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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와 메리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열정과 창조의 두 영혼
샬럿 고든 지음, 이미애 옮김 / 교양인 / 2024년 4월
평점 :
메리 울스턴크래스프와 메리 셸리. 어쩌면 두 명 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있고, 둘 중 한 사람만 들어본 사람, 또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SF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둘 다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한 사람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괴물의 이름으로 착각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가 메리 셸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셸리'란 이름에서 낭만주의 시인이라고 하는 '바이런, 키츠, 셸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기 쉬운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 셸리의 어머니다. 비록 딸 메리를 낳고 열흘 만에 산욕열로 죽지만, 남겨진 작품들로 인해 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최초의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는 고드윈과 결혼을 하니, 메리 셸리는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을 주장한 사람들을 부모로 두고 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시민혁명이 일어나던 때,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해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인식하던 때, 이때도 여성은 시민이 되지 못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 여성들이 단두대에서 사라지던 때가 이때다.
그리고 남성과 동등함을 주장하던 여성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때가 이때인데, 그럼에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출판을 통해서 주장을 했으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겪어야 할 고통을 지금에서 짐작하기는 힘들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생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성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자립을 주장한다. 자신이 할일을 찾아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남성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결국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고. 사회를 변혁하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당시에는 동등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불공평한 사회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고군분투한다. 사랑에도 독립적이지만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을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메리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인 셸리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입으로 살아가려 한다.
남편이 시를 쓴다면 자신은 소설을 쓰는 메리 셸리.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당시에는 추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벌어지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것, 여성의 삶도 남성의 삶과 동등하다는 것, 그리고 남성성이 얼마나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메리 셸리의 과업이 된다.
이 책은 엄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과 딸인 메리 셸리의 삶을 교차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 당대 사회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사회적 비난 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고자 했지만 아이를 임신했을 때 또 사랑에 실패했을 때, 아이를 잃었을 때, 남편을 잃었을 때 등등 그들이 느꼈던 절망감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
어쩌면 딸인 메리 셸리는 엄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고, 자신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시대를 앞서간 사람임은 분명한데,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는지, 어떤 오해를 받아야 했는지를 두 모녀의 삶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어떤 편견 속에 시달리고 사라져 갔는지... '나혜석'의 경우도 떠오르고... 나혜석이 독립적인 자신을 주장하지만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가려졌는지, 어떻게 핍박을 받는지를 보면 19세기(엄마는 18세기)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아닌,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온전히 평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방대한 내용이지만 연대 순으로, 작품 활동 순으로 서술되어 있고, 또 엄마와 딸이 한 장씩 교대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당대 시대적 제약에서 그들이 지녔던 한계도 간과하지 않고 (그들의 내밀한 사적인 생활이 사료를 통해 재구성되고 있어, 당시에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우리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룩한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지금 우리 시대를 돌아보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특히 그동안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유명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메리 셸리와 관련해서는 '바이런, 셸리'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관련해서는 '토마스 페인, 윌리엄 고드윈'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 따로따로 알고 있었던 이 인물들이 서로 관계됨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여성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떠한 고난을 헤쳐왔는지를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