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사는 전기·중기·후기·말기 로 나눈다. 초기는 중종 연간까지, 중기는 숙종 연간까지, 후기는 순조 연간까지 ,말기는 대한제국까지이다. 찾아보니 안휘준 교수의 책에서 역시 그렇게 나누고 있다.
초기에는 하직 고유의 화풍은 형성되지 않았고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소상팔경도>의 유행으로 볼 수 있듯 사대부 사회를 중심으로 관념산수를 즐겨 그렸다. 중기에는 북종화의 영향으로 절파화풍이 유행한다. 후기는 문예부흥기로 ‘문자향 서권기’가 짙은 서화가 유행했다. 더불어 풍속화도 함께 발전한다. 말기에는 단원 화풍을 그대로 답습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추사 김정희을 통해 서화라는 화풍이 등장한다.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궁궐 장식화와 기록화가 먼저 소개된다. 그리고 어진과 함께 공신 초상과 선비 초상 등 많은 초상화들과 자화상들이 출현한다. 조선시대는 초상화 왕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초상화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외형적인 모습을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담았을 뿐 아니라 그 인물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담아내려 했다. 그 내면의 정신세계를 담는 것을 ‘전신사조’라고 한다.
“‘전신’이란 정신을 전한다는 뜻으로 5세기 남북조시대 인물화의 대가였던 고개지가 전신사조라고 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고개지는 전시의 핵심은 눈동자의 표현에 있다고 했다.(65p)”
이런 초상화의 대가로 소개된 인물 중 인상적인 화가는 단연 이명기이다. 그의 체제공 초상을 보면 그 사실적 표현이 놀랍다. 조선초기에서 중기와 후기를 거치면 초상화를 보면 그 복식의 변천사를 알 수 있고 그들의 자세나 배경에 따라 변화와 파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인물의 자세와 복식 배경은 모두 도상이 되어 정신과 상황을 알려준다. 자화상으로는 단연 윤두서의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터럭 하나조차 그의 인물됨을 가리키는 그의 자화상은 사실 반신을 그렸지만 얼굴 아래쪽의 몸의 형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래서 사라졌음이 밝혀졌다. 시간이 완성한 강렬함이라고 할까?
초상화나 자화상뿐 아니라 고사나 역사인물, 풍속을 그린 그림 속 인물들, 사상을 담은 인물 그림 등 조선시대 인물화를 총망라한 책이 바로 『조선시대 인물화』이다. 엮은이가 안휘준·민길홍으로 되어있지만 여러 저자가 연구한 글이 담겨있다.
조선초기의 회화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시작한다. 국초부터 도화서 화원제도가 확립되어 안견과 같은 화원들이 활동하며 이름을 남겼다. 이 시대 회화는 관념적 화풍을 따르고 있다.
점차 중기로 가면서 북종화의 절파화풍이 자리를 잡고 도화서 화원들뿐 아니라 그림이나 서예가 문인들의 일과예(一科藝)가 하나의 전통으로 발전한다. 탄은의 대나무, 어몽룡의 매화, 이계호의 포도 그림과 같은 것을 ‘일과예’라고 한다. 눈길을 끈 것은 화법을 가르치는 교본이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그림의 교본을 제시하는 책인데, 그 교본 안에 있는 그림을 따라 그리도록 하는 것이다.
후기에 이르면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등장하고 문인화가의 그림은 남종화풍을 따르면서 화제가 중요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림 안에 문자향 서권기가 짙게 서려있다.
조선시대 미술사에는 남태응의 『청죽화사』나 김광국의 『석농화원』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개인이 수집한 그림을 엮은 화첩이다. 또한 평론집이기도 하다. 그림에 담긴 화제들과 제발문, 그리고 수집가의 평론을 싣고 있다. 항상 그림을 보게 되면 그림 한쪽에 쓰여 있는 화제들이 궁금해 그 의미를 찾아보곤 했는데, 김광국의 『석농화원』이 출판되어 있어 반가웠다. 김광국은 조선 말기에 의관을 지낸 석농이 자신이 수집한 그림을 여러 번 여러 권에 걸쳐 증보한 화첩이다. 모두 10권으로 되어 있고 화첩 9권과 대작 1권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국립박물관 소장 『화원별집』 역시 『석농화원』의 <별집> 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어왔다고 한다.
주저 없이 구매해서 받아 본 이 두껍고 크고 비싼 책은, 거기 수록된 그림의 종류와 양, 궁금해 했던 화제와 화평들에 대한 해석들 때문에 그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박지원과 홍석주의 서문 역시 반갑다. 조맹부의 제어는 미소를 짓게 한다.
“책을 모으고 책을 소장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잘 보는 자는 마음과 생각을 맑고 단정히 가다듬고 깨끗한 책상에 향을 사르고서, 책등을 말거나 책 모서리를 꺾지 말고, 손톱으로 글자를 긁거나 침을 책장에 묻히지도 말려, 베개로 삼거나 옆구리에 끼지도 말아야 하며, 손상되면 즉시 수리하고 펴본 후에는 바로 덮어야 한다. 훗날 내 책을 얻은 자들에게 두루 이 방법을 권하노라(79p)”
이 『석농화원』에 담긴 그림들은 낙질되어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석농화원』에서 떨어져 나온 작품으로 확인된 그림은 57폭이라고 한다. 그래서 『석농화원』에 그림은 없고 김광국의 발문만 남아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기 전에 『옛그림을 보는 법』이란 책을 읽었다. 전통미술의 상징세계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림 속에 나타난 상징과 관련된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노안도>는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인데 그 한자어의 같은 음가때문에 노년의 평안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선물했다고 한다. 게를 그린 그림은 장원급제하라는 기원이 담긴 그림이다. 장수, 부귀, 자손, 부부애와 같이 그림에 담겨 있는 상징을 알려 주고 있어, 우리 전통 미술을 공부하기 전에 읽어두면 유익한 책이다. 더불어 재미가 있다.
조선시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벽돌 책만 쌓아가고 있다. 그 벽돌책 만큼이나 정말 모르는게 많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