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가 지나갔다. 용! 우리나라에서 왕을 상징하는 동물 아니던가. 같은 얼굴이라고 해도 왕의 얼굴은 용안이라고 했고, 왕이 입는 옷은 용포라고 했으니... 용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용의 해 끄트머리. 왕이 되고 싶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지금 시대에 군주정 시대도 아닌데 왕이 되겠다고 하는 모습도 우습지만, 마치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연상시키듯이, 예전에 손바닥에 당당하게 왕(王)자를 써서 보여주었던 그 사나이가 용의 해가 가지 전에 무엇이 아쉬웠는지, 정말 왕처럼 해보고 싶었는지... '짐은 국가다'. 무슨 절대 왕정 시대의 말과 행동도 아니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 말을 안 듣는 집단은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집단이다라니... 자신이 국가라고 생각하는 용의 해가 가는 것을 너무도 아쉬워해서 왕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는지...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개인 방송기기를 들고 있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횡설수설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정신이 똑바로 박힌 국민들이 지금 시대에 무슨 왕? 하면서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로 몰려갔으니... 용의 해는 자칭 왕의 몰락으로 이어졌으니...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자의 최후가 어떠해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데... [빅이슈] 이번 호에서도 놀란 가슴을 함께하는 행동으로 다스린 사람들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비록 그들이 국민들을 무시했지만, 국민들은 물과 같아서 자칭 왕이라는 배를 엎어버릴 수 있음을 다시 보여주었으니... 


이번 [빅이슈]에도 그러한 물의 역할을 하는 국민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 평소에 잔잔한 물줄기 역할을 하던 잡지가 [빅이슈] 아니었던가.


어려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도록, 그들이 숨쉴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주고, 또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하는 잡지 아니었던가.


이런 잡지가 자칭 왕 노릇을 하려는 자를 어떻게 가만히 놔둘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용의 해가 가고 뱀의 해가 되었다.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우리는 용꼬리가 되지 말고 뱀머리가 되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우리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뱀의 머리 역할을 하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빅이슈]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뱀머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의미에서 뱀머리다. 사악함을 뜻하는 뱀이 아니다. 또다시 지난 해 용처럼 사악한 뱀처럼 행동한다면 그 뱀머리는 싹뚝 잘라버려야 한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짐'이 되는 뱀들은 뱀머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용꼬리다. 그것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용의 꼬리... 이미 지나간 용꼬리에 들러붙은 존재들. 그것은 '짐'이다. 우리 국민들의 '짐'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힘, 힘!' 외치지만,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정말 푸른 뱀의 머리 역할을 하는 국민들에게는 그들은 이미 지닌 용꼬리에 불과하고, 그들의 '힘' 소리가 '짐' 소리로 들리고 마니...


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귀가 있다면 지금과 같은 소리를 내지도 않겠지만... 이들, 정말 추위 속에서도 따스함을 나누는 [빅이슈]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을까? 아니, 읽지는 않더라도 사본 적은 있을까? 아니다. [빅이슈]라는 잡지의 존재를 하는 여당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국민을 대변한다면서, 국민의 힘이 되겠다면서, 정작 힘을 주어야 할 존재들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면 그야말로 '힘'이 아니라 '짐'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용꼬리에 불과함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런 용꼬리는 이제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번 호를 읽으면서 용과 왕, 뱀을 생각한다. 우리는 상서로운 푸른 뱀의 머리가 되는 해로, 그렇게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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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마지막 [빅이슈]다. 자신만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기사들도 있고, 다행히 살아갈 곳을 찾은 여성 홈리스 이야기도 있어서, 연말이 조금 따스해지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추위를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도록 해주는 잡지가 [빅이슈] 아니던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12월은 노벨상 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축제여야 할 기간. 한강 작가를 축하하고, 다른 작가들도 축하를 받고, 그리고 여러 책들을 알리고 읽는 행사를 하는 주간이었으면 했는데...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를 한 단계 더 올리는 그런 과정으로서 노벨 문학상이 작용해야 하는데...


이런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이 있었으니... 자신은 힘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암묵적인 동의, 반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동의이고, 동조이다.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 전에는 자신들이 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큰소리를 떵떵치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 나 몰라라 하는 꼴은 졸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결코 국정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할 소리, 할 행동은 아니다.


이들만이라도 제대로 정신이 박혀 옳은 소리, 바른 행동을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치 한강 소설에 나오는 상황을 재현하기라도 한 듯, 그런 큰뜻이 있었을리는 만무한 이들이 여전히 언론에 나와서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자들을 이제는 따르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다. 문화적 소양 또한 높아졌고... 언론사들에게 소식을 맡기지만은 않는다. 자신들이 직접 소식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수많은 사람이 이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진 나라다. 이런 국민의 수준을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무슨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로 매도하는 자들이야말로 수준 이하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런 작자들과 반대 편에 서 있는 잡지가 [빅이슈]다. 사람들을 분노로 열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스하게 하는 잡지. 그러한 [빅이슈]가 있어서 이 추운 겨울,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으리라.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고 실행했겠지. 그것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들의 정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도 하지 않고.


이런 자들 때문에 노벨상 주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이 화를 누를 수 있도록 상황이 해결이 될 것이라 믿고.


이번 호에 이렇게 책에 대한 글들이 있었는데.. 좀더 즐거운 마음으로 책에 대한 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 해 동안 [빅이슈]를 읽으면서 때로는 따스한 온기를, 때로는 시원한 청량함을 느꼈다. 내년에도 이런 역할을 [빅이슈]가 계속 해주기를 바라면서, [빅이슈] 판매원들과 편집진, 그리고 필자들, 또한 읽는 독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 모두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 잘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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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추워지고 있다. 최근 서울역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이 추울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들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더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자신이 머물 주거공간이 없다는 것. 인간이 생활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의, 식, 주' 중에 벌써 하나가 없다는 것은 생활의 결핍이다. 그런데 집이 없다는 것에서 그칠까?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레 앞의 두 가지도 따라다닌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힘들다.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음식을 찾아먹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거 문제는 곧 식생활 문화와 연결이 된다.


집이 없고, 먹을거리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옷은 어떤가? 옷 역시 그들에게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된다. 옷도, 음식도, 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는 옷과 음식이 버려지고, 집을 수십 채 보유한 사람도 있다. 


사회적 양극화를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몇 호 전부터 빅이슈에 옷을 나누는 캠페인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옷이지만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는 옷을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자는 운동.


이런 운동으로 '의식주' 중에서 의를 어느 정도는 해결하려 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고. 여러모로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호 [빅이슈]에서 다룬 흑백요리사,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음식 대결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또 다양한 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삐딱한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과연 노숙인들은 맛볼 수 있을까? 이런 화려한 요리 경연대회에 가려져 그런 음식에 대해 알아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소설을 보면, 또 [빵과 장미]를 보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번 호에서 '흑백요리사'를 다룬 것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이런 요리를 어떻게 하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향유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글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흑백요리사들에게 무료급식소에서 그들이 경연에서 선보였던 음식을 돌아가면서 요리해 제공하는 봉사를 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방송에는 내보내면 안 되고, 조용히 자신들의 요리를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날이 추워지니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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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도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마치 예정조화설처럼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삶은 행복보다는 불행 쪽으로 가지 않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어떤 행동을 해도 정해진 대로 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러니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이 꼭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즉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운명도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점쳐보지 않을까?


알고 고칠 수 있고, 또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으니, 그때 운명은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즉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운명. 그것은 운명을 알고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운명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우선 자신의 성격을 알아보는 MBTI(16개의 성격유형이 있으니)가 있고, 9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 애니어그램이 있고, 점과 비슷하게 타로 점이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 점, 또 주역이 있다. 


이보다 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많이 알려진 방법들인데, 최근에 사주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설마 저번 대선의 영향은 아니겠지...


사주를 고정된, 불변의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것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한다면 사주, 좋다. 그것을 맹신하지만 않는다면.


왜냐하면 사주를 본다는 것은 그것에 자신을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빠져 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거울을 추가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 지금 내가 이래서 이런 상황에 처해 있구나.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그것이 사주의 의미다. 즉 사주는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같은 사주라도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이 하는 행위나 마음가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석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진다. 그것이 요즘 사주보는 사람들, 또는 자신의 사주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지닌 자세다.


그 점을 이번 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사주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거울로 사주를 보고 해석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사주를 미신의 영역이나 맹신의 영역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행동하는 영역으로 옮겨놓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 이번 호, 사주에 대한 글들이다.


또 이번 호에서 많이 생각해야 할 문제를 오후 작가가 제시하고 있다. '값비싼 치료,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나'라는 글에서.


의료 문제가 붉어진 한국 사회에서 의사 문제도 문제지만, 의약품 문제도 문제다. 건강보험으로 모든 치료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너무도 비싼 약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국가에서 건강보험으로 모두 보전해주면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반가운 일이겠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므로, 무한정 국가가 나설 수는 없는 일.


세상에 약값이 28억 원이나 되다니... 이것을 건강보험이 보전해줘서 600만 원에 투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약들이 계속 개발이 된다면, 돈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상실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약들은 국가가 지원해줘야 하는데, 마냥 할 수도 없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제약회사의 이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그러니 그러한 인간의 생명에 관련된 연구는 세계적인 협업으로, 세계정부 차원에서(유엔이라고 해야 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이윤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우선한다면, 세계 각국에서 차등적으로 비용을 충당해 그런 연구를 지속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생각도 품어보는데...


이게 아직 안 되고 있으니, 오후 작가의 말인 '의학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과거에도 건강은 부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뿐이다.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길.'(81쪽)이라는 말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런 현실이 아니길... 부가 건강에 어느 정도 영향은 끼치겠지만 결정적 영향은 끼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 [빅이슈] 아니던가. 그래서 이런 잡지가 계속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나. 우린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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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 특집 기사가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자본주의는 반대다.


  생산이 소비를 촉발한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온갖 광고들을 보라. 수요를 창출해내는 생산.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니 좀 생경한 언어를 쓰면, 자본주의는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사회다.


  그러니 주식도 하고, 가상화폐(블록체인)도 나온다. 생산품을 받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생산품이 된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 된다.


이런 세상은 소비 진작이 기본이다. 소비가 축소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소비를 권장한다. 교환가치가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만은 없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필요한 소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생존에,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런 소비에 그치지 않고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이 이번 호 특집 기사다.


소비를 줄이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에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으니, 참조할 만하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줄인 소비를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투자를 해도 되고, 환경에 투자를 해도 되고,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빅이슈]가 보여주고 있다.


이 특집 기사 말고 생각해 볼 글이 바로 '집'에 관한 기사다. '핀란드에서 홈리스가 줄어든 이유'라는 글이 읽을 만하다. 아니 읽어야 한다.


집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정책을 추진했다는 핀란드. 이들에게 홈리스(노숙인)들은 내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마련해주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전세 사기를 당해 오갈데가 없어진 사람들,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는 언감생심 홈리스에 대한 주거 정책을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내 돈으로 간신히 마련한 전세집조차도 사기를 당해 전세금을 날리고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도 구제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능력이 없다고,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구해주는 정책을 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길일까? 아니다. 홈리스들도 자신들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 때 사회는 더 풍요로워지고 사회적 비용도 감소한다. 즉 사회에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줄기 때문에 사회적 행복도는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우리나라 주택 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이밖에도 읽을 만한 많은 글들이 있다. 특히 문화적인 면에서 (음악, 영화, 전시 등)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번 327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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