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부터 읽었다. 「열전」만 읽어도 된다는 말도 들었고, 해서 「열전」을 먼저 펼쳤다. ‘백이 ·숙제 열전’은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뭔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이 되는 은·주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또 공자가 『춘추』에서 했던 말과 의미도 알아야 사마천이 왜 그의 말에 비판적인지도 알게 된다.
「공자는 말하기를 “백이, 숙제는 과거의 원한을 기억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남을 원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子曰 不念舊誤 怨是用希 -公冶長, 論語) 또 “그들에게 어진 것이란 구하는 대로 얻어지는 것인데 또한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求仁得仁 又何怨乎 -述而, 論語)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심경을 비통한 것으로 보았고, 그들의 일시를 보고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은 굶주려서 곧 죽으려고 하였을 때,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꾸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었으니
신농(神農), 우(虞),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아! 우리는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마침내 이들은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두 사람은 과연 원망하는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
10~12p
각주를 읽어가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백이 숙제’에 대한 공자의 말에 대한 사마천의 비평은 많은 학자들이 분석해 놓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다.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는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열전」의 마지막에 있는 ‘태사공자서’를 먼저 읽었다. 태사공 사마천의 사기를 기록하는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세태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읽어가다간 놓치는 부분이 많고 속도도 느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움을 받을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https://tv.naver.com/v/14939289
먼저 『열린연단』의 김병준 교수의 ‘사마천사기’ 강의는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는 방향과 그 가치를 이야기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史로서가 아니라 經으로 기록했다. ‘태사공자서’를 보면 주공 이후 500년 만에 공자가 나왔고, 이제 공자 이후 500년이 되어가니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중단하지 않고 계속 기록해나가는 의무를 넘어서서 새로운 소명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태사공(사마천)이 『사기』를 대하는 자세의 변화는 ‘이릉의 화’를 당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궁형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사마천 평전을 보니 ‘보임안서(보임소경서)’에 사마천의 울분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한다. 임소경(임안)은 자신도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마천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의 잘못을 꾸짖는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답장을 보내며, ‘이릉의 화(궁형)’를 당하게 된 억울함과 당시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음에 대한 서운함과 궁형을 받은 후 미천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울분을 전하고 있다. 이 서신에서 그는 『사기』를 기록하는 의의를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원래 한 번 죽기 마련인데 어떨 때는 (그 죽음이) 태산보다도 무겁고, 어떤 때는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 것은 그 (죽음의) 쓰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옛날에 부귀를 누리다가 이 이름이 닳아 없어진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고, 오직 특별하게 비상했던 사람들만이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왕(文王)은 갇힌 몸으로 『주역』을 풀어냈고, 중니(仲尼)는 어려움을 당해 춘추(春秋)를 지었으며, 굴원(屈原)은 추방을 당하고서 마침내 부(賦)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左丘)는 앞을 못 보게 된 뒤에 『국어(國語)』를 완성했으며, 손자(孫子)는 발을 잘리는 형벌을 당한 채 병법(兵法)을 편찬해냈고, 불위(不韋)는 촉(蜀) 땅에 유배되는 바람에 『여람(呂覽)』을 세상에 전 할 수 있었으며, 한비(韓非, 한비자)는 진(秦)나라에서 감옥에 갇혀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썼고, 『시』 300편은 대부분 빼어나고 뛰어난 이들이 자신들의 분함을 떨쳐내려고 지은 것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가슴속에 한 맺힌 억울함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도리를 통하게 할 수가 없게 되자, 그로 인해 지나간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述王事 思來者]. 이에 자구처럼 눈이 없고 손자처럼 발이 잘린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쓰일 데가 없게 되자 물러나 서책(書冊)을 논함으로써 자신들의 분을 풀어내며, 자신들의 생각을 담을 공허한 글[空文]로나마 스스로를 들어냈습니다.」
- 173~174p, ‘보임안서’중, 「권62사마천전」, 『한서 열전3』, 반고
이 서신은 반고의 『한서』 「열전」 중 ‘사마천전’에 기록되어 있다. 『사기』를 읽다보면 사마천의 기록 뒤에 가끔 후대의 사관들이 내용을 덧붙인 것을 볼 수가 있다. 주로 사마천의 기록을 보충한다거나 유실된 내용을 대신하거나 사마천의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이다. 저선생, 가생 그리고 반고 등이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반고는 후한(後漢) 사람이고 유교가 나라의 기틀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많은 경우 사마천의 기록을 참고하면서도 다른 시각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10권으로 완역된 『한서』가 최근에 출판되어서 부분적으로 참고할 수 있었다. ‘보임안서’ 전문도 여기에서 읽고 참고했다.
사실, ‘보임안서’를 읽고 『사기』를 읽는 것은 기록자인 사마천의 마음과 저술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기를 읽기 위해서는 중국사에 대한 개괄은 하고 시작해야 한다. 「본기」나 「세가」를 읽는다고 해도 중국고대사의 맥을 잡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기전체’의 특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국지리가 갖는 의미를 놓치면 사기는 읽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나라가 낙읍으로 천도함으로 황실의 권력이 약해졌다는 것, 진나라가 파·촉을 먼저 차지함으로 초나라를 침략할 발판을 삼았다는 것, 항우가 관중지방을 포기하고 팽성으로 돌아감으로 대업을 놓치게 된 것, 한중 땅으로 들어갔던 유방이 다시 관중으로 들어가서 천하를 통일한 것, 그리고 형양과 성고 전투 등 중국의 지리는 사기를 읽는 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중국의 고대사와 지리에 대한 정보를 잘 설명해주는 강의를 youtube를 통해 구독하게 되었다. 『사기』와 『삼국지』를 읽기 위한 지리 강의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https://youtu.be/ZUy2AHVHXiQ
진시황 때부터 한나라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잘 정리한 책이 시바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이라는 책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간결하면서도 역사적인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다. 천재적이란 생각이다. 이 작가는 책 한권을 쓰기 위해 한 수레 분량의 책을 읽고 참고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께 읽은 책은 미야기다니 마사미쓰의 『맹상군』, 『자산의 꿈』이다. 읽을 예정인 책은 『개자추』, 『악의』, 『안자』. 그리고 11권으로 구성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
『사기』를 읽기 위해 세 개의 출판사 책을 병행해서 보았다. 텍스트로 삼았던 책은 까치 출판사의 책이었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어서 읽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책 페이지마다 있는 각주가 아주 잘 되어있어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 아쉬운 점은 각주에 있는 한자에 독음이 없어 모르는 한자는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 옛날처럼 옥편을 찾아야 했다면 포기했겠지만 다행히 네** 사전이 있어서 사진을 찍거나 쓰는 것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자독음까지 써놓기엔 분량이 너무 많아 페이지를 할애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하기로 했다.^^
참고하기 위해 병행해서 본 책은 「올제」출판사의 클래식 시리즈 『사기』이다. 원전을 살리면서 조금 더 읽기 편하게 번역해 놓았고, 권위 있는 번역자들이어서 믿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번역에 있어서 견해가 다른 내용들은 설명을 하고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이유도 친절하게 적고 있다. 이 시리즈들은 평소에는 구하기가 어려운데, 다행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사두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책은 민음사의 『사기』다. 「열전」은 잠시 품절 상태이다가 다시 재출간 되었다. 읽기에 쉽도록 현대어로 쉽게 번역되어 있다.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함께 읽은 동아리 회원 중 한 분은 쉬운 말로 번역했다고 해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역사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지식을 다 이해하려면 바탕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 텍스트가 있고 그 내용 중 이해 안되는 내용을 참고하는 용도로는 좋다는 생각이다. 혹시 중고등학생들이 읽으려고 하면 민음사 책이 좋을 듯하다.
「열전」만을 읽었는데도 사마천의 시선과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 미야기다니 마사미쓰는 『맹상군』이란 책에서 염옹이 쓴 시를 통해 ‘맹상군 열전’의 한 에피소드의 뜻을 전하고 있다.
누가 개소리를 내는 것을 천하다고 하는가
능히 백호구의 옷을 가지고 왔으며
누가 닭소리 내는 것을 천하다고 하는가
능히 함곡관 관문을 열게 했도다
비록 성현(聖賢)이라 할지라도
그 두 선비처럼 짐승 소리는 내지 못했으리라
그러므로 알라,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가 되고
티끌은 모여서 큰 언덕을 이루는도다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야 사람을 쓸 줄 아는 것이니
여러분은 맹상군을 천하다고 하지 말라
-『맹상군』 미야기다니 마사미쓰
역사는 사람, 그들의 우연한 만남, 그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 낸 생성과 소멸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 사마천의 글 속에 은밀하게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에 조응하게 되었다.
결국, 「열전」만이라도 읽어볼까 하고 시작했던 『사기』 읽기는 「본기」로 「세가」로 이어지고, 「표」를 옆에 두고 함께 읽어야 하는 필요까지 생기게 되었다. 아마, 「본기」부터 순서대로 읽었다면 「열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열전에는 사마천의 마음이 숨겨져 있고 독자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본기」와 「세가」읽기는 연관되는 소설들까지 읽게 되는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세가」를 다 읽고 『사기』읽기를 마무리 하면서 동아리 회원들과 수고했다는 축하인사를 전하고, 이제 맘껏 다른 소설들을 읽으며 쉬어야겠다는 계획을 했지만, 머릿속에는 『사기』를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글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결국 노트북을 켰다. 정리를 하다 보면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텐데, 저렇게 쌓아놓은 책들은 언제 다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