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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힌 상황들을 보고 있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95p

이 대비를 지금 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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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2-06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문장에 밑줄을 쫙~ 그었어요.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나쁜 일을 집단 속에 있으면 함께 저지르기가 쉬워지지요.^^

그레이스 2025-02-06 13:52   좋아요 1 | URL

요즘 상황을 보면 아주 동의하게 됩니다.
 


영국으로 망명한 아프리카인 라티프 라흐무드는 거리를 걷다가,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에게 히이죽거리는 블랙어무어라는 말을 듣는다. 모퉁이를 세 번 돌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혐오의 말이다. 사전에서 블랙을 찾아본 그는 한 페이지에서 그렇게 많은 의미의 블랙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미움 받고 있다는 기분, 그러한 연상에서 오는 일종의 공포에 갑자가 나약한 느낌이 든다. 그는 OED(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 블랙어무어를 찾아본다. 거기서 영문학의 대가들에게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그의 기분을 돋우어주었다고 한다.

그 모든 고난의 시기 동안 내가 잊히지 않고, 밀림의 늪지에서 먹을 것을 뒤지면서 씩씩거리거나 벌거벗은 채 나무 사이를 건너다닌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존재하면서, 수세기 동안 정전(正典)사이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바닷가에서압둘라자크 구르나 125p)”

그가 말하는 영문학의 대가들 중에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 정전은 오셀로일 것이다.

 

오셀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셀로의 뒤에서 무어인이라 부른다. 그는 피부색이 어두우며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군인이다. 그만큼 그의 개인사는 파란만장하다. 데스데모나는 그의 인생역정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 땜에 절 사랑하였고, 전 그녀가 그걸 정말 동정해서 사랑했죠.(1.3.168-169)”라고 말하는 오셀로의 말에서 불안을 감지한다. 투르크의 키프로스 침공이라는 베네치아의 위기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사랑은 반대 앞에서 좌절될 뻔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그의 성공과 사랑이 과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극을 이끌어가는 이아고의 역할과 비중은 필연성처럼 보인다. 그는 악마의 화신인 듯하고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작정하고 달려들면 그의 계략에 다 걸려 넘어질 것 같다. 놀랍도록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꿰뚫어본다. 그는 이 지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파멸시키는데 능란하다. 이아고의 오셀로를 향한 증오의 원인은 알 수는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그에서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과 그것을 실행하는 사악한 인격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셀로의 파멸이 단지 이아고의 간계에 의한 것일까?

 

셰익스피어(아르떼)의 저자 황광수는 많은 해석자들이 마치 등록상표라도 얻으려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특이한 해석을 특수한 언어로 포장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콜리지는 악당 이아고에 주목하여, ‘무동기의 악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빅토르 위고는 오셀로는 밤이고. “거대한 운명적 인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많은 경우 타당하지 않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인 것은 사랑 때문일까? 작품 안에서 데스데모나의 시녀이자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는 질투란 스스로 생기고 태어나는 괴물(3.4.155)”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질투의 근원을 찾으려 해봤자 소용없다고, 한번 일어난 의심은 잠재울 수 없다고 한다. 그 분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켄지 요시노는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에서 18세기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빌어 법(재판)에 있어 정의를 말한다. “사실관계를 확정짓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가 좌지우지(166p)” 된다는 의미다. 오셀로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 비극적 엔딩 후 진실이 밝혀진다. 주인공들과 그와 연루된 인물들의 죽음 이후, 사건의 진상이 알려진다. 베네치아 귀족이면서 데스데모나의 삼촌인 로도비코와 오셀로 전임 총독 몬타노와 장교들에 의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실체가 드러나고 이아고는 체포된다.

 

그들이 세운 정의는 무엇인가?

 

오셀로의 주변에 악의를 막아줄 선의가 부재함을 본다. 오셀로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회적 통념조차 회의할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을 무어인이라고 지칭하는 말들과 데스데모나의 부친 브라반시오의 경고에도 묵묵하다. 반면 질투를 일으키는 이아고의 충동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모습을 보인다. 의심하다가 후회하고 격정에 휩싸이다가도 뒷걸음질 친다. 미끼로 던져진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즉시 간파하고, 증거를 찾으면서 그런 자신을 책망한다.

 

비극의 원인을 이아고의 사악한 간계와 오셀로의 허약한 사랑에서만 찾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가 이아고의 악의적 계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은 지속적으로 무어인이라는 말로 수많은 잽을 날린 사회적 폭력과 관계있다는 생각이다. 무반응으로 일관했지만 그의 자의식에 깊은 상흔을 남겼을 것이라는 추측은 인간의 보편성을 생각할 때 당연한 귀결이다. 그를 키프로스로 보내던 귀족들의 통념 속에 자리 잡은 은밀한 혐오, 이것이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정의의 실마리를 잡는 것이다.

 

히죽거리는 블랙어무어

모퉁이를 세 번 돌면 꼭 한 번은 뒤에서 그를 향해 짖고 그를 멸시하는 언어, ‘블랙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던 20세기의 라티프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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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1-13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투에서 비롯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마음 수양 혹은
수련이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싶습
니다.

그레이스 2025-01-13 09:1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한번 그 감정에 빠지면 걷잡을수 없거나, 사라졌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죠.ㅠㅠ
자존감, 관계에 있어서 신뢰 이런 문제들도 있는듯 합니다.
오셀로 입장에서만 본다면 질투가 사랑에서 비롯된것이고, 어쩔수 없다면, 그 감정을 표출하는데 있어 데스데모나를 대상화하고 폭력으로 반응했다는게 문제겠죠.

모든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의 문제인듯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5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저 글 생각납니다.
오셀로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인물 중 이아고가 가장 악하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아고의 말이 맞지 않나요? ㅎㅎ

그레이스 2025-01-16 12:5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같은 생각!
이아고의 악의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자주 마주치는 상황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증오심이란게 뭐든 할수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파우스트』, 이번엔 전영애 역으로 읽었다. 민음사도 함께 병행했다. 몇 년 전에는 열린책들로 읽었었다. 이 책(파우스트전영애 역, )은 마주보는 페이지에 독어 원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히 있어서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독일어를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발음규칙은 알고 있고, 눈으로 각운과 리듬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독어를 알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공부해 볼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신곡읽을 때는 이탈리아어, 호메로스 읽을 때는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 불어, 일본어…….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서는 10개는 족히 되는 언어를 익혔다.^^

 

이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317, 전영애 번역, )는 민음사나 문학동네, 열린책들에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잘못을 범하니까)”로 번역되었었다. 아마도 이 구절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328~329)”과 함께 파우스트의 욕망, 방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모든 작용하는 힘과 그 맹아를 보려는(382~385)”욕망, 그 비밀을 알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임을 예언하는 듯하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연구를 했으나 그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파우스트는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그를 메피스토펠레스가 찾아오고, 계약을 맺는다. 메피스토가 상징하는 의미는 여러가지 전통적인 의미로 악마, 혹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정령 등, 그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지식은 절대적 힘과 관련있음을 암시한다. 메피스토가 그의 영혼을 데려갈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할 순간이 언제가 될까? 1부 그레트헨과의 사랑의 순간도, 2부 헬레나와의 사랑이나 아르카디아 건설의 순간도 아니다.

 

파우스트가 헬레나를 만나는 장면에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할 극치의 순간이 도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숨을 잘 못 쉬겠어요, 떨려요, 말이 막혀요, 이건 꿈입니다. 날과 장소가 사라졌어요.(9413-9414)”라고 말한다. 아르카디아에서 헬레네와 함께 하는 파우스트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부르는 목가에서 그의 행복은 아직 미래 시제로 투사된다.

우리의 행복, 아르카디아답게 자유롭기를!(9573)

인간은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 행복이 완전함을 확신하지 못한다. 극치의 행복은 오히려 불안감을 준다. 언제고 이 행복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기에, 극치는 완전한 행복이 아니다.

 

에우포리온의 죽음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에우포리온은 그리스 해방전쟁을 도우러 갔다가 요절한 시인 바이런이 어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이 막에서 파우스트의 애도시(哀悼詩)는 바이런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사회적 제도로 이야기 한다면, 결혼과 자녀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얼마나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파우스트 23막에 해당되는, 괴테 자신이 고전적 낭만적 환영극이라 했던, ‘헬레나 비극은 당시 독일인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품었던 동경과 그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보여 준다. 괴테의 역사적 통찰이라 함은 파우스트가 신적 존재 헬레나와 함께 형성한 이상적인 아르카디아는 역사 밖의 공간으로, 헬레나를 통해 구현되는 고대 세계 역시 근대의 역사적 시점에서 다시 재현할 수 없는 허상(독일문학사최민숙 외, 215-238p)”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그가 바이마르 궁에 있으면서 보고 겪었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땅속에 있는 보물(금)을 근거로 지폐를 발행해서 국가의 재정위기를 타결하는 왕과 재상들의 모습과 그들을 기만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논리는 오늘날 금융경제-숫자로만 확인되는 화폐에 대한 맹신으로 돌아가는-를 보여준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는 것 또한 고금에 통하는 불의다.

 

플라스크 안에서 만들어진 인간정신으로만 존재하는 호문쿨루스는 육체를 욕망하고, 그리스 세계를 향하고 생명을 시원과 탄생에 대한 신적권위에 도전한다. 비너스의 탄생, 갈라테아의 승리 등을 연상케하는 신화들과 생명의 근원을 연구했던 고대 철학자들이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외치는 만세(Heil)는 여전히 침범당하지 않은 생명의 근원을 찬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의 모두에게 지극한 경하를, 원소들, 너희 사대원소 모두에게!(8486-8487)”

 

헬레나가 사라지고 슬퍼하던 파우스트는 산위로 이동해가고, 자연을 내려다보며 메피스토펠레스와 논쟁을 벌인다. 그는 자연이 질서 정연하고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만, 갑자기 메피스토의 주장대로 자연이 거칠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항하여 싸우고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갑자기 찾아온 욕망일까? 곧 땅을 차지하고 국가를 건설하려는 욕망으로 향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황제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적인 세력의 도움으로 승리한다. 그 공으로 아직은 바다인 미래의 간척지를 받는다.

 

파우스트는 이 해안지대를 간척하여 새로운 미래 국가를 세울 꿈을 꾼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오두막과 신전을 불태운다. 끝없는 욕망의 추동과 무리한 개발이 가져오는 근대의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바다가 메꿔진 후, ‘한밤중그의 저택 앞으로 의인화된 결핍··근심·궁핍이 다가오고, 그들 중 근심만 열쇠구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밤중과 의인화된 근심의 알레고리는 넘어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에 관한 진리를 전해준다. 이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근심은 말한다.

내가 한번 내 것으로 소유한 사람 

그에겐 온 세상을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원한 침울이 내려앉아 

태양이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고

바깥으로는 모든 감각이 완전해도 

안에는 암흑이 깃들어 있어.

온갖 보물이 있어도 

제 것으로 만들 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이 망상이 되고

넘침 가운데서도 굶주린다.

희열이든, 괴로움이든 

그걸 다른 날로 밀쳐두고,

오직 미래만 기대하며 

그래서 결코 완수하지 못한다.(11453-11466)”

 

근심이 내쉰 숨으로 파우스트가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실제로 실명한 것이지만,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근심으로 눈이 멀다! 반면, 육체의 실명 후 마음에 빛이 비춰졌다는 파우스트의 고백은 결론을 달리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그는 삽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건설할 미래 세계를 꿈꾼다. 낙원 같은 땅 자유로운 터에 자유로운 백성을 꿈꾸며 드디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 일반적으로, 파우스트의 마지막 욕망이 모두의 낙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구원받았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메피스토는 그를 차지하지 못했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5막 역시 이런 해석을 내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낙원 건설의 꿈이 모두의 것이 아닌, 즉 그 시혜를 받는 자들의 꿈이 아닌, 파우스트 개인의 것이고, 이를 위해 집이 불태워지고 죽임을 당한 개인(필레몬과 바우키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그것이 구원받을 이상이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근대 국가주의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이 이상국가의 꿈이 한 인간에게 악용된 역사를 보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와 니체 바그너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같은 그림자를 찾는 이유일 듯하다.

 

인간의 욕망은 돈 섹스, 명예 세 가지로 귀결된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 보이는 2부의 5막들에 그려진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나는 다만 이 세상을 달려왔다(11433).”라고 고백하는 파우스트의 길은 인간 모두가 방황하는 길이다. 누가 이 방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 방황에서 때로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의식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괴테의 초기 문학 사조는 ‘Sturm und Drang’이.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은 일본인들의 번역이다. 독어의 원래 의미는 폭풍우와 돌진이다. 그것도 폭풍우 속으로 돌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폭풍우가 되어 마구 내닫는다는 의미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씀으로 이 사조의 대표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낭만주의 작품을 쓸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그는 고전주의를 이끌었다.

 

독일문학사에서 고전주의’(古典主義, Klassik)라 함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1786~88)이 시작되는 1786년부터, 쉴러가 사망하는 1805년까지의 약 20년간을 지칭한다. 이때가 독일문학의 최전성기로 전성기 고전주의’(Hochklassik)라 부르기도 하며, 주로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기 때문에 바이마르 고전주의’(Weimarer Klassik)라 부르기도 한다.”(새 독일문학사안삼환 218p)

 

이성을 중요시하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감정위주의 ‘Sturm und Drang’이 다시 이성 위주의 고전주의로 옮겨간다. ‘바이마르 고전주의1775년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가는 데에서 그 기틀이 세워졌다. 명징성, 고대문화 숭배, 문학을 통한 국민 교육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과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다.·동경·마적(魔的)인 것, 무한성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독일 이상주의’(deutscher Idealismus) 문학운동의 마지막 단계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의 사조는 분류하자면 '바이마르 고전주의'이다. 하지만 파우스트 1부와 2부 사이에 60년이란 세월이 존재하고, 작품 안에는 ‘Sturm und Drang’, 자연주의, 낭만주의가 분위기도 보게 된다. 그의 작품을 어느 한 사조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폴레옹이 예나Jena와 바이마르 시를 통과했던 1806년 바로 그 해에 헤겔은 정신현상론, 괴테는 파우스트1부를 완성시켰다.…… 쉴러는 칸트를 통해, 낭만주의자Romantiker들은 피히테와 셸링을 통해 각인되어진 반면, 괴테의 자연관, 인생관은 고전철학자의 누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창작활동은 어떠한 철학의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 안에서 풍부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자연과학의 연구는 그의 창작과 동일한 상상력에 의해 인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헤겔에서 니체에로카를 뢰비트 21p)”


10월의 마지막날 여주 전영애 교수의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에 다녀왔다. 전시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교수님의 영상과 주제별 책 선정에 담은 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한때는 미술가를 꿈꿨던 괴테의 회화작품들과 멋진 필체의 영인본, 고서적들…… 다시 한번 독일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과 여행도 꿈꿔본다. 그곳에서 방황해볼테다.^^ 

기념으로 서동시집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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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4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몇년 전 전영애 교수 완역했다고 무슨 다큐 프로에 나왔는데 수도하듯이 번역을 하셨겠더군요. 순간 박경리 작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자그마하신 분이 어떻게 번역을 하셨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책 참 탐스럽네요.

그레이스 2024-11-05 10:45   좋아요 3 | URL
네, 보면 사게되는 책입니다. 날씨도 좋고, 장소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다큐 저도 봤는데, 참 멋있게 사신다 생각했습니다. 11월엔 이탈리아에 계신다고... 아마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번역하기 위해 자료 수집차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쿤체 시집도 나왔는데 다 장정이 너무 예뻐서 조만간 들여놓을 듯 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 1권만 읽고 2권을 읽다 말았는데 리뷰를 보니 <파우스트>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4-11-04 18:26   좋아요 1 | URL
2권은 다섯개의 막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인것처럼 보여서 읽기에 매끄럽지 않긴 해요.
파우스트의 방황이므로 ^^
1 권과 2권 사이에 60년이란 시간이 있으니, 글쓰기도 조금 다른듯 하구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2부까지 읽어야 주제가 전달된다는 생각입니다.
독서 응원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22:25   좋아요 1 | URL
응원감사합니다!!

초란공 2024-11-04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여백 서원 3번 다녀왔어요~ 그 사이 괴테 마을이 자리를 잡았나요? 궁금하네요!

그레이스 2024-11-04 21:30   좋아요 0 | URL

괴테마을이 예뻤어요
여백서원은 한달에 두번 낭독과 강연회에만 신청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밖에서만 봤구요
괴테 마을에 프랑크푸르트 시절과 바이마르 시절의 건물이 2동 있었어요
바이마르 저택 내부는 아직 설치중이구요,,,
다른 하나는 바이마르로 가기전 지내던 저택으로 물건과 책들을 전시한것입니다..
정원도 손질이 되어있구요 둘러싼 산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희선 2024-11-05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테의 책을 읽고 괴테마을에도 다녀오셨군요 한국에 그런 곳을 만들다니, 대단하네요 건물을 실제 괴테가 지내던 곳과 비슷하게 꾸몄나 봅니다 그 안에 전시품이 있군요 괴테가 살았던 곳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괴테마을이군요 여백서원도 멋지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4-11-05 07:23   좋아요 1 | URL

여백서원이 먼저 시작되었죠^^
만들어지는 과정도 멋집니다.

전야제 2024-11-07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댁에 놔두고 온 파우스트를 이번 주에는 꼭 가져와서 제대로 읽어봐야겠어요ㅎㅎ 고전 작품을 뒤늦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서양 예술사 지식과 함께 설명해주셔서 마치 수능 비문학 지문을 읽어나가듯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의 서재에 있는 글로 공부 많이 하려구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8 15:04   좋아요 1 | URL
ㅎㅎ
수능비문학!
공부할 정도는 아닌데...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11-08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괴테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군요.

예전에 딴나라에 잠시 살던 시절에
괴테 인스티튜트라는 곳이 있어서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
고 미처 가보진 못했거든요.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이게 독일 문화원이군요 ^^
아 무식도 하여라.

그레이스 2024-11-08 21:4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괴테마을은 여주에 있습니다.^^
 


베르나르 뷔페, 그의 그림들은 그 앞에 오래 머물게 하는 자력이 있다. 그가 화판에 그어놓은 선들은 작가의 지문이다. 여러 개의 날카로운 선들이 반복적으로 오고가며 형태를 이루고 그 선들은 살아서 저마다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기하학적 직선과 단색으로 그려진 그의 꽃들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화려하다. 핍진한 인물들의 얼굴과 몸은 공허와 슬픔과 불안과 고통을 전달하고, 다채로운 도시 풍경 속 간결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그 장소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한다. 한 작품 한 작품 머물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주제의 공간으로 들어와 있고, 여러 개의 날카로운 선으로 표현된 화가의 사인이 머릿속에 박힌다. 고독한 자화상인 <광대의 얼굴>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라고 한 말, 그리고 그의 최후는 작가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이어지는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다 맞은 편 벽 전체를 덮고 있는 그림과 마주치고, 그 앞으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단테신곡이다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지옥의 밑바닥 얼음으로 뒤덮인 곳에 떨어진 영혼들이 몸을 비틀고 증오와 고통으로 뒤엉켜있는 그림이었다. 그는 어떤 맘으로 하필이면 신곡 중 지옥의 밑바닥으로 그렸을까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있었다. 그가 그려온 인물의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지옥 군상과 주제의 그림이 자연스럽다.


신곡을 다시 읽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던 내가 아니었다. 단테와 신곡역시 같은 사람 같은 책이 아니었다. 단테가 통과해간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나눈 신학적 베이스와 그가 창조한 새로운 이미지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지나쳐버린 역사와 인물들과 의미들을 주워 올렸다.

 

단테 신곡 강의는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신곡 연구를 강의한 내용이고, 학자나 예술가들의 대담도 함께 담겨 있다. 신곡 안에 키워드가 되는 단어의 원어 연구와 다른 작품들 안에서 용례 비교를 통해 작가의 의도에 가까운 의미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의 문학이나 사회 문화에서 비슷한 상황을 들어 비교하고 있어 그 부분은 공감이 어렵다. 그럼에도 나같이 단천(短淺)한 독자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를 먼저 살피고 비교한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를 알아야하고 베르길리우스를 알려면 서양의 근본적인 서사시의 전통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기원이 트로이아로부터 오는 배경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런 기원을 갖고 있지만 단테의 신곡은 그들과 대립적이기도 하고, 창조적이다.

 

50년 동안 단테에 천착해온 저자의 강의와 질의응답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준 높은 질문과 이마미치의 답변은 신곡을 보는 눈을 몇 단계 높여 주었다. 14,15세기의 이탈리아와 라틴어, 역사, 단테학회 자료 등을 자료로 신곡을 풀어 놓은 양과 학문적 깊이는 내게 벅차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천구의 체계를 천국편에 적용하고 있으며, 아리스토 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긴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알면 알수록 단테의 지식과 글로 표현해내는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다.

 

지난번에 읽었던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단테도 다시 읽고 참고했다. 이 책들 역시 새롭게 얻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도판이 그리 좋진 않다. 항상 명화(그림)로 보는 ○○○○제목의 책들을 보면 도판이나 내용에서 조금 실망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열린책들 출판사의 신곡에 담긴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가 더 인상적이었다연옥의 탄생은 연옥의 기원과 발전된 계기, 사람들 사이에 인식되기까지의 과정 등에 관한 내용으로 흥미로웠다. “12세기 말까지 연옥이 명사로 일반화되지 않았고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14세기의 시인 단테가 그곳을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연옥이라는 어휘가 생겨나고 불과 백 년쯤 후에 단테가 이를 묘사한 것이다. 이는 실로 선험적이고 위대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단테 신곡 강의333p)”고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말한다.

 

 

문학과 예술을 읽고 감상하다보면 도처에서 신곡을 만나게 된다. 미술관 전시실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아 벽에 걸린 지옥풍경과 조우하는 것처럼. 단테가 인간의 연약함과 고귀한 정신, 절망과 소망, 빛과 그림자 등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보편성에 공감한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은 그에 조응한다. 조금 더 오랜 시간 조금 더 깊고 자세히 읽어 보면, 그 공감의 영역을 넘어서 새로운 지식의 지평이 펼쳐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마미치 도모노부처럼 평생을 바쳐야 얻어지는 것들이다. 스스로 일천함을 깨닫는 독서였다. 신곡을 읽는다는 것은 예술과 문학 속에 남겨진 그 유물을 찾을 수 있는 시야를 얻는 유익이 있다. 그러기에 재독에 재독을 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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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5-3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파일명 정리규칙만 보아도^^ 얼마나 진심으로 읽으시는지...

[신곡]은 언어의 벽을, 번역된 텍스트여도, 느끼며 읽다가 포기하게 됩니다. 저는 그랬어요. 그레이스님처럼 읽고 또 읽고로 돌아가야 뭔가 얻을 수 있겠네요^^

그레이스 2024-05-30 22:29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처음 읽을땐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나누어서 했는데,,, 이번에는 더 세분화 했어요 ^^

레삭매냐 2024-06-17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먼 모양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번역하신 단테의 <신곡>
이 좋다해서 일단 사두기는 했는데...
어느 순간 읽다 말았네요.

분발해서 다시 도전을...

그레이스 2024-06-17 13:42   좋아요 1 | URL
도전! 응원합니다 ~~♡
 

알베르토 망구엘은 말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우리가 첫 페이지를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15p)”


우리는 이 트로이 전쟁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서, 이 일리아스라는 서사시 안에서 신화나 예술작품을 통해 익숙한 파리스의 심판’, ‘트로이의 목마’, ‘라오콘의 죽음등과 같은 사건들을 만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이 서사시 안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 5일간 전투 이야기다. 일리아스는 한 영웅의 분노와 딸을 빼앗긴 아버지의 슬픈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영웅의 화해와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 돌아간 한 아버지의 슬픔으로 마치고 있다. 그러니 첫 페이지를 열기 전 까지는 친근하다는 역설의 설득력에 미소를 짓게 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이 서사시에는 분노가 그 한축을 이루고 있다. 아킬레우스가 분노때문에 전투에서 물러나고, 그로인해 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희생될 때, 그를 설득하는 포이닉스의 알레고리는 인상적이다.

 

사죄의 여신들은 위대한 제우스의 따님들이지만

절름발이고 주름살투성이고 두 눈은 사팔뜨기여서

미망(迷妄)의 여신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것이 그들의 일이오.

그러나 미망의 여신은 힘이 세고 걸음이 빨라 사죄의 여신들을

크게 앞질러 온 대지 위를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요.(9502~506 )”

 

또한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두고 전투에 참여할 것임을 선언할 때, 아가멤논이 변명처럼 말하는 운명의 여신(모이라), 복수의 여신(에리뉘스), 그리고 아테(미망의 여신)에 관한 예화(19) 역시 유명한 알레고리이다. 일리아스에 대표적인 두 알레고리에서 두드러지는 사죄, 운명, 복수, 미망(迷妄)이라는 단어들은 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이다. 아가멤논의 변명은 히랍인의 사고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일리오스의 들판에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전사들의 시체들, 그들을 수습하기 위해 하는 하루 동안의 휴전과 화장(火葬)은 이 서사의 한 축을 이루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구들! 출정하기 위해 그들이 갖추는 무장의 리스트와 묘사들, 죽은 자의 무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 또한 중요한 장면들이다. 아가멤논,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무장 장면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에서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암시를 발견하게 된다.

 

신들의 개입과 싸움은 사실상 이 전쟁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가운데, 5일간의 전세의 향방을 결정하는 힘이다. 그 각각의 전투는 무언가 인간들에게 그 운명의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지를 주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부분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른 시점과 해석과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풀리고 소용돌이치며 아킬레우스를 쫓아오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를 표현하는 은유와 직유는 이 서사시의 장관을 이룬다. 일리아스에서 절정을 아킬레우스의 전투 장면으로 꼽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에서 감정의 극치를 경험한다.

 

세 번을 읽었어도 여전히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많은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진다.

처음 읽는다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이 강대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이 책이야 말로 호메로스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서사시의 구조, 출정한 국가의 지도와 참모의 리스트, 각 권마다 해설-중심사건, 인물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초보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이펙트는 내가 처음 참고했던 책이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간다. 이 책에는 호메로스 문제, 사본, 트로이 유적 발견, 호메로스의 작품이 철학자들과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학자들의 논쟁에 관한 저자의 탐구가 실려 있다. 더불어 망구엘의 감상들이 담겨 있는 유려한 문장들은 호메로스를 읽지 못한 독자를 유혹한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오래된 이 두 은유는 우리에게 인생 전체가 하나의 투쟁이자 여행이라고 말해준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15p)”

은유는 당연히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이다. 은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지 …… 독서 중독자들이 겪는 공통된 증상이지 않을까?

애덤 니컬슨의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망구엘의 탐구 작업을 더 깊고 자세하게 다뤘다. 그 역시 호메로스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청동기와 청동 무구,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과 그리스인들의 정착지, 이동과 교류의 역사, 유적과 발굴, 연구자들, 사본들, 발견자들에 대해 서술해 간다.

일리아스에는 목록시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에서 출정할 당시의 함대의 목록과 10년이 지난 시기 트로이아 해변에서 출정을 다짐하는 전사들의 목록, 그리고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새겨 놓은 형상의 목록이다. 목록시에 관해 도움을 받은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호메로스와 그 이후 문학과 예술에 나타나는 리스트에 관한 글들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어떻게 편집되어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자칫 덫이 되기 쉬운 목록시를 고양된 정서로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안젤로 몬티첼리 1820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저자가 일리아스를 감상한 글이다. 그녀는 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은 힘이라고 한다. 승리자건 물질이건 힘과 접촉하면, 힘의 불가피한 효과 아래 놓인다.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일리아스는 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승리의 영광을 꿈꾸며 전쟁에 참여한 전사들은 마침내 전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전쟁은 죽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일리아스를 보는 그녀의 생각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호메로스 세계에서 시는 패배한 자와 죽은 자에게 속한 것이며, “호메로스 안에서는 진정한 승리자란 없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89p)”고 말한다. 시몬 베유는 호메로스는 승자나 패자를 찬양하지도 경멸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며, “놀라운 공평함이 일리아스를 이끈다(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57p)”고 말한다. “운명이 결정한 한계 속에서 신들이 전권을 갖고서 승리와 패배를 배분(같은 책 57p)”할 뿐이다.

 

전사들은 모두가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시몬 베유의 해석이 유독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지구 다른 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들 때문일 것이다. 매분 매초 죽음의 가능성을 자각하며,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하루에서 그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없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41p)”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가슴 밖에서는 서식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질투, 미움, 공포,

그리고 악의, 그리고 야망, 그 가까운 곳에

사랑의 서식지가 있다…….

-Phases월리스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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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29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전쟁을 원하는 이들이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피해는 전쟁
을 원하지 않는 애꿎은 이들이
감당하게 되는 역설이 문제지요.

미망이라는 키워드에 꽂히네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음...

과연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
세이아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미망의 단계에 들어섰나요.

그레이스 2023-10-29 22:13   좋아요 3 | URL
미망에 빠졌죠.
그리고 다시 벗어나기도 하고,,, 한 개인의 분노가 공동체 전체를 미망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서곡 2023-10-3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사들은 모두 형벌을 받는다......덧붙이자면 전쟁 지역의 모든 개체들이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현재에도 만연한 폭력과 전쟁 앞에 무참해집니다. 잘 봤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10-30 09:29   좋아요 2 | URL
예 그렇죠. 전장이란 말이 필요없는게 현대전이니까요 ㅠ
서곡님도 10월 잘 보내시고 11월 행복하게 시작하시길요~

청아 2023-10-30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생 전체가 투쟁이자 여행이다.‘이 말이 저에게 와닿네요.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킨다‘는 말도요. 전쟁에도 그 외 힘이 작용하는 어떤 경우에든 적용되는말 같아요.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자 지구도 전쟁상황이니 가슴아프고 두렵기도합니다. ㅠㅜ

그레이스 2023-10-30 13:11   좋아요 2 | URL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그런 말들에 꽂히는게 지금 상황때문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언제든 적용될수 있겠죠
평화는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해서 안타깝고 두렵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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