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건축으로 살펴본 한국 현대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3
서윤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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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삶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집이 없는 설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집은 우리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건축이 물론 집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거 형태가 우리들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인데.. 이 책 끝부분에 18. 도시화란 이름으로 아파트가 어떻게 우리 삶에 들어왔고, 우리들 주거 형태의 기본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임대아파트 문제까지 섞이면(5.세그리게이션:강남 개발) 우리 현대사에서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건축은 어떻게든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책 첫부분(1.건축이란 무엇인가?)에서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건축의 자리는 제3선이라는 말. 건축이 1선이나 2선에 서서는 안된다는 것. 건축은 사람들을 보조하는 자리인 3선에 서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 3선에 있어야 할 건축이 1선 역할을 해서 우리들에게 위압적인 존재로 다가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1선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들의 행위를 담을 만한 공간(24쪽)이라고 한다. 2선은 사람들의 행위를 받쳐주는 스트리트 퍼니쳐(street furniture-거리에 놓인 가구와 비슷한 개념)라고 한다. 그 다음이 바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래서 광화문 광장이나 청계 광장, 또 서울시청앞 광장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건축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광화문 광장).

 

여기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소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용산과 이태원이다. 군대의 주둔지로 자리매김 되었던 용산과 외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곳인 이태원은 예전부터 그런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는 것. 그것을 '지니어스 로사이(그 장소의 본래적 성격, 다시 말하면 땅의 정령이라는 의미-40쪽)'라고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제 현대로 들어오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한 장소가 발전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개념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4. 젠트리피케이선)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공동화되는 도심이 다시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특정 집단만이 이익을 올리는 현상으로 변질된 것이 우리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젠트리피케이션은 서로가 살 수 있는 공생의 모습이라는 것. 이런 쪽으로 우리 사회가 바뀌어가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계층별 주거분리를 의미하는 세그리게이션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아파트가 대중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계층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에 평수로 분류되기도 하는 계층화가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특히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차별받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이러한 계층별 주거 분리를 막기 위해 소셜믹스라고 계층별 주거 혼합을 하는 형태의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여겨야 하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건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이주민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이 생기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그런 곳들을 다루는데 (6. 모자이크 도시, 9. 철거민과 스쾃운동)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현대사의 흐름과 건축을 연결지어 설명하는 가운데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잘못된 건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7.남영동 대공분실. 9. 철거민과 스쾃운동)

 

건축이 권력에 봉사한 경우. 부끄러운 건축의 역사를 빼놓지 않음으로써, 기억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 비극적인 일. 바로 붕괴다. 건물의 붕괴(8.와우아파트와 삼풍백화점). 우리는 대형 붕괴 사고를 몇 번 겪었다. 성수대교 붕괴도 건축이 겪었던 비극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빨리빨리와 오로지 돈만을 바라보고 지었던 건물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이 사건들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이 책은 청소년들이 건축에 쉽게 접근하도록 쓰여졌다. 읽으면서 건축과 우리나라 현대사를 연결지을 수 있어서도 좋다. 무엇보다도 건축은 건축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건축은 바로 우리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

 

하여 건축은 꽉꽉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빈 공간에 사람들의 삶이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건축을 남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고 여기게 하는 역할을 이 책은 충분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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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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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이 쓴 책을 두 번째로 읽는다. 사실 순서가 바뀌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가 뒤에 나온 책인데, 그것을 먼저 읽었으니.

 

사실 건축가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한다. 집을 지어본 적도 없고, 건축가를 친구들 말고는 -친구들이라고는 해도 집을 짓는 모습이나 설계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으므로 - 알고 지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건축에는 조금 관심이 있었는데, 그래서 기껏해야 정기용, 승효상, 김수근 정도나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그것도 그들의 책을 아주 조금만 읽은 상태.

 

유현준은 "알쓸신잡"이라는 텔레지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알게 된 건축가. 대학교수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가 건축가고,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해서 그의 책을 찾아 읽는 중.

 

여기서 내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 바로 용산미군기지에 관한 개발... 나는 이 책 추천사에 쓰여 있는 최재천의 말처럼 용산미군기지를 그냥 공원으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공원.

 

하지만 유현준의 책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무조건 커다란 공원이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나무들이 울창해져 숲을 이루면 도시의 허파 역할과 쉼터 역할을 하겠지만, 그렇게 큰 공원은 밤이 되면 안전이 문제가 된다.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커다랗게 만들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동네 산책하듯이 거닐 수 있는 공원이 되지 못한다.

 

공원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그냥 숲만이 아니라 공원 가는 길에도 무언가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원에 가서도 그냥 산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원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이벤트라고 해도 좋고, 우리 행동을 유발하는 무엇이라고 해도 좋다.

 

공원에 가는 길이 편해야 하고, 공원 바깥으로 있는 길의 폭은 좁아야 하며, 공원 주변에는 우리가 쉴 수 있고 또 들를 수 있는 장소가 많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용산미군기지가 이전되면 그 큰 덩어리를 하나의 공원으로 만들지 않고 작은 여러 개의 공원으로 만들고, 그 공원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무엇이 들어서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제주도 올레길에 이어 많은 도시에서 걷는 길을 만들었다. 그런데 길만 만든다고 사람들이 모여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읽으면서 찾으면 아하, 하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이 어떤가? 라고 유현준은 질문하고 있다. 왜 그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가? 그 점을 알면 무작정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도시는 사람으로 인해 산다. 건축도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인해 사는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허물어진다. 그만큼 사람들이 집을, 도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건축을 해야 한다. 그런 건축으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을 내치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건축, 그런 건축이 있는 도시가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고, 살아 있는 도시가 된다.

 

'열다섯 가지 인문학 시선'이라고 했지만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바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위한 건축은 자연을 내쳐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 최적화된 건축, 그 건축은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자연을 거슬러서 사는 생활을 행복해 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과학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는 건축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나라다. 그만큼 자연과 잘 어울린다면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있는 그런 건축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말이다.

 

충분히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환경이니, 이제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과거와는 달리, 자연도 보고, 빠르게보다는 느리게를 주장하는,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를 외치는 그런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이런 건축이 있는 도시, 그런 도시가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고, 그렇게 만들어야만 도시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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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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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건축은 필수 요소다.

 

의식주든, 식의주든 주는 빠지지 않는다. 집, 거주할 곳, 이곳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때부터 건축은 우리와 함께 했다.

 

이런 건축을 토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토목과 달리 우리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학교 건축부터 시작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을 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 건축, 답이 없다.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제로(영)에 가까운 학교 건축에서 무슨 창의 교육을 한다고 하는지, 저자는 답답해 한다.

 

교도소에 가두어 놓고 너희들은 창의적인 훌륭한 인재야 라고 백날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학교 건축으로 아이들 창의성을 다 죽여놓고 그런 기대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양계장에서 닭을 키워놓고 그 닭에게 넌 왜 독수리가 못 되었냐고 야단치는 격이라는 것이다. 학교 건축, 천편일률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규격화된 건축. 네모 속에 갇힌, 담장 속에 갇힌, 그리고 자연과 철저하게 격리된 그런 건축물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학교 건축에서 시작하여 다른 건축으로 넘어가는데 답답함이 가중된다. 우리나라 건축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건축만큼 이 책에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 공원에 대한 생각이다. 공원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서울만 해도 많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용산가족 공원이라고 해도 걸어서 이곳에 가는데는 힘이 많이 든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공원. 이런 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지 못한다.

 

공원이 공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원에 담장이 많다. 마치 구획을 짓듯이 담장이 자유로운 접근을 막고 있다. 아파트 단지들도 자신들의 담으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데, 이렇게 길과 격리된 공간은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못한다고 한다.

 

공원이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또 다른 공원으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 이동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으로 건축을 해야 한다. 이런 건축이 사람들 삶 속에 들어온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과 함께 있는 건축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을 저자는 주장한다. 건축에서 자연을 내몰면 우리 삶이 피폐해진다. 인류의 탄생부터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큰 공원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작은 공원 여럿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발달도 건축의 역사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건축물을 통해 권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다른 학문과 융합한 건축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읽은 재미도 있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도 해준다.

 

특히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학교와 공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답답해 하듯이 이렇게 건축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고 우리가 살고 싶은 장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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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8-10-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 더욱 반가운 리뷰.

kinye91 2018-10-22 14:28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두 남자의 집짓기 -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으로 좋은집 시리즈
구본준.이현욱 지음 / 마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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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면서도 단독주택에 살기를 꿈꾼다. 꿈꾼다는 말이 맞다. 그냥 꿈만 꾸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단독주택하면 우선 비싸다,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 사는 쪽을 선택한다.

 

아무래도 교육 환경이 아파트가 있는 곳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오해가 있다. 단독주택을 전원주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교육 환경 운운하는 것은 단독주택을 전원주택이라고 생각해, 무슨 한적한 곳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문화 시설도 변변찮은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산다고 생각해서이다.

 

아니다. 단독주택은 전원주택이 아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또 문화시설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짓는 집이 아니다. 도심지에 지을 수도 있는 집이다. 단지 주거 형태가 다를 뿐이다.

 

도심에 단독주택을 짓는다고? 그럼 비용은? 우선 땅값이 만만치 않다. 도시는 땅값이 비싸다. 그리고 단독주택은 땅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3억은 있어야, 그것도 현금으로 집을 지을 수가 있다. 물론 도심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면 3억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충분히 집을 지을 수 있다. 땅을 두 집이 공동으로 구매하면? 반값으로 땅을 살 수 있다. 집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총 공사비가 6억이 들더라도 나는3억에 단독주택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아이들 교육 때문에 단독주택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아이들을 위한다면 단독주택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 흥미를 느끼는 집, 마당이 있는 집은 나중에 나이들어 두 늙은이가 사는 집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어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파트에 살 돈으로 단독주택에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질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3억원으로 단독주택지어 살기.

 

사실 3억이라고 하지만 용인에 3억으로 단독주택을 짓기는 힘들다. 두 집이 3억씩 내서 6억 정도의 예산으로 집짓기를 시작한 것이다.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집을 - 그런 집을 '땅콩'집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 짓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가능하다는 점, 건축가와 건축 전문기자가 만나 땅을 함께 사고 두 집을 짓는다. 한 집같은 두 집... 마당만 공유하지 다른 모든 생활공간은 다른 집.

 

그렇게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과정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음을, 오히려 단독주택은 실평수에서 아파트보다 훨씬 크게 나옴을, 또 다락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은 단독주택에 대한 편견을 깨게 해주고 있다. 우선 비싸다는 편견을 아파트 값이면 충분히 가능함을, 또 아이들에게 마당 있는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그리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음을...

 

게다가 공사기간도 짧다. 한 달만에 집을 지을 수 있다니... 이 기간을 잘 맞추면 공연히 다른 곳에서 살다가 이사하는 불편함을 덜 수도 있다.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물론 총공사비는 3억을 넘어섰다. 그런 것까지 솔직하게 보여줘서 좋다. 생각하지 못한 비용이 들 수 있기 때문이고, 이들은 마음에 드는 땅을 구입하고자 했기에 땅값이 예상보다 초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값을 생각해 보라. 30평대 아파트면 아무리 싸도 4억을 훌쩍 넘는다. 아마 서울에서 30평대 아파트면 5-6억을 할텐데... 이 정도 재산이 있다면 충분히 단독주택에서 살 수가 있다.

 

그렇다. 단독주택이 꿈이 아님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현실이 됨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 이현욱과 기자 구본준이 우리에게 이 점을 잘 보여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자 구본준이 이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점...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단독주택을 짓고 살아가는 모습은 단독주택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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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3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빈자의 미학 - 20주년 개정판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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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으로 기억되는 건축가는 거의 없다. 건축가는 건축으로 기억이 된다. 그가 아무리 건축에 관한 책을 썼더라도 책보다는 건축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효상이라는 건축가는 건축으로서보다는 책으로, 그것도 선언으로 더 기억된다. 그는 그 선언으로 우리들 뇌리에 남아 그의 건축 하면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오래 전에 그가 썼다는 작은 책자의 제목, 그 제목에서 그는 '빈자의 미학'을 주장한다. 그의 건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선언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59쪽)

 

여기서 그는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이 이름 속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후기에 보면 이런 식의 해석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빈자의 미학은 무조건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인가? 아니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의 합목적성과 장소성, 시대성을 추구한다.

 

건축은 그 자체로도 존재해야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장소를 벗어난 건축은 투시도의, 설계면의 건축에 불과하다. 건축은 반드시 장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장소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 속에 안온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건축은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도 해야겠지만, 시대를 이끌어 가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축이 지닌 시대성이다. 이 책의 맨 앞에 나와 있는 글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건축을 투시도와 조감도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투시도의 방식이 전근대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독선적이라면, 조감도의 방식은 민주적이며 타협적이다. 투시도는 구호적이고 선동적이나, 조감도는 설명적이고 연역적이다.' (75쪽)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이 투시도의 방식을 따랐다면 빈자의 미학에서는 다르다. 조감도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런 조감도의 방식을 따를 때 빈자의 미학의 마지막에서 주장했던, 가짐보다는 쓰임이, 더함보다는 나눔이, 채움보다는 비움이 이루어질 수 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빈자의 미학을 설명하는 책인데, 길게 쓸 필요도 없다. 책의 분량도 적다. 이러면 됐다. 다만, 이 선언이 현대에 더욱 필요해졌다는 사실, 그것을 기억하면 된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에서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도 해당한다.

우리는 지금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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