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의 비극
제인 워드 지음, 노지양 옮김 / 라우더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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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비극'이 아니고?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이성애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뒤집고 있다.


'앨라이(얼라이ally)'라는 말에서 이 뒤집힌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통 앨라이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쓴다. 다수가 소수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앨라이 관계'를 반대로 뒤집어 보는 일 안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내포되어 있다. 퀴어들은 여성혐오의 역설 아래에서 고통받는 이성애자들에게 페미니스트로서 개입하고 퀴어 관점에서의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다.' (70쪽)고 하고 있다.


그간 이성애자들의 사랑은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여성 혐오라고 하기가 그렇다면 여성 억압이라고 해도 좋겠다.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이성애적 사랑 아니었던가?


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 행동, 외모, 말투 등등, 그리고 집 안에서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 등등... 그러한 것들이 이성애적 사랑으로 감춰진 여성 억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이러한 억압에 바탕한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이냐고...


오히려 남성의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으로서 여성을 필요로 한 것이지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랑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 '이성애의 비극'에 담겨 있는 뜻이다.


책의 앞부분을 보면 '이성애의 비극'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 폭력의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성애의 비극'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니까.


그래서 '앨라이 관계'를 뒤집는다는 것은 퀴어들이 이성애적 사랑을 하는 여성들에게 동조하면서,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남성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자기 사랑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러한 사랑을 가르쳐줄 수 있는 존재가 퀴어들이라고... 특히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그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은 뭐지? 간단하다. '각자의 성적 욕망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295쪽). 이는 누구를 의식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실한 사랑이라는 것. 자신만큼 상대에게도 충실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에서 에로틱은 '동일시이고 상호 인정이며 기쁨이 피어난 자리'(294쪽)라고 한다. 주체/객체의 분리가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는, 존재 자체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부장적 권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를 내 욕망의 객체로 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퀴어들이 이성애자들의 '앨라이'가 될 수 있다고, 그간 사회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을 한다. 


보통 퀴어들이 힘들게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에 충만함과 기쁨을 느낀다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관계로 만들어간다고... 그럼에도 동성애 혐오가 사회에 있는 이유는 '이성애적 불행과 비참함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217쪽)고 하는데, 


이것은 '반복되는 퀴어의 시련 서사는 그 고통에 동반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상쇄해주는 퀴어로 사는 것의 심오한 기쁨을 무화하고 이성애적 삶은 젠더화된 폭력과 고통에서 자유롭다고 암시하면서 이성애 규범성을 더욱 공고하게 이 사회에 심어놓는다'(23쪽)는 말로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동성애 억압은 이성애자들 또는 가부장적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불행이나 억압을 덮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차별은 결국 내 안의 결핍을 외부에게 전가하는 것인데, 내 안의 결핍이 결핍이 아니라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다른 존재들을 차별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저자는 그간의 통념을 뒤집는다. 동성애자들이 힘들다는 생각을, 이성애자들이 얼마나, 특히 여성 이성애자들의 비극에 대해서 여러 사례를 통해, 그것도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극이성애적인 남성 hyperstraight man'은 여성의 몸에 끌릴 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종의 집단적 자유에 대해서도 끌린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여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이성애적인 남성, 다시 말해 깊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면 ... 그 사람은 반드시 페미니스트여야 한다.'(315-316쪽)


이보다 명확하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랑에 굳이 성별 구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성별 구분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구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할 뿐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를 이 책의 해제를 쓴 한채윤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싶다.


"같다고 하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평등한 관계를 상상하는 힘이 없다면, 그것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국 '꽝'이 될 뿐"(329쪽)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퀴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고, 사랑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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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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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 외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있다니... 그것도 심리학에서 쓰고 있었으니,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향인, 영어로 'OTROV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어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는 '남들과 다른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향인otrover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페인어에서 'otro'는 '다른'을, 'vert'는 방향을 뜻한다. 말 그대로 'otrovert'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8쪽)


'다른 방향'이라고? 어떤 방향의 차이지? 책에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을 내향인, 외향인으로 분류를 하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방향은 공동체(집단)에 들어가 있든, 들어가 있지 않든 모두 공동체를 향한다는 것. 즉 소속을 지니려는 성향.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다르다. 이들은 얼핏 공동체에 속하고, 또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공동체 밖이라고 한다. 이들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개인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집단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


이런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37쪽)고, '언제나 관찰자일 뿐, 진정한 참여자가 되지 못한'(38쪽)다고 하고 있으며, '관행을 따르지 않고'(39쪽),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한다'(41쪽)고 한다.


자, 이들의 특성을 보라.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세, 여기에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잘 살펴보라.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로 맺어진 관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모여 일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요즘은 재택 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동체 지향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이향인들, 이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질병을 앓는 사람,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저자가 의사로서 만나본 많은 이향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도 하니...


'이향인'이라는 특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어느 한 부류에 집어넣고 판단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향에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향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더욱 중시할 뿐이다. 이들도 역시 보편적인 규칙들은 존중하고 지키려 한다. 저자는 '이향인은 대체로 보편적 원칙은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적 원칙을 파악하는 데는 자주 어려움을 겪으며 그런 이유로 종종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119쪽)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그들을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예측 가능성은 사회적 통합을 돕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120쪽)라고 하니 이런 점에서 이향인들이 오해를 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성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향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공동체 지향성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솔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향인이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왜 공동체 지향성이 없음에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까? 그것은 '정서적 자급자족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243쪽)인데, '이향인은... 본능적으로 배려를 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향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보기 때문'(245쪽)에 이향인은 자신의 정서가 충만하고 사람을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 전체로 보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향인들...아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이상하네."라고 여기지 않고, 아,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좋을지,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 '이향인 테스트'가 실려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사람을 내향인, 외향인 또는 이향인으로 딱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특성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을 테니. 다만 그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교사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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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
윌리엄 모리스 지음, 정소영 옮김 / 온다프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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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사람. 삶에서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삶은 너무나 공허하다고 한 사람.


남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모리스는 중세야말로 아름다움을 살았던 시대라고... 그때 사람들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장식예술을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많은 도구들을 그냥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 쓰임새만을 위해 만들지 않고,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생각해서 만들고 썼다는 것.


건축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의 웅장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면 모리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쓰임새만 생각하고 사지 않는다. 디자인을 본다. 아름다움을 본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물건들에는 쓰임새와 더불어 아름다움도 함께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모리스의 주장이다.


이렇게 인간은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평등해져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일을 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아름다움이 삶 속에서 실현된다고 모리스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 자신의 노동을 남을 위해서만 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을 생활에서 추구하는 것과 방향이 같다고 한다.


그는 '제가 뜻하는 사회주의는 ~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살고, 낭비 없이 만사를 꾸려가고, 어느 누구에게 해가 되면 곧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는 그런 사회적 조건이지요. 마침내 공화(共和)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구현되는 사회라 할 수 있어요'(165-166쪽)라고 한다.


이런 사회는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구현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쓰임새만이 아니라 아름다움도 함께 물건에 요구하고 실현하는 사회가 된다.


그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즐거움을 입히는 일, 그것이 바로 장식이 수행하는 하나의 위대한 역할입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물건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일, 그것이 또 다른 역할입니다.'(104쪽)고 장식예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즐거움은 곧 아름다움과 통한다는 것.


이러한 아름다움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곧 '자연에 조응하며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고, 반대로 자연에 어긋나며 방해가 되면 추한 것입니다.'(103쪽)고 하고 있으니, 이런 상태에서의 아름다움은 즐거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이 넘치는 사회는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라 할 수 있는데, '현대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되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정직함과 소박한 삶'(54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침, 낭비가 없는 사회. 어느 곳에서는 넘쳐나서 버리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는 없어서 고통을 받는 그런 사회가 아닌, 정직함과 소박한 삶이 넘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모리스는 필요를 창출하지만 그 필요에 아름다움을 덧붙일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모두가 그러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누리는 사회를 그는 바라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살 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 첫째는 건강한 신체, 둘째는 과거,현재,미래와 교감하는 활달한 정신, 셋째는 건강한 신체와 활달한 정신에 적합한 직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주거환경'(255쪽)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용한 주장 아닌가. 살 만한 삶. 아름다운 삶.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정신, 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살 만한 삶이라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리스가 주장한 이런 살 만한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을 두려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들을 믿고 의존하는 일, 경쟁을 없애고 협력을 쌓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240쪽)이라는 모리스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에 관한 모리스의 글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미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사회학, 정치학과도 연결이 된다. 그가 삶의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다면 모리스가 만든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는지, 그 문양들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추천한 박노자의 말을 보자. 이 책을 가장 잘 정리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리스가 세운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근대가 망까뜨리고 획일화시킨 인간에게 미(美)를 통해 다시 한번 자유와 개성을 돌려준다는 것이었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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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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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그 나라의 미래다. 그렇게 어린이는 중요한 존재다. 단지 미래를 살아갈 존재라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어린이를 사회의 미래로 인식하고 교육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는 전통을 비롯해 미래의 전망까지 교육한다. 그 사회가 원하는 존재를 양성하는 곳, 바로 학교다.


이 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이야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그에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교육을 강조했을까?


그러한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잘 다가갔을까? 이런 의문을 지니면서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제국의 어린이들'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엿보게 해준다는 제목. 작은 제목으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라고 했으니, 조선에 들어와 살고 있던 일본인 어린이들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 어린이들과 일본 어린이들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을 통해서 비교-대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비교는 가능해도 대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로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선총독상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일본의 시책에 동조하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책과 다른 내용의 글이라면 뽑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뽑히기 이전에 이미 그런 글을 쓰는 어린이는 이러한 대회에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선 어린이들이 글짓기 경연대회에 참가하려면 지도교사가 있어야 했다고 하는데, 지도교사가 총독부의 관점과 다른 글을 쓰도록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어린이는 조선 어린이와 달리 지도교사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았을 테고, 또한 일본어도 자유롭게 구사했을 테니 굳이 지도교사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참조한 글들은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 알려지지 않은 그러한 어린이들의 삶은 다른 글들, 또는 다른 자료를 통해서 찾아야 할 것인데...


그럼에도 저자는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작품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당시 조선에 살았던 어린이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고, 일본과 조선의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큰 차이점은 일본 어린이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 반면, 조선 어린이들은 수업료를 내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하던 조선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 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라는 이름에서부터 예전에 70년대쯤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곤 했던 반공웅변대회가 생각났다.


반공웅변대회,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당시 학생들의 삶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 대회에 나가는 글들은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고 보면 되는데...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말기에 총독부 주최로 실시했던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역시 자신들의 방향에 맞는 글들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한 글들을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분석한 글들만으로 당시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방정환이 창간한 [어린이]라는 잡지라든가, 또 그와 비슷한 매체에 실린 글들을 자료로 삼아 분석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 역시 다른 잡지에 실린 글들도 참조하고 있지만, 대체로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그것도 1,2회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그 점이 좀 아쉽다.


또한 어린이 당사자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당시에 어린이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른 많은 글들이 있을 것인데, 특히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분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럼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한 어린이 글짓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일제강점 말기 당시의 사회 모습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까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의식을 주입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으니...


또한 저자도 지적하지만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의 글을 보면 그들이 다루는 소재 자체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는 일본 어린이들이 동물을 다루더라도 요즘 반려동물이라 하는 개, 고양이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면, 조선 어린이들은 그러한 반려동물이아니라 돼지나 소와 같은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는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하여 관변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제적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을 알 수 있으니...


이렇게 드러난 글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 그 점에서 이 책이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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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삽화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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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책이 아니다. 경제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는 다른 경제를 이야기한다.


경제하면 자본, 자본을 쉽게 말하면 돈이라고,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느냐 하는 수입과 지출의 문제로 경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는 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다.


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야말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상승한다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제는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호혜성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선물'이라고 하면 된다. 선물... 주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행위. 이런 행위들은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선물은 멈추지 않고 순환한다. 그리고 주면 줄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 경제의 무한 확장, 순환 관계 속에서 가치가 계속 늘어나는 경제 활동.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


그런 선물 경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베리(이 책의 원제목은 서비스베리다. Serviceberry)를 통해 선물 경제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들과 얽혀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이것이 선물이다. 기꺼이 내줌. 이러한 선물들이 돌고 돌면 결코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돌고 돌수록 가치는 늘어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유용함을 주기 때문이다.


식량을 저장하는 방식.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냉장고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이웃의 배에 저장한다는 발상.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


내게 남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이때 나눔은 선물이 되고, 이것은 나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기쁨이 된다. 이런 선물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물의 기쁨을 알기에 선물을 주는 행위는 지속된다. 반복된다. 하여 누구에게 필요한 것들이 선물이 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호혜성'이다. 없다고, 희소하다고 값을 올려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데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 선물, 호혜성. 이런 사회에서는 결핍이란 없다. 내 결핍을 채워줄 선물이 올 테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선물을 줄 테니까.


자연에서 보고 배운 것, 느낀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필요함을 저자는 느끼고, 그런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선물 경제, 호혜성이 바탕이 되는 경제 활동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이익을 보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메워주는 경제 활동을 한다. 하여 결핍은 줄고 풍요는 늘어나게 된다. 


자연, 우리 인간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경쟁도 하지만 주로 협력을 하면서 자연의 생태계를 이루게 된다. 이런 삶, 이것이 '선물 경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희소성에 바탕을 둔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의 결핍을 서로 메워주는, 선물이 돌고도는 사회, 그런 사회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사회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선물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한 사람들의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


점진적 변화와 급격한 변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지금 인공지능으로 자연에서 더 멀어지려는 이때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시나베 전통 경제에서 땅은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원천이다. 재화와 서비스는 일종의 선물 교환을 통해 분배된다. 삶의 일부를 내어줌으로써 다른 생명을 떠받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음식을 먹고 우리의 영혼은 소속감에서 양분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필수적인 음식이다. - P19

기후 재앙과 생물다양성 상실은 인간이 존중 없이 마구잡이로 자연을 취한 결과다.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 감사라면 두 번째 반응은 보답이다. - P23

감사와 호혜성은 선물 경제의 화폐이다. - P24

물질은 순환 경제를 이루어 생태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탈바꿈한다. 풍요를 창조하는 것은 재순환이며 호혜성이다.

- P26

무언가가 선물의 지위에서 상품의 지위로 바뀌면 우리는 상호 책임에서 벗어난다. - P41

선물 경제에서 화폐는 관계다. - P50

이 관계는 감사로, 상호의존으로, 계속되는 호혜성의 순환으로 표현된다. 선물 경제는 상호 안녕을 증진하는 공동체의 유대를 길러준다. 선물 경제의 당위는 ‘나‘가 아니라‘우리‘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 P51

선물 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재화와 금전이 아니라 감사와 연결이다. 선물 경제에는 직접적 교환이 아니라 간접적 호혜를 위한 사회적, 도덕적 계약 체계가 포함된다. - P52

선물의 흐름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규모와 맥락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 경제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공동체 규모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 P72

각 종은 다름으로써 경쟁을 피한다. 존재 방식의 다양성은 경쟁의 폐해를 막아주는 해독제다. - P96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돌아가려면 결핍이 있어야 한다. 이 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결핍을 만들어내도록 설계되었다. - P98

받은 선물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에 기초한 건물 경제의 토착 철학은 쌓아두기를 통한 인위적 결핍 창출을 용납하지 않는다. - P100

경제성장은 멸종의 엔진이다. - P105

무한히 재생 가능한 자원인 감사와 친절이 교환의 화폐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러한 화폐는 쓸수록 가치가 낮아지는 게 아니라 나눌 때마다 증가한다. - P111

우리가 미래에도 번영하려면 축적에서 순환으로, 독립에서 상호의존으로, 상처내기에서 치유하기로 돌아서야 한다.

- P120

선물에 보답하는 재생 경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P124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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