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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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소설을 읽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화가 얀 페르메이르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화가의 이름을 베르메르라고 표기했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에도 화가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파란색을 만드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다른 작품 여인과 일각수에서도 태피스트리와 염색에 관한 묘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 후 미용실이나 뜬금없는 장소에 붙여져 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브로마이드를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소설과 같은 내용의 영화가 있다는 사실도,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명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문과 달리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고 한다. 17세기부터 있었던 트로니라는 장르로, 인물의 표정 연구를 위한 그림이다. 램브란트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에도 인물의 표정과 얼굴, 헤어스타일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그린 그림들이 많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터번을 쓰고 있는 머리 장식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소녀의 표정과 얼굴에 비치는 빛의 효과 때문에 관람자들은 시선을 빼앗긴다. 그의 트로니는 성공적이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1663~1664,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페르메이르를 좋아하게 된 것은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을 본 후이다.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의 옅은 푸른색이 일으킨 감동이 잊혀 지지 않는다. 임신한 듯 넉넉한 상의를 입고 있는 그녀의 단정한 자세와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손 모양과 편지에 집중하는 표정은 그 푸른색과 어울려 짙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가득 안고 있었다. 지도, 편지, 임신한 모습 이런 기호들을 읽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비친 푸른색은 그동안 어떤 그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색이었다. 의자 등에 사용된 짙은 파란색 역시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눈이 시릴 정도로 환한 파란색보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 여인>의 신비로운 푸른색에 더 매료되었다. 나는 페르메이르의 파란색에 푹 빠지고 말았다.

 

페르메이르가 사용한 파란색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라피스라줄리로 만들어낸 색깔이라고 한다. 라피스라줄리를 갈아 분말을 만들고 이것을 녹일 때 호두 기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슈발리에의 소설 속 하녀가 이 작업을 한다. 호두 기름은 빨리 마르지 않는다.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의 크기가 작고,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화가는 최소 서너 달 이상을 고심해가며 최고의 안료와 캔버스, 기름을 구했다.(143p)” 재료가 비싸고 작업과정이 더디기 때문이다.

저자 전원경은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의 미술관들과 <골목길><델프트 바닷가 풍경>의 장소로 안내한다. 네덜란드의 역사와 그가 살았던 17세기 정치, 외교, 경제, 종교, 생활상과 당시 화단(畫壇), 화풍(畫風), 화가(畫家) 들을 소개한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시대에 화가들 역시 황금기를 맞이하지만 페르메이르는 델프트의 외에서는 그리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고, 많은 작품을 그리지 못하는 그의 특성상 그림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처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0대 후반까지의 평온했던 삶은 1672년 프랑스의 침공과 함께 재난을 만난다. 프랑스의 침공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는 수문을 연다. 이로 인해 처가 소유의 농지가 물에 잠기면서 페르메이르 일가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게 된다.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배하게 되면서 국가 경제는 위축되고, 자연히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1675년 파산한 페르메이르는 마흔셋의 나이에 쓰러졌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그림들은 헐값에 팔리거나 외상값 대신 건네졌다. 그의 후원자였던 판 라위번이 소유하고 있던 20점의 작품들은 그의 딸 막달레나 부부가 죽고 경매에 한꺼번에 출품되었고,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

 

저자는 네덜란드와 미국, 영국 등의 미술관으로 흩어진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주제나 시기별로 소개해주고 있다. 성서, 교훈, 사랑, 가정, 일 등의 주제들은 그 시대 화풍에 담겨있는 정신을 엿보게 했다. 이런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나는 그의 그림에서 그만의 차별화되고 고아한 취미를 발견한다.


<저울을 든 여인>, 1664, 미국 국립미술관 


이 책을 읽으며 만나게 된 또 하나의 작품이 <저울을 든 여인>이다. 아마도 저자의 감상과 해설이 와 닿지 않아서 자꾸 바라보다가 마음에 와 닿게 된 듯하다. 빈 저울을 손에 들고 있는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숨은 의미를 찾으려면 그림 속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여인의 뒤 벽에 걸린 그림은 액자가 약간 비뚤어져 시선을 끌고 있다. 그 그림의 내용은 최후의 심판이다. 앞에서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은 법의 여신을 떠올리게도 하고, 그녀가 잉태한 영혼의 무게를 달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해설을 하고 있다. 나는 여인에게서 그런 두려움이나 기원(冀願)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여인의 무심한 듯 나른한 표정 뒤에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듬히 기울인 고개, 빈 저울을 올려 보는 손동작, 저울을 바라보는 무심한 얼굴은 서운함과 우울함이 어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화가의 아내 카타리나는 열한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생활 중 많은 시간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한 여성은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많다. 화가는 무심하게도 그런 그녀에게 모델을 서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여인의 뒤 배경에 최후의 심판주제의 액자를 그려넣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교회는 세상의 마지막과 심판에 대해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심판이라는 무거운 경고 앞에서도 작은 일에 마음을 두고 서운해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일 뿐인데 화가의 의도가 얄궂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래도 임신기간에 서운한 게 많았나보다.

 

그림은 가끔 놀라운 일을 일으킨다. 감상자의 마음을 건드려 눈물을 쏟게 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서사를 끄집어내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도 한다. 페르메이르와의 처음 마주침에서는 서사가 필요 없는 색으로만 전달되는 감동이 있었다. 이번 만남은 작가의 삶과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에 나의 기억과 감정을 조응하게 했다. 깊은 여운이 남는 마주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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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1-15 1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 - 너무 많이 걸렸네요. 본인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어요.
주목을 끄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그림에 빠져서 한때는 음악보다 그림을 더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하나를 선택하라면 음악이지만요...ㅋ

그레이스 2023-01-15 14:2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사후에 재평가를 받는 화가들 안타까워요
저도 음악 쪽으로 기울게 될까요?^^

새파랑 2023-01-15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로니‘라는 장르가 있다는걸 첨알았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진주 귀거리를 한 소녀>너무 매력적인데 초상화가 아니었군요 ㅋ

그레이스 2023-01-15 17:49   좋아요 2 | URL
^^
저도 처음 알았어요
매력적이긴 하죠.
이 그림이 너무 여기저기 붙어있어서 눈에 많이 익죠^^

서니데이 2023-01-15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부터 본 것 같아요.
그 때는 베르메르로 소개되었는데, 작가나 그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어요.
많이 본 건 아닌데, 다른 작품들도 섬세한 느낌이 느껴져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3-01-16 14:43   좋아요 2 | URL

몇 작품 안되는데 도난당한 것도 2점이나 되더군요;;
예~ 따뜻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01-16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진주 귀고리 소녀》 소설을 봤네요 시간이 지나고 페르메이르라고 해서 같은 사람인지도 몰랐습니다 클래식 클라우드, 이 책 나온 다음에 알았던 것 같아요 파란색 물감을 좋아해서 빚을 많이 졌다는 것도... 그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서 없어진 그림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본래 많이 그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림도 거기에 그려진 걸 잘 봐야 할 텐데, 눈에 딱 들어오는 것만 볼 때가 더 많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1-16 11:52   좋아요 2 | URL

갑자기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림이 있어요.
그게 제 최애 그림인거죠^^

페넬로페 2023-01-16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베르메르와 페르메이르가 같은 사람인거죠.
잃.시.찾에서는 베르메르라고 나와서요.
저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가 넘 강렬했어요^^

그레이스 2023-01-16 18:01   좋아요 3 | URL
예~
같은 사람이예요~^^
 
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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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블라주(assemblage).


빌레글레는 거리의 찢어진 벽보를 모아 대형 캔버스에 다시 붙이는 작업으로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벽보를 수집한 거리 이름과 날짜, “성당 거리 99번지, 1974519(99,Rue du Temple, 19 mai 1974)”, “라파예트 거리/ 오트빌 거리 19884(Rue Lafayette/d’Hauteville avil 1988)”과 같은 제목이 붙여져 있다. 선동, 전쟁 규탄, 대통령 선거, 제품 광고, 영화 홍보 등의 내용을 담은 찢어진 조각들은 서로 겹쳐지고 흩어져 그 거리 그 시간을 설명하고 있다.

레오퀴르 거리-베르튀 거리, 198464(Rue Réaumur-Rue des Vertus, 4 juin 1984)

그라빌리에 거리 19731(Rue des Gravilliers, janvier 1973)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사진 한 컷 위에 찢어진 기억의 벽보들이 덧붙여진 아상블라주로 다가왔다.

 

흑백 사진 한 장, 골목에서 두 소녀가 둘 다 등 뒤에 팔을 숨기고 어깨를 맞대고 있다. 뒤로는 소관목과 높은 벽돌 벽, 위로는 커다란 흰 구름이 뜬 하늘이 보인다. 사진 뒷장에는 19557, 생 미셸 기숙사 정원에서 라고 적혀 있다.(63p)”

이렇게 사진을 그린 후, 그 사진의 주인공, 그녀의 눈에 비치던 세계를 그린다. 그녀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계와 사유의 대상은 확장되어 간다.

 

실내에서 클로즈업으로 찍은 흑백 사진, 쿠션을 이용해 소파로 꾸민 침대 위에 젊은 여자와 아이가 투명한 커튼이 있는 창문 앞에 나란히 앉았다.(120p)” 

67년 로베르쉬가라고 적혀 있는 이 사진의 젊은 여인은 그녀. 67년과 68년을 지나면서, 그녀의 생각은 베트남이나 공공의 이슈보다는 자신에 대한 질문들, 존재와 소유, 실존에 대해 집중되었다. ‘68 5월 투쟁과 혼란과 격동의 시절에 그녀 주변의 작은 것들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대해 끝도 없이 물었고,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134p)” 그녀에게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그녀는 부부와 가족 외의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모로 기억되는 모든 장면들로부터 벗어나 활동의 장으로서 미래를 받아들였다. 계속되는 질문들을 기록하고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리라 생각된다.

 

삼십 즈음의 그녀는 여전히 젊은 여성으로 폐경기 여성을 향한 거만함을 품고 있다. '샤를리 엡도'와 '리베라 시옹'을 읽음으로 자신이 68정신 안에 있음을 확인한다. 진보적인 매체를 읽고 보면서 공감하는 스스로에게 안도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파리로 이사한 그녀가 노곤한 느낌을 받는 것은 과거가 없는 도시 때문인지, 진보한 자유주의 사회의 전망 때문인지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아마도 스스로에게 의문이 있어도 오랫동안 모른 채 한 것은 아닐까? 그 자본주의의 안락함 때문에.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그녀는 희열과 피로를 느낀다.

 

좌파의 시대, 마흔의 80년대, TGV 안에서 『말과 사물 독서, 돌아온 우파,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주네의 사망, 체르노빌, 전쟁, 테러, 폭발……. 그리고 “68년은 낡았다, 86년이 더 낫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그 젊은이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68년에 그녀의 세대가 기성세대를 비판했듯이, 비판을 받는 세대가 되었다.

 

923월 세르지라고 적혀 있는 사진의 그녀는 오십대 여성의 충만함을 풍긴다.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까지 분리되고 조화가 깨진 그녀만의 수많은 장면들을 서사의 흐름,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싶어 한다. 개인의 것이지만 세대의 변화가 녹아 있는 삶.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45년의 프레스코화와 역사 밖 자아의 탐구, 고독이란 시를 썼던 스무 살의 일시 정지된 순간들의 자아를 동시에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등등. (224p)”

 

그 소망, 고민이 바로 이 세월이라는 작품에 구현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녀일치, 생각했던 자신의 책의 모습, 그녀가 책에 남기기를 원했던 느낌들. 그 감각이 살아날 때까지 사진의 그녀에게 가는 과정은 마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케 한다. 50대의 그녀는 방법을 모른다면 "마르셀 푸르스트의 차에 적신 마들렌처럼 우연히 가져다주는 어떤 신호를 기대하고 있다(224p)"고 한다.

 

글 속에서의 그녀는 거울 속, 사진 속의 끊임없는 타인에 해당될 것이다.……이 글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들우리가 있다.(301p)”

 

나는 아직 사진 속의 그녀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과거의 기억, 수모, 부끄러움, 치기, 오만 등의 부정적인 기억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 나는 그녀를 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글을 쓴다면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선행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쓰다보면 타인인 그녀의 감각이 내게서 되살아나는 순간이 올 테고, 환희의 순간이 될지, 견딜 수 없이 아픈 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때 그녀는 내가 될 것이다. 만약에 나에 대한 글을 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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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1-1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작업물입니다 잘 봤습니다 - 그녀는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대해 끝도 없이 물었고,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134p)” 밑줄 좌악 ~

그레이스 2023-01-11 23:12   좋아요 1 | URL
1968년, 그런 시작을 할 수 있던 시절과 그녀가 부럽더라구요. 물론 시행착오와 아픔이 있었고, 혼란이 있었지만요.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1-12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상블라주!
처음 들어 찾아봤어요^^
오호~
글을 읽고 다시 그림들을 보니 의미심장합니다.
격동기! 그들은 어떻게 살아냈을까요?

그레이스 2023-01-12 07:58   좋아요 2 | URL
아니 에로노는 그 격동기를 지나온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행동하기에는 많은 의미로 옷을 입고 있었던 여성 지식인!
68을 계기로 변화를 맞이한듯요

미미 2023-01-12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작품들과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 이렇게 이어지네요!!
에르노가 자신의 경험을 재료로 예술적 작업을 해오던 것으로도 느껴집니다.
역시 이 소설도 자전적인 요소들이 가득.^^

그레이스 2023-01-12 09:50   좋아요 2 | URL
예~
자서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함때문에 흥미롭게 봤어요.
자전적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고민도 엿보게 되구요.
프랑스의 현대사도 재밌구요.

레삭매냐 2023-01-12 1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상블라주,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제가 하면 스크랩일 텐데
왠지 작가들이 하면 작품
이 되는군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3-01-12 10:23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마찬가지!^
그래서 예술가겠죠.~♡

페크pek0501 2023-01-12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읽을 게 너무 많아서 야단났네, 하고 있어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숨기지 않고 다 밝혀 기록하는 작가의 그 용기는 배울 점이겠지요. 저에게 꼭 필요한 용기인 듯해요.^^

그레이스 2023-01-12 14:00   좋아요 1 | URL
페크님 열공중이시군요.
저는 쓰는것보다 읽기만 하고프네요, 게으른 시간들 추스르고 리뷰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용 ^^
저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서니데이 2023-01-12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의 사진은 흑백 사진이라서 아상블라주에 대한 사진을 봤어도 설명을 듣기 전에는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3-01-12 15:5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이 소설에 대한 제 감상이 아상블라주가 연상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독서괭 2023-01-12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작품을 아상블라주라고 하는군요! 미술에 문외한이라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녀‘를 마주하기. 아니 에르노는 그걸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3-01-12 15:46   좋아요 1 | URL
꼴라주와는 다른 것이 완성품을 떼거나 찢어서 다시 붙이는 작업으로 보시면 되듯요.

희선 2023-01-14 0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가 쓴 글을 아상블라주처럼 느끼셨군요 아상블라주 잘 모르지만... 그레이스 님은 그걸 아셔서 책을 보고 그림하고 연결해서 보셨군요 멋지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1-14 07:59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
몇 페이지 넘어가니까 바로 빌레글레의 작업이 떠올랐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파리를 중심으로 작업을 한 작가여서 그런듯요.
 
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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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을 읽으면 타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자신이 타자였고 그 역시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 시켰던 경험을 숨기지 않고 있다. 더불어 가장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이 작품에서는 이산의 아픔과 가족들에 대한 죄의식이 드러나 있다. 그의 죄의식은 잔지바르의 혼란한 시절 동안 겪었던 이슬람 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있다.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탄자니아의 현대사를 통해 당시 그들의 고통을 가늠하게 된다.

 

영국에서 유학 중에 잔지바르 혁명이 일어나고, 라시드는 망명자가 된다. 영국인 그레이스와 만나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 보았던 형 아민의 사랑을 기억한다. 그들의 삶을 이끌어갔던 이슬람 관습 안에서 부적절하고 수치스러운 아민의 사랑은 곧 부모의 설득으로 끝이 났었다. 용케 단념하고 내색하지 않았던 아민의 마음이 사실은 많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라시드는 아민의 편지를 받고서야 헤아리게 된다. 아민은 편지를 통해, 자밀라의 외할머니 레하나와 영국인 피어스의 사랑, 피어스를 따라 뭄바사로 간 레하나의 불행한 삶에 관해 알게 된다. 잔지바르의 청소년 시절 라시드에게 그들은 그저 타자일 뿐이었다. 이제 라시드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쓰면서 자신의 아픔을 전치하고 있다.

 

보시다시피 이 이야기에는 가 있지만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 파리다와 아민과 우리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자밀라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질서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고 영원이 얽매는가에 관한 것이다.(173p)”

 

그의 글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게 되는 사실은 여성들의 지위다. 여성에 관한 단어 중 두드러지는 것은 수치. 부모님을 여읜 레하나와 같은 여성은 남동생의 보호아래 있어야하고, 과년한 상태로 결혼하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상황을 만날 수 있다. 그 수치를 피하기 위해 나이가 차기 전 결혼을 해야 한다. 잔지바르 술탄국이던 시대로부터 시간이 흘러, 3대가 지난, 1950년대가 되어도 여성의 지위는 그리 나아지지 못했다. 부친이 교사인 파리다와 같은 경우,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자 애쓰지만 떨어진다. 그녀에게는 사범학교에 입학한 아민처럼 공부에 열중할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생활이 있다. 자밀라는 레하나와 유럽인의 부도덕한 관계에서 탄생한 혈통을 받은 여성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두 번째는 독립 후에도 여전히 식민지인의 자아상과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끝나는 시대와 시작하는 시대 사이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받아왔던 학교 교육, 식민 교육의 영향일 것이다.

 

세 번째는 잔지바르, 탄자니아의 혼란스럽고 비극적인 현대사다. 영국이 잔지바르에서 떠나고, 1964년 잔지바르 혁명이 일어난다. 오랜 세월 정착해서 살고 있던 많은 이슬람 인들이 추방되거나 압제를 피해 아라비아나 인도로 탈출한다. 잔지바르는 탕가니카와 연합해 탄자니아가 되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탄압을 받는 이슬람 인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제 라디오가 망가져서 우리는 뉴스를 듣지 못한다. 급수장의 뭔가가 고장 나고 수돗물이 거의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뭔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심지어 비누 한 개나 면도날 한 팩조차도, 어쩌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 다다를 때가지 내버려 두었을까?(358p)”

 

시인으로 성공한 누나 파리다가 보내온 형 아민의 일기에서 자신이 없는 동안 형과 가족들의 고통이 어떠했는지를 읽는다. 실명한 아민,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의 오랜 고통, ……, 영국에서 보낸 자신의 편지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심하게 들렸을지, 그 두서없는 편지를 읽고도 형(아민)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실연한 그의 편지에 답장을 하는 형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자밀라에 대한 슬픈 기억에 대해 알게 된다. 그는 가족들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영국에서 작가로 성공한 라시드는 컨퍼런스에서 우연히 피어스의 외손녀 바버라 터너와 만난다. 그들이 레하나와 피어스의 삶을 되짚어 가던 중, 피어스가 영국으로 돌아갈 때 레하나가 임신 중이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가 훌쩍 떠나가고, 뒤에 남은 여성만 수치심을 떠안는, 그런 시대였다. 영국이 갑작스럽게 떠나버리고 혼란에 빠진 잔지바르와 같다.

 

형의 공책을 받아서 읽은 라시드는 가족들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했었음을 알았다.(365p)” 그는 형이 자밀라를 잃었던 고통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가족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형이 실명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이후 그는 형의 편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누나의 성공한 시집에 실려 있던 헌사 중 우리를 떠난 적 없는 라시드에게라는 말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 자신의 마음은 많은 시간동안 가족들을 떠나 있었고, 부모가 기원하던 성공을 위해 몰두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소박한 무관심의 삶(322p)”에 도달했다.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이 진저리치는 혼자 떠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서 자신의 무심함에 대한 용서를 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마음의 무게가 다가온다.

 

낙원에서의 환상적 분위기, 바닷가에서의 비판적 시선, 그 후의 삶에서의 상호텍스트성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담담한 고백과 참회가 있다. 지나치게 담담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서, 그가 고백한 무관심이 괴롭게 다가온다. 한편,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자기고백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혈육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모국어만의  원초적 정서가 있을테니.

 

인간은 낯선 땅 뿐 아니라 모국, 고향, 가족, 그리고 자신에게조차 영원한 타자일까? (함께 가기를 원하는 바버라에게 라시드가 한 말은 이런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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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1-02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르나는 구르나에요!
구르나는 낯선 곳에서 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니 굳이 의미를 두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많은 뜻이 숨어있 듯 했습니다.
그레이스님의 첫 책은 구르나로군요!^^

그레이스 2023-01-02 10:44   좋아요 2 | URL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타자이니까요.
작가가 그런 말을 했군요.

읽기만 하고 쓰기 미루다가 2022년 안에 못 끝냈습니다.

아직도 몇권 더 남았는데, 막막합니다.
ㅋㅋ

레삭매냐 2023-01-02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에게도 타자라는
선언이 참 그렇네요.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
의 불가능함 혹은 무심
함에 방점을 찍고 싶습
니다.

그레이스 2023-01-02 18:48   좋아요 3 | URL
예~
그가 무심함에 이르도록 한 시간들이 마음 아프기도 합니다.

yamoo 2023-01-02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르나를 쟁여놓고 있어요. 배반과 그후의 삶만 구해놓으면 되는군요!ㅎㅎ

그레이스 2023-01-02 18:49   좋아요 2 | URL
쟁여놓다 보면 읽게 되더라구요.
저도 쟁여놓고 읽는 스타일이예요
ㅋㅋ

persona 2023-01-02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낙원 앞부분 읽다가 말았는데 소년이 아버지의 빚 대신 상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야 해서 상인 따라 떠난 이후 생활에서 좀 슬프고 힘들어서 읽기를 중단했었어요.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나요? 올해는 다시 낙원을 붙잡고 읽어봐야겠네요. ^^;;

그레이스 2023-01-02 23:21   좋아요 3 | URL

꿈, 이미지, 상징 들이 등장하면서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죠.
유수프의 여정이 슬프죠. 분노도 일으키구요.
페르소나님 응원합니다!

persona 2023-01-03 00:13   좋아요 2 | URL
아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ㅎㅎ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1-03 0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소설에도 자기 이야기가 없지 않겠지만, 여기에서 ‘배반’ 한 건 작가 자신 같기도 하네요 자기 나라 말이 아닌 말로 글을 쓰면 하기 어려운 말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1-03 09:28   좋아요 3 | URL
모국어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제 감상이었습니다.
희선님 감사해요~

mini74 2023-01-03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레이스님 구르나 정복하신건가요~ 저도 읽어야 하는데 쌓아만 놓고 있어요 ㅠㅠ

그레이스 2023-01-03 18:14   좋아요 2 | URL
^^
정복?!이라고 하기엔;;
구르나의 번역된 작품4개는 다 읽었습니다.
부상투혼 중이신 미니님 화이팅!

서니데이 2023-02-07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07 20: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책읽는나무 2023-02-07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02-07 22: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가필드 2023-02-07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작 추카드려요💐😄

그레이스 2023-02-07 22: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희선 2023-02-08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희선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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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나보코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이 분신이다.

내가 보기에 그가 쓴 작품 중 최고는 분신이다. 거의 조이스에 가까우리만치(비평가 미르끼스가 지적한 대로) 스토리가 정교하고, 음성적 운율적 표현력이 문체에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207p)"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고골의 그림자가 짙었고, 프로이트 이전 프로이트를 예감하는 작품에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나에게 톨스토이 작품 중에 이런 소설이 있었어?”라는 질문을 하게 했던 것처럼, 분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반면, 골랴드낀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로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유럽스타일의 건물들과 운하에 반사되는 다리, 안개, 백야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밤거리를 배회하는 가난한 주인공들은 도시가 강요하는 욕망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불안하다. 권력이 된 욕망의 노예들은 서로를 향해 냉혹한 시선을 던진다. 그 불안은 더 깊은 골을 만들어 낸다.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153p,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불안을 분신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에게서 구체적으로 발전시킨다. 그 불안은 골랴드낀이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밤마다 파티를 벌이는 상류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상황과 달리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즐기는 것을 꿈꾼다. 그러기에 골랴드낀의 환희, 으스댐, 열정은 불안하고, 곧 수치심, 절망, 우울로 바뀐다. 양 극단의 감정 상태를 오고가는 그에게서 독자는 병증을 읽는다.

 

그는 마차의 양쪽 창문을 내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는 즉시 고상하고 고결한 모습을 지어 보였다. 리쩨이나야 거리에서 네프스끼 거리로 돌아가는 모퉁이쯤에서 그는 아주 기분 나쁜 어떤 느낌에 몸을 떨었다. 어쩌다 몹시 아픈 곳을 찔린 가엾은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려 가며, 그는 서둘러서,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마차에서 제일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붙이고 웅크렸다. 일인즉슨, 그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젊은 관리 둘을 본 것이다.(13p)”

 

사람들을 의식하는 순간 골랴드낀은 갑자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타인의 냉혹한 시선 속에서 수치심은 시작되고 불안해진다골랴드낀이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갔다가 “11월의 거리로 마치 누더기 뭉치처럼 내팽개쳐진 바로 그날 밤그는 무너지고, 자신의 분신을 보기 시작한다. 낮은 자존감과 자격지심과 상대적 박탈감, 불안 등으로부터 받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분열의 극단적인 단계에 이른다.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鈍痲) 등의 조현병(정신분열) 증상을 보인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가 골랴드낀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가 이런 상태에 이른 내적, 외적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골랴드낀이 만들어낸 분신 제2의 골랴드낀은, 무능한 골랴드낀과 달리, 기민하고 활발하고 명랑하고 유능하다. 심지어 경박스럽고 야비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가 바라던 다른 자아일 것이다. 그는 제2의 골랴드낀으로부터 소외와 배신을 당한다. 사실, 그가 자신을 소외시키고 배신하는 것이다. 이 소외와 배신감은 자의식 과잉과 자기비하를 더 심하게 하고, 그의 사고를 와해시킨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걸레라고 느끼고, 자신의 분신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환시를 본다.

 

하지만 그가 발자국을 뗄 때마다, 그의 발이 보도의 화강암을 칠 때마다 그와 똑같이 닮은, 하지만 마음이 타락하고 혐오스러운 골랴드낀 씨들이 땅속에서 솟구치듯 튀어나왔다. 쌍둥이들은 생겨나는 즉시 거위의 행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쇠사슬 모양으로 달렸다. 그것은 점점 더 길어져서 큰 골랴드낀 씨 뒤를 절뚝거리며 쫓았다. 그에겐 똑같은 자들에게서 벗어나 도망갈 곳도 없었다. 가여운 골랴드낀 씨는 공포로 인해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똑같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생겨났고, 마침내 도시는 똑같은 사람들로 꽉 차 버렸다. (161p)”


지구 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도시 상트페테르부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대부분 정신증을 앓는다. 사이코패스, 조현병, 뇌전증, 히스테리, 불안 등. 그들이 앓는 질병은 잠재적으로 안고 태어나 발현되고 사회 안에서 더 깊어지고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 증상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은 페테르부르크 변화의 속도와 자본과 관료주의가 만들어내는 계급사회 안의 긴장과 갈등이기도 하고, 그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의 사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시선은 결국 그 사회의 가치관, 관습, 도덕, 계급의식 등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며 권력으로 작용한다.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원하는 나의 모습과 실재의 모습 사이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그 간격이 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오는 괴리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시선과 관련한 두 가지 능력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모습과 행동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타인, 나아가 나 자신을 다르게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둘은 정도를 달리하면서 우리 일상에서 함께 작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의 모습과 행동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내가 속한 사회의 가치 규범에 따라 나의 모습과 행동을 반성하게 하면서 나를 사회적 존재로 만든다. 한편,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리는 내 속에 자리 잡은 타인의 시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넘어 새로움을 감행할 수 있다. (김남시 보여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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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2-12-30 2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신. 기억에 흐릿하지만, 좋았던 느낌이 납니다.
초창기 작품은 그저 사랑입니다^^

그레이스 2022-12-30 23:43   좋아요 2 | URL
그렇죠?!

mini74 2022-12-31 0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올리버도 읽어야 하고 또 ㅎㅎㅎ 분신도 읽고 싶어요 ㅎㅎ 비우려 노력한 장바구니가 다시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ㅠㅠ 그래이스님 편한 밤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12-31 07:27   좋아요 2 | URL
^^
전 자주 비웁니다.
하나 비우면 두개 채우고...^^
자고 일어났더니 미니님 댓글이!
굿모닝입니다!!

새파랑 2022-12-31 0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고골 외투에서 태어났다(?)‘ 도선생님이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던거 같은데 ㅋ <분신> 작품 생각해보니 고골 작품이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하네요. 저는 <분신>을 너무 재미있게만 읽었었는데 이런 의미가 있다니~!!

그레이스 2022-12-31 08:49   좋아요 3 | URL
예^^ 저도 내내 고골이 떠올랐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중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매력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서니데이 2022-12-31 17: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2-12-31 17:58   좋아요 3 | URL
예~
서니데이님도 마지막날 잘 보내세요~~

서곡 2022-12-31 1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오늘 저녁잘보내시고 낼부터 해피뉴이어입니다 ~

그레이스 2022-12-31 20:38   좋아요 2 | URL
예~
서곡님도 행복한 새해 되시길요~♡

거리의화가 2022-12-31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도스토옙스키 삐까뻔쩍 전집만 사두고 한 권도 못 읽었네요. 내년에는 한두권이라도 도전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님 한해동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2-12-31 20:39   좋아요 2 | URL
화가님 저도 감사해요~♡
화가님 글에 도전 많이 받았습니다~~♡
행복한 새해 맞이 하세요~~~♡

모나리자 2022-12-31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선생의 작품은 워낙 벽돌책이어서 읽은 작품이 몇 개 안됩니다.
언젠가 도전하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왕성한 독서도 화이팅입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12-31 2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도전 응원해요~~♡
모나리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책도 잘되길 바래요!

희선 2023-01-01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을 쓰고 잘 썼다고 여겼지만, 그때 사람은 별로 반응이 안 좋았다는 말 봤군요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최고로 꼽았네요 이 소설은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읽지도 않고 이런 말을...

그레이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2023년에도 즐겁게 책 만나시고 글도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1-01 08:16   좋아요 1 | URL

그런것 같아요^^
프로이트 이후에 나왔다면 사람이들이 조금더 관심있어 했겠죠?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희선님 좋은 시, 글 기대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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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었다면 재독해 보라. 그때 왜 그렇게 힘들게 읽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쉽게 읽힌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의 조이스를 둘러싼 아일랜드와 더블린 사람들, 그가 벗어나고 싶어했고, 사랑했던 것들을 알아야 조이스 읽기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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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2-30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저도 예술가의 초상하고 더블리너 다시 읽을 때, 아니 이렇게 편한 책이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물론 율리시즈의 재독은 아직 꿈도 못 꾸고 있지만요. ^^

그레이스 2022-12-30 13:36   좋아요 3 | URL

다른 책 읽는 느낌이었어요^^

책읽는나무 2022-12-30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임스 조이스 탐독의 시간이군요?
정말 쉽게 읽히나요??^^

그레이스 2022-12-30 19:20   좋아요 3 | URL

정말 쉽게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