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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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그냥 쉽게 시장자본주의,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 연구를 의뢰한다. 의뢰받은 학자들은 모두 익명으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하며, 종합 보고서에도 익명으로 서명한다.


그들끼리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대면을 하지 않고 서면이나 메일을 통해서 연구 결과를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시장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인구를 줄이는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구에 대한) 충격 = 소비* 테크놀로지*인구'이기 때문인데... 소비와 인구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늘면 늘수록 소비가 늘 수밖에 없으니, 지구에 가하는 충격, 즉 지속가능한 시장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


얼마나? 이 보고서는 21세기 직전에 쓰여졌으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2020년 세계 인구를 60억에서 80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적절한 인구는 40억이므로, 60억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면 20억을 줄이는 정책을 펼쳐야 하고, 80억이라고 가정한다면 절반을, 즉 40억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시장자본주의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윤리, 경제, 정치, 심리 분야에서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 보고서는 분석과 진단, 그리고 해결방안 제시로 구성되어 있다. 진단과 분석에서 20억을 줄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줄일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아주 단순하게 계산을 하면 출산율은 줄이고, 사망률은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인구는 줄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인구 소멸을 걱정하고 있어서 이 보고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과잉인구는 지구에서 우리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지금처럼 승자독식으로 간다면....


현재 지구에서 생산되는 재화들을 공정(? 무엇이 공정인지, 산술적인 나눗셈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하게 나누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으로 바꾼다면 지금의 인구로도 지구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하겠지만,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또한 이 보고서는 시장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것이 유지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목적이었으므로, 인구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인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소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또 테크놀로지(기술)를 이용해 환경을 보호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오직 가장 단순한 인구를 줄이자로 가고, 그것에 대한 방안, 아마 읽으면서 기겁을 할 만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복,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을 요한묵시록의 네 기사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서 인구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고, 또 예방이라고 해서 출산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피임 및 불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2부로 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라고 제안된 것들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기타 다른 홀로코스트, 또는 제노사이드를 떠올리면서 그것보다 더하네 하는 생각이 들 만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거 보고서가 아니네... 사실이 아니네, 상상이네. 상상인데, 이런 세상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네... 우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소수가 정말로 이런 세상으로 우리를 끌고 갈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저자가 '루가노 리포트'를 통해 시장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어떤 존재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록'을 통해 이 보고서에 있는 방법들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


읽다가 이런 기괴한, 정말 비인간적인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못 읽겠다 하는 사람들은 '부록'을 읽고 '후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왜 저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루가노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책에 제시된 방법 중에 이미 실행된 것들, 그 중에 하나가 민영화, 집중화 등인데 그것들이 일으키는 피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 이 책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은 이 보고서에서 예견한 대로 가지는 않고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여전히 자본이 세계를 움직이고, 몇몇 소수에 의해서 세계가 요동치고 있으니. 또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환경파괴로 인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기도 하니, 이 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피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공멸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보고서는 공멸하지 않기 위해 특정 존재들을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할 때 공존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진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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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포션 4
최의택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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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인간' 


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말들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즉 비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무언가 옳지 않음, 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열등한 존재나 배제되어야 할, 아니면 고쳐야 할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란 생각.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다. 그러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두 없어진다면 인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


최의택이 쓴 이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이다. 그런데 제목이 된 소설은 없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들 중 대부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들, 특히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세상이 소설에 나온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그램 보육교사가 등장하고('보육교사 죽이기'),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노인과 노봇'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아닐 터. 기술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세상이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러다가 '경계선, 인격, 장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섬뜩해졌는데...


인간을 배려하는 로봇과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 등장하여 도대체 어떤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막 대하는 인물에 비해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는 로봇이라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비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는 범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돌보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여러 존재 중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하여 '비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그런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는 소설이 좀비로 변한 아내, 남편과 함께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증상 완화제로 어느 정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좀비를 '비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좀비 딸]을 떠올렸으니...


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을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최의택의 이 소설집에서는 좀비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이 소설 속 '비인간'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 혹 외계존재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물학적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권 선언에 있는 성별, 피부색, 종교, 성적 지향, 나라, 신체적 특성 등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들을 '비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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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
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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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정치란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관여하지 않는 것도 정치다. 그러니 정치는 바로 삶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정치가 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정치를 의식하지 않는다. 숨을 쉴 때 공기를 의식하지 않듯이 정치가 잘 되고 있다면 정치를 의식할 이유가 없는 것. 하지만 정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정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 닥친 정치... 정치적 위험. 그때서야 정치가 중요함을 깨닫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한다. 어떤 이들은 광장으로 나가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침잠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정치 조직에 몸을 담기도 한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행위를 한다. 그것을 자신은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정치가 피부에 다가온 것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다. 세상에 비상계엄이라니... 정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날... 그 날 이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졌는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비방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격차를 좁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행위가 정치라고 한다면, 서로 적대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은 정치라고 할 수 없다.


정치로 포장된 적대행위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책은 비상계엄 이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바라보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재난, 극우, 광장, 정치인, 교육, 대화, 회복, 성장'이라는 여덟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이 연결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각자 독립적이어서 따로따로 읽어도 된다.


그렇지만 이 여덟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관점이다.


결국 정치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호적대적인 갈등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 이후 '광장'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배제가 아니라 화합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고통을 보살펴야 한다. ... 정치는 관계의 예술이다. 최고의 정치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 공동의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사회의  탁월한 잠재력을 이끌어낸다.'(17쪽)고.


바로 이러한 공론장의 형성,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즉 '공공선으로 모아진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마음이 민주주의를 치유한다. 민주주의와 마음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에 있다'(19쪽)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떠한가? 저자의 '정치는 인간의 고통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38쪽)이 현실 아닌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이 전쟁들이 바로 정치가 일으킨 전쟁 아니던가. 


정치로 인해 발생한 재난이 한 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재난을 일으키는 것도 정치지만, 재난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고통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수단이지만, 거기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 자체로 치유의 경험이 될 수 있다'(224쪽)는 저자의 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 광장에서 치유를 받은 경험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정치가 최고의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하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인들을 온전히 아우르는 공동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배려하는 공동선이다'(253쪽)라는 저자의 말 명심해야 한다.


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반드시 고려하는 정치가 바로 고통을 치유하는 정치가 될 것이다.


최근에 읽은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에서 저자인 키머러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들려주고 있다.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136쪽)


이런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자세다. 동시대인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도 함께하는 정치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똑바로 보았을 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을 하는 과정이 바로 희망이다.


책의 끝부분에 실린 파커 파머와의 대담에서 파머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희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 그것은 바로 치유의 정치이고, 이러한 치유의 정치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그 점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희망이란 지금, 이 현실과 더 나은 가능성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자각하면서, 현실과 가능성 사이에 서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날마다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행동입니다. 희망은 동사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갖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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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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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그 나라의 미래다. 그렇게 어린이는 중요한 존재다. 단지 미래를 살아갈 존재라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어린이를 사회의 미래로 인식하고 교육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는 전통을 비롯해 미래의 전망까지 교육한다. 그 사회가 원하는 존재를 양성하는 곳, 바로 학교다.


이 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이야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그에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교육을 강조했을까?


그러한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잘 다가갔을까? 이런 의문을 지니면서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제국의 어린이들'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엿보게 해준다는 제목. 작은 제목으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라고 했으니, 조선에 들어와 살고 있던 일본인 어린이들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 어린이들과 일본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비교-대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비교는 가능해도 대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로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선총독상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일본의 시책에 동조하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책과 다른 내용의 글이라면 뽑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뽑히기 이전에 이미 그런 글을 쓰는 어린이는 이러한 대회에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선 어린이들이 글짓기 경연대회에 참가하려면 지도교사가 있어야 했다고 하는데, 지도교사가 총독부의 관점과 다른 글을 쓰도록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어린이는 조선 어린이와 달리 지도교사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았을 테고, 또한 일본어도 자유롭게 구사했을 테니 굳이 지도교사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참조한 글들은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 알려지지 않은 그러한 어린이들의 삶은 다른 글들, 또는 다른 자료를 통해서 찾아야 할 것인데...


그럼에도 저자는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작품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당시 조선에 살았던 어린이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고, 일본과 조선의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큰 차이점은 일본 어린이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 반면, 조선 어린이들은 수업료를 내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던 조선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 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라는 이름에서부터 예전에 70년대쯤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곤 했던 반공웅변대회가 생각났다.


반공웅변대회,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당시 학생들의 삶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 대회에 나가는 글들은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고 보면 되는데...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말기에 총독부 주최로 실시했던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역시 자신들의 방향에 맞는 글들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한 글들을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분석한 글들만으로 당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방정환이 창간한 [어린이]라는 잡지라든가, 또 그와 비슷한 매체에 실린 글들을 자료로 삼아 분석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 역시 다른 잡지에 실린 글들도 참조하고 있지만, 대체로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그것도 1,2회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그 점이 좀 아쉽다.


또한 어린이 당사자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당시에 어린이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른 많은 글들이 있을 것인데, 특히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분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럼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한 어린이 글짓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일제강점 말기 당시의 사회 모습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까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의식을 주입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으니...


또한 저자도 지적하지만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의 글을 보면 그들이 다루는 소재 자체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는 일본 어린이들이 동물을 다루더라도 요즘 반려동물이라 하는 개, 고양이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면, 조선 어린이들은 그러한 반려동물이아니라 돼지나 소와 같은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는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하여 관변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제적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을 알 수 있으니...


이렇게 드러난 글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 그 점에서 이 책이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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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니어존 - 우리의 미래를 미워하게 된 우리
구정우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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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인데...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니,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세대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때 '키즈'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호받고 통제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지니고 대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러한 '노 키즈 존'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그러한 공간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다.


'노 키즈 존'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간이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어떤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이 '노 키즈 존'만 있는가? 아니다. 찾아보면 우리 사회에 이러한 배제의 공간이 많이 있다.


그런 배제의 공간을 인식하고 그것을 없애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문제제기에 동감하고 정책으로, 제도로, 또 환경 개선으로 배제의 공간을 융합의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배제가 아닌 융합. 함께함. 이러한 공간이 우리가 지향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이 책은 '노 키즈 존'을 비틀어 '노 시니어 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읽을 때 발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르다.


'노 시니어 존 No Senior Zone'이 아니다. '老노 see:near zone'다. 노인을 가까이서 보는 공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이다. 가까이서 보다. 이 말을 가장 잘 살린 시가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는 시.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는 말은 함께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함께 지내다 보면 자세히 볼 수밖에 없고, 오래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고, 배제가 아니라 수용으로, 융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노인들을 배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시간, 공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노인들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다. 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고... 누구나 나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노인이 안 될 방법이 없다. 우리 모두 노인이 되기에,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노인들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고민해야 한다.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회는, 노인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사회, 오히려 약자에게서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사자가 생쥐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는 우화처럼, 사회는 약자는 늘 도움을 받고, 강자는 늘 도움을 주는 관계로 유지되지 않는다. 약자도 도움을 주고, 강자도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그런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어떤 존재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배제되는 사회가 아닌 누군가도 함께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노인'을 중심으로 배제가 아닌 융합의 사회가 좋은 사회임을 주장하고 있는글들이 실려 있다. 책의 표지에 있는 문장이 '우리의 미래를 미워하게 된 우리'인데... 이 문장이 '우리의 미래와 함께하는 우리'가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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