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리즈 30만부 기념 리커버 한정판)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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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중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내게 닥칠 기후를 알려주고 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 또는 이틀, 사흘의 날씨 예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삶은 곧 바뀐다. 하지만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전의 자기만을 지킨다는 것은 곧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기예보를 살피듯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러한 예측에 따라 준비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미래 시대를 예보해주는 책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일기예보가 정확성을 더해갔듯이, 저자는 '시대예보'라는 주제로 세 번째 책을 냈다.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 이은 세 번째 책.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시대에서 이제는 개인이 중심이 된 사회,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사회로 접어들었고, 그러한 사회는 전체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가벼운 사회로 가고 있다고.


경량문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는 예전처럼 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거대 기업의 일원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만 유지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거나 또는 그러한 흐름을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집단 속에 녹아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지금은 개인이 중요한 시대인데, 이런 시대를 이끈 것은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21쪽)라고 한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 이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지능은, 지식은 쉽게 만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의 만남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


왜 협력이 가벼워질까 했더니, ''관계의 경량화'와 '협업의 거리 단축'이, 바로 협력이 가벼워지는 세계의 핵심'(85쪽)이라고 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뭉치고 흩어질 수 있는,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힘'(93쪽)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빠르게 잊고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잃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가 새로운 문명의 참여자들이 가져야 할 역량이 된다'(180쪽)고 한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면서 나아가야 하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자기 것을 잃지 않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자기 것을 지닌 인간들이 대등하게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량문명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여기서 '교육'이 문제가 된다.


과거의 공부가 아니라, 경량문명의 시대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새로운 공부는 '첫째 학령기의 공부가 아닌 평생의 공부가 일반화되며 공부의 기간이 인생만큼 길어질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대상이 좁아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미 누군가가 발견한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닌, 아무도 모르는 것을 스스로 찾는 방향으로 깊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자와 비교해 등수를 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을 오롯이 해내는 것으로 바뀌며 공부를 하는 이들의 마음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210-212쪽) 고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배움의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즉 지금까지는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을 가르쳤다면, 이 경량문명의 시대로 접어드는 때에는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고.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려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왔던 중량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미래를 예보해주고 있다. 다가올 경량문명의 시대는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일기예보가 특정 나이 대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저자의 시대예보 역시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경량문명이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두에게 해당하듯이 우리는 다가올 시대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기예보가 늘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예보를 듣고서 준비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시대예보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의 시대예보가 정확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준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분명 저자의 말대로 경량문명으로, 유동적인 문명으로 가고 있는 흐름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저자가 말한 '경량문명의 개인은 날아오르고 혼자 헤쳐나가는 스스로 비행하는 자유인'(353쪽)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새들이 먼 길을 날아갈 때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기르듯이, 그럼에도 홀로가 아니라 함께 날아가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도 그렇게 홀로 또 함께 해야 함을 저자의 이 세 문장이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경량문명의 그라운드 룰


   1. 우리는 지금 만납니다, 준비가 되신 분만.

   2. 우리는 잠시 만납니다, 전력을 다할 분만.

   3.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마음이 맞는 분만.  (338쪽)


그래, 결국 준비가 되고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그런 개인들이 미래 시대를 살아갈, 경량문명의 시대를 살아갈 존재들이라는 것.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야 개인이 마련해야 하겠지. 그것까지 예보에서 알려줄 수는 없으니. 미래 세계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니,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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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래가 - 흐르고 굽이치다 어우러진 아홉 곡의 인생 이야기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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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린 어깨 펴고, 닫힌 가슴들 열리고,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날을 꿈꾸며 살아오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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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만개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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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 중에서. 46쪽)


쓸모없다는 판단을 누가 하는가? 거기에는 나와 남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쓸모로 판단한다. 즉, 내게 유용하면 쓸모있음, 유용하지 않거나 내가 어떤 쓰임을 알지 못하면 쓸모없음.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존재들, 또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존재들은 어떤가? 이들은 쓸모없음의 범주로 들어가게 되는가?


이들이 쓸모있음의 범주로 들어오려면 내가 이들에게서 어떤 유용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내게 쓸모있음이 그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조정하는 것이라면?


즉, 그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우리는 인간이 없는 행성을, 또는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행성을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행성이 있다면 당연히(?) 인간을 구출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중심주의. 즉 존재의 쓸모있고 없음을 인간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화성이나 달을 개척하겠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말고도 다른 행성에서도 지배적인 위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소설집, 김초엽의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에 의문을 지니게 된다. 생태주의자들이 했듯이, 또는 고대 중국의 노자가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우리 눈에 비친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모래 이야기'라면, 인간의 쓸모에 부합하지 않아 버려진 존재도 스스로의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각의 탈출', 그리고 마을에서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미라 아주머니가 등장하는 '끈적이'라는 소설. 여기서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또는 사회에서 쓸모있음으로 규정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들이 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만들 거야. 정의에서 달아나고, 사전에서 달아나는 것을 만들 거야.'('끈적이' 중에서. 91쪽) 


이것이다. 바로 '쓸모있음'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것. 즉 여기서의 쓸모없음이 꼭 쓸모없음이 아닌 쓸모있음일 수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고정된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정지는 그냥 정지가 아니라 수많은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인데...


'멈춘 줄 알았던 것들은 사실 멈춰 있지 않았어. 고정된 줄 알았던 것들은 단지 다른 시간의 규모를 지닌 것뿐이었어.'('모래 이야기' 중에서. 25쪽)라는 말에서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사모나'라는 소설에서는 인간이 아닌 '파티클'이라고 하는 존재가 중심이 된 행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 행성에 있는 인간을 구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모나가 정말로 파티클의 행성이라면,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 우리가 감히 개입할 자격 같은 건 없지 않겠습니까'('사모나' 중에서. 201-202쪽)라고 말하는 인물. 왜 모든 행성에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 질문. 


이 인물을 통해 '쓸모있음'이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이고... 이 소설에서 바로 맨 앞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 소설의 뒤로 가면 해파리들이 만개한 세상에, 해파리와 공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해파리를 멈츄는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해파리를 그냥 놔두는 것이다.'('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에서. 73쪽) 이것이 바로 해파리를 쓸모있음과 없음의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과 연결되어 각 행성마다 다른 인간중심의 판단이 같은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젤리의 우울'이라는 소설이다. 눈물의 필요성에 따라 대우받거나 무시당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니, 역시 '쓸모있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끝까지 종속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에 실린 내용들이 지금은 상상이라고 하겠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쓸모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생각,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이 지구에서 함께 존재하는 또다른 존재가 될 인공지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 대한 시사점을 이 소설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지만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글자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갖 존재들이 모두 각자의 쓸모를 지니고 있음을, 그 쓸모를 어떤 특정한 한 존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범주에 가두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집이다.


역시 김초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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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知의 회랑 40
최현식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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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국가를 주로 일컫는 말. 1900년대 초반 일본은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옆 나라인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권력을 세웠다. 그리고 대만 및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여 또한 식민지로 삼았다.


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무리 사실을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한다. 식민지였던 나라에 대해서, 또 그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 다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


여기서 책임질 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책임자가 책임을 면했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권력을 잡았다. 이런 모습의 일본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면 식민지 경험이 있던 나라들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이유로 든 것이 바로 평화공존 아니었던가.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일본이 재무장을 하려고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한데... 책임도 지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고, 과거는 없던 일인 양 미래로 나아가자고만 외치고 있는 일본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식민권력을 보게 된다.


그런데 총칼만으로 식민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무력으로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더라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지배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을 우위에 두고, 식민지 사람들, 식민지 문화들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에 의해 계몽되거나 발전되었다는 생각을 알게모르게 식민지 사람들이 지니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정책 중에 문화, 교육을 통한 정책이 있는데, 이들은 교묘하게 의도를 감추고 있어서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제의 식민정책 중에서 사진엽서를 통해서 조선인들의 무의식에 일본의 우월함을 각인시키고, 조선의 낙후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엽서는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지만, 엽서에 있는 글들이 노래로 불렸다는 것, 이는 자신들의 선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총칼만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도 식민지 이념을 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진엽서를 통한 식민지 권력의 선전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처음은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만큼 많이, 대중적으로 불린 노래가 있을까 싶은데, 이 아리랑조차 일본은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아리랑을 통해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 즉 노래를 통해 식민권력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아리랑에 비교될 수 있을 만한 노래들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그 노래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사람들이 듣고 부르게 하는 것.


이를 문화통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압록강, 백두산에 관한 노래를 통해 교묘하게 조선의 산하를 칭송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옹호하고, 또 자신들의 발전 상을 드러내며, 조선의 낙후성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러한 이념이 스며들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드러내놓고 선전을 하지 않았지만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압록강, 백두산'을 소재로 한 사진엽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대륙 침략, 일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는 내용을 드러내고 있으니, 노래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고 있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교묘한 식민권력, 제국주의가 무력으로만 지배한다면 식민지 사람들이 저항하기도 쉬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려 한다면, 그 본질을 깨닫고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그러한 방법을 일제가 사진엽서를 통해서, 또 노래를 통해서 쓰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일제가 이러한 사진엽서 또는 노래를 통해서 - 이것은 나중에 국민학교(일제시대 용어다. 지금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음악 책에 실은 노래들을 통해 더 노골적이 되는데 -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음을,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파악해서는 안 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참 많은 사진엽서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에게 전해졌구나, 이것들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사람들이 쉽게 세뇌당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은 이러한 사진엽서, 노래를 통하지 않고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유튜브'들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비판적 읽기/듣기/보기가 중요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엽서 한 장을 보라. 이런 노골적인 내용이 일제말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니, 처음에 의도를 숨긴 엽서들이 나중에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이런 적나라한 홍보를 통해 처음의 의도들을 유추할 수 있다.



<출전:최현식,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성균관대출판부. 2023년. 352쪽>


참고로 절(節)은 일본어로 '부시'라 하고, 이 '부시'는 일본 전통 민요를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307쪽)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랏님 위해 피어난 꽃이여 / 나라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을에는 / 아- 산화하시라 그대여 용감하게'


그리고 왼쪽에 있는 작은 글자들은

'몹시도 어여쁜 야마토의 아기도 총후 보국의 마음은 단단하니, 나의 쓸쓸한 마음은 아기의 건강함에 기대어 그대가 보다 순결하고 보다 강해지기를 기도한다'라고 한다.' (352-253쪽)


참 노골적이다. 이렇게 노골적이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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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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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적인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 하면서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민을 한다.


우선 이 소설들,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도 그 인물들에게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일이겠지 하기도 한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멸의 마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유지하기도 바꾸기도 한다.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다름에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음에도 함께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어느덧 자신의 삶에 들어와 바꿀 수 없는 무엇이 된다.


그것이 '나쁜 무리'이건, '아무 사이'가 아니던 상관이 없다. 세상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지내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소란한 속삭임'이다. '소란'이란 말과 '속삭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붙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속삭이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자신을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시끄러움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들 관계가 이렇게 속삭임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시끄러움도 공존해야 한다.


소설에서 속삭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시내와 광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수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내용이 있고, 그렇게 남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사람도 늘 속삭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이들은 만나서 속삭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시내의 윗층에 사는 두리가 등장한다. 삶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리.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시내는 윗층의 소음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소리의 원인은 시내가 두리의 집에 들어서면서 밝혀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소음이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소음, 이것은 보통의 시끄러움과 다르다. 우리 삶에서 공존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여 이들은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치운다. 소음을 내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 


이 대화를 통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각자 깨닫게 된다. 속삭임과 시끄러움 사이. 아니 시끄러움과 속삭임에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음을. 상대에게 또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함을.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쌓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함을. 


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첫소설인 '추운 뺨에 더운 손'을 보면 '마임'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마임. 이 마임을 통해 서로를 읽어가는 인물들. 그렇게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눈에 확 띠지 않지만 '마임'을 하는 사람과 '마임'을 보는 사람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듯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무리'는 없다. '아무 사이'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뿐이다. 이러한 기댐을 깨달아가는 인물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이러한 관계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는데 사라지는 나를 붙들어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함께 희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나를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습니다.'(292쪽)


이렇게 이 소설집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마임처럼 확실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 속에서 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최근에 읽은 책에 실린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존재하지만 또 함께해서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우진영이 쓴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한겨레출판 2025년]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196쪽에 실려 잇다)... '이내'라는 화가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이라는 그림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으니... 미술과 소설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겠다. 이 그림 속 원들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다른 모습,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 삶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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