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공 - 공놀이는 어떻게 인류를 진화시켰나 세계사 가로지르기 19
김은식 지음 / 다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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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다는 것은 관계의 기본이며 본질이다. ... 관계란 곧 주고받음을 지속하는 것이기에 주거나 받는 것은 관계의 출발점이다. (167쪽) ... 주고받음을 본질로 삼는 공놀이란 그래서 관계맺기 연습인 동시에 은유며, 도구다. (168쪽)'

 

이 책을 쓴 이유를 찾으라면 이렇게 맺음말에서 저자가 하고 있는 말을 고를 수 있다. 공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그런 '공'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공의 역사를 추적하고, 공에 관련된 경기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공과 관련된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경제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전세계인들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경기 중에 공을 가지고 하는 경기가 많다. 특히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은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또한 축구선수, 농구선수, 테니스선수, 야구선수 등의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그들은 이 시대의 우상이 된다. 이렇게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가 직업이 되어 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 축구팀 FC바르셀로나와 같이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팀도 있다. 사실 '메시'라는 현시대 최고의 축구선수 때문에 더 잘 알게 된 팀이긴 하지만, 이 팀에 요한 크루이프라는 토탈사커를 창시한 사람이 선수생활을 했고, 감독으로도 활약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축구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겠지만...)

 

여기에 더하여 그때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면서 했다는 말,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입단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코가 지원하는 클럽에서는 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FC바르셀로나로 왔습니다."(135-136쪽)

 

이 말이 공놀이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축구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탁구때문에 냉전 기류가 화해 분위기로 바뀌기도 한 (중국과 미국) 경우도 있으니, 공은 세계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종교개혁을 이끈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마르틴 루터가 지금의 볼링 경기를 확립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공은 둥글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공은 자신의 손에만, 발에만, 몸에만 있으면 안 된다. 반드시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온 공을 다시 되돌려 보내야 한다.

 

여기서 바로 관계가 나오고, 이런 관계를 통해서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익히게 된다. 그래서 공은 놀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 점을 이 책은 흥미롭게 전달해주고 있다. 여전히 공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다. 그런 공에 대해서 개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 한가지 우리나라 야구에서 이름을 길이 남기는 이영민...이영민 타격상이 아마추어 야구에 있는데, 그 이영민이 축구도 잘해서 축구 국가대표 감독까지 했다는 사실도 이 책에 나와 있으니, 공에 관련된 소소한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이 책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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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 -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 동아시아와 그 너머 1
티모시 브룩 지음, 박소현 옮김 / 너머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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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욕에는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육시를 할 놈, 찢어죽일 놈 등등... 이런 욕이 나올만한 상황이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극한의 욕을 하는 셈인데...

 

육시(戮屍)를 보통 토막내 죽인다고 알고 있는데, 한자어의 뜻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꺼내어 다시 토막내는 것이 육시라고 한다. 그냥 부관참시라고 하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하면 된다.

 

여기에 능지처참할 놈이라는 욕도 있는데, 찢어죽인다는 말과 통한다고 보면 된다.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징벌.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능지처참을 영어로 번역하면 'Death by a Thousand Cuts'라고 한단다. 천조각을 낸 죽음이란 뜻인데, 그야말로 사람의 몸을 산산조각내는 형벌이라는 뜻이다.

 

이 능지처참을 서구인들은 중국인의 야만을 드러내는 형벌로 파악을 했다고 한다. 동양적인 잔인함, 비문명화의 모습으로 판단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마추어 사진사가 능지처참하는 광경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를 무슨 대단한 증거인양 중국의 야만을 상징하는 것으로 계속 이야기해 왔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이런 서구인의 시각을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능지처참과 같은 형벌이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서양에서도 이런 형벌은 존재했다. 다만, 백여 년 먼저 폐지되었을 뿐인데...

 

중국이 조금 늦게 폐지가 되었지만, 이런 형벌이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고, 법령에 능지라는 형벌이 명시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1900년대 초반에 폐지가 되었고.

 

게다가 사람의 몸을 조각내 죽인다고 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의하면 세 번째 절단에 주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신체적인 고통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형벌이 지속된 이유는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를 몸에 대한 중국인의 사고에서 찾고 있다. 온전한 신체라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즉 몸과 정신이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정신마저도 조각내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단순히 죽인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을 절단하는 것은 너무도 심한 형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는 것.

 

그러니 이 형벌을 통해 신하나 백성들을 경계하고자 했던 군주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하지만 중국은 이런 심한 형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仁)의 정치를 추구하는 나라였다는 것. 백성들에게 인을 베푸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었음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중국의 잔혹함이 이런 형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왜곡된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런 형벌이 부각되었을 뿐이고, 이런 지독한 형벌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용이 형벌 적용의 원칙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렇게 처참한 형벌이 존재한다고 해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태평성세에는 이런 가혹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형벌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저자들은 사형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과연 사형제 존속이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가?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온다. 오히려 엄혹한 법률보다는 관용과 용서가 넘치는 사회에서 범죄가 더 줄어든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답이라는 것.

 

과거 중국의 잔혹한 형벌에서 지금의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리고 어느 문화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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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0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술 2017-11-20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어 읽기만 하다 첨으로 댓글 남깁니다.
저도 2014년인가 15년인가 이 책 읽었죠.
kinye님 글 읽으니 몽롱하게 머리속을 맴돌던 이 책 줄거리가 대뜸 요약 정리되네요.
더불어 책에 실린 능지처참 사진 생각도 나네요. 꽤 충격이었죠.
‘사람도 뼈와 고기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죠.

kinye91 2017-11-20 15:39   좋아요 0 | URL
저도 능지처참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이 책을 보고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취급하는 형벌, 즉 너에게 인간성이란 없다는 인간을 인간 이외의 존재로 규정하는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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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하는 사람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광고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란 책을 낼 정도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광고와 자본과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인문학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둘이 잘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광고가 자본의 총아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도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여덟 단어"라는 책을 냈다. 키워드라고 하나, 여덟 단어로 광고 또는 인문학,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강연을 한 것이다.

 

단지 광고에 대한 강연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산 사람으로, 먼저 고민을 한 사람으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굳이 박웅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박웅현은 박웅현이고, 나는 나니까. 이 책에서 거듭해서 박웅현이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그의 권위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마라.

 

그럼에도 참조가 많이 된다.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 단어는 다음과 같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중에 모든 것은 마지막 단어 '인생'으로 수렴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앞의 일곱 가지가 필요하다.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직업을 갖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살기 위해서? 기준은 다양한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존'이 필요하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에 다름을 인정할 수 없다. 즉 우리는 다 다르지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본질'에 대한 생각에 이르지 않는다. 반면에 '자존'하는 사람은 다름을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질' 무엇인가? 그때그때 변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보편적인 것. 오래 가는 것, 세월의 흐름에도 견뎌내는 것, 그것은 바로 '고전'에서 올 수 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인간이 지닌 어떤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본다는 것(見)의 중요성에 이른다.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견(見)'이다. 놓치고 있던 것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 바로 '견'이다. 이 '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재'를 보는 것,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 동물이 되어 보지 않아서 돌물들이 과연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도 개를 예로 들어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 과거와 미래를 자꾸 현재로 불러온다.

 

그래서 현재를 현재로 즐기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 되돌리려 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로 밀어 넣으려 한다. 자연스레 자존도, 본질도, 고전도 놓치고,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현재에 살아야 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권위에 자신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식으로 권위를 세우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재'를 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권위'는 자존을 지니고 본질을 추구하며 현재를 잘 살 때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권위는 바로 바깥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와야 한다. 그것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으려면 '소통'이 되어야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동물 아니던가. 정치적 동물 아니던가. 아니 언어적 동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간에게 소통은 필수적이다.

 

'소통하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소통'이 필요하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여덟 단어'를 이렇게 정리해 봤다. 꼭 이 여덟 단어이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한 단어로도 우리의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박웅현이 쓴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는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자신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이 여덟 단어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올 수 있다. 좋은 책은 그가 쓴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듯이 바로 '도끼'여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도끼'의 역할을 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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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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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죽은 문자라고 한다. 실제로 사용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는 자기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를 사용하지 한때 세계적인 언어였다고 하는 라틴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라틴어 하면 무언가 교양이 있는 분위기가 풍긴다. 좀 젠 체하는 사람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아닌 라틴어를 쓰기도 한다. 무언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라틴어 수업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이런 옛날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있었다니... 한문을 가르치는 대학도 줄어드는 판국에, 서양의, 그것도 서양에서도 한 나라의 언어가 되지 못한 언어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가르치다니...

 

좀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다, 세상의 어느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불필요한 일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에는 역사와 문화가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틴어는 지금은 죽은 문자라고 하지만 서양언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지 않나. 이 책만 해도 만은 라틴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언급되고 있는 라틴어 중에는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 제법 있다.

 

영어를 배운 사람들에게 낯익은 글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 역시 비슷하고.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면 서양 언어를 배우기가 더 쉬워진다. 단지 그뿐이면 라틴어는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서양 언어를 배우기 위해 또다른 서양 언어의 기원이 되는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양에서도 라틴어는 여전히 가르친다고 한다. 왜냐고? 우리가 한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그들의 역사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라틴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삶, 문화, 역사를 라틴어를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라틴어 수업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내 삶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

 

라틴어 문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라틴어 문법은 복잡하기로는 세계 언어에서 첫손에 꼽으라면 꼽힌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라틴어 문법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다가는 아마 몇 장을 읽지도 못하고 책을 내팽개칠지도 모른다.

 

대학에서의 강의도 마찬가지겠지. 문법만, 언어 자체만 이야기해서는 듣는 학생이 별로 없을 것이다. 금방 지쳐떨어질테니.

 

그래서 이 책은 라틴어에 대해서도 알려주지만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유지해나가기 때문에, 이 라틴어를 통해서 삶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함께 라틴어를 통해서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각 장마다 라틴어 경구가 있고, 그것을 통해서 라틴어에 대해서, 또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기에 라틴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고,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천천히 읽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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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3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ora 2017-09-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평 156호에 이 책의 리뷰가 담겨있는데요... 감동적...꼭 읽고 싶은 책입니다.

kinye91 2017-09-23 10:23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면 여러가지로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하라 2017-09-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본 책인데요 라틴어 수업이라기 보다는 라틴어 에세이나 라틴어 감상이란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각 라틴어로 묵상해보는 것도 운치있을듯한 저작이더라구요^^

kinye91 2017-09-23 11:0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수업이라기보다는 라틴어를 통해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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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는 말을 앞에 달고 있고, 제목은 "설전(雪戰)"이다. 책이 조금 친절하지 않게 두 스님의 문답이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긴 이 문답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또 그것이 언제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때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말하였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깨우치게 하는데 문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의 문답은 손가락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자꾸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대화들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손가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이 손가락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마음에 낀 먼지를 조금은 날려보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의 겉표지 뒷부분에 쓰여 있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른 스님들이나 일반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스님이 성철 스님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결심을 지켰던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 구도자의 자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다만, 법정 스님만은 성철 스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역시 법정 스님을 도반(道伴)으로 인정했나 보다. 책을 편찬할 때는 법정 스님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 곳곳에서 성철 스님을 모셨던 원택 스님의 글이 있어서 성철과 법정 스님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말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통해서도 두 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의 묻고 답하기를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문답이라는 형식은 어렵지 않게 일반인들에게도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질문과 답이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명심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몇몇 구절은 가슴을 때리고도 남았는데...

 

법정 : 그렇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독립된 현상만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희들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에게도 그런 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철 : '종교인에게도'가 아니지요. '에게도'가 아닙니다. 우리 종교인이란 정신을 지도하는 근본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근본 책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 그러니 종교인이라는 사람, 성직자라는 사람부터 근본 자세를 바로잡아서 참다운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에서 정신적 지도자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면 밑에서 지도받은 사람이 탈나고 잘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근본 책임을 맡은 종교인, 성직자인 우리가 참회해야 한다고 봅니다.  (36-37쪽)

 

지금 사회가 어지러운 지경에 처한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중에 나온 말이다. 법정 스님은 '종교인에게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성철 스님이 '에게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졌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경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어지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종교인이 이렇게 참회를 하고 있단 말인가.

 

종교인에게 세금을 내게 하자는 안건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통과되지 않고 있는 현실 아닌가. 자기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면서도 점점 가난해져 땅과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종교인들이 많지 않은가.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다. 이 말이 단지 종교인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 참으로 진리를 위해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 명리는 다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앞서면 진리는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요.' (51쪽)

 

'불교 믿는 첫 조건으로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같이 섬겨라.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80쪽)

 

'불교의 사회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사상 같은 데서는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82쪽)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조금이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82쪽)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턱 막혔다. 도대체 지금 이 나라는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슨 무슨 기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해서 언론에 내보내는 그 작태는 그들이야 그렇다치는데,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학교 교육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점수화하고 있다. 몇 시간 이상을 해야지만 기본 점수를 받는 것이다. 알리지 않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학생 시절부터 점수를 위해서, 그것도 기록이 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꼭 기록을 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학교 교육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인가.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봉사조차도 자신을 드러내는 쪽으로 쓰게 하는, 현재의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런 사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는데... 아마도 거꾸로이겠지. 정치인들의 그런 행태가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점수화 할 생각을 하게 했겠지만... 참, 이제는 이렇게 지낸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을 하는 나이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말을 적게 하라고 했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주옥 같은 말들이 더 많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면 될 듯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다만, 당장의 깨우침은 없을지 몰라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우침에 대한 생각, 즉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려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성철, 법정 스님의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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