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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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춤추다'는 제목에서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말을 떠올린다. 절벽 끝에서 한 발을 내딛는 용기. 그것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가는 행위다. 끝이라고 더이상 갈 곳이 없다고 뒤돌아서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얻으려면 끝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한 발 더 내딛기 위해서.

 

르 귄의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너머로 가고자 하는 르 귄의 노력이 글 속에서 오롯이 느껴진다. 그렇게 르 귄은 자신을 옥죄는 세계에 갇히지 않고 그 세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갔다. 또 작가로서 르 귄을 말한다면 르 귄은 이미 존재하는 세상만이 아니라 상상 속의 세상을 창조해냈다. 그야말로 '세상 끝에서 춤을 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몇몇 구절들을 읽어보면 그러한 르 귄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설, 일반적으로 서사는, 주어진 사실에 대한 가장이나 왜곡이 아니라 선택지와 대안들을 제기하여 환경에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과정이자, 현재 현실을 증명할 수 없는 과거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연결하여 확장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85-86쪽)

 

이보다 세상 끝에서 춤을 춘다는 말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을까? 소설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한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해주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상상력만이 우리를 영원한 현재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으며, 상상력이 길을 발명하거나 가정하거나 꾸며 내거나 발견하면 그제야 이성이 그 길을 따라 무한한 선택지 안으로 뛰어들 수 있다. 선택의 미로 안을 통과하는 하나의 단서이며 미궁 속의 금실인 그 길, 이야기가 우리를 제대로 인간일 수 있는 자유로 이끌어 준다. 비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86-87쪽)

 

소설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핵심은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은 법의 굴레에 매여 산다. 이들은 세상 끝까지 가지도 않지만, 만약 가게 되더라도 곧 되돌아 온다. 그들에게는 그곳에서 한 발 앞으로 내딜 상상력, 용기가 없다.

 

그래서 르 귄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면 물론 오래된 세계로 시작해야죠. 세계를 하나 찾으려면, 잃어버린 세계가 있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잃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부활의 춤, 세계를 만드는 춤은 언제나 여기 세상 끝에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안개 낀 해안에서 추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92쪽)

 

그렇다면 이런 상상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와 떨어져 존재하는가? 아니다. 상상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찾지 않고 있을 뿐. 또는 찾아도 무시하고 있었을 뿐. 르 귄의 말을 보자. 이것이 바로 상상이고 문학이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우리 머릿속에 든 무언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이죠. 좋은 것도, 나쁜 것도요. (252쪽)

 

이런 상상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언어가 중요하다. 결국 우리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언어 없는 문학을 상상해보라. 잘 상상이 안 된다. 그러니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르 귄은 지배의 언어와 협동의 언어를 구분한다. 지배의 언어는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 왔던 남성의 언어다. 협동의 언어는 그와 다른 언어다. 그의 말을 보자.

 

  어머니말은 그냥 의사소통이 아니라 관계와 관계 맺기의 언어예요. 어머니말은 연결해요. 쌍방향으로, 아니 많은 방향으로 오가는 교환의 연결망이에요. 어머니말의 힘은 쪼개는 데 있지 않고 묶는 데 있으며, 거리를 벌리는 데 있지 않고 통합하는 데 있어요. (263-264쪽)

 

이런데도 아직 사회는 강력한 권위를 지닌 말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사용하도록 교육한다.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르 귄은 이렇게 비판한다.

 

  가부장제 교육시설인 우리의 학교와 대학들은 보통 우리에게 힘을 가진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아버지말을 하는 남자나 여자들의 말을 들으라고 가르치죠. 따라서 어머니말을 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가난한 남자, 여자, 아이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말라고 가르쳐요. 그런 사람들의 말을 타당한 담화로 듣지 말라고요.

  저는 이런 가르침을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67쪽)

 

하지만 이런 일은 쉽지 않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르 귄 역시 자신은 배운 것을 잊는데 느린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을 완전히 잊기 위해서는 세상 끝까지 가야 한다. 그곳에서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르 귄에게 이것은 바로 작품 활동이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비영웅적 이야기다.(298쪽) ... 소설의 자연스럽고 적절하며 알맞은 형태는 자루나 가방일지 모른다고 말하련다. 책은 말을 담는다. 말은 사물을 담는다. 의미를 품는다. 소설은 약보따리이며 그 속에 담긴 것들은 서로와, 그리고 우리와 특별하고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다. (299쪽)

 

그렇다. 바로 이것이 르 귄이 소설을 쓰는 이유다. 말을, 사물을, 의미를 담은 그릇. 그래서 르 귄 소설은 약보따리다. 우리에게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게 해주고 다른 세계를 보게 해준다. 그야말로 틀에 갇히지 않고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만나게 해준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들, 문학을 통해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음을 르 귄은 이 책 [세상 끝에서 춤추다]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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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06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선택지와 대안들을 제기하여 환경에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과정, 현실을 과거와 미래에 연결하여 확장하는 방법 💥 💥 💥

kinye91 2021-12-06 09:12   좋아요 1 | URL
르 귄의 문학에 대한 생각에 대한 글들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좋았어요.

프레이야 2021-12-06 09: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 귄의 이런 책이 있군요. 리뷰 고맙습니다.
책 담아가요^^
˝완전히 잊기 위해서는 세상 끝까지 가서 그곳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
문장도 함께.

kinye91 2021-12-06 11:54   좋아요 1 | URL
르 귄 소설도 좋지만, 이렇게 여러 글을 모아놓은 책도 좋더라고요.
 
밤의 언어 - 판타지, SF 그리고 글쓰기에 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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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 


요즘 들어 관심을 가진 작가다. 한두 작품을 읽다가 감동을 받아 여러 권을 사서 읽게 되었다. 빌려 읽은 소설도 있지만, 왠지 소장하고 싶은 작가의 작품이다. 소설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쓴 글도 좋다. 그런 글에서 마음의 울림을 느낀다. 그러니 어찌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권 두권 계속 사 모으기로 하고, 이번에는 '밤의 언어'라는 르 귄이 쓴 소설이 아닌 다른 글들을 편집한 책을 읽게 되었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을 사서 읽었지만,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발간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읽는데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당시 르 귄이 느꼈던 문제들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동안 거의 50년이 흐르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자괴감도 든다. 이 책에 실린 글에서 르 귄은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게 왜?" 라고.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왼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과격, 편협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왜 그럴까? 아직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대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남성이고 여성이고 또는 다른 성을 추구하든지 간에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을텐데...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먼저 앞세우고, 거기서 성별로 나는 차이를 인정하면 차이가 차별이 되지는 않을텐데, 아직도 그러니, 당시 르 귄이 난 페미니스트다. 그게 왜 문제인가라고 말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읽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SF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런 용어를 쓰기 이전에 먼저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르 귄의 글을 읽고 더 강하게 들었지만...


이처럼 이 책에 실린 어느 글을 읽어도 좋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어서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무 글이나 펼쳐서 읽어도 르 귄이라는 사람을 알아갈 수 있다.


몇몇 구절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환상 작가들은, 신화와 전설이라는 고대의 원형을 인용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보다 젊은 과학과 기술의 원형을 끌어들이는 사람이든, 사회학자들만큼이나 진지하고 어쩌면 훨씬 직설적으로,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인간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8쪽)


이것이 바로 이런 소설을 읽은 이유가 되고, 르 귄이 이렇게 평가받는 작품을 쓰는 이유다.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해서 르 귄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여 한쪽으로 규정하는 일은 잘못이다. 소설은 소설일뿐이다. 소설이라는 큰틀을 인정하고, 소설에서 작가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찾아야 한다. 


작품을 하위 분야로 분류하고, 그 틀에 가두는 일이 문제가 있음을, 그렇게 틀로 나누고 가둬 그 작가를, 또는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 가지 틀만 제시하면 안 된다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르 귄은 이 책 도처에서 하고 있다.


  상상력을 위협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보통 판타지 작품을 '유치하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이런 배제야말로 자신이 무력하며 노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고 보존할 때는 어린아이의 역할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득에 눈이 먼 상인, 관능주의자들은 상상 세계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다.(294-295쪽)


자ㅡ 우리는 얼마나 상상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즐기고 있는가. 예전 생각을 해보자. 학창시절에 소설책을(어떤 소설책이든 상관없었다. 세계 명작이든, 추리소설이든, 로맨스 소설이든) 읽다가 교사에게 걸리면 교사들은 대뜸 공부 안하고 이런 것이나 읽고 있느냐고 야단을 쳤다.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문학 작품을 꿈으로 가득 찬 시기에 들어선 청소년들이 읽다가 야단을 맞는 경우, 이런 경우 우리는 더이상 상상력을 지닌 존재로, 세상을 새로움이 가득찬 경이로운 세계로 보는 눈을 지닌 존재로 지낼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왔다.


하지만 이렇게 자라왔다고, 후대 세대들에게까지 이런 모습을 강요해야 하는가. 입시라는 굴레로 여전히 상상력이 억압당하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시험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해야 하겠는가.


이런 모습들은 우리가 상상의 세계를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니 판타지라고 하든 환상이라고 하든, 아니면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든 읽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있는 이 현실에서 르 귄이 말하고 있는 앞 구절은 우리에겐 아프게 다가온다. 그것을 '유치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자신이 늙어버린, 무력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이 말이...


제목이 된 '밤의 언어'. 자, 밤은 명징함을 넘어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때다. 밤의 언어는 바로 그런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도하는 언어...


르 귄의 글은 바로 그런 밤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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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10 - 지구의 끝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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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긴 여정의 끝이다. 그런데 끝이 개운치가 않다.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트레비스의 모습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류의 미래가 로봇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0권까지 오는 동안 신을 대신해서 우리 의지를 조종하는 존재들을 만나왔는데, 이를 신으로 대체해도 좋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계획 속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드디어 지구를 찾는다. 그런데 지구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인간들이 살 수가 없다. 왜 지구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밝히기보다는 지구에 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 드디어 달이다. 트레비스는 달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다시 다닐이라는 로봇을 만난다.

 

파운데이션을 시작할 때 셀던이 만났던 로봇이 다시 등장한다. 그가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끌어왔다고 한다. 물론 그는 계획할 수는 있지만 실행할 수는 없다. 실행은 바로 인류가 해야할 일.

 

이렇게 셀던프로젝트와 연결이 된다. 즉, 셀던프로젝트는 미래를 완전히 완결지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변수로 작동하지만, 결국 그런 쪽으로 가야 한다는 당위와 연결이 된다.

 

이 당위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른 인물들이 필요하고, 트레비스는 이런 역할을 하는 인물로, 이 소설 초기 셀던에 이어 후반기에 선택된 인물이다. 그렇다고 셀던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으로 끝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400년 이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그 기간 동안 셀던도 트레비스도 또 중간에 나왔던 다른 인물들도 모두 사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계획이 완수되는지를 누가 확인해야 하는가? 따라서 로봇은 그때까지 죽을 수가 없다. 자신의 능력을 전수하고 인간들의 미래를 지켜보아야 한다. 인간들의 자유의지는 살아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소설은 트레비스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인식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비록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하겠지만. 여기서 가이아를 선택한 트레비스가 옳았음을 이야기하는데, 여전히 가이아는 닫힌 체계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잘 납득할 수 없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리스가 가이아이기도 하지만 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전체적인 틀 속에서도 개인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것이 보장되는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다른 존재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회, 그런 사회를 아시모프는 바라지 않았을까 싶고...


가이아가 '정-반-합'에서 '합'이 되지만, 그 '합'은 완결된 존재로 있지 않고 다시 '정'이 되어 또다른 '반'을 통해 계속 변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듯 지구에 관한 비밀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그리고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 소설이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방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낯선 행성들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의 우리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구의 위기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소설을 읽는 이유도 낯선 세계를 통해서 우리 세계를 다시 발견하고, 우리 삶을 잘 살아가게 하는 데 있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긴 여정이었다. 10권까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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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9 - 금지된 행성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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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길고도 긴 여정이 끝나야 하는데, 아시모프가 순서대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을 사건의 순서대로 번역해서 배치했다고 하는데, 결말 부분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셀던프로젝트에 의하면 1000년에 걸쳐서 또다른 은하제국이 건설되어야 하는데, 이 후반부에는 그런 내용보다는 가이아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 선택한 책임감으로 근거를 찾아나서는 트레비스, 페롤랫, 블리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리즈 소설에서 셀던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트레비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함께 하는 페롤렛과 블리스도.


이들은 지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함께 하고, 이들의 모험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 특히 9권에서는 지구의 존재를 확신하고 찾아가는 여정이 나오는데... 지구까지 가는 과정에서 로봇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인간과 로봇, 지구와 우주. 그리고 제국와 평화. 많은 주제들이 중첩되고 있지만, 아직도 지구는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인류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별. 이 9권에서는 지구를 찾는 과정에서 지구의 모습을 우리가 아는 천문학적 지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도 한다.


커다른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는 얘기는 달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섯번째 행성에 커다란 고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토성에 관한 이야기, 소설을 읽으며 학창시절 배운 지구과학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오로라라는 행성에서는 인간이 없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생태계를 생각할 수도 있게 하고...


이 행성에서 일행은 개들의 습격을 받는다. 인간이 사라지고 인간과 함께 지내던 개들이 야생의 상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맹수의 습성을 회복할 수밖에 없는 것.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버려진 반려견들이 집단을 이루어 맹수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자, 인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를 이런 식으로 아시모프는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찌됐든 인간이 사라져도 생태계는 균형을 이루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좋겠다. 인간에게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겠지만, 존재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균형을 이루려 한다.


이런 오로라 행성을 떠나 솔라리아라는 행성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로봇을 사용하는 우주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외계에서 온 인간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행성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양성 인간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들이 우주로 나아가 다른 행성에 살게 될 때 정착할 수 있는 한 면을 상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군집이 아닌 개인 생활을 하되, 서로 연락은 하고 지내며, 행성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로봇과 다른 기기들을 다루는 종족. 그런 미래... 하지만 그런 미래가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고 아시모프는 주장하고 있다. 밴더라는 솔라리아의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고립된 생활, 배타적인 생활일 뿐이다. 그러니 트레비스나 페롤랫, 블리스는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이렇게 다른 행성을 거쳐 오로라, 솔라리아까지 왔는데, 셀던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부분만 등장하고 주요 사건이 되지 않는다. 은하제국이 멸망하고 이제 500년이 조금 지났는데,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셀던프로젝트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이들은 솔라리아를 떠나 지구를 찾아 다시 떠날텐데, 지구를 발견한 다음에는 셀던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또 가끔 나오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결합이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그 점이 이 소설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10권, 소설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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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8 - 가이아 공동체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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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새로운 행성, 새로운 인간(?)의 등장.


제1, 제2파운데이션이 경쟁하는 구도로 계속 갈 줄 알았는데, 이번 권에서 새로운 행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잠정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해결책이 나온다. 지금까지 변증법에서 말한 '정-반-합'으로 말하면, 구 은하제국이 '정'이라면 제1파운데이션이 '반'이 되고, 제2파운데이션이 '합'이 되어, 또다른 '정'으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가이아가 등장한다. 가이라,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가이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서 가이아는 지구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가이아는 현재 우리가 지구를 생명체로 여기는 인식과 비슷하게 표현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결합된 생명체... 가이아 행성에서는 어떤 존재도 따로 있지 않다.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하다못해 무기물들조차도. 이들은 서로의 감정, 생각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이 행성은 열려 있는 듯하면서도 닫혀 있는 세계다. 


가이아인(?)들은 자신들끼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외부인들과는 공유하지 못한다. 소설 말미에 잠시 나오는데, 외부인들이 가이아인들의 정신을 공유하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리고 더 길어지면 그들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표현을 보면 가이아는 유토피아의 다른 이름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는 없는 세계라는 뜻이 된다.


이런 세계는 결코 '합'이 될 수가 없다. 아니 '합'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정'으로 변화한다. 이제 이 '정'을 지양하는 '반'이 나와야 한다.


이렇게 8권에서는 제1, 제2파운데이션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가이아, 셋이 충돌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셋 중에서 하나를 고를 권한을 트레비스에게 준다. 그는 자료가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특성을 제외하고, 가장 단순화 시킨다면 제1파운데이션의 과학문명,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문명, 그리고 가이아의 생태문명 가운데 트레비스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트레비스가 가이아를 선택하고, 충돌 위험에 처해 있던 셋은 각자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지니고 자기 길을 가게 된다.


이렇게 끝났으면 무언가 미진했으련만, 소설은 계속된다. 결정을 내린 트레비스는 가이아에 대해서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다. 어쩌면 완벽한 유토피아란 사람들의 자율성을 제거한 사회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율성이 제거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냥 자신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고 있지만, 거대한 유기체 속에서 선택된 결정이었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 과정을 역사의 흐름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신이 있다면 신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이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들어냈다고 하자.


이 로봇에게 온갖 프로그램을 주고 그대로 행동하게 한다. 여기에 로봇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인식하는 프로그램까지 주입한다면? 과연 로봇의 자율성은 있는가? 


인간 역시 신이라는 존재가 만든 로봇과 같은 것이 아닐까? 끝없이 순환하는(가이아 행성에서는 음식도 가이아이기 때문에, 삶은 가이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가이아 출신이라고 하는, 파운데이션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뮬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이 체계를 열린체계라고 하기 힘들다.


트레비스는 그를 느끼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왜 지구에서 찾을까? 트레비스는 로봇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로봇은 지구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원을 찾는 행위는 곧 지금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이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트레비스는 지구를 찾아 떠나야 한다. 지구를 찾는 일, 미래 은하제국을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8권은 이렇게 충돌위기와 갈등해결, 그리고 지구를 찾아 떠나는 인물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합'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무어라 확언할 수는 없어도 닫힌체계를 추구하지는 않으리라. 유토피아가 닫힌체계라면 그 또한 '반'의 세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열린체계를 추구한다. 그런 체계, 즉 닫혀 있지 않은 우리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체계를 추구하지 않을까 싶다.


트레비스가 가이아에서 느낀 막연한 불안감은 바로 이런 데서 왔다고 할 수 있고... 이제 소설은 지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바뀐다. 그것이 셀덴프로젝트일까? 아니면, 셀덴프로젝트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일까?


9권으로 가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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