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강명 외 지음 / 북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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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작가들의 앤솔러지 작품집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뭔가 작가들의 활동 패턴이 변화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엔 작가 단독으로 장편이든 작품집을 냈다면, 몇 년 전부터는 계간으로 서너 명의 작가의 단편을 묶어 책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한 가지 소재로 서로 다른 글을 써내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일곱 작가들이 한강 소재로 작품을 썼다. 한강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까 싶었는데 의외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은 '한강'을 두고 어쩌면 이토록이나 장르도 다르고 다채로운 글을 쓸 수 있는지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읽은 소감을 간략하게 적어 보면,

이 책의 첫 번째로 문을 연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이란 작품이다. 장 작가는 주로 사실주의 작품을 써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은 뜻밖에도 판타지다. 나는 판타지나 SF 계열의 작품은 좀 낯설어하는 편이라 이 작품이 단독으로 나왔다면 나의 선택을 비껴갔을지도 모르겠다. 읽으려면 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새삼 앤솔러지가 좋은 건 한 장르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장르가 판타지라 망정이지 실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가 한강에 있다고 생각하면 난 왠지 으스스할 것 같다. 어렸을 땐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이야기가 그렇게 신비롭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인어들과 청새치의 대결이 흥미롭다. 하지만 내가 이쪽으로 상상력이 달려서일까? 읽고 나서 남는 건 별로 관련 없는 안데르센과 헤밍웨이와 생선구이가 생각이 났다. 작가가 열심히 썼을 텐데 좀 미안하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정해연 작가의 '한강이 보이는 집'은 수사 추리물이다. 이런 소설의 재미는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인간 군상과 대리 만족, 전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인물의 반전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 재미 삼아(?) 수사 선상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더럽고 치사하긴 하지만 누가 더 치사한가 베틀을 해 보는 것도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물론 오십 보 백 보지만.

이제 수사에 있어서 CCTV는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됐다. 사생활 침해의 소지는 있지만 이제 이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지 불합리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길거리에 나서기만 해도 1분인지 1초에 140번 찍힌다나 뭐라나. 그러면 마냥 범죄 예방과 분쟁 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을 외치다가도 헛기침 한 번은 내지를 수밖에 없다. 감시 사회다.

임지형 작가의 '한강을 달리는 여자'는 조금은 독특한 소설이다. 작가 자신이 러너이기도 하거니와 주인공 역시 한강을 끊임없이 달리는 러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달리는 동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가 달리게 된 이유는 건강이 안 좋아 수술을 앞두고 체력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달리기 전도사가 된 모양이다. 새삼 부럽다.

이 작품은 인간 간의 부조리한 면을 잘 포착해서 감각 있는 문장으로 잘 다뤘다. 흥미롭게 잘 읽힌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주인공이 한때의 실수로 이혼을 하면서 하나뿐인 어린 아들과의 면접교섭권을 박탈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게 허구인 건지 아니면 실제로 있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왠지 21세기에도 그런 전근대적 가정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게 꼭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러 못 만나게 하는 사람의 완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21세기라고 다 세련되고, 심플하고, 모던한 것만은 아니니까.

차무진 작가의 '귀신은 사람들을 카페로 보낸다'는 재밌다. 일종의 코믹 호러라고나 할까? 나는 공포나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호러라면 백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대상을 자기를 돌봐 줄 어미로 인식을 한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독자는 작가를 어떤 작가로 인식하느냐는 보통 첫 작품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 같다. 나는 공교롭게도 작가의 첫 작품을 호러로 읽은 탓에 당연히 호러 작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호러를 썼을 뿐 전문 작가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렇다면 미안하다. 빨리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이 인식을 상쇄시켜야 할 것 같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박산호 작가의 '달려라, 강태풍'은 내가 가장 많이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주인을 잃은 개가 주인을 찾는 과정을 개의 1인칭 관점에서 썼기 때문이고, 왕년에 반려견을 키워 본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람은 참 이상하지? 자기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에게도 자신의 성을 물려주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서 태풍이는 개의 이름이고 주인의 성이 강 씨라 그렇게 불린다. 우리 집도 그랬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3년쯤 되는 요크셔테리어 수컷 다롱이에게 우리가 김 씨라 그 성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 가끔씩 김다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읽으면 녀석과 그동안 우리가 키웠던 개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우리 집은 소위 개가 잘 되는 (즉 개가 잘 붙어있고 새끼를 쑹덩쑹덩 잘 낳는) 집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게 지금은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개를 키워오면서 마당에서 키웠던 개들은 거의 대부분 집에 잘 붙어있는 척하다가 이내 나가 버렸다. 집안 어른들은 그건 자기가 죽을 때가 돼서 집을 나간 거라고 간단하게 해석을 하곤 했다. 그게 과연 맞는 얘기일까? 추측건대 개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의 본성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고, 예전엔 개 장수가 골목을 돌아다니며 개를 팔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난 그들 또한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도둑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즉 그들에 의해 유괴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견은 확실히 다르다. 얘네들은 태어나는 순간이나 데려오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죽는 것은 슬픈 일이긴 그 개가 자연사를 하는 것이라면 바로 그 집이 진정으로 개가 잘 되는 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세 마리 정도를 그렇게 보내 주었다. 한 마리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였고, 두 마리는 안에서 키웠던 반려견이었다. 그 정도면 타율이 좋은 건가? 개가 잘 되는 집이 되려면 지금도 여전히 키워야 할 것 같은데 보다시피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만 하고 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생명을 키운다는 건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그래서 미쳐야 미친다.

카뮈의 <이방인>은 뫼르소가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주로 의식의 이쪽 면을 다루지만 때로 어떤 작가는 의식의 저쪽 면 즉 무의식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생각이나 망상을 다루기도 한다. 조영주 작가의 '폭염'은 더위 때문에 빚어지는 인간의 망상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우린 그럴 때 흔히 더위 먹었냐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별난 상황을 확대 해석해서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에 인간의 욕망과 허위와 모순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을 미스터리로 풀어가면 금상첨화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정명섭 작가의 '해모수의 의뢰'다.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수사물인데, 근미래를 다룬 SF 물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온 호란 관광용 잠수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한때 유행했던 밀실 추리물이기도 하다. 해모수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의 이름이다. 사람의 동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인간의 대화도 제법 쿵짝을 잘 맞힌다. 마치 인간의 마음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충직하기까지 하다. 이보다 더 좋은 대체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좋은 면을 부각시켰지만, 읽다 보면 우리의 근미래가 가져올 예측 가능한 상황들을 생각할 때 좋다고는 할 수마는 없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의 상용화로 이미 적지 않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물론 편리하고 부리는 입장에선 원가절감이란 특수를 누릴 수도 있지만 그건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아직 로봇에게 심한 윤리적 규제는 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청부살인이나 살상에 대거 투입이 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앞으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람 대신 로봇이 대리전을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재판소에서 로봇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정명섭 작가는 재미있는 스토리에 그럴듯한 인간의 문제를 담았다. 이제는 인간의 문제가 로봇의 문제고, 로봇의 문제가 인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읽어 본 앤솔로지 중 가장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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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2-18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오랜만에 오셔서 일단 반갑습니다!

2025-12-1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5-12-18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어디에 갔다 오셨나요.
오래동안 알라딘서재를 비우셔서 많이 궁금합니다.
전에 니르바나가 활동이 없으면 찾아주셨는데 이번에는 제가 스텔라님 찾았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가 아니고 스텔라님이요.
오래만에 만든 스텔라님표 리뷰를 이 달의 리뷰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스텔라님, 화이팅!

stella.K 2025-12-18 19:55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서재에 소식없을 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 아시겠죠? ㅎㅎ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읍할 다름입니다. 훌쩍~
잘 지내시죠? 앞으로 가끔씩 소식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서재를 비우는 동안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모쪼록 남은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5-12-18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한국에서도 추리나 SF 소설 앤솔로지들이 많이 나와서 장르 소설 애독자 입장에서 매우 기쁘기 한량없네요.
쓰신 글중에서 CCTV와 관련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권의 경우개인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듯한 CCTV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범죄 해결과 예방에 도움이 되는 CCTV설치에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그에 비해 동양의 경우는 워낙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서인지 CCTV설치에 부정적이지 않긴 한데 CCTV를 통해 전 국민을 감시하고 있는 중국의 예를 들자면 서양의 과도한 기피가 전혀 이유가 없다고 할 순 없단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25-12-18 19:59   좋아요 0 | URL
아, 이게 동서양이 다르군요. 솔직히 좀 무섭잖아요.
오늘도 10대 아이들이 20대 정신지체자를 CCTV가 없는 곳으로 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도록 했다고 하더군요. 무서운 세상이어요.ㅠ

카스피님, 앤솔로지 좋아하시는군요.^^

yamoo 2025-12-1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이쿠야! 몇달만이십니까!? ㅎㅎ 리뷰 보니 반갑네요.^^

stella.K 2025-12-18 20: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