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곡
11곡은 단테가 지옥의 전체 구조를 직접 설명해 주고 있다. 지난번 스타디 과제 때에 대부분이 '디스'를 조금 혼동하는 것 같아서, 이번 스타디 때는 마침 11곡의 내용도 그렇고 해서, 직접 지옥의 구조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는 마거릿 버트하임의 구조도를 조금 변경해 그렸다.
지옥은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9가지 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리의 입구마다 지키는 괴물(괴수)들이 있긴 하지만, 죄의 종류가 질적으로 변할 때는 그보다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은 지옥문이다. 단테의 순례 길에는 이미 지옥문이 열려 있었는데, 이 문은 예수님이 림보의 맑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와 저항하는 악마들을 물리칠 때 쳐부순 이후 열려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아케론강이다. 죄 많은 영혼들은 사공 카론의 배로 이 강을 건너 지옥 안으로 들어간다.
아홉 개의 지옥 고리는 죄의 질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욕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지은 부절제의 죄는 위쪽 고리들 즉 상옥에, 사악한 의도에 따라 저지른 이성적 죄는 아래쪽 고리들 즉 하옥에 갇힌다. 상옥과 하옥 사이에는 디스라는 도시의 성벽이 있다.
성벽을 기준으로 보면 상옥은 성 밖이고, 하옥은 성 안이다. 디스는 1곡부터 16곡까지 몇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달라서 혼동을 주기 쉽다. 디스는 무엇일까?
디스는 8곡 67행에서 69행 사이에 처음 나온다.
선한 선생님이 말했다. "아들아!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과 악마들이 사는
디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옮긴이 주를 보면 디스는 루키페르 그 자체나 그가 자리 잡고 있는 지옥의 맨 밑바닥이다. 69행에 보면 디스는 도시이니, 이 도시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
8곡 76행에서 81행까지는 디스 도시에 대한 묘사다.
우리는 마침내 이 불행한 도시를 둘러싼
깊은 해자에 도착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쇠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우리가 탄배는 한동안 주위를 돌았다. 그러다
한곳에 이르자 뱃사공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내리시오! 여기가 디스의 입구요!"
여기가 디스의 맨 바깥 성벽이다. 추방된 수천의 천사들이 성문을 막아섰고,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 추방된 천사들을 물리친 다음에야 순례자는 성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11곡 64행에서 66행까지를 보면 디스는 '지구의 중심부' 이다.
그래서 지옥 맨 밑바닥의 가장 좁은 고리,
즉 지구의 중심부 디스 주변에 모든 배신자들이
몰려 있고, 그들의 고통은 잠들지 않는 거야.
가장 좁은 '고리'라면 아홉 번째 고리다.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맨 밑바닥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디스는 아홉 번째 고리 전체를 말하는 것일까? 루키페르가 있는 네 번째 구역 주데카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11곡의 전체 구조 설명에 의하면 코기토스라고 불린다.
11곡 74행에는 "불로 활활 타는 이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는 지옥편 마지막인 34곡의 20행과 21행에 있다. 궁금해서 살짝 넘겨보다가 찾았다.
여기에 디스가 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거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루키페르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여기서 디스는 루키페르이다.
디스(Dis Pater)에 대한 묘사를 종합해 보면, 디스는 성벽을 지나서도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서 맨 밑바닥 지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성읍 안으로 들어와서 논밭도 지나고 농가도 지나고 중심부에 이르러서야 관아가 나오듯이, 디스라는 도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성벽 안은 넓은 의미의 디스라는 도시이지만, 디스라는 성은 맨 밑바닥의 중심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성안에서도 일곱 번째 고리에서 여덟 번째 고리로, 여덟 번째 고리에서 아홉 번째 고리로 내려갈 때 큰 장벽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지는 읽지 않았으므로 대략 전체 지옥의 구조는 위와 같이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12곡부터 16곡까지는 일곱 번째 고리인 폭력의 고리를 순례한다. 폭력은 그 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되어, 일곱 번째 고리는 세 개의 구렁으로 나뉜다. 타인에 대한 폭력,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이다.
12곡
일곱 번째 고리의 첫 구렁(1~2)은 끓는 피의 강물(47), 플레게톤이다. 입구에는 '크레타의 치욕' 미노타우로스가 가로막고 있다. 폭력으로 남을 해친 자들(48)은 피의 강물에서 삶기는 고통을 당한다. 이 강물을 벗어나려 하는 영혼은 절벽 발치에서 맴돌고 있는 켄타우로스의 화살을 맞는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 아래 미로에 갇혀 있던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이고,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반인반수이다. 두 반인반수의 괴물은 폭력이 인간의 야수성에서 비롯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준다.
이 구렁의 대표라면 알렉산드로스다. 단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폭군 중의 폭군으로 꼽았다. 대제국의 영광 뒤에서 사라진 엄청난 생명에 주목한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여기에 있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13곡
일곱 번째 고리의 두 번째 구렁(19)은 거칠고 칙칙한 숲(2)이다. 지하의 판관 미노스는 육신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온 영혼을 이 구렁으로 보낸다. 자살한 영혼들이다. 육신을 잃은 이 영혼들(94~6)은 숲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된다. 숲에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괴상한 새, 하르피아(100~2)가 이 나무들의 잎을 뜯어 먹으면서 고통을 준다.
피 흘리는 나무의 이미지가 여기에 있다. 가지 꺾인 나무가 진액을 흘리듯 피를 흘린다.
다른 고리의 영혼들은 모두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살한 영혼들만 나무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가 보다.
14곡
일곱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4)은 불타는 모래밭(73)이다. 하늘에서는 불비가 내린다. 하느님을 경멸하고 무시한(70) 영혼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구렁에서 고통 받는 영혼은 14곡에서 17곡에 걸쳐 묘사된다. 14곡에는 올림푸스의 최고 신, 제우스에 불경을 저질러 번개에 맞아 죽은 희랍 신화 속의 영웅이 나온다. 오이디푸스왕의 아들들이 벌이는 테바이 전쟁에 참여한 카파에우스다.
14곡에서 단테는 인간의 역사를 크레타의 이다산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노인에 비유한다. 옮긴이 주에 의하면 이다산은 옛날에는 샘과 푸른 숲이 울창했던 에덴과 같은 곳이었지만, 원죄 이후의 인간처럼 더렵혀져 지금은 버려진 곳이 되었다. 이다산에 같힌 노인은 에덴 동산의 원죄 이래로 파멸해 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이 노인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다니엘기〉(2:32~35)에서 빌렸지만, 단테는 성경과 달리 이 노인을 구성하는 황금-은-청동-무쇠를 인간의 타락 과정으로 설명한다.
희랍 신화에도 황금의 종족 이후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그리고 영웅 시대를 거쳐 철의 종족으로 타락하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단테가 서양 문명의 발상지를 크레타로 본 것이나 이 노인의 모습이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결합된 서양 정신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천국으로의 순례에 비록 연옥까지만이라고 해도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내세운 것부터가 그런 것 아닐까. 지옥을 흐르는 강들도 모두 희랍 신화의 다섯 개의 저승의 강을 그대로 사용했다.
15곡
단테는 불타는 모래밭을 둘러싼 강둑을 걸으며 존경했던 스승 브루네토를 만난다. 여기에 있는 무리들은 모두 '똑 같은 죄(108)'를 지었는데, 성직자와 위대한 문인들이 있다. 죄명은 명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죄 많은 육신(114)'이라 말하는데, 동성애자들을 의미한다.
16곡
일곱 번째 고리를 빠져 나가기 위해 강둑을 계속 걷던 단테는 피렌체의 유명 인물 세 명을 만난다. 단테가 속해 있던 궬피당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죄도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15곡의 브루네토의 말을 미루어 볼 때 동성애인 것 같다.
그런데 단테는 이 구렁에서 만난 모든 인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중세의 관점에서 보는 동성애와 현대의 관점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을 일곱 번째 고리의 세 번째 구렁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존경어린 태도는 매우 특이해 보인다. 고대 희랍에서는 남성 동성애가 유행했을 뿐아니라 권장되기까지 했다. 희랍 전통에 정통했던 단테이기 때문일까?
이제 일곱 번째 고리의 순례는 끝나고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려 한다. 그런데 '말레볼제'라 불리는 여덟 번째 고리로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한 것 같다. 베르길리우스는 시뻘건 물이 폭포수로 떨어져 내리는 절벽의 끝에서 단테의 허리 끈을 아래로 던져 무엇인가를 불러낸다.
『신곡』의 첫 출판 당시 제목은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 이다. 줄여서 Comedia라고 하는데, 이 제목이 처음으로 16곡에 등장한다.
17곡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기 직전 불타는 모래밭의 불비 속에서 단테가 본 죄인들은 목에 주머니를 걸고(55) 있다. 고리대금업자들이다. 왜 이들이 하느님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죄인들의 구렁에 있는 걸까?
고리대금업은 고대와 중세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돈이 돈을 낳는 것, 즉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다. 중세에 자연의 질서는 신의 섭리이므로 고리대금은 신성에 대한 폭력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 된다. 금융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돈은 새끼에 새끼를 치며 사람을 휘두른다. 주식을 사며, 채권을 사며, 불비 내리는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이 그리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단테는 고리 대금업자들에 대해 특별히 그 죄악을 강조하는 듯하다. 앞서 지옥의 전체 구조를 설명한 11곡에서 이미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빌려 고리대금업자의 죄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성덕에 반하는 범죄(11곡 95)"인데 그 이유는 인간의 기술이 자연 즉 하느님의 자손을 따라야 함에도 고리 대금업자는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자연 자체와 그 부속물을 멸시하고 다른 것에 희망을 걸지 않더냐(11곡 109~111)"라고 일갈한다.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하느님의 자손 즉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범죄임을 단테도 역설하고 있다.
<귀스타브 도레>
피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험준한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게리온을 불러 올린다. 단테의 허리끈에 유인된 무시무시한 괴물은 게리온(97)이다.
게리온은 희랍 신화의 三頭三身 괴물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게리온의 황소떼'가 있는데, 게리온은 황소떼를 뺏으러 온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화살에 맞아 죽는다.
단테는 게리온을 사기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얼굴은 틀림없이 사람이고, 겉은 말짱하게 사람의 살가죽을 뒤집어 썼는데, 몸통은 뱀이다. 사기 지옥의 수문장 게리온은 베르길리우스의 속임수에 걸려 역설적이게도 순례자를 위한 길잡이가 된다. 속이는 자가 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