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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 -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문예창작이론 강의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미래의창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책이다. 문학이론이야 원래 어렵지만, 이 책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던가? 왜 구입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작년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들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인리히 뵐 역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니까.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문학에 관한 그의 생각.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생각 등등. 밑줄을 칠만한 구절은 꽤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콕 박히지는 않는다.
이미 시간이 꽤 흐른 문학이론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독일 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까. 그러니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지만... 몇몇 마음에 드는 구절.
'좋은 눈은 작가의 연장 중의 하나이다.' (15쪽)
그래 작가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겠지. 그것도 편향되지 않은, 사람을 위하는 쪽을 볼 수 있는 눈. 권력을 향한 눈이 아니라 약자들을 위한 눈. 자신이 창조하는 세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겠지. 그래서 이 말을 뵐은 이렇게 부연하고 있다.
'보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사물이 똑똑히 보인다. 그가 사물을 똑똑히 보게 마련이다. 사물은 언어를 매개로 똑똑히 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 작가의 눈은 인간적이고 절조가 있다.' (19쪽)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건 위대한 말이다. ... 나쁜 걸 만들었다고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모험을 무서워하는 순간에 예술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25쪽)
어떤 작가들은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도저히 쓰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썼다고. 그렇다. 뵐의 이 말은 쓰는 수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고, 자신은 예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다. 이럴 때 모험은 필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모험. 그것이 예술이다.
그는 작가의 역할을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작가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작가가 권력자에게 굴복하고 심지어 비위를 맞추려고 하면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절도 이상의 죄를 짓는 것이다. 살인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33쪽)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이 써야할 것들을 쓸 수밖에 없다. 이때 권력은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다. 이런 작가에게 누가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절망의 시기에 문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 아도르노가 비슷하게 말했다고 하는데... 그런데 뵐은 절망의 시대이기 때문에 문학이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
문학은 절망을 받아들이고, 절망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보여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절망이 문학에서 표명되면 그것도 질적 차이점이 있다. 절망은 세로의 y축만으로는 값어치가 없다. 가로의 x축인 책임을 합쳐야 비로소 가치를 얻게 된다. 소설가의 책임이란 크나큰 말이다.' (63쪽)
아마도 여기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작가를 고르라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아닌가 한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많다. 최인훈, 황석영 등등. 그렇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았음에도 논란이 된 한강의 작품들이 있으니... 바로 우리는 그 작품들을 통해서 절망의 y축과 x축이 만나는 점을, 아니 그들이 속한 사분면을 만나게 된다. 소설가의 책임을 다한 작가가 바로 한강 아닌가 한다.
이러한 작가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 개인, 역사 속 개인이기도 하다. 그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나를 한 개인으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와 그 시대의 사람, 한 세대가 경험하고 체험했던 일 그리고 보고 들었던 것과 연결되어 있다.' (80쪽)
이러니 작가의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앞의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문학이 에로와 섹스 그리고 종교와 사회 문제를 떠맡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가 실패하고 패배하는 곳에서는 바로 작가들의 책임 있는 말이 필요하다.'(87쪽)고 하고 있다.
'작가는 현실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있는 현실로 다른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108쪽)는 말,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된다. 그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저항을 많이 할수록 더 잘 쓸 수 있다.'(152쪽) 이때 저항을 권력에 대한 저항만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관습, 틀, 고정관념 등 그러려니 하는 것들에 저항하는 것이다. 있는 것 뒤에 있는 것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저항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작가는 저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몇몇 구절들은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 그것이면 됐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