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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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이다. 그러나 책에 실린 세월은 30년을 넘나든다. 긴 세월이 이 작은 책에 담겼다고 보면 되는데, 시인 최승자가 쓴 첫 산문집에다가 최근에 발표한 글을 합쳐 출판하였다.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 시를 통해서 시인을 알 수도 있지만, 시인이 쓴 글을 통해서 시인을 알 수도 있다. 시인이 어떤 한 면만으로 규정되지 않기에 시인의 여러 모습을 산문을 통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인이 되는 과정을 담은 글도 있고,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 글도 있고, 최근에 어째서 시집을 내지 못했는지, 본인이 정신질환을 앓아서 그랬단 이야기도 이 산문집에 있다.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 어쩌면 시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쪽이 더 울림이 클 수 있다.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아도, 의미 이전에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시. 마음 속에 자리잡고서 나가지 않는 시. 그런 시들이 있다.


어느 순간 팍 마음에 꽂히는 시. 그런 시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시인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승자 시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시인이 쓴 글을 통해 시인을 만나면서, 그가 쓴 시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 외우고 있는 최승자 시는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들어하는 시는 제법 있었는데...


이 산문집에서 친구, 맹희(이름은 명희라고 한다)라고 하는 친구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다른 눈을 가진 아이. 어쩌면 바로 시인들이 그 맹희와 같이 다른 눈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으니...


반에서 분실사고가 생긴다. 범인에게 벌 주고 싶다. 아이들은 미꾸라지를 잡아 눈을 찌르면 범인도 미꾸라지처럼 눈이 멀 거라고 그렇게 하자고 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자고 할 때 맹희는 반대했단다. 왜? 그럼 눈이 멀고, 눈이 멀면 보지 못하게 된다고. 그럼 슬픈 사람이 된다고. 좋지 못한 일이라고 했단다.(43쪽)


남들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지녔던 맹희만큼이나 시인들 역시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시인들은 시를 통해서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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