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춘이라는 시인
하종오.조기조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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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시의 길이가 짧다고 시에서 느끼는 감흥이 적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시에서 번져오는 깊은 울림. 마음을 물들이는 시들. 그런 시들을 쓴 시인 서정춘.


짧게 쓴 시들만큼이나 시집도 많이 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첫 시집이 28년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 나머지 시집들은 아주 빠르게 나온 셈인데...


그는 평소 자신은 세 가지에서 짧다고 '삼단(三短)이라 했다는데,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서정춘 전'에서. 29쪽)고.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던 삶. 마부였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시에 반해 시집을 필사하면서 시 쓰기를 갈망했던 시인.


주소를 바꿔 투고를 하는 바람에(?) 신아일보에서 시로 당선이 되었다는 시인. 그 전에 용꿈을 꾸었다고... 신아일보에는 시조를 보내고,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려 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두 작품의 주소가 바뀌었다는데.


이 책에 실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의 심사평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아, 참...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선자와 성명 중의 두 자가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혹 있음직도 한 오해가 염려되지 않은 것도 아니나, 출중한 것을 그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 씨와 선자는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먼저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157쪽)


이렇게 이 책은 이런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서 후배 시인들이 기획해서 내었다. 1부에는 서정춘이 등장하는 시들을 - 와, 이토록 많은 시인들이 서정춘이란 시인에 대해서 시를 썼다니, 그의 짧은 시와 대조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길고도 길구나!-, 2부에는 서정춘 시에 대한 해설을, 3부에서는 서정춘의 사진들과 서정춘의 시에 장사익이 작곡을 했다는 노래 악보와 당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기사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정춘의 연보가 실려 있는데, 이 연보가 그냥 연대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서정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연보에서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피아노 최씨와 외팔이 장씨), 그는 외팔이 장씨를 통해 정지용, 백석 등의 시인을 알게 되고, 외팔이 장씨가 '너는 이미 시인'(172쪽)이라 했다고... 

 

서정춘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면 이 연보를 먼저 읽고, 2부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1부로 넘어가면 좋으리라. 


이 책에서 서정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김성동이 한 말... 하, 이 정도의 시인이었단 말이구나, 서정춘이란 시인은.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

  시단에 떠도는 말 듣고 이 중생이 말하였다.

  "북에 소월이 있고 남에 목월이 있다면 그 가운데 용래가 있다."

  다시 말하겠다.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 (109쪽)


이 책을 읽으면 서정춘의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몇 권 그의 시집이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시집들이 있다. 품절된 시집인데... 그러한 시집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참에, 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죽편'이란 시에 곡을 붙인 장사익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죽편]의 첫 시인 '30년 전 - 1959년 겨울'이란 시가 장사익의 읊조림으로 들어가 있다. 장사익은 죽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인생은 여행인가? 검색하면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링크를 걸어둔다.


EBS 스페이스 공감 - 263회 장사익 - 여행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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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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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람이 소외되었다고 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책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만민보 시리즈-두 권까지는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나오지 않은 듯. 그리고 이 책들은 절판이 되어 지금은 읽기 힘들어졌다. 세풀베다가 이 책에서 했던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노회찬 재단에서 기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있다. '6411의 목소리'로 대변된다-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듯)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환경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세풀베다의 다른 소설들도 이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짧게 그 사람들 (때로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도 나오지만, 그 고양이는 세풀베다 작품인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주인공 고양이 소로바스다)을 소개하고 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위해 사는 삶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는 것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


첫 이야기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 죽어가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고 외치는 사람. 그 사람은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이 그 사람뿐이었을까? 또 강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소외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런 사람들이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세풀베다는 이 책을 썼다.


왜냐? 이야기하는 게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소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문장 앞에 있음을 '그들 모두와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돌멩이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13쪽)고 세풀베다는 이 책의 첫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두 여자의 이야기, 칠레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를 끝까지 지킨 그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지하 감옥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여자.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어' (16쪽)이다. 심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동료를 보호한 그들. 


25년 후 그들은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상처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그들을 사랑스럽고 자랑스레 바라보는 세풀베다의 시선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1960년대의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같았다. 사랑과 생각이 모두 반항적인 소녀들 같았다. 그들은 영혼과 희망을 함께하는 동료였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나의 영원한 소녀들을!'(19쪽)


어찌, 이런 사람들을 소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을지언정 민중으로부터 또 역사, 진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육체는 늙었을지라도 정신은 영원한 청춘이다. 이를 세풀베다는 찬미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짧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린다.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세계를 우리가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 눈에 보이는, 남 앞에 나서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했고, 또 우리를 소외되지 않게 했다. 


칠레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런 기록의 힘,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이 되고, 민중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함을 우리 역시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다.


그럼에도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남에게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옛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겪게 되는 민족 참상의 현실을 '잃어버린 섬'에서 보여주고 있다.


한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으로 변하는, 그래서 결국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리로시냐' 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자의 선동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소외다. 이런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결코 이들은 소외되지 않았음을, 세풀베다의 이 책을 통해 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살아오고, 또 미래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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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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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어느 정도일까?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 차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부분에서 차별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차별금지법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이 있는데, 차별이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왜 그럴까? 자신의 자유를 차별금지법이 빼앗는다고 생각해서라고 하는데, 차별금지법이 주장하고 있는 큰 내용이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에 자유의 제약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차별을 해도 된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다. 내 자유야! 하면서 누구나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규범이 차별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차별은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고, 누군가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는 사회를 공동체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십분 양보하자. 차별금지법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자유를 침해할까? 바로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한에서만 금지한다는 법 아닌가.


모든 분야에서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소수자를 싫어한다는 마음까지도 규제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저자는 '차별금지 사유의 의의'를 이렇게 표로 정리하고 있다. (86쪽)


표제 내용
소수자 집단 차별금지 사유로 구분되는 집단은 상당 기간 차별받아왔고
지금도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 집단이다
합리적
이유의 부재
차별금지 사유는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공급 등에서
고려되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유의미한 요소가 아니다
비자발적 요인 차별금지 사유는 생물학적, 태생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으로서
여기에는 사살상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인간 존엄 훼손과
차별 조장의 효과
차별금지 사유로 부당하게 구분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훼손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표에서 두 번째 합리적 이유의 부재의 내용에 보면 이 분야에서 차별금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즉 합리적 이유의 부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야에서는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표에서는 '공공서비스'가 빠졌는데,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차별이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분야에 공공서비스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 공동체생활에 꼭 필요한, 홀로 존재할 수가 없는 이 분야들에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왜 그런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또 무엇이 차별인지, 어떤 영역에서 차별이 규제되어야 하는지, 지도나 규제,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는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지도와 교육을 통해서, 합의를 통해서 해결되는 쪽을 우선하고,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은 법으로 해결하기 전에 처벌 대신 권고를 하고, 권고에 이어 시정 명령을 내리는 쪽을 우선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차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고.


하여 저자는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기능은 기업, 대학 등 개별 조직에 대한 차별금지와 다양성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각 조직이 스스로 차별금지, 다양성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254쪽)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남을 차별하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그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반대하는 이유가 자유라면, 그 자유가 무한한 자유가 아님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유를 침해당하기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경우에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차별 없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213쪽)라고.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는 동일한 또는 비슷한 존재들끼리의 모임보다는 다양한 존재의 모임일 때 더욱 좋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다양한 존재들이 모였을 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음은 여러가지 사례들로 밝혀져 있으니 말이다.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것은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투자다. 차별금지법은 공존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법이다.'(24쪽)는 저자의 말에 이런 의미가 잘 드러나 있고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말 그대로 '절박한' 생존권의 문제'(200쪽)라고 차별금지법 또한 우선해야 할 민생 문제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은 없다. 아니, 물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것이 바로 차별금지였기에... 빛의 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들 이야기하니, 빛의 혁명이 주장했던 차별금지의 기초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시급한 민생문제임을 정치권에 알려야 한다. 정치권은 시민의 압력이 없으면 잘 안 움직인다. 그나마 많은 분야에서 차별이 줄어든 것도 당사자 또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한 것이 과거가 되도록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도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 차별금지법이 없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 특정 종교계 일부에서 지극히 부당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10쪽)라고 하고 있는데, 특정 종교계가 아니라 '일부'다. 정치인들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라는 말을.


저자의 통계를 한 번 더 인용한다. '미국의 주류 장로교가 이미 오래전에 동성애를 포용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주요 감리교도 동성애 포용 정책에 합류했다'(181쪽), '2022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42.4퍼센트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31.5퍼센트였다'(183쪽)


그러니 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 사회가 혐오와 차별과 결별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확인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276쪽)는 저자의 말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 사람인 니묄러의 말이 생각났다. 이를 하나의 소수자를 차별할 때 침묵하면 결국 자신이 소수자가 되었을 때 남들도 침묵한다는 것. 차별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쪽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시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이 말이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저자의 논의 명쾌하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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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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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획이다. 역사를 딱딱한 객관적 서술로 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서 서술하다니... 특히 그림으로 표현된 인물들을 통해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들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라고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한 왕가의 역사를 훑어주고 있어서 좋다.


총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림 12장을 통해 합스부르크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림이 12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된 그림들이 제시되고 있어서, 명화 감상도 되고 역사 공부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책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시작한 루돌프 1세를 지나 합스부르크가 실세로 떠오르게 되는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시작한다. 뒤러가 그린 그림으로 설명이 시작되는데, 이때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37쪽뿐만 아니라 이 문장은 자주 이 책에 나온다)


신성한 푸른 피라고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근친혼을 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런 이유로 유전적인 질병에 시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제국을 보존하기 위해서 더욱 정략 결혼에 힘썼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한때 적대국이었던 나라와도 혼인관계를 맺었으니...


제국의 보존을 결혼을 이용한 것, 이건 어쩌면 제국들의 또는 왕국들의 공통된 유지방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려에서 왕건 역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략 결혼을 많이도 했으니까.


그래서 다양한 왕국과 결혼을 하는데, 그럼에도 자신들의 사촌 등등 근친과 결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으니... 능력이 아니라 혈통이 제국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니, 그 나라가 600년을 지속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정략 결혼을 통한 정책이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200년이 더 지나면 아주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온다. 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가의 끝무렵에 황후가 되는 엘리자베트가 거의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이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산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렇게 거대한 왕국의 황후가 되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 거대한 궁정에 갇혀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이끌었던, 스페인 제국을 건설했던 펠리페 2세 역시 합스부르크가 사람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작가가 더 많은 것을 서술하고 싶다고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티치아노가 그린 '군복 모습의 펠리페 황태자'라는 그림을 통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8장에서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도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 그림이 두 점이 실려 있는데 왜 이것을 장을 시작하는 그림으로 하지 않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그린 그림으로 시작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부흥하는 독일과 쇠퇴해가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은데, 쇠락해가는 합스부르크가를 그나마 지탱하는 사람이 마리아 테레지아였다고 하지만 이미 힘의 균형은 많이 기운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합스부르크 왕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라지게 되는데, 마지막은 아니지만 거의 마지막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이야기는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엘리자베트 황후'라는 그림에서 펼쳐진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김건모 노래 제목처럼 '잘못된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은 엘리자베트 황후, 궁정생활을 견디지 못해 또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궁정의 일에 완전히 손을 뗀, 오로지 자신의 미모만 가꾸었던 사람의 초상을 통해서 합스부르크가의 최후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나폴레옹 3세의 권유로 멕시코 황제로 갔던 막시밀리안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그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60년이 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서 그림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 왕가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에게 낯선 합스부르크라는 가문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던 그림을 통해서 살필 수 있게 하니, 그림을 보면서 자연스레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룬 합스부르크가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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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0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책을 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서 내용이 겹치는 책들이 많은데 유혹에 잘 넘어가요^^

kinye91 2026-01-20 11:01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유혹에 잘 넘어가는데 그레이스 님도 그러시군요.
 
폭력의 전염 - 우리 안의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
이스라엘 차니 지음, 김상기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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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언제 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간 이래로 폭력이 없던 때가 있었던가? 개인 간의 폭력도 문제지만 집단 간의 폭력은 더 심한 문제가 된다.


집단, 특히 국가 간에 또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역사를 우리는 거쳐왔고.


국제협약을 통해 대량 학살을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학살을 막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이러한 학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를 살피고 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아도 대충 짐작을 하고 있는 원인들이 많겠지만, 이 책은 그 원인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이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물론 불법적인 명령에, 대량 학살을 하라는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 많다면 대량 학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이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면서 살아가기는 힘든 존재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그 점을 잘 밝히고 있지 않은가. 환경에 따라 또 주변 사람들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의 생각,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 책에서 제시한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에 따르면 그것이 참 힘든 일이다. 따라서 이런 제노사이드 심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는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불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하고, 우리나라 비상계엄 사태 때 태업을 한 군인들, 그들로 인해 더 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불법에 따르지 않을 권리, 책임을 교육할 필요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는 무엇일까? 12가지 폭력의 기초들이라고 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1. 투사화 

2. 권력 욕망

3. 비인간화

4. 권위 맹종

5. 무비판적 수동성

6. 방관자적 시선

7. 집단화

8. 권위의 남용

9. 이데올로기화

10. 희생양 만들기

11. 부정화

12. 극단주의와 허무주의


아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심리들인데, 그 중에 투사화라는 것은 '인생의 어떤 문제, 위협, 재난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총체적인 뒤집어씌우기'(87쪽)다. 한 마디로 잘못은 네(너희)가 했어라는 말이다.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에 복종하고, 그래서 남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이 사라져야만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심리들... 이러한 심리들이 꼭 12가지를 모두 충족하지는 않겠지만, 이 12가지 중에 몇 가지만 겹쳐도 다른 존재들을 악마화하게 된다.


악마화, 이것은 상대를 없애야 한다는 행위로 나아가게 되니, 이런 12가지 심리에 감염되지 않았나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개인도 그러해야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12가지 심리가 퍼져 있지 않아 감시하고, 그런 심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교육과 제도를 통해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당위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분위기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키운다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따라서 제도로 법으로 또 사회 분위기로 이런 심리들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다름을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고, 다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른 존재들을 사회가 용인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 때 대량 학살로 가는 이러한 12가지 심리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점과 더불어 이 책의 장점은 부록으로 이스라엘의 폭력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즉 대량 학살을 남의 일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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