소한 말이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아 연결해 주는 직업이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 이직을 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직장과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서로 맞아떨어지게 하는 역할, 그러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챙기는 직업.


이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연결해야 한다. 연결이 되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기업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의 능력, 조건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연결하기 위해서는 양쪽을 다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면접을 보기도 하는데, 이때 정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 흔히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능력에 별 차이가 없다면? 경력이나 능력이 비슷하다면 무엇을 볼까? 외모? 아니다. 학력이다.


학벌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학벌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지금도 그러냐고? 아니라고 답할 수가 없다. 여전히 학원에서는 대학들의 순위를 무슨 노래 가사처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 서열이 의대로 인해서 흐트러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의대도 그러한 순위에 따라서 판단을 하니,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모던 하트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데, 영어로 modern heart가 아닐까 하는데, 현대적 사랑 또는 현대의 열정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인데, 현대의 사랑이 무엇일까?


제목만 보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직장. 좋은 직장은 무엇일까? 연봉이 높은 직장. 요즘에야 워라벨이라고 해서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연봉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좋은 조건이 바로 연봉과 직결이 되니까. 


이직을 하는 이유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테고,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학력이다. 학벌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지라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말인지를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 회사에 딱 맞는 사람임에도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뽑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여기에 미연 자신도 학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고, 자신이 만나는 상대로도 좋은 학벌을 지닌 사람을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미연의 제부는 어떤가? 여동생인 세연이 결혼한 사람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그럼에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빈둥대고 있는 인물, 빈둥대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없는, 집안일은 자신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그런 인물. 


미안해 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에게 반한 이유는 바로 학벌이다. 이 학벌이 가정생활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학벌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 미연의 가족, 또 미연이 연결해 주는 회사들의 인사 방침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미연이 사랑한다고 느낀 태환이라는 사람에게서도 이런 학벌의 후광이 자리한다. 


소설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학벌을 꼬집는다. 학벌에 가부장적인 모습까지 겹치면 참 대책이 없다. 이 대책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에 제법 나오는데,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학벌 하나로 인정받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어떤지를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학벌 좋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결혼과 직장. 이 두 가지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인습에서 벗어났으면 싶은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개정판에 실린 작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공지능 시대, 세상에 인간 중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인공지능을 앞설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해야 할 이 시대에 여전히 학벌, 학벌한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할까.


학벌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우리 역시 놓으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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