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다른 분들이 왜 김홍도에 관한 이런 책을 못내는지 알것 같다. 조선 미술사에서 김홍도 챕터는 대부분 이 책을 인용하고 있는듯. 상세하고 도판이 충분히 담겨있어 이 화가를 공부하기엔 아주 좋은 텍스트다. 다시 출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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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7-01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몇년 전에 오주석님 ‘한국의 미 특강‘이랑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읽었는데 참 좋았던 기억입니다. 김홍도는 이 책이 찐이군요! 절판이라니 안타까워요.. ㅠ

그레이스 2024-07-01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한국미술사 공부하면서 중고책으로 샀어요 ^^
 

메르카데는 투기자다. 주식 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뒀다가 오르기 시작하면 매입자를 속여 되팔아 넘기는 수법으로 돈을 번다. 그의 투기 형태는 오늘날 금융자본주의의 모습과 닮았다. 자신의 경제 상황과 사업 능력을 포장하고 은행과 채권자에게서 끌어온 자본으로 거대한 투기장에서 이익과 자리를 획득한다

 

메르카데 : ……오늘날 하나의 주식은그 실체가 보이지 않더라도 당장 수익이 보장되는 종목이라면 할 만한 거야! 사람들은 미래를 팔아, 불가능한 행운의 꿈을 복권으로 팔 듯이. 그러니까 증권 시장 회합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날 도와주게, 거기서 그 꽉 막힌 속을 뚫어 보세! 이보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은 아주 어렵게 그걸 찾아내, 하지만 노리지 못하면 결코 찾지 못한다네.(194p)”


그가 하는 투기는 현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오늘날에는 그것이 법으로 보호되고, 더 규모가 크고계획적이며, 실물이 아닌 보이지 않는 금융 경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PF는 사업의 미래 가치만으로 수천억원의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이것이 메르카데의 시대로부터 자본주의가 발전해온 방향이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윤리적인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경계들이 존재한다. 메르카데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법과 윤리의 경계들이 서로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메르카데는 채권자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그의 파산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과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드 라 브리브와 딸 쥘리를 결혼시키려는 그의 계획은 그 사회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돈의 권력을 보여준다. 가부장적 계급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나타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결혼은 돈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문명 뒤에 감춰진 야만성이다.

 

셰익스피어는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돈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늙은 것을 젊게만들고, 심지어 문둥병조차 사랑스러워 보이도록만들며,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오게 만든다(아테네의 타이먼43)”고 말한다. 돈의 능력을 저주한 타이먼의 말을 인용하며 맑스는 화폐의 본질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고병권은 화폐, 마법의 사중주에서 이것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의 돈에 대한 예속을 말한다.


메르카데와 그의 친구들은 고도가 다시 돌아오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 고도는 메르카데의 동업자였다. 그는 도망치듯 떠났다. 그후 메르카데는 고도로 인해 이익을 보기도 했다. 그들의 기다림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메르카데는 고도는 전설에 불과하고 허구”, “유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248p) 고도는 갑작스럽게 돌아왔다. 그를 본 사람들은 없지만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고도의 귀향은 그들의 상황을 회복시킨다.

 

한편, 고도는 직접 등장하지 않음으로 이 소설에서 다중적인 상징을 갖고 있다. 고도는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권력)이다. 투기를 하는 그들에게 호황과 불황을 가져오는 알 수 없는 무엇이다. 그 부침은 고도의 도주와 귀향처럼 갑작스럽다. 고도는 캘커타에서 돌아왔다. 이것은 당시 유럽이 식민지로부터 배를 불리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발자크의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발자크는 메르카데의 가정과 그의 딸 쥘리와 가난한 아돌프의 사랑 이야기를 배경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자본주의를 그려가고 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이들처럼 돈이라는 큰 권력 앞에서 굴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힘은 자본주의이다. 또한 메르카데를 속이고 정략결혼을 하려는 드 리 브리브의 욕망은 돈과 언론과 정치가 한몸처럼 묶여 있는 시대의 부조리를 시사하고 있다.


곱세크는 고리대금업자다. 화자는 곱세크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목격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곱세크와 고리오 영감』에서 드 레스토 백작의 가정사를 다루고 있다. 곱세크에게 돈을 빌리는 백작부인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서 담보로 취한 물건들로 방을 가득 채우고 죽어간 곱세크와 같은 인간이 있다. 두 유형 모두 돈의 지배를 받는다. 돈은 그 사람들의 욕망, 거짓을 드러내어 파괴하고 냄새를 풍기게 한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등장하는 당시 모든 인물들이 겪는 문제들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화폐에 새겨진 숫자의 가치를 믿는 믿음, 오늘날로 말하면 통장에 적혀진 숫자와 마그네틱 카드를 판독기에 넣음으로 지불했다는 믿음은 이상하고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이 믿음만으로 무엇을 지불하기도 하고, 내게 이만큼의 재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튼 프리드먼은 모든 화폐제도는 어떤 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허구에 불과한 것을 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듯 그 허구는 쉽게 깨지지는 않는다.

 

화폐는 일종의 허구이다. 왜 우리는 그런 허구적 존재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삶의 조건으로서 그런 허구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왜 우리는 그런 허구적 존재에 지배받고 있는가.(화폐, 마법의 사중주고병권 23p)“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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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6-17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의 곱세크, 빌려서 결국
못 다 읽고 반납한 기억이...

비트코인이 허구라는 건 확실
히 알겠는데...
말씀해 주신 대로 통장에 숫자
로 기록된 무언가가 자신의
자산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
다.

그레이스 2024-06-17 13:09   좋아요 1 | URL
^^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우상이고 고도와 같이 보이지 않는 무엇,,,,
우리는 그것에 사기를 당하기도, 스스로 사기꾼이 되기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곱세크는 스크루지를 연상하게 해요!
 
부닌 단편선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29
이반 부닌 지음, 이상철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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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자체가 러시아어라는 사실만 알아볼 정도로 러시아어에 문맹이다. 아마도 남편이 들여왔을 이 손바닥 보다 작은 책이 러시아어로 된 시집이라는 짐작만 했다. 장식품으로 놓여있던 책의 표지에 우연히 스마트폰 번역기 화면을 갖다 대고서야 И. Бунин이 이반부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집의 제목 Холодная весна』차가운 봄이라고 번역된다. 곧 이 시집의 위치는 몇 안 되는 이반 부닌의 작품들 곁으로 정해졌다. 사실 작품들이라고 말했지만 부닌 단편선아르세니예프의 인생두 권뿐이다. 그 외에는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없기도 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으로 부닌 단편선을 뽑아 읽게 된 나의 사정은 잊었다. 부닌의 명징한 글에 사로잡혔고 복잡한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었다. 이 단편들의 과거의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화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맑고 간결하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를 작가는 시리게 아름답고 깨끗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 러시아라는 배경이 주는 정서도 있을 것이다. 또한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다른 부수적이고 복잡한 사건들이 희미해져 사라진 한 줄기의 선명한 느낌일 테다.

 

이 책은 원래 첫 번째에 위치한 소설의 제목 어두운 가로수길로 출간되었던 단편집에서 선별 수록한 책이라고 한다. 한 가지 주제로 연결되어있는 옴니버스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부닌 단편집의 주제는 지나간 사랑을 기억함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하는 화자들의 생각에 달려있고, 기억하지 않으면 그것은 글이 될 수 없기에 지나간 사랑보다는 지나간 사랑을 기억함이라고 하고 싶다.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화자의 사회, 종교, 문화적 배경과 개인의 상황에 좌우되겠지. 그 총합이 작가의 사유일테고.

 

수록되어있는 작품의 화자들은 대부분 남성이고 상류층이다. 한 작품만이 주인공인 여성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 간다. 남자들이 젊은 시절 사랑한 여인들은 대부분 하녀, 농민의 딸, 가난한 집 출신들이다. 그들은 신분의 격차, 아버지,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한 삶 때문에 그녀들을 떠날 수밖에 없다. 여인들은 남겨진다. 이후 그녀들의 실존적 삶이 불행했음이 당연하지만 화자(혹은 주인공)의 기억만 존재할 뿐이다. 몇 편의 작품에서 해후가 이루어지지만 그녀들의 삶은 발화되지 않기에 남성의 회환만이 남는다. 그 회환은 시적이고 사랑의 기억은 아름답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되돌아보며 그 순간의 선택이 달랐다면 하고 생각한다. 어두운 가로수길의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는 춥고 비오는 어느 가을날 지친 여행길에서 들른 주막에서 사랑했던 나데지다를 만난다. 그녀는 이 주막의 여주인이고, 그가 버리고 떠난 농노 신분의 소녀였다. 그가 떠난 후 그의 아버지가 농노 해방증을 주었다는 말에서 부모의 개입으로 그녀와 헤어져 떠날 수밖에 없던 그의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자신도 불행했다고 용서해달라는 그의 말에 그녀는 무덤에서 시신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한다. 기억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무의미한 시점이다. 기차역을 향하는 그는 자신이 그녀를 선택했더라면 지금처럼 불행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욕망으로 인해 최후를 맞이한 어느 공작의 후회와 교훈의 발라드는 한 편의 전설이다. 기차가 멈춘 곳에서 젊은 시절의 사랑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우울함은 그를 바라보는 부인조차 바깥에 존재하는 타인이 될 수밖에 없다.(루샤) 차가운 가을의 화자는 여성이다.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화자(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쟁이 시작되고, 차가운 가을날 그녀의 약혼자는 전선으로 떠나 한 달 후 전사한다. 그가 떠나기 전 산책길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한 편의 시()이다. 이후 그녀는 결혼하고 피난하고 크림의 내전에서 홀로 남아 조카의 어린 딸을 데리고, 콘스탄티노플, 불가리아, 세르비아, 체코, 벨기에, 파리, 니스 등을 유랑한다.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질문한다. ‘대체 내 삶에 무엇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오직 그 차가운 가을 저녁만이 있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처음 사랑했던 그와의 약속을 기억한다. 단편 전체가 시().

 

모래시계를 뒤집어 모래가 밑으로 흐르면 그 속에 파묻힌 것들이 드러나듯,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기억들은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살 희망을 잃게 만든다. 그 때 어떻게 사랑했는가가 기억하는 현재의 마음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이 저버리거나 때론 어쩔 수 없이 빼앗긴 혹은 떠나버린 사랑, 한 순간 불태우고 버린 범죄와 같은 욕망들을 말하는 화자들에게 판결봉을 두드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왜 여성들은 실존적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남성들은 자신의 과오조차도 아름답게 추억하고 있을까? 그들 사회적 지위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부닌의 소설은 시적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단어, 문장, 그것들이 모여 그리는 풍경 모두 그림이고 시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으며 나의 마음은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으로 향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반 부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더욱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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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5-0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도 이 책을 읽으셨군요. 러시아 특유의 감성 너무 좋습니다 ~!! 전 아르세니예프보다는 부닌 단편집이 더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2024-05-04 17:40   좋아요 1 | URL
아!
전에 새파랑님 리뷰를 본 듯도 하네요.
부닌 단편선 좋아요~
아르세니예프도 좋은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05-0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닌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한두개가 아니지만 ㅎㅎ)
어떤 러시아의 느낌을 줄지 궁금해요^^

그레이스 2024-05-05 17:50   좋아요 2 | URL
ㅎㅎ
읽을 책이 너무 많아요
ㅠㅠ

서니데이 2024-05-07 0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어린이날 연휴 잘 보내셨나요.
작은 크기의 시집은 러시아어 원서로 된 책이군요. 러시아어 배우기가 어렵다는데, 원서 읽을 수 있는 분들 부럽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4-05-07 06:49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러시아어로 문학을 읽는 것 저도 넘 부럽네요.
무슨 언어든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린이가 없어서 어제는 어버이날을 대체했습니다.
비가 계속 오네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자운영 2024-05-14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번역이나 독해는 독서와 똑같이 편리하고 쉬운 일인 시대입니다.

yamoo 2024-05-14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닌 단편선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님의 멋진 리뷰 덕분에 아르셰니에프의 인생을 새롭게 봅니다. 원래 있던 책인데, 그레이스님이 가치를 새롭게 불어넣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05-14 15:4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예요.
작품 하시느라 바쁘셨나봐요.
감사합니다 ~~

젤소민아 2024-06-06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4-06-06 13: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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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소설을 읽는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을 것을 권하겠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항상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있다. 통속과 순문학 사이에서 모호함을 띄며 여러 번 책을 덮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문학에서 많이 마주친 식상한 사건들 속에서 순간순간 빛나는 문장들과 번뜩이는 시선은 들었던 책갈피를 내려놓게 한다.

 

발자크는 부인했다고 하지만(초판 서문에서), 이 소설에는 발자크의 전기()적 사실과 감정이 녹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펠릭스가 지닌 부모로부터의 사랑 결핍은 발자크의 그것과 닮았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에서 이 소설 『골짜기의 백합 속 주인공 펠릭스의 사랑하는 여인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모델이 드 베르니 부인이라고 쓰고 있다. 그녀는 발자크에게 어머니 같은 보호자, 부드러운 안내자, 헌신적인 협조자였고, 그 만남은 이후에도 같은 사랑의 유형을 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편지형식을 띄고 있다. 화자인 펠릭스의 연인 나탈리 드 마네르빌 공작부인의 요구에 대해 지나간 사랑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던 유소년기 에피소드는 어린 나이에 느꼈을 고독과 고통을 가슴 아프도록 공감하게 한다. 청년이 된 그는 법학을 공부하고 고등교육을 받던 도중 파리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투르로 가서 홀로 지내게 된다. 그곳 축제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외로움을 타던 그가 그녀에게 끌림은 모성이 엿보이는 순간의 태도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가 보인 행동은 성에 눈뜬 청년의 충동이었을까? 어쨌든 그 행위로 인해 그는 사랑에 빠진다.

소녀처럼 솜털이 난 목 위로 매끈하게 내려오는 윤기 나는 머릿결, 상상력이 뛰어다니는 산뜻한 오솔길처럼 빗이 그 위에 새긴 흰 선들, 이 모든 것이 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어머니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아이처럼 이 등 위로 달려들어 머리를 부비며 어깨 전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30p)”

 

모르소프 백작은 18세기 대혁명 이후 10년의 망명생활과 10년의 농촌생활로 인해 늙었고 정신적인 병을 얻는다.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트)은 숙모로부터 금욕주의적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출발부터 한쪽의 헌신과 인내가 일방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삶은 백작의 광증과 두 아이들의 병약함으로 인해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펠릭스의 등장은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사건일 수도 있고, 자녀나 남편에게 죄의식을 느낌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학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골짜기의 백합은 이 앙리에트를 가리키는 펠릭스만의 은유이다.

 

유년시절의 상처와 모성에 대한 결핍을 지닌 펠릭스는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트)에게 자연스럽게 끌린다. 앙리에트 역시 자신의 고단함에 공감하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에게서 결핍을 투사하고, 상대방의 상처에 전이되는 사랑의 유형을 본다. 한편, 사랑은 많은 경우 이런 전이와 투사로 시작되는 것을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앙리에트는 펠릭스의 고백을 거절하고 친구 또는 어머니로 대할 것을 요구한다. 펠릭스는 그녀를 성녀와 순교자로 숭배한다. 앙리에트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중세의 기사도를 연상시키는 사랑(252p)”-을 마음에 담고 돌아간 파리 사교계에서 펠릭스는 영국 귀부인 레이디 더들리와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알게 된 앙리에트는 찾아와 변명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펠릭스에게 다정하지만 가혹한 태도로 대한다.

 

상심으로 인해 죽게 된 앙리에트, 죽음이 임박한 그녀를 바라보는 펠릭스의 시선이 안타깝다.

그녀는 더 이상 내 사랑스런 앙리에트도, 고귀하고 거룩한 모르소프 부인도 아니었다. 그것은 보쉬에가 말했던 이름 없는 무엇인가였다. 그것은 허무와 싸우고 있었으며 갈망과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삶으로 하여금 죽음을 상대로 이기적인 맞대결을 하도록 시키고 있었다. (344p)”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인내한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거짓이 아닌 실제의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하는 그녀, “미친 듯한 교태를 부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아연실색하는 펠릭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진심을 보이는 그녀 앞에서 당황하는 그는 누구를 사랑한 것일까? 시몬느 보바르의 2의 성을 떠올린다. 남성의 여성을 향한 숭배적 사랑은 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을 타자로서 신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앙리에트(모르소프 백작 부인)을 향한 펠릭스의 숭배는 그 언어가 자칫 통속으로 읽힐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달빛의 조명을 밝은 두 줄기 굵은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나와, 볼을 타고 얼굴 끝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그 순간에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 마셨다. 남몰래 흘린 눈물, 지쳐 버린 감성, 한결같은 정성, 끊임없는 불안으로 보낸 10년의 세월과 여성의 가장 고귀한 용기가 묻어 있는 그녀의 말들은 내 안에 경건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이것이 사랑의 첫 영성체입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 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성혈을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와 교감하듯이 부인의 영혼과 결합했습니다. 가망 없는 사랑도 행복입니다.” (103p)”

이런 내용들이다.

이런 과잉된 감정과 언어들 때문에 그가 전하려는 고통과 괴로움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발자크에게 실망할 뻔 했다.

 

반전은 에필로그처럼 붙어있는 나탈리의 답장이다. 통속적으로 읽혔던 장황한 문장들과 생각이 발자크가 아닌 펠릭스의 것이 되면서, 발자크의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당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니 …… 당신은 모르소프 부인의 미덕들을 자랑함으로써 레이디 더들리를 상당히 성가시게 하셨고, 영국식 사랑의 기교들을 과시함으로써 백작부인을 많이 아프게 하신 것 같군요. 게다가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는 장점밖에 없는, 저라는 가엾은 여인을 배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앙리에트처럼, 또는 아라벨처럼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신 셈이죠.(382~387p)”

나탈리는 펠릭스가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글쎄……과연 발자크가 펠릭스와 같은 사랑을 하지 않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아니, 부정적이다. 작가는 삶에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글 안에서 넘는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뿐이다.(생의 이면이승우 24p)”

 

발자크는 펠릭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숭배와 같은 사랑의 고백들을 장황하게 펼쳐놓고 독자를 질리게 한 후, 마지막 나탈리의 답장으로 그런 낭만주의 사랑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실천할 수 없고, 잘못이라고 생각해도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이 연민을 자아내는  모순덩어리 인간 발자크는 연인의 비난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치하지 않기에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있다. 이 나탈리 드 마네르빌 공작부인의 답장은 발자크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에필로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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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22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로만 치면 진짜 죽이지 않습니까? ㅎㅎㅎ 열세 살 짜리 꼬마처럼 보이는 스무 살 청년이 모르소프 백작부인한테 홀딱 빠져서 부인의 목을 기습, 입을 맞추었으니, 당시에 양치나 했나, 아이구, 침 냄새 그거 어땠을까요? ㅋㅋㅋㅋ
참 다양하게 잡놈들 많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그레이스 2024-04-22 16:1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그 장면에서 깜놀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적 충동이 마구 뒤섞여 있는것 같기도 해서 안됐기도 하고 그랬어요 ^^

새파랑 2024-04-22 1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는 처음 보는데 재미있어보입니다~!! 게다가 서간문이라니~!!

그레이스님은 진정한 발자크 마니아 이십니다. 발자그레이스~!!

그레이스 2024-04-22 22:04   좋아요 2 | URL
ㅎㅎ
넘 재미있네요
읽어가다보면 서간문인지 잊어버려요,
나탈리를 부르는 돈호법이 나올때 아! 편지 였지... 합니다.

페크pek0501 2024-04-28 1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을 읽다 말았던 것 같아요. 끝까지 읽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4-28 20:22   좋아요 2 | URL
네 ~~^^
끝까지 읽으시면 별점이 하나 올라갈거예요

서곡 2024-05-01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골.백. 읽으면 리뷰 자세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님 오월 잘 보내십시오 ~

그레이스 2024-05-01 13: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곡님도 오월 잘 보내세요

yamoo 2024-05-14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나보군요.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이것두 얼른 읽어야 겠습니다...발자크는 그러고보니 버럴책이 없네요..ㅎㅎ

그레이스 2024-05-14 15:46   좋아요 0 | URL
예~~
재밌어요 ㅎㅎ
 

인간희극에서 정치생활의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이 소설은 당시 역사에 등장했던 많은 정치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재 사건·인물이 창조된 인물과 각색된 사건과 직조되어 있다. 그는 프랑스의 1789년 혁명으로부터 왕정복고 시대를 재창조함으로 대치시키고 고발한다. 고리오 영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외형, 성격, 사회적 지위, 삶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전반부의 많은 양을 차지한다.

 

만들어진 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들의 캐릭터를 반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푸셰와 말랭이다. 말랭은 푸셰의 그림자다. 말랭은 1789년 이래 열두 번째로 섬기게 된 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드 공드르빌 백작으로 신임을 받고 있다. 그의 인생 역전은 푸셰를 닮았다. 조제프 푸셰 역시 혁명의 출발선에서는 미미한 존재였지만 혁명정부와 제정, 왕정복고 시대를 거치며 정치적 입장을 계속 바꿔가면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 시대의 가장 권세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자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특색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조제프 푸셰는 동시대나 후세의 사람들에게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배후에서 조종하며 상황파악이 빠르고 언제든지 승자 편으로 갈아타는 인물이다.

 

수도원의 위선 속에서 자라난 창백한 얼굴의 이 사내는 자신이 속했던 산악당의 비밀과 마침내 그가 끼어드는데 성공한 왕당파의 비밀을 모두 그러쥔 채 인간과 사물과 정치판의 이해관계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연구해 나갔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유용한 충고와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의 기량과 유용성을 증명해 보인 데 만족한 푸셰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삼가면서 만사를 굽어보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했다.(98p)”

 

이 소설의 배후에 푸셰가 있고 사건에 얽혀있는 발자크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말랭이다. 말랭은 푸셰처럼 수많은 얼굴과 그 각각의 얼굴 밑에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48p)”였다.

 

발자크가 또 한사람의 푸셰로서 말랭을 창조한 것은 츠바이크가 말했듯, 모든 저술가들이 푸셰를 저평가할 때 그만은 이 특이한 인물을 높이 보고 연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백작 로랑스 생시뉴와 그녀와 친척인 시뫼즈 후작의 쌍둥이 아들들은 자코뱅파에 의해 가족을 잃고 저택을 잃은 귀족들이다. 나폴레옹 살해 모의에 가담하고, 적극적으로 왕정복고에 참여하는 왕당파 로랑스는 심각한 상황에서 유딧의 면모가 드러나는 상속녀다. 국외로 도피 중이던 시뫼즈형제들은 그녀와 뜻을 함께 한다. 몰래 숨어들어와 나폴레옹을 죽이는데 참여하려고 몰래 국내로 숨어들어와 위기를 만난다. 시뫼즈의 소유지 공드르빌의 관리인이던 미쉬는 혁명의 피바람이 트루아에 불 때 자코뱅 당원 행세를 했다. 나폴레옹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 땅의 관리인이 되면서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을 산다. 하지만 로랑스와 시뫼즈 형제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며 옛 주인의 자녀들을 돕는다.

 

로랑스 생시뉴와 미쉬 중 누가 주인공일까? 이 소설에서 역시 주인공을 한사람으로 좁혀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사건의 대칭점 혹은 여러 지점에서 긴장과 위기와 전환의 국면을 이끌어 간다.

 

미쉬는 초반부부터 그에 대한 인물 설명에서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을 짙게 깔고 등장한다.

앞날을 예견하게 해 주는 관상이 있다. 만약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확히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처형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심지어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이상한 표지가 있다는 것을 라바터와 갈의 과학은 틀림없이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운명은 격렬한 죽음을 맞을 사람들의 얼굴에 그 낙인을 찍어 놓는다!(13p)”

발자크는 왜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그의 최후를 예언하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복선이란 말이 맞지 않을 정도로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고 실제로 그렇게 그는 죽음을 당한다.

 

미쉬는 실제로 이들 귀족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관리인으로 거둬준 옛 주인에 대한 충성심일까? 그보다는 공드르빌 땅에 대한 원시적 욕망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관리인이었지만 공드르빌은 자신이 뿌리내린 곳이고 삶의 터전이었으므로 이 곳을 로랑스나 시뫼즈로부터 빼앗아 소유한 말랭, 그리고 그를 내려보낸 정부는 원수였다. 그는 혁명, 왕당파, 공화파와 같은 정치사상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공드르빌의 소유주가 마리옹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소유주는 국가참사회원 말랭이었다. 발자크는 그 매각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 흐름을 읽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눈에 띈다.

 

시대는 제국의 여명기였다. 오늘날 프랑스 혁명사를 읽는 사람들은 대중의 정치적 사고(思考)가 그 시대의 아주 근접한 사건들 사이에서 얼마나 엄청난 간극을 보였는지 모를 것이다. 격렬한 소요 후에 각자가 느끼는 평화와 안정에 대한 전반적인 필요성이 더없이 심각한 이전 사건들을 완전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역사는 강렬한 새로운 이해관계에 의해 부단히 성숙하여, 신속하게 늙어 갔다. 그리하여 미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아주 단순해진 이 사건의 과거를 추적하지 않았다.(24~25p)”

 

역사는 부단히 성숙하여 신속하게 늙어 갔다는 말은 맹목적으로 끓어올랐다가 피곤함 속에 빠르게 식어버리는 군중들의 심리를 소름끼치게 전달한다.

 

로랑스와 시뫼즈 형제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던 경찰 코랑탱은 덫을 놓고 상원의원 말랭 납치범의 누명을 씌운다. 한 개인의 원한 그 너머 배후에는 말랭과 푸셰, 나폴레옹과 왕정복고를 모의하던 인물들의 암투가 자리한다. 한 개인이 생과 사를 결정하는 사건을 당한 경우, 그것이 국가의 정치적 음모나 격랑에 휩쓸린 것일 때, 그 사람의 무력함과 답답함은 절망적이다.

 

납치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서 당시 프랑스의 사법제도를 자세히 보게 된다. 이런 지점이 발자크의 소설의 뛰어남이기도 하고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법 제도는 급박한 변화만큼이나 계속 수정이 가해지고 있었고 그 아래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별히 미쉬의 재판을 보며, 보게 되는 부조리는 오늘날도 역시 존재하는 것들이다. 군중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고, 공개 재판으로 인해 배심원과 재판장이 군중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불평등한 재판이다.

그가 했든 그의 장인이 했든 간에, 공포 정치 동안 현 내에서 처형된 모든 사람의 목을 자른 인물로 통하는 미쉬야말로 더 없이 어이없는 설화의 대상이 되었다.(244p)”

 

사회가 재판을 창안한 이후로, 사법 당국이 범죄에 맞서 누리는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사회가 무고한 피고인들에게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재판은 쌍방향이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252p)”

 

재판 풍경은 앵무새 죽이기, 나는 고발한다를 오버랩시킨다.

 

재판 방청을 대중에 허용하는 것은 공개성을 내포한다는 사실 그리고 법정 심리의 공개는 과도한 고통을 부과하기 때문에 만약 입법자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면 그런 고통을 부과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프랑스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연설은 언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체로 풍습이 법률보다 더 잔인하다. 풍습이란 사람들의 본성인 것이다. 그러나 법은 한 나라의 이성이다. 이성에 기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풍습은 법을 능가한다.(265p)”

 

납치혐의는 반역죄의 혐의로 확대된다. 실제로 이들이 받는 선고는 사형과 징역 24년이다. 네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 미쉬가 단두대로 향하는 장면은 미쉬의 죽음을 예고했던 처음부분을 소환한다. 그의 죽음 예고는 희생양으로서 죽게 될 운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귀족과 평민의 계급간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나는 미쉬의 생애를 관통하는 혼란한 역사 가운데 희생당한 민중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그렇게 원했던 왕정복고의 시대를 맞이한 로랑스 백작은 열정을 잃은 존재(312p)”였다고 서술한다. 미쉬가 죽고 3명의 청년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아드리엥만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이것이 자신이 그토록 불태웠던 증오의 결과라는 자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열정을 잃은 시점이 어디였을까를 생각했다. 당시 재판이 끝나고 그녀는 미쉬와 청년들의 구명을 위해 예나전투의 전쟁터를 찾아간다. 그녀는 로랑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당한다.

 

성경 속 단어와 이미지 말고는 묘사할 수 없을 군사적 장관 가운데서, 그 엄청난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이 로랑스의 상상력 속에 엄청난 거인의 규모로 부각되었다.(303p)”

 

그가 그렇게 증오했던 나폴레옹이 이 엄청난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거인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미쉬와 청년들의 구명을 위해 탄원한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그녀를 불태우던 증오와 사상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이 때가 그녀가 열정을 잃어버린 시점이다.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 선택이 평범한 일상에서는 그리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푸셰와 같은 인물들이 정치하고,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면 그때 누리는 평화는 평화가 아닐 것이다. 개인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드레퓌스 사건을 바라보며 군중과 민중을 나누었다. 그녀는 군중을 민중의 희화(戱畫)로 보지 않고 군중을 민중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 오류(전체주의의 기원)”라고 한다. 군중은 일차적으로 각 사회계급의 찌꺼기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민중의 올바른 변화를 위하여 궐기할 때 군중은 언제나 <강력한 사람><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함성을 지른다.

 

이 소설은 많은 지점에서 많은 것들을 숙고하게 한다. 프랑스의 혁명으로부터 공화정과 제정과 왕정을 반복하고 급진적인 산악당 혁명가들이 자신들이 돌린 수레바퀴를 멈추지 못하고 쓰러지는 역사를 살펴보게 했다. 그 역사의 부침 속에서 살아남은 푸셰와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소설 속 미쉬와 같은 민중이 있음을 보게 된다. 재판 과정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군중의 모습도 본다. 남는 질문은 …… 나는 군중인가, 민중인가, 지식인인가?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조제프 푸셰' 평전이다. 이 소설에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말랭이라는 분신을 만들어 낸 푸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책이다. 역시 츠바이크의 평전은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명식의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는 프랑스의 혁명사를 참고하기 위해 항상 들춰보는 책이다두 책 모두 개정판이 나와 있다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조제프 푸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갖고 있던 책에 밑줄이랑 표시들을 해놔서 다시 신간을 살까 갈등하는 중이다. 함께 읽을 계획 중인 책이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이다. 발자크 전작읽기가 끝날 때까지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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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3-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하고 그레이스님은 서로 독서 친구라는게 느껴집니다~!! 한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참고독서까지 하시다니~!!

전 ‘푸셰‘가 누구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레이스님은 지식인이십니다~!!

그레이스 2024-03-25 12:45   좋아요 1 | URL
^^
이런 친구를 찬쉐의 책에서는 글벗이라고 번역했더라구요^^
예 ~
동아리를 오래 함께 하다보면 방향도 비슷해지고 참고하는 책들도 같아지는 듯요!
너무 감사한 동행이십니다!
지식인! 감사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아요. 저 역시 군중과 민중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중인듯요.

<조제프 푸셰>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