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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후 본기」에 보면 ‘좌단(左袒)’이란 말이 나온다. 또는 유씨좌단(劉氏左袒)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왼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다', 남의 의견에 찬성하거나 한쪽 편을 들 때를 비유한다. 여태후 죽음 직후 주발, 진평을 중심으로 봉기했다. 이들은 여씨들을 몰아내고 유씨정권을 회복시켰다. 이 정변 와중 병권을 위임받은 주발은 인수를 갖고 진영 문에 들어서 군영에 호소한다.

“여씨를 위하려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를 위하려면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여태후 본기」 401p)”

군영병사들은 전부 왼쪽 어깨를 드러내 유씨를 위할 것임을 나타내고, 유씨 황조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 그렇게 성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문제이다. 그의 아들 경제와 함께 성세를 이뤄 ‘문경지치(문경지치 (文景之治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다스리던 시대의 훌륭한 정치.)’라는 성어를 전한다.

 

여태후는 고조 유방이 죽자 아들 효경제를 황위에 앉히고 후궁들과 황손들을 죽이는 ‘청군측 (淸君側)’을 단행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친정 여가의 사람들을 앉힌다. 여태후는 효혜제가 죽은 후에 두 번이나 왕을 갈아치우며 황권을 행사했다. 이 여태후의 사후에 일어난 정변이다.

왼쪽 어깨를 드러낸다는 행위를 통해 유씨에게 충성할 것을 표하는 데서 오른쪽과 왼쪽을 상징하는 의미-구(舊)와 신(新), 보수와 진보를 의미-가 동서고금이 같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좌파(좌익)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 사건, 프랑스 혁명 직후 의회에도 진보적 공화파 및 혁명파(자코뱅파, 시민 대표 등)들이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했었다. 시간을 거슬러 고대로 올라갈수록 오른 손, 오른 쪽 자리는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두 번째 『사기』 읽기는 중국 지리-그 중 황하, 장강, 위수, 한수, 회하, 제수 등의 강과 항산,태산, 화산, 숭산, 형산의 오악과 산맥들, 관중 땅을 두르고 있는 관문들 한중에서 관중으로 들어가는 길, 강들이 만나는 지점의 요충지 등-를 자세하게 짚어가면서 읽었다. 또한 하, 상, 주로 이어지는 왕들의 계보와 정치제도, 행정구역, 직제, 전쟁들을 긴호흡으로 읽어왔다. 춘추 전국 시대 패자의 나라들과 전국 칠웅, 진나라의 군현제, 초한전쟁 시 유방과 항우의 관중행 경로, 한나라 고조 유방이 공신들과 제후들에게 분배한 봉지와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군현의 범위 등 자세히 볼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각 시대와 인물의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성어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즐거웠다.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성어들이나 정치이념과 문화, 생활 속에 사용된 도량형의 단위까지 익숙한 것이 많아 회원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더구나 ‘기자’나 ‘한4군’과 같은 기록을 볼 때마다 혼란스런 그 맘을 잘 알기에 다른 해석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국가의 개념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진행했다.

이제 본기가 끝났으니 세가와 열전을 이 속도로 하게 되면 1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 이렇게 자세하고 느린 진행이 나에겐 더욱 좋고 도움이 많이 된다. 처음 읽을 때 참고했던 다른 책들에 추가하여 보게 된 책들이 많다.

 

먼저 『춘추 전국 이야기』(1~11권)이다. 삼황오제와 하ㆍ상ㆍ주 시대도 다루고 있다. 특히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황하와 장강, 거기에 합쳐지는 강들과 이 강들 유역에 자리잡은 고대 국가들과 치수가 왕위계승과 밀접하게 관련있음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융족에 기원을 둔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동천 춘추전국시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주나라 황실의 약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권인 11권에서는 초한 쟁패를 다루고 있다. 사기를 읽기 전 쉽게 읽을 수 있고 아주 긴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왕리췬의 ‘사기 강의 시리즈’는 『진시황 강의』, 『항우 강의』, 『한무제』 편이 있다. 저자 소개에는 40여 년간의 연구와 오랜 기간의 강의를 한 『사기』 전문가이다.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CCTV <백가강단>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동영상이 있다. 우리말 더빙이 되어 있어서 오히려 낯설었다. 역시 나에겐 책이 더 좋다. 이 시리즈는 『항우 강의』 편이 제일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듯 보이나, 끈기 있게 배우지 못하는 그의 성품에 비해 배우지 않고도 싸움에 능한 장수로서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천하 제패를 하고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성품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25~30세라는 어린 나이도 유방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듯하다. ‘사면초가’ 밤에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에 절망해서 죽음을 택하는 그의 충동적 성품도 한 몫을 했다. 한마디로 제왕으로서는 자질이 부족했다. 정치적 인간은 아니었던 듯 보인다. 그의 강의 시리즈에 ‘한무제 편’은 있지만, ‘고조 유방 편’이 따로 있지는 않다. 유방은 『항우 강의』에서 함께 다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상상해볼 수 있겠다.

『하버드 중국사 진ㆍ한』은 많은 지도 이미지 자료를 기대했었는데 그보다는 당시의 제도, 문화 생활상 같은 것들을 분야별로 다루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사용할 책으로는 좋다.

 

『서경』이나 『자치통감』 『한서』도 해당하는 부분만을 펼쳐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 중 최고는 만화책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초한지』는 12권으로 되어 있다. 이런 역사 만화는 생각 보다 자세하고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으면서 속도 내서 끊김 없이 읽을 수 있어 전체를 꿰는 데 도움이 된다. 일단 쉬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다.

 

17일 7월에 모처럼 생긴 공휴일에 막내와 함께 cafe-hopping을 하며 이 만화를 읽었다. 백색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들에도 흔들림 없이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머리를 식히면서도 역사의 끊겨진 맥락을 잇는 두 가지 효과를 얻게 된다. 만약 선지식 없이 이 초한지 만화를 읽는다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머리가 더 아파질지도 모르겠다.^^ 사기를 읽는 배경지식을 얻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나의 두 번째 『사기』 읽기 그물망은 더욱 촘촘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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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jfnr 2026-07-2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우 ᆢ 언제 다 읽나요,?
삼국지랑 사기만 전 겨우인데 ~~^^ ^^
‘초한지‘ 만화 탐나네요.

그레이스 2026-07-29 21:27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젠간 다 읽더라구요^^
초한지 만화 잘 썼어요.
 
베를린 함락 1945 ㅣ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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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의 서글픔은 역사가들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이고, "그 심연 앞에서 역사가의 언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발 없는 새』의 주인공 워이커씽은 말한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 역시 같은 한계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봤던 드라마 'COMBAT'-미군 소대원들의 노르망디부터 베를린까지 이르는 전투 여정을 그린-을 기억한다. 대부분 승리로 끝나는 그들의 전투에서 느끼는 안도감과 희열 때문에 다음 회(回)를 기다렸던 어린 나이의 무지를 떠올렸다.

 

전쟁사 역시 이런 한계를 갖고 있다. 연대와 시간으로, 지리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그 당시 그 안에 존재했던 한 사람의 고통을 표현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기록물에는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 회고, 또는 이상주의적 논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에는 전쟁의 현실을 정확하게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환멸을 갖도록 한다.

 

이 책의 차별점은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인간 비극을 관련국의 지도자와 사령부뿐 아니라 일반 병사들과 점령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물리적 심리적 고통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공식 기록물뿐 아니라, 신문, 일기와 비망록, 서신 등을 참고하고 소개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경험해보지 않은 그들의 고통을 상상해보아야 했고, 인간 비극의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없어지는 전쟁의 막바지 기록을 대하며, 인간은 왜 이런 비극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반복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 1945년 3월 30일 슐레지엔 전투에 참여 중인 유겐트 대원들의 얼굴에서 독일의 운명이 보인다. 지친 얼굴의 그들은 패전이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 전쟁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어지는 사진들에서 서쪽으로 탈출하는 독일 여성들, 숲에서 너도밤나무 열매를 줍는 피난민들의 모습, 엘베 강의 파괴된 철교를 건너 미국 점령지로 탈출하는 민간인들. 오데르 강에 다리를 놓기 위해 허리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소련 공병(工兵)의 모습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처칠, 히틀러, 괴벨스, 힘러, 스탈린 등이 등장하는 사진들 보다 이런 광경에 더 시선이 가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전쟁의 실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944년의 베를린은 전쟁을 시작할 당시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다. 부족한 배급과 스트레스로 인해 베를린 시민들은 초췌한 모습이다. 도시에 가득한 패배주의를 없애기 위한 선동과 감시는 소용이 없다. 소련군이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베를린 시민들의 공포는 그들을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모두가 떠날 수 없을 뿐더러, 국가사회주의 정부는 그들을 떠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통제하고 처벌한다. 함락 이후, 폴란드와 동프로이센에서 자행되었다고 들었던 강간과 약탈에 대한 소문은 현실이 되었고, 베를린 시민 특히 여성들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도생의 길을 찾는다. 심지어 그녀들은 점령군 중 한 병사에게 몸을 주고 자신을 다른 군인들로부터 지켜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들이닥칠 군인들에 대한 두려움은 몸이 더럽혀짐으로 인한 수치심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존엄이 짓밟히고 파괴되는 상황에 대한 근원적 공포다. 그녀들의 모습은 마치 원형경기장 안에서 사자에 쫓겨 이리저리 흩어지는 무리처럼 느껴진다. 인간이란 정체성을 주장할 수 없는.

 

동프로이센에서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붉은 군대가 약탈과 강간을 지속적으로 자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먼저 폴란드 수도가 파괴된 모습을 목격한 후에 붉은 군대 내의 폴란드 부대들이 자비심을 잃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눈에 덮인 폐허와 잿더미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88p)”고 제3충격군의 클로치코프 상위는 기록하고 있다. 종군기자 바실리 그로스만 역시 유대인 거주 구역 폐허 아래 몇 구의 시체가 묻혀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기록한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은 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1월 13일 동프로이센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을 때, 정치장교들은 표지판을 세웠다. “제군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90p)” 최종공세를 앞두고 정치장교들은 “복수점수”라는 것을 만든다. “각 연대에서 병사와 장교들을 면담해 ‘히틀러의 짐승들이 저지를 잔혹행위와 약탈과 폭력’과 관련된 사실들을 규명했다. ‘현재 우리는 살해당한 친척 775명, 독일에 노예로 끌려간 친척 999명, 불탄 집 478채, 파괴된 농가 303채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제1 벨라루스] 전선군의 모든 연대에서 ‘복수 회의’가 열렸고 엄청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전선군의 병사들 뿐 아니라 붉은 군대 전체의 병사들이 파시스트 점령군의 극악무도한 만행과 악행을 벌하는 고귀한 복수자들이다.(293p)”

이러한 선전들은 복수심과 증오를 자아내어 병사들을 분발시키는 목적 외에, 그들이 벌이는 약탈과 강간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 연합군의 약탈 역시 “독일 국경을 건너기도 전에 시작되었다.(324p)”

 

베를린 함락은 소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1941년 스탈린그라드를 침공했던 독일에 대한 복수이자, 슬라브인들을 열등 인종으로 취급하며 만행을 저지른 나치에 대한 복수다. 소련에게는 한 가지 숨은 목적이 있다.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에 대항해 원자폭탄을 생산할 우라늄과 핵물리학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베를린 함락이 독일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그 시점에 히틀러의 벙커로 모인 사람들과 그 도시를 탈출하려는 시민들의 대조에서 알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히틀러와 성욕으로 광란의 밤을 보내는 그들에게서 이 전쟁의 성격을 보게 된다. 이성의 작동은 찾아볼 수 없다. 남아있는 것은 육체의 욕망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곧 닥쳐올 최후는 죽음 외에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들의 성적 광란은 강간을 피해 숨어 다니는 베를린 시민의 모습과 대조된다.

 

베를린 시민들은 혼란스런 감정을 느꼈다. 베를린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집 앞에 걸린 흰 깃발이 이 혼란을 대변한다. “1933년에 그렇게 법과 질서를 원했던 이 나라는 역사상 가장 범죄적이고 무책임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그 결과는 그 국민, 무엇보다 동프로이센의 여자와 아이들이 독일이 폴란드와 민간인들에게 가했던 고통과 비슷한 고통에 직면했다는 것이다.(666p)”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승자와 패자가 없는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이 아닌 지도층의 어이없는 판단 실수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을 보며, 전쟁은 정의나 선의 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2차 대전 이후로는 전쟁에 대한 환멸 경험담이 주로 쓰여 왔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유물론적 반전주의자들은 “빛나는 정신적 허울을 벗기고 전쟁의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감각적으로 묘사하기만 하면, 인간이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극한의 경험』 473p)” 그러나 여전히 ‘정신적 사기’에 의해 정의를 위한 전쟁은 계속된다.

 

저자가 인용한 개인의 기록을 통해서도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전쟁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가 전쟁을 한다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나는 전쟁 국가의 일원이 된다. 독일 국가사회주의당이 탄생하고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벌이게 되기까지, 합리주의와 이성을 강조했던 당시 지식인들은 침묵했다. 갈등과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는 항상 있어왔다. 전쟁사를 읽는 것은 침묵을 깨고 그에 동의할 수 없음을 말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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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05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매우 인상깊습니다!

그레이스 2023-10-06 10:03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먹거리와 관련된 미시사(微視史)라고 생각하고 책을 폈으나, 식탁 위에는 세계사가 펼쳐졌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엮어서 쉽고 간단하게 얇은 책으로 펴낼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세 페이지에 걸쳐 적혀있는 65권의 참고문헌 목록이다.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기가 습득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경지.

 

감자로 만든 프렌치프라이나 포테토칩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일랜드 대기근, 거슬러 올라가 유럽에 전해진 경로와 감자 경작을 장려했던 프리드리히2세와 루이16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근현대사가 펼쳐진다.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면 이 책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문단과 문단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인물, 단어들을 건성으로 읽어서는 보화를 캐낼 수 없다. 작가는 음식 미시사를 소재 삼아 중요한 역사지식과 관(觀)의 전달을 의도하고 있다. 실로 밥상머리 교육이다.

 

“너희는 소금 하면 뭐가 떠오르니?(31p)”하고 던지는 화두는 인도의 소금행진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있었던 착취와 전쟁의 역사로 나아간다. 인도의 역사에서 건져 올린 소금의 중요성은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말머리가 된다.

 

후추는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들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중국의 정화를 포함하는 대륙의 발견자들을 식탁 위에 등장 시킨다. 돼지고기는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빵은 유대인의 유월절, 로마의 식사법, 마리 앙투와네트를 소환한다. 앙투와네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에 들어온 초승달 모양의 크루와상은 이슬람국가와 기독교 국가들의 국기 모양의 분류를 보여주는 자상함에까지 이른다. 서민들의 빵 바게트, 앙투와네트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백성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던 앙리4세와 희망적인 경제 청사진을 그렸던 미국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비교는 경제와 관련된 복잡한 변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국을 방문해서 옥수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흐루쇼프의 사진은, “40년 동안이나 공산주의를 실시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잔의 우유나 한 켤레의 구두조차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간에 그 사람은 공산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125p)”라고 했던 인상적인 그의 말과 함께,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엿보게 한다. 이데올로기와 냉전이 가리고 있었던 진실이다. 그리고 덧붙여,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시기, 터키와 쿠바의 미사일 기지로 인해 전쟁의 위기까지 갔던 상황을 폭로한다.

 

바나나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돌, 델몬트, 치키타)이 ‘바나나 리퍼블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벌이고 있는 착취와 폭력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제국주의의 또 다른 형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까지 소환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바나나의 재배, 수확, 포장, 수출, 판매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품의 종류와 가공할 양은 ‘푸드 마일리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칠레와의 FTA로 싼 값에 먹게 된 포도와 관련해서, 아이들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해 찬반토론을 하며, 우리는 주장에 대한 근거의 빈약함을 절감했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책으로부터 얻는 유익이다.

 

미국 독립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차(茶), 영국과 중국의 두 번의 아편전쟁,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1842)’과 ‘텐징 조약(1856)’, ‘난징 조약’의 결과 영국령이 된 홍콩,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된 1997년 홍콩의 반환과 201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해 살피며, 계속해서 토론 주제는 던져진다.

 

지식은 또 다른 지식으로 이어지고 가지 치는 작업을 계속한다. 안다는 것은 그 가지치기 작업과 서로 연결된 이야기들을 글로든 이야기로든 풀어내고 설명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그 지식들로 내가 사는 세계를 통찰하고,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주경철의 『대항해 시대』와 마귈론 투생-사마의 『먹거리의 역사』를 뽑아 책상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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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7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의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안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리뷰를 읽으니 막 끌리네요. ^^

그레이스 2023-02-17 23: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함께 읽고 토론하신 엄마들이 더 좋아하시네요^^

yamoo 2023-02-18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탁위의세계사와 먹거리의 역사...저도 이거 구매했는데, 책이 없어졌어요...ㅜㅜ
개인적으로 음식에 관한 책 중에서 엔날에 출간된 <음식 잡학 사전>이 가장 좋았네요.
정말 식당에서 먹으면서 책 내용에 대해 주절거리면 사람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정말 유익한 책이고 다시 읽어도 역사적 지식으로도 상식으로도 좋은 책입니다. 먹거리의 역사는 이에 비해 너무 밀도가 높아 읽는데 시간이 넘 많이 걸릴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3-02-18 13:03   좋아요 0 | URL
예
저도 먹거리의 역사는 핀셋독서가 될듯요.^^
음식잡학사전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02-18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의 상징이 퍼런색 수탉
이라고 하던데, 그게 앙리 4세
에서 유래된 사정이 있나 봅니
다 ㅋㅋ

바나나의 전 세계 전파에 대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상당
히 흥미로웠던 것으로 기억합
니다.

비건+기후 논쟁에서 육식주의
자 패널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자신의 식탁에 오르는
아보카도 수송비가 기후환경
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
고 강변하던 장면이 떠올랐습
니다.

건전한 소비하기가 날이 갈수
록 어려워지지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3-02-18 19:51   좋아요 1 | URL
예~~
건전한 소비하려면 불편하죠.
그래서 불편한 소비라고도 하구요.
한편 그러한 실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일거란 생각입니다.

바나나 생산하는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사는 자신의 악명높았던 이미지를 포장하기위해 작은 소녀라는 뜻의 치키타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참 알수록 불편해지죠.ㅠ

희선 2023-02-19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에서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나는 거든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처음에는 그런 거 좋아했겠지만... 향신료나 차 커피 이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네요 기후변화로 앞으로 사라질 것도 많은 것 같고... 다른 나라에서 오는 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자 조미료 그런 것에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게 들어가는군요 그 나라에서 나는 걸 제철에 먹는 게 좋다고 하는데...


희선

그레이스 2023-02-19 08:12   좋아요 1 | URL
생존과 욕구, 아주 기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거니까요^^
예, 걱정됩니다;;

희선 2023-03-09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번주 반이 다 갔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3-09 16: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요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3-14 1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두요~
 
만세열전 - 3.1운동의 기획자들.전달자들.실행자들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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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정체성 어딘가에 3·1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공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3월이 되면 만세 운동과 독립선언서에 대해 배웠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로 시작되는 단조의 노래, 곧 불을 뿜을 것 같은 총구 앞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여학생과 군중의 그림, 제암리 학살, 고문 등, 3·1운동은 나에게 고통과 슬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오랜 시간 삼일절은 태극기를 조기(弔旗)로 달아야 할지 헷갈릴 만큼 우울의 정서를 안겨준 기념일이다.


저자는 경찰과 검찰의 심문조서·예심심문조서·공판시말서 등의 기록물을 활용하여, 3·1운동에서 임시정부의 수립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기록물들은 한계를 갖고 있다. 저자도 그것을 인정한다. 고문과 구타로 거짓 자백까지도 받아내려는 일제 공안 당국과 그 자백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피고 사이에서 진실이 가려질 위험이 있다. 저자는 여러 사람의 증언과 역사연구 자료로 걸러내고 메우는 작업을 거쳐 이야기를 복원함으로 우려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1929년 7월, 여운형은 중국 상해에서 사법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심문을 받는다. 10년 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특사로 보내기 위해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그 청원서의 주체로 상해 신한청년당을 조직했음을 진술한다. 이 소식은 선우혁에 의해 이승훈에게 전해지고, 기독교인들은 독립 운동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들의 마음을 지핀 전달자 선우혁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기획자들 심문에서는 민족 대표들의 접촉과 연합의 과정이 진술된다. 그 과정에서 멈칫거림, 결렬 위기, 갈등이 있었다. 선언문 낭독 장소의 변경, 33인 중 친일인명 사전에 오른 변절자들의 수가 반증하듯 지도자들은 약하고 불안했다. 당연히 계획은 완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불완전함을 학생들과 시민들이 메워나갔다. 그들이 또 다른 기획자와 전달자가 되고, 독립운동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가 되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는 그날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3월 5일 2차 만세시위가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경성에서 출발하여 지방 곳곳으로 전단이 뿌려졌다. 이제 심문 기록은 전달자들과 실행자들의 것으로 채워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시위에 가담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일본의 폭정 하에서 일본인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만세 후 다시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조선독립신문》 발행과 같은 매체 운동이다. 이들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각성호회보》를 만들어 배포한 학생 양재순과 노끈장수 김호준의 조합이다. 이들의 도모는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해 5월까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차별과 멸시, 강압과 폭력의 통치가 없었다면 조선인들은 일본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은 공허하다. 제국주의의 태생 자체가 그럴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되었다. 그러면, 3·1 운동에서 건져 올려야 할 정신은 무엇일까를 묻게 된다.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다.


개인은 그 공동체에 스며있는 정서를 공유한다. 나는 ‘각성과 투쟁의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각과 헌법이 3·1운동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지식을 오랜 후에야 받아들였다. 이런 앎은 삼일절에 대한 나의 우울함의 정서를 깨뜨리고 변화시켜 왔다. 이 책의 메시지 역시 나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3월의 정서를 훑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현대사의 장면들은 3·1운동의 유산이고, 그 정신을 더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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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01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삼일운동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한 듯하네요 그저 나라를 잃어서 나를 되찾으려고 한 운동으로만 생각한 듯합니다 그때 내가 살았다면 그런 걸 했을까 하는 생각밖에 못했네요 삼일운동을 했기에 현대에도 불의에 저항했겠습니다 그런 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2-01 09:07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랬고,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싶네요

페넬로페 2023-02-01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명료한 것에 오히려 소홀했어요ㅠㅠ
얼마 전 읽었던 하얼빈도 그랬고요~~

그레이스 2023-02-01 14:31   좋아요 3 | URL
맞아요!
언제부턴가 그랬던것 같아요~
하얼빈은 대출로 읽을까 하고 기다리는데 순서가 안오네요^^

서니데이 2023-02-01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년 3.1절이 공휴일이고, 그리고 신학기가 시작되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 시기는 새해 첫날 같은 느낌이 있어요.
100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기념일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어서인지, 아주 오래된 것 같지 않기도 해요.
3.1절은 해당되지 않지만, 이후의 일들 때문인지 조기를 단 것도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01 21: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컨디션은 회복하셨는지요
모레가 입춘이네요
따뜻한 하루 되세요

거리의화가 2023-02-02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읽었던 책의 리뷰라 반갑네요.
3.1 정신에 의거한 대한민국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저는 매년 3월에는 관련한 신간을 눈여겨보며 읽어왔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신간이 없을 때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올해는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그레이스 2023-02-03 06:36   좋아요 2 | URL
이 책 저는 좋았어요
읽으셨다니 반갑네요.
너무 고통에만 촛점을 맞추지 않아서, 위에 말씀드린 정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레삭매냐 2023-02-03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
에 명백하게 명기되어 있죠.

우리 대한민국은 3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헌법에
이렇게 사실을 꽝! 박아 놓은
선조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
합니다.

다시 한 번 불의가 횡행하는
시절이 씁쓸하네요.

그레이스 2023-02-03 09:16   좋아요 1 | URL
예!
불의가 임계점을 넘으면 항거하게 되죠.
두려워하길 바랄뿐입니다.

서니데이 2023-02-03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벌써 금요일이네요.
따뜻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3-02-03 23:24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
어머님은 쾌차하셨나요?
오늘은 입춘, 주일은 대보름이네요
건강하시고 따뜻하게 보내세요
 

『책만 보는 바보』를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정조 시대와 북학파, 조선의 외교관계, 정조의 정책 등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덕무, 홍대용, 유득공,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백동수, 나이와 신분과 성품과 빈부가 다름에도 함께 어울려 꽃을 피우는 지식인들의 향연! 감동을 공유하기에는 아이들과 나의 격차가 컸다. 애초에 같은 감동 포인트를 찾는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공감하는 지점이 다를 텐데 말이다.

 

아이들의 감상문에는 주로 그들의 신분 때문에 생긴 불공평함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사실 나는 그들이 차례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문물을 접하고 외국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책을 쓰게 된 지점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그들은 그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각자의 연행록과 <열하일기>, <북학의>, <발해고>, <의산문답> 등의 역작을 남긴다. 아직 그렇게 보기에는 채워져야 할 배경지식이 부족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관계를 돌아보고 이들의 관계가 진정한 벗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커서 누군가에게 이런 벗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 이제 이 책을 읽었으니 이 사람들이 쓴 책을 하나씩 읽어볼까?”하고 넌지시 운을 뗀다. “지난번에 읽은 「양반전」과 「허생전」은 박지원의 글이니까, 이번에는 발해고 읽어보자.” 끄덕끄덕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실 내 안에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발해고』가 우리 역사연구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 헤어졌다. 다음 모임, 아이들은 읽긴 했으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읽어 온 게 어딘가! 대견하다.

 

이 책은 유득공과 『발해고』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발해고 본문에서도 「군고(君考)」를 「발해의 역대 임금」으로 「신고(臣考)」를 「발해의 신하들」로 「지리고(地理考)」를 「발해의 지리」와 같이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친절하게 계보나 복식 등의 도표와 사진 그리고 지도들이 들어가 있어 이해를 돕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사이 용어와 배경 설명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유득공은 『발해고』 이전부터 역사와 지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동국지리지』를 읽고 그 감상을 쓴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 나타난다. 말년에 ‘한사군’의 역사에 관한 『사군지』를 집필했다. 북학 사상은 북벌론(北伐論)을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 되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압록강을 넘어선 지역의 역사 인식에서 알 수 있다. 유득공의 사회 개혁과 관련해서 ‘용차론(用車論)’과 ‘축성론(築城論)’을 소개하며, 박제가의 그것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소개한다. 박제가는 급진적이라고 한다면 유득공은 현실을 고려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이런 자세는 그의 고증을 통한 역사 연구에도 나타나 신뢰를 높인다. 『발해고』는 『신당서』를 주요 사료로 사용했고, 그 외의 사료들을 참고했다.

 

『발해고』는 “발해와 고구려의 연계성을 인식하여, 발해와 신라가 양립된 남북국 시대를 한국사 체계에 도입했으며, 역사서술의 유용성을 믿었고, 문헌이 인멸되는 위험을 막고, 연구가 안 된 공백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보궐(補闕)’의 역사서술 방식에 의해 본격적이고도 체계 있게 발해사를 최초로 정리했음을 알 수가 있다.” 당시 사료의 불충분 때문에 잘못된 부분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박제가 서문과 유득공의 서문을 이해하면 이 책을 읽는 의미는 다 얻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박제가의 글은 발해고의 원문에는 없고 그의 『정유집』에 실려 있던 것을 붙인 것이다. 박제가는 연경을 향할 때 지났던 길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상을 적는다. 요동은 천하의 한 모퉁이지만 영웅과 제왕이 일어날 만한 곳이며, 중국의 형세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지만, 고려가 망할 때까지 압록강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신라의 ‘구주오소경’ 안에 갇혀서 한·당·송·명의 흥망을 모르는 선비들을 한탄한다. 그러기에 박학하고 필력이 뛰어난 유득공의 『발해고』가 반갑다.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한다. 발해가 망한 후에 그 유민들이 고려로 들어왔으므로 그들을 통해 발해를 알 수도 있었는데 소홀한 것에 대해 통탄한다. 문헌이 흩어지고 사료가 부족하여 ‘9개의 고(考)’-군고, 신고, 지리고, 직관고, 의장고, 물산고, 국서고, 국어고, 속국고-로 구성했다. “세가(世家)와 전(傳)그리고 지(志)라고 안하고 고라고 한 것은 사서로서 체계를 못 이루었고, 또 감히 사(史)라고 자처하지 못하기 때문”(39p)이라고 하며 서문을 마친다. 이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사체(史體)에 대해 설명하고 싶으나 참았다.

 

아이들에게 ‘인용문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전달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 사료의 신뢰도는 그 저서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발해고』는 당나라의 정사 『신당서』를 주요 사료로 했다.


발해의 왕들에 대한 기록 「군고(君考)」로 시작한다. 본기(本紀)에 해당한다. 진국공은 대조영의 아버지다. 이름은 걸걸중상이고 속말말갈인이고 고구려 유민이다. 중국의 요령성 조양으로 옮겨가 살다가, 측천무후 통치 2년에 반란을 일으키고 말갈의 추장인 걸사비우와 요수를 건너 성을 쌓는다. 측천무후에게 진국공이라는 봉작을 받는다. 걸사비우는 죽고 진국공의 아들 대조영이 고왕이 된다. 이때 국호를 발해라고 한다. 그리고 무왕, 문왕, 폐왕,…, 마지막 왕 인선까지. 당나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와 달리 연호를 독자적으로 쓰고 있다.

 

당나라와 발해의 관계와 관련해서 ‘안사의 난’과 발해가 준 도움을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현종과 양귀비, 안녹산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구려 유민인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활약까지! 발해군왕이다가 대이진때 발해국왕으로 칭호를 바꾸게 된다. 계속 당에는 조공을 보낸다. 발해의 신하들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대문예, 무왕의 아우다. 나중에 당나라로 달아나 현종의 장군이 되었다. 발해의 지도를 펴놓고 오경(상경, 동경, 중경, 서경, 남경)의 위치를 짚어본다. 국서고(발해의 외교문서)에서는 일본에 보낸 친서들을 볼 수 있는데, 중국과는 달리 오히려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발해가 망하고 그들은 정안국으로 명맥을 이었다.

 

모임을 마치며, 아이들은 혼자 읽을 때와 달리 함께 모여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이해가 되었다고 말한다. 세세한 내용은 언제까지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역사연구에 있어서 『발해고』의 의의와 유득공의 업적, 그 가치(특별히 오늘날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으로서)는 잊지 않길 바란다.

 

“자 이제 『열하일기』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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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02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듕귁의 동북공정 너무
싫습니다...

그나저나 발해사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1도 없네요.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예전
발해의 영역이 오날날 우리
나라 땅이면 얼매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2-08-02 14:03   좋아요 3 | URL
위만조선, 한사군, 낙랑군 위치와 관련해서도 이견이 있어서 요동땅과 평양에까지 확실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서괭 2022-08-02 1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아이들이 몇 살이기에 이런 책을 읽나요? 갑자기 저도 열하일기 읽어봐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그레이스 2022-08-02 14:06   좋아요 4 | URL
초등 6학년~중학교1학년이예요
나중에는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낭독으로든, 강독으로든 읽자고 했어요 ^^
합을 맞춘지 2년이 넘어가니 제법 잘들 하고 있어요.

그레이스 2022-08-02 14:36   좋아요 4 | URL
아! 제 아이들은 아니고, 고전독서동아리 회원들 자녀들이예요.
엄마들도 함께 참여해서 함께 읽고 토론해요.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어요^^

독서괭 2022-08-02 16:33   좋아요 5 | URL
ㅎㅎ 그레이스님 자녀가 아닌 것 같다는 짐작은 했습니다~^^ 엄마와 자녀가 함께하는 독서동아리라니 멋지네요~!

거리의화가 2022-08-02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을 왜 읽으셨나 궁금했었습니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웠을텐데 읽었다는 것만으로 대견하네요.
발해라는 이름도 발해의 역사도 한국인들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먼 역사가 되어가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유득공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려 때 발해사를 정리했다면 어땠을까~ 그 이후에는 시기도 지나버리고 발해 땅도 중국으로 넘어가버려서 사료 자체가 망실되었으니ㅜㅜ

그레이스 2022-08-02 14:40   좋아요 4 | URL
그러니까요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사료로 삼은 것들이 대부분 중국의 문헌들이어서,,, 중국은 그저 자신의 변방에 있는 군에 불과한 나라로 인식했기에 충실한 자료가 없었을듯요.ㅠㅠ
그래도 그나마 유득공의 발해고가 이 지역에 대한 역사자료를 남겨놓았지요. 북학파에 대한 학문적 핍박이 거센 상황에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조선상고사에도 이에 대한 글이 있는듯요.

새파랑 2022-08-02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발해 역사는 잘 모르는데 흥미롭네요 ㅋ 전 대조영 밖에 모릅니다만 ㅎㅎ 저 나이때 아이들이 읽다니 대단한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8-02 16:14   좋아요 3 | URL
대씨와 고씨 이렇게 말하면 잘 안와닿는 표정이다가 대조영 얘기하면 알아요! 하면서 반가워하더라구요^^

단발머리 2022-08-02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해역사를 같이 읽는 것도 대견하지만 엄마들과 함께 읽는 토론 모임 너무나 부럽습니다. 제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도 같이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나간건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서요. 그 때 조금만 더 부지런히 준비할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모임 오래오래 좋은 추억 많이 남기시길 바래요!!

그레이스 2022-08-02 17:05   좋아요 2 | URL
예~^^
한 목적으로 오래 가기 쉽지 않죠!
회원들한테 넘 감사하고 있어요.

모나리자 2022-08-02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역사책 독서 삼매경이시군요~
발해의 역사도 꽤 방대하지요. 유익한 시간 되셨겠어요.
8월에도 열정적인 독서와 함께 화이팅 하세요.^^

그레이스 2022-08-02 19:37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화이팅요!
^^

scott 2022-08-03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의 열하일기
초딩 때 넘 재밌게 읽어서 이후 부터 이덕무, 정약용 등등으로 관심을 돌렸어요.

직접 지도를 그리면서 지명을 익혔다가
발해 땅 되찾고 싶을 정도로 안탑깝고

발해 지역 온돌은 분명 우리 문화 ^^

그레이스 2022-08-03 00:42   좋아요 2 | URL
스콧님은 역시 일찍부터 역사에 깨어계셨군요
👍 👍 👍

책읽는나무 2022-08-03 0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울집에도 <발해고> 있는데 말이죠.
저는 홍익출판사껄로 있어요.
아이들도 척척 읽어 오는데 왜 전??
그레이스님이 제게도 숙제를 내주셨음 좋겠어요ㅋㅋㅋ

그레이스 2022-08-03 00:45   좋아요 3 | URL
ㅎㅎ
숙제라기보다 약속^^
아이들 힘들어해요
잘 안읽히는 책은 엄마들이 같이 낭독도 할거예요. 아마
홍익출판사도 좋아요~

수이 2022-08-07 10:19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제 마음!!

mini74 2022-08-03 2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이 중학교때 권장도서 중 하나가 책만 아는 바보얐어요 ㅎㅎ 전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었는데, 저희 아이도 재미있어했어요 그래이스님 *^^* 진정한 벗이 되고싶다는 아이들 마음이 예뻐요 ~

그레이스 2022-08-03 22:29   좋아요 2 | URL
^^
책만 보는 바보,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죠!
7년 전쯤에 제가 성인독서토론 강의 시작할때 첫번째 책이었어요^^
저희 아이 초등5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발해고 읽혔는데,,, 그때 기억이 남는다고 하더라구요^^
읽으면 읽게되고 깨달음은 나중에도 오는듯요

서니데이 2022-08-04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발해에 대해서는 다른 시대보다도 아는 것이 적어요.
한국사 관련 시험 공부를 해도 이 시대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나오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8-05 07:17   좋아요 3 | URL
저도 거기서 거기예요
발해에서 보물잦기 읽은 초등생이 저보다 더 많이 알지도...!^^
오늘도 좋은 하루!

희선 2022-08-05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발해고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유득공은 중국에 갔다 오고 그런 걸 썼군요 그게 지금까지 남아서 다행이다 싶네요 조금 잘못된 게 있다 해도... 다음엔 열하일기를 함께 읽는군요 아이들한테 좋은 경험이 되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8-05 07:16   좋아요 2 | URL
예
그럴거라 믿고 하고 있어요
오늘도 모이는 날이네요
오늘은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입니다 ㅋ
소설이 낫잖아요?ㅋㅋ

서니데이 2022-08-06 2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덥지만, 내일 조금 더 기온이 올라가네요.
다음주에는 비가 많이 올 거라고도 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즐겁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8-06 23:08   좋아요 3 | URL
예
서니데이님도 오늘밤 평안하시길요

파이버 2022-08-11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른인 저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볼때만 스치듯이 접하고 읽기에는 망설여지는 책인데 어린 아이들이 읽는다니 놀랍습니다. 부모님과 자녀가 같이 역사공부를 하다니 정말 뜻깊은 모임이네요!

그레이스 2022-08-12 00:17   좋아요 1 | URL
예 ~
이렇게 끌고 올수 있어서 정말 뿌듯합니다~
코로나때문에 한동안 줌으로 했거든요~
아이들이 오랫동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더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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