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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평점 :
1. 아내라는 직업의 일,
세탁, 청소, 요리, 아이들 돌보기, 잡무 보기(여기서 말하는 잡무란 각종 공과금 밀리지 않게 체크하며 납부하기, 한 달 생활비 예산안 세우고 부족한 금액 충당할 궁리하기,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에 놀라지 않는 방법을 체득하며 배우자와 최대한 협력하기, 친가와 친정 식구들 각종 행사와 기념일 챙기기, 그리고 주워도 주워대도 미친 듯이 떨어져 있는 혹은 옷자락 끝에 달랑달랑 붙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머리카락을 히스테릭하지 않게 집어 들기)등 그 역할은 실로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방대하기까지 한다.
'아내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자에게 늘어놓을라치면 대개 상대 배우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핏대를 세우곤 한다.
" 뭐, 바깥 일은 쉬운줄 알아!(알아..알아..알아.. 여기서 알 수 없는 에코까지 생긴다)
그래 안다. 직장 생활이라는 그 힘겹고 짜증스러운 눈치싸움을. 싫은 사람과 하루종일 부대끼며 일해야 하는 곤욕스러움. 파릇파릇한 어린 후배들의 입사는 모종의 위화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장거리 운전을 진저리나게 싫어하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서 안면근육이 마비되도록 상사에게 미소를 날려야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안다. 과부화 걸린 업무탓에 식어버린 늦은 점심을 씹으며 인생에 대한 회의와 가족이라 줄다리기에서 어느쪽으로도 잡아 당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망가져버린 속은 이미 독이 되었다는 사실과 그 독을 안주삼아 쓰디 쓴 술 한잔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는 사실을.
그래 그런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인 활동이 많은 남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아내들은 많다. 그런데 아내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남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지 가정사에서 일어나는 가사적인 일이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받고 외면받고 손쉽게 생각하며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성이 가사노동에 매주 평균 33시간을 할애하는데도 가사노동은 익히 알려진 국가 생산성 측정수단인 국내 총 생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p276)라는 이야기는 폐부를 깊숙이 찌른다.
2.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
우리 사회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고 여생을 보내는동안 고유의 사생활 영역에 해당되므로 누구도 깊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든 그 역할은 있기 마련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와 가사 노동을 하는 배우자 혹은 가사와 경제활동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배우자와 경제 활동에만 전념하는 배우자가 있다. 문제가되는 지점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배우자의 사회적인 시선은 ' 가치의 인정'에 있고 반대로 가사노동을 하는 배우자가 받는 시선은 '무가치'라는 묵언의 시선이 있으며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을 동시에하고 있는 여성은 "당연함'이라는 인식이 타당할까 하는 점이다. 그 시선의 차이가 가정내 불화음을 만들고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으며 가사노동의 업무가 실로 막중함을 간과하고 있음을 이해해야한다.
너무 유치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끄집어 내야겠다. 앞뒤 다 잘라내고 집안이 평온해야 나라가 평온하다는 말이 눈에 박힌다. 집안이 어지러우니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지는 아니 혼란에 빠졌음을 우리는 누구보다 지금의 경험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가정내의 평화는 경제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아내의 역할로 인해 경제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배우자는 승진과 성취감 인정이라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애너벨 크랩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정되지 않는 가사노동의 전담이 여성들에게 치중된 탓에 경력단절과 독박육아라는 불평등함과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므로써 발생되는 소외감은 " 모든 문제는 가사노동에서 출발한다"는 그녀의 주장이 헛되어 보이지 않는다.
가사노동이 꼭 환산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할때 받던 가치를 기준으로 충분히 잴 수 있다는 애너벨 크랩의 예가 무척 재미있다.
" 예를들어 어떤 여자가 시간당 200달러를 받는 변호사라고 하자. 그러면 그 여자가
청테이프로 칫솔을 붙인 나무주걱과 곰팡이 제거제를 가지고 욕조 뒤 손이 잘안닿는 부분을 청소하는데 쓴 시간을 200달러의 가치를 지녀야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에 대한 시장의 평가이기 때문이다"p279
3. 작은 발걸음이 필요하다.
애너벨 크랩의 이야기대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가정내에서 환산시켜 본다. 그리고 그 가치만큼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고 인정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게 멀리까지 가려면 지금부터 무수한 장벽과 싸워야할터다. 많은 시행착오를 견디고 낱낱이 파헤쳐지는 가정사를 견디며 하하호호 할머니가 될쯤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가사노동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을 인정하면 무엇부터 달라질까를 생각해보면 남성들이 육아젬병이 되는 사회적 구조를 바꿀 수 있을터다. 육아휴직이 퇴직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미숙한 남녀가 만나 사랑의 결실로 이뤄낸 아이를 함께 돌봐야하는 그 마땅한 노동을 이해할 수 있을터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게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일렉트라컴플렉스는 어느 한쪽의 역할만으로 형성될 수 없음을 지금이라도 인식할터다.
또한 가사노동과 여성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영역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경제활동의 영역에서 발생되는 휴식, 휴일, 휴가, 보상, 적절한 동기부여, 새로운 얼굴들과의 신선한 만남(가사노동의 주요 등장인물은 매일 똑같지 않은가?)의 혜택은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경제활동은 직장과 가정이 분리가 되지만, 가사노동에서는 여성과 노동이 전혀 분리되지 않는 구조를 이해할 것이다. 그로인해 각종 히스테릭함에 노출된다는 사실로 여성의 호르몬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아무대나 돌아다니는 젖은 수건(이건 미스테리감이다,, 수건에 발도 달리지 않았는데 정말 집안 곳곳을 누비고 있다) 주워도 주워도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늘 닦아도 늘 그모습인 싱크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양말 한짝의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맞벌이 부부의 생활에서 아내의 역할이 엄청난 업무 과부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사노동과 직장업무가 분리될 수 없는 이중구조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업무중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기 위해 일찍 퇴근해야한다는 남성의 이야기에 눈을 벌겋게 뜰 상사는 없을 것이다.
4. 이 책을 읽은 이유.
애너벨 크랩의 이야기는 모두 옳다. 업무의 과중, 여성이라는 편견에 둘러쌓인 인식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시선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제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책이 모두 옳지는 않았다. 한쪽으로 치중된 예시들. 그녀가 정치계에 몸담고 있던 탓인지 정치계의 예시가 너무 많고 워킹맘에 치중된 이야기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속이 뻥 뚫린 사이다 같은 시원함이 없어 아쉽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므로써 여성 공무원들이 결혼과 동시에 연방기관에서 퇴직해야 한다는 49조 2항이 있던 1800년대에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하게 된다. 또한 우리 앞세대를 살았던 어머니들의 애환의 삶(밭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는 흔하고 흔했던 시대의)에서 벗어나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내 이후의 세대들은 그 세대에 태어난걸 축복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러므로 작은 발걸음의 시작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책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그러니 지금 바로 책을 집어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