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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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슬픈,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할, 상대를 사랑하기에 상대의 죽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우리나라 법으로는 불법인.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언젠가 온다. 그 언젠가를 우리는 모른다. 모르기에 행복할 수도 있지만, 모르기에 더 두렵기도 하다.


잠을 자듯이 죽음에 이르기를 꿈꾸지만 그런 사람은 만에 하나도 드문 경우.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과정을 고통 속에서 (이 놈의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질병이 유발하는 고통이란 놈도 의학의 발전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조력존엄사법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저자들의 주장처럼 이 법과 더불어 호스피스법이라든지 다른 죽음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법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아직 죽음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제도들조차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조력존엄사법이라니? 하는 생각도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력존엄사법이 현대 사회에서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에서 이 책을 언급했기 때문인데... 저자의 경험이 묻어났기에, 더욱 실감이 나는 그러한 이야기.


엄마의 고통, 그것을 바라보는 딸. 이런 딸도 엄마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데, 거의 평생을 함께 지낸 남편인 아버지는 어떨까? 딸은 나중에 아버지가 왜 조력존엄사를 반대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가까이서, 날마나 지켜봐야 했던 남편으로서 그런 고통 없는 세상으로 아내가 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면서 외국에서 조력존엄사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의사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의사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자신들의 일이지만 살릴 수 없는데 고통만 지속되는 환자를 보면서 그들은 의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돈이 개입하지 않는다. 연민, 사랑이 개입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은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엇이 최선일까?


사람은 누구나 살려는 욕망이 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말로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지만 아니다. 옛말에 어른들이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은 3대 거짓말 중에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사람은 살고자 한다. 죽고자 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꾸로 죽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대 의학으로도 줄여주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 그렇다고 고통과 함께 계속 살 수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들은 곧 죽음에 이른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1-2년 내에. 어떤 사람은 더 빨리.


이미 그들은 죽을 때를 알고 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 때까지 견디기에는 고통이 너무도 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 그런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들. 이들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환자는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하지만 조력존엄사법을 제정한 나라에서는 그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가 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가족의 선택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로 또 자신의 행동으로 선택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에게는 견디지 못할 슬픔이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 슬픔. 하지만 그러한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보다도 환자인 당사자의 고통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는 법. 하여 엄마와 딸은 스위스로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는 외국인도 조력존엄사를 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외국에까지 가서 죽어야 한다는 현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마음. 그럼에도 더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엄마는 스위스에 가서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115쪽)


죽음보다 무서운 고통, 아니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죽음이기에 그런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엄마의 말. 딸은 가슴이 미어지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엄마와 헤어지고, 엄마와의 이별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딸. 그리고 남편인 아버지.


그러한 과정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엄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존엄하게 우리나라에서 세상을 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스위스에 가는 과정과 죽음을 촬영하도록 허가한다. 그것이 생명을 경시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라고.


엄마의 말.

"다른 환자들이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 (194쪽)


어느 행사에서 딸이 한 말. 

"조력사망을 막는 것이 오히려 생명 경시입니다." (260쪽)


엄마의 죽음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한 딸이 한 말. 이런 죽음을 과연 생명 경시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생명을 사랑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조력 사망 아닐까?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또는 다른 존재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끊어주는 행위가 나올 때가 있다. 이 때 사람들은 그 행위를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생명을 경시했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존재를 고통에서 구해줬기에 사랑을 실천한 고귀한 행위라고 한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면서는 그런 행위를 칭찬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로 보면서 어째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영화나 문학에서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면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어째서 그들에겐 연민을 품지 않는지.


아직도 우리나라는 존업사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보면 의사, 변호사, 그리고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존엄사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많은 사람, 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보자.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정말 무엇이 그러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인지... 여기에 이 글을 쓴 딸도 분명히 말한다. 존엄사법과 완화치료 빛 다른 치료법도 함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러나 어느 것을 먼저 해야지만 다음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라고...


진한 슬픔이 밀려오는, 그러나 그러한 슬픔 속에서도 사랑이 흘러넘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진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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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래가 - 흐르고 굽이치다 어우러진 아홉 곡의 인생 이야기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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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 팀이 낸 두 번째 책. 권력을 행사하지도,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 그런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하게 된 사람들 이야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


그것이 노래든, 밥이든, 또는 점술이든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맺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살아왔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사회. 성소수자나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또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살아온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구술생애사라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일. 이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이들 역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일은 곧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방향을 찾는 것. 그것이 구술생애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읽는 우리들은 또다른 삶을 만나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구술되어 기록된 삶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보게 된다. 그들이 살아온 험난한 세상. 또 그들이 보여준 희망들.


소위 민중가수라 불리는 최도은('불나비'로 잘 알려져 있다), 김원중('바위섬'으로 유명한 가수, 그가 '직녀에게'도 불렀다니)의 이야기, 민중가요를 부르는 단체인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 퀴어 무속인 박인, 퀴어 직장인 한열음, 그리고 하숙생들의 밥을 해주었던 하숙집 운영자 정경애, 여기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웨노웨 흐닌 쏘(강선우), 방글라데시에서 와 한국인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박지환(하비불), 서남아시아의 문화 행사를 기획하면서 지내는 자한길 알럼이 이 책의 주인들이다.


아니 이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주인이라고 해야겠다.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고. 하여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작업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을 삶들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이런 삶을 만나 다양한 삶이 있고, 그러한 다양한 삶들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음을.


아마도 이 작업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 우리가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제목이 된 '우리의 노래가'는 백창우의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에서 따왔다고 한다. 각 인물을 소개하는 장들도 이 노래에서 가사를 따와 '1부는 '이 그늘진 땅에', 2부는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3부는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 노래를 찾아 들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이 노래의 끝부분처럼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 /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모두 하나될 그날이 오면 /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예전에 들었던 백창우의 노래가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었고, 최도은의 불나비, 김원중의 바위섬과 직녀에게가 떠다녔으니... 앞부분에서 만난 이들은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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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땅에서 길어 올린 농부 시인의 사유들
서정홍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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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겸허하게 자연에 따르며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농부'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없는 듯 대우받는 존재도 농부다. 장래희망에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받기 십상이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료인이 되거나 또는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이 와, 출세했네 하지만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쩌다? 안됐네 하는 듯한 눈길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누군가 그랬다. 반도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우리는 며칠 먹지 못하면 죽는다. 삶이 끝난다. 그렇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런데도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현실.


쉽게 이야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공산품을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되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렇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치달으면 전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올 수 있다.


자기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식량을 수출할까? 그렇지 않다. 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또 심해지는 기후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생존이 되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책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해 씨앗을 뿌릴 시기를 가늠할 수 없거나, 또 심어놓은 작물들이 죽거나 병들어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농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존재, 농부다. 그런 농부는 그래서 어떤 직업보다도 중요하다. 이 중요한 농부, 미래세대에게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왜? 농촌이 살기 힘드니까.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교육, 의료 등등이 없으니까. 서정홍 농부(시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골인 우리 마을은 작은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30-40분쯤 가야 하고, 조금 큰 병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302쪽)


생명과 관계 있는 병원도, 병원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농촌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치료 환경도 이런데, 교육이나 다른 문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농촌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보면 '귀한 거'라고 하겠는가. 


이만큼 농촌은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떠나고 있으니, 서정홍 농부(시인)가 60대인데도 청년에 들어가게 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농촌이 이렇게 사라져가면 결국 우리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 아무리 '스마트 팜'이니 과학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뭐니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대농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이윤을 남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농사지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는 것, 이 책에서 고추를 심더라도 한 밭에 몰아 심지 않고 여러 곳에 나눠 심는 이유도 또 한 밭에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땅도 살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살리고, 결국은 사람을 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농부 한 사람 살리려면 백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211쪽)는 말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식탁에 오른 농산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량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레 농부(농업, 어업, 축산업 등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농부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내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 농부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농산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아마도 최소한으로 배출하게 되고, 또 돈으로만 사는 물건이 아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내용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의 글이 모인 이 책.


이런 농부의 삶을 통해 배운 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저는 농부가 되고 나서 스스로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57-58쪽)


읽으면서 따스함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단지 식량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존재에 이렇게 다른 존재들의 땀과 시간, 사랑이 들어 있음을...


그러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농촌 아이의 이 말... 부끄럽다.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한 가지라? 모시 궁금하네요."

"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요. 따라 살고 싶은 삶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으로만 우릴 가르치잖아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동생도 다 알아요. 우리 미래를 어른들한테 맡겨서는 안 된다고요."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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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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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 꼭 읽어야지 하는 작가가 있다.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내 저금통에 돈이 쌓인 것 만큼 기쁘다. 내가 넉넉해진 것 같은 느낌.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저금통에는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을 모아놓는다. 그리고 그 돈은 쓰지 않아도 나를 든든하게 해준다.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아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생각에,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즐거운 기다림 또는 기대를 늘 지니고 있게 되니까.


이 작가의 책이 나왔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하는 기대. 은유 작가의 이번 인터뷰집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역시 할 수밖에 없었다.


'생업'


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런데 '생업(生業)'이라는 말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래서 '생업'이라고 하면 힘듦과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온다는 생각을 한다.


생업에 종사하다라는 말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다라고 이해하고, 이때 방점을 일을 하다에 찍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에 찍는다. 그래서 생업이라는 말은 즐거움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힘듦과 함께한다고 여기게 된다.


어차피 삶은 즐거움만으로 차 있지 않으니,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힘듦, 싫음도 있어야 하니까,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기에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생업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한 일을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리는 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그들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은유 작가다.


은유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러한 은유 작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책이 쌓일수록 은유는 그간 만난 사람과 써논 들을 배신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해졌다'(301쪽)는 말과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다. 세상과 부딪쳐야 느끼고 배우는 게 있고, 쓸 것도 있다.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302쪽)는 말, 그리고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는 글,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인가가 기준이에요'(303쪽)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맨 앞의 문장은 언행일치나 지행일치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삶을 배신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한 글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장처럼 본인 역시 세상과 부딪치지만, 세상과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쓰기라는 것, '쓰기'가 '삶'이 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 당연히 그의 글은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게 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들의 마음의 문도 어느 정도 열리고, 통도 조금씩 조금씩 커지게 된다. 또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


이런 은유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는 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는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6411의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사회의 주체로 설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가 좋아지는데 한몫을 하는 당당한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많은 사람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들이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 또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하여 이들의 '생업'은 힘든 일이지만, 이들의 힘듦은 곧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받아들이고 또 당당하게 하려 한다. 그 일에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넘어선 일이고, 힘듦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을 모두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몇몇 분들을 언급하면 (이름은 생략하고, 그들이 하는 일, 소위 생업을 이야기하면) 급식노동자, 청년 농부, 우리밥연대 요리사, 배달노동자, 독립 연구 활동가, 산업재해 노동자 부인, 싱어송 라이터, 타투이스트,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등등이다. 


모두들,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펴보자. 이렇게 '생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런 우리도 바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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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와 페소아들 제안들 6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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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다중우주.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와 또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나. 이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구에서는 유일한 존재이고, '또 다른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나는 만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다만,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짐작하기만 할 뿐. 즉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고 생각할 뿐.


그런데, 이 지구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평행우주가 아니라 평행지구라고 해야 할까? 지구 곳에서, 아니 지구의 어느 한 나라에도 수많은 나'들'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도플갱어'와는 다르게, 속설로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음에 이른다고, 즉 두 존재가 함께 존재하지는 못한다고 하기도 하니, 다중(평행)우주 속의 '나들'은 그런 도플갱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인격들, 한 인격이 한 행동을 다른 인격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도플갱어라는 말과도 다중(평행)우주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 어쩌면 인간이란 바로 이렇게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또는 하나 속에 여럿이 함께 있는, 그 여럿이 하나 속에 통합되어 하나로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럿이 각자가 하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


하나의 인격만이 발현되든, 여러 인격이 발현되든 그것이 인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다양한 면이 아닐까. 


그러니 인간을 어느 한쪽으로만 규정하는 일은 없어야겠는데... 이런 많은 용어들이 생각난 것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 책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을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고 붙인 것은 페소아라는 포르투칼 작가가 페소아라는 이름의 단일한 인격만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페소아들이라는 다중 인격으로 존재했다는 것.


어떤 때는 페소아라는 인격이 또 다른 때는 페소아들에 해당하는, 이 책의 번역 용어로는 '이명(異名)'의 인격들이 나타나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시, 희곡, 소설, 인터뷰 등등 다양한 페소아들이 각자 특성있는 글로 나타난다.


페소아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이명들에 대해 밝히고 있기도 한데, 어떤 인격들은 이명(異名)이 아니라 이명에 준한다는 의미로 준(準)이명이라고도 했으니...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는 달리 페소아는 자신이 지닌 다른 인격들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인격들이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페소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 이름으로 발표한 글들을 실음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니고, 다른 문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한다.


여기에 이명이 아니라 본명 편에서 페소아가 직접 밝힌 일들도 수록함으로써, 페소아란 작가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페소아는 그런 다양한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여 그는 이 지구에서, 그 중에서도 포르투칼이라는 나라에서 여러 페소아들로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한 사람. 그 많은 페소아들 중에서 어느 누구로 페소아를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그의 이명에 관한 말... 이 말을 통해 페소아는 다양한 페소아들로 작품활동을 했음을, 그것이 바로 그임을 알게 해준다.


'내 이명들의 정신적인 기원은, 나의 근본적이고 한결같은 탈개성화와 가장(假裝)의 성향이지. ... 어릴 적부터 난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325-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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