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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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를 읽고 많은 내용에 공감했다. 그렇다. 이제는 집단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집단이나 공동체의 이름 속에 개인이 사라지는 시대는 아니다. 개인이 우뚝 선 시대, 핵개인의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핵개인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핵개인이라는 말이 그냥 너는 너대로만 살라는 말일까? 자립을 이야기하고, 독립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홀로라는 말과는 다르다. 자립이나 독립에는 연대, 함께함이 포함되어 있다. 고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개인은 또다른 핵개인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핵개인이 핵개인을 만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불러야 한다. 나의 이름을 알리고, 상대의 이름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불러야 한다. 그러면 서로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사회가 '호명사회'다. 이름을 부르는 사회라는 말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함께한다는 의미다. 즉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 연대를 하고 함께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함께하는 모임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직장도 이제는 하나에서 여럿으로 바뀌는 시대가 되었으니, 호명사회에서 모임은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러 모임을 기웃거린다는 말은 아니다. 모임을 갖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이미 그 모임을 할 정도로 숙련되었다는 말이다. 


즉 핵개인의 시대라고 해서 숙련된 기술, 또는 저만의 장점을 지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핵개인의 시대에는 적어도 이름을 알리고 불리기 위해서는 저만의 장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회와 산업의 혁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의 커리어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핵심은 '축적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 행위를 팔기보다 의미를 팔고, 자신의 진정성을 제공'(157쪽)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조예와 취향이 될 것이다.'(157쪽)고 하고 있다.


남다른 조예, 자기만의 취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함께한다. 대등하게. 그런 사회가 호명사회다.


이런 호명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지닌 덕목이 '투명성과 동류를 모으고 선의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을 상대에게 투영하면 상대 역시 투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가 하는 일이 가감없이 내게 전달될 때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핵개인의 시대는 당연히 호명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우리를 이루는데, 그 우리는 굳게 닫혀 있는 '우리'가 아니라 언제든지 축소하고 확장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즉 열려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호명사회라는 말, 듣기에도 좋고 머리에도 쏙쏙 들어오는 말이다. 열린 사회라는 말이 될 테니까. 또한 호명사회라는 말에서 요즘 공유 주거공간을 생각하기도 한다. 따로 하지만 함께하는 공간. 


그런데 읽으면서 명쾌한 이야기에 동감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축적해야 하는 핵개인, 자신의 이름을 지녀야 하는 핵개인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것은 개인이 어떻게 해야한다가 주를 이루는데, 개인은 바뀐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나. 오히려 이렇게 애쓰는 개인들이 나가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사회 환경,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개인의 노력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도 있지만, 소수의 개인이 성공한다고 다수가 성공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니 다수가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의무이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해야할 의무 아닐까? 


개인에서 사회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했으니, 그렇다면 다음 책에서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정치적 노력을 이야기하고, 함께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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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3-2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곳에서 늘 바뀐다고 느껴요.
꽃이름 벌레이름 나무이름 새이름
이 이름 하나를 마음에 놓으며
서로 만날 수 있고요.

kinye91 2025-03-27 09: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름을 부르면 서로의 만남이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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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미국에 공산당이 있었다고?"


매카시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카시즘이 바로 미국 사회에 속해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그 동조자들을 미국 사회에서 축출하고자 벌인 사상투쟁이었으니.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미국에 공산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 필요도 없다. 사실 공산당은 존재한다고 해도 미미한 영향력만 행사할 뿐이기 때문에... 사회당조차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공산당이라니...


그럼에도 미국에 공산당이 있었고, 그들이 힘을 발휘하던 때도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공산당이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사건은 매카시즘이 아니라 흐루쇼프가 폭록한 스탈린 시대의 참상들이라고 한다. (12쪽)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미국에서 공산당 활동을 했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지금 그들은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목이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다.  작은 제목으로는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고. 즉 한때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활동을 열심히 했던, 그것도 미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과거형이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졌다고 한다. 최근에 다시 발간되기는 했지만...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사라졌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공산주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반공주의자가 된 사람도 있고, 자본가의 삶을 사는 사람도, 여전히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분포를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사상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그때 활동했던 기억들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그런 기억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이 책은 현재에 유용하기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과거 회상에 도움이 된다고? 단지, 그것때문에 책을 쓸까? 아니다. 과거 회상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즉 한때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당이라는 조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작은 차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차이로 알고 서로를 배척하던 사람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지금-여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던 때에, 페미니즘 운동 진영에서 벌어진 차이들을 마치 적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저자는 1930-1960년대의 공산주의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걸어온 길에서 지금 걸어갈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마치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이 먼저 나왔지만 읽는 순서는 상관이 없다.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 소련에 속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 이 책에는 수많은 소련 사람들(물론 지금은 독립한 나라들 사람도 속한다. 한때는 소련인이었지만, 이제는 각자 자기 나라의 국민이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이 소련 때를 회상하고, 또 소련이 붕괴된 직후의 사회를 회상하고 있는데, 비비안 고닉이 쓴 이 책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미국 공산당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이들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 여기에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과연 개인을 누르는 조직이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직이 우선이고, 조직에 개인이 종속되면, 언젠가는 조직이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이 책에 나오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공산주의'하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으로 취급한다. 공산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종북좌파라는 말로 뭉뚱그려 하나로 취급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인지 알 수 있게 되겠지만... 한 조직에 속한 개인들도 각자의 개성이 있음을, 자신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어떤 한 흐름 속에 개인들을 집어넣으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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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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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이 해체되면서 핵가족이 대세가 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핵가족이라는 말보다는 핵개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이 책의 주장이 나왔다.


기존의 가족 개념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하면 언어가 변하고, 그 언어의 변화를 잘 따라가야 한다고, 그래서 제목이 시대예보인데, 일기 예보처럼 시대를 예보하고자 하는 글이니만큼, 앞으로의 사회는 우리가 알던 가족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서 '정상 가족'이라는 말은 설 자리가 없다. 가족에서 '족(族)'을 빼려고 하는 시대에 가족의 형태를 놓고, 정상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핵개인이라는 말을 쓴다.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로운 개인을 만나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은 기존의 가족 개념과 같을 수가 없으므로, 우리 사회를 핵가족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난 일이 된 것이다.


핵개인의 시대는 많은 것이 변한 시대이다. 기존에 고수하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을 조직이, 가족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유로운 개인이 해야 한다.


혼자 하기 힘들다면 자신처럼 자유로운 개인들과 연결해서 하면 된다. 그 연결이 바로 핵개인 시대의 핵심이기도 하다. 핵개인이라는 말에서 홀로인 개인을 생각하면 안 된다. 핵개인은 자유로운 존재지만 다른 존재와 연결된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다만, 이 네트워크가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그런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직장을 옮길 수 있어야 하고, 여러 직장을 옮기면서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는다고도 한다. 그렇게 직장을 옮길 수 있으려면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그만둘 수 있음은 무기가 된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권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남에게 의존하는 전문성이 아닌 스스로 서는 전문성, 이것이 핵개인이 지녀야 하는 기본 요소가 된다.


따라서 핵개인의 시대에는 과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깔려 있다. 새로운 권위, 자기에게서 나온 권위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돈이 많다는 이유로는 권위가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이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무시당하기 쉬운 인정 욕구에 불과하다. 소위 '꼰대' 소리를 듣는 권위다.


사회, 직장, 가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변화에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지녀야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눈 감고 있다고 사회의 변화가 멈추지는 않으니, 변화를 직시하고, 그 변화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읽으면서 명심할 말들이 많았다. 나를 돌아보기도 했고. 나는 핵개인의 시대에 과연 핵개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가?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미정산 세대'에 속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미정산 세대로서 더 할일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미정산 세대는 '앞으로는 다 돌려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만큼 다 돌려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세대'(306쪽)라고 한다.


소위 '낀 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변화는 이런 '미정산 세대-낀 세대'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세대니까. 그러니 새로운 세대를 우리와 다르다고만 하지 말고, 과거 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이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은 형평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 P64

어떤 것도 반드시 지킬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모든 것은 우리가 지금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 P77

언어에는 바뀐 세계의 질서가 담겨 있습니다. - P78

언어 표현은 현행화를 게을리 하면 다음 세대의 혐오를 받습니다. 세상을 타자화시키지 않도록 계속 사유해야 합니다. - P85

로봇의 핵심은 물리적, 정서적 행위의 자동화입니다. AI의 핵심은 지능적, 창조적 활동의 자동화입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적 활동, 지능적 활동,, 육체적 활동, 정서적 활동 그 모든 영역에서 로봇, AI와 함께하게 될 운명입니다. - P104

모든 산업 분야에서 부가가치 상승의 수준은 비슷합니다. 첫 번째 전제가 연결성, 두 번째 전제는 지능화입니다. - P129

앞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거나 숙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없애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직업이 일을 없애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본인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모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 P145

앞으로의 과업은 지금의 일을 지켜내는 데에 있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발판으로 파괴적 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 P146

권위 빅뱅으로 탄생한 핵개인은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가진 성인입니다. ~ 자체 역량 강화가 가능한 시대에 스승은 유튜브이고, 그것을 돕는 조교는 AI입니다. - P175

하이엔드(가격에 대한 고려없이 만든 최고의 디자인, 성질, 품질을 지닌 상품)는 개별성과 고유성이 교차되는 장소입니다. ~ 소량을 만들고, 단가는 높이고, 세계로 가는 것이 옳습니다. - P197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연된 보상‘입니다. ~ 연공 서열과 기수 문화 모두 이런 이연된 보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223

인구집단의 유지와 번성을 위해서라도 생로병사에 필요한 비용과 노동을 ‘공적 시스템‘으로 세밀하게 설계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 시대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립의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지원과 협력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 P237

나이듦을 판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완고함입니다. - P240

돌봄의 끝은 자립이고,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사는 것‘입니다. 각자 잘 사는 사람들이 예의를 지키며 교류할 때 의무는 경감되고 우리의 삶은 더 다채로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현명해지고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는 각자 ‘나‘를 가질 수 있는 핵개인들의 사회를 꿈꿔봅니다.
- P 263

핵개인의 시대, ‘가(家)‘는 있지만 ‘족(族)‘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P285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은 ‘서사(narrative)‘입니다. 각자의 서사는 권위의 증거이자 원료입니다.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나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입니다. - P286

탁월한 사람은 그렇게 매일 자신을 선배의 자리, 권위자의 자리가 아니라, ‘신인(新人)의 자리‘에 세우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 P289

세계의 누구도 하지 않은 고민을 계속하면 적어도 그 누구보다 앞에 선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결국 인정의 정점에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인정이 있습니다. - P297

이 전선의 앞에 서기 위해서는 희귀함을 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희귀함이 쌓이면 고유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고유성이 진정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다시 요구될 수 있습니다. 고유함은 나의 주장이고,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 P 299

앞으로는 다 돌려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만큼 다 돌려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세대가 나올 것입니다. 이들을 ‘미정산 세대‘라 부르고자 합니다. - P306

미정산 세대는 본인 몫을 미래 세대에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준비하는 새로운 핵개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 P307

권위자와의 직거래가 가능해진 것이 바로 달라진 세계의 특징입니다. - P313

지금 세대에게 더욱 필요해진 능력은 ‘리터러시literacy‘, 다시 말해 문해력입니다. ~ 새로운 시대의 문해력은 문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숫자, 이미지, 영상을 포괄한 디지털에 대한 이해로 확장됩니다.

- P314

이런 핵개인의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네트워크‘입니다. ~ 협업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협업에 있어 충분한 자기 위치와 역할을 찾아가려면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역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 P315

그만두어서 평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대등해지는 것입니다.

- P320

이기려는 경쟁에서 내려오고 보여지는 것의 구속을 벗어던질 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권위를 자신 있게 인정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꿈꿔 봅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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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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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 참 답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 '인간'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들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범주를 확정하기도 힘든데,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범주에 들지 못했던 존재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이었다.


우선 여성은 '인간'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종속된 존재였다. 과학 연구를 한다고 해도, 여성의 관점이 아닌 남성의 관점에서 연구가 된 경우가 많았고, 이는 '여성'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해러웨이의 이 책은 영장류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여성이 어떻게 배제되어 있었는지, 그러한 연구에 여성들이 참여하면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내용이다.


과학은 객관적인 것 같지만 아니다. 과학은 투쟁의 장이다. 여러 논쟁들이 겹치는 장이 바로 과학이다. 따라서 과학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어떤 관점으로 연구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니까.


여성도 남성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관점이 자리잡게 되지만, 여기에 다시 '여성'의 범주에서 비켜간 존재들이 있다. 바로 '유색인' 여성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범주에도 '여성'의 범주에서도 소외되었다.


이제는 수많은 투쟁을 통해서 유색인 여성들도 '여성'의 범주에 들게 되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현대인은 없다. 그렇다면 유색인 여성도 이제는 '인간'의 범주에 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다시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 역시 '인간'의 범주에 들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그렇다면 사이보그는 어떤가? 사이보그는 '인간'의 범주에 들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김초엽,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다 되다]란 책을 생각하게도 되는데... '인간'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해러웨이의 작업이다. 그의 '사이보그 선언문'에 이런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여전히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인간을 확장하는데 '사이보그'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러웨이의 책은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의 범주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계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경계 속에서 유동하는, 끊임없이 그 경계가 바뀌고 있는 그런 상황. 그 상황에서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있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페미니즘'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니,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인간'에 대해 지니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도록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그동안 서구에서 연구되었던 결과들과 많은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해러웨이는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이 책이 1991년에 나왔다고 하니, 지금은 이 논의에 더 많은 것을 덧붙여야겠지만, 그럼에도 방향은 의미가 있다. 


해러웨이의 글들이 결국은 '인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그 '인간'에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광활한 우주로 우리의 시야를 넓히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 몸이라는 우주 속으로 더 깊게도 들어가야 함을... 이러한 과정이 모두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해러웨이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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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
J. M. 버거 지음, 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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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그야말로 극단주의가 된다. 극단이라는 것은 복잡한 무엇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한두 가지만 남기고, 그것으로 자신이 하는 행동의 근거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남은 그 무엇으로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그 무엇을 공고하게 만드는 것들만 받아들이는 것. 아마도 과학기술이 첨단으로 갈수록 극단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 극단주의라니? 스마트폰으로 어떤 것이든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데 어떻게 극단주의가?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극단주의는 더욱 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알고리즘을 통해서 계속 보내주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찾지 않아도 내 정서에 맞는 정보가 계속 나를 찾아오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정보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내 신념은 더욱 굳어지고, 다른 신념은 잘못된 것으로 치부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안정된 사회라면 걸러지고 토론이 되며 발현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불확실성이 사회에 대두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행위가 강해지게 된다. 남을 밀어내고 나를 강화하는 것들만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단으로 가게 된다. 즉 다른 복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자신에게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극단주의로 가는 길이 된다.


하지만 극단주의를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워낙 다양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저자의 정의를 따르면 '내집단의 성공이나 생존이 외집단을 겨냥한 적대 행위의 요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념'(165쪽)이다.


즉 극단주의는 자신의 반대 편에 다른 집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집단이 자신의 집단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위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다른 집단을 없애야 한다고 여기는 신념, 이것이 극단주의를 이루고 있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신념에는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존재하게 되는데... 자신의 현재,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았는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가 없다. 


또한 양극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이미 극단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이 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맹목적으로 자기 주장만을 하는,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것들만 증거로 모은다. 그리고 그 증거들로 자신들의 이론을 정교하게 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나중 문제다. 음모론에 쉽게 빠진다고 저자가 주장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음모론이 나돌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이들은 다른 집단을 포용하지 않는다. 다른 집단을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무조건 배척한다. 그들은 무조건 잘못되었다. 그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음모론을 분쇄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집단이 있다.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온갖 인터넷방송들이 있다. 


백가쟁명의 시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들만 취사선택해서 들어도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남들 주장에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다.


극단주의는 이럴 때 발호한다. 그리고 한번 나타난 극단주의는 사라지게 하기가 매우 힘들다. 극단주의가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가 안정되어야 한다.


미래가 예측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내 생각을 돌아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한다. 남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지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경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경제를 해결하는 것은 경제만으로 안 된다. 정치가 개입되어야 한다.


정치가 손을 놓으면 경제에서 예측이 힘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불확실성에 빠져 극단주의가 들어올 틈이 생기게 된다. 이 극단주의가 한번 들어오면 너무도 거세게 들어와 틈은 더욱 갈라지고 집단과 집단에 벽이 생기게 된다. 그 다음은? 생각하기 싫다.


이 책은 이러한 극단주의를 정의하려고 한 책이다. 물론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극단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극단주의의 작동 방식을 안다면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도 찾을 수 있겠지. 


그것은 우선적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누구나 다 알고 있겠다 여기고 말은 하지 않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극단주의라 할 수 있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 우리 사회와 연관지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하기는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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