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공화국 - 주권자 국민이 만든다
박승옥 지음 / 기적의마을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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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또한 기회를 주기도 했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쿠테타 세력을 뿌리뽑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었으니.


이제 우리나라에는 비상계엄은 없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 터진 것.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주고 그것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12월 3일을 통해 우리나라의 앞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헌법으로 충분한가? 지금 헌법으로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꽤 오래 전부터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논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개헌이라는 말만 나오다 사라졌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즉, 정치권에 개헌을 맡길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 이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국회로 넘겼다고 하는데, 국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개헌은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중심에 놓고, 이 나라가 어떻게 해야 국민을 잘살게 할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도 서로 비난(분명 비판이 아니다)만 하고 있는 상태니.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국회에 개헌 논의를 맡겨서는 아마도 논의만 되다가 끝나거나 또는 대통령 선출이라는 점만 손대고 끝날 수도 있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점인가.


광장에 나갔던 사람들이 원했던 개헌이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꾸는 데만 있는가? 아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유지되어 왔던 헌법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대통령 선출에 관한 것도 포함되겠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날은 투표하는 날밖에 없다. 투표가 끝나면 다시 권력은 대리인들에게로 넘어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대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선출직들이 그러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한번 선출되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를(사실 최고 권력자는 국민이다. 헌법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으니) 두 번이나 탄핵시켰으니,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워낙 예외적인 사안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소환할 방법이 없다. 주민투표? 법에 없다고 한다. 그냥 참조 사항일 뿐이다. 이마저도 몇 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니 헌법 개정으로 7공화국을 수립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사실 탄핵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이 책에서 우려한 대로 대통령 선거로 모든 관심이 쏠려 버렸으니, 때를 놓치기는 했지만, 개헌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부 출범에 맞춰 개헌에 대한 논의를 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맞는, 국민들의 염원에 맞는 헌법을 갖추면 된다.


이 책은 그렇게 6공화국을 극복하고 7공화국을 이루자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많은 논의가 담겨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권력을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두 가지, 국민 발의제와 국민 소환제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정책이나 법률을 당연히 국민이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발의는 꼭 필요하다. 자신의 의견도 내지 못하는 권력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권력자는 자신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헌법에 명시되도록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실질적인 지역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고.


이렇게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국민 발의와 국민 소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되어야 제대로 된 7공화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간혹 인정하기 힘든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동감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면, 실질적으로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지. 투표날 한 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차분히 헌법 개정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이 책도 그런 논의에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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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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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진짜 가짜가 있을까마는 굳이 제목을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라고 붙인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해서~"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는데, 그 사랑이 상대를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만족을 위해서 발현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러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대 또는 파괴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문제를 개인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서 문제는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는데, 그렇다고 사회 문제를 사회가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이니, 사회 문제 또한 개인이 풀 수밖에 없는데, 이 때 개인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여야 하고, 이 함께 풀 수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물론 답은 없다. 답이 있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적어도 문제만이라도 잘 파악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저자가 뽑고 있는 것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31쪽)이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데, 생존 불안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그래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준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든다. 존중 불안 역시 돈과 연결이 되어 있다. 


"돈을 못 벌면 굶어 죽는다."라는 생존 불안과 "돈 많이 못 벌면 무시당한다."는 존중 불안에 시달려서 정신이 황폐해져 있다(31쪽)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인기 있는 직업을 생각해 보라. 다 돈과 관련이 있다. 


큰소리 치는 직업, 부모가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깨 펴고 자식들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식들 성적이 좋아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했을 때, 또 돈을 잘 버는 직업이나 권력을 지닌 직업(권력도 결국은 돈과 연결이 된다)을 가졌을 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부모 역시 밖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자식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강요로 이어지게 된다. 다 자식을 사랑해서 한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존중 불안을 메우려는 행위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이런 일들을 저자는 '사랑받기'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아동기에 졸업했어야 할 마음이다. 어른은 사랑받기에서 '사랑하기(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가짜 사랑이 판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랑하기, 이는 대상을 중심에 두고 마음을 주는 행위다. 나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을 중심에 놓는 것. 그 대상의 행복과 발전을 우선하는 것.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주는 행위에서 행복을 지니는 것. 이것이 사랑하기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너무나 귀중하여 그 대상을 우선시하고 앞세우는 것이 진짜 사랑'(166쪽)이라고 하니, 이런 사랑을 하면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 사랑하는 대상이 살아갈 세상이 변하지 않고는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대상이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위해서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평등한 세상을 원하게 된다.'(173쪽)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차별 받는 세상을 원하지 않을 테니.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을 차별하는 등의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


사랑은 그 대상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과는 다르다. 맹목적인 추종은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다. 그 대상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즉 존중 불안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는 그 대상이 잘못 행동을 했을 때 바로잡으려는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살아야 서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기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사랑하기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국한된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뻗어가는 사랑이 바로 사랑하기다. 그러므로 진짜 사랑은 '사랑하기'이고 가짜 사랑은 '사랑받기'다. 물론 사랑받기 시절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어쩌면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여 이제는 사랑받기를 넘어서 사랑하기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생존 불안을 우선 해소시켜야 한다. 적어도 생존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는 것, 생존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면 존중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 저자는 우선 기본사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기본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며 보장하는 사회'(235쪽)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본소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나라가 국민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게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로 좀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를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로 확장한 점이 좋았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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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검찰과 언론, 혐오와 낙인의 카르텔
송요훈.이도경.전지윤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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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


중세에나 있었던 일들. 아니, 현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던 일들. 미국에서는 매커시즘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켰고, 유럽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빨갱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박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 적도 있었으니...


이름만 바뀌었지 마녀 만들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마녀 만들기가 이성과 합리를 떠나 맹목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그러한 역사를 거쳐온 우리들은 이제는 '마녀 만들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마녀 만들기'라니... '마녀 만들기'는 곧 '마녀 사냥'이 된다. 그냥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 만드는 것은 사냥하기 위해서다. 배제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므로 '마녀 만들기 또는 마녀 사냥'에서 객관성은 필요 없다. 증거? 필요 없다. 그냥 마녀라고 하면 된다.


중세 시대에 마녀라고 의심이 되면 물 속에 던졌다고 한다. 물 속에서 죽으면 마녀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되고, 살아서 나오면 마녀이기 때문에 살았으니 화형시켰다고. 어떻게든 '마녀'라는 낙인이 찍히면 '마녀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이런 '마녀 사냥'이 21세기에도 횡행한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면서 내 태도를 생각하게 됐다. 나도 역시 이 '마녀 사냥'에 가담한 것은 아닌가.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체들에서 한 사람을,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으면 그것에 따라서 나도 그들이 마녀구나 하고 말지 않았던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떤 자료를 내가 찾을 수가 있지? 대부분의 언론이 - 이 책에서는 진보 언론조차도 - 거의 같은 소리를 내는데, 자료 접근이 쉽지 않은 내가 어떻게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지? 그것이 힘들다. 이런 핑계를 댄다.


하지만 언론이 제시한 근거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던가. 그 근거들이 개관적인가? 사실로 밝혀졌는가. 아니면 언론사의 심증을, 추측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 건가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기사의 이면을 읽는 연습,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우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었다는 반성을 한다. 그러니 부끄럽지만 '마녀 사냥'에 나 역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그런 자세를 지니지 말아야지, 언론에 실린 기사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사실인지 추측인지, 일방적인 주장인지 검증된 주장인지를 살펴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반응을 하지 않고 조금 기다리는 자세, 즉 판단을 유보하고 더 살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자세를 지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마녀 사냥'에는 가담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 질문을 바꾸는 연습도 해야겠고. 이 시점에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까 등등.


마녀 사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런 구조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마녀 사냥에 가담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언론과 정치인의 문제 제기 -> 전문가와 논객의 유죄 단정 -> 극우, 보수 단체의 시위와 고발 -> 검찰의 수사 -> 언론 보도의 확대' (254쪽)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철저한 무시. 이미 마녀 사냥은 끝났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집단을 마녀로 낙인 찍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정정보도는 보이지 않는 지면에 작게 할 뿐이고, 무죄 판결이 나도 사과문 하나 없다.


그러니 마녀 사냥의 구조에서 한 단계를 더 첨가해야 한다. 바로 '재판 결과의 무시'를.


이 책은 윤미향과 정의연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들이 마녀로 낙인 찍혔으며, 그러한 과정에 참여한 정치인, 언론, 자칭 진보지식인, 검찰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마녀로 낙인 찍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정의연과 그 대표를 역임한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일어날 파장을 우려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 수구세력과 일본 또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결탁해서 마녀를 만들어내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윤미향과 정의연 마녀 사냥 이전에 조국에 대한 사냥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으며, 또한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몰아가며 분신 자살 사주 운운하는 사건(이 사건은 유서 대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과 더 이전에 온갖 조작 사건들이 있었으니... 역사를 통해서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이를 제대로 처벌하고 막지 않으면 또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크게 언론과 검찰을 개혁한다고 하는데, 하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언론에서 안 다뤄주면 되니 그것은 문제가 안 되고, 보수 단체가 시위를 하고 고발을 하는 것은 검찰 단계에서 해결이 될 수 있으니, '마녀 사냥'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언론과 검찰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대략 언론 개혁으로는 '징벌적 손해 배상, 명예훼손법 중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 폐지, 좋은 미디어에 시민들이 후원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는 미디어 바우처 제도 도입, 그리고 공공 시민 공론장 확보,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등을 들고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인데, 문제는 의지다.


검찰 개혁으로는 '억지 표적 기소의 방지와 검찰발 언론 조작을 막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와 피의 사실 공표 금지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피의 사실 공표 금지,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면 검찰과 언론 카르텔이 주도하는 마녀 사냥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281쪽)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검찰 개혁에 대 당위성은 국민 거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실행하느냐만 남아 있는데...


특정 정치권과 언론, 검찰의 유착 관계를 끊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구조가 정착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마녀 사냥을 완성하는 데는 '시민'들의 동조 또는 침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 되도록 개인은 자기 성찰의 자세를 지녀야 하고 정치권을 비롯한 거대 권력을 감시하는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깨어있는 눈, 그것이 궁극적으로 제도 개혁을 이끌어내어 '마녀 만들기와 마녀 사냥'을 막을 수 있다.


마녀 사냥에 관한 문학 작품으로 아서 밀러의 [시련]이 있으니 그 작품을 이 책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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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노한동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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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한다고? 무능하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참 열심히 일한다. 다만 그것이 국민들의 생활 향상과 별 관계가 없어서 그렇지. 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참 유능하다. 그것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발휘되어서 그렇지.


공무원들의 안위를 위해서 발휘되는 부지런함과 능력은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해야할 일,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실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일은 미루고, 하지 않아도 될 일, 이 책에서 말하는 가짜 노동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관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관료라는 말을 자기 집단의 정체성에 빠져 다른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오로지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런 집단을 의미하는 쪽으로 쓴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관료였다. 철저한 관료 사회. 무사안일. 아니 복지부동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창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책임은 큰데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을 잘못했다가는 철밥통이라는 공무원들도 법원에 가기 일쑤다. 그러니 누가 나서려 하겠는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온갖 조항을 들이대어 미적미적 일을 미룬다. 그러다 보면 자신은 다른 자리로 가게 된다.


고위 공무원들이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동한다는 사실, 그래서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길러지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는데... 그것이 비리를 막기 위한 방법이고, 승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겠지만 공무원들을 전문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료로 남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장,차관들이 겨우 1,2년하고 물러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눈에 띄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 일이 눈에 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려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전문성이 있으면 일회성 정책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왜냐고? 결말이 뻔히 보이니까. 그러니 선심성 정책이 아닌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공무원 사회의 구조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여 말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조가 그런 쪽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공무원 개개인의 품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이러한 구조를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지금처럼 가면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는 관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변화 없이 하는 일만 하는,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갈 수 없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낸다고 문서로는 늘 보여주는 그런 사회. 


정말 국민을 위하는 공무원들이라면 그들을 우리는 관료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사회 역시 관료 사회가 아니라 공직 사회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공적으로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곳, 공직 사회.


이 책의 저자는 소위 고위 공무원이었다. 안정된 직장이었다. 게다가 4급 서기관으로 승진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의 삶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문제를 이 책에 풀어냈다.


자신도 몸담았던 공직 사회가 관료 사회로 지속되면 안 된다는 생각.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공무원 사회는 공직 사회가 아니라 관료 사회로 굳어질 수 있다고, 하여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이 책에서 솔직하게 풀어냈다. 왜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지를.


사실 유능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하여 제도와 구조 개편부터 시작하여 공무원들에게 적절한 책임과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무엇보다 이제 새정부의 장차관들이 취임할 것이다. 그들이 먼저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한 부서의 장들이 공무원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야 그들 역시 선심성 정책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고 공무원들이 무능하다는 생각, 일을 열심히 안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유능하다. 또 열심히 일한다. 다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그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유능한 열심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발휘된다는 사실. 그러면 공무원 사회는 강고한 관료 사회가 될 수밖에 없음을... 


공무원 사회는 관료 사회가 아니라 공직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 역시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만 유능하고 부지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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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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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화성에 보내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화성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거대 기업 운영자도 있지만, 그것이 가능해졌다 치자. 화성은 지구와 중력도 환경도 모두 다르다. 그런 곳으로 당신 자녀를 보내겠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지구에 적응된 몸이 화성에 가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아무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많은 변화를 겪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더욱 커다란 변화,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당신 자녀를 화성에 보내겠느냐는 질문.


뜬금없이 화성이 나온 것 같지만 아니다. 화성에 이주하는 것이 지금 과학기술로 어느 정도 가능해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이 지구에 그러한 화성이 만들어졌음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구에 있는 화성, 즉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지구와 달라진 지구를 만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지털이다. 더 범위를 좁히면 '스마트폰'이다. 내 손 안에 있는 컴퓨터이자 고해상도의 사진기, 음악 플레이어, 텔레비전 등등의 역할을 모두 하는 기기. 언제 어디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니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보게 만드는 기기.


이 기기에 잠식당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화성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편리함에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2010년 이후에 전세계에서 청소년들의 우울과 불안이 급증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다가 바로 '스마트폰'에서 즉 '디지털 세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상관관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것은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라고 한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불안과 우울 증세가 심해졌고, 그것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인데... 단지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변한 세상이라고 하겠다.


놀이를 중심으로 하던 아동기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하는 아동기로 바뀌었고, 이를 '아동기 대재편'이라고 이름짓는다.


아동기가 대재편되었는데, 이것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26쪽)'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근거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는데,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는 미국에서 아동을 홀로 두게 하지 못하는 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녀를 차에 홀로 두고 쇼핑을 해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현실, 아동이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어도 아동학대가 되는 과잉보호.


그런데 반대로 가상 세계, 스마트폰으로 들어가는 다른 세계에는 보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연령 제한이 있는 사이트도 감시를 별로 하지 않아 자유롭게 아동들이 접속할 수 있으며, 어른들이 규제를 한다고 해도 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 가상 세계에서는 보호가 거의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만 그런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현실 세계 과잉보호는 지금 심각하다. 특히 학교에서... 걸핏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들을 보라. 신고당하는 부모보다 교사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데...


아이를 남게 해서 상담을 했다고 정서 학대로 신고하는가 하면, 무단 외출을 하는 아이를 막고 나가려는 아이 팔을 잡았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고 학대라고 신고하는 부모들도 있는 현실.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거부하겠는가.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나면 신고당하는 사람들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육적 활동에서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무엇도 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체험학습같이 학교를 벗어난 다양한 활동을, 또 또래끼리 방을 함께 쓰면서 잠을 자고 함께 이야기하면 활동을 하는 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과잉보호다. 아이들을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는 과잉으로 보호하면서, 스마트폰의 사용은 어떤가? 부모들이 감시하기 힘들다. 또한 스마트폰을 주어서 부모들의 돌봄 노력을 줄이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온갖 문제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일어난다. 


저자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네 가지 기본적인 해악은 ...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174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스마트폰에 눈을 주고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게임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스마트폰 세계 즉 가상 세계 속에서다. 현실 세계에서는 더 많은 접촉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 수면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하려고 애를 쓰는 아이만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정신이 스마트폰에 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는 중독 수준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해악을 주는 스마트폰 세상은 가히 '화성'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화성으로의 이주'를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저자는 빨리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어른들이 먼저 정신차려야 한다고... 부모와 학교와 나라(정치)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그 방법은 참 단순하다.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 수많은 어린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또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 법률로써 제도화해야 한다. 이 점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 넘어갔다고 하는 판에, 가능할지... 참.


그래도 저자가 주장한 아주 단순한 해결책을 보자.


1.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2.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 금지

3.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4.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하기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말하라, 연결하라'고 한다. 알려야 한다. 사실 알고는 있지만 먼저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과감하게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 역할을 하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라고. 홀로 할 수는 없으니.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홀로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부모가 있으면 아이 역시 고립되지 않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법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걸핏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로 정비해야 한다고... 이것을 말하고 연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상 세계에서 아이들이 벗어나 현실 세계에 발딛고 지낼 수 있게 하는 방법, 이것은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방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방법에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얼마나 효과적인가? 문제는 실행 의지다. 부모와 학교, 나라(사회)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지니고 이것을 실행하느냐다. 


이 실행이 더 늦어지면 우리 아이들은 '화성'에서 살게 된다. 몸과 마음이 '화성'에 맞게 변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지만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은 '지구'다. 그러니 마음이 아플 수밖에. 불안과 우울에 시달릴 수밖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느껴왔던 스마트폰으로 인한 문제들을 잘 정리했다는, 해결책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육에 목을 매달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연결이 되겠지. 적어도 이 책은 문제를 크게 말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들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들이 정치인에게 압력을 넣어야 법과 제도가 바뀔 테니. 최근 교육부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스마트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청소년 단체로 있다고 하고, 인권과 책임, 그리고 사회의 미래. 


교육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 (관련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과 같은 책들을 참고 서적으로 하여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하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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