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축복입니다
숀 스티븐슨 지음, 박나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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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삶에 비추어 내 존재의 가치를 밝히다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신체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만족하며 살까?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경향성이 있다 보니 현대인들에게 외모가 중요한 것으로 대두된 지 오래되었다. 미용성형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이제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권장하는 분위기까지 보여 새삼스럽게 자신의 외모를 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주변에는 날 때부터 신체적 한계를 가진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인들과 다른 외모도 한 몫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과 위축되는 스스로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리라.

여기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골성형주전증’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성장과정에서 실제로 200번이 넘게 뼈가 부러졌으며 걸을 수도 없는 몸으로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하는 신세로 키 90Cm에 몸무게 20Kg도 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몸의 숀 스티븐슨(Sean Clinch Stephenson)은 외모로 평가받는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숀은 거대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기억되게 만들었을까?

바로 이 책 ‘당신이 축복입니다’는 숀 스티븐슨이 태고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찬 숀이지만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남자’라고 소개한다. 무엇이 있어 스스로 그러한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까? 일반인과는 비겨도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몸이지만 좌절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이며 세상의 편견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아이를 낳고도 좌절하지 않았던 부모가 있었다. 숀이 성장하는 동안 아픈 마음으로 지켜왔을 그 부모는 보통을 넘어선 의지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보인다. ‘없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자식이 가진 것을 보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으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 사람들이다. 오늘의 숀 스티븐슨이 있는 가장 큰 힘이 그의 부모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뼈가 부러진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하고 싶은 것은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숀 스티븐슨은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럴게 생겼을까? 하는 자책에 빠지기 일쑤인 사람들에게 외모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남들과 다른 점이 자신을 드러내는 당당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 숀은 스스로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숀은 자신이 살고 싶은 그 모습에만 집중하고, 최고의 피트크루를 곁에 두며, 마음의 정원에 쓰레기를 남겨두지 않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삶을 응원했다. 그의 삶은 ‘그 존재만으로도 축복’이라는 말로 대표되며 그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자기계발서 등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이야기가 아닌 직접 경험하고 그 안에서 체득한 삶의 지혜이기에 정상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외모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서 태어나면서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은 무엇을 희망으로 삼아 살아갈까? 숀 스티븐슨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나만의 진정 힘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따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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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몽혼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8
조두진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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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남은 여인의 마음
한때, 시인의 눈으로 본 세상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지만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세상을 담아낸다. 시인만이 아니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예술을 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담기는 세상은 분명 나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몽혼(夢魂)의 저자 조두진은 ‘시인’에 대한 규정을 시 쓰는 사람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일상과 별 관계없어 보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무지개 혹은 이상을 좇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의 범주에 포한될 것이다.’라며 세상을 따스한 가슴으로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시인의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시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몽혼은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대부 남성 중심의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시인으로 살아갔던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고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던 여성 시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에 여성 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몇몇이 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현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이옥봉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이옥봉은 현감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다.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기생으로써의 삶에 필요한 음악이나, 춤, 악기를 배우기보다는 책을 읽고 시 짓는 공부에 흥미를 보인다. 어린 나이 양반과 결혼하지만 1년도 못되어 남편이 죽고 본가로 돌아와 지낸다. 어버지의 벗들 시화 모임에 나가 시 짓는 솜씨를 발휘하며 평생 잊지 못한 운명의 남자 조기원을 만난다. 둘은 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지만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조기원으로 인해 이옥봉은 불우한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삶과 여인의 삶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조기원에게 당당하게 자신은 둘 다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선언하며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가혹한 처지에 처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지인 시를 온몸에 감은 모습의 사체로 강물에 떠내려 온다.

‘네 재능이 너의 무덤이로구나.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구나. 내가 세월을 보지 않고 너의 재능만 보았구나.’

몽혼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임진왜란을 겪는 조선 선조시대다. 여성의 지위가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양반의 여식에게는 더 없는 편견이 팽배했던 사회였기에 문화 예술적 소양이 있었던 대부분의 여성은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선다님 아시는지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비 개인 뒤에 뜨는 무지개가 아닙니다. 윤기 나는 입들이 늘어놓는 백가지 약속이야 어찌되든 무관합니다. 내 손을 꼬옥 잡아주던 감촉, 그 손을 타고 전해지던 온기, 나는 그날 밤 마주 잡았던 손의 온기로 지금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대의 한계에 갇혀 사랑하는 여인을 억압해야 했던 남자와 님을 향한 사랑과 시문의 매혹,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던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관심사인 ‘시가 일상의 발목을 잡고 일상이 시의 목을 옥죄는 충돌의 과정을, 시인과 일상인의 삶이 빚어내는 서글픈 비애’를 섬세하며 애달프게 그려내고 있다. 이옥봉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아는 허난설헌의 삶과도 닮아있다. 시문에 대한 제주가 그 시대를 살았던 남성들보다 뛰어났지만 사회에서 그리고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한 기구한 운명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슴 절절한 시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사람이다.

작가는 시인에 대한 규정을 내리며 일상과 시의 불화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일상의 현실적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상의 실현은 늘 벽과 부딪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해 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불협화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뛰어난 문학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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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5-2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찾던 책이네요....이름없이 살다간 사람들의 글을 좋아합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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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말 그대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새겨 한 줄의 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 말에 지극한 공감을 느낀다. 

요사이 오주석이라는 한사람에게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워낙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기에 그간 발간된 저자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간된 책들 어느 하나도 허투루 느껴지는 것은 없다. 우리 것을 공부하고 배우며 즐기는 사람으로 김홍도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의 삶과 예술 정신을 닮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그 사람이 남긴 글로나마 그를 그리워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 생각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발간된 순서와는 상관없이 저자가 발간한 책 들 중 마지막으로 접하게 된 책이다. 한 폭의 그림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그림 소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느낀 사람의 따스한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을 찾아내고 그가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아픈 마음으로 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문화를 만들어 온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친 들판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한국의 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다. 한국의 미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 옛 그림을 선별하고 그림 읽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통해 일반인과 만나왔던 저자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중심 주제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 오주석은 옛 그림을 대할 때 우선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말한다. 그것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보라는 것’을 지적하며 열린 마음으로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자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이런 기본사항을 견지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으로는 김홍도의 ‘군선도’를 시작으로 백자항아리, 단원의 풍속도, 기로세련계도, 불화, 주상관매도, 마상청앵도, 송하맹호도, 황묘롱접도, 모계영자도 등을 세심하게 읽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그림의 소재뿐아니라 그림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심이다. 나아가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초상화’라고 한다. 초상화를 그리고 남긴 조선의 선비들의 오롯한 정신세계를 통해 우리가 찾는 한국의 미의 정신을 밝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예쁜 모습보다 진실한 모습, 참된 모습’을 중시했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다. 

또한, 저자의 단원 김홍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점을 확인한다. 이 책 곳곳에서 만나는 김홍도의 그림뿐 아니라 부록으로 김홍도 그림에 대한 그간 말해왔던 작품을 따로 묻어 그림과 그림에 대한 감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회에 흐르던 성리학의 기본 이념이 어떻게 사람을 위하고 그것이 사람의 정신을 통해 삶이 투영된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사대부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주도하며 창조해온 시대의 문화는 그 저변에 동양사상의 한 축을 구성하는 천지인의 사상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음도 밝혀주고 있다.

현재는 과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마치 하늘에서 불쑥 떨어진 사람들처럼 과거를 기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희망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법고창신의 정신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옛 그림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자 오주석의 책을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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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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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한 아들의 아버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 인물이지만 마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럴 수 있는지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시대적 요청이나 특정한 목적에 의해 형성된 분위기가 한 몫 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 인물 중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이 몇 있다. 퇴계 이황, 이순신, 율곡 이이, 심사임당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 이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형성된 피상적인 지식으로 인해 때론 올바른 이해를 방해할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는 이황에 대한 다른 측면의 이해를 넓히는데 대단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대 학자로 기억되는 측면이 우선된다. 또한 조정에 출사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한 관리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미니 품에서 자랐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출사에는 별 뜻이 없다가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고 관료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직접 경험한 정치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병들어 약한 몸으로 인해 70여 차례 사직 상소를 올릴 정도로 벼슬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학문의 연구와 저술 후학 교육에 더 많은 뜻을 두었던 사람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율곡 이이와 정치적 활동으로 비교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성리학의 4단 7정에 관한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점이 주목 받았다. 나이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학문에 열중하여 남긴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퇴계 이황은 도산 서당에서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킨 한국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자는 경호이며, 호는 지산 ·퇴계이다.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그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게 된다. 

이 책은 퇴계 이황이 출사하여 40세인 1540년부터 55세인 1555년까지 첫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준과 채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벼슬하는 관리나 대 학자의 근엄함이 아니라 아들의 아버지로써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하지만 따스한 마음이 물씬 풍기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내용의 주요한 점이 아들에게 쓴 편지이다 보니 그동안 알아왔던 성리학자로의 면모보다는 일반인 이황의 모습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내용 중에는 자신은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벼슬을 아들에게 강력하게 출사를 권하는 모습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한 가장으로써 책임, 아들과 손자들에 대한 교육문제, 아들과 며느리와 사돈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나 노비를 비롯한 가솔들에 대한 이야기 등에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흥미로움이 있다. 또한 이황에 와서 비로소 친 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 관념을 바꾼 사실이 돋보이는 점이라고 보인다. 

‘모든 일은 부디 진실로 삼가고 조심하여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여라. 몸은 낮은 지위에 있으나, 만약 마음이 안정되고 청렴하여 욕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반드시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름지기 거듭 경계하고 경계하도록 하여라.’

이 책은 바로 한 가정의 아버지로써 그가 보인 마음 씀씀이가 중심이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정을 꾸려가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중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퇴계 이황이 살던 당시 조선사회의 일면을 꾸밈없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올바른 선비로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나가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기반으로 그런 사회의 한 가정에 꾸려지는 구체적인 문제까지 전반적인 조선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보인다.

근엄한 관료이자 학자에서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퇴계 이황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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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김동준 외 지음 / 태학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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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정신을 보다
흔히들, 현재의 자신을 올바로 보려면 과거를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는 사람이나 한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역시 한국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정신과 감성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리라.

국학 또는 한국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학이라는 용어는 8·15광복 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6·25전쟁 이후 학계의 활발한 연구 활동과 더불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때 국학이라고도 했으나 이 용어가 주는 보수적 또는 국수주의적인 느낌이 있어 한국학으로 일반화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학이란 한국에 관한 언어,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한국 고유의 것을 연구, 계발(啓發)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이 책은 이 책의 대표저자 정민 선생님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학에 대한 사회적 요청에 의해 보다 강화된 연구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한류열풍에 올바른 대응하기 위한 외부적 요구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의는 우리 것에 대한 학문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세계화의 과제에 답하기 위한 것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한국학의 연구에 있어 학제 간 연구, 분과 학문 간의 소통이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1977년 가을 ‘문헌과해석’ 창간호 발간 이후 학자들이 각자 자신이 매진해온 학문분야의 장벽과 경계를 헐어 마음을 모아오고 있는 모임의 그동안 연구 성과를 모아 발표한 책이다. 한국학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인 문학, 역사, 철학을 비롯하여 미술, 음악, 연극, 복식, 군사 분야의 젊은 인문학자 27인이 저마다 자신이 주목하는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차분하고 온기 넘치는 해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제1부 그림에서 그리움을 읽다, 제2부 그림의 속살과 내면 풍경, 제3부 무대와 그림이 만날 때, 제4부 그림, 인간과 역사를 논하다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림이 있다. 선조들이 남긴 그림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눈으로 확인 가능한 자료에 근거하여 선조들이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들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27명의 저자들이 주목했던 그림들로는 표암 강세황이나 박제가, 정조임금, 겸제 정선, 고려불화, 김홍도, 신윤복, 정약용 등의 개인적인 그림들 뿐 아니라 왕실의 공식행사에 있었던 모습을 그린 화성능해도병이나 주교도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때론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시대를 유추해석하며 사진 속 배경으로 사용된 병풍의 출처까지 찾아내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 특히, 관심이 가는 이야기들로는 박제가와 나빙의 예술을 통한 교류다. 조선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로 막강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시기 그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마음은 유별난 모습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 시기에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거문고가 나빙에 의해 박제가에게 전해지고 그 거문고가 대를 이어 전해져 온 이야기다. 또 다른 흥밋거리는 다상 정약용의 매조도에 얽힌 이야기, 정조 임금의 귤 순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공길이를 다룬 장악원 관련 이야기 등 저자마다 독특한 주제가 돋보이는 책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가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라는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정민’과 ‘안대회’라는 관심 갖는 인문학자 두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 두 인문학자의 글은 매번 접할 때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더불어 이 책에서 만나는 다른 인문학자들 역시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펼쳐내는 글 솜씨 역시 대단하다. 한국 인문학 분야에서 새로운 학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펼쳐낼 새로운 학문의 세계가 기대되는 바가 아주 크다.

다양한 전공자, 그들이 그림을 통해 소통과 공감을 이뤄 만들어낸 작품으로 오늘의 한국학을 풍부한 실제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책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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