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상상력 - 나무 인문학자의 숲 산책
강판권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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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 또 나무를 보고 숲을 보고, 그러다가 사람을 보고, 삶을 보고...

 

숲을 여행한 기록이다. 우리나라 멋진 숲들을 찾아 거닐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냥 마음을 비우면 된다. 저자는 '마음의 소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인 '소도'를 마음에 만든다면 어떤 일을 겪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숲에는 온갖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모두 예쁘게 곧게, 크게, 굵게만 자란 것은 아니다. 나무는 자라면서 주변에 따라 비틀리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나무들을 저자는 볼품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나무들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치열하게 살아간 아름다움. 그리고 자신은 구멍나고 죽어가더라도 주변 다른 생명들이 자신에게 깃들게 하는 나무들. 또 줄기 기둥에 커다란 구멍이 났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기도 한다.

 

나무는 독불장군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 어울린다. 그렇게 나무들이 어우러질때 숲이 만들어진다. 숲은 그리고 또다른 생명들을 받아들인다. 바로 인간들. 자신들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숲은 배척하지 않는다. 그 또한 자연의 섭리인 양 받아들인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한 말 중에 이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간은 나무 없이 살 수 없지만 나무는 인간 없이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인간의 쓸모에 의해 나무들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또 좋다고 소문난 곳, 곧 인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들이 발길에 의해 숲은 파괴되고, 나무들은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나무들은, 숲은, 다른 생명들은 인간들을 받아들인다.

 

숲에서 나무에서 그런 함께 살아감을 배워야 한다.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강건함도, 장애물을 피해가는 유연함도, 다른 존재에 기대어 사는 모습도, 죽어서도 다른 존재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에서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숲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나무를 보면서 우리 삶을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숲들, 나무들...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또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나무는 치유의 기능을 한다.

 

그런 나무와 숲에 대한 이야기... 책의 끝에 실려 있는 '맺음말'에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우리가 나무를 아끼고 숲을 아끼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숲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할일이 '나무 이름표 달기'라고 생각한다. ... 나무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바로 이름에 있기에 나무 이름표는 중요하다. 그런데 나무 이름표에 넣어서는 안 되는 정보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약효다. ... 대학 캠퍼스는 숲을 학습의 장으로 삼기에 아주 적합하다.  (268쪽)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무 이름표, 중요하다. 산에 가도 또는 수목원에 가도 나무들에 이름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일까 하지만 알아볼 수가 없다. 물론 나무나 다른 꽃들의 이름을 찾는 사이트도 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본 그 나무나 꽃들에 이름표가 붙어 있다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또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학교 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아니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나무맹, 식물맹, 꽃맹이 되는지 모른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오랜 시간을 생활하는 그 장소에 나무들과 꽃들이 많은데 제대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그냥 없는 것처럼 모르고 지나간 경우가 너무 많지 않나. 철들기 시작할 무렵, 청소년기에 학교 교정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보는 여유를 지닐 수가 있나? 학교에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대학 캠퍼스에는 웬만한 숲들이 있다. 그 숲에 제대로 된 이름표를 붙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는 대구 시내 몇몇 공원에 나무 이름표를 달았다고 한다. 어떤 것들이 이름표 속에 들어가 있을까? 바로 이것이다.

 

이름의 의미, 상상력을 키워주는 신화, 관련 시들 (269쪽)

 

좋다. 이런 이름표들이 곳곳에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선 학교에서라도 이런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학생들과 나무를 찾고 이름을 알고,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 정리해서 나무 주위에 이름표를 만들어 놓는다면 자연스레 상상력뿐만이 아니라 감수성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런 것이 바로 교육 아니겠는가. 저자가 주장한 것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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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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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0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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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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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관한 책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말에 대해서 많이 무심하게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늘 쓰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여기면서 우리말에 대해서 더 깊게, 더 넓게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쓰는 말들 중에 이상한 말이 있어도,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가 함부로 쓰여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우리말이 오염된다는 말을 한글날만 되면 듣고, 한글날만 되면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말들이 나돌아다니기도 하지만, 나머지 날들에는 우리말에 대해서 고민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작년 수능에서 국어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국어가 어려운 이유는 배경지식이 작동해야 하는 지문이 엄청나게 길어진 데도 원인이 있겠다. 또 배경지식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어휘에 대하여 많이 알아야 하는데, 과연 학생들 어휘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방법도 없어 제대로 측정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영어사전에는 중고등학교 또는 대학교까지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가 표시되어 있는데... 우리말 사전에는 그런 것이 없다.)

 

어떤 연구결과는 집에 있는 책의 수와 학생들 언어 능력 또는 국어 능력이 비례한다고 하던데,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경제력과 학업 성취도가 비례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경제력이 있는 집들은 책도 많을 것이고 시간도 있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다른 경험도 많이 시켜줄 수 있을 테지만, 경제력이 없는 집들은 책도, 시간도, 다른 경험도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학업 성취에서 차이가 날밖에...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웬 학업 성취... 단어의 사연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인데... 단어들을 많이 알면 표현력이 좋아지고, 또 단어들을 많이 알면 이해력 또한 높다고 봐야 한다. 굳이 비트겐슈타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반대로 모르는 것은 표현할 수 없다. 이 말은 표현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는 것이 많다는 얘기다.

 

알고 있는 단어의 수는 결국 지식의 양이다. 지식의 양은 곧 지식의 활용으로 바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 단어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중요하다. 단지 학업 성취만이 아니라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범위를 더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 참 고민 많이 했던 철학자, 그는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다 결국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칸트가 만들어낸 용어,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미궁의 세계,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이미 존재하는데도 언어가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칸트의 물자체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 인식이 이미 도달한 지점에도 자신이 못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력이 이렇게 어휘력까지 좌우하지 않게 해야 한다. 적어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또는 사회 기반-도서관 등-을 통해서... 책을 읽을 시간을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주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언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또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또한 우리말에 이런 점이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말의 모습들이 있음도 알게 된다. 여러모로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 역시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세상에, 이렇게 잘못 알고 당당하게 썼다니... 부끄러웠는데,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랴.

 

그 말은 바로 '양반은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와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낱말은 '겻불'과 '씨알'이다.

 

난 당연히 '곁불'이라고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불을 쬐는 것이라고, 그것은 양반 체면에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곁불'이 아니라 '겻'불이란다. '겨'에 사이시옷(ㅅ)이 붙은 말. 왕겨와 같은 것을 태울 때 제대로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양반은 지지부진한 불을 쬐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184-185쪽)

 

마찬가지로 '씨알'을 '씨앗'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베틀에서 '씨'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베틀에서 옷감을 짤 때 가로줄은 씨, 세로줄은 날이라고 한다. ... 씨가 날에 잘 먹어야 옷감이 잘 짜이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바로 '씨가 안 먹힌다'고 말한다. ... 여기서 씨가 베틀의 씨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씨를 '씨앗'으로 알고 '씨알'로 바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를 말하게 됐다. (185쪽) 

 

자주 쓰는 말임에도 잘못 알고 쓴 대표적인 말 두 가지였다. 물론 이 책에는 더 많은 말들이 나온다. 처음 알게 된 말들도 많고... 또 이 말은 꼭 써봐야지 하는 말들도 있고.

 

그렇게 우리말에 대해서 더 많은 사연들을 쌓아가게 한 책이다. 좋다. 우리말을 많이 알아간다는 것, 우리 문화를 많이 알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단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차원에서도 우리말에 대해 알아가는 것,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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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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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책. 그러나 읽지 않았던 책. 어렸을 때 읽었던 로마 관련 책들로 만족하며 지낸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또다른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여기에 우연찮게 그리스인인 카잔차키스가 쓴 자서전을 읽고,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한번 주욱 훑어보고, 이제는 로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스 다음에는 로마다.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붙여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시대가 끝나갈 때 트로이 멸망이 나오고, 이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인의 시조가 된다는 그런 서사시도 있으니, 로마에 대해서 읽어볼 차례다. 물론 예전이 읽은 로마 관련 책도 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도 있었고, 어린 시절 너무도 감명 깊게 읽었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있었고, 기타 등등 여러 책이 있었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또다른 세계로 날 인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도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인물을 중심으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역사를 좀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지 않은가. 지금 읽어도 그리 손해볼 것은 없는 책이지 않은가. 이제 천천히 올 한해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권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렇다. 로마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겠는가. 온갖 우연들이 모여 필연이 되어 세계 최강대국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아주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제국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겠는가.

 

시오노 나나미는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을 로마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좀더 길게, 그리고 정통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이야기한다. 신화와 역사의 차이. 그러나 신화는 곧 역사가 된다. 사람들이 믿고 자신들 민족의 신념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로마인은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로물루스이고, 그 로물루스는 트로이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리스와 교류를 갖기 시작한 뒤, 로마인은 트로이 함락이 기원전 13세기 무렵의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로마인은 400여 년의 공백을 메울 필요에 쫓겼지만, ...  (20-21쪽)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이네이아스로부터 로물루스까지 수많은 왕들의 이야기를 로마인들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화를 역사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랴? 실질적인 로마 창건자는 로물루스이고, 그것은 기원전 753년이라고 하니...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한 로마는 약탈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아내들을 사비니 족으로부터 약탈해온 로마인들. 초기 왕들이 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것 (참 신기하게도 이 시대에는 사람들 수명이 짧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로마 초기 왕들을 보면 재위 기간이 보통 30년이다. 왕이 될 때가 보통 30대일텐데... 기본적으로 70까지는 살았다. 고대 인간들의 수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처음 장면들이기도 했다) 은 이런 약탈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왜 로마는 계속 융성했을까?

 

약탈만을 일삼았다면 결코 융성할 수가 없었을텐데... 이 책에서는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빌려 로마가 융성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   (39쪽)

 

이렇듯 로마는 개방성, 포용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승리한 다음 무조건 죽이거나, 배제하거나 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주거나 또는 살길을 열어주는 방식. 그러니 로마가 승리하더라도 패한 쪽에서는 로마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노예조차도 해방시켜주고, 해방된 노예 자식들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시대보다는 한참 뒤로 가지만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노예로 잡혀간 벤허가 해방되어 유산을 물려받고 다시 행세하게 되는 그런 일들, 그것이 영화에서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라 로마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정리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투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로마인의 진정한 자기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이 개방성이 아닐까.  ......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 2천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 있는 유적도 아니며,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하여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278-279쪽)

 

이렇게 로마인의 장점을 이야기한 다음, 현대인을 비판한다. 그래, 지금 현대 제국들은 어떤가? 그들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폐쇄를 택하고 있지 않은가. 말로는 지구촌이라고 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문을 꼭꼭 닫는 더욱 폐쇄적인 정책을 펴고 있지 않은가.

 

눈으로 보이는 장벽들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가 하루에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더 폐쇄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이 말은 마음을 때린다.

 

우리 현대인은 어떠한가. 그로부터 2천 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통치에 있어서는 능력보다 이념에 얽매이고,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일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279쪽)

 

남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역사를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여기를 돌아보는 눈을 갖는 것. 지금-여기를 바로 파악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 로마인 이야기 1권은 이점을 더 생각하게 한다. 아주 먼 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로마 건국에서부터 약 500년의 세월을 다루고 있다. 책 제목답게 인물을 중심으로 로마 역사를 풀어가고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다만 흥미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여기를 바라보게도 해주고 있으니, 지구촌 또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로마 건국 시기가 머언 과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사적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 역할도 하고 있다.

 

또 인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 민주정치와 로마의 정치제도를 비교하기도 한다. 지금 관점에서 옛날 정치체제를 판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고대 역사학자들은 그리스 민주정치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리클레스와 로마를 다시 제정으로 이끈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를 거의 동등한 업적을 이룬 정치가로 보고 있음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는 그리스에 어울리는 정치제도를, 로마는 로마에 어울리는 정치제도를, 그리고 그 시대 정치제도에 걸맞는 훌륭한 인물들이 등장했음을, 그것이 바로 한 나라가 융성하기 시작할 때쯤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이런 우연들이 결국은 역사라는 필연으로 이끌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음 권으로 계속 여행을 하자...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끈기있게. 로마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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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8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책 때문에 결국
로마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 시간을 들여 완독한 기억입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감회가 무량했다는.

지금은 작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아예 끊게 되었지만요.

kinye91 2019-02-18 19:40   좋아요 0 | URL
저도 천천히 완독해 볼 작정입니다. 그냥 제목만 알고 넘기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카알벨루치 2019-02-18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카이사르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멈춘 기억이 납니다 레삭매냐님 로마까지 움직이시다니 역시👍👍👍
 
우리 괴물을 말해요 - 대중문화로 읽는 지금 여기 괴물의 표정들
이유리.정예은 지음 / 제철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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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고 그것을 우리와 분리하기 위해 '괴물'이라고 부른다.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배척해야 하는, 제거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미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없는, 함께 할 수 없는 존재, 그 존재가 '괴물'이다. 그래서 '괴물'은 퇴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괴물'은 언제라도 다시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성과 합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인식이 도달하기 힘든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괴물'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형태를 달리 해서.

 

이 책은 대중문화에서 만날 수 있는 '괴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괴물'을 이야기한다. 뱀파이어, 좀비로 시작한다.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 한다.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이나 영생의 문제를 '괴물'의 모습을 통해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가 색다른 괴물이 나온다. 이를 괴물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우습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될 때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팜므 파탈'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존재.

 

이것들은 남성중심 사회가 불러일으킨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여성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반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들 욕망이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이렇게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팜므 파탈'은 우리가 말하는 '괴물'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이런 '팜므 파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많이 고쳐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는 눈에 보이지만 이질적인 존재..  외계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외계 존재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를 '괴물'로 표현하든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여기든 처음에는 '괴물'로 다가오게 도니다. 우주시대를 열어가면서 더이상 두려움을 느낄 존재를 지구상에서 찾기 힘들 때 사람들은 눈을 외계로 돌린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고, 이런 존재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이렇게 보이는 존재들을 이야기한 다음에 보이는 존재 뒤에 있는 더 큰, 그러나 잘 파악이 안 되는 '괴물'을 이야기한다. 바로 환경오염.

 

영화 괴물이나 '심슨'에서는 환경 파괴로 우리가 얼마나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그러나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주범을 제거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면 자기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의 심리,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코 패스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 역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괴물'에 포함된다.

 

이런 '괴물'들은 어쩌면 국민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위해서, 또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권력자, 자본가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각을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을 합치면 보통 사람들을 오히려 '괴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모습이 바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이렇게 구조 속에 숨어 있는 '괴물'을 보지 못한다. 이는 다음 장에 나오는 드라큘라도 마찬가지다. 사람 피를 빠는 존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드라큘라를 더 큰 구조가 된 '괴물'로 이야기한다. 바로 자본주의다. 그것도 독점자본주의. 

 

소상공인들, 중소기업 등등을 집어 삼키는 거대 기업, 재벌. 그들을 드라큘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뒤에 숨어 있는 '괴물'을 찾아내고 그들과 싸우려고 하는 것, 마지막 장에 나온다.

 

사회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 파멸해 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 사람들은 '괴물'의 배 속에서 싸우지만 결국 '괴물'의 배를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렇지만 '괴물'이 움찔대게는 할 수 있다. '괴물'의 움찔거림,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한둘 나오게 하는 것. 비록 대다수의 사람들은 '괴물'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괴물'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괴물'에 틈을 내는 사람들은 늘 존재함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대중문화에서 괴물이 나오는 이유는, 분명 이 사회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괴물'로 은유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괴물'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전혀 '괴물'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때 두려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괴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괴물'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대처를 하기 위해서.

 

영화나 소설, 만화, 드라마에 나오는 온갖 '괴물들' 단지 상상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 '괴물'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들 삶을 찬찬히,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괴물'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일 수가 있다. 아니 거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재미도 있고 다른 관점에서 괴물을 보게 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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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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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팔로스'라는 말, 많이 쓰는 말인데, 이 말이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구의 중심, 우주의 중심. 옴팔로스. 이것은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에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중에서도 델포이를 옴팔로스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아지니, 세계 문명으로 확대를 하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문명의 중심, 또는 발상지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지구의 옴팔로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리스를 그렇게 여기기도 했을 거고. 우리 동양에서야 중국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서 가운데 중자를 써서 중국이라고 하겠지만, 동서양에서도 문명이 발달했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동양이나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유럽 쪽으로 한정을 하면 그들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에서 찾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화로 변질되고, 로마는 유럽을 제패했으니, 그 문화가 유럽 각지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온 문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의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경철이 그리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썼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 나라의 문명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 여행을 통해 자꾸 우리를 불러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여행기는 그가 직접 그리스 전역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것도 특이하게 카잔차키스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카잔차키스의 글이 나온다. 그를 수시로 불러낸다. 자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카잔차키스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에서 겪었던 일.

 

카잔차키스 무덤에 절을 하는 그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고는, 박경철이 그는 내 영웅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물었던 사람이 자기가 택시 기사인데 내일 자기 택시로 무료로 카잔차키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다 보여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집에 초대에 성대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던 일화.

 

그에게도 카잔차키스는 영웅이었다는 것,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은 친구라는 것, 친구는 대접해야 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 인들의 성정.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제우스법이라고... 손님은 잘 환대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리스 사람들이 친절한 것이, 동네에 숨어 있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유원지 근처의 음식점도 다들 개성있고 성의있게 요리를 해서 맛집이 도처에 있다는 것.

 

이렇게 그리스 신화와 또 카잔차키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는 여행기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여행기라서 더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보다 이 여행기가 더 반가운 것은 우리는 그리스 여행하면 제일 먼저 아테네와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는데, 박경철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부터 갔다는 것. 그리스에 대해서 식상하지 않은 접근을 하게 한다.

 

코린토스->네메아->올림피아->아르고스-> 스파르타

 

친숙한 이름들이다. 코린토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고, 철벽을 자랑하는 성벽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역사를 지닌 곳. 이곳은 아프로디테의 욕망이 잘 구현된 도시였다는 것.

 

네메아는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퇴치한 곳, 올림피아는 지금도 열리는 올림픽의 원조가 되는 곳, 아르고스는 나중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이오가 납치되는 도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스파르타 교육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실질적 지배자, 스파르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곳, 그러나 멸망한 이후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곳. 박경철의 말을 빌리면 하다못해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유물들, 신전들조차 잘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니, 관광객들에게도 외면받는 곳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이, 힘으로 유지되던 영광이 무너지면서 후대에 남지 못하게 된 것. 스파르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정치 체제를 지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여행기는 스파르타에서 끝난다.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 위대한 여행자라는 칭송을 받는 카잔차키스와 계속 함께 하면서.

 

혹 나도 나중에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그때 나는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박경철이 쓴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가겠다. 가서 박경철이 본 그리스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리스를 덧불이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물론 그 전에 카잔차키스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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