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 -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
발 플럼우드 지음, 김지은 옮김 / yeondoo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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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서 다른 책을 만나게 된다. 책은 책을 이어줄 때 의미가 있다. 그 책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책은 다른 책과 이어져야 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상에 이어지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해야 하는데...

책이 책을 잇듯이, 생명은 생명을 잇는다. 자신의 생명으로 다른 생명을 이어주는 순환. 이 순환이 끊겼을 때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지구에서 이러한 생명의 순환을 끊을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사나운 맹수들도 생명의 순환을 끊지는 못한다. 그들 역시 순환 속으로 들어간다. 돌고 도는 생명들의 원. 하여 그러한 생명들의 총합은 늘 같다. 형태만 변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은 이 생명의 순환을 끊을 수 있다. 지금 끊고 있다. 최상위 포식자로서, 자신들은 생명의 순환에 즉 먹이사슬에 포함되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하여 인간들로 인해 지구에 있는 생명들의 총합이 변하고 있다. 

'제로섬'이어야 할 생명 순환이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듯이 인간들로 인해 생명의 총합이 증가하고 있다. 왜? 인간이 생명의 순환 고리를 끊어버렸으니까. 하여 인간은 다른 생명의 생명으로 변하지 못하고, 그냥 인간으로, 한때 소멸하거나 가루가 되어 또는 탄소(다이아몬드)와 같은 형태로 변해서 계속 존재하고 있으니까.

이런 생명의 순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발 플럼우드가 쓴 [악어의 눈]이다. 작은 제목이 눈에 띈다.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

번역자는 '전락'이라는 말을 썼지만 '전락'보다는 '전환'이라든지 또는 '깨달음' 정도의 말로 번역을 했으면 이 책의 취지에 더 잘 맞지 않았을까 한다.

저자인 발 플럼우드는 모든 생명체는 친족이라고, 이들은 생명의 순환 고리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에.

하여 포식자와 먹이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지 포식자에서 먹이로, 먹이에서 포식자로 전환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 역시 죽으면 다른 동물의 고기가 되거나 미생물을 비롯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먹이가 되니,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튼튼한 관과 돌로 다른 생명들의 침입을 막는 것을 발 플럼우드는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생명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고, 인간은 절대로 먹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의 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 글들과 자신이 다른 생명과 함께 살던 모습을 쓴 글,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어렵지 않고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인데, 우리 역시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 점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먹이이고 동시에 먹이 그 이상입니다.'(53쪽)라는 주장과 '우리는 인간의 멋진 삶에서 우리가 먹이로 만드는 이들과의 친족관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먹이를 얻어야 합니다. 이 방식은 우리가 먹이 그 이상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 자신을 다른 존재의 먹이로서 상호적으로 위치시킵니다.'(210쪽) 라고 하면서 '먹이 활동은 자연과 문화가 완전히 혼합된 활동입니다'(222쪽)고 자연과 문화를 가르는 이분법을 부정하고 있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이고, 생명 순환의 고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생명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 생명을 잇는 모습인 것이다.

'생명을 순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우리의 죽음을 다른 생명을 위한 기회로 이해한다면 특권적, 기술적 지배와 초월성으로 영원한 젊음을 움켜쥐려 하는 인간의 탐욕과 배은망덕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개체 수준에서 생명의 찰나성을 확정하지만, 생태적 수준에서는 지속적이고 탄력적인 순환 또는 과정을 보여줍니다.'(249쪽)

악어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경험을 통해서 자연과 문화가 분리되어서는 안 됨을, 또한 인간 역시 다른 생명의 먹이로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발 플럼우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인간 역시 생명의 순환 고리 속에 있음을, 그것을 깨어서는 결국 인간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짐을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희덕 시집 [시와 물질]을 읽고서다. 그 시집에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에 발 플럼우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분만 인용하면 이렇다.

 

발 플럼우드는 세 번이나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했다고 해요

 

우기의 강을 거슬러 가던 그녀는

카누를 타고 혼자서 너무 멀리 가버렸어요

악어의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지요

 

자신의 몸이 육즙 가득한 고기라는 사실을

 

눈꺼풀 속에서 빛나는 금색 눈동자,

악어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악어는 그녀의 몸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자만과 환영까지 덮쳐버렸지요

 

악어에게 세 번이나 물어뜯긴 대가로 플럼우드는

먹이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어요

먹이로서의 인간에 대해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 나희덕,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부분


이 책을 알게 해준 나희덕 시인에게 감사를 표한다. 시인을 통해서 다른 책과 이어지게 되었으니...


그리고 악어는 사냥할 때 탈진시키거나 익사시키기 위해 먹이를 입에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수차례 회전하는 것을 'death roll'이라고 하며, 국내에서는 '죽음의 소용돌이'로 번역한다고 한다. (9쪽, 옮긴이 주)


발 플럼우드는 악어에게 세 번의 소용돌이를 당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바로 인간도 먹이가 될 수 있음을, 생명들은 모두 포식자도 먹이도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서 생태계에 자리한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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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5-09-03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여러 책에서 만났습니다. 방금 읽은 책에서도 이 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희덕 시에 나왔는지는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기 책장에서 제게 눈길을 보내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kinye91 2025-09-04 06:45   좋아요 0 | URL
서로 이어져 있는 책들, 반갑고 또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언제가 되든 읽게 되더군요. 에로이카 님께도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때가 올 거라 생각합니다.
 
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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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한다. 불편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 가능하면 편리한 쪽, 편안한 쪽을 선택한다. 2퍼센트라고 하던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을 때 계단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율이. 그만큼 사람들은 편안함을 선택한다.


지금 우리의 생활을 보라. 얼마나 편안함을 추구하는지. 사람이 직접 하던 일들을 기계에 맡기려 하는 것도, 하다못해 운전조차도 자율주행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일다. 예전에 빨래를 손으로 하던 것, 수도가 없을 때 물을 길으러 먼 길을 가거나 또는 펌프로 물을 뽑아 쓰던 것들을 지금 하라고 하면 다들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편안함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면... 각종 성인병이 이러한 편안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 책의 제목과 같이 '편안함의 습격'이라고 할 수 있다.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 결국은 우리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는 현상. 이 책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이 책에서 잘 버무리고 있는데... 그냥 자신이 경험한 다큐멘터리로 읽어도 좋지만, 그 사이사이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어서 객관성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이 객관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자는 알래스카로 순록을 사냥하러 떠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넘게... 극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선 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어떻게 몸을 만들까?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쪽으로, 지구력을 키우는 쪽으로?


이렇게 몸을 만드는 현대적인 방법이 많은데,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하다. 과거로 돌아가자. 그렇다고 과거의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람들처럼 스스로 자기 몸을 움직이고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려가자는 것이다.


걷고 움직이고 자연을 접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등등. 책의 앞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최근에 쏟아진 증거들은 옛날 옛적 조상들이 겪었던 것과 꼭같은 불편함을 경험하면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육체적으로 튼튼해지고,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영적으로 건강해진다.' (20쪽)


이 문장을 보면서 어떤 증거들? 어떻게 제시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것은 책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알래스카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부터 가서 경험하는 일들 사이사이에 이러한 증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접 전문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알려주는데, 이것이 딱딱하지 않고 생활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요한 적막의 세계에 도달했을 때 우선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배고픔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 자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점,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직접 알래스카에서 순록을 사냥하는데, 멀리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감과 가까이에서 직접 그들을 느끼고, 또한 사냥 이후에 그 결과물을 직접 지고 나르는 장면, 그러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우리가 그동안 잃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편안함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편안함에 빠져 불편함을 죄악시했었는데, 그러한 불편함의 죄악시가 오히려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했으니.


이 책에서는 어려운 운동을 소개하지 않는다. 최신 건강 기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단순한 방법, 누구나 돈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불편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어디로 갈 때 자동차로 이동하기보다는 걸을 수 있는 거리면 걸어서 가라는 것, 걷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을 통과하면 더욱 좋다는 것. 여기에 자신이 먹는 것을 그대로 기록해 보라는 것.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칼로리만큼만 먹는 연습을 하라는 것. 어떤 음식이든 좋다고, 다만 정량을 지키라고. 여기에 편안 의자에 앉거나 소파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방법으로 앉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고 한다.


이런 방법들을 보면 옛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무거운 것을 지고 이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쉬는 시간보다는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물론 자는 시간은 제외하고, 깨어 있는 시간에), 자연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책의 마지막에 가면 위생적인 삶이 과연 우리들의 건강에 좋을까라는 다소 동의하기 힘든 주장도 하지만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균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균들을 항생제로 모두 없애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일이니...


이렇게 알래스카에 가기 전, 가서 순록을 사냥하고 고기를 먹기까지의 과정, 다시 돌아와서 겪은 일까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여기에 불편함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주장하고 있다.


왜 편안함의 습격인가? 편안함은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편안함에 안주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 적당한 불편함이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과 여러 증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각종 편안함으로 무장한 또 더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뒤집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다.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그냥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건강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도 읽으면 좋겠고... 스마트폰이나 더 많은 현대의 편리, 편안함 속에 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보다는, 이것들 없이 모험, 어려움을 겪고 자란 아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테니, 그것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증거를 제시한 이 책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신의 경험에 전문가들의 증거를 책에 잘 녹여냈기 때문에 딱딱한 건강 관련 서적, 또는 과학서적을 읽는 느낌을 주지 않고 그냥 모험을 엿보는 느낌을 주면서도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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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책 -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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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해도 식물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식물이 눈에 안 띄는 경우는 없다. 대도시 한 가운데라도 가로수를 비롯해 복도나 또는 옥상에 식물이 있다. 식물이 없는 곳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식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식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물들을 곁에 두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꽃(식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화훼 시장이 붐빈다. 건강을 위해서든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에서든.


이 책은 이러한 식물 중에서 우리가 자주 만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밀화로 식물을 알려주고, 그 식물의 생태라든가 쓰임 외래종이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그린 세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생동감이 있다. 식물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여기에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그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식물은 다양하다. 다양함 속에서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 식물들의 특징이다. 식물의 분류학을 몰라도 된다. 물론 알면 그 식물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겠지만, 예전에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그러한 분류학을 몰라도 식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이용하기도 했다.


때로는 관상용으로 때로는 약재로 또 식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은 곳이 콘크리트로 덮여 식물들이 살아가기에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토종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 이야기를 하면서 서양 민들레가 토종 민들레를 밀어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서양 민들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기도 하는데, 어디 서양 민들레가 이 땅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던가. 또한 토종 민들레 역시 살아갈 환경이 괜찮다면 쉽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숲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토종 민들레가 살아갈 장소가 사라지니 토종 민들레는 번식할 장소를 잃고 그 틈을 서양 민들레가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결국 식물들의 살고 죽음에도 인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주 많은 식물 이야기가 세밀화와 함께 담겨 있어 여러가지로 유용한 책인데, 이 중에서 귤에 관한 글에서 그냥 우리나라 품종으로 알고 있던,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이 일본에서 육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만큼 일본이 식물 분야에서 앞서 가고 있다는 생각인데, 우리도 많은 연구소들이 생기고, 생물 보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보다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고. 그 예로 제주도에서는 감귤 연구소 등을 통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우리나라 식물들을 보존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꾸준히 식물에 대해 알리고 있으니, 자주 인용되는 말처럼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니... 식물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사랑하게 되고 더 많은 식물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더운 여름을 어느 정도 잊게 하는 식물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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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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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한 한 편의 서정시같다. 서정시? 마음에 와닿기는 하는데, 무어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감동받았어. 하지만 어떻게 설명은 하지 못하겠네. 그냥 좋아.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로벨리 책을 몇 권 읽었다. 최근 과학계에서도 한참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고전물리학도 잘 모르는 처지에, 양자물리학의 첨단에 서 있는 학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고? 그렇지도 않다. 무언가가 잡힐 듯한데, 개념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로벨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흐릿하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엔트로피가 낮으면 단순하니, 명확할 수 있겠다. 바로 과거가 그렇다고 한다.


복잡한 일들을 정리해서 단순화한 것. 그것이 과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반면 미래는?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혼란 상태다. 혼란 상태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감소는 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계속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 그러니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 할 수밖에. 과거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과는 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시간은 없다고 하는 것. 따라서 시간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선을 따라 곧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고 하는 것. 이렇게 혼란한 지점에 있는 것들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시간이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관계라고. 그러니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고, 고정될 수가 없다고. 따라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다만 다양하게 맺어진 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알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우리를 알기 위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이 관계가 사건이고, 이러한 사건들이 시간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 이 책에서 음악을 예로 들고 있기도 한데, 음악에서 각 음표들을 생각한다. 음표들이 실체인가? 그 음표가 홀로 존재할 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다. 각 음표들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표들은 각자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음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발현한다. 즉 음표들의 관계가 선율을 만들어낸다. 같은 음표는 없다.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시간도 그렇지 않은가. 음표들의 관계를 사건이라고 하면, 시간은 사건이고, 인간은 이러한 사건들의 총체인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면 관계라고 하자. 사건이 바로 관계니까.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통해 인간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 속 인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상적으로 그렇게 그냥,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관계가 없다면 나란 존재는 의식도 하지 못할 것이다. 뇌의 작용 역시 관계니까. 그러니 관계가 끊기는 순간이 죽음이고, 이는 내게는 사건의 끝이니 시간의 끝이기도 하겠다. 그 이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까지 나아가면 좀 지나친가? 


아무튼 이 책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다. 마음에 드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무어라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울린다. 좋다.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 P17

눈으로 보기 전에 이해하는 능력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 P19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평지에서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산에서는 덜 지연되는 이유는 산이 지구의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P20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짧은 기간을 경험한다. 시계의 초침이 덜 이동하고 식물이 덜 자라며, 아이들은 꿈도 덜 꾼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시간은 줄어든다. - P49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 P83

양자역학 덕분에 얻은 발견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인데,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granularity과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다.

- P 89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 P106

‘물리적‘인 세상이 사물로, 존재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 P107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 P127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 P161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낮은 엔트로피다. - P 167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 P172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 P173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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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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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남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남의 고통이 중계되기도 한다. 나와는 떨어져 있는 고통. 그러한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일까?


절대로 아니다. 그러한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다. 즉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고통을 구경하고 있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


저자는 목격과 구경을 이렇게 분한다.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미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24-25쪽)고.


이 정의에 따르면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으로 고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고통이 남의 고통만으로 끝날까?


남의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세상이니, 다른 이에게 닥쳤던 고통이 내게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만큼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닌 사람은, 그러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고통이 되고, 이는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즉 고통은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전환될 때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지고, 고통의 원인을 없앨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을 거치는 과정, 애도의 순간들. 개인의 애도가 공동체의 애도가 된다면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262쪽)


아마, 이 책의 제목을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고통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목격하고, 그러한 고통의 맥락을 찾고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서.


따라서 저자는 고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아직 고통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뉴스룸 기자로서 많은 고통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던 저자는, 그러한 고통을 전달할 때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지, 또한 고통을 전시함으로써 고통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를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이러한 기자로서의 자세는 우리가 흔히 '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단지 흥미를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또 자기 만족을 위해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러한 고통을 없앨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즉 고통과 고통을 이어 고통을 없애는 연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 이런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심해진 이유를 기자들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내보내는 기사들에 대해 이 책의 저자만큼 고민을 했는지... 아마도 그러한 고민을 하고 기사를 내보냈다면 '기레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갈등이 있다고 외치기보다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고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일'(206쪽)이라는 말처럼 기자들이 고민하고 기사를 내보낸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하여 그러한 고통을 없애려 하는 시도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하고.


읽으면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떠올랐다. 사람 몸도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으니, 좋지 않은 말을 들은 물이 찌그러지듯이, 좋지 않은 뉴스들을 접하면 우리 마음도 많이 망가진다는 그런 주장을 한 책. 어떤 사람은 그래서 신문을,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있는 이 책인데...


그렇다고 이런 뉴스들을 듣지,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나?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 감는다고, 그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몸이, 내 마음이 물과 같다면, 고통을 외면하면서 나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의 고민도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그러한 고통을 보여주는 이유가.


이 책에서 저자의 답을 얻는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34쪽)


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보고 단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연대하여 그러한 고통이 지속되지 않도록, 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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