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희극에서 정치생활의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이 소설은 당시 역사에 등장했던 많은 정치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재 사건·인물이 창조된 인물과 각색된 사건과 직조되어 있다. 그는 프랑스의 1789년 혁명으로부터 왕정복고 시대를 재창조함으로 대치시키고 고발한다. 고리오 영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외형, 성격, 사회적 지위, 삶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전반부의 많은 양을 차지한다.

 

만들어진 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들의 캐릭터를 반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푸셰와 말랭이다. 말랭은 푸셰의 그림자다. 말랭은 1789년 이래 열두 번째로 섬기게 된 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드 공드르빌 백작으로 신임을 받고 있다. 그의 인생 역전은 푸셰를 닮았다. 조제프 푸셰 역시 혁명의 출발선에서는 미미한 존재였지만 혁명정부와 제정, 왕정복고 시대를 거치며 정치적 입장을 계속 바꿔가면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 시대의 가장 권세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자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특색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조제프 푸셰는 동시대나 후세의 사람들에게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배후에서 조종하며 상황파악이 빠르고 언제든지 승자 편으로 갈아타는 인물이다.

 

수도원의 위선 속에서 자라난 창백한 얼굴의 이 사내는 자신이 속했던 산악당의 비밀과 마침내 그가 끼어드는데 성공한 왕당파의 비밀을 모두 그러쥔 채 인간과 사물과 정치판의 이해관계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연구해 나갔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유용한 충고와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의 기량과 유용성을 증명해 보인 데 만족한 푸셰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삼가면서 만사를 굽어보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했다.(98p)”

 

이 소설의 배후에 푸셰가 있고 사건에 얽혀있는 발자크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말랭이다. 말랭은 푸셰처럼 수많은 얼굴과 그 각각의 얼굴 밑에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48p)”였다.

 

발자크가 또 한사람의 푸셰로서 말랭을 창조한 것은 츠바이크가 말했듯, 모든 저술가들이 푸셰를 저평가할 때 그만은 이 특이한 인물을 높이 보고 연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백작 로랑스 생시뉴와 그녀와 친척인 시뫼즈 후작의 쌍둥이 아들들은 자코뱅파에 의해 가족을 잃고 저택을 잃은 귀족들이다. 나폴레옹 살해 모의에 가담하고, 적극적으로 왕정복고에 참여하는 왕당파 로랑스는 심각한 상황에서 유딧의 면모가 드러나는 상속녀다. 국외로 도피 중이던 시뫼즈형제들은 그녀와 뜻을 함께 한다. 몰래 숨어들어와 나폴레옹을 죽이는데 참여하려고 몰래 국내로 숨어들어와 위기를 만난다. 시뫼즈의 소유지 공드르빌의 관리인이던 미쉬는 혁명의 피바람이 트루아에 불 때 자코뱅 당원 행세를 했다. 나폴레옹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 땅의 관리인이 되면서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을 산다. 하지만 로랑스와 시뫼즈 형제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며 옛 주인의 자녀들을 돕는다.

 

로랑스 생시뉴와 미쉬 중 누가 주인공일까? 이 소설에서 역시 주인공을 한사람으로 좁혀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사건의 대칭점 혹은 여러 지점에서 긴장과 위기와 전환의 국면을 이끌어 간다.

 

미쉬는 초반부부터 그에 대한 인물 설명에서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을 짙게 깔고 등장한다.

앞날을 예견하게 해 주는 관상이 있다. 만약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확히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처형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심지어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이상한 표지가 있다는 것을 라바터와 갈의 과학은 틀림없이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운명은 격렬한 죽음을 맞을 사람들의 얼굴에 그 낙인을 찍어 놓는다!(13p)”

발자크는 왜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그의 최후를 예언하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복선이란 말이 맞지 않을 정도로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고 실제로 그렇게 그는 죽음을 당한다.

 

미쉬는 실제로 이들 귀족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관리인으로 거둬준 옛 주인에 대한 충성심일까? 그보다는 공드르빌 땅에 대한 원시적 욕망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관리인이었지만 공드르빌은 자신이 뿌리내린 곳이고 삶의 터전이었으므로 이 곳을 로랑스나 시뫼즈로부터 빼앗아 소유한 말랭, 그리고 그를 내려보낸 정부는 원수였다. 그는 혁명, 왕당파, 공화파와 같은 정치사상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공드르빌의 소유주가 마리옹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소유주는 국가참사회원 말랭이었다. 발자크는 그 매각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 흐름을 읽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눈에 띈다.

 

시대는 제국의 여명기였다. 오늘날 프랑스 혁명사를 읽는 사람들은 대중의 정치적 사고(思考)가 그 시대의 아주 근접한 사건들 사이에서 얼마나 엄청난 간극을 보였는지 모를 것이다. 격렬한 소요 후에 각자가 느끼는 평화와 안정에 대한 전반적인 필요성이 더없이 심각한 이전 사건들을 완전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역사는 강렬한 새로운 이해관계에 의해 부단히 성숙하여, 신속하게 늙어 갔다. 그리하여 미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아주 단순해진 이 사건의 과거를 추적하지 않았다.(24~25p)”

 

역사는 부단히 성숙하여 신속하게 늙어 갔다는 말은 맹목적으로 끓어올랐다가 피곤함 속에 빠르게 식어버리는 군중들의 심리를 소름끼치게 전달한다.

 

로랑스와 시뫼즈 형제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던 경찰 코랑탱은 덫을 놓고 상원의원 말랭 납치범의 누명을 씌운다. 한 개인의 원한 그 너머 배후에는 말랭과 푸셰, 나폴레옹과 왕정복고를 모의하던 인물들의 암투가 자리한다. 한 개인이 생과 사를 결정하는 사건을 당한 경우, 그것이 국가의 정치적 음모나 격랑에 휩쓸린 것일 때, 그 사람의 무력함과 답답함은 절망적이다.

 

납치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서 당시 프랑스의 사법제도를 자세히 보게 된다. 이런 지점이 발자크의 소설의 뛰어남이기도 하고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법 제도는 급박한 변화만큼이나 계속 수정이 가해지고 있었고 그 아래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별히 미쉬의 재판을 보며, 보게 되는 부조리는 오늘날도 역시 존재하는 것들이다. 군중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고, 공개 재판으로 인해 배심원과 재판장이 군중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불평등한 재판이다.

그가 했든 그의 장인이 했든 간에, 공포 정치 동안 현 내에서 처형된 모든 사람의 목을 자른 인물로 통하는 미쉬야말로 더 없이 어이없는 설화의 대상이 되었다.(244p)”

 

사회가 재판을 창안한 이후로, 사법 당국이 범죄에 맞서 누리는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사회가 무고한 피고인들에게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재판은 쌍방향이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252p)”

 

재판 풍경은 앵무새 죽이기, 나는 고발한다를 오버랩시킨다.

 

재판 방청을 대중에 허용하는 것은 공개성을 내포한다는 사실 그리고 법정 심리의 공개는 과도한 고통을 부과하기 때문에 만약 입법자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면 그런 고통을 부과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프랑스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연설은 언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체로 풍습이 법률보다 더 잔인하다. 풍습이란 사람들의 본성인 것이다. 그러나 법은 한 나라의 이성이다. 이성에 기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풍습은 법을 능가한다.(265p)”

 

납치혐의는 반역죄의 혐의로 확대된다. 실제로 이들이 받는 선고는 사형과 징역 24년이다. 네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 미쉬가 단두대로 향하는 장면은 미쉬의 죽음을 예고했던 처음부분을 소환한다. 그의 죽음 예고는 희생양으로서 죽게 될 운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귀족과 평민의 계급간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나는 미쉬의 생애를 관통하는 혼란한 역사 가운데 희생당한 민중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그렇게 원했던 왕정복고의 시대를 맞이한 로랑스 백작은 열정을 잃은 존재(312p)”였다고 서술한다. 미쉬가 죽고 3명의 청년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아드리엥만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이것이 자신이 그토록 불태웠던 증오의 결과라는 자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열정을 잃은 시점이 어디였을까를 생각했다. 당시 재판이 끝나고 그녀는 미쉬와 청년들의 구명을 위해 예나전투의 전쟁터를 찾아간다. 그녀는 로랑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당한다.

 

성경 속 단어와 이미지 말고는 묘사할 수 없을 군사적 장관 가운데서, 그 엄청난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이 로랑스의 상상력 속에 엄청난 거인의 규모로 부각되었다.(303p)”

 

그가 그렇게 증오했던 나폴레옹이 이 엄청난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거인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미쉬와 청년들의 구명을 위해 탄원한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그녀를 불태우던 증오와 사상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이 때가 그녀가 열정을 잃어버린 시점이다.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 선택이 평범한 일상에서는 그리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푸셰와 같은 인물들이 정치하고,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면 그때 누리는 평화는 평화가 아닐 것이다. 개인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드레퓌스 사건을 바라보며 군중과 민중을 나누었다. 그녀는 군중을 민중의 희화(戱畫)로 보지 않고 군중을 민중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 오류(전체주의의 기원)”라고 한다. 군중은 일차적으로 각 사회계급의 찌꺼기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민중의 올바른 변화를 위하여 궐기할 때 군중은 언제나 <강력한 사람><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함성을 지른다.

 

이 소설은 많은 지점에서 많은 것들을 숙고하게 한다. 프랑스의 혁명으로부터 공화정과 제정과 왕정을 반복하고 급진적인 산악당 혁명가들이 자신들이 돌린 수레바퀴를 멈추지 못하고 쓰러지는 역사를 살펴보게 했다. 그 역사의 부침 속에서 살아남은 푸셰와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소설 속 미쉬와 같은 민중이 있음을 보게 된다. 재판 과정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군중의 모습도 본다. 남는 질문은 …… 나는 군중인가, 민중인가, 지식인인가?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조제프 푸셰' 평전이다. 이 소설에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말랭이라는 분신을 만들어 낸 푸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책이다. 역시 츠바이크의 평전은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명식의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는 프랑스의 혁명사를 참고하기 위해 항상 들춰보는 책이다두 책 모두 개정판이 나와 있다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조제프 푸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갖고 있던 책에 밑줄이랑 표시들을 해놔서 다시 신간을 살까 갈등하는 중이다. 함께 읽을 계획 중인 책이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이다. 발자크 전작읽기가 끝날 때까지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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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3-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하고 그레이스님은 서로 독서 친구라는게 느껴집니다~!! 한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참고독서까지 하시다니~!!

전 ‘푸셰‘가 누구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레이스님은 지식인이십니다~!!

그레이스 2024-03-25 12:45   좋아요 1 | URL
^^
이런 친구를 찬쉐의 책에서는 글벗이라고 번역했더라구요^^
예 ~
동아리를 오래 함께 하다보면 방향도 비슷해지고 참고하는 책들도 같아지는 듯요!
너무 감사한 동행이십니다!
지식인! 감사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아요. 저 역시 군중과 민중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중인듯요.

<조제프 푸셰> 강추합니다.
 
격정세계
찬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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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독서와 책을 무림과 무공으로 바꾸면 무협지가 되지 않을까? 독서가들이 유명한 북클럽에서 조우하고, 서로가 고수임을 알아본다. 그들은 이미 독서계에서 소문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삶의 결계(結界)를 깨고 성장한다. 주변 사람들도 독서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이 독서회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마치 도량에만 들어가면 날로 성장하는 무술인이 생각난다.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결계(結界). 정확한 의미를 찾아봤다. 불교용어로, 불도를 수행하는 데 장애를 없애기 위하여 비구의 의식주(衣食住)를 제한하는 일이다. 무협지나 게임에서 사용되는 '결계'는 공격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을 의미한다고 한다. 무협지와 게임에 문외한인 내가 이 단어를 보고 그것을 연상했으니, 그 분야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기질, 환경, 경험에 따라 '결계'들이 있다. 이 '결계'를 풀지 못하면 독서도 일도 때론 사랑도 잘 해내지 못하는 영역이 될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결계'의 의미다.

 

샤오쌍은 비둘기 북클럽에 참석하고 회원들에게 환대를 받는다. 독서계에서 샤오쌍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던 회원들은 그녀의 말에 깊은 감화를 받는다. 샤오쌍을 특별한 소설의 세계로 이끌어준 아저씨가 없었다면 지금의 독서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동창 헤이스는 그녀를 유명한 북클럽에 초대한다. 헤이스는 페이, 리하이와 함께 그 북클럽을 만든 창단 멤버이다.

 

북클럽이 열리는 장소를 찾아 걷는 고서점거리는 해리 포터의 마법 상점 골목을 연상하게 한다.

두 사람이 유유자적 이 골목 저 골목을 빙빙 돌 때 날이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고서가 꽂힌 서가들 사이에 좁은 통로가 있고, 두 사람이 그 통로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다실이 보였다. …… 북클럽 장소로 가는 길에 샤오쌍은 원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혔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예의 그 모습이 나타났다. 탁자 위쪽에 작은 전등이 매달려 있고 탁자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34p, 42~43p)”

 

읽고 있던 XXXX의 골목들이 나타나고, 샤오쌍은 모이는 장소가 바뀌는 북클럽을 찾아 좁은 골목 모퉁이들을 돌고 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찾는다. 그런 그녀에게 자주 걸으면 익숙해질 거야라고 헤이스가 한 말의 내막은 그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삶을 사유하게 한다. 사유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닿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책읽기란 이런 것 아닐까? 책의 내용과 일상이 교차하는 것! 그녀가 마주하는 것은 한 권의 소설이 아니라 사건들이며 그 사건들이 개인적 삶에 계속해서 끼어드는 것이다.

 

……앉아서 XXXX를 다시 펼쳤다. 책을 읽는데 바깥에서 번개가 번쩍번쩍, 천둥이 우르릉 쾅쾅 하늘을 갈랐다. ……이런 독서 분위기는 샤오쌍이 열광하는 것으로, 마음속에서 영감이 번뜩였다. ……빗소리 속에서 사유가 끊임없이 파닥거렸다. 도시를 보았고 통로를 보았으며 군중 속 거대한 동굴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45층 옥상 테라스로 올라갔다. 위쪽 창공을 보면서 속으로 쉼 없이 외쳤다. ‘진짜 높아. , 진짜 높다!’(40~41p)”

 

다의적 표현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동시에 그 은유는 직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환상적이고 초현실적 분위기가 일렁인다. XXXX는 뒷부분에서 지나가듯 한 번 언급되는 파우스트가 아닐까 추측한다.

 

주인공들이 읽고 토론하는 열정과 고양된 감정들은 마치 성적 흥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성적묘사들이 격정적 독서와 교차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샤오쌍, 헤이스, 한마, 페이, 이 아저씨, 샤오마, 차오쯔와 리하이 모두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게 하는 '결계'를 갖고 있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그것을 뛰어넘는다. 특별히 샤오쌍과 페이는 한마 안에 있는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고 격려해준다. 그녀는 자신의 결계를 뚫고 그 에너지로 글을 쓴다. 아마도 한마는 작가 자신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가족들이 책을 읽고, 읽기 시작하면 너무 쉽게 삶이 달라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판타지다.

 

작가 찬쉐에 대한 격찬을 여러 번 읽었고,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하고 있던 터였다. 새 책 출간 소식에 주문하고 보니, 680페이지에 달하는 작가의 제일 두꺼운 소설이었다. 첫 페이지부터 독서가들의 정서가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나 책 두께는 무시할 수 없었다. 바삐 읽어야하는 다른 책들 사이에서 틈틈이 읽었다. 도대체 왜 이런 내용을 이렇게까지 수위를 높여서 쓰는지 의아한 부분들을 겨우 넘기고 완주했다. 이 작가에게 붙는 "중국의 카프카,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수식어에 아직 공감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첫 작품을 잘못 선택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책상 가까이에 오향거리를 두었다.

 

이 소설에서 북클럽 회원들의 책을 읽는 분위기는 나를 묘하게 흥분시킨다. 이런 쾌락에 가까운 나의 독서 경험들을 떠올리게 한다. 몸이 전율하고 진동하는 경험이다. 내가 '책 읽다가 지진 난 것처럼 바닥이 울렁이고 몸이 흔들리는 체험을 해본 적 있냐'고 하면, 지루한 얼굴로 앉아있던 중학생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황당하기도, 궁금하기도 해서인 듯하다. 샤오쌍이 말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어떤 경지로 들어가는 독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순간 어떤 진실을 맞닥뜨리거나 영감에 휩싸이는 순간이다.

 

비둘기 북클럽의 역동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함께 하고 있는 동아리를 떠올린다. 7년이란 세월동안 함께 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난 사람들, 그리고 새롭게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역동적이진 않지만, 나 역시 이 모임을 통해 삶의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가끔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도 있다. 모여서 생각을 나누다보면 그 만남만으로도 생성된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문뜩 이유가 없으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돌아와 또 다음 책을 펼치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 소설의 북클럽 회원들만큼 역동적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 이 소설은 판타지다. 책 몇 권을 읽고 그렇게 쉽게 변한다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과 일상이 교차하고 한 권의 사건들이 삶에 계속해서 끼어들어 반영하고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독서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 과정을 지속한다면, 더디지만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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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4-03-13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시죠? 다른 분 서재에서 타고 넘어와서 간만에 인사드려요. 우연히 왔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 후기이자 책 소개입니다. 저도 얼른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이번 달엔 책을 더 주문하지 않을 것 같지만 세금납부가 끝나는 4/15이후 잔고에 따라 주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4-03-13 08:16   좋아요 1 | URL
^^
예~ 안녕하세요?
세금납부...잔고... 넘 재밌어요.
제 딸 세무사 달력 보면서, 여기는 1년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했는데 ㅋㅋ

읽고 좋으셨으면 합니다.
감사해요

페넬로페 2024-03-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림의 고수인 듯한 독서가들의 활약이 궁금한데요. 결계의 자세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중력의 부족으로 벌써 하산하는 제가 보이네요 ㅠㅠ

그레이스 2024-03-13 09:46   좋아요 1 | URL
ㅎㅎ
책 읽다 졸고 있었습니다.
아직 안되요!ㅠㅠ

잠자냥 2024-03-13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도 신간이라 일단 5별주긴 했지만.... 4점 조금 넘는 별점이라고나 할까..... 판타지라는 말에도 공감해요. ˝도대체 왜 이런 내용을 이렇게까지 수위를 높여서 쓰는지 의아한 부분들을 겨우 넘기고 완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구절도 공감입니다. ㅋㅋㅋㅋㅋ 이렇게까지 길게 쓸 일인가 싶었습니다. 다 사랑에 빠지고 섹...하고 난리도 아님. 휴.

그레이스 2024-03-13 09:48   좋아요 1 | URL
ㅎㅎ
난감했어요
저도 잠자냥님처럼 그 부분이 상징하는게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ㅋㅋ

그레이스 2024-03-13 09:59   좋아요 0 | URL
댓글 보다가 제가 비표준어를 썼다는 깨달음! 수정했습니다. 감사!
의식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용어를 쓰게되네요.

stella.K 2024-03-13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찬쉐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책부터 읽어보라는데요? 600페이지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언제고 한번 도전해 보겠슴다. ㅋ

그레이스 2024-03-13 10:38   좋아요 1 | URL
작가의 이름 ‘잔설‘이 넘 맘에 들어서 관심을 두고 있었죠! 어제 중국 여성분과 대화 중 이 작가를 잘 모르기에 소개해줬더니, 넘 좋아하더라구요. ‘찬쉐‘의 원어민 발음도 들어봤습니다. 노벨문학상 기대 작가란 말에 기분 좋아하더라구요.
시작은 조금 더 얇은 책도 좋을것 같아요.

자성지 2024-03-1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만나는 중국 작가인데 도서관에 있는지 확인하여 읽든지 한 권을 사서 읽든지 해야겠네요. 결계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새기며 독서에 대한 의지를 다집니다.

그레이스 2024-03-13 15:59   좋아요 0 | URL
예~
독서의 의지는 활활 타오르게 될겁니다.
ㅎㅎ

독서괭 2024-03-1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이 글 읽으면서 오 재밌겠는데?? 했다가 나중에 힘들게 완독하셨다는 거 보고 음.. 했네요 ㅎㅎ 그래도 매력적일 것 같긴 합니다. 책으로 사람이 바뀐다는 판타지,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레이스 2024-03-13 16:02   좋아요 1 | URL
판타지라도 품고 있으면 더뎌도 변화는 오겠죠^^
전체 분위기가 뭔지 모르겠지만 약간 들떠 있어요
그래서 격정세계인듯요,,
굳이 성묘사 없어도 될듯!

새파랑 2024-03-14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그레이스님은 독서의 격정세계에 살고 계신거 아닌가요? ㅋ

북클럽을 7년동안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전 낯을 가려서 북클럽은 못할거 같습니다...

찬쉐 한권 정도는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3-14 15:30   좋아요 1 | URL
동아리 회원들을 너무 잘 만나서...저는 그 모임 끝나고 오면 약간 각성되요.
동아리는 책하고 친하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데요?!

구름모모 2024-03-15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4-03-16 08:52   좋아요 0 | URL
예~
즐독하시길

Falstaff 2024-04-19 0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왜 이 리뷰를 읽지 못했을까요? 저도 이 책 읽고 독후감 썼는데, 다른 분들 생각은 어땠을까 싶어서 봤더니 그레이스 님의 리뷰가 있잖아요, ㅋㅋㅋ 제 잡글은 5월 두번째 주에...

그레이스 2024-04-19 08:23   좋아요 1 | URL
ㅎㅎ
올리시면 읽어볼께요
바빠서 저도 북플에 매일 들어오진 못해서 놓치는게 많아요;;
 


- (), 마차(馬車), 청춘의 마지막 눈물에 관하여.

부성애의 화신(化身)을 담은 허름한 관(), 귀족 문장(紋章)으로 장식한 텅빈 마차 두 대의 행렬, 라스티냐크의 오열. 내게 새겨진 이 소설의 이미지다.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혁명과 공포정치 시대에도 사업에 성공한 수완 좋은 사람이었다. 귀족들과 결혼한 두 딸들에게 재산을 다 쏟아주고, 가난하고 병들어 하숙집의 허름한 방에서 죽는다. 딸들은 자신의 욕망에만 몰두해 있다.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마지막까지 다 털어가고, 장례식에 빈마차를 보낸다. 아버지의 관을 딸들이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들의 배은망덕은 레몬을 꽉 짠 다음에 레몬 껍질을 길 모퉁이에 던져 버린 것(민음사 p.108)”과 같다. 이 소설에서 고리오 영감은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부성애(父性愛)의 화신이다. 그가 주인공일까?

 

라스티냐크는 시골에서 올라와 공부하는 법학생이다. 그는 파리의 삶을 통해 자신과 가족들의 가난에 대해 깨닫는다. 성공한 삶을 위해서는 공부해서 법관이 되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 있음을 보고 알게 된다. 다른 남성들이 하듯, 여성 후견인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는 보케르 부인의 하숙에 살고 있다. 이 하숙이 위치한 뇌브생트주느비에브가의 모습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이 배어있는 곳이다. 그들이 사는 방에서는 언어 속에는 명칭이 없는 냄새가 난다. 그것은 고리타분한 냄새, 곰팡이 냄새, 기름 썩는 냄새(을유출판사 p.7~8)이다. 작가는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사용하여 이 거리의 가난을 표현하고 있다.

 

이 하숙은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를 그리고 있다. 2층이 하숙비가 가장 비싸고 위로 올라가면서 허름해지고 하숙비도 싸진다. 2층에는 쿠튀르 부인 빅토린 타유페르, 3층에는 푸아레 노인과 보트랭, 4층에는 미쇼노, 고리오 영감, 으젠 드 라스티냐크, 그리고 다락방에는 이 하숙집에서 일하고 있는 크리스토프와 실비의 방이다. 그들이 이 하숙집에 들어오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2층에서 3층으로 계급이 하락하고 누추해지는 고리오 영감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은 곱지 않다.

 

고리오 영감의 사랑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딸들에게 맹목적이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살인방조를 해서라도 출세하도록 해주겠다고 하며 접근한다. 사회의 부패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데 능란한 사람이다. 그의 정체가 탈옥수임이 밝혀진 후, 그의 유혹에 흔들렸던 라스티냐크는 자신이 굴러 떨어질 뻔한 심연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라스티냐크를 중심으로 고리오 영감과 보트랭이라는 인물을 배치한 것은 라스티냐크의 욕망과 그가 욕망하는 파리 사교계 사람들의 삶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라스티냐크가 주인공이다.

 

라스티냐크는 죽어가는 고리오 영감을 곁에서 돌보고, 장례를 치러준다. 허름한 관에 싣고, 초라한 장례미사를 드리고, 묘지로 향하는 길, 그의 슬픔이 서서히 빌드업 되어 간다. 그 슬픔은 묘지 일꾼들이 요구한 20수를, 그 적은 돈조차 없어서, 하숙에서 일하는 크리스토프에게 빌려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러 폭발한다

 

두 명의 무덤 파는 인부가 관을 덮으려고 몇 삽의 흙을 퍼서 관 위에 던진 다음에, 그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그들 중 하나가 라스티냐크에게 말을 걸면서 팁을 요구했다. 외젠은 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한 푼도 없어서, 크리스토프에게 20수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자체로서는 대수롭지 않은 이 일이 라스티냐크에게 끔찍스러운 슬픔의 발작을 일으켰다. (을유출판사 p.242)”


그 슬픔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라스티냐크가 무덤에서 언덕으로 올라가 파리 시내를 바라보며 이젠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고 한 말은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고”, 성공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결심으로 보인다. 그가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뒤싱겐 부인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추측을 하게 한다.

 

사교계에 목을 매고, 신분 상승을 위해 부유하고 나이 많은 기혼 여성이나 남성을 후원자로 삼는 것이 공공연했던 시대였다. 고리오 영감의 딸들의 부덕(不德)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시대였을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미덕은 변한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존재 윤리는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는 우리 사회에 로쟈나 외젠과 같은 청년들이 많아질까? 하고 걱정한다. 왜 항상 생각의 끄트머리는 같은 지점을 맴도는지.


 

- <인간 희극>에 관하여.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은 자신이 쓴 작품 전체에 <인간희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전집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희극 La comédie Humaine이라는 제목은 단테의 신곡La Divine Comedie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리오 영감에서도 하숙집이 있는 거리 묘사 중,

마치 여행자가 지하 묘지를 구경하러 내려갈 때,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감에 따라, 햇빛은 점차로 줄어들고 안내자의 노래 소리는 굴속 밑으로 빨려 드는 것과도 같다. (고리오 영감을유출판사p.5)”

라고 한 글은 그 자체로 신곡이다.

 

발자크는 이 <인간희극>을 통해 인간유형을 연구하고 그들 또는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여러 작품에 재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다. 발자크가 인물들의 반복 등장이라는 방법을 처음 조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리오 영감부터다.그 책의 초판에서는 23명에 불과했던 재등장하는 인물들의 수가 그 후에 고쳐 쓴 판들에 오면 50명으로 불어난다.

 

방대한 구성, 소개된 환경과 계층의 다양성, 재등장하는 인물들의 수() 등으로 볼 때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작가적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한 단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그의 작품은 상호간의 대립, 구별, 닮은 등의 관계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자연발생적인 변신작용에서 생겨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프랑스 현대 소설사김화영 p.100)”

 

그는 인간 희극[풍속연구 Etude de moeurs], [철학적 연구 Etudes philosophiques], [분석적 연구 Etudes analytiques]로 나누고, [풍속 연구]<사생활의 장면><파리 생활의 장면><정치 생활의 장면><전원 생활의 장면><군대 생활의 장면>이 있다. 고리오 영감은 처음에 <파리 생활의 장면>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는 후에 <사생활의 장면>에 포함시켰다.

이런 방대한 건축물은 미완상태로 남고 말았다.

 

- 번역에 관하여.

민음사 고리오 영감을 읽으면서 흐름이 자꾸 끊어지는 내용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급기야 발자크의 필력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발자크 평전에서 읽은 그의 초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터여서 더 그랬다. 가난한 그는 한동안 돈을 벌기 위해 하룻밤에도 완성할 수 있는, 통속적인 내용의 짜깁기 글을 썼다고 한다. 나중에 작품 활동을 할 때 이것은 그의 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고, 상당부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혹시나 그래서 내가 고리오 영감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민음사 책을 다 읽고 을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으면서 내 의심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술술 읽히는 통에, 시간이 없는데도, 민음사의 같은 부분을 비교 해가며 읽었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부분의 경우를 비교하고 싶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 꼭대기를 향해 몇 걸음 옮겼다. 그리고 그는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불치병자 병원의 둥근 지붕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들어가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있었다. (민음사 p.396)”

 

홀로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의 꼭대기 쪽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가, 센 강 양안을 따라 구불구불 뻗어 있는,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앵발리드의 둥근 지붕 사이, 그가 뚫고 들어가기를 원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거주하는 그곳에 거의 탐욕스럽게 고정되었다. (을유출판사 p.242)“

 

민음사 번역은 어색하게 읽혀지기도 하고, 특별히 앵발리드를 불치병자 병원이라고 번역함으로 번역자가 생각하는 상징적 의미를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앵발리드는 군인들을 위한 병원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이 바스티유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탈취한 곳이기도 하다. “앵발리드의 의미 해석은 독자에게 맡겨야 하지 않았을까?

 

을유출판사의 판본에 관한 붙임을 보면 고리오 영감은 단행본으로 출판되기 네 차례에 걸쳐 연재 되었었고, 발자크는 단행본 초판본에 여러 번 수정을 가했다고 한다. 교열과 수정을 거치고 또한 여러 출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개의 판본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네 번으로 연재되었을 때 붙여졌던 제목들도 나중에 가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민음사 고리오 영감』은 여전히 4부분으로 나뉘어져 소제목들이 붙여져 있다. 판본을 비교하면, 민음사는 La Comédie Humaine(Ed. du seuil, 1965), 을유 출판사는서지 정리 방식으로 상세하게 Honere de Balzac: Le Pere Goriot, in La Comédie Humaine, tome , Bibliotheque de la Pleiade, Gallimard, Paris, 1979.로  적고 있다.

 

이런 거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내가 뭐라고…….’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번역의 차이를 알고 나서, 먼저 읽은 책의 답답함을 경험했던 터라, 고리오 영감을 읽을 서재 분들이 발자크에 실망하지 않길 바라며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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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19 07: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인용하신 부분은 우리말 문장의 격이 다르네요.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4-02-19 07:04   좋아요 2 | URL
그렇죠? 감사합니다!^^

미미 2024-02-19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번역 읽고나서 을유의 것을 읽으니 더 조화롭게 다가와 살짝 심쿵하기까지 했습니다.
발자크가 커피를 엄청나게 마셔서 나중에 죽을때도 그 영향이 컸다고 하던데 초기부터 생계를 위한 워커홀릭이 된 탓이었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04-16 22:05   좋아요 2 | URL
미미님도 그러셨군요.
끝까지 자신은 소설가가 아니라고 하면서, 성공을 위해 글을 쓴 그의 정체성과 천재성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읽어가면서 그에 대한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새파랑 2024-02-2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의 대표작이 <고리오 영감> 인가 봅니다 ㅋ <목로주점> 느낌이 나긴 나네요 ~!! 요즘 북플 대세는 발자크 인가 봅니다~!!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군요... 민음사 번역이 좀 별로였나 봅니다~!! 전 을유로 가지고 있긴 한데 ㅋ

그레이스 2024-02-21 09:31   좋아요 1 | URL
자식 키워봤자...ㅋㅋ
마지막 작품 <사촌퐁스>도 좋다고 하던데, 어쨌든 <인간희극> 방대한 구상 중심에 있는 작품이라고는 합니다.

단발머리 2024-02-24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인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전에 공지영 작가가 손에 꼽는 작품으로 이 <고리오 영감>을 말했습니다. 귀가 얇은 저는 당장 달려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는데, 저는 어렵더라구요. 당최 책장이 안 넘어가서.... 앞쪽 조금 읽고 말았거든요.
그레이스님 리뷰 읽고 나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다, 그런 건전한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그레이스 2024-02-24 13:46   좋아요 2 | URL
을유로 추천합니다.^^
아직 여행 중이신지 아님 돌아오신건지요...?!
단발머리님도 좋은 주말되세요~♡

얄라알라 2024-02-26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그레이스님의 리뷰는 퇴고에 퇴고에 ...정갈하게 가라앉은 말들을 건져낸 듯 합니다.

번역에 따라 그렇게 느낌이 달라지는 거네요.
뭐든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문장문장 찾고 느끼며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는 한 발자크는 영원히

그레이스 2024-02-26 23:09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9월까지는 발자크를 읽으려고 합니다.
번역가들도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네 영원히~~!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다. 그녀가 의지한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었다고 말한다. 클레어 키건의 두 작품 맡겨진 소녀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나는 한 사람이 받아야 할 사랑의 결핍을 채워주는 타인의 친절과 돌봄을 읽었다. 또한 그 사람이 타인에게 되돌려주는 사랑을 보았다. 아주 작고 사소할 지라도, 그 발걸음 혹은 달리기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맡겨진 소녀의 주인공 는 엄마의 출산 때문에 방학 동안 친척 집에 맡겨진다. 에드나 아주머니와 킨셀라 아저씨의 농장이다. “먹을 건 엄청나게 축낼 겁니다.(18p)”라고 말하고 서둘러 일어서는 아빠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과 아이들을 세심하게 양육할 여유 없음이 엿보인다. 어쩌면 가난 때문이 아니라 아빠는 그런 성품의 사람일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다 만족함을 주진 않는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집에서 맛본 시원하고 깨끗한 우물물의 맛을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30p)”이라고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양가적이다. 부모와 떨어진 슬픔, 무례한 아빠의 부재가 주는 안도감, 가난하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세심한 돌봄이 가져다 준 편안함 등의 감정들이 전해온다. 아이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30p)”

 

를 목욕시키는 에드나 아주머니의 손길은 엄마의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것,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24p)”이 있다. 독자도 나중에야 알게 되는 슬픔이다. 아이는 냄새로 맛으로 촉감으로 알아챈다. 집에서의 삶과 아저씨 아주머니 집에서의 삶의 차이, 다른 사람들과 아저씨 아주머니의 차이를 몸으로 느낀다. 그러기에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많아(73p)”라고 하는 아저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안다.

 

농장의 일상과 밤바다의 풍경과 뜻 모를 우편함까지의 달리기는 아름다운 한 컷 한 컷의 영상이 되어 흘러간다. 헤어질 시간이 되고 의 달리기는 말 없는 인사가 되어 이별의 아쉬움, 다정함에 대한 고마움, 그들의 슬픔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몸짓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다. 어머니의 가족들은 그녀의 곤경을 외면했으나,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주인 미시즈 윌슨은 두 모자를 돌봐 주었다. 펄롱은 아이린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의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공허와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딸들은 잘 자라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가족은 괜찮을 것인지 불안해한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전기가 끊긴 추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빚 때문에 차를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혹독한 시기였다.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29p)”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항상 쉼 없이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로 넘어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펄롱은 그가 일하는 석탄 창고에 갇혀 있던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가 근처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미혼모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시설 책임자인 수녀의 태도나 아일린의 충고에 비추어 이 지역에서 수녀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권력에 맞서면 일자리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일랜드에는 수녀회 4개 단체가 운영하는 통칭 막달레나 세탁소10곳이 있었다. 1845년 이래 수녀회가 운영하던 그 세탁소는 매춘여성과 미혼모, 불륜 등 당시 성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이, 법원과 경찰, 사회복지사, 병원, 의회, 성직자, 더러는 가족에 의해 강제로 수용돼 세탁 노동으로 육신의 죄를 씻고 기도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설립 취지나 명분과 달리, 실상은 사뭇 달랐다. 학교 수업을 빼먹은 여학생도, 기차에 무임승차한 여성도, 성당 신부나 가장의 판단에 행실이 단정치 못한, 그래서 남자를 유혹해 타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 여성도 수용됐고, 심지어 강간 피해 여성도 대상이었다. 그들은 입소 직후 수녀회가 부여한 새 이름과 식별 번호로 불리며 감옥과 다름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머리를 깎고 수용복을 입고 침묵의 계율을 준수하며 대화도 삼가야 했다. 가족 방문도 수녀 입회하에 제한적으로만 허용됐고, 편지도 원칙적으로 금지였다. 그들은 아침 5시에 일어나 미사와 식사를 마친 뒤 주 6일 하루 10~12시간씩 세탁과 다림질, 세탁물 포장, 바느질, 자수 등의 강제노동에 임금 없이 동원됐다. 고객은 기업체와 종교시설, 정부부처와 군대, 병원, 학교, 교도소, 의회 등 다양했다. 만일 통제에 저항하거나 규율을 어기면 굶거나 독방에 감금당했고, 장시간 무릎 꿇기와 삭발 등 처벌 외에 언어폭력과 구타도 빈번했다. 그들은, 10대 소녀들도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드물게 벽을 넘거나 세탁물 수거차량에 숨어 탈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에 의해 다시 끌려왔고, 가혹한 처벌을 받은 뒤 수녀회가 운영하는 다른 지역 세탁소로 옮겨졌다.”

(한국일보 철조망 너머, 막달레나 세탁소의 진실2022.10.17 24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315310004852?did=NA)

 

펄롱은 심란하다. 다시 그 창고에 갇힌 세라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119p)”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p)” 하고 질문한다. 그가 세상에 맞서는 방식은 친절이다.

 

펄롱은 자신과 어머니를 구해줬던 미시즈 윌슨의 친절과 격려, 사랑을 기억한다. 이 아이를 데려감으로 치르게 될 대가와 고생을 헤아려 본다.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예상되는 일들에 대해 각오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현대 사회의 복지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자신의 인간다움과 자존심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목수 다니엘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가슴 아프다.

 

나는 다니엘의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연민과 친절함에 주목했다. 자신도 질병으로 인해 수당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두 아이의 엄마인 케이티의 곤경을 보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는 그의 태도에 감동했다. 타인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 돕는 데 있어 그에게는 어떤 장벽도 문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저함이 없고 자연스럽다. 사회복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는 수많은 장벽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가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얼굴로 수치심만을 안기지만, 가난한 다니엘은 누구보다 부유하고 따뜻한 얼굴로 도움을 준다.


시장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에서 미덕을 몰아내고 있고, 돌봄, 친절, 용서와 같은 것조차 돈으로 지불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사랑, 배려, 희생과 같은 것에 더욱 감동한다. 이유는 그 희소성이 높아지는 때문이기도 하고, 그 미덕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에드나, 킨셀라, 미시즈 윌슨, 펄롱,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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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23 0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량이 짧지만 거기에 많은 걸 넣었더라고요. 잃.시.찾과 대조적인 느낌도 받았어요.

그레이스 2024-01-23 07:35   좋아요 2 | URL

짧지만 압축된 내용이 많았고, 메시지도 그렇죠?!
잃시찾^^
갑자기 언제 정리하나 하는 현실자각 중입니다

새파랑 2024-01-23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키건의 책이 핫하네요~!! 전 <맡겨진 소녀>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좀 다를까요?

밑에 영화 포스터를 보니 ‘막시무스‘님이 생각나네요~!!!

그레이스 2024-01-23 11:53   좋아요 1 | URL
^^
취향이 다 다르니까 뭐라 말씀드리기가 그렇긴한데,,, <맡겨진 소녀> 읽고 저는 눈물을 흘렸거든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생각하고 토론할 만한 논제들이 보였구요.

이 영화 강추입니다.
정말 좋았어요.
맞아요 막시무스님 프로필 사진이더라구요!^^

레삭매냐 2024-01-2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엘, 블레이크> 보고서
켄 로치가 켄 로치했구나 싶었습니다.

과연 따듯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시스템인지에 대해 묻게
되더군요.

그레이스 2024-01-23 16:57   좋아요 1 | URL
예~
따뜻한 자본주의는 시스템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의 의지나 양심, 공동체의 미덕에 맡겨져야 할듯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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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소리와 분노에서는 퀜틴이 죽기 전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가 보는 자신의 그림자는 일그러지며 그와 분리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전달한다. 그림자는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가 그림자를 바라보는 심리는 그가 사는 세계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불안과 갈등을 보여준다. ‘존재의 과거형보다 슬픈 말을 찾지 못한 그는 존재의 과거형이 된다.

 

소설 도시와 불확실한 벽에서, 현실 세계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벗어야 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 그림자는 벗겨져 떼어진 채로 도시의 문밖 숲에서 살아가다 힘을 잃고 소멸된다. ‘그림자는 육체일까?, 포크너의 소설에서의 그림자처럼 현실세계에 존재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야기의 진전과 함께 이 소설의 그림자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세계의 17살 소년 16살 소녀를 만나고, 두 사람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그 도시는 구축되어간다. 도시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숲에는 일각수가 살고, 도시로 통하는 유일한 문에는 문지기가 산다. 현실세계의 그녀는 외롭다. 소년 는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비밀세계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다. ‘는 이 현실세계에서 그 소녀를 상실한다.

 

40대가 된 는 그 소녀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도시의 문을 넘어 들어갔다. “그림자를 버리고, ‘꿈 읽는 이로서 눈에 상처를 내고, 두 번 다시 그 문을 넘지 않는다는 암묵의 계약을 맺고(68p).” 그림자를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도시, 그것은 육체로는 들어갈 수 없는 영혼의 세계인 듯 보인다. ‘가 도시를 걷고 탐색하면서 그 도시는 하나의 세계, 형태를 띈 실체로 다가온다.

 

그 도시에 있는 16이란 황동 플레이트가 박혀있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다. 그곳에는 가 현실세계에서 만났던 그녀와 똑같이 생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녀가 일하고 있다. 현실세계의 그녀는, 마지막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자신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고 있는 실체가 벗어버린 그림자이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럼 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가 그녀의 실체일까? 도시의 문지기가 한 말에 비추면, 그림자는 육체이며 그 그림자를 벗어버린 존재, 도시에 살고 있는 존재는 영혼임을 짐작하게 된다.

 

의 그림자는 이 도시에 사는 존재가 그림자이고 바깥세상에 있는 것이 본체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읽어야 할 오래된 꿈은 도시 밖으로 쫓겨난 본체가 남겨 놓은 마음의 잔향이라고 한다. 미처 제거 하지 못한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178p)”등의 마음의 씨앗이라고 한다.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 (The Giver)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오래된 꿈을 읽고 감당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는 숲속 그림자 쉼터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그림자를 찾고, 그들을 막아서는 벽들을 통과해 도시를 빠져나가는 웅덩이 앞에 다다른다. 실체와 그림자,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살아 움직이는 벽은 무엇일까?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도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의식과 마음, 영혼과 육체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들이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 그 둘은 함께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것이 큰 간격을 두고 벌어질 때, 그 벌어진 곳에는 심연이 남는다. 두 세계 사이에 놓인 웅덩이처럼.

 

의 그림자는 웅덩이에 뛰어들어 현실세계로 간다. 그리고 중년의 는 현실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림자에 끌려온 것이라 짐작하는 는 스스로를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직장을 그만두고 Z** 마을의 도서관 관장에 지원해서 간 이유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던 기억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반지하 공간에서 만난 사건들은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영혼과의 대화가 그렇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현실세계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세계다. 도시는 움직임이 없고 말수 적고, 간소하고 정밀하고, 그리고 완결된 장소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래의 의미만을 지니고, 모든 것이 각자 고유의 장소에, 혹은 눈길이 닿는 그 주변에 흔들림이 없이 머물러(53p)” 있는 곳이다. ‘의 현실세계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너무도 많은 의미가 만들어져 흘러넘치는(52p)” 곳이다. 누군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어울리고, 다른 누군가는 현실세계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세계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일까? 독자로서 나는 ‘2에서 현실에서 사람들과 관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는 의 삶에 편안함을 느낀다.

 

전임관장 고야스씨의 영혼이 성경을 빌어 말했듯, 인간이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이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영혼과 몸이 분리된 듯 살아갈 수는 없다. 살아가는 동안,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 보이는 육체와 영혼이 혹은 육체와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을 맛볼 수 있다. 도시의 가 현실세계의 와 하나가 되듯. 고야스씨가 말한 것처럼 본체와 그림자는 원래 표리일체이고,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깊이 침잠해서 육체를 잊은 듯 영혼의 숨만 쉬는 시기가 있을 수도, 육체가 활발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때로 그 영혼을 잊은 듯, 육체를 잊은 듯, 한 쪽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치우쳐 있는 세계에서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 다른 영역의 일에 몰두하는 시기를 만나기도 한다. 어쨌든 두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는 모두 나 자신인 것이다.

 

공간의 왜곡과 축소, 시간의 역행, 그리고 토끼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간 꿈의 세계는 재밌고 흥미진진한 곳만은 아니었다. 위험해보이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원하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소녀를 만나기 위해 들어갔던 그 도시 역시 추위 때문에 일각수들이 죽어가고, 동물들이 먹을 수 없는 사과만 많이 열리는 곳, 유채기름으로 죽은 사체를 태우는 곳, 시계에 바늘이 필요 없는 단조로운 삶이 이어지는, 많은 말을 건넬 필요 없는 그런 곳이다. <노란 잠수함>의 이상향 페퍼랜드가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듯, 꿈과 낙원은 각자의 마음에 있다.

 

그 도시로 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한 소년은 이 현실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는 육체의 일을 잊은 자다. 어쩌면 그런 존재도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대신해 영혼의 영역에 머무는 존재를 의미한다.

 

소년이 그 도시에서 만난 는 누구일까? 그림자에 이끌려 나온 줄 알았던 의 실체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현실세계의 에게 생긴 그림자는 무엇일까? 소설은 명쾌한 답을 주는 공식을 갖고 있지 않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현실 세계, 본체와 분신, 실체와 그림자 등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원론, 마음과 꿈, 평행 세계 등 무엇이 될 수도 있고, 또 무엇이라 규정하기엔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 강줄기가 복잡한 미로가 되어 암흑의 땅속 깊은 곳을 흐르는 것(223p)”처럼 우리의 현실 또한 우리의 내부에서 몇 갈래 길로 나뉘어 나아간다. 현실과 선택지가 얽혀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이 완성된다. 그러기에 인생의 깊숙한 강을 흐르는 불가지성을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소설의 모호함도 그대로 둘 수밖에.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그 이면을 보려는 사람이 있고, “현실은 이것 하나뿐이고 다른 건 없다(223p)”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태반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낸다. 그러나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오른쪽 얼굴(101p)”을 보는 사람은 있다. 노인이 그런 것은 보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말로 비추어, 한 사람의 감춰진 이면의 세계는 드러난 왼쪽 얼굴처럼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읽혔다.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 심연을 보고 읽으려는 자는 작가가 아닐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한 문에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과 의식 사이에 생긴 골을 짐작해본다. 실제 삶에서는 겪지 않을 감정을 향한 문이 열리고 그 문을 닫지 못해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형수를 연기했던 한 영화배우의 고백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의 문을 연다. 작가는 글쓰기를 위해, 독자는 읽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영혼과 마음에 감춰진 심연을 탐험하기 위해 뛰어든다. 끝없는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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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1-02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는 사람은 그림자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림자도 사람한테는 중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림자를 두고 가야 하는 세계... 몸은 두고 영혼만 가는 걸지...

책을 보다 보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곳에서 자신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를... 좀 더 잘 살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 잘 챙기시고 책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4-01-02 09:34   좋아요 1 | URL
빛을 향하면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빛을 등지고 있으면 내 그림자가 보이죠.
또 다른 상징으로서 그림자를 생각해봅니다.

희선님
2023년에는 제가 많이 소원했네요.
새해 건강하시고 좋은 시와 글들 기대합니다.

페넬로페 2024-01-0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완독하고 글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ㅠㅠ
뭔 말을 하려는지 이해는 되는데
그 맥락이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그레이스님!
1등 예약입니다
저에게 약간의 콩고물을~~ㅎㅎ

그레이스 2024-01-02 22:00   좋아요 1 | URL
저도 힘들게 썼습니다^^
아직도 이해 안되는 부분이...
포기할뻔 했는데... 감기때문에 스케쥴 취소하고 여유가 생긴바람에 겨우 썼습니다.

캐모마일 2024-01-02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떨어져도 확신을 가지란 희망을 주었군요.

그레이스 2024-01-02 22:15   좋아요 1 | URL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해서 다양한 적용이 나올듯요^^

레삭매냐 2024-01-1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춘수 샘 책 나올 때마다
팬이 아니라고 하면서고 꾸역꾸역
사서 읽곤 했는데... 이번엔 패스하
게 되었네요.

뭐랄까 사그러져 가는 옛 영광의
잔영이라고나 할까요.

그레이스 2024-01-11 10:00   좋아요 1 | URL
ㅎㅎ
춘수 샘!
저도 그렇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