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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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불행하고, 복잡하게 행복한 결혼.


이 말처럼 결혼에 딱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한 결혼이라니... 그렇게 결혼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저마다 자신만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결혼 생활에 대해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도 힘들고.


또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행복하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 어떤 때는 행복에 겨워 결혼 잘했다고 하다가도, 어떤 때는 불행하다고 내가 왜 결혼했을까 라고 절규하기도 하는 그런 생활. 그것이 바로 결혼 생활 아닐까.


이 결혼 생활을 '쇼윈도 부부'라는 말처럼 남 앞에서는 행복한 양, 결혼을 너무도 너무도 잘한 양 포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사람들은 그런 모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또 어떤 부부는 우리처럼 살아라고 하는 듯하기도, 또 우리처럼 살지 마라 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임경선은 이렇게 말한다.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이 다른 부부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것처럼 사악하고 위선적인 것은 없다.'(127쪽)


그렇다. 부부 생활은 저마다의 생활이다. 다 다르다. 다 다르기 때문에 평범하다. 모두가 같은데 특이한 몇몇만 다르다면 그런 부부 생활을 비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부부 생활은 다 다르기에, 도무지 무어라 하나로 정리하기가 힘들기에 모두 평범하다.


이 평범은 다르다는 점에서, 각자의 부부 생활은 개성적이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또 불행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결혼 생활만 평범한 것이 아니다. 모두 평범하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모두의 결혼 생활은 독특하다. 그러므로 내 결혼 생활도 남들과 같을 수 없고, 내 결혼만의 독특함이 있다는, 비범한 결혼 생활이라는 점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각자 독특하고 비범해서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남에게 부부란 이런 것이다. 결혼은 이래야 한다라는 훈계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냥 20년 간 살아온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결혼 생활을 해봤으면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 저렇게 사는구나.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사는구나. 그게 결혼 생활이구나 하면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어느 하나로 정리하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저자의 말처럼 '결혼 생활이란 무엇보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8쪽)기 때문이다. '나와 안 맞는 사람' 이게 핵심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하고 평생을 함께 지낸다면 행복할까.


인간에겐 적당한 비밀이 있어야 하는데, 똑같다면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라는 말이 얼마나 자신을 구속하겠는가. 다 알아서 무엇을 하려고?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혼 생활 아닌가.


이러한 복잡함. 그것이 결혼 생활이니, 누가 그랬다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어떤 쪽이든 자신의 선택이니, 선택에는 후회가 따를 수도 있다. 다만, 그 후회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뒤로 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 마찬가지다. 완벽한 둘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 그 부족함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알고 보면 무척 쓸쓸한 인간이라는 것을 살면서 불현듯 깨달았다.'(118쪽)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결혼 생활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 의지하는 것. 


또 누군가가 의지할 대상이 되어주는 것. 이렇게 때때로 - 늘이 아니다. 분명 의지하고 의지하게 하는 것은 때때로 여야 한다. 늘 하게 되면 그 결혼 생활도 힘들어진다 -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결혼 생활 아닐까.


그러니 결혼은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한 것이다. 다만, 불행보다는 행복할 때 쪽으로 더 기우는 것이 결혼 생활을 지속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저자의 결혼 생활을 엿보는 재미,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 결혼에 대한 생각,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읽기를 할 수 있는 책이다. 


결혼 생활이라는 어쩌면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툭툭 치듯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결혼한 사람이든, 결혼을 앞둔 사람이든, 아니면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는 사람이든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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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ㅣ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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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고, 이번엔 서경식이 쓴 여행기다. 이제는 세상을 뜬 그. 그의 형제들이(서승, 서준식)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불의하게 탄압을 받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


불의를 이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단순히 정치적인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술이 바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형제들의 구명을 위해 외국에 가서 미술관에 간다? 누군가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니다. 왜 그가 미술관에 가면 안 되는가? 이는 어쩌면 '피해자스러움 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마음, 행위일지도 모른다.


피해자라면, 또는 불의를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세상에 사람을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행위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인문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


하여 이 책의 제목이 된 '미국 인문 여행'은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서경식이 미국에 처음 간 1980년대와 트럼프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2016년, 그리고 다시 2020년이다.


세 시기에 걸친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러 일들을 겹쳐서 회상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시기 속에서 새롭게 자리 매김하기도 하고, 또 처음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경식의 미국 인문 여행이 펼쳐진다.


이런 그에게 '피해자다움' 또는 '호소인다움'이라는 말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을 보고, 또 세계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다양성, 그러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과연 미국이 과거에도 마냥 정의로운 나라였을까, '선한 아메리카'였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자원'이라는 점(261쪽)을 그는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이 있어, 미국의 희망이 된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미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러한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동조자를 얻고 그 선한 힘이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인문 기행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선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일 터이고. 그것이 미국의 희망이기도 하겠지만, 세계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인문 기행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서경식이 이 책을 쓸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도.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국은 이제 이란도 폭격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미국에 선한 사람들의 영향은 미미하다.


언론이 다뤄주고 있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한 영향력보다는 국익이라는 또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시되고 우선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말미에 서경식은 ''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258쪽)고 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이, 오히려 더 강대국의 이익에, 자신들의 욕망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트럼프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이 되는 그러한 현실 아닌가.


그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257쪽)고 하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온 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257쪽)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선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함께하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인문 기행을 읽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늪에서 한 줄기 희망의 밧줄을 발견하는 것. 그 줄을 잡고 절망의 늪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


인문 기행을 통해 그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157쪽)고 그가 말하고 있으니.


하여 우리 역시 이 절망의 시대에, 선한 아메리카가 아니라 악한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미국을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미국에서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된 작가 특히 '벤 샨', 그리고 이름을 많이 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이번 책. 그가 이 책을 낸 이유를 마음에 담는다.


'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261-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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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명의 집 ㅣ 쏜살 문고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미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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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많은 글을 쓴 사람.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어보긴 했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은 적도 있고.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기. 그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많은 여행 기록 중에서 몇몇을 발췌한 것이 이 책이다.


1902년 벨기에 브루게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근대 도시지만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그는 브루게를 통해서 도시가 간직하고 역사, 그 역사가 쉽게 지워져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적인 건물들 역시 중세 건물들을 가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지닌 도시가 바로 브루게라고. 


'오래된 집들이 전혀 변형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새로 지은 건물들 (그중 하나는 역이다)마저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벽돌 박공을 높이 올린 옛 건축 양식과 아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민들만 바뀌었다.'(8쪽)라는 표현에서 츠바이크가 브루게에 갔던 당시 건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브루게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츠바이크는 과거는 현재에 묻혀 잊혀져서는 안 됨을,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있음을 이미 발견하고 있다.


이 브루게란 도시에 관한 글이 그가 죽은 이후에 나온 글인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1946 과거의 빈'이라는 글과 통한다. 빈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예술에 있다는 것. 그러나 예술은 '자유 없이 번창할 수 없다'(191쪽)는 그의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적인 전쟁이 그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했으리라. 브라질에서 결국 세상을 버리고 말았으니... 


빈에 대해 그가 한 말. 


'모순의 혼합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조화하려는 시도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도시가 지닌 본래적 천재성이다'(171쪽)


이 모순의 혼합에는 상대를 배제하거나 억압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빈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꽃필 수가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술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그가 꿈꾸던 세상. 


'내 생각에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 지배해서도 헌신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유로워야만 하며, 각각의 타인에게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184-185쪽)


이런 그에게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그가 영국에 머물 때 전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영국인들이 전쟁 소식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을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 정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가 크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집에 자신들이 가꿀 수 있는 만큼의 정원이 있다는 것.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원에 들러 식물들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모습들이 전쟁을 견디도록 했다는 것.


츠바이크가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가 생각났다. 아, 오웰도 영국 사람이었지. 그가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성품이었나 싶은 생각을 했고.


이렇게 츠바이크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그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삶을 본다는 것.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역시 그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집에서 안내서와 함께하는 여행의 매력은 정말 환상적이다. 자신의 공간을 낯선 세계로 바꿀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와 바꿀 수도 있다. 집에서 여행기를 읽는 우리는 갑자기 먼 과거의 낯선 집에서 살 수도 , 빛바랜 옛날 옷을 입을 수도, 우편 마차와 작은 돛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세기의 사라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활발한 유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할 수도 있다.' (91-92쪽)


이런 여행. 바로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재미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자신을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 방법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 츠바이크 역시 집 안에서 여행기만을 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여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다만, 직접 여행할 때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 말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여행을 하기를 그는 권장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유혹적인 불확실성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131쪽)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차라리 불편함, 성가심, 불쾌함이 낫다. 이것이 제대로 된 여행이다.' (132쪽)


이러한 여행을 한 사람이 집에 있을 때 여행기를 펼친다면, 츠바이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합쳐지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를 확장하면 그런 민족은 닫힌 민족관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열린 민족관, 즉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민족이 된다.


이런 민족들이 있다면 지구에 전쟁은 없을 텐데. 한 민족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 


그렇게 처음 글에 나오는 조화, 그리고 마지막 글인 자신의 고향 '빈'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란 ... 근심 없이, 또 자유롭고 시기심 없이 친절하게 사는 것'(184쪽)이라는 츠바이크의 말을 마음에 심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대, 츠바이크의 이 책은 과거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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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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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外注)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경제활동에 관련되어 많이 쓰는 용어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다른 곳에 맡겨 일처리는 하는 경우를 외주 준다고 하니...


이때 외주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다른 조직의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포함이 된다. 


현대에 와서 모든 일을 자신들이 다 처리할 수는 없기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외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먼저 제품을 외주로 주는 경우, 자신들이 생산할 능력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외주 주는 것이 더 비용이 싸기에 설비나 노동자들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때 외주 업체가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제품이 아니라 행위, 즉 일을 외주 줄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외부의 조직에게 일을 맡기기 때문에, 외부 조직이 일을 거부할 때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이렇게 외주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비용 면에서나 또는 효율 면에서 외부에 맡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여길 때 발생한다.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외주로 해결하려 했을 때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손해도 돌아오기도 한다.


내부에서 기본적인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차적인 외주로 했을 때는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외주를 준 업체에는 문제가 그리 심각해지지 않지만, 핵심적인 부분까지 외주 주었을 때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외주를 준 업체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이것이 외주가 지닌 문제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思考)-생각하는 분야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준다.


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데 외주에 의존하다 보면 본질을 잃을 수가 있다. 중심을 잃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어느 날, 학생들의 보고서가 글은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아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말이 된다.


인공지능에게 맡겨 제출한 보고서. 매끄럽고 내용도 잘 정리가 되었을 테고,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거의 없을 텐데,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보고서가 아무리 형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작성했던 예전에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보고서에 담겼을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옮겨 적는 것을 넘어, 보고서까지 인공지능이 쓰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인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고민을 하지 않는 인간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이 책의 작은 제목이기도 하다)이 대세가 된 것이 바로 현대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고(생각)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주는 인간. 편리하고 빠르다고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인간. 처음엔 편리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영원히 지낼 수는 없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는데, 인간의 기본 특징이 바로 생각에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외주 주고 있다면, 결국 자신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그 뒤의 삶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간 스스로 통제권을 인공지능에게 넘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했던 것이 인간의 능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는 우려. 이것이 바로 '사고외주'라고 제목을 단 이 책의 고민 아닐까.


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인공지능에게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보충하는 역할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고... 빠름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실패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지녀야 한다고. 이러한 일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판단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외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서 만나왔다. 그렇다면 이를 우리의 사고로 확장하면, 과연 우리의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주를 주더라도 본질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지 않은가.


인공지능 시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 그것들마저 외주 주고 의존하면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관계 맺기를 통한 다양한 경험, 때때로 멈출 줄 아는 태도를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이 현대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짧지만 저자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자세 역시 사고외주일 테니...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살펴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직접 글을 써보라고 하는데... 저자의 권유는 어렵지 않다. 어쩌면 어렵지 않아서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데... 키보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글을 써보는 것.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여백이든, 책의 맨 뒤 빈자리든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 아무것이나 펜으로 직접 적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키보드로 옮기지 마시고, AI에게 다듬어달라 하지 마시고, 그저 펜으로요. 글씨가 삐뚤어져도 좋고, 문장이 미완성이어도 좋고, 단어 한 개여도 좋습니다.' (149-150쪽)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고를 외주 주지 않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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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어의 발견
김미형 지음 / 사람in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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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으니... 알게 되면 사과하고 고쳐야 하는데, 어떨 때는 시기를 놓치기도 하니. 


그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왜 차별하는 말이야 하고 반문하고, 수긍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차별하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


어쩌면 세상 이치가 그럴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특히 사회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하는 말을 쓴다면, 그 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기는 힘들어질 테다.


차별하는 말 중에,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말들이 있는데, 바로 '멸칭'이라고 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멸칭, 남을 멸시하는 말. 멸칭 자체가 차별하는 말인데... 그런 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에 내보내는 일이 잦고 있으니...


특히 개인방송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멸칭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음이 문제인데, 멸칭을 쓰지 말자면서 자신들이 다시 멸칭을 쓰는.


개인방송뿐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멸칭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니,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아니, 이들은 분명 의도적으로 이러한 멸칭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멸칭을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면, 차별 없는 세상이 쉽게 만들어질 수 없겠단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하기도 했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차별하는 말을 쓰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구나, 혹 내가 차별하는 말을 쓰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지적했으면 나는 고쳤을까? 아니면 기분 나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은 책인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차별하는 말에 대해서 살피고, 그러한 말을 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쓰고 있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


저자는 차별하는 말을 '의미성, 의도성, 맥락'이라는 세 영역을 통해서 살피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차별하는 말이 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차별하는 말이 되고, 또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던 말이 맥락에 따라서 차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때 내 의도는... 하고 자신의 말을 변명하려고만 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차별하는 말은 배제하는 말이다.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말이다. 나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러니 이러한 말이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 억압이 말로 나타나고, 말로 나타나는 일이 잦으면 태도에 스며들어 고치기 힘들어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말들의 칼을 보라. 이들의 말은 상대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상대를 찍어누르려 하는 말이다.


그런 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다른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차별하는 말, 멸시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나와 우리만이 중요하고, 상대는 없어져야 할 아니면 꾹꾹 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할 존재가 된다.


그것이 차별하는 말이 지닌 위험성이다. 말이 곧 행동을 낳고, 그러한 행동이 그 사회를 만들어가니 말이다.


하여 내 말이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나를 상대의 처지에 놓아보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차별어의 발견'은 바로 '상대를 발견'하는 일이다. 낯선 존재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일. 이 처음이 바로 내 말에 담겨 있는 차별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차별하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가 들고 있는 많은 차별어들,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고,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을 쓰지 않는 데서부터 소통이 잘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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