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스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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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전쟁과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우선 재미있다. 무척 흥미롭게 읽어갈 수가 있다. 예전에 우리가 배운 역사책들이 대부분 인물, 전쟁 중심으로 기술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책 서술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물이나 전쟁 중심이 아니라 생활 중심이 되었고 문화 중심이 되었다. 아주 작은 차이들에 대해 인식해야지만 역사 발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문화 중심, 생활 중심으로 역사 서술이 가면 역사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지금을 이루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역사라면,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예전에 우리나라 역사(국사)를 배울 때 인물을 중심으로 배우지 않았던가. 세종대왕, 태종무열왕, 계백, 을지문덕, 양만춘, 강감찬, 이순신 등등. 살펴보면 전쟁 영웅이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을 중심으로 먼저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커다란 서술 뒤에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이 책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데 충분하다.

 

인물 중심, 전쟁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 생활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인물 중심으로 그것도 전쟁을 중심으로 전쟁을 이끌어간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2권은 페리클레스 시대를 다루고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점을 이끈 인물. 그는 오랜동안 스트라테고스에 임명되었다. 30년 넘게 스트라테고스에 연달아 당선되어 일을 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개인의 이익보다는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테네는 민주주의 꽃을 피운다. 지금까지 전세계인을 불러모으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웅장하게 재건한 것도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다.

 

하지만 이런 특출한 인물이 후기에 나오면 그것은 그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잠시 반짝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별들이 폭발하기 전에 더 밝아지듯이.

 

그리스는 오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그것도 민주주의 꽃을 피웠다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 사이에 벌어진 오랜 전쟁.

 

직접 맞대결을 하지 않으려던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그냥 서로를 위협하고 잠시 쉬고 하는 쪽으로 전쟁이 전개되었다면 그가 죽은 뒤에는 전면전이 된다. 잠시 동안 이루어졌던 휴전에 이어, 서로를 멸망으로 이끌게 되는 장기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멸망 직전 반짝이는 별로 등장한다. 그 다음은 오랜 전쟁,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들은 그리스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나라 스파르타와 개방적인 나라 아테네... 군사력을 중심으로 그것도 육군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과두체제의 나라 스파르타와 경제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기 위해 해군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민주체제의 나라 아테네.

 

서로 다른 정체를 가지고 서로 견제하고 때론 도우며 지내지만 주변국들의 상황에 따라 이들은 전면전으로 붙을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경제가 붕괴되었을 때 그 나라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파르타는 자급자족을 하던 나라라서 이런 위험을 그다지 겪지 않는다. 또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하지만, 스파르타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파르타 시민은 경제적으로 부담없이 (물론 이들은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전쟁에 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역국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아테네는 해상으로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그래서 해군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아테네와 항구도시인 피레우스를 잇는 도로, 또 방어벽을 설치한다. 이것이 아테네가 장기적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조건인 것이다. 페리클레스가 이 방어벽을 정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전쟁이 지속되면서 아테네 해군이 괴멸되자 식량난이 심각해진다.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경제가 무너진 나라, 지속될 수가 없다. 예전 미국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 나왔다는 말. '문제는 경제야!'

 

이 말을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자국민이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하는 것. 그렇다. 전쟁은 결국 자국민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벌이는 일 아니던가. 무력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 전쟁이지만,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가 힘들어지면 그때는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테네가 전쟁을 지속할 힘을 잃는 것, 스파르타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페리클레스 시대부터 아테네 멸망까지 무척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2권이다. 그래, 이런 역사를 통해서 전쟁의 참상, 또 경제의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자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치인들은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당시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질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 2권은, 이렇게 아테네 항복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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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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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 다음, 이제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신들의 이야기는 곧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이야기에 관한 책을 뽑아들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이 저자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다.

 

꽤나 많은 부수가 발행된 책이었는데, 이제 나나미는 그리스인에 주목한다. 사실 민주주의 기초를 닦은 민족이 그리스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통상 말하는 그리스인은 찾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 나라로 존재하는 그리스가 아니라 예전에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많은 도시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은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이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스파르타는 군국주의라고 그냥 알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그리스인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다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도시국가인이었다는 사실. 이들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연합하면서 많은 세월을 지내왔다. 각 도시국가들끼리 전쟁을 하다가 서로 멸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 또는 평화 기간을 갖기 위해 4년에 한 번씩은 올림픽을 치렀던 나라가 바로 이 그리스였다는 것.

 

올림픽은 무기를 들지 않은 평화기간을 보장해 주었던 옛날 장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그리스인들을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해주는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페르시아 민족이다. 이 페르시아는 그리스인들에게 단합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1,2차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펠레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도시국가들이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으로 뭉치게 되는 사건들이다.

 

이렇게 그리스 초기에 정치활동과 군사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이끌어간다. 수많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가운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으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아테네가 더 잘 알려져 있어, 아테네 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폐쇄적인 사회를 이루었던 스파르타보다는 개방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었던 아테네가 더 다양한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스파르타에서 다루는 인물로는 스파르타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을 기초한 '리쿠르고스'와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레오니다스' 왕, 그리고 제2차 페르시아전쟁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파우사니아스'가 전부라고 해도 된다.

 

철저하게 신분제 사회를 고수한 스파르타, 해외팽창보다는 자국의 안전을 중시한 스파르타, 강인하게 전사를 키운 스파르타에 대한 이야기가 인물들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아테네인들을 주로 떠올린다. 민주주의라고 해도 역시 아테네를 떠올리고...이런 아테네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데,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라는 한 명에 의해 이끌어졌다면, 아테네에서는 여러 사람이 연달아 나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솔론'.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초하고 할 수 있고, 솔론의 뒤를 이은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아테네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참주라고 불리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는 '솔론'이 한 개혁이 지닌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페이시스트라토스 다음으로는 '클레이스테네스'가 등장하고, 그는 특권계급에 속했다고 할 수 있지만, 개혁을 제대로 이끌어간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반세기 정도 동안 서양의 르네상스, 중세, 고대 로마에 관해 쓰면서 깊이 생각한 것은 시대에 획을 그을 정도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실행한 사람은 모두 기득권 계급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기득권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자기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일만 생각하는 단순한 보수주의자는 아니었다. 이 계급에 속한 사람 중에서 때로 자기들이 속한 계급의 결함을 직시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개혁은 기득권 계급이 가진 결함을 파고드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결함을 따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쪽이 유리하다. (108쪽)

 

이 말은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유기적 지식인들에 의해 헤게모니가 발현되는 과정, 이것이 곧 개혁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 중에서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해결책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나타나는 때, 개혁의 순간이 된다. 어쩜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유기적 지식인'이 나와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그냥 자기 특권에 안주하는 보수적 특권층만이 아니라.

 

또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도 말한다.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 민주정치'는 모두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국정 방향을 시민(데모스demos)의 손에 맡긴다'가 아니라 '국정 방향은 엘리트들이 생각해서 제안하고 시민에게 그 찬반을 맡긴다'이기 때문이다. (108-109쪽)

 

이 부분에서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공론조사 - 원전 건설 중지와 대학입시 개편안-를 실시한 과정이 생각났다. 과연 엘리트들이 무슨 일을 했던가. 그들이 국정 방향을 제시했던가. 오히려 그들은 국정 방향을 시민에게 맡겨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인 듯 여기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해당할지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 어떤 식으로 정치를, 국정 방향을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클레이스테네스 다음으로는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그렇지만 말로는 비참했던 '밀티아데스'다. 그 다음으로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는 '테미스토클레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테네가 강한 도시국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도 최고의 자리에서 제 때 물러난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나중에는 추방당하기도 하고, 페르시아로 넘어가 그곳에서 최후를 맞기도 하지만... 그는 아테네가 강국으로, 특히 해상 강국으로 부상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등장으로 아테네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민주정치를 완성해가기 시작한다.

 

아테네가 또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차지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군사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서 기틀이 잡히게 됨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온갖 자료들을 해석하면서 자기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들에 대해서,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제 다음 권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시기로 넘어간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페리클레스' 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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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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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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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를 철학하다
차민주 지음 / 비밀신서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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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말했다. 예전에 외국에 나가면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고 먼저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국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물정도 모르고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나 보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 우리나라 자체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방탄소년단 때문이라고...일명 BTS라고 하는 그들 때문이라고.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한국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고 했다. 방탄소년단. 처음엔 무슨 군사단체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엔 그냥 요즘 많이 나오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줄만 알았다. 얼마 있지 않아 잊혀질... 참 물색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이돌에, 방탄소년단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으니...

 

아이돌 하면 그냥 만들어진 존재로 치부했다. 『민들레118호』를 읽으며 아이돌에 대해서 생각을 조금 바꾸긴 했지만, 그 호에서 방탄소년단이 나오긴 했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BTS를 철학하다』라니... 아이돌을 이제는 철학으로 조명하는구나 싶었다.

 

아이돌과 철학, 정말 멀리 있는 조합이다. 은유라고 한다면 가장 먼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돌 음악하면 경쾌함, 가벼움, 순간적임 등등을 떠올리는데, 철학하면 무거움, 어려움, 영원함 등등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건 편견이다. 그런데 이 편견이 참 무섭게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경쾌하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아이돌 음악이 진지하고 무겁게 이상하게도 광장이 아닌 밀실에서 늙수그레한 늙은이를 떠올리는 철학과 연결이 되다니...

 

어찌 흥미를 유발하지 않겠는가. 제목만으로도 책에 손대게 만든다. 어른들은 이게 뭐야 하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손에 든 책... 처음엔 방탄소년단이 부른 노래들 가사에서 시작한다. 어라? 노래 가사들이 만만치가 않다. 책에서는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가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가 본래 노래였으니 새삼스러운 말도 아닐텐데, 요즘 노래 가사들의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충격을 받았으면 찾아서 비교해 볼 수밖에... 책에 많은 노래들의 가사가 나오는데, 가사들이 가볍지가 않다.

 

사회 문제부터 청년들 문제까지 다 다루고 있는데,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그렇게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래, 이래서 방탄소년단이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가사에 빠른 박자의 음악, 그리고 독창적인 그들의 춤, 나름대로 연결성을 갖고 만든 뮤직비디오 등등,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종합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종합예술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무언가를 심어주는, 치유 기능도 갖고 있고, 사유 기능도 갖고 있으며, 오락 기능도 갖고 있는 그런 노래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철학이 아니고 무엇인가.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교실 이데아'가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COME BACK HOME'이라는 노래가 집을 나온 청소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고 하는데, 이런 역할을 방탄소년단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했을 때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으로...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섰다고 한다. 그런 자신들의 삶을 솔직하게 가사로 담고 있으며, 팬들과도 솔직하게 소통한다고 한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이 삶과 밀접하게 연계된 노래, 음악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다. 나같은 기성세대에게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먼저 들으면 우선 빠른 박자로 가사를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고 마는데, 이런 책을 통해 가사를 먼저 알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다시 노래를 들으면 그때부터 가사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사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에 노래가 들어오게 된다. 이제는 아이돌이 특정 세대만의 음악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이 책 『BTS를 철학하다』를 읽으면 아이돌 음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방탄소년단이 왜 유명해졌는지, 그들을 왜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음악은 다시 철학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내게 방탄소년단을 새롭게 알려주었다. 또한 그들의 노래를 찾아 듣게도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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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8 - 오이디푸스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강경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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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8권. 신화에 관한 길고 긴 여행이었다. 그리스 신화 마지막 권 주인공은 오이디푸스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닌 조상의 잘못으로 고난에 빠지게 된다. 그 고난을 온몸으로 겪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물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원죄를 지었다는 말을 연상시키는 그의 운명인데... 원죄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멀고 먼 옛날에 일어난 일이 저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니.. 이를 '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 역시 비극은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싸우다 함께 죽게 되고, 큰딸인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장례치러주었다는 이유로 잡혀가 자살을 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난다. 그게 운명이었다.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라며 억울해만 할 것인가. 아니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태어날 때 지고 온 잘못이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지닐 것인가.

 

오이디푸스는 자기 책임을 지려고 했다. 그는 받아들였다. 고난을 겪는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영광의 순간에서 몰락의 순간까지 다 겪게 되는 인물, 그 자식들 역시 비극을 겪게 되는 인물. 여기서 신의 도움은 없다.

 

영웅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신의 도움없이 자신의 지혜로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다. 또한 그가 겪는 고통에 신이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고난 받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마치 우리 인간들의 역사가 이런 고난으로 점철될 것을 예견한 듯이.

 

다시 원죄, 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조상들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가? 죄가 한 대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만큼 죄가 크다는 의미인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 당대에 끝나지 않을 잘못이라는 것. 그것은 자손들 대대에 걸쳐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것. 그러하기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특히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우리나라 신화 중에 '차사본풀이'가 생각난다. 남의 아들 셋을 죽인 괴양생이가 아들 셋을 낳지만 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돌아와 잔치를 벌이려고 하자 줄줄이 죽어나가는 이야기. 괴양생이 저지른 잘못이 아들들 죽음으로 이어지는 업.

 

오이디푸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이런 업이 실현되는 것이다. 업을 끊는 일, 참으로 힙겨운 일이다. 그것은 자손들의 피나는 노력,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읽으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떠올리기보다는 내 잘못이 후손들에게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그래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국 자기에게 또 자기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업이나 원죄나 이것은 모두 행동을 조심하라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지켜야 할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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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7 - 오디세이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김세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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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이다. 이번 권 주인공은 단연 오디세이다. 오딧세우스 또는 오뒷세우스라고 하는 영웅. 아마도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 그러나 지혜란 남을 위해 발휘될 때 빛을 발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발휘될 때는 독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은 이미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두뇌를 사용한다는 의미겠지만, 자기만을 위해 두뇌를 이용하는 사람을 우리는 꾀가 많다, 약삭빠르다고 하지 지혜롭다고는 하지 않으니, 오디세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공평무사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오디세이를 읽다보면 그가 그렇게 공평무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역시 자신의 꾀로 남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을 받는 왕이었고, 신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었다.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뒤 포세이돈의 분노로 고향에 돌아가는데 10년이 걸린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에서 10년, 전쟁이 끝나고 10년, 20년을 집을 떠나 고생을 하는 오디세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은 인간이 전쟁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오디세이의 모험과 고향에 돌아와서 겪는 일이 함께 섞여 있다. 오디세이는 온갖 고난을 겪고도 고향에 돌아와서도 고난이 끝나지는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 구혼하는 구혼자들, 그들의 횡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과정, 고향에 돌아와서 그가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의 과정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른 책들은 그가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설명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한 일은 짧게 서술하기도 한다. 이 책에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 서술하는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고향에 돌아와 구혼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향을 떠난 뒤 돌아와서 다시 정착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디세이 같은 왕도 이러한데, 일반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이 신화는 고향을 떠나 떠돌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고생을 하다 돌아온 사람들, 그들의 고생이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 제2의 전쟁을 겪어야 한다. 그 전쟁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고향에 안주할 수 있다.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고통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 고통을 끝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디세이에게는 아내인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충직한 하인이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움으로 그는 구혼자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그를 계속 괴롭히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여기서 신은 빼자. 신화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니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겪었을 때 그 다음에도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오디세이 모험을 이렇게 고난 -> 귀향 -> 또 하나의 고난 -> 극복 -> 안정(행복)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상황에 이 과정을 대입 해보면 여전히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나 강제 징용 피해자나 또 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한 사람 등등 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귀향했다. 그러나 일제시대, 베트남 전쟁 등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오디세이를 읽어 보라. 그는 10년간 바다를 헤매었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도 금방 정착하지 못했다. 정착할 수가 없다.

 

여전히 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는 그의 고향에 안주하지 못한다. 정착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난을 겪은 분들이 과연 귀향해서 그 고난을 극복했는가 하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바로 오디세이 신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역시 그들이 오디세이처럼 정착할 수 있게,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끝내고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방해를 하는 구혼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읽기 독법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신화가 무궁무진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가 우리 역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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