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강제윤 글.사진 / 홍익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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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나?
강제윤이라는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몇 년 전 제목에 이끌려 손에 든 책이 저자의 ‘숨어사는 즐거움’이었다. 심상치 않은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간 후 둥지를 틀고 쓴 글 모음이었다. 숨어산다는 것,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숨겨야 했는지 그 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숨어서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의 무엇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얻었다는 것으로 읽혔기에 그 마음에 담긴 것에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정착하는 듯싶었던 고향 보길도를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년시절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희망을 가슴가득 안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과정에서 옥고도 치렀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야 할 터전에 대한 심한 몸부림을 치더니 다시 2005년 어느 날, 문득 떠돌며 살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다시 고향을 떠났다. 무엇이 그를 고향에서 떠나 떠돌이 삶을 살게 한 것일까? 사람들의 곁을 떠나 바다 위 떠도는 섬들을 순례하게 만들었는지 속내가 궁금하다. 

이제 그를 부르는 수식어로 ‘섬 순례자’가 익숙해졌다. 3면이 바다인 이 땅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인도가 500여개가 된다고 한다. 그 섬을 하나 둘 발품 팔며 걷고자 하는 저자는 지금까지 200여개의 섬을 그렇게 다녔다. 이 책은 바로 섬을 둘며 걷는 동안 보고 느낀 섬과 섬사람들 그리고 저자 강제윤의 이야기를 담아 온 책이다. 출발부터가 섬을 소개하여 사람들을 불러오게 만들고자 하는 관광안내서가 아니기에 그의 섬 이야기는 단순해 보인다. 육지 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을 불러드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 먼 기억을 아니다. 섬과 섬사람들이 지금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 말이다. 풍어의 시절 섬들은 고기잡이배들과 그 배들을 따라 함께 온 사람들이 성시를 이룬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무분별한 욕심이 불러온 결과 고기가 떠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떠났다. 사람들이 사라진 섬에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역사마저 사라지고 있다. 남은 것은 패선과 쓰러져가는 집, 모래사장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으로 담은 노인들의 허한 마음뿐이다. 섬을 순례하는 저자의 발길엔 일정한 흐름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섬 순례기를 볼 때 남해에서 서해로 그리고 다시 남해로 이어진 몇몇 섬들을 발길 가는대로 걸어간 흔적이 담겨 있을 뿐이다.

‘섬에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별을 가슴에 품어본 적이 있는가. 별이 나에게 길을 묻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섬에서 섬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 저자의 눈과 가슴으로 순례자는 묻는다. 독자도 어느 때인가 비슷한 질문을 한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늦가을 쯤 서해 위도라는 섬의 이름 모를 항구 등대아래서 밤을 지새우며 보았던 달과 별, 그 밤하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가는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인이자 별이 길을 물었다는 저자의 이 책에는 순례자의 눈길로 바라본 섬과 섬사람의 마음으로 담은 풍경이 담겨 있다. 사진이 주는 매력적인 이야기는 섬을 가슴에 담고 있는 독자들에게 글과는 또 다른 이야기로 대화를 시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삶을 자처한 저자의 발길은 언재쯤 멈출까?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의 삶처럼 저자나 우리들이나 지구를 찾아온 영원한 순례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섬을 걷는다고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걸어가는 그 길에서 웃고 울며 늘 자신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이 저자에게 길을 묻듯 우리 또한 그 별에게 길을 물어보며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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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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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두가 승자는 될 수 없다. 그럼 누구?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에서 미국을 배재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후 점령국처럼 우리나라에 온 미국의 영향아래 우리의 현대사는 쓰여 진 것이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졌다는 것이다. 군사, 경제, 정치, 교육 등 한 나라를 구축하는 기본 틀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후로도 그 영향력이 지속되어 왔다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운명에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후폭풍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닮은 우리나라는 그럼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하는가? 

미국의 세계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20세기를 들어서며 두 차례의 세계적인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성장을 이뤄왔고 이후 세계1위국가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철옹성 같았던 미국의 금융가가 철퇴를 맞은 것처럼 흔들렸고 그 영향을 전 세계 금융가를 뒤집어 놓았다. 또한 미국 산업의 축이었던 자동차 산업의 붕괴는 미국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미국에 대한 평가를 내 놓은 책이 바로 ‘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이다.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그만큼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던 미국의 지위를 부정하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책이다. 그것도 미국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자신의 국익을 위해 부단한 압력을 행사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국 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자본, 노동, 기술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의 동력 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측면들에 대해 소홀한 결과 자신의 지위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두에 서 있던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원인이 내부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내부라는 것도 외부의 조건과 환경에 끝임 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달라진 외부환경에 대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지위를 흔드는 외부적 요인으로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국가들을 말한다. 잠재적 경제성장력 1위로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중국이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하며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 4국을 일컫는 브릭스(BRICS)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경제체제에 대한 기존의 틀을 크게 흔들고 있다고 본다. 

저자 담비사 모요는 향후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기존 질서의 중심인 미국과 새롭게 대두되는 세력의 중심인 중국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승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저자가 고려하는 양대 국가의 대결 시나리오는 현상유지, 중국의 후퇴, 미국의 반격, 미국의 극단적 선택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확정적인 징후를 보인다고 평가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시각은 미국이 그 지위를 그냥 내 놓을 수 없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파산하지 않고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든 아니면 더욱 강고한 기반을 쌓든 그것은 지금의 미국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은 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이 저지른 경제 실책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위기를 솔직하게 진단하고 처방한다. 또한 세계 경제가 흘러온 거대한 흐름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해 있는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미국이 지나치게 종속적인 성장을 해온 우리 경제구조에서 미국과 중국의 양대 구조에서 그리고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경제구조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 심도깊은 고민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일반인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제에 대한 내용을 그것도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보는 세계의 경제 중심축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경제국들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도 한다. 모두가 승자는 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린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2011년 GDP 기준 세계경제대국 2위 중국, 3위 일본 사이 끼어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살아갈 방법 모색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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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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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나누는 지적 유희가 아닌가 한다. 글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의미 말고도 행간에 숨겨진 저자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독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는 분야나 독자와 머리싸움을 벌리는 분야가 단연 선두에 서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분야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문학이라는 분야가 될 것이다.

오래전 영화 한편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유상옥 감독의 1999년 작품으로 김태우, 신은경, 이민우 등의 배우가 출연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建築無限六面角體─秘密)’이다. 이 영화의 제작의 직접적인 배경은 이상(李箱)의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상이라는 시인의 삶과 육면각체 속에 담긴 수학적 지식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으로 긴장감이 팽배했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육면각체’라는 도형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기반으로 지적 흥미를 유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선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천 년의 침묵’ 역시 이와 비슷한 주제와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에서 잘 볼 수 없는 도형이라는 수학적 테마를 소재로 하여 그려진 작품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공식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피타고라스에 의해 규명되어졌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출발은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라는 이야기를 접하며 "피타고라스 정리는 정말 피타고라스의 정리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둘러싼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내용전개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든다.

작품의 무대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크로톤이다. 크로톤의 실력자로 등장한 현자 피타고라스의 학파에서 수학하던 제자 디오도로스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른다. 그의 동생 카르모스는 형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학파에 입문하고 형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히파소스를 만나 형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현자 피타고라스는 학문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 이를 자신의 학파의 힘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의 위상에 도전하는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한다. 형이 남긴 단서를 통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모순이 있으며 이는 이미 천 년 전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과 이를 현자 피타고라스가 도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파소스는 디오도로스가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풀리지 않은 의문에 도전 ‘무리수’라는 알려지지 않은 수의 영역을 밝혀내고 이를 무기로 현자 피타고라스에 도전하게 된다. 한편, 피타고라스의 위세가 자신의 권력을 앞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귀족회의 의장 킬론은 현자 피타고라스학파를 몰락시키기 위해 시민단체와 밀약하고 음모를 진행하게 된다.

학문과 권력 상호간의 충돌, 인간의 권력 지향적인 본능, 불륜이나 동성애를 통한 육체적 욕망에 대한 갈망, 탐욕 등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관계,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잘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은 물음에 대한 묘사와 피타고라스 정리, 무한수 등의 독특한 소재를 절묘하게 조합한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인간유형의 극단은 지적욕구와 이를 이용한 세속적 욕망에 대한 갈망 등 인간의 욕망이 비극적인 결말은 불러오게 된다. "진실을 밝힌 자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따져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가 실현된 것일까? 2,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그것과 별 차이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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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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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다른 식으로 돌보기
국악을 전공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소리에 대단히 민감했다. 함께 본 영화의 음악이나 드라마 주제곡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듣게 되었을 때 그것을 기억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것이 딸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 사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고 학원 수업에 대해 조금씩 어려움을 표현하곤 했다. 부모는 그때도 몰랐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악기 중 하나라도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가야금을 배우게 했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가야금 선생님의 말에 의해 이 아이가 소리와 음에 남다른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음을 테스트를 비롯한 몇 번의 실험과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피아노를 배우는 방법도 달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거문고를 전공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고 당당하게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다. 딸아이가 남과는 다르면서도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장점으로 살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남과 다른 사소한 차이에 주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었다면 지금쯤 아이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이와 같이 무엇이든 남과 다른 어떤 점이 있다는 것은 때론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상한 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이나 집단 등의 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억누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바로 남과 다른 민감한 무엇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바로 자신이 ‘다른 이들이 모르는 것을 포착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어떻게 알아보고 그것을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런 남과 다른 차이를 이 책의 저자는 ‘민감성’으로 표현하고 오랫동안 연구했다. ‘숫기 없음’, ‘내성적임’, ‘울보’ 등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성향을 살펴 그 안에 있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관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유난히 불편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소리나 냄새에 반응한다. 한 번 겪은 일은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폭력물이나 공포물을 보는 게 힘들다. 경쟁을 하거나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과 구별되고 경계해야할 특별히 다른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보다 ‘민감한 성향’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매우 민감한 자신이 스스로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 친구나 직장동료와 같은 대인관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랑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민감함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세워 그러한 차이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데 장점으로 발휘될 수 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바깥 세계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인 경험의 가장 깊은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면의 닻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하나 같은 사람은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어떤 점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향이 밖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어 있기도 하는 것이다. 매우 민감하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향이 남들보다 더 발달되어 있을 뿐 다른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성향은 창조성이 발휘되는 좋은 기반을 가진 것으로 남들보다 더 자기만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개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남과 다른 민감한 성향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개인의 가치관보다는 사회문화적 차이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가 많은 사람의 관계에서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무엇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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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비주얼 사이언스 북 4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정용 옮김 / 전나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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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처음 가는 길을 가다보면 좀처럼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은 찾아갈 때 보다 짧다는 것으로 느낀다. 흥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는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는 정말로 더디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낀다.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 경우는 다양한 곳에서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시간은 동일한 속도로 흘러간다고만 생각하지 쉽다. 하지만 시간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상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이런 시간 흐름의 차이는 바로 심리적 시간인 상대적 시간으로 볼 때 이해되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았던 옛날이나 분초를 다투는 현대인 모두의 삶에서 시간을 측정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과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이면 어떻게 측정하게 되었으며 그 시간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개괄적인 해설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은 일반인들이 ‘시간’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에서부터 최첨단 산업사회인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는지를 해설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다케우치 가오루는 이미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 ‘한 권으로 충분한 양자론’, ‘99.9%는 가설’ 등의 책으로 일본내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과학 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의 또 다른 저서가 시간과 관련된 바로 이 책이다.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의미조차 생각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그 중요성만큼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꼭 알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소홀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시간과 관련된 학문에는 의외성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혀 관련 없이 보이는 철학이나 물리학, 생리학 등 동원되어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장마철 번개와 천둥소리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빛이 먼저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처럼 시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접했을 때 어떻게 처리되어 인식하는지 그 차이가 무엇인지 등을 간략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짧은 시간이 100분의 3초이고 가장 긴 시간이 3초라는 부분의 설명에서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한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에는 ‘달력’의 기준이 되는 태음력이나 태양력의 역사, 제논의 패러독스, 칸트와 베르그송의 시간에 대한 규정, 에른스트 푀펠의 시간론, 뉴톤의 절대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시간, 공간과 시간, 운동과 시간, 브라운 운동, 시간과 엔트로피 우주시간, 호킹의 시간의 화살, 초끈이론 등 그동안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며 밝혀낸 과학 탐구 영역의 다양한 분야를 통해 시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왜 눈에 보이지 않을까? 나 물리적으로는 시간보다 속도가 더 기본적인 것이라는 등 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부분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렇더라도 이 책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거의 무시하거나 잊고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의 내용과 구성이라는 점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결국 시간은 실재하지 않은 것이라도 파악한다. ‘물리적인 시간을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모든 오해가 비롯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잡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환영‘에 불과하고 우리가 그 환영을 통해 이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간에 대하여 연구해왔지만 아직까지 시간의 본질을 완전히 해명한 사람은 없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도 독자 스스로가 시간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힌트’일 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에 대한 이해는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에 봉착한다. 특히 일반인이 시간의 본질에 접근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다만, 보편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자신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부분에서 보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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