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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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책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문해력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문해력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문해력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듣기'를 떠올렸다. 듣기가 문해력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 중인데, 듣기를 못하면 제 말만 한다. 제 말만 한다는 것은 제 이익만 챙긴다는 말이다.


왜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과 듣기를 떠올렸을까? 우리는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또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면, 내 관점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 들으면, 문해력과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엉뚱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성폭력으로 고소를 당하면 가해자는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재판과정에서 성폭력은 묻히고 다른 쟁점들이 떠오르고, 피해자의 태도 등을 문제삼기도 하고, 권력과 자본이 부족한 피해자에게 이중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중부담으로 소송을 하기 힘든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그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이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사람은 없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죄를 벗어나거나 경감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변호사를 사고, 각종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성폭력 역고소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법을 활용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지지하는 가족, 주변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37


명예훼손은 이제 약간 산업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피해자의 말) 43


성폭력 역고소가 강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를 더는 참지 않고 법의 안팎에서 고소나 공론화 등으로 실천하는 피해자들의 문제제기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제도들은 실효성이 부족한 반면, 역고소와 관련된 법의 구성은 이미 가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45


성폭력상담소를 찾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보다 자원이 적거나 법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67

가해자의 방어와 피해자의 권리는 불안감을 강조하는 성범죄 전담법인의 홍보와 고객유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자원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74


성폭력은 법적 해결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과 관행화된 감형,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는 통념,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특징 등을 보인다. 75


민주적 정치의 공공 영역이 약화되는 맥락에서 사법적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78


가해자들을 조력함으로써 금전적 이윤을 얻는 법인, 그러한 법인들을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 및 학자들, 심지어 심리상담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 이들의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성촉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137


성폭력은 경제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138) ...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만들어내고 있다(139) ... 재판부는 법시장화를 촉진하고 있다(139)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억울함의 서사, 미투운동에 대한 거부감 등이 확산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140)


이런 내용들을 보면 성폭력 사건에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인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자는 이중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해자에게 여러 가지로 감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법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상황에서 피해자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과 법적 공간의 주체로서 피해자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18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해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피해자는 그것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 그런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이런 듣기와 문해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고 하는데, 재판부가 아닐까 한다. 판사를 비롯한 경찰, 검찰들. 이들에게는 피해자의 말을 잘 들을 듣기 능력과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이것들의 바탕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고.


마찬가지로 억울한 가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겠지만 법인도 이윤만을 위해서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이윤을 위해서 일을 하는 순간, 성폭력은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을 했으면 한다.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공감과 지지의 기록이고 앞으로의 연대와 투쟁의 결의문이다.'(355쪽)라고 하고 있다. 공감과 지지, 연대와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피해자의 치유를 산업화하고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를 용인하면서 법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탈정치화되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 P221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가해자가 합당한 징계/처벌을 받고 반성/성찰하고, 피해자는 피해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일상으로 회복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사회의 인식과 문화, 때로는 구조적 틀과 내용이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23

성폭력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에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분야 중 하나로서, ‘성적인 폭력을 둘러싸고 사람의 몸과 인격, 기억과 정체성, 감정과 합리성, 자율성과 관계성, 제도와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접근 속에서구조화되는 개인적 경험이자 한 시대의 담론적 형성물이며, 집단적으로 이해되고 구성되는 정치적 구성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 P332

성폭력 정치란 성폭력을 탈정치화하는 담론적 질서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페미니즘 투쟁으로서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과 역동적 실천의 양식들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 P333

실천적 제안

첫째, 변호사 시장의 무분별한 홍보와 고소 남용에 대한 변호사 업계 차원의 규제와 노력이 필요하다. 337
둘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에 저항하기 위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339
셋째, 법조인들의 성인지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339
넷째, 성폭력 역고소 수사와 판단의 과정에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340
다섯째,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341
여섯째, 조직 및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공유된 책임으로 인식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을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과정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342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치 질서에 강력한 저항이 필요하다. 343-344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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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 - 통권 186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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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를 중심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피는 책이다. 


삶에서 꼭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한데, 생태위기라는 말은 많이 한다. 지금 기후만 봐도 그렇다.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예측불능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욱 걱정이 되는데, 기후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되지만 의료는 생태, 환경과 잘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아, 의료도 바로 생태, 환경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인간의 삶에서 생태, 환경과 관련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정치나 경제도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하고 나서는 지금, 단순히 그들의 진료거부를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가 원하는 의료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를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늘리는데 반대할 필요는 없다. 의사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의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생각하면 공급이 늘면 수요에 여유가 생겨 가격이 내려간다. 의사 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진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고, 의료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참 단순한 발상이다. 오히려 의료 수가는 올라갈 수 있다. 자신들의 손익비용을 맞추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 수를 이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녹색평론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적다고 한다. 이건 객관적인 지표라고 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방향은 맞다)


그러니 지금의 의료 문제를 단지 의사 수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의사 수에 있지 않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병원이 거대한 성채처럼 사람들의 삶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굳이 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면 된다. 이런 장소가 있으면 치료가 중심이 아닌 예방이 중심이 된다. 즉 환경과 생태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질병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의료가 생태, 환경과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의료는 환경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그들과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의료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지방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멀리 도시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또한 의료 활동이 주로 사적인 병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공의료 자체가 이미 부족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의사 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정 과에 몰리는 현상, 공공의료 현장으로 가지 않는 현상 등등을 염두에 두고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의료 공백이 큰 지역부터 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환경, 생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는 글이 있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일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모가 쓴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다. 사실 기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잘 실행이 되지 않아서지 충분히 실행 가능한 일이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는 '마을 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이란다. 마을 진료소가 설치되면 시골 사람들이 멀리 도시까지 갈 필요가 없다. 또한 오랜 시간 방치될 일도 없다. 그런데 의료법에 문제가 있단다. 아니 의료법의 기타 사항을 잘 활용하면 될 텐데, 복지부동이라고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는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는 진료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예외 규정 3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76쪽)


이 법조항을 살리면 마을회관에 진료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공공의료가 아니고 무엇인가. 굳이 병원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 되니. 그러면 환경파괴를 할 필요도 없다. 


병원이 먼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또다른 건설로 환경을 침해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석이조인데... 참...


둘째는 '이웃복지사'란다. 그렇다. 바로 이웃들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웃복지사는 함께 사는 이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웃들의 사정을 잘 안다. 이들이 의사가 진료를 왔을 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면 진료는 훨씬 수월하다. 


그런 점을 정부가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개혁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마을 진료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의료 확충에 필요한 의사 수도 증원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수익보다는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들. 그들이 많아지면 이윤보다는 환경,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이미 진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도 환경, 생태와 의료는 연결이 된다.


물론 인간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많은 질병들이 환경, 생태 파괴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치료보다는 예방 쪽에 중점을 두는 의료 활동이 더욱 필요하기도 하고.


의료 개혁에 관한 글들이 이번 호에는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의료 개혁과 환경, 생태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함을 생각하게 됐으니, 녹색평론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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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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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런 질문은 좋다. '어떻게'라는 말에는 그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는 것을 '어떻게'라는 부사어를 써서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말에는 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떻게라는 말에는 '어떤'이라는 관형어도 포함되어 있다.


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떤 어른이 되는가다. 물론 이 책에서는 청소년기에 만난 가난했던(과거형으로 쓰고 싶지만,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하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추적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많은 일들을 한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벗어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을 간 아이든,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든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 가난이라는 굴레는 너무도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끊어버릴 수가 없다. 질긴 가난의 질곡. 이 질곡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나 들어가지 않은 아이나 똑같이 겪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도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 졸업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도약할 수 있는 받침대가 없다. 자신이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껏 받침대를 만들기 위해 토대를 마련해 놓으면, 주변의 누군가가(그 주변의 누군가가 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파놓고 만다.


지속되는 가난의 굴레.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청소년시기처럼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힘든 청소년시기를 거쳐왔다. 그들은 그 시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이 책에 나올 정도면 그 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10년 동안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이들이 피하지 않았다는 말이니, 이는 10년 후에는 부자가 되어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과거와는 결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토대를 마련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이 아이들이 그런 토대를 마련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힘이다. 그들의 노력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좀더 쉽게 마련했을 그 토대를 힘들게 힘들게 마련하고, 이제 받침대를 놓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일'(278쪽)이라고 하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아이들을 과거의 잘못으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이나 과오,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역할'(256쪽)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좀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덟 명 청소년의 삶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삶. 앞으로도 가볍지 않을 그들의 삶.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런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이 어찌 이들 여덟 명뿐이랴. 이 책에 나온 청소년들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최소한의 발판도 마련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런 사람들을 개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개인 탓을 하기 전에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점이기도 하리라.


가난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가난 구제를 못하는 나라님이라면 쫓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회는 충분히 가난을 쫓아낼 수 있는 사회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10년동안 추적해서 보여준 이 책. 가난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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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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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경찰관속으로' 경찰관들이 겪었던 일들을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두꺼운 겉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제목에 쉼표가 들어가 있다. 이 쉼표의 위치가 슬프다. 아니 무섭다. 이것이 현실인가 싶은 마음이 들고, 이 책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찰, 관 속으로'라고 되어 있다.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간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경찰과 죽음이 연결되는 제목이다. 물론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본다. 그래서 그런 죽음들을 보면서 죽음의 사연, 억울한 죽음의 해원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고마운 경찰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르게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경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경찰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죽음도 의미하고, 경찰이 사회에서 죽은 듯하게 지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경찰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은 몰랐다. 몰랐다고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겠지만, 경찰이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현직 경찰관이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내었다. 글로 풀어내어 다시 경찰로 살아갈 힘, 동기를 얻었다고 하면 좋겠다.


이들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외부에서 단순하게 보면 경찰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얼마나 적은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온갖 제도들이 그들이 시민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 공권력을 행사해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이는 악성 민원만이 아니다. 그들이 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지를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강한 대응이 자칫하면 엄청난 소송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이 책에 실제 사례를 통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날개를 잘라버리고 날지 못한다고 욕하는 꼴이다. 경찰들 몇몇이 비리를 저지르고, 또 권력을 추구하는 몇몇들이 경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경찰들을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적용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제대로 지팡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은 그 점이 일선에 있는 현장 경찰들에게 얼마나 부족한지 이 책이 보여주고 있으니, 사기가 떨어진 경찰은 시민을 위해서 소신껏 행동하기 힘들다. 그 결과가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로 다가올 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당한 공무 집행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고, 그것을 개인의 용기에, 결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제도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가 정비가 되고, 경찰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준다면 더 많은 경찰들이 진정 '민중의 지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경찰들이 겪는 일들, 그들이 하는 마음 고생, 몸 고생 등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역시 당사자들이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고 고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마음이 짠해지면서 경찰들의 고충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그간 경찰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들을 깰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 이 책을 쓴 경찰 고맙다. 이 책을 읽은 지금, 경찰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경찰이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찰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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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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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그동안 쓰고 싶은 글을 써왔다고 한다. 이는 즐거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쓰고 싶은 글이라기보다는 써야만 하는 글이라고 한다. 써야만 한다는 말은 당위다.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일. 그런 일은 해야 한다. 이 책에 쓰인 글도 그런 의미에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매시절 나는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고 싶은 즐거움으로 쓴 것들이라기보다는, 반드시 써야만 한다는 요구를 느끼면 쓴 것들이다.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 (4-5쪽)


이런 각오로 쓴 글이 실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제로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과연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젊은이들이 N포세대라고 자조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어찌 젊은이들만의 문제겠는가? 그런 문제가 발생한 사회의 문제이고, 이런 문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함께 풀지 못하고 세대로 국한지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대 갈등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 넘김이다. 


세대 갈등으로 가면 서로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러한 기득권을 두고 땅따먹기 식으로 정해진 땅을 빼앗는 방식으로 갈등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세대 갈등에 이어 젠더 갈등까지 이러한 땅따먹기식 갈등은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그들을 그렇게 갈등하게 만든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함께 그 구조를 바꾸려고 해야지, 거대한 구조를 그대로 놓아둔 채로, 나만 아니면 돼 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세대 문제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다.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세대 갈등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마찬가로 젠더 갈등으로도 해결되지 않음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다.


서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그러한 점을 깨닫고, 우리를 여러 집단으로 갈라치지기 전에 먼저 인간임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문제 해결이 너의 문제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나와 너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대로 나뉘기 전에, 성별로 나뉘기 전에, 빈부로 나뉘기 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인간이 겪어야 할 일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수가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갈등의 사례가 언급되고 있지만, 결론은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말로 결론을 대신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가치와 필요를 얻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서로 의존하며 기대는 힘으로 강해지고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대체로 우리에게는 거대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며 칭송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서로의 세계가 되어줄 한 사람이면 우리의 삶은 유지된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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