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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이에의 강요'님의 아이디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임을 알고 중고로 구입해서 읽었다.
'깊이에의 강요'님은 '깊이에의 강요'가 얇지만 많은 생각을 하며 읽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깊이가 부족합니다."
"깊이가 없다."
"깊이가 없어요."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나는 깊이가 없어요!"
p11-16
카프카의 단편집을 읽는듯했다. 불안했다. 책이 얇아서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서 100쪽) 더 조바심이 났다. 나도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나도 이 책을 오랫동안 읽어야 하는데. 하지만 쥐스킨트의 경쾌한 필치는 나를 봐주지 않았다. 첫 장을 열고 손톱을 몇 번 깨물었다 생각했는데 이미 옮긴이의 말을 만났다. 그마저도 경쾌하게 끝났다.
'승부'의 '장'이라는 체스 고수처럼 냉담하고 천재적인 젊은이의 한 수 한 수에 속절없이 장고한다. 장인 뮈사르처럼 온 세상이 돌조개로 뒤덮여가고 결국 돌조개의 그 큰 입에 세계가 끝날 것 같다식의 사념도 끝없이 해본다. 하지만 '문학적 건망증'이 나를 냉소한다.
나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 '탐구', '사유', '공유' 등의 이면에 있던 '강요'를 괘념치 않은 것 같다. 의식하지 않은 것 같다. 밖으로부터의 강요가 아닌 더 매정하고 혹독한 나로부터의 강요를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래서 내 의식과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 것 같은데?'
잠시 그런 질문들을 105페이지인 두꺼운 책커버와 함께 덮어 본다.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생각한 것 아닌가라며 위안하며.
쥐스킨트의 "향수"에 손이 간다 :-)
p.s. '깊이에의 강요'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년 정독도서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또다시 그 계절이 온다. 같았었고, 달랐고, 이제는 같지 않을. 그래서 그래도 달라야할 같은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