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숨 -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
알렉시스 폴린 검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접촉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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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마치 시와 같이 들려온다. 속삭이듯이. (번역을 잘했다고 해야 할 듯)


해양포유류 이야기지만,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다. 세상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저자도 말하듯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돌고 도는 삶들. 관계들. 이 돌고 도는 원의 관계를 끊으면 생태계가 위험해진다. 그러한 위험을 초래한 존재가 누구인가? 바로 인간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해양포유류를 대량학살했던 과거의 인간. 대놓고 학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살아갈 서식지를 파괴함으로써 또다른 대량학살을 유발하고 있는 지금의 인간. 해양포유류의 대표격인 고래를 생각해 보자. 인간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또 이미 멸종한 고래들을...


이러한 학살적 인간과 더불어 그들과 공생하려는 인간도 있다. 이렇게 해양포유류를 보면서 저자는 바로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그들과 맺는 관계가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해양포유류를 인간의 관점에서 재단하고, 그들의 삶을 인간이 주도하려고 하고, 그들에게 쓸모 있음과 없음의 딱지를 붙이는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렇게 해왔다는 것.


결국 우리가 다른 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삶을 살피면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때로는 객관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해양포유류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현을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연결고리를 끊으면 안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는 용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쓰고 있다.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그래서 저자에게는 기존에 나와 있던 해양포유류에 관한 책들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해양포유류에 관한 안내서 연구에서 발견한 주요 사항 중 하나는 인종차별, 성별이분법 등의 억압을 부추기는 언어가 해양포유류에 관한 '과학적' 설명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132쪽)


이렇게 과학의 껍질을 쓰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인간에 대해서도 그랬는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관해서는 더더욱 심했으리라.


그러니 인간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그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그런 눈을 지니기 위해서는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귀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처음을 '듣기'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이를 장이라고 하지 않고 주제별 운동이라고 한다) 각 부분의 제목이 그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주제는 '듣기 - 숨쉬기 - 기억하기 - 연습하기 - 협력하기 - 취약해지기 - 존재하기 - 맹렬해지기 - 갈등의 교훈 - 경계 존중하기 - 털 존중하기 - 자본주의 끝내기 - 거부하기 - 항복하기 - 깊이 들어가기 - 감정으로 있기 - 속도 늦추기 - 휴식 - 축복 보살피기 - 활동'이다.


'듣기'로 시작해 '활동'으로 끝난다. 그렇게 듣기의 중요성, 단지 듣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활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해양포유류의 다양한 삶들에서 인간의 삶을 이끌어낸 저자의 통찰력을, 저자의 말 그대로 창발적 전략(21쪽)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해양포유류의 삶에서 어찌 평화만 있겠는가? 그들의 삶에서도 갈등이 있고, 죽음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량학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한 갈등, 죽음 속에서 자신들의 종만이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맺는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여러 모습이 있다.


어느 한 종이 다른 한 종을 멸절시켰을 때 자신들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김을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려 인간들이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면 과연 인간이라는 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해양포유류가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 숨을 쉬는 방법을 찾아냈듯이, 인간 역시 자신들의 숨을 위해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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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예프 사건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6
빅토르 세르주 지음, 조재룡 옮김 / 빛소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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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성공시키기 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 그만큼 기대가 높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항하는 존재들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외부의 위협도 있지만, 내부의 위협도 있다. 이렇게 혁명은 성공 직후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한다. 외부의 위협이야 명확하니까, 대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내부의 위협은 (여기서 내부라 함은 혁명을 이룬 나라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사람들, 또는 지지자들을 의미한다) 적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혁명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한때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이기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혁명이 성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단속이 필요하다는,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쪽이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모두 반혁명 세력이 될 수 있다.


아니 반혁명 세력이라고 불린다. 그들을 용인하면 혁명의 속도가 정체된다. 어떤 때는 후퇴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억압은 혁명의 대의에 어긋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 아닌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공존하는 사회 아니던가. 이런 사회를 꿈꾸었는데, 내부에서 반발이 나온다고 억압을 한다면 그것은 혁명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혁명이 지지부진해지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혁명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하는 것이 권력자의 책임이 아니라 반대 세력 때문이며,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혁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툴라예프라는 고위 관료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범인이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기회다. 만약 범인이 잡혔어도 그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잡히지 않아야 일이 더 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자로 잡혀들어간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권력자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도 있고, 혁명의 이념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엮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반혁명 사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만들어낸 사건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면 된다. 자백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고문이라는 방법도 또 혁명의 이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으로 결국 세 명이 처형된다. 이들이 살인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권력자의 뜻을 효율적으로 집행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들에게 혐의를 덮어씌움으로써 권력자가 말하는 혁명을 지속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의지다. 다음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관료들이다. 그 다음은 이런 사건 결과를 받아쓰기 하는 언론들이다. 이렇게 사건은 만들어지고 결론지어진다. 진실은 없다.


아니, 진실은 있다. 다만 밝히지 않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야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점이다.


이런 사건 과정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권력자에게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혁명의 대의는 배반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니...


개인보다는 당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을 진실을 왜곡하는 사건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사람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러시아 역사 중에서 스탈린 치하의 역사를 알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소설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인 듯한 '이 소설은 문학적 허구일 뿐이다. 소설가가 창조해낸 진실은 역사학자나 연대기 작가의 진실과 어떤 정도라도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탈린 숙청 당시의 사람들과 소설 속 인물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대응시키려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고, 또 이것이 단지 스탈린 치하에서만이 아니라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사회에서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일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좋은 작품은 현실을 반영하고, 그 반영을 통해서 현실을 겉모습만이 아니라 감춰진 속도 볼 수 있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의 이 소설 [툴라예프 사건] 하나의 조작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진실이 어떻게 가려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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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일기 눈빛사진가선 72
전제훈 지음 / 눈빛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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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탄광촌.


이곳에서 나온 석탄은 여러 연료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특히 연탄으로 요리를 하거나 추위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연탄이 아직도 곡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탄은 과거의 물건이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보는.


이런 연탄으로 대표될 수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광부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즐거운 기사가 아니라 대부분 사고 기사였으니...


이들의 일터는 너무도 힘든 곳이었다. 막장이라고 했다.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야 하는 직업. 방진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잘 가리려고 해도 온몸에 들러붙는 석탄가루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미세가루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갱도로 들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갱도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다르다. 색깔이. 완전히 검은 색으로 뒤덮인 그들의 모습. 그들이 사진기 앞에 서기 좋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사진작가 역시 갱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화약기사로 광산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기록들.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노동들.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이 사진집에 있다. 


그렇다. 그들의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힘듦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던 생활. 그러니 더더욱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노동을.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이었던 그들의 노동 생산물을... 그런 기록들. 사진으로 남은 기록.


이렇게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도록 한 작가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다. 이런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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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말 - 평양문화어에서 험한 재미를 파헤치다
정소운 지음 / 황소자리(Taurus)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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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박치기, 얼음보숭이, 꼬부랑국수, 가락지빵'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겠는가? 한때 북한말을 알자는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순우리말로 외국어를 많이 바꾸었다고, 대표적으로 거론된 말들이 바로 앞에 인용한 말들이다.


주둥이박치기는 '키스'를, 얼음보숭이는 '아이스크림'을, 꼬부랑국수는 '라면'을, 가락지빵은 '도넛'을 말한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북한에 가본 적도 없고, 북한 사전을 찾아본 적도 없으니.


아니, 우리나라에서 북한 사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칫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잡혀갈 수도 있는데... 예전에 '이적표현물 소지 금지법'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


하지만 많은 책에서 순화한 북한말이라고 이 말들을 소개하곤 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들이 쓰이는구나, 조금 어색한 말도 있지만, 괜찮은 말도 있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잘못 알려진 북한말'이라는 부분에서 이 단어들 실제로 북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403-412쪽). 그만큼 북한과 우리가 교류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때 공통 사전을 편찬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여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북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날래'가 나오는데, 이 말은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북한에서 우리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평양문화어'는 사투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신문에서는 이 말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의 저자는 노동신문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쓰이는 말들을 살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도 있지만 처음 보는 말도 있다.


또 그 말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어떤 말들이 사라졌는지를 살피고 있다. 노동신문이면 북한의 공식 신문 아닌가. 그러니 이 신문에 쓰이는 말들은 북한의 공식언어라고 보면 된다.


저자가 방대한 양의 노동신문과 다른 매체들을 살펴서 북한에서 쓰고 있는 말들을 알려주고 있기에, 북한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말들을 쓰고, 어떤 말들은 쓸 수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거기다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에 실리는 글 중에 정말로 찰진 욕들이 왜이리 많은지, 북한은 그러한 찰진 욕들을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퍼붓는다고,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그러한 욕설을 싣지 않는다고 한다.


참. 가끔 북한에서 나온 성명서를 보면 와, 저런 심한 욕을 하기도 하는구나, 어떻게 정부의 대표라는 사람이 공식적인 문서에서 저런 표현을 하지 했었는데,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외부를 향해 표현하는 방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이 책은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서 사용되는 말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낯설지만 친숙한 말들이기도 하다. 북한과 우리는 한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또한 많은 어휘들이 여전히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럼에도 분단으로 인해 달라진 말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제 북한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남한이라는 말이 북한에서 사라지는 과정도 살펴주고 있으니, 어떤 말들이 북한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공식적인 매체에 쓰인 언어를 살피고 있기에, 아마 북한 당국이 특정한 말들을 금지했다고 해서 그 말들이 쓰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말은 탄압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오히려 억압이 심해지면 그 언어를 몰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 말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런 일상에서의 말까지 살필 수 없는 것이 한계이긴 하지만, 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관계가 회복되어 서로 교류가 된다면, 이 책의 2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노동신문에서 다루는 말들과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들의 같고 다름을 살피는 책.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서 살핀 북한말이기 때문에 좀 답답한 느낌도 있다. 재미가 아니라 답답함. 언어를 꼭 이렇게 통제해야 하나 하는 생각.


하지만 교류가 끊긴 이때 북한에서 쓰는 말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남과 북은 아직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하루빨리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해서 실생활에서 쓰는 북한말에 대한 책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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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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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라는...


이 소설 제목을 보자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는데, 이름 없는 것들의 밤에서 '이름 없는'이라는 말과 '밤'이라는 말이 힘든, 어려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등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말 그대로 힘든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삶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했다.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첫소설 제목을 보고서는 어, 어디서 본 소설인데, 아니 내가 읽은 소설인데 했다. 읽으면서 역시 읽은 소설이야 했는데, 이 소설은 짧은 소설로 먼저 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시작으로 연관된 내용의 소설 두 편이 묶여 이 소설집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흡혈인, 인조인간, 인간, 기계 등이 등장하는데, 이름 없는 것에 이들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소설에서는 흡혈인과 인간 마리카, 그리고 인조인간 빌리가 등장하는데, 인조인간이 빌리라는 이름을 얻고 기계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물론 흡혈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인간의 피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기계에 종속된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다. 아니 인조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처음 읽으면서는 앞 부분에서 잠깐 언급된 마리카의 삶을 두 번째 소설에서 펼치고 있구나 했는데, 읽으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마리카가 생각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계에서 이용당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마리카는 자신이 기계 또는 기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과거의 의식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이 과연 인간일까? 그런 의식으로 인해 다른 존재에게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마리카는 그렇게 기계를 위한 첩자 역할을 하게 되고, 여기에 기계로 인해 아이를 낳는 기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세 번째 소설에서는 이런 마리카의 아이라고 하는 존재가 흡혈인 앞에 나타난다. 그런 그에게 흡혈인은 '모르다'는 뜻을 지닌 '네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네빔과 흡혈인 또다른 인간들, 그리고 인조인간들이 모두 나와 기계에 저항하는 장면.


그렇다고 기계에 승리하는 장면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런 행복한 결말을 내기에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이 소설에 나오는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으니.


그것들이 일으킬 부작용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로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한 이로움만을 추구하다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기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수록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갈지도 모르는데...


그러면서 이러한 기계 시대에 소외되는 존재들의 문제에 대해서 눈 감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 말하듯이 끝까지 저항하는 존재들은 소수자들이다. 기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이 아니다.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은 기계 시대에도 자신들의 특권을 잃지 않기 위해 기계에 협조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존재들,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은 그러한 기계 시대에도 역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계속 이름 없는 것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려고 할 수록 탄압은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밤'에 살던 사람들... '밤'에 묻혀 영원히 이름 없는 것들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들은 이름을 가져야 한다. 당당한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밤'이 아닌 '낮'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에서 그들은 '악마'로 분류되어도 된다.


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서 왔다'(286쪽)는 말이 이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이 좋은 이유는 재미있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고 싶어진다. 흥미진진한 소설.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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