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참모실록 -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박기현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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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역사를 읽다보면 늘 궁금한 것이 있다. 한 나라의 권력이 왕에 집중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 왕의 존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으로 그려지는 역사책에서 왕 이외의 사람들은 그럼 무엇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분명 알지 못하는 무엇이 있고 그 무엇에 의해 힘의 균형이 잡혔을 것인데도 유독 왕조사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많은 것은 단순한 흥밋거리로 역사를 보는 편협한 시각의 반영이 아닌가도 돌아보게 된다. 

어느 시대든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집중된 권력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앞세워 횡포를 부리기도 하지만 때론 백성들을 위해 아낌없는 정책을 펼쳐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기도 있었다. 흔히들 동양 3국인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에서 권력의 향배를 분석하고 내 놓은 말들 중 중국은 왕권이 절대적이고 일본은 신권이 절대적이어서 한 왕조가 오랜 시간을 영위하지 못하고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에 의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랜 왕조를 이어온 우리의 역사는 비결은 왕권과 신권이 서로 힘의 조화를 이루었기에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게 왕권과 신권사이 힘의 균형을 이뤄온 우리 역사에서 당파싸움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도 왕권을 견제하는 속에서 서로 공존하려는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역사 중 비교적 가까운 조선에서 신권을 대표하는 중심에 영의정이 있었다. 그들은 탁월한 정치적 활동에 의해 임명된 경우도 있었지만 때론 왕권과 신권사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임명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올랐는가를 불문하고 자리에 올라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 ‘조선 참모실록’은 바로 그런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왕이 중심인 나라에서 왕을 도와 정책을 시행하며 행정 관료인 대신들을 비롯하여 백성들의 삶을 살펴 그들이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참모라는 말은 조직 내에서 관리적 기능과 자문·정책조언 기능을 수행하면서 조직 목적 달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기관이나 사람을 말한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권력의 책임자와 행정 그리고 그 둘을 있게 한 백성 이렇게 세 축으로 살핀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참모는 바로 행정의 심무를 책임지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역사에서 주목받는 참모로 저자가 선택한 사람은 맹사성, 이준경, 이황, 이원익, 이항복, 김육, 최석정, 박규수 등 모두 8명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사람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 있지만 이들 모두는 당대를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희망이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사회가 혼란스러운 때 책무를 맡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모두에게 이로운 정책을 실천하고 그 마음이 백성들의 가슴에 온기를 전하며 희망의 불꽃을 피운 것이다. 

주목되는 사람으로는 다소 낫선 이준경과 최석정이다. 이준경은 집안이 사화를 겪으며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좌절을 딛고 혼란스러운 당시 국정을 타협과 중용으로 이끌었다. 최석정은 병자호란 때 주화파의 선두였던 조부 최명길에 대한 업보를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출사해 숙종을 보좌하며 사화와 당쟁으로 얼룩진 조정을 원만하게 이끌어나갔다. 

이들 이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여준 구체적인 모습은 제각각이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이 다르고 나라 사정이 달라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당차게 뜻한 바를 묵묵히 실천해갔다. 그들은 주로 세우기보다 지킨 쪽이요,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경영의 안정적 시스템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 참모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시대의 모범과 표준을 제시한 리더 중의 리더였다. 이들이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저자가 주목하는 참모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 한다.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로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조선이라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던 상황도 분명 있었고,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잃기도 했겠지만 그들에겐 탁월한 참모가 있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 역사의 탁월했던 참모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철없는 사람의 기대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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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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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할 수 있는 서양화가 사전
내가 사는 근처에 시립미술관이 있다. 한가한 휴일 오후, 제법 커다란 규모의 미술관엔 네 가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그 중 한 가지는 고흐나 고갱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재현한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면서 화가와 그림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저렇게 부모 손을 잡고 미술관 나들이를 한 기억으로 훗날 그림에 대한 관심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할 미래를 상상해보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진다.

요사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시민과 함께하려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인해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건물에 갇힌 그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찾아와 보고 감상하며 즐기는 가운데 문화적 소양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 과정이 바로 현대인이 누리고자 하는 쉼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관심을 풀어줄만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회 등에서 보여주는 각종 자료는 한시적이며 제한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다. 또한 익숙한 화가의 경우도 그저 이름만 알거나 그림과 이름 정도를 연결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기에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알고자 하는 열망을 채워주지는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그림을 읽어주거나 해설해주는 서적들의 출간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101명의 화가’이 책 역시 사람들의 그러한 열망을 해소해 주고자 출간된 책이라는 생각이다. 더욱 만화로 구성된 화가의 이야기다보니 화가나 그림에 대해 다소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구성이라는 점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 화가에게 주목되는 화풍이나 그 화가의 생애를 비롯하여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설이 함께 있어 개략적으로 화가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01명이나 되는 많은 화가를 한 권의 책에 담아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고 싶은 거의 대부분의 화가가 망라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갱, 고야, 고흐, 뒤샹, 라파엘로, 루소, 마그리트, 모딜리아니, 몬드리안, 뭉크, 미로, 부셰, 앵그르, 에른스트, 카라바조, 컨스터블, 쿠르베, 클레, 클림트, 티치아노, 폰토르모 등 이 책에 담긴 사람들은 서양미술사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김 화가들로 그동안 화가를 해설하는 책에서 주목했던 작품이 아니라 화가를 주목한 내용이라 더 없이 화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두 페이지 펼친 면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 화가를 알아 가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인 생애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이에 덧붙여 화가의 주요한 작품, 주목할 만한 특징 등을 담았다. 미술관을 찾을 때 휴대하고 가면 정말 유용하게 쓰일 책이란 생각이다.

이러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들의 이해요구를 충족시키기에 미흡한 점이 있다. 우선, 책의 판형이 작다보니 페이지 구성에서 만화로 표현되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너무 작아 읽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화가는 곧 그림으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림이 너무 작아 도무지 그림이주는 느낌을 공유할 수 없는 수준이다. 편집자의 욕심이 관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미술하면 우선 서양미술이 떠오르고 미술사 역시 서양미술사가 먼저다. 이런 선입감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화가나 그림이 분명 존재한다. 이 책을 보며 부러운 점은 동양미술이나 우리 옛 그림 그리고 현대 한국미술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가능한 책이 발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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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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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게 세상 바라보는 재미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 방법 중 문학이나 예술은 세瓚�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상읽기와 표현하기의 전형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세상을 느끼는 사람들의 표현 방법을 강제적으로 규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까지도 불온서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분류하고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시절 인기 있었던 신문의 만평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컷의 만화로 표현되는 그림 속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만평을 보기위해 신문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본격 시사인 만화’는 바로 그런 류의 시사만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시사IN'이라는 주간지에 2009년부터 2011년 초까지 연재된 시사만화다. ‘굽시니스트’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김선웅의 작품이다. 그는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다시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를 중심으로 활동 현재 서브컬처 문화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같은 것을 보고도 무엇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결론에 이르러서는 찬차만별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기에 카툰이라는 것 역시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시사만평은 바로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기를 주저하는 에 집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촌철살인적인 통찰력이 중요할 것이다.

‘본격 시사인 만화’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편집을 보여준다. 어떤 시사문제든 시의성이 다르지 못하면 그 가치는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니 당면한 문제에 대한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전 분야의 중심적인 부분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58편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저자의 젊은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권력을 중심에 두고 이합 집산하는 정치권, 권력의 시녀라고 입방아에 오른 사법부의 모습, 국민들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는 4대강 개발이나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천안함 사건, 해외파병문제, 한미FTA 등 외교현안에 이르러서는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저자가 충분히 객관적이고 진보적이며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시사문제이다 보니 모두가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당야한 시각이 주목된다. 비록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풍자와 독설이 매력인 시사만화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것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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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붓
강판권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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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담긴 그림 속 나무 찾기
성질이 다른 것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서로 어울려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경우를 만나면 보고 느끼는 즐거움이 몇 배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음악과 그림과 같이 예술이라는 커다란 범주에 속하는 만남은 자주 있어 왔고 그런 만남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학문간 서로의 벽을 허물고 소통을 이뤄가는 현대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보여 진다. 

하지만, 그림과 나무라는 다소 동떨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다른 분야의 어울림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나무에 대한 사랑이라면 두 번째로 불리는 것조차 서러워할 ‘나무환자’ 강판권이 그림 속에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무들에 주목하고 그 나무를 통한 그림 읽기를 시도한 독특한 이야기를 만난다. 그가 그림과 나무의 어울림을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그림과 나무 모두를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이 책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은 강판권의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전공이 역사학이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공 못지않아 평소 나무를 찾아다니는 저자에게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나무는 당연하게 주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중국과 우리나라 산수화에 등장하는 나무들에 주목하고 그림읽기를 시도했다. 그림과 나무의 적절한 어울림을 찾아내기까지 산수화의 교본이라고 부르는 ‘개화원화전’으로 산수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림공부와 역사 그리고 나무가 저자 강판권이라는 사람을 매개로 새로운 문화 누리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속에 언급하고 있는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그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선비들의 벗이었던 매화, 대나무, 소나무를 비롯하여 오동나무, 복숭아, 살구나무, 해당화, 모란, 단풍나무, 버드나무, 포도나무, 석류나무, 파초 등, 수많은 나무 종류 중에서도 유독 사람들과 친숙했던 나무들이 사랑받았고 그런 나무들만 그림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화의 중심이 되어온 산수화는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나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산수화 역시 중국의 산수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산수화는 모두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의 작품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며 자연법칙에 어긋나지 않은 삶을 추구했던 동양 선비들의 마음이 담긴 산수화를 읽는 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성찰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바로 그림과 그 속의 나무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중심 이야기가 되고 있다.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유독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나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고고하고 유유자적했던 선비의 정신을 나타내거나 부귀와 공명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나무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꽃이나 열매를 중심으로 바라보던지 나무가 나타내는 기상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옛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 속에서 하나 되는 삶을 추구했다. 그러한 마음이 담긴 것이 그림이었으며 그 그림 속에 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람들이 나무를 바라볼 때 보다 중심적인 것은 꽃이나 열매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꽃이나 열매가 지고나면 그 나무는 관심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가하여 아쉬움이 있다.

나무에 대한 사랑이 소나무 그림 하나를 갖고자함으로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다닌 그림 속에서 만난 나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지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책은 그림 속의 나무를 그림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 찾아 우리에게 전하는 저자의 마음이 독자들을 독특한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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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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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우정이 빛나는 이야기
문학작품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중심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분명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긴 한데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깊은 우정이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의도에서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일지라도 문학을 대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경우엔 그 작품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또한, 한 작가의 이야기 구성이 매번 비슷한 구도를 보인다면 중심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욤 뮈소의 작품을 세 번째 만나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 다양한 환경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 작품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배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욤 뮈소의 이 작품 ‘종이 여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부류 중 인기 피아니스트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만남이 온전하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분명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가능해지는 사랑이야기 일 테니까 말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과 당당하게 나타난다면 당연하게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울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운명으로 여겼던 피아니스트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자신이 믿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후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고 있다.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친구를 보다 못한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친구들이 이를 돕고자 하지만 거부하고 만다. 여기에 느닷없이 등장한 여인이 있다. 바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현실의 세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소설 속 상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 페이퍼 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의 여자 빌리는 그래서 종이여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둘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고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종이여자 빌리의 발병으로 인해 작가와 종이여자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종이여자를 살리기 위해 결국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지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삶에서 구해준 종이여자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작가의 선택이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생각의 흐름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또한 작가는 작가로써 자신이 작품을 완성해가는 동안 경험하는 심리적 변화나 갈등 등을 이 이야기 속에서 적절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 줄의 글을 쓰기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 그 글 속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정적인 반전은 작가의 친구들에게 있다.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키워왔던 세 사람은 작가에게 마음속 빚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우리한테 달린 날개가 나는 방법을 잊었을 때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천사 같은 존재다’라는 말처럼 작가를 향한 친구들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며 찾았던 ‘다른 이야기’가 바로 이 세 사람이 보여준 우정이었다. 작가의 친구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증인으로 인사말을 마친 작가에게 친구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 놓으며 종이여자 ‘빌리’는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며 나락에 떨어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고백을 받고 당황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기욤 뮈소의 작품에는 종종 한국관 관련된 사람이나 장면이 등장한다.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우선 반가움 마음이다. 낯선 외국 여행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반가운 마음이랄까? 또 다른 흥미거리는 책의 여행이다. 그 책이 낯선 사람, 다른 장소를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낯선 풍경처럼 가까운 풍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참으로 많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독자 자신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밝혀줄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마다 사랑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 다르고 깊이 또한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공감을 느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날기를 잊어버린 친구를 들어 올려주는 마음’ 이는 종이 여자가 수렁에서 작가를 건져냈던 마음과 통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을 사랑으로 부른다면 작가의 작품 속에 담아둔 속내를 옳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 보다는 우정이 앞서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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