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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ㅣ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적 "수레바퀴 밑에서"와 "유리알 유희"에 탐닉했고 그 사유의 늪에 허우적거렸지만, 이제는 수레바퀴 밑에서 위험하게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다 독일 문학의 한자리를 굳건히 지키시고 계시는 권현준씨의 헤세 역서를 보고 위로 삼아 구매를 했다.
-_-; 사실 헤세 작품들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간달프인지 크눌프인지는 제목 자체를 처음 봤다. 이 책에 같이 수록된 "동방 순례"는 그나마 제목이라도 스치며 본 것 같은데 말이다. 현대문학의 헤르만헤세 선집에서 이 두 중편 소설이 한데 묶인 이유는 "여행"이라는 테마라고한다. 하지만 나는 그말에 수긍하기는 힘들다.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여행을 나타내긴 했지만 헤세 작품 전체가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고 반론해본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먼 북소리`를 여행으로 묶었습니다"와 "이 두 작품을 여행으로 묶었습니다"는 많이 다른 것이다. 못땐 법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출판사에게 때아닌 딴지는 그만 걸고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귀한다. :)
크눌프
원제는 "크눌프, 크눌프 삶의 세가지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이슬란드 어로 둔갑한다고해도 원문을 충실히 - 직역에 가깝더라도 - 옮긴 책이 좋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은 해설에 하면 되지 않겠나싶다. 그래서 민음사 역서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제목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 아직 여행으로 묶은 것에 대한 불평이 남아 있어서는 아니다. 역서는 역자, 출판사 등에서 언제나 많은 이슈가 있는 법이니.
크눌프는 홍반장 같다. 성이 홍씨이고 통장/반장 할때의 반장이라는 지식인의 답이라고해도 좋고, 언제나 어디서나 어려움이 나타나면 간달프처럼 - 백마는 아니더라도 자전차라도 타고 - 나타나 문제를 훈훈하게 해결해주는 동네 아저씨라고해도 좋다. 그 이름의 영화처럼.
독일어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크`놀`프라고 계속 발음하는 이 크`눌`프는 사람이다. "사람이아니면 무엇이냐?"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식 이름이라 이것이 지명인지 가게이름인지, 아니면 말이름인지 - 간달프의 - 몰라서 먼저 하는 말이다. 철지난 영화제목 (홍반장)을 붙인 크눌프 아저씨는 - 결혼을 안 한 것 같으니 늙은 총각? 요즘은 어디에나 늙은 총각인 것 같다 - 한량이다. ㅡ,.ㅡ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한량의 "일정한 직사가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계층"은 사전적 의미가 나쁘지 않다. 책을 읽으면 무엇인가를 꼭 얻어내야한다는 결과 지상주의의 남성성은 - 유대인 가족대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여성성과 대치되는 뜻으로 써봤다 - 짧은 단편을 읽는내내 눈을 충혈시키며 메시지를 찾으려한다.
세번째 이야기 (장)에서 크눌프가 눈밭에 쓰러져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죽어갈때조차.
설득의 심리학은 완독한 것 같이 사람들을 불나방처럼 따르게 하고 - 특히 여자도 - 재능은 있으나 그외의 것들이 신의 공평함으로 부재해, 신의 불공평함을 겸비한 훌륭한 친구들이 많은 크눌프에게는 최소한의 "차카게 살자. 못땐짓하면 벌 받는다."라는 일상의 메시지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쿨하고 영특한 크눌프는 "크눌프에 대한 나의 추억"에서 친구와의 대화를 보면, 제대로 가꾸어지기만 했다면 최소한 문학사에는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크눌프의 친구들을 까만 커튼속 스툴에만 앉히고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크눌프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할 것이니 말이다.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유형지에 새로 부임한 사령관이 새롭게 내린 억울하고 답답한 업무 때문에 잠시 만났는데, 그 업무로만 만나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처럼 크눌프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쉬움이 가득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나에게 해설이 편의점에서 이제는 화폐 가치마저 잃어버린 동전들을 내던지듯이 그 답을 우쭐대며 알려준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 자신이이라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유로 가득하지만 딱히 쓰일 때가 없어 부유하는 것만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지만, 그 주위의 나아감만 있는 이들에게 지성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너도 빨리 결혼하고 애 놓고 어서 하데스의 강을 건너 이쪽으로 오렴"이라는 질투섞인 동경을 자아내는 헤르만 헤세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의 사유의 결과물이 작가와 책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동방 순례
나에게 `동방`은 고결한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한 단어다. 순례는 거기에 향신료까지 들이 붓는다. 크눌프의 사유를 통해 이 단편집은 헤세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에 내 손모가지와 전재산을 걸었다. 그랬다. 동방 순례는 헤세의 집필에 대한, 수렁과 같은 사유의 늪에 빠져 절망한 자신의 이야기를 `변명` -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운 변명처럼 - 한다. 좋아하는 커피의 꼬브랑 이름까지 말하듯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속 실존 인물부터 다른 책속 인물 그리고 무려 헤세 친구들까지 나오며 떠난 이 판타스틱한 원정대의 동방은 지리적이라기 보다는 형이상학적이다.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동방 순례에서의 간달프 - 크눌프말고 - 는 `레오`다. 그 메시아 레오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이로 비유해서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잠시 그 콧수염 때문에 카사노바로 가득히 보이는 로맹 가리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프랑스 콩쿠를 상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1975년 작 "자기 앞의 생"으로 또 콩쿠를 상을 받았다. 인류 최초로 콩쿠르 상을 두번 받은 것이다. 콩쿠르상은 한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상을 다시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앞의 생"에 상이 결정될 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역을 하고 있는 오촌 조카를 통해 수상을 거절하겠다고 편지를 보냈지만, 콩쿠르 아카데미 의장은 "아케데미는 한 후보가 아니라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다소 씁쓸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다가와 메시지를 전하고 그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리고, 돌을 굴려 올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 돌에 깔려죽을 것 같아 - 벌을 받아서 하는 것이지만 - 끊임 없이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처럼,
책을 쓰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업보를 타고 난 것처럼 절박하게 작품을 썼다고 헤세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우리가 주저할 때 표면적으로 내세운 어떤 이유들이 정말 그 이유인지, 무엇인가를 - 그것이 해답일것 같은 - 말하려는 내 마음을 젖은 멍석으로 덮어버리고, 고민을 위한 고민을하며 입꼬리를 한 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괴로워하며 고민하기를 네번째 식사로 규정하고 - 또는 매일 거르는 아침 대신 - 습관처럼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인공의 작가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목적과 당위성을 에두르며 포장을해도, `이기적 소망`에 눈이 멀어 과오를 범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많은 시련을 - 때로는 치명적인 - 겪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창작 과정에서 겪은 이 '이기적 소망'으로 인한 힘들었음을 하소연하는 듯 했다.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이보다 더 절망한 이에게 자비롭게 위안을 주고 과정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말이 있을까. 이 말은 어쩌면 헤세 자신이 창작의 과정에서 (동방 순례) 겪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준 깨달음의 선물이고 보상인지도 모르겠다.
크눌프는 헤세와 같은 사람을, 동방 순례는 창작을 하는 과정을 대변하는 작품 같다 :)
"저 친구는 정말 행복하군 ... 다만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의 그런 삶을 고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손이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는 없고 또 저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하루하루를 마치 일요일처럼 즐겁게 살았다" p34
"그 사람은 내면에서 스스로 그것을 느끼거든. 반면에 선한 일을 하면 우리가 만족을 느끼고 또 양심의 가책도 없으므로 선한 일은 또한 옳은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p74-75
"모든 사람은 각자 영혼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영혼을 다른 영혼과 뒤섞을 수는 없어" p82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떠벌리는 경우,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p55, 크눌프
"정말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있다고 할 경우, 만일 그 소녀가 지금이 가장 한창때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늙고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소녀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할 거야. .. 그래서 나는 밤에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고 생각해" p71, 크눌프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p166 동방 순례
"그것은 어머니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기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과 힘을 다 주고나면, 어머니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대해 더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p172 동방 순례
"나로서는 책을 쓰든지 아니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책을 쓰는 일은 나를 허무, 혼란, 자살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지.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책을 썼던 거야." p189 동방 순례
"그의 이름이 레오였는가?" p192 동방 순례
"내가 선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바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로 나는 동방 순례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하면서 그런 이기주의를 매일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다." p193 동방 순례
"고통은 너무 커지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지요. 현재 H는 시험을 겪으면서 절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절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삶의 덕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이성을 갖추고 극복하고자 하고 또 삶의 요구들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고, 저쪽 편에는 깨달은 자들이 살고 있지요." p229 동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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