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보다 우정이 빛나는 이야기
문학작품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중심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분명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긴 한데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깊은 우정이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의도에서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일지라도 문학을 대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경우엔 그 작품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또한, 한 작가의 이야기 구성이 매번 비슷한 구도를 보인다면 중심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욤 뮈소의 작품을 세 번째 만나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 다양한 환경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 작품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배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욤 뮈소의 이 작품 ‘종이 여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부류 중 인기 피아니스트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만남이 온전하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분명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가능해지는 사랑이야기 일 테니까 말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과 당당하게 나타난다면 당연하게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울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운명으로 여겼던 피아니스트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자신이 믿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후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고 있다.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친구를 보다 못한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친구들이 이를 돕고자 하지만 거부하고 만다. 여기에 느닷없이 등장한 여인이 있다. 바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현실의 세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소설 속 상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 페이퍼 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의 여자 빌리는 그래서 종이여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둘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고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종이여자 빌리의 발병으로 인해 작가와 종이여자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종이여자를 살리기 위해 결국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지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삶에서 구해준 종이여자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작가의 선택이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생각의 흐름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또한 작가는 작가로써 자신이 작품을 완성해가는 동안 경험하는 심리적 변화나 갈등 등을 이 이야기 속에서 적절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 줄의 글을 쓰기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 그 글 속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정적인 반전은 작가의 친구들에게 있다.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키워왔던 세 사람은 작가에게 마음속 빚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우리한테 달린 날개가 나는 방법을 잊었을 때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천사 같은 존재다’라는 말처럼 작가를 향한 친구들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며 찾았던 ‘다른 이야기’가 바로 이 세 사람이 보여준 우정이었다. 작가의 친구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증인으로 인사말을 마친 작가에게 친구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 놓으며 종이여자 ‘빌리’는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며 나락에 떨어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고백을 받고 당황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기욤 뮈소의 작품에는 종종 한국관 관련된 사람이나 장면이 등장한다.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우선 반가움 마음이다. 낯선 외국 여행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반가운 마음이랄까? 또 다른 흥미거리는 책의 여행이다. 그 책이 낯선 사람, 다른 장소를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낯선 풍경처럼 가까운 풍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참으로 많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독자 자신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밝혀줄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마다 사랑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 다르고 깊이 또한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공감을 느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날기를 잊어버린 친구를 들어 올려주는 마음’ 이는 종이 여자가 수렁에서 작가를 건져냈던 마음과 통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을 사랑으로 부른다면 작가의 작품 속에 담아둔 속내를 옳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 보다는 우정이 앞서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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