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
박지형 지음 / 이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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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서 극우를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유럽에서도 극우를 표방하는 정당이 많은 표를 얻고 있는 현실이지만, 전세계에서 극우를 대표하는 인물로 단 한 명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트럼프를 뽑겠다.


그야말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세계 평화고 뭐고 없는 사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고, 오로지 이익에만 눈이 먼 사람.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또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에 제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미국 밖으로 내쫓고, 미국의 이익, 아니 자기 이익에 반하는 나라들을 침공한다. 그러면서 전쟁은 아니라고, 군사행동이라고 하고, 거기에 따른 민간인들의 피해는 부수적인 피해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한다.


여기에 부화뇌동, 아니 어쩌면 트럼프를 추동하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다. 이 둘이 이 책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책에 트럼프와 네타냐후라니?


제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라는 이 제목 속에는 트럼프나 네타냐후가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이 책에서는 기후위기는 현대에 들어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제국주의, 그것도 로마와 결합한 기독교의 제국주의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로마-기독교의 결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언급이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들은 왜 기후위기를 부정할까?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때문인데...자본과 화석연료에 기반한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이윤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 기반인 화석연료 산업을 포기할 의향이 전혀 없다. 


(화석연료와는 다르지만 이들은 원자력발전도 계속 추진한다.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와 원자력발전(핵발전이라고 하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비슷하다.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정책, 권력의 집중. 이런 것들...)


또한 자본의 기본 속성은 성장과 팽창인데, 그것을 멈추는 순간 자본은 제 존재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이 자본을 대리하는 자본가들은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산업이 계속 팽창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가 트럼프이기도 하고.


이런 그들이 기후위기를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산업기반을 부정해야 하니까. 자신들의 이윤을 포기해야 하니까. 그리고 권력도 내려놓아야 하니까.


이들에게는 인류의 미래 이런 것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윤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뿐이다. 그러한 성장을 방해하는 존재들은 사라져야 한다. 성장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야 한다.


이렇게 그들은 기후위기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 바로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권력과 거기에 복무하는 지식인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기후위기 역시 과장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성장은 곧 자연의 정복이다. 그것을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나와 있는 구절로 합리화한다. 자연은 공생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그들에겐 산이 방해가 되면 터널을 뚫든지, 깎아버리든지 해야 하고, 강은 이윤을 위해 댐을 만들거나 운하로 만들어야 한다. 자연 존재 자체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윤을 위해 가공되어야 할 상품이다.


상품으로, 물건으로 자연을 대하니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윤을 위해 변형, 가공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내(자본) 일이 아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약탈에 불과한데, 이러한 자연의 약탈에 대한 피해가 그들보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직접적으로 가게 된다.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들이다.


기후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해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폭우, 폭설, 참을 수 없는 더위, 집을 날려버리는 바람. 지진 등등... 기후위기로 인해 예측을 훨씬 넘어서는 재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를 부정한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이지 않을까? 굳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것은 바로 권력을 쥐고 있는,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이 어떻게 기후위기를 부정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지 그것이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기후위기와 정치가 결코 분리되지 않고 있음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은 피해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기업가들이나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사업가들, 그들과 더불어 권력을 누리는 자들, 특히 트럼프와 같이 극우로 통칭할 수 있는 자들에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현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민주주의가 시급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후민주주의는 세 가지 전환을 전제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자의 공존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먼' 자연관으로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대체해야 한다. 기후제국주의의 물적 기반을 대체할 '포스트-화석연료' 에너지 시스템과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며 성장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할 '포스트-자본주의'가 기후 민주주의 의 물적 토대를 이룬다.'(149쪽)  


이렇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이 방향으로 기득권을 지닌 사람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피해자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다.


하여 저자는 이렇게 제안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런 일. 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정치 현실을 보면 무어라 말하기 힘든 실천. 한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미래를 위해, 아니 지금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자.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우리 생명과 그 터전인 지구 커먼즈(공동자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의 정치적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개인의 실천은 생명을 최우선적 가치로 존중하는 정당화 제도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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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리즈 30만부 기념 리커버 한정판)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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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중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내게 닥칠 기후를 알려주고 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 또는 이틀, 사흘의 날씨 예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삶은 곧 바뀐다. 하지만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예전의 자기만을 지킨다는 것은 곧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기예보를 살피듯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러한 예측에 따라 준비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미래 시대를 예보해주는 책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일기예보가 정확성을 더해갔듯이, 저자는 '시대예보'라는 주제로 세 번째 책을 냈다.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 이은 세 번째 책.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시대에서 이제는 개인이 중심이 된 사회,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사회로 접어들었고, 그러한 사회는 전체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가벼운 사회로 가고 있다고.


경량문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는 예전처럼 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거대 기업의 일원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든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만 유지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거나 또는 그러한 흐름을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집단 속에 녹아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지금은 개인이 중요한 시대인데, 이런 시대를 이끈 것은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21쪽)라고 한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 이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지능은, 지식은 쉽게 만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의 만남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


왜 협력이 가벼워질까 했더니, ''관계의 경량화'와 '협업의 거리 단축'이, 바로 협력이 가벼워지는 세계의 핵심'(85쪽)이라고 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뭉치고 흩어질 수 있는,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힘'(93쪽)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량문명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빠르게 잊고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잃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가 새로운 문명의 참여자들이 가져야 할 역량이 된다'(180쪽)고 한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면서 나아가야 하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자기 것을 잃지 않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자기 것을 지닌 인간들이 대등하게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량문명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여기서 '교육'이 문제가 된다.


과거의 공부가 아니라, 경량문명의 시대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새로운 공부는 '첫째 학령기의 공부가 아닌 평생의 공부가 일반화되며 공부의 기간이 인생만큼 길어질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대상이 좁아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미 누군가가 발견한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닌, 아무도 모르는 것을 스스로 찾는 방향으로 깊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자와 비교해 등수를 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을 오롯이 해내는 것으로 바뀌며 공부를 하는 이들의 마음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210-212쪽) 고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배움의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즉 지금까지는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을 가르쳤다면, 이 경량문명의 시대로 접어드는 때에는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고. 나이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려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왔던 중량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미래를 예보해주고 있다. 다가올 경량문명의 시대는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일기예보가 특정 나이 대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저자의 시대예보 역시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경량문명이 특정 세대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두에게 해당하듯이 우리는 다가올 시대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기예보가 늘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예보를 듣고서 준비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시대예보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의 시대예보가 정확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준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분명 저자의 말대로 경량문명으로, 유동적인 문명으로 가고 있는 흐름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저자가 말한 '경량문명의 개인은 날아오르고 혼자 헤쳐나가는 스스로 비행하는 자유인'(353쪽)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새들이 먼 길을 날아갈 때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기르듯이, 그럼에도 홀로가 아니라 함께 날아가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도 그렇게 홀로 또 함께 해야 함을 저자의 이 세 문장이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경량문명의 그라운드 룰


   1. 우리는 지금 만납니다, 준비가 되신 분만.

   2. 우리는 잠시 만납니다, 전력을 다할 분만.

   3.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마음이 맞는 분만.  (338쪽)


그래, 결국 준비가 되고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그런 개인들이 미래 시대를 살아갈, 경량문명의 시대를 살아갈 존재들이라는 것.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야 개인이 마련해야 하겠지. 그것까지 예보에서 알려줄 수는 없으니. 미래 세계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니,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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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知의 회랑 40
최현식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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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국가를 주로 일컫는 말. 1900년대 초반 일본은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옆 나라인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권력을 세웠다. 그리고 대만 및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여 또한 식민지로 삼았다.


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무리 사실을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한다. 식민지였던 나라에 대해서, 또 그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 다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


여기서 책임질 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책임자가 책임을 면했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권력을 잡았다. 이런 모습의 일본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면 식민지 경험이 있던 나라들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이유로 든 것이 바로 평화공존 아니었던가.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일본이 재무장을 하려고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한데... 책임도 지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고, 과거는 없던 일인 양 미래로 나아가자고만 외치고 있는 일본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식민권력을 보게 된다.


그런데 총칼만으로 식민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무력으로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더라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지배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을 우위에 두고, 식민지 사람들, 식민지 문화들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에 의해 계몽되거나 발전되었다는 생각을 알게모르게 식민지 사람들이 지니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정책 중에 문화, 교육을 통한 정책이 있는데, 이들은 교묘하게 의도를 감추고 있어서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제의 식민정책 중에서 사진엽서를 통해서 조선인들의 무의식에 일본의 우월함을 각인시키고, 조선의 낙후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엽서는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지만, 엽서에 있는 글들이 노래로 불렸다는 것, 이는 자신들의 선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총칼만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도 식민지 이념을 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진엽서를 통한 식민지 권력의 선전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처음은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만큼 많이, 대중적으로 불린 노래가 있을까 싶은데, 이 아리랑조차 일본은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아리랑을 통해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 즉 노래를 통해 식민권력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아리랑에 비교될 수 있을 만한 노래들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그 노래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사람들이 듣고 부르게 하는 것.


이를 문화통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압록강, 백두산에 관한 노래를 통해 교묘하게 조선의 산하를 칭송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옹호하고, 또 자신들의 발전 상을 드러내며, 조선의 낙후성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러한 이념이 스며들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드러내놓고 선전을 하지 않았지만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압록강, 백두산'을 소재로 한 사진엽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대륙 침략, 일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는 내용을 드러내고 있으니, 노래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고 있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교묘한 식민권력, 제국주의가 무력으로만 지배한다면 식민지 사람들이 저항하기도 쉬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려 한다면, 그 본질을 깨닫고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그러한 방법을 일제가 사진엽서를 통해서, 또 노래를 통해서 쓰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일제가 이러한 사진엽서 또는 노래를 통해서 - 이것은 나중에 국민학교(일제시대 용어다. 지금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음악 책에 실은 노래들을 통해 더 노골적이 되는데 -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음을,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파악해서는 안 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참 많은 사진엽서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에게 전해졌구나, 이것들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사람들이 쉽게 세뇌당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은 이러한 사진엽서, 노래를 통하지 않고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유튜브'들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비판적 읽기/듣기/보기가 중요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엽서 한 장을 보라. 이런 노골적인 내용이 일제말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니, 처음에 의도를 숨긴 엽서들이 나중에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이런 적나라한 홍보를 통해 처음의 의도들을 유추할 수 있다.



<출전:최현식,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성균관대출판부. 2023년. 352쪽>


참고로 절(節)은 일본어로 '부시'라 하고, 이 '부시'는 일본 전통 민요를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307쪽)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랏님 위해 피어난 꽃이여 / 나라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을에는 / 아- 산화하시라 그대여 용감하게'


그리고 왼쪽에 있는 작은 글자들은

'몹시도 어여쁜 야마토의 아기도 총후 보국의 마음은 단단하니, 나의 쓸쓸한 마음은 아기의 건강함에 기대어 그대가 보다 순결하고 보다 강해지기를 기도한다'라고 한다.' (352-253쪽)


참 노골적이다. 이렇게 노골적이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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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
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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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차별... 이것은 자신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지만 상대는 누릴 수 없는 권리라는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무엇일까? 그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보장하는 법이 차별금지법 아니던가.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 그런 권리에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그런 권리를 함께 누린다고 해서 권리를 양이 줄거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권리들은 함께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여 제목이 '평등한 평범'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상함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모든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11쪽)


누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함이다. 이러한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도록 하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기도 하고.


한데,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제정이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에 발의가 되었다던데, 상임위에서 심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하고 고사했다.'(287쪽)고 저자도 말하고 있으니...


저자가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또 제정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 국회의원이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러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차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표지에 작은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란 문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추행을 당하는 일, 이주민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기도 힘들다. 설문조사를 하면 압도적인 다수가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심사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국민을 제대로 대의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정치 개혁 역시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또다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개혁이 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저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금지법에 관한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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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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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인사말은 안녕하지 않은 시대에, 상대의 안녕을 바라면서 건네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예전에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성과금으로 수억 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언론을 장식할 때 그들에 가려진 더 많은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인사말처럼... 정말, 모두가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고, 이러한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으니, 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


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려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파업을 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법은 어떠한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 아닌가.


심지어 대형 로펌들이 변호하는 존재는 강한 자, 있는 자이고, 그들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법에 호소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대형 로펌, 즉 승소할 가능성이 많은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할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반면 기업은 이러한 대형 로펌에 의뢰할 자금이 있으니... 노동관련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이기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는 골리앗이 이기는 현실이다.


물론 능력 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열심히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오히려 이들이 더 능력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재판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인 학연, 지연에 전관예우라는(법으로 전관예우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라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예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형 로펌에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또는 관련자들-대기업 임원, 장-차관, 유명 경제학자(경제관료), 경찰 간부 등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것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재능, 노력을 내놓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들이 있어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총 11개의 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의 사건인지 보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 여성노동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해가압류 사건 등이다. 


이렇게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때로는 법이 이러한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 중에서 노동자들 편이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경우, 또는 재판을 포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재판, 쉽게 말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나게 길어지는 재판 기간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 문제 앞에서 재판까지 가기는 많이 힘들다.


이 책의 저자처럼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도, 재판은 노동자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거기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는 이유는, 노동자 자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만 재판까지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함께하는 변호사. 소중한 존재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가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윤지영 변호사만이 아니라 많이 있음을, 윤지영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도 노동자를 위한 변호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법을 통해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노동자들이 승리한 재판 역시 자신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노무사-노동자-언론-그리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법(法)이라는 한자어가 물이 간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라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법의 정의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렇다면 법조인은 이렇게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법조인이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조인은 그런 존재였던가?


어쩌면 지금까지의 법조인은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고 이들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대체로 대형 로펌을 비롯해, 정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주로 지칭한다) 물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막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 또 재판장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물의 흐름을 막는 이러한 법조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조 개혁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현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로 또 제도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다.


저자의 이 말이 실현되는 한국이라면 정말 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이지 싶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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