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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시작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시작한다. 일명 난쏘공으로 불리는 소설. 유명한 소설인데, 그 소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난쟁이들이 난쟁이가 아닌 삶을 살기 힘든 세상을 보여준 소설이다.
이렇게 난쟁이로 시작하면 난쏘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난쟁이들의 비극을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 역시 난쟁이라 할 수 있다. 쌍둥이 아들 둘인 합과 체도 난쟁이라고 놀림을 당할 만큼 작은 키를 지니고 있다.
작은 키. 신체가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사회. 그것도 청소년기에 작은 키는 여러모로 불리하게 작동할 때가 많다. 특히나 번호를 키 순으로 정하는 학교에서는 번호가 곧 키 순서가 되니, 대놓고 신체로 차별당하게 된다.
이런 차별의 요소가 소설의 초반에 등장한다. 이건 아니다 싶은 반인권적인 모습. 어쩌면 과거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권을 중시해야 하는 학교에서 비일비재로 일어났던 차별이기도 하고.
아이들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신체를 비하하는 말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체에 따른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 이는 교사라고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 난쏘공을 작품으로 수업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뜩이나 작은 키로 서러움을 당하는 체에게 하필 그 부분을 읽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사가 그 부분의 내용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생각하면 다른 아이에게 읽힐 수 있을 텐데,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교사는 그게 뭐? 키 작다고 난쏘공의 아버지는 난쟁이였다라는 부분을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그런 부분에 신경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놀림거리를 찾아 눈을 번뜩이며 찾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는 그 놀림이 자신들의 유흥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놀림을 당하는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된다.
작은 것을 고려하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들도 힘들겠지만, 그것이 바로 교사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니겠는가.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은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상처를 받은 체. 합과 체는 쌍둥이지만 합은 공부로 작은 키에 대한 놀림을 어느 정도는 모면한다. 성적이 좋지 않은 체에겐 더 많은 놀림이 따라오고.
그래서 우연히 만난 이상한 노인에게서 계룡산에서 33일을 지내면 된다는 말을 듣고 체는 합을 데리고 계룡산으로 간다. 거기서 둘은 노인이 말한 수련을 하는데...
우연히 들은 라디오에서 노인이 치매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33일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달라진 것이 없다. 하긴 키가 한 번에 큰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소설 역시 개연성을 얻지 못할테고.
2학기 체육시간. 농구 시합. 누구도 같은 편으로 하기 싫어하는 함과 체. 이번엔 다르다. 둘은 정말 열심히 한다. 골도 넣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으니까. 열심히 뛰다보면 이들의 실력을 의심해도 이들에게 공을 건네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합도 마찬가지고.
이제 자신들의 키를 그렇게 의식하지 않고 나름 학교 생활을 하는 합과 체. 어느 날 키가 커진 자신들을 발견한다로 소설은 끝을 맺고 있는데...
얼마나 컸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키는 이제 자신들의 모든 것이 아니니까. 자신들이 처한 자리에서 노력하고 그에 만족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으니까.
합과 체는 이제 신체로 자신들을 가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바로 이것이다. 자존감.
이 자존감은 그냥 키워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자존감이 강할 수도 없다. 자존감은 자신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을 때, 그래서 약점에 더 이상 마음을 쓰면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이겨냈을 때 생긴다.
약점이 없는 사람이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다. 합과 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신체를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 이때부터 그들에게는 자존감이 들어찼고, 이제 그들은 당당하게 지낼 수가 있게 된다.
조세희가 쓴 난쏘공과는 달리 소설은 합과 체의 이런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청소년 소설답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기적이 아니라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어서 마음 졸이고 읽지 않고, 함과 체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그 점이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