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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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인류가 우주 개발을 한다면 책의 제목처럼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각 나라에서 우주 개발에 나서는 이유는 지구인이 함께 잘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주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으니, 인공지능이 군사와 결합이 되어 얼마나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지금 현실에서 겪고 있는데, 이 인공지능과 비슷하게 우주에 있는 위성들도 군사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니,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쏘아 올린 위성들이 시한이 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또는 파괴된 위성들을 회수하지 못해 지구 궤도에서 계속 떠돌고 다른 위성들과 부딪칠 가능성도 있는 상태라고 하니, 이것 역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한데... 이 우주 쓰레기가 위성과 충돌하면 또 다른 우주 쓰레기가 발생하고, 이는 연속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이것뿐인가? 달에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데, 지구인이라는 관점에서 모두에게 이로운 쪽으로 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달의 자원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각 나라들의 경쟁을 부추기게 되고 이것이 우주에서의 충돌뿐이 아니라 지구에서의 충돌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세상에 우주 개발이 무슨 선착순인 줄 아는지... 우주 개발이 선착순이라면 이것은 이미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우주 개발을 선점하고 있기에 이들은 한없이 유리한 위치에서 온갖 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선착순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과연 지금 그러하고 있는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데 나는 우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그 경이로움에 감탄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주 개발이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키겠다고 하는 말이 단순한 호언장담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달과 화성만 생각해 보자. 이를 근대에 접어들어 지구에서 일어났던 대항해시대에 비견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대항해시대는 특정 나라들이 다른 나라, 대륙을 착취해서 자신들의 부와 군사력을, 말 그대로 부국강병을 추구한 것이라면 지금 시대 우주 대항해시대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달과 화성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양계 너머로까지 인류가 나아가는 우주 대항해시대가 된다면 그것이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해서, 또 단지 지구에서 살 수 없으니까 다른 행성을 개척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구와 우주에 있는 다른 행성들이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고, 우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 궤도에 있는, 즉 가까운 우주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위성이 지구 저궤도에 떠 있다고 하는데, 이들 중에 상업적 목적으로 떠 있는 위성들이 더 많다고 하니, 그것도 미국의 위성들이지만, 그러한 상업적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위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않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위성들도 많다고 하니...


또한 우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우주를 군사적인 목적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는데... 각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국제적인 조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또한 만들어져도 잘 지키지 않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근대에 일어났던 대항해시대를 우주 시대에도 반복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저자는 그런 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알아야 한다. 우주 개발이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다. 즉 문제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우주 개발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는데 어려운 말보다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2부에서 이를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2부에 나오는 장들의 제목만 봐도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주 불평등 : 개발은 과연 모두에게 좋은가? 

  우주의 평화적 이용 : 다자간 공평한 공존은 가능한가? 

  우주상황인식 : 쏘아 올린 우주물체는 안전한가? 

  우주영역인식 : 극단적 패권 다툼을 통제할 수 있는가'


이 제목들이 바로 문제다. 문제는 이미 제기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답을 찾는 일이다. 어쩌면 답도 이미 나와 있는지 모른다. 아니, 나와 있다. 다만 그 답을 내어놓지 않으려 한다. 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답대로 해도 저들이 답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손해라는 그런 신뢰의 부족.


하여 이 신뢰 부족을 줄이면서 답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규약을 만들어 강제력을 지닐 필요가 있다. 권고로는 안 된다. 강제력이 있어야 한다. 지구 전체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 우주 개발에 대한 협정, 규약, 제도가 필요하다. 강제력이 있는.


하여 저자는 '국제 우주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시급한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저자의 말, 가슴을 울린다. 명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소수의 기업과 국가가 지배하는 우주인가? 인류 전체가 평등하게 꿈을 펼치는 우주인가? 우주 정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정의이며, 미래세대를 위한 선택이다. 속도보다 방향을, 소유보다 상호운용을, 독점보다 신뢰를, 그리고 안주하기보다 도전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302쪽)


참고로 지금 우주로 쏘아 올린 위성의 분포를 보자. 


'지금까지 지구 궤도로 발사된 2만 2,000여 개의 인공위성은 미국이 61퍼센트로 단연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러시아가 17퍼센트, 유럽이 7퍼센트, 중국이 6퍼센트, 일본이 1.5퍼센트, 한국이 0.2퍼센트를 차지한다.'(144쪽) 


과연 모두를 위한 우주인지 이 수치만 보아도 의구심이 들 것이다. 이 책의 제목대로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가 되지 않게 하려면 우주 속의 지구라는 관점... 우리는 모두 지구에 살고 있는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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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유기쁨 지음 / 눌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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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을 미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영혼이 있다고? 무슨 헛소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애니미즘은 원시인들이나 지녔던 미신에,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애니미즘에 대해서 그러한 생각을 바꾸게 한다. '인간이 다른 존재의 생명성을 인정하는 애니미즘은 우리가 잘 모르는 생명세계에 대한 존중의 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177쪽)고 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이라는 말의 뜻도 우리가 쓰는 말과는 다르게 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여러 존재들과 관계 맺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하나의 "인간-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계 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80쪽)라고 '사람'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인간만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기계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관계 속에서... 그러므로 애니미즘은 관계 맺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보면 된다.


연결되어 있음, 억지로 하나의 관계를 끊었을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는 것. 그러므로 어떤 존재든지 소중하게 여기고, 그러한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애니미즘이다.


이렇게 애니미즘을 정의하면 애니미즘이 원시적이라거나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애니미즘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은 요소가 무엇일까?


그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선물은 호의가 있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호의를 지닌 선물은 주고받기를 하고, 이 주고받기를 통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게 된다. 그런 관계 맺음은 한 쪽의 일방적인 이익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이 선물은 주고받음이 지속되는 가운데 점점 더 가치를 크게 하는데, 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선물은 나선형의 전진을 하기 때문에 잠시 가치가 하락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점점 반복될수록 가치가 커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호혜적 선물 교환인데, 이와 반대되는 것이 바로 상품이다. 상품은 양쪽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마치 분업처럼, 어느 한쪽이 더 큰 이익을 얻게 된다. (분업이 상호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분업을 통해 서로가 이익을 얻기 보다는 어느 한쪽이 더 큰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왜냐하면 상품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품, 또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존재들을 '사람'으로 보게 된다면 그 존재를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인 선물을 주고 받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의 애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이 책은 '비인간-동물-사람'부터 시작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권리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서 많은 의학실험이나 과학실험에 동물 실험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또한 인간 역시 동물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비인간-동물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는 사람들도 있으니, 비인간-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점차 호혜적인 선물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식물-사람'인데,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식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비인간-동물을 사람으로 인정했을 때 우리의 먹을거리가 문제가 된다. 채식주의자들이 있으니 비인간-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 사람에 따라 그럴 수 있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사람'을 인정하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야? 그냥 죽으란 것인가?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비인간-동물도 먹지 말라, 식물도 먹지 말라고 하면 인간이 먹을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여기에 저자는 생명은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생명 유지에는 다른 생명이 필요하다. 그러니 다른 생명으로 생명을 유지할 때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면 된다고 한다.


상호존중이다.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는 있지만, 그것들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생명을 취할 때도 관계 맺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다른 존재가 자신의 생명을 선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생명을 선물로 받았으면 그에 걸맞게 우리 역시 선물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생명이 아닐지라도. 이 점을 생각하면 먹을거리에 대한 논쟁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은 물질들인데, 이 물질들에게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긴 탑이나 돌을 쌓아놓고도 또는 바위에게도 절을 하기도 하니... 해, 달, 별들에게 소망을 빌기도 하니, 이들에게도 일종의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물질들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집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단지 그들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렇다. 바로 관계다.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 이런 관계란 말 자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니, 생명의 실체를 규명하기 보다는, 관계 속에서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단 말이다.


기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공지능 개발이 한참이고,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이 나타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뇌를 장착한 기계가 나온다면 과연 그 기계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도 어느 정도 대답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홀로 된 노인을 돌보는 기계들이 있지 않은가? 그 기계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이렇게 이 책은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통해서 '사람됨'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도 호혜적인, 선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인간들끼리야 말해 무엇하랴!


인간들끼리 호혜적인 선물을 주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애니미즘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시적이다, 전근대적이다가 아니라 이미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그러한 애니미즘을 보여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현대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임을.


저자의 마지막 말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관계들이 살아 있는 한,

                               세계는 아직 열려 있다."   (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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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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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하면 믿음이 가니, 그가 장 모르와 함께 한 작업이 실린 책이라니,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끝의 기록이라니... 어디가 세상 끝인가? 단지 지리적인 장소를 이야기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어디? 물론 사진이니 지리적인 장소가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즉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또는 못하는) 곳에 가서 그곳의 삶을 담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장 모르의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가 몇 십 년 동안 찾아다니며 찍은 세상의 끝의 모습. 그 모습을 그는 '과거로의 여행'(32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과거로의 여행은 곧 현재를 보기 위한 여행이다. 


'그건 어떤 세계의 끝, 지금까지 자신이 속해 왔고 현재도 속해 있는 세계, 일시적으로 등을 돌려야 하는 세계의 끝을 의미한다.'(32쪽)


그러니 그는 그곳에서 등을 돌려 나왔지만 사진을 통해서 그곳을 현재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사진을 통해 본 역사라고 해도 좋다.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끝이 바로 시작이 되는, 지금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책은 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의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세계 각지를 찾아가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고, 그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때로는 필름을 모두 압수당해 자신이 찍은 사진을 거의 다 잃은 적도 있고,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경험들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이 [세상 끝의 기록]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책에 북한에 가서 사진을 찍는 과정을 서술한 내용이 있는데, 사진은 몇 장 실리지 않았다. 북한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출국할 때 몇몇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압수당했다고. 장 모르는 주최측이 보여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이는 것, 또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그때 필름을 압수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북한 사람들이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또는 북한의 정경을 더 잘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필름을 압수당한 적이 있으니, 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보여주려 하고, 장 모르와 같이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런 작가들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존 버거의 글은 처음에 거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실려 있다는 것인데, 뒤에 존 버거의 글이 하나 더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좋다.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이 지구 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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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란 무엇인가 - 늙음을 혐오하는 사회에 맞서다 박홍규의 사상사 2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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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하면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 중에 아마도 부정적인 말이 더 많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한때 유행했던 (지금도 많이 쓰이지만) '라떼는~'과 '꼰대'라는 말이 주로 노인들에게 해당하는 말 아니었던가. 노인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 고집을 피우는 사람, 과거에 매달린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서관에 가길 꺼려한다고... 왜? 했더니, 대답이 도서관에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많이 오는데 그게 왜? 노인 특유의 냄새(향기라고 하면 긍정적인 의미로, 냄새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왜 그런지, 한자는 좀더 고상하고, 한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한 건지... 참. 이 책을 읽다보면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그. 하지만 그 '조선시'가 바로 한자로 쓰는 시였으니...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 말을 듣고 소설에서 손주들이 할머니(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서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 장면이 있는 것을 떠올렸는데... 최근에 읽은 [멋진 실리콘 세계]에서 조시현이 쓴 '슈거 블룸'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할머니에게서 냄새난다고 싫어하던 손주들이 인공피부 이식을 한 할머니에게 냄새 좋다고 달라붙는 내용.


그러니 늙음은 멀어지는 것이다. 어린 사람, 젊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늙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떠나 늙지 않을 수 있나? 하긴 많은 SF소설에서 늙지 않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지금도 노화방지 약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으니, 머지 않은 미래에 늙지 않는 인간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늙지 않는 인간, 단지 수명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게 오래 사는 인류가 나오는 시대, 자연스럽게 고령화, 고령, 초고령 사회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때는 젊게 오래 사니까, 고령 사회라는 말을 쓰지 않을지도... 젊으나 늙으나 비슷한 모습과 체력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늙지 않고 길어진 수명으로 인간이 이 지구에 산다면, 지구가 버틸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것도 참... 그런데도 인간은 수명 연장을 넘어 노화 방지로 나아가고 있으니... 결국 인간에게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생각.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노년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노년에 대한 생각도 바뀔까? 그건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책은 이러한 '노년'에 대해서 살피고 있다. 동서고금의 사상가와 문학가들을 훑어가면서 그들이 늙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주고 있는데...


어떤 이는 늙음을 긍정으로, 어떤 이는 늙음을 부정으로 보고 표현했지만, 대체로 늙음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또한 저자가 주장하듯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노인들은 있는 사람들, 그야말로 삶을 누리고 노년에도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일반 백성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늙기도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았고, 늙어서는 더욱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그러니 사상가들이 늙음을 예찬하는 것은 더 잘 살필 필요가 있다고, 과연 그들의 말들이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해당할 것인지, 아니면 특권층이 해당하는지를...


참 많은 자료를 살피고 알려주고 있는데, 저자가 왜 이런 일을 할까? 


'이 책은 늙은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처럼, 늙음에 대한 늙은이들의 철학적 담론들을 모아 나름대로 분석한 책입니다. 소위 '노익장'이라 뽐내는 늙은 권력자나 부자가 좋아할 만한 동서양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노인 철학은 비판하고, 대신 수많은 가난한 노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노년의 철학과 예술을 사상의 차원에서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21쪽)


그래서 많은 사상가들과 문학가들이 나이들어 '노년'에 대해 쓴 글을 살피고 있는데, 그들의 늙음에 대한 찬양이나 또 대우 받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권력층의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소수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대다수의 노년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는 답을 도연명, 정약용, 톨스토이, 헤밍웨이에게서 찾는 듯하다. 이들 역시 어쩌면 특권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글을 통해 또 삶을 통해 보여준 '노인'의 모습을 참고할 수 있다고... 특히 그는 도연명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도연명은 나이 들어 농사지으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유유자적하게 살았다고 하니, 이러한 노년이 바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노년이라고... 노인이 되었으니 이제 남의 눈치 볼 일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다는 것. 정약용의 말도 그런데, 여기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약간 다른 면이 있지만.


'정말이지, 내 간절한 소원은 노인들이 도시의 공원이나 지하철에 죽치고 앉아 있거나 폐지를 주워 판다고 짐차를 끌고 다니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짓고 책 읽으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22쪽)고 하고 있으니, 이는 도연명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생활의 문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생존을 위한 물질이 충족되어야 정신이 올바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인은 노동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노동에서 추방되었습니다.'(39쪽)고 하고 있다.


노동에서 추방된 노인들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 의료, 문화, 경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시골이 되어야 하는데... 저자가 답답함을 토로하듯이 의료가 이런 곳으로 가고 있나? 아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고.


노인들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의료, 문화, 경제'의 문제라면, 노인들은 노동에서 해방되지 않고 추방되었기에 어디도 갈 수가 없어 도시를 떠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노인들에게 시골로 가라고 또 젊은이들에게 시골로 가라고 하기 전에 그곳이 생존이 해결되고 생활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여 이 책은 노인에 대한 표현이 있는 많은 책들을 섭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답은 부족하다.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문제겠지만.


저자만 해도 교수를 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시골에서 살고 있다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라. 그들이 일하기 싫어서, 노인이라고 그냥 뒤로 빠져 지원이나 받으면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내는지...


(참고로 이 영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았겠지만, 관객수를 살펴보니 참... 노인 소외가 이렇게 영화에서도 나오나, 주인공들이 모두 노인이라서? 그건 아니겠지만)


이들 역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치열한 삶이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게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라고 하기 전에 농사지을 땅과 살 집, 그리고 몸을 보살필 의료 시절, 먹고 살 경제적 지원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들은 시골로 갈 수가 없다. 그건 죽으러 가라는 말과 같으니까.


그 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도연명의 글에 나타난 노년의 모습, 정약용이 쓴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6수가 실려 있어, 그 시들을 읽으며 노년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어떤 내용인지 잠시 보면, '노인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민둥머리여서 참으로 좋다는 것일세 (1수), 치아 없는 게 또한 그다음일세(2수), 눈 어두운 것 또한 그것일세(3수), 귀먹은 것이 또 그 다음일세(4수),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꾸 씀일세(5수), 때로 손들과 바둑 두는 일인데(6수)' (246-259쪽)로 시작하고 있다. 찾아 읽어보면 유쾌한 마음이 된다.


늙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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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31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1-01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탁 위의 일본사 - 음식으로 읽는 일본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류순미 옮김 / 더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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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아니 그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해야 한다.


하나의 음식이 그 나라에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구화,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데, 음식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음식을 살피는 일은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살피는 일이 되기도 하는데, 한 나라를 중심에 놓고 살펴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음식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일본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본 음식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음식들이 많이 나와 친숙하기도 하고,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역사와 일본 역사가 겹치는 부분이 많음도 알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이웃 나라인 일본과 우리가 엮이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여기에 중국까지 합치면 이 삼국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이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여기에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와 교류도 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다른 문화, 음식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고.


우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음식은 제철 음식, 지역 음식일 수밖에 없다. 수렵, 채집이 중심이 되는 음식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수렵, 채취 문화에서 정착 생활로 들어가면서 일본에서도 쌀을 중심으로 하는 음식문화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중심으로 음식 문화를 이룬다.


그러다 이제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특히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서 다른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먹는 음식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똑같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살아온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변용해서 받아들이는 것, 일본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된장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미소된장이 중심이 되고, 또 서양에서 받아들인 빵이나 비스킷도 일본의 문화에 맞게 변용된다.


젓가락 문화가 일본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것도 새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여기에 일본에서는 불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육식을 금지하는 시대가 길어졌고, 따라서 고기 문화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해, 고기를 통하지 않고 영양소를 흡수하기 위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는 것.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육고기를 금지했으니 물고기를 이용한 음식 문화가 발달했으며, 육지에서 교류하기 위해서 부패를 막기 위한 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 그러다 근대화가 되면서 서양식이 들어오게 되지만, 그것 역시 일본의 문화에 맞게 변용이 되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즉 역사를 통해서 보면 한 나라의 음식 문화를 그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와 연결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랑하는 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치의 중심 재료인 배추나 고추 역시 세계와 교류하면서 들어오게 된 것 아닌가. 


이 점을 생각하면 원산지가 어디냐로 그 음식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음식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다. 원산지를 넘어 음식은 교류를 통해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어떠한 음식이든 그 나라의 고유한 음식문화라고 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음식문화의 교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한 나라의 음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 속 문화교류를 공부한다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역할(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을 무시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자국 중심주의에 빠져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인 것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 시대에 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252쪽)고 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일본이 잘못한 일이라고 했어야 한다. 불행이라는 말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반성하지 않고 조선인에게 일어난 일이 유감이라는 표현밖에 안 되기 때문... 그 점은 아쉽지만...)


이렇듯 이 책은 문화의 교류를 자료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으며, 그것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지 않고 일본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바뀌어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이런 구절을 보자. '고기가 일본의 음식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이 시작한 야키니쿠다.'(251쪽) 


육식문화, 특히 고기를 굽는 음식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에 한국인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으니.


이렇게 이 책은 일본 역사를 통해서 일본 음식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어떤 음식들이 등장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계화 시대의 음식문화가 지닌 위험성도 이야기한다. 자국의 음식문화의 재료를 무역에만 의존했을 때, 다른 말로 하면 식량자급률이 많이 떨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간과하지 말하야 한다고...


일본의 식재료 자급률이 약 40%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약 20% 내외라고 하니 저자의 경고가 일본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테다. 하여 저자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니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식재료를 단순히 가격이 싸다, 비싸다는 기준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식재료가 만들어진 과정을 고려한 복잡한 '음식'의 시스템을 떠올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지산지소(지역생산, 지역소비)도 그러한 대처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식탁은 농업, 수산업, 축산업과 직결되고, 식탁이 농업, 수산업, 축산업을 키운다.'(261쪽)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식탁도 생각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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