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녹색 이슈 - 미세먼지에서 탈원전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환경 논쟁
김기범 지음 / 다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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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녹색 이슈가 아니라 늘 녹색 이슈여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녹색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녹색을 무시하고 또는 생각하지 않고 달려오기만 했는데, 이제는 녹색이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면서 녹색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제논리에 갇혀서 녹색을 경시하는 경우가 있다. 녹색 성장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용어를 쓰는 경우도 있고, 여전히 원자력이 가장 싸고 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기후변화가 거의 없다고, 지구 온난화는 몇몇 환경운동가들의 억지 주장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이 있고,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갯벌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여기에 온갖 개발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니, 관광할 수 있는 권리를 내세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많고, 빠르게 이동한다는 명목으로 산에 구멍을 내는 일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게다가 주택난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고층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으니... 아직도 녹색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녹색이 점점 늘어나도 인간이 살아가기는 힘들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녹색을 계속 줄여나가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니,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녹색 이슈들이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음에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긴, 녹색당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여전히 꿈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참...

 

이 책은 5개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장마다 세 개의 이슈가 제시되어 있다.

일상, 개발과 보존, 기후 변화, 동물과 생태, 자원과 소비라는 각 장에 녹색 이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가 우리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이슈들을 가지고 사회적 논쟁이 일어나야 하고, 합의가 이루어지게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것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태양광 발전이 오히려 환경을 해친다고 주장하면서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 환경을 이용한 발전을 반대하는 집단이 있기도 하고, 온실가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제 논리로 막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 책에서 제시한 15가지 논제들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논쟁 거리가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또 우리 후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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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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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풍경이 아니라 글자 풍경이다. 글자가 풍경이 된다. 타이포그라피라고 할 수 있는데, 컴퓨터를 쓰는 우리는 폰트라는 말을 많이 쓴다. 폰트라고 하면 더 쉽게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글자라도 형태가 다른데, 그 이유는 그 지방의 풍토, 생활습관 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로마자의 형태만 살펴보아도 많은 글자체들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 글자체들이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보임도 알 수 있다.

 

로마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컴퓨터에 있는 한글 폰트만 해도 꽤나 많다. 그리고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글자체도 많이 달라져 왔다.

 

같은 소설이라도 1970-80년대에 출판된 책들의 활자체와 지금 출판되는 활자체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활자체에 익숙해져 있으면 예전에 나온 책들을 읽을 때 쉽게 눈의 피로를 느낀다. 글자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한마디로 가독성이 떨어진다.

 

현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출판사마다 자기들이 내는 책에 활자체를 달리한다. 어떤 출판사 책의 활자는 오래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또 글자들도 눈에 잘 들어오는 반면에, 어떤 출판사 책은 나무들을 솎아주지 않은 숲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것처럼 너무도 글자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어서 눈이 쉽게 피곤해진다.

 

이렇듯 글자들의 형태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문자가 인간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그 문자들이 더 잘 읽히고 의미 파악이 잘 되도록 하는 노력이 있었음도 분명하다. 그것들이 글자체로 나타났을테고.

 

우리가 흔히 쓰는 한글 글자체는 명조체라고 한다. 명조체가 궁체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명조체라는 이름에 대한 논란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조체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1916-1988)다. 최정호는 궁체 중 정체의 필법을 바탕으로 명조체를 설계했다. 즉 한글 글씨체인 궁체를 인쇄용 활자체인 명조체로 연결한 것이다. (166쪽)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대왕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한글에 대한 글자체를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최정호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것이고, 궁체들이 궁중 궁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글씨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명조체로 연결이 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글 창제과정과 발전과정에 더하여 한글이 어떤 글꼴로 발달해가는지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인식되었던 글꼴도 시대가 흐르면서 불편한 글꼴이 됨을, 글꼴도 생명체와 같이 수명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명조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서구식 근대 인쇄가 일본을 거쳐 유입되면서 당시 일본 가나 문장에 쓰인 본문 기본형 활자체의 일본식 이름이 그대로 흡수된 것 같다. '명조'는 '명나라 왕조'라는 뜻이다. 중국이 한자 글자체 중에는 '명조체'말고도 '송조체'와 '청조체' 등 시대로 구분한 이름이 있다. (168쪽)

 

'명조체'라는 이름은 여러모로 한글 명조체의 특성과 맞지 않아서, 1992년에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명조체를 순우리말 '바탕'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바탕'을 이루는 기본형 글자라는 뜻이다. 고딕체는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돋움'이라고 했다. '바탕'과 '돋움'이라는 이름은 '명조'와 '고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은 채 지금은 나란히 쓰이고 있다. (169쪽)

 

이렇게 우리 글꼴에 대한 이야기도 알려주고 있어서 우리 글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특히 도로에 쓰여 있는 글자들과 또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간판 글자들... 이것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쓰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독일차 번호판에 있는 글자체가 위조방지와 가독성을 높이는 글자체라고 하는데, 그만큼 실생활에서도, 또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시대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로 글자체 개발을 들고 있다.

 

글자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또 지식들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서, 그동안 별다른 생각없이 넘어갔던 수많은 폰트들, 또 폰트를 만든 사람, 만드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한글에 대하여 또 다른 언어에 대하여 지식의 확장을 이뤄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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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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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시오노 나나미 책을 읽게 된다. 그리스인 이야기 2권까지 읽고 3권을 이렇게 늦게 읽게 된 까닭은 이 3권이 도서관에 나중에 도착했기 때문.

 

참 단순한 이유다. 그렇지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금 늦게 읽게 되니 오히려 더 좋은 점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책을 서술하는 특징을 알게 된 것.

 

시오노 나나미는 사람을 중심에 둔다. 그래서 그리스인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등의 제목을 붙인다. 또 이 사람들이 주로 전쟁과 관련이 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세계 역사를 바꾸는데 전쟁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아무래도 세계사적 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기나 보다.

 

그가 서술하는 책에서는 위대한 인물이 이룬 업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가 그런 업적을 이루는데 함께 한 사람들은 중요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어야 하는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도 배제되고 있고. 이렇게 해서 역사를 위대한 인물이 이끌어가는 듯이, 마치 니체의 용어를 빌리면 초인(超人)을 갈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시오노 나나미는 위대한 인물이 이끌어가는 역사가 민중들이 만들어 가는 역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런 관점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번 그리스인 이야기 3권에서는 더 심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는 서양 역사에서 서양 사람들이 인식하는 영토를 인도까지 넓힌 사람이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군대를 이끌고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 것뿐.

 

하지만 이런 영토 확장에 이어 그가 이룬 것은 민족간의 융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페르시아 사람들도 중용했는데, 그것으로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물론 때이른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능력을 십분 발휘한 알렉산드로스. 그의 동방원정으로 새로운 융합 문화가 형성되기는 하지만 결국 융합의 문화가 꽃피우는 것은 로마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음을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편의 영웅 대서사시를 읽는 듯한, 전쟁이 일어나는 장면을 잘 묘사해 주고 있어서 그 자체로 흥미를 지니게 하는 책인데... 알렉산더의 전쟁 영웅으로서의 모습보다는 그가 융합을 추구하는 정치가로서 지닌 모습에 더 강조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처럼 한 사람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겨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죽음 이후 마케도니아는 사분오열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위대한 한 사람의 업적은 후대에 계승되기 힘듦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했으니... 우리는 어떤 정치를, 어떤 인물을 우리 대표로 뽑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그리스인 이야기 3권, 알렉산드로스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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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원정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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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4,5권은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카이사르가 정치가이자 군인만이 아니라 저술가임도 강조하고 있는데, 그가 쓴 대표적인 책이 '갈리아 원정기'와 '내전기'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 부분을 읽었으니 '갈리아 원정기'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마침 도서관에도 책이 있다. 카이사르가 간결한 문체를 구사했다고 하는데, 번역이라고 하지만 문체가 간결함은 알겠다. 또한 서술에도 군더더기가 없음도.

 

카이사르가 왜 갈리아 전쟁을 했는지는 그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은 분명 당시 로마 사람들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서술했으리라. 그러니 그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할 수가 없지만, 한 가지 그는 로마를 좀더 강한 평화를 유지하는 나라로 만들기를 원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갈리아는 여러 부족으로 흩어져 있지만, 그 때문에 로마에도 언제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부족이었고, 이들은 게르만 족과 연합하거나 아니면 게르만 족에 쫓겨 로마 쪽으로 몰려와 로마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로마에 완전히 종속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갈리아 족들의 풍습, 성향 등을 철저히 연구한다. 갈리아 족은 뭉치면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와 또 강대한 군대를 거느리겠지만 이들은 각 부족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하나로 합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렇게 여러 갈리아 족들과 전쟁을 하는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전쟁이라기보다는 갈리아 족에서 보면 로마 침략기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로마 입장에서 보면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함으로써 로마 국경을 확장한 것만이 아니라 로마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게 한 사람이 된다.

 

카이사르의 성공기가 바로 이 책이지만, 이 책에서 한 가지 카이사르의 성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이 책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료(史料)들을 바탕으로 했겠지만, 카이사르는 항복한 부족을 무조건 처벌하지는 않는다.

 

적장이라고 해도 목숨을 무조건 뺏지도 않는다. 그는 목숨을 뺏음으로써 그 부족들의 원망을 사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로마인을 해치거나, 약속을 두 번 이상 어긴 부족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을 하지만.

 

평화를 전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모순되지만, 전쟁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원망, 증오가 남도록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총 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편까지는 카이사르가 썼다고 하고, 8평는 히르티우스가 썼다고 한다. 카이사르로서는 7편까지가 갈리아 전쟁의 핵심이고, 8편에 서술되어 있는 일들은 뒷마무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뒤의 일들이 글을 쓰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투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갈리아 인들의 성향으로 보아 지금 유럽이 많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로마 역사에 대한 1차 사료로서 이 책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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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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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계속 헷갈렸다. 카이사르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었어?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 읽었던 위인전기에 있던 인물이니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맞는데, 어릴 적 기억과 역사 시간에 배운 기억과는 다르게 이 책이 읽히는 까닭이 무엇일까?

 

상권에서 느끼지 못했던 헷갈림,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르의 모습. 카이사르는 내게는 시저로 다가왔다. 다음이 케사르, 그리고 지금에서야 카이사르로 다가오는데, 발음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가 자꾸 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생각할거리.

 

1. 민중파 지도자가 독재자가 된다?

2. 난세에는 법가가 평시에는 유가가 득세하는 것 아니었나?

3. 정치적 재능과 군사적 재능, 그리고 지적 능력과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이 일치하지 않으면?

 

카이사르는 분명히 민중파다. 원로원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원로원을 개혁하려고 한다. 원로원이 귀족정치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데 일치단결해 있다.

 

원로원을 우리나라 국회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국정을 이끄는 한 축에 국회가 있는데, 그 국회의원의 숫자가지고 논란이 많다. 선출 방식 가지고도 논란이 많고. 예전 로마도 그랬다. 그 놈의 원로원 의원들이 제 권리를 지키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참.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개혁하려는 세력이 맞붙으면 결국 힘을 지닌 쪽이 이긴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에 있는가? 군사력? 아마도 카이사르 시대 로마라면 군사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군사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폼페이우스같은 사람도 카이사르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에 의하면 카이사르는 군사적 재능에 정치적 재능까지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니, 그가 그 시대에 우뚝 설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카이사르는 민중파의 대표로 원로원을 무력화시킨다. 그가 원하는 로마의 방향에 원로원은 이미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을 무력하게 하면서 자신이 종신 독재관이 된다.

 

국회가 제 구실을 못하니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해 자신의 집권을 영구화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차이는 카이사르는 이제 막 제국이 되어가는 로마를 이끌 방향으로 종신 독재관이 되려 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을 물려주어야 할 때 물러나지 않고 그것을 꼭 그러쥐려고 했다는 데 있다. 역사에서 누가 평가를 받는지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명확하다.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결국 독재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관용을 바탕으로 한 독재라고 해도 독재는 독재다. 카이사르가 민중파로 불리는 것은 로마가 더 지속해가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삶이 나아지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것을 카이사르가 실시했기 때문이다. 귀족정치를 대변하는 원로원을 견제하는 쪽에 섰기 때문이기도 하고.

 

카이사르가 정권을 잡았을 때, 당대 지성인라고 할 수 있는 키케로는 카이사르 반대편에 선다. 그는 철저하게 원로원 중심의 정치를 원한다. 지식과 교양이 넘치는 키케로임에도 그는 귀족정치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그에게는 정치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안락한 생활에 빠져 민중들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달리는 차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꼴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고 잠깐 기쁨에 차 있던 그 역시 죽임을 당하니 말이다. 하지만 키케로가 꼭 잘못 판단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가 귀족정치에 눈 멀어 민중을 중심에 두는 정치에 무관심했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그는 민중들의 삶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다만, 그가 제정을 그렇게도 반대했던 이유는, 제정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너무도 막강한 권력을 준다는 데 있다.

 

늘 능력있는 황제가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고, 황제는 선출이 아니라 세습이니 갈등이 있고, 조금 더디더라도, 또 기득권을 누리려고 하더라도 많은 숫자 때문에 서로 견제가 가능한 원로원 중심의 정치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키케로를 시대 감각이 없는, 시대를 내다볼 줄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이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 카이사르는 관용을 베풀어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용서해주었다. 로마인이 재판도 없이 사형당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가 종신 독재관이 되어서 한 일도 원로원 의원들의 서약을 받고 경호원들의 호위 없이 다니는 일이었다. 반대파에게도 이전 권한을 그대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법의 기반 위에 관용이라는, 법가라는 토대 위에 유가의 정치를 펼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역사는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법으로만 제국을 이끌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구 소련이 무너지게 된 이유, 민중파들이 정권을 잡고 종신 독재관이 되고, 법을 정비해서 반대파들을 숙청했지만, 결과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는 것. 즉, 법만을 중시하면 유연함을 잃고 경직되기 쉽고, 경직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데...

 

관용 정치를 하려던 그를 암살한 사람들이 별다른 대책도 없이, 그저 한 사람을 제거한다고 해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황제가 로마에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했다고 하지만, 이들의 암살은 옥타비아누스에게도 이어서 로마는 제정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카이사르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옥타비아누스. 기억은 참 얄궂어서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 암살 당시 겨우 18세였음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겨우 18살의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가 죽어서야 유언장에 의해 양자로 입적이 되고, 그때부터 그가 여러 위기를 거치고 로마 최고의 존재로 서게 됨을 모르고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의도적으로 했든 아니든 그가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목한 이유는 군사적 재능보다는 정치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니...  

 

아마도 카이사르는 자기 대에서 전쟁을 끝내고 이제는 평화시대가 된 로마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종신 독재관으로서 로마를 이끌어가지만 그는 명확하게 로마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판단하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꽃을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피우게 되지만.

 

이렇게 먼 후대에 과거를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이미 흘러온 역사를 토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맞서 그 흐름을 막으려던 사람도 있다. 그때는 시대를 읽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았겠지만 먼 후대에는 오히려 현대를 예측한 선구자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다.

 

귀족정치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작은 나라에서 패권국가로, 제국으로 넘어가는 로마의 격동기... 그때 등장한 인물, 카이사르.  그가 한 일과 그의 운명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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