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라무르(1908~1988)


일단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흥미롭기는 하다. 주로 특정 분야에 대한 공부 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책들이 많다. 특히 '소설가의 공부'라니. 내가 좋아하는 단어 두 개가 하나로 묶여있다. ㅋ 요즘 책값이 비싼 것을 생각하면 저렴한 것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책을 받고 보니 좀 가볍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루이스 라무르는 우리나라엔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책 제목이라고 해도 의심이 많은 나로선 일단 읽어보고 별로다 싶으면 소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재밌다. 미국에선 꽤 저명한 작가인가 본데 우리나라엔 이 책 외엔 번역된 것이 없다는 게 왠지 세계 10위 안에 드는 출판 강국이란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 작가가 읽어 온 책 목록 중 우리나라에도 출판된 책과 겹치는 경우가 별로 많지가 않다. 읽으면서 여러모로 좌절을 안겨 준다. 특히 저자의 지식욕, 독서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이 작가는 주로 역사 소설과 미국의 서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집안이 워낙에 책을 좋아해 어려서부터 늘 책을 가까이하고 살기도 하고.


얼핏 우리나라의 장정일과 황석영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기보단) 정복했다고나 할까. 또한 작가의 지적 탐험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셔 셔 셔... 무한대로 뻗어 나간다. 그게 꼭 황석영을 닮은 듯도 하다. 이 책은 그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갖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육체노동을 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던가 소설(습작)을 썼다고 한다. 사실 작가가 되는 몇 가지 공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거절과 탈락을 밥 먹듯 하는 거다. 그렇게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면 루이스 라무르는 왠지 이 공식은 뛰어넘었을 것 같은데 알짜 없이 이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된다.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이 되지 않은 때라 원고를 꼭 우편을 통해 출판사에 보내곤 했다. 요즘도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랬다고 하니 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그보단 출판사의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 더 짠하게 느껴진다. 나 같으면 두어 번 도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했을 것 같은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놓고 곧바로 그다음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은근과 끈기는 확실히 귀감이 될만하고, 어쩌면 그는 정식 작가가 되기 전부터 그런 식으로 작가의 태도를 견지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라무르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므로 독서는 가히 높은 경지에 올랐고, 그는 무슨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 말미에 '독자의 잘못'에 관해 지적하기도 했다. 그게 좀 눈에 띄어 여기 정리해 옮겨 본다.


첫 번째로, 세상엔 정말 보석 같은 단편소설들이 많은데 그것을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단편소설을 쓰는 일을 보석을 세공하는 일과 같다고 했다. 그는 여러 해에 걸쳐 단편을 읽었으며 또한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좋은 책을 읽을 기회들을 스스로 빼앗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그렇게만 보면 미국이란 나라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책을 안 읽는 나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설마!) 무엇보다 우리나라와 좀 묘하게 반대가 아닌가. 우리나라는 대체로 책을 읽지 않고, 읽는다면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지 않는가.


그 의혹을 뒷받침하듯, 무엇을 읽던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책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오래된 책을 읽지 않는 한 새 책을 읽을 권리도 없다고 하는데, 그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요즘 책만 읽지 말고 고전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역시 고전을 읽지 않고 독서를 감히 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무수한 책이 계속 출판되다 보니 이제는 보이지 않는 옛날 책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했다. 즉 오래된 새 책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아는 고전은 극히 일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사라져갔던 걸까. 우리는 고전과 베스트셀러만 기억할 뿐 그 중간에 낀 책 들이나 아니면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책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출판사나 서점은 독자가 그런 책을 잊지 않도록 기억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라무르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도서관은 엘리트를 위한 수도원이 아니며 보통 사람을 위한 곳으로,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부를 제대로 이용하지 할 줄 모르는 것이라며 그것 또한 독자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도서관 한 곳이 문을 닫는 건 한 도시의 몰락과 맞먹는 거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민을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대신 차지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당장은 나와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건 문자를 발명했고, 그것을 읽을 줄 안다는 거 아닌가. 무지가 인류에게 초래할 걸 생각하면 도서관은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중요한 공공장소는 아닐까. (공공화장실과 더불어. ㅋ)


그런 점에서 나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이건 또 온전히 독자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도서관도 독자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여러 방편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를 들면, 회원증이나 열람증만 만들어 주지 말고 마일리지 제도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또는 아이들의 학교 시간표에 일주일에 한 시간은 꼭 도서관을 들렸다 학교에 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적에 반영시켜보는 건 어떨까. 어쨌든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저자가 지적하지 않은 독자의 잘못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책을 귀하게 다룰 줄 모르는 잘못이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또한 귀하게 다룬다. 하지만 보라. 이 책은 369에서 370 페이지가 뜯겨있다. 이것을 뒤늦게 알고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중고샵에서 구입했다. 분명 이름 모를 어느 독자가 팔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책을 팔 생각을 했을까 의아스럽다. 그렇다고 그나마 중고샵에서 샀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1도 안 든다. 만일 이 책이 별로였다면 조금 떨떠름하다 말았을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중고책이라고 해도 폐지가 되기 전까지 이 책은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괜찮은 책이어서 소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렇게 뜯겨져 나간 이상 소장할 가치가 없어졌다. 더구나 이 사실을 산지 얼마 안 되어 알았다면 당연 반품을 요구했을 텐데 몇 개월이 지난 터라 대략난감하다. 도대체 저 책의 원래 주인은 책을 뜯어 뭐에다 썼을까?


그도 그렇지만 서점 측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항상 책을 팔러 가면 책에 무슨 흠이 없나 늘 매의 눈으로 검열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허술할 줄이야.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그 즉시 제기하지 못한 독자인 나의 게으름도 아주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의 권리는 나 자신에게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독자가 된다는 건 생각 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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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5-28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책장이 찢겨 나가다니요.ㅜ
찢어야만 할 중요한 페이지였던가 봅니다?
암튼 읽어나가시다 좀 황당하셨겠습니다.ㅜㅜ

stella.K 2023-05-29 19:24   좋아요 1 | URL
정말 뒤늦게 알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머리가 어찔하더군요.
중요한 페이지라서 뜯은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상당히 정교하게 찢었을 것 같은데
그냥 되는대로 찢은 것 같더라구요.
팔 때도 정신없이 판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누군지 운이 상당히 좋은 사람 같습니다. ㅎㅎ

moonnight 2023-05-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악-_- 뜯겨나간 페이지라니요@_@; 약간의 흠에도 매입거부하는 알라딘님께서 @_@.;.; 황당하셨겠어요 stella.K님 ㅠㅠ

stella.K 2023-05-29 19:2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거의 새책이어야 매입이 가능한 줄 알고 있는데...
문나잇님도 혹시 중고샵에서 책 사시면 저 같은 일 당하지 않도록
받자마자 잘 확인해 보세요.^^

페크pek0501 2023-05-29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제가 도서관을 가지 않는 이유 : 집에도 못 읽은 책들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
2) 찢어 나간 페이지 : 너무 속상하죠. 이런 책은 소장하기에도 좀... 서점에 가셔서 그 찢겨 나간 페이지를 사진 찍어 베껴 써서 베낀 종이를 그 페이지에 꽂는 방법이 있긴 해요.ㅋㅋ
3) 보석 같은 단편이 많다 : 정말 그래요. 체홉, 서머싯 몸, 모파상, 알퐁스 도데 등 너무 좋은 게 많더라고요. 그런데 단편집은 리뷰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 모든 작품의 내용을 언급해야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몇 작품만 골라 써도 그 줄거리 요약을 몇 개는 해야 되니 그것도 어렵고요. 그게 흠. ㅋㅋ

2023-05-29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9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9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9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3-05-29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악의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런 상태로 중고책을 파는 인간이나
이런 중고책을 판매하는 알라딘 측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확인 못한 스텔라님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사기치고 왜 사기당했냐 묻는 꼴이니까요.
상식이 없는 사회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썩을 인간들~

stella.K 2023-05-30 09:37   좋아요 1 | URL
아, 안되겠습니다. 니르바나님 이리 말씀하시니 아무래도 알라딘에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변상받을 수 있는지. 어쨌든 말이라도 해 봐야죠. 그죠?

니르바나 2023-05-30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만약 알라딘에서 변상 안해주면 문의 진행상황을 중계하세요. 우리 이웃들이 응원할께요.^^

레삭매냐 2023-05-30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파는 책들은 소소한
단점들까지 몽조리 찾아내서
하로 매겨 버리는 검사관들
이 어째서 다른 분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습니
다.

stella.K 2023-05-30 15:16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래요.ㅠ

yamoo 2023-06-02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유출판사...허접한 책도 많아요. 물론 괜춘한 책들도 있긴 합니다만...^^;;
대개는 한번 읽고 버릴 책들...아니면 알맹이가 별로 없는 책들이 많긴합니다. 물론 실험적인 책들을 시도하는 건 좋지만...거기 따른 부작용도 있다는 걸 이 출판사 책들을 보고 알았죠..ㅎㅎ

stella.K 2023-06-03 20:24   좋아요 0 | URL
ㅎㅎ 역시 야무님!
뭐 그렇다면 이 출판사 뿐이겠습니까?
책이 좋고 나쁜 것엔 개인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죠. ㅎ
저 책은 나름 괜찮았어요.
근데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변수로 작용해서 마음이 개운치가 않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