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분들도 조금은 지내기 편해질 수 있겠지.


  계절로 인해 편해지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 분들이 자신의 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제공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 더 좋겠지만, 아직은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그래도 이번 호에는 연예인 엄태구 씨가 나와 빅이슈 판매 도우미로 활동했다는 기사, 특히 자신을 돋보이게 하지 않고 추운 날씨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더욱 훈훈해졌고.


읽다가 2024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가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이란 단어를 선정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63쪽)


좀 무서운 단어지만, 뇌가 썩는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 이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편협함에 갇힌 사고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알고리즘이라는 말과 '뇌 썩음'이라는 말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알고리즘이 무엇인가? 자신의 성향, 취향에 맞는 것들을 연이어 제시해서 그것들을 계속 보게 만들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질 틈을 주지 않는 것 아닌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만 그것도 콘텐츠(내용이라고 해야 하나)만 달리해서 계속 본다면, 편향적 사고를 지닐 수밖에 없다. 편향적 사고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니 그것이야말로 '뇌 썩음'에 해당하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 실린 젊은 정치인이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누구는... (96-101쪽 참조)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 정치라 생각한다. 폭력적으로 싸우는 방식은 옳지 않지만, 싸움이 정치의 본질인 것이다.'(100쪽)


정책들의 싸움, 그것이 정치다. 고로 정치는 언어로 하는 싸움이다.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싸움이 바로 정치다. 언어가 아닌 폭력의 수단이 동원되는 순간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그러니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주장이 없다면 정치는 없다. 다른 주장들이 언어를 통해 오고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 언어들의 싸움... 아니 주장들의 싸움, 이것이 정치다. 그러니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말을 잘못 해석해서 고도화된 정치 행위로 폭력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고도화된 정치 행위가 아니라, 국민을 어려움으로 빠뜨리는 헌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에 불과하다. 즉 고도화된 다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뇌 썩음'으로 나아간다. 알고리즘에 빠진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이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에게 좋은 것들로만 주변을 채운다. 이런 존재에게 공동체란 존재하기 힘들다. 공동체에 온갖 존재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뇌 썩음'과 가장 거리가 먼 잡지가 바로 [빅이슈]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빅이슈]는 다양한 글들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는 소수자를 외면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글들도 좋았지만 '뇌 썩음'이란 단어로 '알고리즘'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정말 정치인들은 이런 '뇌 썩음'을 경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젊은 정치인의 말을 다시 새기자. 뇌 썩음을 방지하는 길은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 정치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다른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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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을 생각한다. '어느 쪽'이라는 말.


  이 말을 읽는 순간, 이청준의 '소문의 벽'을 떠올렸다. 나는 상대방을 볼 수 없는데, 상대는 나를 볼 수 있으면서, 나에게 넌 어느 쪽이냐고 물을 때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대답을 하는 쪽이 아니라면 죽을 수 있는 상황. 그런 극한의 상황. 그것은 바로 전쟁 때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쪽?'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면 양 쪽에서 모두 핍박을 받을 수 있다. 세상에 중립만큼 힘든 것은 없다.


그런데 전쟁 때도 아닌데 "어느 쪽?"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편 가르기를 통해 다른 편을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배제는 민주주의가 반하는 행동이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라고 묻더라도, 그래서 그런 생각을, 그런 행동을 하는구나, 

그렇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행동할 수도 있지 않나, 이것에 대해서 우리 이야기하자. 더 좋은 생각, 행동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해야 그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아닌가.


[빅이슈]란 잡지에 '어느 쪽'이라고 묻는 답에 편집자는 현명한 답을 하고 있다. 우문현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어느 쪽'이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 질문에는 이미 배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배제가 포함되지 않고, 함께함이 포함된 '어느 쪽'은 좋은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정작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까. 편집자의 말을 인용한다. 현명한 답이다. 


'저는 추위 속에서 판매원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잡지를 구매해준 당신의 편입니다. 빅이슈가 어려우니 얼마 안 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준 필자, 작은 도움이라도 판매원에게 주고 싶다고 빅돔을 자처한 배우의 편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밤중에 여의도에 달려가고, 주말마다 광장으로 달려나가고, 더위와 추위 때문에 열악한 쪽방에서 홈리스가 혼자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살피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우리가 다 함께 지금보다는 더 따뜻하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8쪽)


빅이슈에게 어느 쪽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현명한 대답이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를 이보다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대답이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빅이슈는 이번 호에도 집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우리가 함께해야 할 자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추운 겨울날을 보내야 하는 홈리스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문화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한 쪽으로 몰아가지 않고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곳을 두루두루 살피고 

있다. 이보다 더 '어느 쪽'인지를 잘 보여주는 잡지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따스한 시선이 무도한 행동을 막는 행동을 부르고, 그런 행동들이 다른 실천들을 불러 서로가 손에 손을 잡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쪽, 그런 편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이청준의 '소문의 벽'을 생각한다. 이제는 그런 질문을 멈춰야 한다. 아니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기에 서로의 편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질문에 내포된 의미를 바꿔야 한다. 자신이 편견에 빠져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하는 '어느 쪽'


다른 '어느 쪽'의 주장을, 나 또는 우리 행동을 참고하고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질문으로... 상대를 배제하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하려는 질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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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진 2025-02-1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이슈 표지가 바뀐거죠? 연예인들의 기부로 만들어지는 잡지로 알고 있었거든요

kinye91 2025-02-12 13:06   좋아요 0 | URL
지금도 연예인들이 표지로 등장하는 호가 있어요. 연예인들의 기부도 있지만 호에 따라서 표지는 다양하게 편집되고 있어요.

구름모모 2025-02-12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용의 해가 지나갔다. 용! 우리나라에서 왕을 상징하는 동물 아니던가. 같은 얼굴이라고 해도 왕의 얼굴은 용안이라고 했고, 왕이 입는 옷은 용포라고 했으니... 용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용의 해 끄트머리. 왕이 되고 싶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지금 시대에 군주정 시대도 아닌데 왕이 되겠다고 하는 모습도 우습지만, 마치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연상시키듯이, 예전에 손바닥에 당당하게 왕(王)자를 써서 보여주었던 그 사나이가 용의 해가 가지 전에 무엇이 아쉬웠는지, 정말 왕처럼 해보고 싶었는지... '짐은 국가다'. 무슨 절대 왕정 시대의 말과 행동도 아니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 말을 안 듣는 집단은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집단이다라니... 자신이 국가라고 생각하는 용의 해가 가는 것을 너무도 아쉬워해서 왕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는지...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개인 방송기기를 들고 있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횡설수설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정신이 똑바로 박힌 국민들이 지금 시대에 무슨 왕? 하면서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로 몰려갔으니... 용의 해는 자칭 왕의 몰락으로 이어졌으니...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자의 최후가 어떠해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데... [빅이슈] 이번 호에서도 놀란 가슴을 함께하는 행동으로 다스린 사람들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비록 그들이 국민들을 무시했지만, 국민들은 물과 같아서 자칭 왕이라는 배를 엎어버릴 수 있음을 다시 보여주었으니... 


이번 [빅이슈]에도 그러한 물의 역할을 하는 국민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 평소에 잔잔한 물줄기 역할을 하던 잡지가 [빅이슈] 아니었던가.


어려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도록, 그들이 숨쉴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주고, 또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하는 잡지 아니었던가.


이런 잡지가 자칭 왕 노릇을 하려는 자를 어떻게 가만히 놔둘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용의 해가 가고 뱀의 해가 되었다.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우리는 용꼬리가 되지 말고 뱀머리가 되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우리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뱀의 머리 역할을 하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빅이슈]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뱀머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의미에서 뱀머리다. 사악함을 뜻하는 뱀이 아니다. 또다시 지난 해 용처럼 사악한 뱀처럼 행동한다면 그 뱀머리는 싹뚝 잘라버려야 한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짐'이 되는 뱀들은 뱀머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용꼬리다. 그것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용의 꼬리... 이미 지나간 용꼬리에 들러붙은 존재들. 그것은 '짐'이다. 우리 국민들의 '짐'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힘, 힘!' 외치지만,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정말 푸른 뱀의 머리 역할을 하는 국민들에게는 그들은 이미 지닌 용꼬리에 불과하고, 그들의 '힘' 소리가 '짐' 소리로 들리고 마니...


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귀가 있다면 지금과 같은 소리를 내지도 않겠지만... 이들, 정말 추위 속에서도 따스함을 나누는 [빅이슈]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을까? 아니, 읽지는 않더라도 사본 적은 있을까? 아니다. [빅이슈]라는 잡지의 존재를 하는 여당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국민을 대변한다면서, 국민의 힘이 되겠다면서, 정작 힘을 주어야 할 존재들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면 그야말로 '힘'이 아니라 '짐'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용꼬리에 불과함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런 용꼬리는 이제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번 호를 읽으면서 용과 왕, 뱀을 생각한다. 우리는 상서로운 푸른 뱀의 머리가 되는 해로, 그렇게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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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마지막 [빅이슈]다. 자신만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기사들도 있고, 다행히 살아갈 곳을 찾은 여성 홈리스 이야기도 있어서, 연말이 조금 따스해지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추위를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도록 해주는 잡지가 [빅이슈] 아니던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12월은 노벨상 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축제여야 할 기간. 한강 작가를 축하하고, 다른 작가들도 축하를 받고, 그리고 여러 책들을 알리고 읽는 행사를 하는 주간이었으면 했는데...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를 한 단계 더 올리는 그런 과정으로서 노벨 문학상이 작용해야 하는데...


이런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이 있었으니... 자신은 힘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암묵적인 동의, 반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동의이고, 동조이다.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 전에는 자신들이 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큰소리를 떵떵치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 나 몰라라 하는 꼴은 졸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결코 국정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할 소리, 할 행동은 아니다.


이들만이라도 제대로 정신이 박혀 옳은 소리, 바른 행동을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치 한강 소설에 나오는 상황을 재현하기라도 한 듯, 그런 큰뜻이 있었을리는 만무한 이들이 여전히 언론에 나와서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자들을 이제는 따르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다. 문화적 소양 또한 높아졌고... 언론사들에게 소식을 맡기지만은 않는다. 자신들이 직접 소식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수많은 사람이 이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진 나라다. 이런 국민의 수준을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무슨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로 매도하는 자들이야말로 수준 이하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런 작자들과 반대 편에 서 있는 잡지가 [빅이슈]다. 사람들을 분노로 열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스하게 하는 잡지. 그러한 [빅이슈]가 있어서 이 추운 겨울,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으리라.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고 실행했겠지. 그것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들의 정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도 하지 않고.


이런 자들 때문에 노벨상 주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이 화를 누를 수 있도록 상황이 해결이 될 것이라 믿고.


이번 호에 이렇게 책에 대한 글들이 있었는데.. 좀더 즐거운 마음으로 책에 대한 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 해 동안 [빅이슈]를 읽으면서 때로는 따스한 온기를, 때로는 시원한 청량함을 느꼈다. 내년에도 이런 역할을 [빅이슈]가 계속 해주기를 바라면서, [빅이슈] 판매원들과 편집진, 그리고 필자들, 또한 읽는 독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 모두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 잘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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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추워지고 있다. 최근 서울역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이 추울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들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더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자신이 머물 주거공간이 없다는 것. 인간이 생활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의, 식, 주' 중에 벌써 하나가 없다는 것은 생활의 결핍이다. 그런데 집이 없다는 것에서 그칠까?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레 앞의 두 가지도 따라다닌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힘들다.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음식을 찾아먹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거 문제는 곧 식생활 문화와 연결이 된다.


집이 없고, 먹을거리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옷은 어떤가? 옷 역시 그들에게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된다. 옷도, 음식도, 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는 옷과 음식이 버려지고, 집을 수십 채 보유한 사람도 있다. 


사회적 양극화를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몇 호 전부터 빅이슈에 옷을 나누는 캠페인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옷이지만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는 옷을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자는 운동.


이런 운동으로 '의식주' 중에서 의를 어느 정도는 해결하려 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고. 여러모로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호 [빅이슈]에서 다룬 흑백요리사,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음식 대결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또 다양한 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삐딱한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과연 노숙인들은 맛볼 수 있을까? 이런 화려한 요리 경연대회에 가려져 그런 음식에 대해 알아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소설을 보면, 또 [빵과 장미]를 보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번 호에서 '흑백요리사'를 다룬 것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이런 요리를 어떻게 하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향유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글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흑백요리사들에게 무료급식소에서 그들이 경연에서 선보였던 음식을 돌아가면서 요리해 제공하는 봉사를 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방송에는 내보내면 안 되고, 조용히 자신들의 요리를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날이 추워지니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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