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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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다.' 


뜻하지 않게. 너무 일찍.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와 갓 화해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느끼는 상실감을 말로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미셸은 엄마에게 달려간다. 자신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그동안 엄마가 자신의 일생에 사사건건 간섭했다고, 엄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반항도 하면서 엄마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도 하면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려 했던 미셸에게 엄마의 암은 충격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엄마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차원에서 다가온다. 자신의 모든 것이 얼마나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엄마가 예전처럼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깨닫게 된다.


할 수 있는 일. 엄마 곁에 있는 일. 엄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는 일. 잊혔던 한국의 감성을 살리려 하지만 미셸은 미국인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아니, 사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다. 


엄마와 이별하기 전 미셸은 미국인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이제는 한국인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워지기 시작한다.


엄마의 상실 속에서 미셸은 자기만의 애도 시간을 갖는다. 충분한 애도 시간이 없으면 상실의 아픔을 견딜 수가 없다. 


먼저 미셸은 회피하려고 한다. 엄마의 상실에서 다른 일로 관심을 돌리려 아빠와 함께 베트남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베트남 여행이 치유를 해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상실의 아픔을 외면한다고 해서 마음 속에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미셸의 꿈 속에서 엄마가 항상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엄마를 잃는 꿈으로 나타난다. 미셸은 상심 속에서 지내며 심리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은 충분한 애도를 통해서 치유될 수밖에 없다.


하여 미셸은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엄마와 관련 있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유튜브를 보면서 음식 만들기를 따라하는 것. 잣죽부터 김치까지... 그러면서 차츰 미셸은 자신이 치유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엄마 상실의 아픔을 담은 곡들을 쓰고 앨범을 내기도 하는데, 이 앨범이 나중에 유명해져서 미셸을 한국에서 공연까지 하게 한다.


이렇게 미셸은 자신의 인생에서 거의 전부였던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항상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말고 10%정도는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엄마 역시 미셸에게 10%정도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잃고 엄마와의 일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인생을 찾아간다.


극심한 상실의 고통,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나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갖춰가는 미셸의 모습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딸이 겪는 갈등과 이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마음에 커다란 울림이 생기는데, 상실의 아픔을 회피가 아니라 직접 대면하면서, 공통의 경험을 다시 체험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미셸이 엄마의 죽음 이전의 미셸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미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엄마에 대한 충분한 애도. 그런 애도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기에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가 한번은 겪어야 하기에, 미셸을 통해서 미리 경험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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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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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과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그들을 보통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천재들이 우리들과 다른 사람일까? 천재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로 본다면, 노력이라는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미 타고난 천재들이 업적을 이룰테니까.


그런데 아니다. 천재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보통사람이다. 보통사람인데 남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고 모두가 천재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상을 받았다는 것은 물리학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는 얘기니... 그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를 찾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9명의 과학자를 만나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대담에서 이 책이 견지하고 있는 방향은 이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사람과 같지만 노력을 하고, 남들을 배려하고 함께 경쟁하면서 존중하는, 그럼에도 하나의 이론에 머물지 않고, 편견에 물들지 않고 끊임없이 증거를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또 성과를 이룬 다음에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이들이 지닌 자세는 겸손이다.


겸손은 자신을 높여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는 자세다. 자신을 열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로 겸손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많다. 함께할 사람이 많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닫혀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다. 열려 있으므로, 자신의 주장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주장도 살핀다. 살필 때 편견을 지니지 않는다.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면 흔쾌히 인정한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가 지녀야 할 태도다.


이 책에 나온 아홉 명의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지닌 태도가 그렇다. 자신의 업적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꾸준히 발전해온 과학에 한 발을 더 내디뎠을 뿐이라고... 또한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후대들이 해결할 것이라고.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러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유에 관한 학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삶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그것을 과학자들을 빌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과학자와 비과학자를 나눌 필요가 없으니, 어떤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지닌 자세는 다른 사람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 물론 배운다고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책이다. 읽으면서 그래 이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이 성공은 운이 좌우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기술)이 좌우한다고 해석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


즉 누구에게나 운은 70%정도 있다. 삶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데 운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장소에 그 시대에, 그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했다는 것, 그것은 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바로 기(技) 30%가 작동해야 한다.


즉 실력, 노력이 반드시 작동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운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30%의 노력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실패한다면? 그것은 70% 운에 속한 일이다.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또는 다른 세대에게 넘기면 된다는 것. 그렇게 되기까지 30%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청년들이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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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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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경석 하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에 앞장선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고. 한때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으로 지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그의 삶과 생각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냥 시위를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기만 했을 뿐.


그러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생각했다.


사람도 많고 바쁘기도 한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함께 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나와서 우리 출근을 방해하느냐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고 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표출되는 그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직시한다.

 

그가 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단순히 장애인도 지하철을 편하게 타자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 투쟁이 단지 자신들의 편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운동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공감 차원을 넘어서서 지금 시스템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드러내고 ,그 시스템을 잠시라도 중지시켜보는 실천들이 필요한 거죠. 전장연처럼 지하철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 세우는 것 같은 실천이 그래서 저는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지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건 이놈의 시스템인데, 정작 고 시스템은 전혀 공격도 안 받고 우리끼리 각자 권리를 두고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만 하고. (65쪽)


그렇다. 그는 이를 원형경기장에 비유했다. 원형경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들. 그들은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람들은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즐긴다. 이게 무엇인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 아닌가.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원형경기장에서 나와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눈 앞에 있는 검투사가 아니라 원형경기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싸우게 만든 자들이다.


박경석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무지를 탓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가 T4사회라고 외쳤는데, T4사회가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를. 아니 T4사회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은 나의 무지를.


장애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한 나치의 정책이 T4정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장애인을 제거한 것이나 지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하는 박경석의 절규. 이 절규를 우리가 왜 듣지 않고 있는지.


그래서 박경석은, 그와 더불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에서 목소리를 내는 존재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려 한다.


그들이 당당하게 나설수록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기반을 마련할 것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원형경기장에서 바로 눈 앞의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형경기장을 부수려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투쟁의 역사를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었는데... 새롭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


국가 예산 편성권을 기재부(기획재정부)가 독점적으로 쥐고 있다는 것. 복지부나 기타 다른 부서와 합의가 되어도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으면 합의된 정책들이 실시될 수 없다는 점. 그런데 기재부는 무슨 근거로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철저히 경제(성과)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는데... 


국가는 비용(성과)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에, 사람을 중심에 두는 쪽에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기재부의 예산 독점권은 시민들에 의해 견제받아야 한다는 박경석의 말에 동감한다.


국민적 합의로 예산을 편성해야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문제들을 실행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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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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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버스 번호. 이 버스에는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탄다고 한다. 그것도 첫차와 두번째 차에...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이지 않은 데서 일을 하기 때문이고,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일을 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고.


성숙한 사회라면 자신들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런 그림자 노동으로 인해 자신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음을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런 고마움을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으로 이끌어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아니다. 이들이 눈에 띄는 순간 인상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왜, 남들 일하는 시간에 하느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의 일과 그들의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오히려 그들도 자신들이 일할 때와 같이 좀더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나.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일텐데...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할텐데, 그와 반대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이라도 그런 사람들의 노동환경이 변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사회 각지에서 일하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질문 형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근무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그들로 인해 내가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 그럼에도 이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좋은 사회란 사회적 약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들을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373쪽)'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면 이들의 처우가 나아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생활을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이루어졌는지를.


이 책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소리를 남들이 듣게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들만 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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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SF게임 - 건너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 69
김초엽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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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작가는 김초엽과 천선란이다. 조금 다른 결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는 한정현이고... 물론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있지만, 최근에 이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천선란은 자신의 성장과 디지몬을 연결지어서 [아무튼, 디지몬]을 썼고, 김초엽은 SF게임과 관련지어 [아무튼, SF게임]을 썼다. 둘다 자신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대상을 골랐는데, 디지몬이 애니메이션이라면, SF게임은 그러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분야에 속한다. 그럼에도 현실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통점은 있다.


SF게임이라고 했지만 그냥 게임이라고 해도 된다. 게임은 현실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현실에서 잠시 떼어놓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몇몇 종류로 딱딱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중에 SF게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김초엽이 SF작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작가에 SF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다른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소설 속 세상이니, SF작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냥 작가라고 해도 된다. 많은 소설 중에 그러한 분야의 소설을 쓸 뿐이니...


그렇다면 SF게임은 무언가. 역시 다른 세계 속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에는 내가 개입할 수 없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개입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속 인물이 '나'는 아니지만, '나'를 대리한다. 그래서 '나'는 게임 속의 인물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다른 행위를 한다.


그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다른 게임을 찾아 계속 나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래서 '게임 중독'이라는 말을 하고, 게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게임은 스포츠가 되었다. 세계 대회도 있고, 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게이머들도 있는 세상이니.


또한 게임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한다. 그냥 게임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다. 다수의 사람들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이, 게임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게 된다.


김초엽 역시 그랬다. 성장하면서 게임 속에 빠졌던 자신의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꼭 게임을 끝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끝을 봐야만 게임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니... 이제 김초엽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물론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임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아동 성폭행 게임 같은 것. 그런 게임이 출시될 리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다고 보니)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냥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러니 해서는 안 된다, 또 중독이 되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함의를 찾고 그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요즘 게임을 분석하는 책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게임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김초엽은 게임에서는 패자부활전이 있음을, 즉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그러한 점이 우리 인생에서도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게임을 통해서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또다른 기회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게임은 삶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게임에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게임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지만.


즉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처럼 언젠가는 책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듯이, 게임 역시 빠져나와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관점, 그러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가 김초엽의 생각, 삶이 함께 녹아 있어서 재미 있게도,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아무튼' 시리즈를 빌려와 말하고자 한다. 아무튼 우리는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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