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 - 마윈의 과학 스승 리먀오 교수의 재미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리먀오 지음, 고보혜 옮김 / 더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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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과학은 어렵다. 과학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특히 물리학은 어렵다.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고도의 수학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물리학은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위안을 받았다. 물리학자들이 다 수학을 잘한 것은 아니라는 것.

 

특히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한 하이젠베르크는 수학을 다른 물리학자만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수학 계산을 하지 않고 자신의 직감으로 결과를 도출해내기도 했다고 하니, 수학을 못한다고 꼭 과학을 못한다는 법은 없나 보다.

 

유명한 물리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을 잘했지만 그는 수학을 잘하지 못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박사 시절 급류에 대해 연구했다. 센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현상 말이다. 급류를 연구하려면 매우 복잡한 방정식 하나를 풀어야 했는데, 수학을 잘 못했던 하이젠베르크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어 하마터면 졸업도 못할 뻔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물리적 직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었다. 중간 과정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과정을 뛰어넘어 최종 결과를 잘 찾아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방정식의 근삿값을 추측해내 박사학위를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졸업을 위해 추측해낸 답이었지만 수학자들이 증명해보니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70쪽)

 

물론 그가 수학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다른 뛰어난(?) 물리학자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의 이런 이야기는 수학과 과학을 일대일로 연결시키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려운 수식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과학자들의 실험실이나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전물리학(뉴턴을 중심으로 하는)에서 양자역학(아인슈타인을 비롯한 현대 과학자들)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양자역학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 가면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과학에, 그것도 어렵다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흥미를 지녀야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학문하는 세계에 적용하면, 누구나 학문의 세계에 들어설 수도 있고,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다. 확률은 반반이다. 열려 있기도 하고 닫혀 있기도 한다. 그러니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그것을 몇가지만으로 국한해서 제한하면 양자역학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리학에 무지한 사람들도 읽으면 야, 물리학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삶에서 과학이 나왔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학에 관한 몇몇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먼저 이렇게 과학이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또 21세기에 양자역학은 양자컴퓨터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도 있음을, 지금보다 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저자인 리먀오는 잘 보여주고 있다.

 

양자역학이 더 발전하면 소설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 뇌를 전이시켜 영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저자 리먀오는 그 점에 대해서는 열어놓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발전이 이루어질지 그것은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우리들 삶 역시 불확정성의 세계에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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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 라임 틴틴 스쿨 13
손주현 지음 / 라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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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동물원이 필요할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인물 '하겐베크'

 

그는 지금 우리가 보는 동물원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동물의 생태를 보장하는 동물원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동물원이었지만, 기존 동물원의 모습을 바꾸는데 일조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이 하겐베크라는 독일인 참 여러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동물을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즉 동물에 대한 사랑과 돈을 적절히 조화시키려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돈을 위해서 동물을 이용만 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하겐베크가 했다는 말... 아마도 이 시대에 이런 말을 했다가는 동물보호협회를 통해 고발당하고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동물 학대죄로. 그런데 근대에는 이런 일도 비일비재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동물원에서 보는 세계사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귀여운 새끼 바다코끼리 다섯 마리를 잡기 위해 어미 예순여덟 마리를 죽였습니다." (185쪽)

 

인간이 자신들의 호기심이나 흥미 또는 이익을 위해서 새끼를 필요로 하는데, 이 새끼를 잡기 위해서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들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코끼리같은 동물들은 집단 생활을 하고, 또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인간과 같은 정서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새끼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어미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면 동물들에게 감정이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논쟁은 이제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코끼리 떼에서는 다리가 불구인 동료를 위해 모두가 걷는 속도를 맞춰 주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 코끼리는 동료를 만나면 행복에 겨워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괴성을 지른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215쪽)

 

여기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물이 인간에게 다가온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살핀 것이 이 책이다. 동물원을 통해서 세계사를 배운다기 보다는 동물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왔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왠지 세계사 하면 인간 중심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처음에 동물을 경외했다. 두려운 눈으로 동물을 보기도 했고, 그 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것이 고대에 동물이 인간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동물을 부리기 시작했다. 가축은 말할 것도 없고, 힘센 동물들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동물들을 모아 남들에게 과시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과시의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력이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군주들은 지금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감상하고 자랑했다고 한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특정한 집단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로 동물이 다가오게 되는데, 이때 동물사냥꾼이 등장한다. 동물을 잡아들여 막대한 부를 챙기려는 사람들. 이들에게 동물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근대적 의미의 동물원도 이때 나타난다.

 

현대에 들어서는 외교의 수단으로 동물이, 특히 판다 외교라는 말을 듣는 중국의 외교, 중세 시대에도 동물들을 선물로 주는 외교가 있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차원에서 동물을 이용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 중심으로 동물을 대하다 보니, 인간 중에서도 정복당한 인간들이 전시되는 일도 있게 되었으니... 어느 한 종이 다른 종들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것이 인간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이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여전히 인종 간에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의 취향대로 이용하는 장소가 아니다. 동물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멸종위기 동물들을 어떻게 하면  이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할까를 연구하는 장소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동물권리와 동물복지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동물에게도 일정한 권리가 있음은 인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동물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동물이 인간에게 다가온 역사를 살피고 있다. 이는 단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역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를 살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동물을 대한 역사는 결국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서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생활해 왔느냐를 살피는 것이니까. 수많은 생명체들이 왔다가 사라져갔는데, 그것이 인간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래서 요즘 동물원은 사라질 종들을 유지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이 냉동 동물원이라고 한다는데...

 

이런 냉동 동물원보다는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장소를 더이상 파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도 역시 냉동 동물원(?)에 자신의 유전자를 보관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동물원에서 만나는 세계사는 동물이 인간에게 다가온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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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물원이 문제일까? - 10대에게 들려주는 동물원 이야기 왜 문제일까? (청소년들을 위한 책)
전채은 지음 / 반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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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물원에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낯선 동물들을 보면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공원에 가서 많은 동물들을 보면서, 그것도 외국에나 나가야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즐거워 하기만 했지, 그 안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다못해 돌고래쇼도 즐겁게 그것도 줄서서 표를 끊고 들어가 보곤 했으니...

 

그러다 돌고래쇼가 동물학대라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돌고래가 사람들을 위해 쇼를 자발적으로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자연에 있을 때 그들이 이런 쇼를 하지도 않았을테고. 마찬가지로 물개도 그렇고, 사자도, 호랑이도, 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쇼를 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중심으로 판단하고 실행했던 것이다. 여기에 이윤이 합쳐져서 더더욱 성행했던 것이고...

 

동물쇼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니 이번에는 동물원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과연 행복할까? 동물원이 동물들에게 좋은 장소일까? 당연히 예전의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좋은 장소가 아니라 좋지 않은, 그것도 너무도 좋지 않은 장소였다. 좁은 우리에 갇혀, 흙이나 풀이 있는 땅이 아닌 콘크리트로 덮인 우리에 갇혀 있어야 했으니.. 거기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라 전혀 낯선 곳에서 자기 종족도 아니고 다른 종족과 함께 지내기도 했으니...

 

이런 문제점과 더불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렇지 했다. 바로 체험동물원이라는 페팅 주(petting zoo)다. 동물들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는 동물원. 코끼리나 사자같은 동물은 없어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뱀은 좀 그렇지만) 동물들로 운영하는 그런 동물원.

 

아이들이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교육적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많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이 체험동물원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동물로 이야기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하긴 그 동물의 생태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만지고 먹이주고 떠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하겠다. 또한 생각도 못한 질병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동물로, 동물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러니 체험동물원이 우리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142-144쪽에 보면 동물이 인간에게 전해준 병들이라고 해서 몇 가지가 나온다. 동물원을 생각할 때 이 점도 고려해야 한다.

 

동물원이 이렇게 동물들에게 좋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꾸준히 동물원이 만들어진 것은 인간의 호기심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동물원을 운영하는 데서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을 어떻게 대했는가로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동물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동물원이 지금 시대에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생물들이 각자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태영역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과거에는 어느 정도 명확하게 구분되고 서로의 영역이 지켜졌다면, 지금은 인간에 의해 모든 영역이 무너졌고, 인간이 침투하여 다른 생물들이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어졌으니 종의 유지를 위해서도 동물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인간이 병주고 약주고를 다하는 셈인데... 동물원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생물의 영역을 존중하고, 더이상 그 영역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성장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라는 말을 잘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한번 생긴 것들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따라서 엔트로피 법칙을 지구에 적용하면 인간의 영역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역이 늘어나기만 하면 생물들은 계속 자신들의 영역이 줄고, 그 줄어듦만큼 인간과 다른 생물의 교류가 일어나고, 기존에 없던 질병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지금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감염병들이 이렇게 해서 인간에게 다가온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른 생물의 영역이 계속 줄어드는 것만큼 개체수 또한 줄어들고 있어 멸종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많다. 이런 때 동물원은 인간이 저지른 다른 종들의 멸종을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하고, 또 다른 생물들의 생태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본이, 돈이, 이익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동물원은 완전히 폐지될 수 없다. 그렇다고 더 늘어나게 할 수도 없다. 동물원의 폐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물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이 기준에 미달하면 동물원으로 허가해주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민간자본에 동물원을 맡겨서는 안 된다. 동물원은 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명들이 공존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생각으로 이윤없이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이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각 생물들의 생태영역을 존중하고, 서로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는 길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우선 할 수 있는 일로 동물원이 그동안 해왔던 동물복지에 반하는 것들을 없애고, 동물복지를 우선으로 하면서 동물원이 생물 종들을 유지하고, 그런 방향으로 인간을 교육하는 장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낯선 동물들을 보면서 즐거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들이 왜 동물원에 들어와야 했는지, 또 그 동물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지, 우리가 생태계의 공존과 조화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지구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인간으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원에 관해서 어떤 관점을 지니고 싶다면 우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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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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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튜브와 책을 함께 놓고,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고 묻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유튜브에 많이 접속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계층, 취미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또한 전문분야에서도 유튜브는 책이 지니고 있던 자리를 넘보고, 또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런 제목이 나올 수밖에.

 

유튜브와 책은 정보와 오락 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유튜브는 영상매체에 들어가고 책은 인쇄매체에 들어가니 둘이 같은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방식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책이 좀더 고답적이라면 유튜브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책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이기도 하다. 신선하기도 하고, 짧고 재미있고 또 무엇보다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유튜브는 교육분야에도 진출해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교육은 책을 통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있다. 그러니 유튜브와 책이라는 두 매체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어떤 매체가 대세를 이룰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유튜브든 책이든 어떤 특정 매체의 장점을 들고, 그 매체들이 앞으로의 세계를 이끌어갈 거라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책 제목 밑에 색깔을 달리해서 붙인 말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정리해주고 있다.

 

삶의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리터러시란 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으니, 예전에는 문식력이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문해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도 좀 어색하다 싶을 땐 그냥 리터러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리터러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의 뜻에 맞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리터러시란 단지 말의 뜻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들 삶이 리터러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앎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읽기고, 단지 리터러시에는 글자로 표현된 인쇄매체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매체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말이 리터러시다. 이것을 우리말로 멋지게 바꾼다면 더 좋겠지만, 그 지난하고 오랜 세월을 용어 정립에 쓰지 않고 있으니 그것도 문제다. 적어도 우리가 아, 그런 의미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용어로 바꾸었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문해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으니 뭐,,,

 

리터러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된 개체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사회를 벗어나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혼자 있어도 이미 내 주위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있기에 리터러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리터러시는 나와 남을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엄기호와 김성우는 리터러시를 바벨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벨탑은 자신들의 언어에 갇혀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고, 다리는 다른 존재들이 소통하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는 나만의 벽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 서로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리터러시가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정현종 시인의 이란 시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아주 짧은 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러나 그 섬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찾아지지 않는다.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빈 공간이 보인다. 그 빈 공간이 단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다리의 역할은. 그런 곳으로 서로를 가게 만드는 것. 그래서 리터러시는 다룸이라고 한다. 내가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루는 것. 즉 매체에 따른 표현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다룸이다. 그렇다면 다룸이 있기 위해서는 다름이 있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해야 다룸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너와 다른 존재라는 것, 너는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 그러나 너와 나는 모두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윤리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과 다르다. 너에게 전적으로 내 마음을 넘기는 것이 공감이라면, 이 공감에서는 다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하나됨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해는 다름에서 시작한다. 다름인데 그것 나름대로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윤리의 핵심이다. 나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윤리는 필요 없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그냥 하나일 뿐이니까.

 

윤리는 하나가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나가 아닌데 함께 해야 할 때 서로가 소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이것이 바로 윤리다. 이런 윤리 속에서 표현과 이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표현과 이해를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한다.

 

바로 삶을 위한 리터러시여야 한다고 한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타인의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191)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리터러시의 정의에서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유튜브든 책이든 또는 말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이해에서 더 나아가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즉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제목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멀티리터러시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더 어울린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을 발견하고 그 섬에서 소통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다리를 만드는 매체는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다리가 크고 넓고 튼튼한 다리여도 되지만 왠지 내게 리터러시란 징검다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만드는 많은 물량과 노력이 드는 다리가 아니라 내가 혼자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놓는 징검다리.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징검다리를 놓고 온다. 그래서 서로가 노력한 결과로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다. 소통하는 장소. 여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리터러시고, 징검다리로 비유하자면 징검돌에 다양한 것들이 쓰일 수 있듯이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 특정한 매체가 우위에 서는 시대를 상상하지는 말자. 그냥 우리가 어떤 매체든 다른 존재와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징검돌로 매체들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책이 끝나가는 부분에 김성우가 리터러시에 필요한 요소를 일곱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조망, 일상, 반복, 관계 윤리, 교차, 호흡 (262-270) 이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해당 쪽을 보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특정한 매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배운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꼭 들어야 할 요소들이 바로 이 일곱 가지임을 생각하게 한다.

 

김성우의 정리에 이어 엄기호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터러시는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리를 놓으면서 그것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277)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리터러시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칼로 무 썰 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표현들은 결코 리터러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만이다. 리터러시의 부재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는 리터러시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할지도 모른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존재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자세를 지니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출발한다. 내 말이 옳다가 아니라 네 말을 들어 보자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런 다름을 다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그런 리터러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 책은 읽기(리터러시)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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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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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뇌졸중에 걸린다면? 생각할 수가 없다. 뇌졸중에 걸리면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건 단지 그 사람이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책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뇌졸중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더라도 생각을 하고 느낌을 계속 지니고 있다는 것을.

 

뇌학자인 질 테일러가 어느날 뇌졸중에 걸렸다.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과정을 느끼면서 뇌졸중이 왔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연락을 해야 하는데 뇌기능이 상실되어 몸을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뇌혈관이 터졌는데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 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기억과 언어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행동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연락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전화를 걸었어도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행히 연락이 되고 지인이 찾아와 병원에 가게 된다.

 

뇌수술을 해야 한단다. 두개골을 절개하는 일. 잘못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놓아두었을 때 또다시 뇌졸중이 올 수도 있고 그때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수술하기로 한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좌뇌를 쓸 수 없을 때 우뇌가 작동함을, 그리고 우뇌를 통해 평안함을 경험하게 된다. 언어로 세상을 인지하는 것에서 그림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자폐증을 앓던 템플 그랜딘이 그림으로 생각한다고 하던데, 그것이 우뇌를 이용한 생각법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평온을 유지하는 상태. 이를 열반에 든 상태나 몰아의 경지에 이르른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좌뇌가 활발히 활동할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좌뇌는 언어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시 과거 자신의 모습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평온한 상태를 굳이 다른 상태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질 테일러는 자신의 좌뇌를 살리기로 한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과거의 자신을 살리게 된다. 이런 과정이 결코 짧지 않다. 8년이란 시간을 통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얻게 된 성과인 것이다.

 

이렇게 뇌과학자의 뇌졸중 경험기를 통해서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우선 회복하기 위해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 뇌가 손상되었을 때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면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또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도 표현만 못할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따라서 이들을 대할 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녀서는 안 되고 잠시 아픈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것.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이들을 만나지 말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만나야 한다는 것.

 

여기에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성되어 있어 얼핏 두 명의 인간이 한 뇌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이 두 뇌가 뇌량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데 이런 뇌의 기능을 알면 많이 도움이 된다는 것.

 

뇌졸중. 어느 순간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지만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는 것. 결코 불가역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뇌과학자가 자신이 경험한 뇌졸중에 대해 쓴 책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가 있다.

 

우리 인간이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질 테일러라는 뇌과학자의 경험기를 통해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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