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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나보코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이 『분신』이다.
“내가 보기에 그가 쓴 작품 중 최고는 분신이다. 거의 조이스에 가까우리만치(비평가 미르끼스가 지적한 대로) 스토리가 정교하고, 음성적 운율적 표현력이 문체에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207p)"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고골의 그림자가 짙었고, 프로이트 이전 프로이트를 예감하는 작품에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나에게 “톨스토이 작품 중에 이런 소설이 있었어?”라는 질문을 하게 했던 것처럼, 『분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반면, 골랴드낀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로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유럽스타일의 건물들과 운하에 반사되는 다리, 안개, 백야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밤거리를 배회하는 가난한 주인공들은 도시가 강요하는 욕망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불안하다. 권력이 된 욕망의 노예들은 서로를 향해 냉혹한 시선을 던진다. 그 불안은 더 깊은 골을 만들어 낸다.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153p,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불안을 『분신』의 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에게서 구체적으로 발전시킨다. 그 불안은 골랴드낀이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밤마다 파티를 벌이는 상류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상황과 달리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즐기는 것을 꿈꾼다. 그러기에 골랴드낀의 환희, 으스댐, 열정은 불안하고, 곧 수치심, 절망, 우울로 바뀐다. 양 극단의 감정 상태를 오고가는 그에게서 독자는 병증을 읽는다.
“그는 마차의 양쪽 창문을 내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는 즉시 고상하고 고결한 모습을 지어 보였다. 리쩨이나야 거리에서 네프스끼 거리로 돌아가는 모퉁이쯤에서 그는 아주 기분 나쁜 어떤 느낌에 몸을 떨었다. 어쩌다 몹시 아픈 곳을 찔린 가엾은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려 가며, 그는 서둘러서,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마차에서 제일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붙이고 웅크렸다. 일인즉슨, 그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젊은 관리 둘을 본 것이다.(13p)”
사람들을 의식하는 순간 골랴드낀은 갑자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타인의 냉혹한 시선 속에서 수치심은 시작되고 불안해진다. 골랴드낀이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갔다가 “11월의 거리로 마치 누더기 뭉치처럼 내팽개쳐진 바로 그날 밤” 그는 무너지고, 자신의 분신을 보기 시작한다. 낮은 자존감과 자격지심과 상대적 박탈감, 불안 등으로부터 받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분열’의 극단적인 단계에 이른다.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鈍痲) 등의 조현병(정신분열) 증상을 보인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가 골랴드낀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가 이런 상태에 이른 내적, 외적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골랴드낀이 만들어낸 분신 제2의 골랴드낀은, 무능한 골랴드낀과 달리, 기민하고 활발하고 명랑하고 유능하다. 심지어 경박스럽고 야비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가 바라던 다른 자아일 것이다. 그는 제2의 골랴드낀으로부터 소외와 배신을 당한다. 사실, 그가 자신을 소외시키고 배신하는 것이다. 이 소외와 배신감은 자의식 과잉과 자기비하를 더 심하게 하고, 그의 사고를 와해시킨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걸레’라고 느끼고, 자신의 분신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환시를 본다.
“하지만 그가 발자국을 뗄 때마다, 그의 발이 보도의 화강암을 칠 때마다 그와 똑같이 닮은, 하지만 마음이 타락하고 혐오스러운 골랴드낀 씨들이 땅속에서 솟구치듯 튀어나왔다. 쌍둥이들은 생겨나는 즉시 거위의 행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쇠사슬 모양으로 달렸다. 그것은 점점 더 길어져서 큰 골랴드낀 씨 뒤를 절뚝거리며 쫓았다. 그에겐 똑같은 자들에게서 벗어나 도망갈 곳도 없었다. 가여운 골랴드낀 씨는 공포로 인해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똑같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생겨났고, 마침내 도시는 똑같은 사람들로 꽉 차 버렸다. (161p)”
지구 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도시 상트페테르부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대부분 정신증을 앓는다. 사이코패스, 조현병, 뇌전증, 히스테리, 불안 등. 그들이 앓는 질병은 잠재적으로 안고 태어나 발현되고 사회 안에서 더 깊어지고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 증상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은 페테르부르크 변화의 속도와 자본과 관료주의가 만들어내는 계급사회 안의 긴장과 갈등이기도 하고, 그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의 사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시선은 결국 그 사회의 가치관, 관습, 도덕, 계급의식 등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며 권력으로 작용한다.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원하는 나의 모습과 실재의 모습 사이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그 간격이 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오는 괴리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시선과 관련한 두 가지 능력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모습과 행동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타인, 나아가 나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둘은 정도를 달리하면서 우리 일상에서 함께 작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의 모습과 행동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내가 속한 사회의 가치 규범에 따라 나의 모습과 행동을 반성하게 하면서 나를 사회적 존재로 만든다. 한편,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리는 내 속에 자리 잡은 타인의 시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넘어 새로움을 감행할 수 있다. (김남시 『보여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