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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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냥 사라지지 않고 무덤을 만들어 자신의 후대들이 계속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아마도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인간처럼 무덤을 남기를 바랐다면, 지금쯤 지구는 온통 무덤으로 뒤덮여 있으리라. 그만큼 사라져야 할 존재가 사라지지 않으면 문제가 남는다. 인간들의 무덤이 그렇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묫자리는 대부분은 땅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하는 무덤이었다. 무덤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현충원이 있지 않은가. 서울에 있는 현충원만으로 부족해서 대전에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도 그와 비슷한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니.


국가유공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모신 묘역만 해도 지금 포화 상태인데, 여기에 개인 묫자리까지 하면 더더욱 남아날 땅이 없게 된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물론 이 소설에 나타난 묫자리 소동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돌봐줄 후손이 없다는 문제지만.


소설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며느리 역할과 시어머니 역할을 하던 사람이 죽으면서 딸에게 유언으로 가족묘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며느리라면 가족묘에 묻히는 것이 당연시하던 일본에서 자신만의 곳으로 가겠다니, 남은 남편은 충격이다. 여기에 가족묘를 돌봐야 하는 자식들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이 나뉜다. 그렇다고 일본 역시 저출생으로 또는 성을 바꾼 문제로 가족묘에 들어갈 사람은 정해져 있다. 한 명 아니면 많아야 두 명 정도. 그나마 손자(녀) 대에 가면 그것마저 끊길 처지다.


이러니 가족묘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그 점을 경쾌하게 이끌어간다. 심각한 가족 갈등을 무겁지 않게 이끌어가고 있다. 며느리의 입장, 시아버지의 입장, 그리고 아들과 그 자식들의 입장에 서서 각자 자신들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의 성씨 문화. 결혼을 하면 주로 남편 성을 따르는 일본의 관습을 문제 삼고 있다. 왜 결혼을 하면 자신의 성을 버려야 하는가? 세상에 성을 바꾸는 나라가 얼마나 되지? 우리나라는 자신의 성을 지니고 가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일본은 성이 바뀐다고 한다. 성을 바꾼다는 것, 그냥 단순히 성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관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 관계에서 저 관계로 옮겨가는 것. 그것을 공식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이 바뀌는 문제다. 그런데 왜 남자 쪽 성으로만? 여자 쪽 성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나? 소설은 그렇게 자신의 성을 지키려 하는 손녀들을 중심에 놓는다. 


적어도 남녀가 평등한 사회라면 성을 선택할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고정된 성이긴 하지만 자녀에 따라서는 부모 중 한 성을 선택하거나 (예전 가부장제에서 무조건 남자 쪽 성을 따르던 것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 부모 둘의 성을 모두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선택권이 법적으로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성을 선택하는 것과 묫자리 문제는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개인보다는 친족을 우선시 하는 사회의 모습. 개인과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관계 속에 개인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살아서는 성이라는 관계, 죽어서는 묫자리라는 관계. 그러니 이 소설 [파묘 대소동]은 그러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성이라는 요소에는 가부장 사회라는 모습, 여기에 누군가는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들어 있고, 묫자리에는 소설에서도 지나가는 말로 나오지만 남자 자기 부모의 무덤인데도 돌보는 일은 주로 며느리들이 하는 것, 또 며느리는 자신의 본가로 가지 못하고 시가의 묫자리로 가는 것 등등을 통해 여성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소설은 파묘와 성(姓)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현대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결코 무겁지 않게, 그리고 나름대로 현대에 맞게 즉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이 결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말이라는 것을 이 소설에 나오는 주지 스님을 통해서 보여주며, 남성들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부부 별성 문제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소설에서 성(姓)에 대한 결정권은 어느 정도 부여되었지만, 한 성으로 반드시 바꾸어야만 부부로 인정이 되는 관습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그것도 바꾸려고 한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부부 별성을 반대하는 정치인이 야유를 받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전히 일본은 부부 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니... 


참... 이 소설, 그런 점에서 성(姓)과 묘지를 연결지어 생각하게 하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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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과거청산과 기억문화
알렉산더 렌너.최광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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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과거산을 잘한 나라라고 한다. 나치의 학살을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여러 제도들을 마련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할 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기억문화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산이 제대로 되었는가? 되었다는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여전히 친일파들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을 보면. 하긴 어떤 학자는 (아니 기관장인가? 학자라고 하기엔 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적이 일본인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프랑스인들은 국적이 독일인인가?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인들은 국적이 미국이었고?


이 정도로 과거산이 안 되어 있으니, 기억문화라는 말도 생소할 수밖에 없다. 기억문화는 무언가가 정리가 되고 그것을 사회 차원에서 기억하는 문화가 확립되었을 때 쓰는 말 아닌가. 친일파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무슨 기억문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일본과 얽혀 있는 군위안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군위안부라는 말을 쓰지 말고 성노예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그것이 더 정확한 용어라고. 용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과거산, 기억문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자발적 매춘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으니, 과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상태에서 기억문화라니, 가당치도 않다. 기억문화가 확립되기 위해선 과거 청산이, 진실규명이 확실하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조건이다.


이 책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교류를 기념하여 독일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한 것을 정리했다. 토론 내용은 이 책에 실리지 않았고 발표 내용만 실렸는데... 그 중에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꽤 있다. 특히 '기억문화'라는 말.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지 않은가. 기억문화라는 말은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그것이 바로 기억문화다. 그런데 기억문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기억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일을 하는 위원회가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많은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으니, 기억문화를 확립하는 데 한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먼 과거만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와서도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력을 지닌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일, 그러한 가해자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것도,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다루는 것도 그래서이다.


아직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도에 반한 죄'를 철저히 적용하는 일이다. 


과거 청산과 기억문화. 독일 역시 완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런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시민들이 더 잘 인식하고 함께할 때 진정한 '기억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다만, 학술적인 내용이라 내용이 많이 건조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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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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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에 대한 불신 시대. 법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는 좋지 않지만, 법이 무시당하는 시대 역시 좋지 않다. 


예전에 함무라비 법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법이라는 말을 듣고 와, 무시무시하다 했다가, 그것이 아니라 당시에 과도하게 자행되던 힘이 있는 자들에 의한 법 집행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 것, 자신의 죄보다 더한 벌을 받지 않도록 한 법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고서, 아, 법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내용을 다르게 바꾸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말은 곧 인권보호라는 말이다. 인권보호가 법이 우선하는 가치여야 한다는 것, 인권보호를 우선한다면, 그 법은 당연히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을 것이고, 사익(私益)이 아닌 공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 첫부분에 바로 이러한 법에 대한 이야기, 법 중에서 검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법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세 집단, 판사-검사-변호사 중에 검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법조인이라도 검사가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판사가 아니라 검사라고? 판결을 판사가 하는데? 판결은 판사가 하지만 검사가 기소를 해야만 재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소를 할 수 있는 집단이 검찰뿐이었다. 지금은 공수처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 사건에 관한 기소 권한은 검찰만이 쥐고 있다. 여전히.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판사보다는 우선 검사가 더 어렵고 두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힘센 사람으로, 권력을 쥔 사람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면 검찰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자세로 일반인들을 대해야 하는가? 저자인 최정규는 '검찰제도의 핵심은 첫째는 시민들의 인권보호, 둘째는 권력으로부터의 분리다. 이 두 핵심을 가장 잘 담은 표현은 "공익의 대표자"다'(26쪽)라고 하고 있다.


인권보호? 검찰이? 아마, 인권이 유린당하는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 청)과 검찰(청)을 들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그곳에서 엄청난 인권유린이 있었고, 인권유린은 곧 권력과 유착된 검찰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권력의 대변인, 아니 권력의 사냥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이 물라고 하면 무는 역할, 수많은 조작 사건들을 보라. 또 힘없는 사람들의 사건은 무시하던 행태를 보라. (이 책에는 그러한 수많은 사건들이 예로 나오고 있다.) 그래서 검찰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 조직이었다. 지금도 신뢰를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최근에 벌어진 여러 사례들을 보면 검찰은 더더욱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니...


저자가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저런 검찰이 법을 집행한다고 여태까지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말인가 하는 한탄이 나온다. 저런 검찰을 민주화되었다고 했던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가만 놓아두었는지, 검찰 개혁, 검찰 개혁, 정말 말이 많았는데, 무엇이 개혁되었지 하는 생각.


검찰 개혁을 누가 하지? 당연히 정치권에서 하는 줄 알았다. 검찰 개혁을 내세우며 당선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래서 믿었다. 믿었는데, 믿음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간 변호사로 검찰과 법원을 많이 접했던, 피해자의 처지에서 검찰과 법원을 바라봤던 변호사의 말이다.


첫째, 검찰 개혁은 정치인의 손에 맡길 수 없다.

둘째, 검찰은 스스로 개혁될 수 없는 조직이다. (284쪽)


왜냐? 아직도 그들에게는 기소독점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독점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검사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는 수사 진행 중 담당 검사와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담당 검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면담 의무 규정, '시민 문전 박대 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263)라는 저자의 말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검찰청 민원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원실에서 민원을 제기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사건을 검사에게 이야기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변호사조차도 검사를 직접 만나기 힘들다고 하니, 물론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은 예외다) 상황에서 인권보호? 될 리가 없다. 


하여 검찰 개혁, 큰 것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앞에 언급한 검사의 면담 의무 규정이라든지, 또 민원실에 검사들이 직접 근무하게 한다든지 (하하, 검사님들이 그런 감정노동을 하시려고 할지?, 이 책에 보면 연구하는 법무연수원에 가는 것조차 좌천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시니), 기소를 독점하지 못하게 서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기소 대배심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또 검찰에 수사를 하게 하는 수사심의위원회법을 좀더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든지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그래야 검찰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도 잘 보면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검찰은 스스로 하지 못할 테니까. 지금은 대의제 민주주의니, 정치권에서 이러한 제도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한 압력을 누가 넣을 수 있는가? 바로 시민이다. 시민들의 압력이 강해지면 정치권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표를 의식하니까. 그러니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시민이다. 저자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 없는 검사들]이란 말은 '시민들에게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285쪽) 검사들이라는 말인데, 이들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울 때는 기자들을 앞세우고 언론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 또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이런 모습을 없애는 것, 그것부터 검찰 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제목을 다르게 읽었다. 얼굴은 곧 낯이고, '얼굴 없는'은 '낯짝이 없는'이라고.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다시 얼굴은 체면이고, 체면은 예의와 염치니' 얼굴 없는'은 '예의와 염치가 없는, 부끄러움이 없는'이라고 읽었다.


이젠 그런 얼굴 없는 검사들 없어져야 한다. 권력욕이 아니라 인권보호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검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검사가 왜 없겠냐마는, 검사라는 집단이 지금까지 그러하지 않았으니, 도매금으로 넘어간 다른 검사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얼굴 없는 검사들은 열심히 일하는 검사다운 검사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시민들에게는 미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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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를 주세요 큐큐퀴어단편선 4
황정은 외 지음 / 큐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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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올빼미와 개구리

안  윤, 모린

박서련, 젤로의 변성기

김멜라논리 

서수진, 외출금지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역시 다름과 함께함이다. 함께함이 같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들. 이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물론 다른 편에서도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황정은의 '올빼미와 개구리'에서는 동성가족이 나이들어서 병원에 갔을 때를 생각하게 한다.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 정말 힘든 상황이다. 주변의 시선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상황. 자칫하면 병원에 면회조차도 힘든 상황. 


이 소설은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런 상황을 생각하게 만든다. 의사는 동성인 나이 든 사람이 오자 당연히 가족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동성가족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이지만,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그냥 동생이라고 하면서 병원을 드나들지만, 그것조차 힘든 상황이 있음을, 동성가족이나 또는 다른 형태의 가족들에게도 법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이제 세상은 충분히 변하지 않았던가.


안윤이 쓴 '모린'을 읽으면서 소수자로서의 삶이 중첩된 사람의 모습. 아니,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할까? 장애인이 성공하면 '와, 대단하다. 장애를 극복하고'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그냥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할 일을 했다고 여기면 된다고.


이 '모린'이라는 소설에서 이 소설집 제목이 왔다. "팔꿈치를 주세요." (71쪽)이라고 말하는 영은. 자신의 팔꿈치를 어떻게 주어야 할지 모르는 미란에게 '제 왼편에 서서 미란 씨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내밀어주세요.'(71쪽)라고 말하는 영은이다.


이런 영은에게 여자친구 선주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말이 '오랜 시간 동안 돌본 거였더라고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던 거죠. 제가'(70쪽)이란 말이다. 돌보았다는 말은 시혜와 같은 말로, 한쪽이 한쪽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관계를 만들기 힘든 상황.


선주는 그것을 늦게 깨달았고, 미란에게 너무 늦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상대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다. 팔꿈치를 내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가 부담을 갖지 않게, 그렇다고 상대의 상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상태를 인정하되 함께하는 길, 팔꿈치를 내어주는 일이다.


서로 시간을 둔 뒤 영은이 '다시 팔꿈치를 주세요'(78쪽)라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누가 누구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내 상태에 최선의 모습은 이것이다. 함께하자고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다른 소설들도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은 직접 읽어야 더 맛이 나겠고... 김멜라가 쓴 '논리'는 동성애를 범죄 취급하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과연 사랑에 논리를 들이대야겠냐고, 그것이 논리냐고 묻는 소설이다.


신을 믿기에 딸 이름도 '엘리'라고 지은 사람이, 딸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딸의 앞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지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사랑은 '논리'이기보다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어떤 사랑이든 기적이니, 자신이 지니고 있는 논리를 기준으로 들이대지 말라고. 당신이 논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논리가 아닐 수 있음을,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가 사고에서 살아남은 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서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어떤 논리도 너에게서 기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157쪽)


그렇다. 사랑은 기적이다. 그런 사랑에 기존의 관습을 논리처럼 들이대서는 안 된다. 그것 자체가 비논리다. 모든 사랑은 기적이므로.


박서련, 서수진, 김초엽의 소설도 좋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다름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편한편 마음에 새길 만한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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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5-18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쓰는 작가들이 모인 엔솔이네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kinye91 2025-05-18 11:46   좋아요 0 | URL
이 단편선에는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른 책들도 찾아 읽을 생각이에요.
 
작심하고 다시, 기자 - 권력의 비리를 감시하고, 추적하고, 고발하는 기자, 장인수의 취재 열전
장인수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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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장인수 기자의 취재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검찰은 여전히 막강하고, 언론 역시 입맛에 맞는 기사를 중심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하지만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검찰과 언론의 실체를 알렸으니.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어야 해결을 할 수가 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해결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니. 그러니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눈 감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기자다.


삼권분립이라고 입법, 행정, 사법이 각자 독립된 영역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한다면, 이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래서 언론을 제4부라고도 한다. 앞에 있는 3부가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다. 자신들의 관점 속에 묻혀 전체를 보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충실이라는 말에는 현재의 가치에 충실한다는 말보다는 미래를 보고 발전적인, 지향적 관점을 지닌 충실이란 말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아는 것이 없는데 부지런한 지도자는 정말로 사회를 힘들게 한다고... 이런 지도자를 충실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때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은 3부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일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그런 일반 사람들의 바람에 맞는 역할을 3부가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언론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3부 역시 자신들의 역할에만 빠져 전체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 아니다, 언론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조차도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실이 공익에 부합하고,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임에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이때 주로 권력은 행정부와 사법부다) 보도를 하지 않거나 축소하고 순화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는 그러한 보도들이 나와 있다. 권력자와 검찰과 언론이 관계된 사건들이다.


디올백 사건, 7시간 녹취록, 검언유착, 고발사주, 언론사 사주 자식의 갑질, 간첩조작사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또는 꼭 알아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했던 사건들을 취재하는 과정, 보도하는 과정, 또는 보도가 불발되는 과정이 이 책에 나와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사건을 쓰고 있어서 이런 과정이 생동감 있게 전달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소위 지상파라고 하는 방송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 인터넷 매체보다 더 몸을 사리고,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점. 이런 자세로는 공익을 실현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권의 파수꾼이나 또는 남들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한다면, 그런 기자들을 기자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널리 퍼진 '기레기'라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기자들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의 취재기를 알리는 책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강한 세력이 된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왜곡된 행태를 보였는지도 보여주고 있으므로, 검찰 개혁이 필요함도 잘 보여주고 있고.


단지 검찰만이 아니다. 간첩조작사건같은 경우를 보면 법원(판사)들까지도 과연 제대로 된 판결을 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진다. 그들 역시 문구에 매여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구만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이라는 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언론이 해줘야 하는데, 참, 말이 쉽지. 이 책을 읽어보니 언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큰 사건들, 그 사건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다. 직접 취재했던 기자가 자신의 취재 내용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권력을 쥔 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기에 검찰개혁, 언론개혁이 필요함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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