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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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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Me를 그대로 직역하는 것이 어땠을까? 나에게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제목이 문턱으로 작용했었다. 뭔가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이 책을 홍보하는 글들이 이상하게 나를 더 멀어지게 했다. 미술관보다 그의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뉴요커에 다니던 한 남자가 형의 죽음 이후로 미술관 경비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고 신파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무정한 걸까?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나랑 책 읽는 결이 맞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오만한 걸까?

 

어쨌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단어가 나의 마음을 끌었고, 딸이 가보고 싶다고 했던 기억 때문에 책을 펼쳤다. 읽어가면서 나의 의심은 무고(無辜)임이 밝혀졌다. ‘메트라는 매력적인 공간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전시품들에 관한 지식과 감상에 푹 빠져 버렸다. 상실이라는 인생의 어두운 사건, 전직 뉴요커의 미술관 경비원으로의 이직은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를 이 미술관으로 이끈 것은 오랜 관심과 취향과 습관 그리고 미술관이란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그의 감상에는 침범할 수 없는 고독과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 있다.

 

그가 걸어가는 미술관의 복도와 전시실을 눈에 보듯 그리면서 따라가고 그의 시선이 멈춘 전시실들의 작품들에 내 시선도 멈췄다. 그들이 내뿜는 냄새, 반사하는 빛, 아우라를 함께 느끼는 듯 했다. 미술관을 오픈하기 전 홀로 있는 전시관의 정적과 고독, 그 공간을 채웠다 비우는 사람들의 소음이 감동스럽다.

 

그는 그곳을 메트라 부른다아마 다른 직원들도 뉴욕 시민들도 그렇게 부를 것이라고 짐작된다. 예쁘고 다정하다. 미술관이 시민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입장료는 기부금 형식으로 내고 싶은 만큼 낸다.  큐레이션 부서는 17개나 된다. 소장 유물은 2백만 개가 넘는다. ‘메트에는 2천명 이상의 직원들이 있다. 문턱이 낮은 미술관인데, 시설과 작품들의 수준은 높다.

 

매년 거의 7백만 명(세계 3)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오랜 시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관람 유형과 사랑에 빠진 유형을 분류한다. 나의 흥미를 끄는 유형의 방문객들은 미술관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는 기부금을 조금밖에 낼 수 없었지만 회원권을 사서 따라오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아무 때나 가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 사랑에 빠지는 미술관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마다 열리는 기획전 소식을 받고 얼리버드 티켓을 예매하고 날짜를 정해서 관람하는 것이 내가 미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항상 거기 있는 작품과 공간을 사랑해서 찾아가는 곳은 없다.

 

작품과 관람객들을 보는 작가의 감상들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남겼다. 그가 떠올리는 추억들은 때론 브뤼헐의 <곡물 수확>과 같은 작품을 연상시킨다. 행복하고 찬란한 슬픔으로 가득한 눈부신 장면들이다. 때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관람객들의 모습들 중 내가 하던 실수를 마주하게 될 때, 웃음이 난다.

 

그들이 이토록 느리게 이동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이 미술관이 얼마나 큰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4장)”

 

가끔 관람객들은 제복을 입은 그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을 한다. 그들에게 미술사, 미술기법, 도상을 설명하고 있는 그는 지식과 감수성을 겸비하고 쉬운 언어를 장착한 누구보다도 뛰어난 도슨트다. 관람객들과 책을 읽고 있는 나를 화가의 시대와 작업실로 인도한다.

 

그는 두 개의 전시를 서로 연결시키는 대담한 견해를 밝힌다. <미켈란젤로><지스 벤드 퀼트 작품전>이다. 거친 노동의 휴식시간에 완성한 퀼트 한 조각과 그것들을 이어 붙여 작품-아이들이 덮는 이불-을 만들었던 여성들의 인터뷰와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그의 일기를 병치한다. 여성들의 퀼트 한 조각을 미켈란젤로의 한 소묘 혹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의 한 컷과 유비한다. “대부분의 퀼트 작품은 블록 아홉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루에 블록 하나쯤 완성하면 만족했다. 루시 T.버전의 조르나타였다.(12)”라고. 조르나타! 하루의 일과라는 뜻이다. 미켈란젤로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했던 고뇌의 소묘 또는 천장화의 한 컷을 가리킨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12)”

 

메트는 새로운 경비를 고용할 때면 면접광고를 내고 이 일에 적합한 사람들을 뽑는다. 외국 출생인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하고, 모든 축에서 다양하다. 이 일을 하게 된 동기와 과정 그리고 동력도 다 다르다.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사람, 택시를 몰던 사람.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한 사람, 목조 가옥을 짓던 사람, 농사를 짓던 사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 순찰을 돌던 경찰, 그런 경찰들의 활동을 신문에 보도하던 기자, 백화점 마네킹의 얼굴을 그리던 사람들이다. “예술을 좋아하던 사람도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8장)” 그들은 어두운 푸른색 근무복 아래 비밀스런 자아를 숨겨 두고 있다.

 

폐관을 알리며 나가달라고 하는 경비원을 두고 자기 어린 아들에게 작은 사람들한테는 작은 힘이 어울리지인생이 그래하고 말하는 젊은 남자 때문에 나는 분노보다는 절망을 느꼈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지라고 하기엔 메트라는 장소가 너무 특별하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낀다.

 

5년 동안 이 전시실 저 전시실 부서가 맡겨지는 대로 옮겨 다닌 그는 몇 가지 습관이 생겼다.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좋아하는 전시실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전시실을 구별하게 됐다. 그는 이제 그의 아침을 채우곤 하던 정적은 느끼질 못한다. 그 정적이 절실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메트'에서 10년을 일했는데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는 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20여 년 전, 그와 형제들을 데리고 가서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메트'를 떠나며 자신이 이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한다. 여러 후보 작품을 써나다가 그가 제일 필요로 하는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린다. 미술관의 정돈됨과 정적, 전시된 작품들로 부터도 그랬겠지만, 이 작품으로부터 상실과 고통에 대한 치유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의 에피파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프라 안젤리코, 1420~1423경, 이탈리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43.98.5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의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13장)”

 

삶은 작가의 10년처럼 신비로움과 숭고함으로 숨막히는 정적 속으로 들어가 침잠하는 때도 있고 복잡한 세상 속에 섞여 무리를 이루는 때도 있다.

작가는 메트의 유니폼을 벗고 세상으로 나아가며 말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다 읽고 난 후에도, 이 책에서 언급한 작품들의 리스트와 취득 번호를 올려준 친절함 덕에 메트로폴리탄 홈페이지(metmuseum.org)search창에 입력해서 작품 감상을 했다.

혹시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람을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읽어 볼 것이다.

책을 닫으면서 원서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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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2-08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번역서 제목이 별로네요. 저는 전에 이 책 제목 보고 다양한 직업을 보여주는 시리즈 중 하나인가 했는데;; 제목 바꿔라 ㅠㅠ

그레이스 2024-02-08 09:23   좋아요 2 | URL
ㅎㅎ
전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영업부에서 제안한 제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두 책 다 베스트셀러!
제 생각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페넬로페 2024-02-08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업 전략일 수 있지만 제목으로 다양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책의 내용이 좋아야 하겠지만요. 가야 할 곳이 또 하나 생겼네요. 언젠가는 고고~~

그레이스 2024-02-08 11:49   좋아요 2 | URL
예~
언젠가는 고고!

페크pek0501 2024-02-13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람의 기회를 갖는 것도 좋지만,
원서를 주문하신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4-02-13 17:51   좋아요 1 | URL
페이퍼백이 3월21일 나온대요^^;;
예약 장바구니에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4-02-24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밀리의 서재 이용 중인데 거기에서도 이 책 많이 광고하더라구요. 제가 베셀에 약한데 ㅋㅋㅋㅋㅋ 미술은 워낙 문외한이라 그냥 받아만 두고 시작은 안 했는데, 우아.... 너무 기대됩니다.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원서 구입도, 메트 홈페이지 검색도, 실제 관람도 모두 다 제가 따라하고 싶은 항목입니다!!!

그레이스 2024-02-24 13:43   좋아요 0 | URL
^^
저도 제 딸아이 전자책으로 읽었어요.
이 글 올릴때 습관대로 종이책으로 올렸는데, 나중에 알고 고치려고 하니까 수정은 안되더라구요.
전자책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어요.
딸 아이가 메트에 가고 싶다고 하네요.^^ 저도....!^^

고양이라디오 2024-03-13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런닝하면서 전자책 음성지원으로 들었는데 느낌이 안 오더라고요ㅎ 그림과 함께 감상해야 되는 책 같습니다. 다음에 종이책으로 재도전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4-03-13 17:24   좋아요 0 | URL
음성으로는 느낌이 안 올듯요 ^^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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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상실의 슬픔에 깊이 잠겨있는 고백이다. 신의 사랑, 영원한 생의 소망으로 위로받기를 유예하고 깊은 애도의 터널을 통과한다. ‘사랑한다‘는 독백은 죽음에 대한 역설이다. 상실에 대한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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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17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보뱅 책이네요^^

1984Books 대표님은 어쩜 이렇게 보뱅 책들 표지를 우아하게 깔맞춤 하셔서 출간하셨는지
보뱅의 문장과 어울리고, 쎈스가 그냥 아주!!

그레이스 2023-06-17 15:39   좋아요 1 | URL

저도 표지 넘 맘에 들어요~♡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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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글쓰기에 관해 쓴, 시처럼 숨을 멈추게 하는 글들이다. 그 행위는 고독하고 황홀하다. 지나가면 놀이, 사랑처럼 무용한 듯 보이지만 기도처럼 숭고하다.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보려는 욕망에서 시작되어, 타자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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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6-07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자평이 아름답습니다…!!

그레이스 2023-06-07 18: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보뱅의 글이 아름답습니다~♡

자목련 2023-06-08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뱅의 이 책 정말 아름답지요. 그레이스 님의 백자평도 마찬가지고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는 어려워 저는 가슴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그레이스 2023-06-08 10:04   좋아요 1 | URL
미흡하지만 책속에서 인상깊었던 표현들을 기억해서 써봤습니다. 다음은 그리움의 정원에서...
벌써부터 좋네요~♡

레삭매냐 2023-06-13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 작가의 책들 한참 모았는데
다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네요 벌써.

그레이스 2023-06-13 21:12   좋아요 1 | URL
저는 그런 작가들 너무 많아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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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기억에 의존해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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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15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이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라고 하시면
필독서네요!^^*

그레이스 2023-02-15 14:31   좋아요 4 | URL
정말 좋았어요♡
단, 프루스트를 읽기 전보다는 읽는 도중, 아니면 읽고 난 후에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새파랑 2023-02-15 17:08   좋아요 2 | URL
역시 프루스트의 대가들 이십니다~!! 저도 이책 너무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2023-02-15 17:14   좋아요 2 | URL
작가가 기억에 의존해서 강의한거라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를 먼저 언급했지만, 그거야 어떻든 방향이 좋았습니다.^^~♡

서니데이 2023-02-17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책이라서, 책 소개를 읽고 왔어요.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 강의를 한다니, 그것도 기억에 의지해서라니 놀랍네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권수도 많고, 내용도 평이하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17 23:03   좋아요 1 | URL
예~^^
통찰력 있고, 무엇보다 수용소라는 환경에서 실존을 위한 지적행위라는데서 경이롭죠.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yamoo 2023-02-18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라...이건 뭐 구매하라는 압력과 같은 한 줄입니다...으아~~

그레이스 2023-02-18 13:02   좋아요 0 | URL
ㅎㅎ
읽어보시면 아실겁니다.
;;

나무그늘 2023-04-1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권만 읽었는데, 나중에 읽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4-19 18:17   좋아요 0 | URL
잃시찾 1권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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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노트북만 쳐다볼 뿐 글 쓰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다. 어이없고 황당한 죽음들 때문에 비현실감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은 가라앉지가 않는다. 어느새 책을 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밥을 먹어야 살아가듯이 글자를 담아야 할 것처럼. 책은 나의 어지러운 생각을 흡혈하고, 나는 텍스트 안에서 숨을 쉰다.

 

읽은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 다시 펼쳐들게 되었다. 막상 글을 쓰려했을 때, 책을 통해 받았던 긍정적 메시지가 지금 상황과 너무 배치(背馳)되어서 조금 뜸을 들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격하고 즐거운 공감들과 기억들을 불러오기 위해, 손가락은 키보드를 더듬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모임을 하고,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해봤을 경험들을 담고 있어서, 반갑고 감정의 고조를 느꼈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 나와 일치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 차별되는 정말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면 독서를 통한 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저 즐기는 독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공부로,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번역가로,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책을 출간하게 되기까지 공적인 글쓰기로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는 작가의 모습이 부러웠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하고 실천해나가는 성실함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또한 각 장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조언을 하는 마무리에서 작가의 이런 성품이 돋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 좋으면 어느새 나는 전작읽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 역시 그런 경험들을 전작주의자가 되는 법이란 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더구나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를 예로 들어서 2021년에 나쓰메 소세키 전작읽기를 마친 나는 이 부분을 폭식하듯 읽었다. 일어로 읽었다는 작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나름 비평서까지 읽었던 차라 너무 반가웠다. 작가가 인용한 풀베개의 도입부는 새롭게 다가온다. 인용 역시 적재적소라는 게 있고 해석에 따라 빛이 날 수 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28p)

 

이 부분을 나는 어떻게 읽었을까? 삶의 관조에 공감하긴 했지만, 고집을 신념으로 이해하고, 나는 외롭더라도 신념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다녀왔다는 산시로의 연못이 상상 속에서 그려진다.

 

읽다가 포기한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경험도 백퍼센트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전혀 들어오지 않던 책이 문학에서 인용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소개되면, 다시 찾아 들게 되고 이전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내용들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우다. 작가는 나와 디턴에서 소개된 롤랑 바르트였다고 한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땔감이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뽑아드는 동기와 읽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다.

 

글쓰기와 관련된 작가의 경험들을 읽으며, 이쯤 되면 내 경험을 누군가 대신 써주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를 개설하기까지 주저하던 마음들, 그리고 알라딘 서재에 첫 번째 리뷰를 올리던 때를 기억했다. 리뷰를 쓰게 되면서 책 읽는 시간을 뺏기는 것 같은 조급함을 느꼈다. 지금도 사실 읽을 책을 쌓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첫머리를 써놓고 생각이 진전되지 않아서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슬쩍 다른 책을 집어들기도 한다. 주방이나 화장실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잃어버릴까봐 얼른 책상으로 뛰어가 메모를 한다. 왜 항상 생각이 막 떠오를 때는 밥 할 시간인지!^^

 

5년 쯤 전부터 고전읽기 동아리를 만들어서 함께 읽어오고 있다. 작가의 고전을 읽는 법역시 나에게 격한 공감을 하게 한다. 옆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틈틈이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시경이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이거야 말로 독서가들의 경지 아닐까? 책상 위에 쌓아둔 책 더미를 보며 아이들이 엄마 이 책들 다 읽는 거야?”라는 질문을 한다. 가끔 파묻혀서 잊혀지는 책이 있긴 하지만, 이런 독서를 한지 오래 되었다. 나의 조급함때문일까? 이것도 지나친 욕심때문일까? 반문해보지만, 나 말고도 이렇게 하는 독서가들이 많은 것을 알고 나서는 즐기고 있다.

 

이런 독서법이나 책들이 겹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책을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작가의 말에 끄덕이고 나도 그래요라는 속말을 하게 된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책만 읽어도 된다라는 무한 긍정에, 책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도 약간은 갸우뚱 했다. 어차피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하고 살 수 없으니,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책이라면, 책만 읽어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작가가 읽는 책의 폭이라든가, 작가의 활동을 생각해보면 책은 삶을 꽉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독서 치료사 과정을 듣고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활동을 하며, 가끔 이 사람에게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기대보다 더 좋은 반응이 올 때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들은 내가 권하는 책에서 내가 보지 못한 보화를 캐낸다. 작가가 인용한 몽테스키외의 문장을 보며 독서의 치유 효과를 새삼 다시 확인했다.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슬픔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179p)

 

좁은 골목길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을 보며, 공포와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 때문에 힘이 들었다. 그런 나와 누군가를 위해 태그해 놓은 프루스트의 문장을 옮겨본다.

 

독서는 적어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우정이고 그 대상이 죽은 자, 사라진 자라는 점은 사심 없음을 증명하며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하다.”(184p)


사람들이 책처럼 사심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있으므로 그럴 수 없겠지!


나는 작가가 들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의 한쪽 모서리를 잡고 동참하려 한다.


책만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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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2 17:1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틈틈히 읽는 책이 <시경>이라고 하셔서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 책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싶네요. 작가님의 부지런함과 실행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8:18   좋아요 7 | URL
해설이 붙어있고 한자 음과 뜻까지 달려있어서 어렵지 않고 재밌어요.
시대마다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서 그것도 재밌구요
저는 올제에서 나온 시경 읽습니다^^

서곡 2022-11-02 17: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전작읽기에서 박수!!!

그레이스 2022-11-02 17:23   좋아요 4 | URL
저도 반가워서 마음속으로 박수쳤습니다 ^^

서곡 2022-11-02 17:24   좋아요 5 | URL
모나리자님 그레이스님 두분께 다 박수친 것입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8:10   좋아요 4 | URL
^^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1-02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통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는 환희가 정말 좋죠^^

그레이스 2022-11-02 19:18   좋아요 5 | URL
예~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시는 분들과 이런 책들 때문에 힘을 냅니다^^

모나리자 2022-11-02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그레이스님~^^
함께 공감했던 내용이 많으셨군요. 그 자체로도 반갑네요.^^
책 내용 잘 소개해 주시고 그레이스님의 경험담과 함께 어우러져 더 풍성하고 멋진 리뷰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11-02 19:32   좋아요 4 | URL
부족해서 모나리자님 글에는 못미칠것예요.
좋은 책 제공해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11-02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1-02 2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참 행복하게 읽었는데, 뜻밖의 참사로 마음이 어지러워 한동안 글을 못썼네요.
그레이스님의 경험담도 아름답습니다. 저는 오로지 혼자서 책만 읽을 뿐인데 고전읽기모임도 하시고, 독서치료사 과정도 들으시고.... 이곳에는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

그레이스 2022-11-02 22:14   좋아요 2 | URL
제가 쓴 댓글이 어디 갔을까요?
사라졌네요 ㅠ

암튼 저도 훌륭하신 알라디너님들께 많이 배우는 편에 속합니다.~♡

mini74 2022-11-02 21: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했던 고민들도 그레이스님 글에 담겨있어 더 반갑네요 ~ 전 읽다만 책, 북플친구님들이 좋다고 하면 다시 보이고 욕심내게 된다는 ㅎㅎ

그레이스 2022-11-02 22:15   좋아요 4 | URL
저도 그래요.
미니님도 제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이세요.^^

scott 2022-11-02 22:38   좋아요 3 | URL
미니님 고민 저에 고민 🙊

scott 2022-11-02 2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독서 치료사라는 직업도 있었군요 ㅎㅎ
일종의 약사 처럼 독서도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처방전을 주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요즘 각 서점에서 구매 알고리즘 이용해서 북큐레이션 해주는데

저는 항상 무시 하고 있습니다 ^^

그레이스 2022-11-02 22:17   좋아요 4 | URL
그 알고리즘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듯요
저도 무시하는 편이예요
오히려 알라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을 참고하는 편이예요~♡
스콧님 글처럼~♡

새파랑 2022-11-02 22: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완전 공감됩니다~!! 특히 소세키가 너무 반갑더라구요 ^^ 모나리자님 그레이스님 두분다 독서 천재~!!

그레이스 2022-11-02 22:33   좋아요 5 | URL
저는 빼주세요^^
모나리자님이 대단하시죠^^
우리는 나쓰메 소세키로 대동단결인가요? ㅋㅋ

라로 2022-11-03 11: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지 못했어요,, 좋은 리뷰 감사해요.
이렇게 알라딘 분이 쓴 글을 또 다른 알라딘 분이
성실하게 읽고 좋은 리뷰 남겨주는 것 보면
넘 흐뭇합니다!!!^^

그레이스 2022-11-03 16:24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이렇게 리뷰해서 행복했어요~^^

희선 2022-11-06 00: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책추천을... 그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군요 어떤 것 때문인지 말해야겠지만... 저는 그냥 제가 보고 싶은 거 볼게요 아니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읽을 만한 책... 그건 어느 책이든 보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책처럼 사심이 없다면 좋겠다는 말 맞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11-06 08:03   좋아요 4 | URL

사심이 없다면!
세상의 많은 불화와 불행이 사라지겠죠?!

2022-11-06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2022-11-07 09: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화제의 글 맨 위에 떴어요!!
너무 기쁘네요~ㅎ 그레이스님~!!
새 한주도 행복한 책읽기 되세요.^_^

그레이스 2022-11-07 09:50   좋아요 4 | URL
아!
그런가요? 저도 기쁩니다.
제가 화제의 글 메일을 못받고 있어서 몰랐어요.^^
모나리자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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