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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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다 매료되어 고흐 평전을 주문하면서 한국의 반 고흐 같은 이중섭의 이 책도 같이 샀어요.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처와 자식들과 왕래했던 편지들과 그의 작품들로 구성된 책이랍니다. 생각보다 작아 크기는 문고판인데 가격은 반 양장본 가격이에요. 그래도 아주 고급진 종이 (얇고 빤딱 빤딱한)에 이중섭의 그림이 삽화로 아주 잘 들어가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1916년

평양 근처 평원군의 부농의 막내로 태어나 유복하게 살다 1.4 후퇴 후에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았던,

일본 여성과 결혼 후 두 아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일본에 있었던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는 한국에 처와 자식은 일본에),

새로운 소재의 발상이라는 평을 받은 은종이 그림이 뉴욕 현대 미술관에 기증되기도 했던,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했던 전시회에서 기대 이하로 성과를 얻지 못하자

(고흐도 생전 유화는 1점을 팔았다지요)


가족에 대한 미칠듯한 사랑과 그리움,

부유하고 베풀었던 자에서 유리걸식하는 자로의 전락을 잊게 해준 존재 (그림)의 상실감,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웃 (민족)을 등지고 자기만 안락한 일본의 처자식에게 갈 수 없다고 말하게 해준 그 그림 의 실패로,

(자신은 그림으로 민족의 아픔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했고, 동시에 처자식에게는 그저 사랑으로 몹시 가고 싶었던)


세상과 단절하고 (이 세상에서 특등으로 사랑하는 아내와도)

음식을 거부한 채

1956년

41세의 나이로 요절한

ㅇㅣㅈㅜㅇㅅㅓㅂ

의 그림과 이야기에요.



그의 글자들이 가식처럼 느껴질 만큼  첫 편지부터 마지막 편지까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이 (유치하리만큼) 수 많은 수식어와 함께 무한히 반복되었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알고 그의 번뇌와 청진함을 엿보게 되니 페이지가 줄어듦이 그의 삶의 길이로 느껴져 고요한 바다에 갑자기 몰려온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왔답니다.



그의 수많은 편지는 이렇게 자신의 그림으로 자작한 편지지에 개구지게 또 다정하게 쓰여졌답니다.



전시회를 마치면 아빠가 자전거를 꼭 사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된 그의 편지에서 중섭의 두 아들에 대한 애틋하고 깊은 그리움이 느껴졌어요. 편지에 동봉된 이 그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있구요.



이렇게 그는 소박하고 정겹게 가족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수백킬로 떨어진 곳에서 혼자 번뇌와 좌절에 고통 받으며 자학 속에 끝내 홀로 숨졌답니다.

전시회의 실패로 그는 그림으로 무위도식했다는 자괴감에 바쁜 삶의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병상에서 일어나 이 층에서 아래층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고 노는 아이들을 불러 씻기며 이제부터는 자신도 세상에 봉사하며 살겠다고 이야기했다는 대목에서는 불운한 천재 화가의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식구가 이렇게 모여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기도했구요.


재미있는 그림을 그린 화가로만 알았던 이중섭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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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갱도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이 완전 깹니다. 가난한 예술가가 쓰는 현실적인 편지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낭만적인 이중섭 편지와 무척 비교됩니다. 고갱은 아내에게 돈을 부쳐 달라고 부탁하거든요.

초딩 2015-07-21 20:20   좋아요 0 | URL
ㅎㅎ 그 깨는 내용 보고 싶네요. 고흐 이중섭에 이어 밀레와 고갱의 책들을 읽어가려합니다 :) cyrus 님 서재 잘 참고 하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15-07-22 0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예술가는 작품보다 그가 살아낸 삶에서 더한 위로를 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장바구니에도 같은 책이 있는 것 같아요^^;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남겨요.

초딩 2015-07-22 13:09   좋아요 1 | URL
그래서 마크 로스코처럼 그림과 관객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면 안된다는 말에 완벽하게 동의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해아로가 읽는 `소년이 온다`는 소년이 운다로 보이기도하는군요 :) 좋습니다.
달아로가 읽는 태엽감는새는 모든 것을 잊고 글을 정신 없이 쫓고있습니다.
4권 중고를 발견하고 신나게 주문했던 밤이 지나버렸습니다 :)
 
크눌프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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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수레바퀴 밑에서"와 "유리알 유희"에 탐닉했고 그 사유의 늪에 허우적거렸지만, 이제는 수레바퀴 밑에서 위험하게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다 독일 문학의 한자리를 굳건히 지키시고 계시는 권현준씨의 헤세 역서를 보고 위로 삼아 구매를 했다.

-_-; 사실 헤세 작품들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간달프인지 크눌프인지는 제목 자체를 처음 봤다. 이 책에 같이 수록된 "동방 순례"는 그나마 제목이라도 스치며 본 것 같은데 말이다. 현대문학의 헤르만헤세 선집에서 이 두 중편 소설이 한데 묶인 이유는 "여행"이라는 테마라고한다. 하지만 나는 그말에 수긍하기는 힘들다.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여행을 나타내긴 했지만 헤세 작품 전체가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고 반론해본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먼 북소리`를 여행으로 묶었습니다"와 "이 두 작품을 여행으로 묶었습니다"는 많이 다른 것이다. 못땐 법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출판사에게 때아닌 딴지는 그만 걸고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귀한다. :)



크눌프


원제는 "크눌프, 크눌프 삶의 세가지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이슬란드 어로 둔갑한다고해도 원문을 충실히 - 직역에 가깝더라도 - 옮긴 책이 좋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은 해설에 하면 되지 않겠나싶다. 그래서 민음사 역서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제목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 아직 여행으로 묶은 것에 대한 불평이 남아 있어서는 아니다. 역서는 역자, 출판사 등에서 언제나 많은 이슈가 있는 법이니.

크눌프는 홍반장 같다. 성이 홍씨이고 통장/반장 할때의 반장이라는 지식인의 답이라고해도 좋고, 언제나 어디서나 어려움이 나타나면 간달프처럼 - 백마는 아니더라도 자전차라도 타고 - 나타나 문제를 훈훈하게 해결해주는 동네 아저씨라고해도 좋다. 그 이름의 영화처럼.

독일어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크`놀`프라고 계속 발음하는 이 크`눌`프는 사람이다. "사람이아니면 무엇이냐?"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식 이름이라 이것이 지명인지 가게이름인지, 아니면 말이름인지 - 간달프의 - 몰라서 먼저 하는 말이다. 철지난 영화제목 (홍반장)을 붙인 크눌프 아저씨는 - 결혼을 안 한 것 같으니 늙은 총각? 요즘은 어디에나 늙은 총각인 것 같다 - 한량이다. ㅡ,.ㅡ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한량의 "일정한 직사가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계층"은 사전적 의미가 나쁘지 않다. 책을 읽으면 무엇인가를 꼭 얻어내야한다는 결과 지상주의의 남성성은 - 유대인 가족대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여성성과 대치되는 뜻으로 써봤다 - 짧은 단편을 읽는내내 눈을 충혈시키며 메시지를 찾으려한다.

세번째 이야기 (장)에서 크눌프가 눈밭에 쓰러져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죽어갈때조차.

설득의 심리학은 완독한 것 같이 사람들을 불나방처럼 따르게 하고 - 특히 여자도 - 재능은 있으나 그외의 것들이 신의 공평함으로 부재해, 신의 불공평함을 겸비한 훌륭한 친구들이 많은 크눌프에게는 최소한의 "차카게 살자. 못땐짓하면 벌 받는다."라는 일상의 메시지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쿨하고 영특한 크눌프는 "크눌프에 대한 나의 추억"에서 친구와의 대화를 보면, 제대로 가꾸어지기만 했다면 최소한 문학사에는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크눌프의 친구들을 까만 커튼속 스툴에만 앉히고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크눌프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할 것이니 말이다.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유형지에 새로 부임한 사령관이 새롭게 내린 억울하고 답답한 업무 때문에 잠시 만났는데, 그 업무로만 만나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처럼 크눌프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쉬움이 가득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나에게 해설이 편의점에서 이제는 화폐 가치마저 잃어버린 동전들을 내던지듯이 그 답을 우쭐대며 알려준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 자신이이라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유로 가득하지만 딱히 쓰일 때가 없어 부유하는 것만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지만, 그 주위의 나아감만 있는 이들에게 지성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너도 빨리 결혼하고 애 놓고 어서 하데스의 강을 건너 이쪽으로 오렴"이라는 질투섞인 동경을 자아내는 헤르만 헤세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의 사유의 결과물이 작가와 책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동방 순례


나에게 `동방`은 고결한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한 단어다. 순례는 거기에 향신료까지 들이 붓는다. 크눌프의 사유를 통해 이 단편집은 헤세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와 전재산을 걸었다. 그랬다. 동방 순례는 헤세의 집필에 대한, 수렁과 같은 사유의 늪에 빠져 절망한 자신의 이야기를 `변명` -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운 변명처럼 - 한다. 좋아하는 커피의 꼬브랑 이름까지 말하듯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속 실존 인물부터 다른 책속 인물 그리고 무려 헤세 친구들까지 나오며 떠난 이 판타스틱한 원정대의 동방은 지리적이라기 보다는 형이상학적이다.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동방 순례에서의 간달프 - 크눌프말고 - 는 `레오`다. 그 메시아 레오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이로 비유해서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잠시 그 콧수염 때문에 카사노바로 가득히 보이는 로맹 가리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프랑스 콩쿠를 상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1975년 작 "자기 앞의 생"으로 또 콩쿠를 상을 받았다. 인류 최초로 콩쿠르 상을 두번 받은 것이다. 콩쿠르상은 한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상을 다시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앞의 생"에 상이 결정될 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역을 하고 있는 오촌 조카를 통해 수상을 거절하겠다고 편지를 보냈지만, 콩쿠르 아카데미 의장은 "아케데미는 한 후보가 아니라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다소 씁쓸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다가와 메시지를 전하고 그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리고, 돌을 굴려 올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 돌에 깔려죽을 것 같아 - 벌을 받아서 하는 것이지만 - 끊임 없이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처럼,

책을 쓰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업보를 타고 난 것처럼 절박하게 작품을 썼다고 헤세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우리가 주저할 때 표면적으로 내세운 어떤 이유들이 정말 그 이유인지, 무엇인가를 - 그것이 해답일것 같은 - 말하려는 내 마음을 젖은 멍석으로 덮어버리고, 고민을 위한 고민을하며 입꼬리를 한 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괴로워하며 고민하기를 네번째 식사로 규정하고 - 또는 매일 거르는 아침 대신 - 습관처럼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인공의 작가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목적과 당위성을 에두르며 포장을해도, `이기적 소망`에 눈이 멀어 과오를 범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많은 시련을 - 때로는 치명적인 - 겪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창작 과정에서 겪은 이 '이기적 소망'으로 인한 힘들었음을 하소연하는 듯 했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이보다 더 절망한 이에게 자비롭게 위안을 주고 과정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말이 있을까. 이 말은 어쩌면 헤세 자신이 창작의 과정에서 (동방 순례) 겪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준 깨달음의 선물이고 보상인지도 모르겠다.

 

크눌프는 헤세와 같은 사람을, 동방 순례는 창작을 하는 과정을 대변하는 작품 같다 :)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떠벌리는 경우,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p55, 크눌프

"정말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있다고 할 경우, 만일 그 소녀가 지금이 가장 한창때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늙고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소녀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할 거야.
..
그래서 나는 밤에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고 생각해"
p71, 크눌프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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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7-16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서평을 읽고 나서야, 제가 크눌프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정 글들에서 아로님과 크눌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저도 모르게 감상을 기록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애정이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창작 비슷한 어떤 작업을 하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창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지요..=ㅂ=;;;;

초딩 2015-07-16 22:31   좋아요 1 | URL
너의 글을 잘 읽어주신 하얀이에게님에게 정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너는 지금 태엽 감는 새 1편 도둑 까치편과 성 (카프카의 `성`이아니고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성`)을 읽은 직후부터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습니다.


 
변신.시골 의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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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모음집이다. 카프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의 나라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정말 체코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인 것 같다. 언젠가는 꼭 St Charles Bridge의 사진을 찍으러 가볼것이다. :) 카프카는 1883년 7월3일 프라하에서 태어나 1908년 프라하의 노동자 재해 보험국 법규과에 근무하며 밤에는 창작을 했다고 한다. 1917년 폐결핵으로 휴직하고 요양을하다 1920년 복직 후 1924년 6월3일 41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카뮈와 사르트르가 발굴해서 세계적으로 - 우리의 머리에 쥐가 백 마리 정도 내리고 단절된 공허함을 가득 느끼게 하는 - 유명해졌다고한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이분도 역시 유대인이다. 실세계에서는 출장온 이스라엘 사람을 만난 것이 다인데 책으로는 정말 많은 유대인을 만나는 것 같다. :) 이 책은 카프카의 "변신", "유형지에서", "단식광대",  "시골의사", "판결"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변신"이 어떤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니 벌레로 변신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 세계적인 부조리 철학의 0.5세대 같은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궁금했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_-; 벌레가된 주인공의 끝이 어땠는지 - 예전에 읽어서 도무지 추측조차 할 수 없어서 - 몹시 궁금해서였다. "어렵다",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단절" 이라는 단어가 그의 작품명 보다 먼저 떠오르는 카프카에게서 나의 이런 궁금증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프카는 훌륭한 사진사이면서도 현상하여 인화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사진 원판을 그대로 제시한 모양이다.

원판을 보고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알아낼 만한 눈을 가진 고객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숙련된 사진사 자신만이 인화하기 전에 그것이 잘된 사진인지 잘못된 사진인지 판별할 수 있으리라."

p198 해설의 마지막

이 무슨 회괴망측한 소리인가. 그렇다면 책을 내지 말았어야지 -_-;.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임을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_-; 하지만 곧 포기하고 비참하리만큼 넓은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다 카프카처럼 죽었다. 죽기전 일말의 메시지라도 던져줄 독백도 없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슬픔의 고해성사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각 씬들 하나 하나를 무미건조하게 - 독일식의 경쾌한 단문으로 - 설명하던 3인칭 작가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좀 와봐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널브려져서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어요!"

p79 변신 중

라고 일하러 온 할멈이 그레고르의 시체를 보고 그의 부모에게 외친 이 대목 정도가 그나마 참 격정적이었다. 세스코를 불러서 벌레퇴치를하고 오랜만에 쾌적한 환경의 집을 선물 받은 가족처럼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결근계까지 써대며 상쾌하고 활기찬 나들이를 나간다.

...

카프카의 소설들은 종결조차 없는 것이 허다하다고한다. 그나마 종결스러운 것이 있는 소설이 여기 이 5개의 단편이라고한다. 말인가 글인가 -_-

2막이라도 열릴 것 같은데 페이지는 흰 공백을 잔뜩 드러내고, 다음 페이지는 억울하게도 "유형지에서"였다.


사형기계를 애착인형처럼 사랑한 장교는 곧 폐기될 그 기계의 운명과 함께한다. 자신이 직접 그 사형기계에 들어가서 죽는다. 그리고 끝.

단식 기록을 세우며 흥행을 하던 단식광대는 이제는 철지난 유행처럼 아무도 단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도 계속 단식 기록을 세우다 굶어 죽는다. 끝.

눈보라가 치던 날 멀리 있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떠난 시골의사는 자신에게 말을 빌려준 못땐 녀석이 자신의 하녀를 겁탈하는 것을 알고 환자를 본 후 눈보라 속을 달려 집으로 간다. 이렇게 외치며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p 166

내가 하고싶은 말이었다. -_-;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이 많이 나가계시는 아버지를 모시며 나름대로 사업을 번창 시킨 아들은 노망에 가까운 아버지의  "나는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p187) 말에 뛰쳐나간다. 난 그냥 아버지와 싸워서 기분이 상해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별다른 상상을 할 여유도 없이 몇줄 뒤에 게오르크는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단다. 난 강을 보면서 화를 삼키며 난간을 꽉 쥐고 있는 줄 알았다. -_-; 강을 본것이 맞다. 다리에 매달려서. 그리고 빠져 죽는다. 끝.


"변신"에서 메시지를 찾기 어려워 - 한 번 읽고 찾았다면 난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 않을 것이 틀림 없다 - 다음 단편들을 빠르게 읽어갔지만, 다 이모양이다. 그리고 이 아방가르드하신 카프카님 작품을 이렇게 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모질게 또 사유해본다.


우선, 이분의 출신성분부터 보자.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대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코인도 아니었다. 또한 관청에 직을 가졌으나 순수한 관리도 아니었고 완전한 작가 생활도 하지 못했다. 시민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카프카는 아무 세계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p188 해설

-_-; 이런 사람이 한둘이겠냐마는 어쨌든 그의 작품 세계 저 아래 맨틀 어딘가에서 흐르는 멘탈의 지하수는 이렇단다. 카뮈가 좋아라하고 뛰쳐나올 것 같은 그 이방인이다. 이 중간자적인 이방인 카프카는 존재에 대해서 이런 무거운 생각을 토로하고 있다. 친구가 아주 많았거나 아주 적었을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참된 존재는 `그곳에 소속해야한다`

p189 해설

그리고 이분의 몸에 흐르는 유대인의 피에는 `원죄 의식`이 배어져있다.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준비한 전부다"


카프카는 어느 세계의 어귀에 있는 - 들어오는 것인지 나가는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 이방인이었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지당하고 자연스러운 `원죄 의식`도 가득했던 것이다. 어느 세계의 소속을 위해 출입증으로 카프카가 제시한 것은 `직업`이다. 하지만, 세계에 속한 축복 받는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의 `직업`은 많이 어둡고 비참하다. 변신에서의 그레고르나 단식광대의 광대 유형지에서의 장교를 보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직업과 완벽한 - 그 라이프 싸이클까지 - 등호를하고 있다. 마치 우리처럼.


카프카는

"여기에 이방인이 아닌 자가 있다면, 큰집과 실업자 같은 - 하지만 능력자 -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를 위해 매우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느날 추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돌은 우리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불편한 카프카의 사진 원판으로도 우리는 알고 있다.

"카프카는 훌륭한 사진사이면서도 현상하여 인화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사진 원판을 그대로 제시한 모양이다.
원판을 보고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알아낼 만한 눈을 가진 고객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숙련된 사진사 자신만이 인화하기 전에 그것이 잘된 사진인지 잘못된 사진인지 판별할 수 있으리라."
p198 해설의 마지막

"좀 와봐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널브려져서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어요!"
p79 변신 중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p 166

"나는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p187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대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코인도 아니었다. 또한 관청에 직을 가졌으나 순수한 관리도 아니었고 완전한 작가 생활도 하지 못했다. 시민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카프카는 아무 세계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p188 해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참된 존재는 `그곳에 소속해야한다`
p189 해설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준비한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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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12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소설을 이해하기 어려워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어봤는데 카프카의 말도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한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모순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해요.

비로그인 2015-07-13 16:47   좋아요 1 | URL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군요. 누군가는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하면서 읽는데 (심지어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희극이라지요?_?) 저는 해설이 없으면 작품세계에 범접하기도 힘들더라고요.ㅜㅜ

초딩 2015-07-16 10:43   좋아요 1 | URL
˝카프카와의 대화˝를 알라딘에서 검색하니 책 표지가 하얗습니다. 어떤 책일까요? 표지 사진을 못 찍었는건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책인지 궁금하고 의구심도 들었지만 일단 :) 장바구니에 쏙 넣어 봅니다.
해설의 힘을 많이 빌려 독후감을 쓰고 나니, 더 부끄러워져서 좀 더 읽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모쪼록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5-07-17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붉은색 표지는 구판입니다. 흰색 표지가 새 출판사에서 나온 개정판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초딩 2015-07-17 19: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ㅎㅎ 실제 책 표지가 흰색이었군요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냅킨 노트 - 마음을 전하는 5초의 기적
가스 캘러헌 지음, 이아린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캘러헌씨의 냅킨노트 페이스북 페이지 표지 사진 (페이스북 주소는 맨 아래에 있어요)

캘러헌씨의 머리가 흰 것은 항암 치료 부작용때문이에요.


암 환자이고 - 그 것도 전이되어 4번 암에 걸린 - 매일 딸의 도시락을 싸주며 냅킨에 편지를 써서 전하는 어느 평범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많은 투병환자의 그런저런 이야기겠지라며 독서의 편식 방지를 위해 데면데면하게 장바구니에 넣었고, 다른 책 살때 배송비 절약을 위해 구매했던 책이랍니다. 중고로.


일을 하다 잠시 무료하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 일어나 휴식을 취하기에는 어중간한 오후라 무료하게 의자를 이리 저리 돌리며 책장을 보내는데,

유난히 짙은 회색에 중고라 광고 겉표지도 없는 이 책이 무관심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투박한 책 표지의 질감을 느끼며 몇 페이지만 읽어보자라며 책을 들었습니다.


...

하지만,

책의 시작 5페이지의 "한국 독자들에게"의 한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평생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80일 만에 썼습니다. 원고의 마감 시한이 아니라 삶의 마감 시한이 언제일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게 당연하지만, 전이성 신장암 환자인 내게는 또 한 번 주어진 이 하루가 기적처럼,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늘 마침표를 찍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p5

 

아이를 들볶으며 - 못나게 화도 내며 - 숙제를 봐주고 책을 읽어 주던 모습,

엄마에게 짜증이란 짜증은 다 부렸던 모습,

무엇에 쫓기듯 무엇이 소중한지 잊은듯 거울속의 낯선 사람처럼 살아온 제 모습들에

죄책감이 끝 없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잃어버리려고 할 때, 그 것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깨닫는 것 같습니다 (선물). 그리고 후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것을 깨닫고 주어진 하루들을 선물로 생각하며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나가면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는가 봅니다.

저자 캘러헌씨처럼요. :)


<투데이 쇼>에 딸 엠마와 저자 캘러헌씨가 출연을 합니다. 좋은 분위기에서 녹화를하다 진행자가 돌연

"지금 이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엠마의 도시락 가방에 826번째 냅킨 노트가 들어 있기를 간절히 원할 겁니다. 캘러헌 씨, 826번째 냅킨 노트를 받은 엠마가 그 노트를 보며 당신을 어떤 아빠로 기억해주길 바라십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캘러헌씨는 자신이 딸의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살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 미리 826개의 냅킨 노트를 써뒀고, 이 것을 진행자는 캘러헌씨가 그때는 이미 죽은 것으로 치부하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ㅜㅜ 캘러헌씨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때 딸 엠마가 "제가 대답하면 안 될까요?"라며 질문을 넘겨 받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826번째 냅킨 노트를 받고 나면..."

...

"그럼 저는 827번째 냅킨 노트를 기다릴 거에요.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냅킨 노트를 써주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쭉 냅킨 노트를 써주실거에요.

제가 아는 아빠는 언제나 도시락을 싸고, 냅킨 노트를 쓰고, 마음을 나누는 멋진 사람이에요.

저는 냅킨 노트 덕분에 아빠가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저처럼 아빠한테서 냅킨 노트를 받는 친구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뿐만아니라 카메라맨 진행자도 모두 엠마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진행자의 마지막 말처럼, 작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지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말해주는 대목이죠.


캘러헌씨는 오늘도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아래와 같이 딸 엠마에게 냅킨 노트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Napkin Note: 

Don't wait for an idea to get started. Get started so you can have ideas.

Pack. Write. Connect.

 

"사랑해"라고 쓰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책의 마지막 장 말처럼, 아이의 가방에 저도 메모지를 넣어 봅니다.


저자 가스 캘러헌 (Garth Callaghan)씨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apkinnotes


"내 평생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80일 만에 썼습니다. 원고의 마감 시한이 아니라 삶의 마감 시한이 언제일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게 당연하지만, 전이성 신장암 환자인 내게는 또 한 번 주어진 이 하루가 기적처럼,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늘 마침표를 찍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p5

"826번째 냅킨 노트를 받고 나면..."
...
"그럼 저는 827번째 냅킨 노트를 기다릴 거에요.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냅킨 노트를 써주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쭉 냅킨 노트를 써주실거에요.
제가 아는 아빠는 언제나 도시락을 싸고, 냅킨 노트를 쓰고, 마음을 나누는 멋진 사람이에요.
저는 냅킨 노트 덕분에 아빠가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저처럼 아빠한테서 냅킨 노트를 받는 친구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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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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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소란과 애써 나를 분리하며, 편하지만은 않은 스툴에 앉아 뒤로 넘어지지 않게 - 도루하려는 주자를 흘낏 흘낏 견제하는 투수처럼 - 가끔식 주의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크눌프를 따라 온 동방 순례의 막바지를 그렇게 읽고 있다. 현실의 인물과 소설 속의 인물이 또 다른 소설 속에서 마구 등장하고 자세한 정보에 대한 질문을 무기력하게하는 고유 명사들이 가득한 은유에 지쳐있었을 때, 동방 순례의 후반부는 낮은 신음을 내게할 만큼의 반전과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명징한 전개로 속도를 내고 있다.

발 마저 까딱거리며 얼마남지 않은 책의 종료를 보며 녹녹치 않은 그리고 지루했던 작.업.을 곧 마치려는 어느 수공업자처럼 기지개라도 한 번 시원하게 펴보려는 순간이다.


누군가 나의 어깨에 - 투명한 징검다리라고는 절대 없을 것 같은 벼랑의 끝으로 자꾸만 내몰려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를 잊어버린 내 어깨 - 가만히 그리고 부드럽게 하지만 두툼한 아버지의 손처럼 확고하게 손을 얹는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토닥거려준다 - 거친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자꾸만 틀렸던 문제의 답을 이제야 바로 썼다는 것을 알리는 먼 북소리처럼.


내 눈으로 활자들이 온기를 띠며 들어와 망막을 지나 각 뇌들을 거쳐 딱딱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 검은 활자들은 말한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지요. 형제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동방 순례 P 228 - 229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동방 순례 P 229


주위와 애써 분리된 스툴 위에 앉은 나의 거친 뺨 위로 맑고 온기가 확실히 있는 그리고 단 소금기가 있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지요. 형제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동방 순례 P 228 - 229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동방 순례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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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4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서평 제목만 보고, 헤세의 <동방 순례> 서평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초딩 2015-07-04 21:38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헤세의 중기 작품인 ˝크눌프˝랑 유리알 유희의 선행작인 ˝동방 순례˝를 묶은 책이도라구요 :) ㅎㅎ. 책 표지에는 동방 순례가 언급도 안되어 있는데말이죠 ㅋㅋ

비로그인 2015-07-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작품세계를 이해해 보고 싶어서.. 헤세의 그림전도 다녀와 보았지만...., 저는 헤세와 가까워지는 일에 실패 했지요...ㅜㅜ흑흑
아후~ 데미안이나 크눌프와 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저는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헤세의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의 경지에 이른 그런 인물들이 저는 좀 거북하더라고요..^^;;

그나마 덜 직접적이었던 동방순례는 그래도 좀 좋았습니다.(응???ㅎㅎㅎ) ^^

초딩 2015-07-07 10:09   좋아요 1 | URL
:) 아주 예전에 - 좀 어릴 때 - 수레바퀴 밑에서와 유리알 유희를 읽고 엄청난 사고의 늪에 행복하게 빠진적이 있습니다. 정작 데미안은 읽었는지 기억이 없구요 :)
어떻게 허우적거렸는지 기억은 없는데 마냥 좋아했었습니다. 헤세를. :) 지금은 그 때의 생각과 감정을 반추해서 끄집어 내보려고 다시 책을 들었구요. 이럴 땐 인간의 착한 망각 장치가 좀 얄밉습니다. 양키처럼 봐주는게 없으니 ㅎㅎ
헤세는 동양인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백인이긴하지요. 아무튼 :)

비로그인 2015-07-08 03:16   좋아요 0 | URL
그런데 혹이 아로님께서도, 현대문학의 책으로 구입하신 이유가....^^????

초딩 2015-07-08 03:45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 보고 구매해서요. 땡스투도 드릴겸 ㅎㅎ :) --;;;

초딩 2015-07-08 11:32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권혁준씨의 카프카 번역이 아주 훌륭하고 또 그분이 더 번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어디서 봐서 냉큼 구매했죠 :)

비로그인 2015-07-08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로님께서도˝의 ˝도˝는 아로님 역시 번역자`권혁준`을 찾아 책을 구입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때문이었지요:-)
`소송`의 초기 번역 제목은 `심판`이었잖아요? 저도 (다수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소송`이라는 제목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 그 덕분에 권혁준 번역가를 신용하게 되었다는 아주 씸플한 구입 비하인드 스토리랍니다:-) 저도 저분이 더 많은 번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문장이 좋아요.^^

안그래도 느닷없이 생겨난 [마이리뷰]와 관계없는 그 땡쓰투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아로님이셨군요. ^^ 마음이 훈훈합니다.(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