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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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글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그래, 그렇지 감탄하면서 읽는다. 자꾸 르귄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소설도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이렇게 수필이나 서평을 쓴 글을 통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페미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르귄은 여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아는 것'이라는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여자들에게 무엇을 배우느냐는 질문에 답해 볼까요? 제가 첫 번째로 내놓을 거대한 일반화는 우리가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운다는 겁니다' (149쪽)


바로 이거다. 우리는 남성인 인간, 여성인 인간, 성소수자인 인간 등으로 자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의 가르침은 이렇지 않다고 한다. 


'남자들의 가르침은 현 상황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의 가르침은 개인적이기에 더 전복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152쪽)


이런 말을 보면 여성들이 수동적이라고 하는 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운다면 세상이 인간을 가르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전복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가르침이다.


국가, 사회, 집단에 개인을 매몰시키지 않는다. 국가, 사회, 집단은 개인이 존재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남자들의 가르침은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고, 개인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경향이 많다. 이런 경향 속에서 여성의 주장은 집 안으로 국한되기 일쑤다.


하지만 르귄은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가르침이 결국은 국가, 사회, 집단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 그것의 바탕은 바로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있다고 한다. 명심할 말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는 문학과 장르 문학을 비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비교가 아니라 대조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비해 장르 문학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주장.


르귄이 쓴 소설은 SF소설이라는 장르 소설로 흔히 분류한다. 그리고 SF소설은 문학에서 청소년들이나 읽는 작품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장에 르귄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상에 문학과 장르 문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 많은 문학의 종류에 장르 문학이 속할 뿐인데... 이쪽 저쪽 편가르기를 하면 그것은 이미 문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람을 남성, 여성, 기타 다른 성으로 나누어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잘못되었듯이, 문학도 이런 문학, 저런 문학 나누어 구별짓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SF소설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를 꾸며낸 소설이 아니다. SF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통로다. 나니아 연대기나 앨리스 이야기를 보면 다른 세계로 인물들이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온다. 그 통로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SF소설도 마찬가지다. SF소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다양한 면을 인식하게 된다. 오히려 SF라는 특성때문에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차분하게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래의 세계나 과거의 세계를 현재로 데려오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SF소설이 한다. 그래서 SF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SF소설에 대해서는 르귄 역시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문학과 장르 문학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는가? 르귄이 그러한 구분을 참지 못하고 이 책의 여러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이 책에는 다양한 서평이 들어있고, 다양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들도 있다. 그렇게 르귄은 또다른 작품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처음 '페스트'와 함께 떠올랐던 작품. 인간은 이제 어느 한 순간에 자신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는데...


이 책 곳곳에서 르귄은 사라마구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 중에 하나. '존엄의 예: 주제 사라마구의 작업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글을 보면 그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던 르귄은 그 작품에 압도되어 읽기를 멈춘다. 작가를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리고 사라마구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그가 쓴 소설들을 죽 읽으면서 사라마구에 대한 믿음이 생긴 르귄은 다시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는다. 그러면서 그 작품이 왜 좋은지를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눈 먼 자들의 도시' 이후에 나온 작품들도 찾아 읽고.


이런 태도다.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작품을 더 읽고 싶어진다. 찾아서 읽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르귄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 읽기 시작한다. 르귄이 '사라지는 할머니들'이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나는 여자들의 소설을 문학 정전에서 한 권씩 한 권씩, 한 명씩 한 명씩 배제하는 흔한 기법이나 수법을 네 가지 알고 있다. 이 수법들은 폄하, 누락, 예외화, 그리고 질송이다. 이 넷이 쌓여 지속적으로 여자들의 글을 주변으로 밀어낸다.' (160쪽)


이 말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면 여성작가란 말도 사라지겠지. 문학을 무슨 무슨 문학으로 구분짓는 것도 사라지겠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르귄의 책이다. 그래, 이렇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 다른 작가, 다른 작품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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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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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달랑 세 권. 그럼에도 이 작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르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읽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마도 "배앗긴 자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책은 르귄의 수필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예술가의 자의식을 이야기한 이런 구절.


예술이 갖는 의미는 과학적 의미와 다르다. (68쪽)


글쓰기는 위험한 입찰이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한다. 나는 기꺼이 내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내 글이 오독되고 오해받고 오역되더라도. (69쪽)


이보다 더 작가 의식을 드러낸 구절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 글쓰기는 자신을 던지는 모험이다. 입찰이라고 하는 표현을 하면 낙찰이나 유찰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도 모험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독자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모험.


그러니 르귄이 자신의 글이 잘못 읽히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작가들이 이렇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선. 독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를 르귄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은 해설이 아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렇다. (69쪽)


이런 작가의 작품은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아서 좋다.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도 좋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 수 있다. 르귄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젊었을 때와 나이 들어서 읽었을 때 다르게 느꼈다는 것으로 예술의 힘을 알 수 있다.


무의미한 보상의 끝없는 순환에 갇힌 인간의 상상력은 굶주림에 갇혀 회생 불가능해진다. (76쪽)


자,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자신이 또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다. 무의미한 보상이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보상을 바라고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결국 상상력의 고갈을 부른다. 


상상력의 고갈은 진부한 이야기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게 되면서 자신을 변명하게 된다. 르귄이 이렇게 지적한 것처럼.


용이함은 경솔함과 그럴싸함만 낳는다. (76쪽)


용이함, 편리함, 쉬움. 이런 것만 추구하면 어려움을 배제하게 된다. 그런데 쉬운 길로만 가면 결국에는 모두가 파멸하는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성장, 성장, 발전, 발전 하고 외쳐왔던 인류가 지금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지구는 어려움에 빠져 있으며, 인류는 곤경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데.. 르귄은 그것을 양을 추구하던 세계에서 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마침내 시작한 '인류의 지배와 무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인류의 적응과 장기적 생존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양에서 음으로의 전환이다. 그 사고에는 덧없음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도 포함되며 불확실성과 임시변통에 대한 인내도 포함된다. 물과 어둠, 그리고 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39쪽)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르귄이 자신의 예술관을 관철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남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본다. 남들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 감고 있다. 보이는데도 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본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냥 눈 감아 버린다. 그래서 세상은 더더 나쁜 쪽으로 간다. 


우리의 왕이 벌거벗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 한 아이가 왕이 벌거벗었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의 버릇없는 내적 꼬마가 지껄이기를 참고 기다릴 셈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벌거벗은 정치인들을 아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199쪽)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뜨끔했는지... 정말, 벌거벗은 정치인 투성이인데, 우리는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옷을 입은 양 말하고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눈 감고 지내는, 아니 눈 뜨고도 못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그들에게 분노만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이 있다.


분노가 모욕과 무례의 올바른 대처법이긴 하지만 현재의 도덕적 풍토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을 꾸준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도의적인 행동을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것 같다. (214쪽)


바로 이 말.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이 왜 벌거벗은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게 꾸준하고 단호하게 도의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그냥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된 권리는 분노를 통해 강력히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로는 권리를 잘 이행할 수 없다. 권리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215쪽)


지금까지 권리를 찾기 위해 분노를 모아 사회 변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사회 정의의 실현은 지지부진하니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르귄의 말을 가슴에 새기기로 한다. 나도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으면 한다. 


나는 진실을 중요시하고 선을 나누는 행동이 내 나라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나라가 남의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186쪽)


이렇게 사회, 정치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고양이 파드와 지내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르귄의 수필집... 소설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글들이 많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너무 필요한 문학상'이라는 제목을 단 글을 읽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상을 두고 벌어졌던 일과 관련지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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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의 섬진 산책
공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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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공지영.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 소설로도 그렇고, 사회 참여글로도 그렇고, 다른 이유로도 그런 사람. 젊은 시절에 공지영 작품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공지영이 쓴 '수도원 기행'을 읽는 적도 있고. 최근에는 '의자놀이'를 마지막으로 공지영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글을 참 잘 쓴다고 느꼈는데, 그런 공지영이 섬진강변에 자리를 잡고 산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섬진강도 좋고, 지리산도 좋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


참 한적하고 여유로운 유유자적하는,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거부하게 만든다. 처음에 이런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죽어도 될 이유를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굴곡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 싶다.이 문장 하나로 공지영이라는 사람이 다사다난했던 삶을 살았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다. 그러다가 '사람이다'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표현에 눈길이 머문다.


과거형이다. 과거형이라는 말은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아니, 죽어야 할 이유는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책의 제목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래서'라는 말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어울리게 공지영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통해서 드러내 보인다. 


공지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살아간다. 세상을. 주변이 바뀌지 않아도, 주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자신의 현재에 집중한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간다가 된다.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들은 이제 삶의 무늬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겠지만 그 과정들을 거쳐 지금의 공지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후배들의 고민에 덧붙여 이야기한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들을 겪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들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지금-여기-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우리는 자꾸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고, 바꾸지 못할 과거 때문에 괴로워 하며 산다. 또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짧은 생인데...


그러니 '지금-여기-나 자신'을 늘 생각해야 한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 어려움이 있다고 그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러면 '그 또한 지나가게 되라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바로 지금-여기에서.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으니. 그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바로 '지금-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세 명의 고민하는 후배들이 나온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고민들이다. 그런 후배들의 고민에 대해 공지영은 자신이 살아온 길들을 보여주면서 그 고민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들 삶을 성찰하도록 한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바로 일상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마음을 열게 하고 있다. 그래서 '공지영의 섬진 산책'이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섬진 산책과 더불어 '마음 산책'을 하게 된다.


세상이 그래서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점점 행복해지기로 했다"는 책 표지의 말마따나 우리 행복해야 한다. 그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가끔 잊는 그것,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자ㅡ, 내게 죽을 이유가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살아야 할 이유가 30가지도 더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 행복은 남이 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지금-여기'에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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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 재미있는 주사
박일환 지음 / 달아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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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요 국어사전은 두 개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조하기 쉽고,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전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언어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전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늘 우리나라 사전에 대해서 아쉬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전을 혼내는, 혼낸다기보다는 사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책들도 썼는데, 사전 편찬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지적들이 많다. 이 책도 사전에서 찾은 술에 관한 내용들이지만, 우리나라 사전이 고쳐야 할 방향 역시 제시하고 있다.


사전, 말모이라고 하는, 그 나라 어휘들의 종합 아니던가.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모아놓은, 단지 어휘들이 아니라, 그 어휘들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등등 생활 전반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바로 사전이다. 그러니 사전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력을 기울여 만들어야 할 그 나라의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사전에 과연 얼마만한 공력을 기울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하는 책이 사전이고, 또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도 보아야 할 책이 사전인데, 보완할 점이 한둘이 아니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전에 애정을 지니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좀더 나은 사전이 되리라는 희망을 지닌다.


이 책은 술에 관한 말들을 사전에서 찾아 우리에게 정리해주고 있다. 단지 술에 관한 낱말 모음이 아니다. 술에 관련된 사람, 일화, 유래 등등 단지 사전에만 있는 사실을 간추려 전달해주고 있지 않다.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을 중심으로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잘못된 점음 바로잡고, 또 그 말과 관련된 다른 사실들을 찾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술에 관한 어휘뿐만이 아니라 술의 역사, 술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 여기에 술에 관한 정책도 알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주령'같은 경우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금주령'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말이 당연히 사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다만 '우리말샘'에는 있다. 주금령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렇게 사전이 현실 언어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자의 지적이 타당하다. 이런 일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이 책은 이렇게 '금주령'이란 어휘로 끝나지 않는다. 사전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시행이 되었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니 술에 관한 어휘로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술되어 있는데, 술꾼들을 표현하는 말을 중심으로 하는 1부와 술, 특히 소주의 세계를 알려주는 2부, 옛날 술들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3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4부, 그리고 술을 둘러싼 세계라고 해서 술의 예절, 문화, 정책 등을 5부에서 살펴보고 있다.


세계에서 술 소비량으로 따지면 순위권에 드는 우리나라. 다양한 술과 다양한 술 이름, 그리고 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까지 넘쳐나는 우리 사회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사전에 실린 술과 관련된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서 '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술이 우리에게 술술 넘어가듯이, 이 책 역시 술술 읽히는, 읽는 맛도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술을 경계하라 끝내고 있는데, 그 말을 주계(戒) 또는 주고(誥)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고란 말도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말은 꼭 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나온 세종의 주고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 역시 술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금주령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경계하는 글을 써서 널리 알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길어서 링크를 걸어둔다. 읽어보면 술에 관한 책에서 술을 경계하라!로 끝맺음을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적당해야 가장 좋은 것이 술이니...


조선왕조실록 (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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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4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을 들여다보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책이네요!
우리 국어사전 진짜 문제 많죠.. A단어의 풀이가 B라서, B를 찾아보면 A라고 나와 있는...ㅠㅠ

kinye91 2021-02-04 14: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국어사전에서 낱말 찾다가 계속 낱말 여행한 적도 있어요. 붕붕툐툐님 말처럼 찾다찾다 보니 처음 낱말인 경우도 있고요. 국어사전 중요하니 이런 책처럼 하는 비판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김현수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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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존재. 움직임 없이 보이나 늘 움직이고 있는 존재. 변화를 못 느꼈는데 어느 새 확 변해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 상처를 입어도 상처를 메우고, 가지를 잘려도 새로운 가지를 내는 존재. 우리 몸에 해로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 주는 존재. 물을 흡수하고, 토양을 묶어주고 또 땡볕일 때 그늘을 제공해주는 존재. 잘려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우리가 앉아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잘려 나간 가지들이 땔감이 되어 우리에게 온기를 주는 존재. 우리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예술 대상이 되어 주는 존재.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점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그림책이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삶에서 나무를 제외하면 과연 삶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니, 나무는 우리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나무를 우리는 우리 이익을 위해 가차없이 가지를 잘라버리거나, 밑둥을 베어버리거나 하고 있으니.


이 책에는 많은 나무가 나온다. 나무의 생태를 이야기해준다기보다는 그 나무를 통해서 우리가 삶에서 지녔으면 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가령 '솔송나무'편에서는 '햇살 누리기'를 배우라고 한다. 우리가 해가 없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듯이, 자외선이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햇볕은, 햇살은 우리들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햇살, 햇볕은 우리들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러니 솔송나무처럼 햇살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자고 한다. 이렇게 아주 짤막하게 나무와 삶의 자세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한 나무만 더 보자. 그냥 아무 쪽이나 펼쳐도 된다. 그래도 '사시나무' 편을 들고 싶다. '우리는 서로의 힘'이라는 제목이다. (이 책, 14쪽)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이 시대에, 나무를 통해서 위험에는 서로 경고도 해주고, 또 좋은 것, 필요한 것은 함께 공유하는, 힘들수록 서로 손을 굳게 잡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함을 사시나무의 뿌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삶이라면 소외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무는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다른 존재들까지 포용해서 숲을 이룬다. 그 숲을 통해서 지구가 더욱 아름다워지게 하고 있다.


  우리들 삶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말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삶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많은 나무들을 통해서 삶에 대한 경구를 얻는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힘든 때 여유를 지닐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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