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조영남 교수는 중국 엘리트 정치의 세 요소로 권력 운영, 권력 승계, 권력 공고화를 꼽고, 각각에 대해 순차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이 강좌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9강부터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이후에 등장한 집단 지도 체제를 구체적으로 공부하는데, 9강~12강은 권력 기구의 구성과 권력의 행사 즉 권력 운용에 관한 내용이고,  13강~16강은 나머지 두 요소인 권력 승계와 권력 공고화에 관한 내용이다.

 

 

 

 

 

 

13강. 권력 승계 ① : 규칙

 

 

 

권력 승계는 엘리트 정치 최대의 난제이다.  최고 지도자의 관점에서는 권력 이양 후 자신의 안전과,  자신의 노선과 정책의 지속 여부 등의 문제로 후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계자는 이른바 '후계자의 딜레마'에 봉착한다. 최고 지도자의 감시 아래 절대 충성을 보여야하며 동시에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야 한다. 세력 없이는 권력을 승계 받아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권력 승계를 제도화하였다. 장차관급 이하는 법으로 규칙을 제정하여 공식화하고, 국가급/부국가급은 합의를 통해 규범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원로 정치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규칙과 규범은 장쩌민 시대 이후 지금까지 평화롭고 안정된 권력 승계의 기반이 되고 있다.

 

개괄적인 내용은 앞에서 몇 번 반복되었기 때문에,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생생한 모습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연령제와 임기제가 도입되어,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일인자의 임의나 독단에 의한 권력 교체 없이 임기 만료시까지 안정적 통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젊은 통치 권력을 갖게 되었다.

 

 

 

 

 

 

 

 

권력 기구는 공정하게 구성된다. 예를 들어 정치국 상무위원은 인물 중심 발탁이 아니라 5대 권력 기구의 수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정치국도 마찬가지이다.

 

 

 

 

 

 

 

 

 

권력 기구는 세력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시대별 파벌의 강약은 있지만, 당의 총서기와 국무원의 총리는 다른 파벌에서 나와야 하고,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도 한 파벌이 독식해서는 안된다.

 

 

 

 

 

 

 

권력 승계의,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하고 독특한 방식이 '점진적 집단 승계'이다.  연령제와 임기제 도입의 결과 자연스럽게 권력은 세대별 즉 연령에 따른 집단으로 이양된다. 한 세대의 임기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가 한꺼번에 권력을 넘겨 받는 것이다.  중국만의 유일한 승계 방식으로 "설계에 의한 후계 양성과 설계에 의한 지도자 교체"이다.

 

 

 

 

 

 

 

 

 

물갈이처럼 한꺼번에 한 세대가 물러나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후계 양성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점진적 승계이다.  공산당 영도 간부의 핵심 구성원을 살펴보면 점진적 승계의 현황이 잘 드러난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거쳐서 정치국원으로 올라가고, 정치국원 중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급한다.

 

 

 

 

 

  

 

 

정치국을 거치지 않고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는 예외 사례는 두 가지가 있다. 차세대 최고 지도자와 파벌의 핵심 세력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은 사전 선임되어 5~10년간의 훈련 기간을 거치고 권력을 이양 받는다.  점진적인 승계를 통한 꾸준한 후계 양성 과정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는 훈련되지 않은 지도자가 등장할 수 없다.  자유 민주주의처럼 의사하던 사람이 어느날, 장사하던 사람이 어느날, 검찰이 어느날,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엎고 아무런 훈련도 검증도 기반도 없이 등장할 수는 없다.

 

집단 지도 체제 이후 국내외적 위기 상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계속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는 배경에는 점진적인 권력 승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자 선임의 규범이 깨어졌다. 2022년부터 공산당을 이끌어 갈 총서기 후보가 지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시진핑이 한 번 더 총서기를 하려는 것인지, 레임 덕을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중국의 설명처럼 유능한 인재가 배재될 위험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2022년의 20차 당대회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6세대 총서기가 탄생하면서 세대 교체의 규범이 지켜질지,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현실화 될지 세계가 주목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권력 승계의 문제점도 있다. 국가급 지도자의 권력 승계는 규범에 의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국가 주석은 임기 제한을 받지 않는다. 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규범이 애매하다. 퇴임한 원로들의 간섭 가능성이 있다. 즉 법으로 공식화된 것이 아니라 규범에 따르기 때문에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해 언제든지 권력 승계 방식이 바뀔 수 있는 불안정성이 상존한다.

 

 

 

 

 

 

 

 

 

 

이 강의를 듣다 보면 플라톤의 『국가』가 생각난다. 플라톤이 최고의 정체로 생각한 철학자 통치는 전형적인 엘리트 통치이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철학자 통치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있다. 예비 통치자들은 기초 교육부터 실무까지 수십 년 간의 교육과 훈련 끝에  5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올바른 통치 이념을 확립하여 안정적이고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14강. 권력 승계 ② : 사례

 

 

 

 

 

 

 

 

집단 지도 체제 하에서의 권력 승계의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첫째는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둘째는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장쩌민이 총서기가 된 것은 천안문 사건 수습 과정에서 지방의 당서기가 파격 발탁된 사례이므로 여기서 다루는 권력 승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일화들이 흥미진진하게 얽혀 있는 이 사례들은 직접 강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만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장쩌민은 오랜 통치 기간 동안 막강한 파벌과 권력을 구축한 상태에서 후진타오로 승계했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분권형의 약한 지도자였던 반면에,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처음부터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분리 승계와는 달리 당정의 3대 최고 직위인 공산당 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을 한꺼번에 넘겨 받는 완전 승계를 이루었다.

 

 

 

 

 

 

 

 

 

시진핑의 굳건한 권력 기반은 완전 승계 이외에도 7인제 상무위원회와 퇴임 원로의 정치 개입 금지, 군내 인맥 등이다.

 

 

두 차례 권력 승계 사례의 요점은 13강에서 살펴본 대로 법과 규범 등 제도에 따라 세대별로 평화롭게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다만,  2017년 19차 당대회 때 차기 지도자가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2년 20차 당대회에 6세대 지도자가 등장할 것인지,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이루어질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15강. 권력 공고화 ① : 전략

 

 

 

 

 

 

 

 

집단 지도 체제에서 새로 선임된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권력 공고화에 성공했는데,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셋 모두 그 방법과 과정이 비슷했다.  이에 따라 조영남 교수는 '권력 공고화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권력 공고화는 '신임 총서기가 권력원을 확보하여 직위에 상응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뜻한다.  권력원은 군 통수권, 이념적 권위, 관계망이다.

 

 

 

 

 

 

 

 

 

공산당 내에서 권력을 공고화하는 전형적인/모범적인 사례를 보여 준 것은 마오쩌둥이다.

 

1921년 공산당 창당 당시 마오쩌둥은 베이징대 도서관 사서에 불과했다. 중국에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도입하여 중국 공산당을 창건한 것은 베이징대 교수 리다자오와 천두슈 등이다.  여기에 소련 유학생들이 가세하여 공산당 지도 세력을 형성했다.

 

 

 

 

 

 

 

 

 

1912년 청나라는 멸망했지만 위안스카이와 같은 군벌이 신해혁명의 성과를 배신하면서 중국은 군벌과 반군벌 세력으로 나뉘어 혼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반군벌 세력인 쑨원의 국민당과 천두슈의 공산당은 1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키고 군벌을 물리치는 북벌에 함께 나섰다. 그런데 쑨원이 죽고 국민당을 이어 받은 장제스는 군벌보다 공산당을 더 싫어하며 국공합작을 깨고 공산당 토벌에 앞장섰다.

 

 

 

 

 

 

 

 

 

1927년 장제스 군대에 상하이 공산당이 학살당하는 상하이 사변이 발생했다. 이때 마오쩌둥이 한 유명한 말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이다. 공산당 조직만으로는 혁명을 수행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1927년 8월 공산당 군대를 창건했다. 

 

가을에 추수 대폭동을 일으켜 장제스에 대항했으나 실패하고 산속 깊이 도망가는데 그곳 강서에서 소련을 본따 '강서 소비에트'를 만들었다.  1934년 장제스가 마을을 불태우며 소탕 작전에 나서자, 왕밍 등 소련 유학파와 저우언라이 등은 국민당 군과 전면 전투에 나섰다가 공산당을 궤멸 위기로 몰아 넣었다. 이때 전면전에 반대하며 지금은 도망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마오쩌둥이다.

 

 

 

 

 

 

 

 

 

 

국민당군에 쫓겨 1년 만에 연안 지역에 도착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대장정이다. 처음 10만에 가까웠던 공산당원 중 연안에 도착한 인원은 1만이 채 되지 않았다.

 

대장정 즉 쫓겨가는 중에도 '준의 회의'를 열고 저우언라이의 지원 아래 마오쩌둥이 군사권을 장악한다. 가장 중요한 권력원인 군사권을 획득했다.

 

 

 

 

 

 

 

 

 

연안에 도착한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세력을 불려 나가는데, 이때 소련파의 핵심인 왕밍이 복귀하여 왕밍 노선을 주장한다. 왕밍 노선이란 정통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말한다.  마오쩌둥은 중국 현실을 무시하고 교조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식하려는 왕밍에 맞서 정풍 운동을 시작했다. 

 

 

 

 

 

 

 

 

 

정풍운동은 사상 운동이다.  공산주의 사상과 다양한 노선을 학습 및 비판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 현실에 맞는 하나의 통일된 공산당 이념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연안 정풍 운동으로 왕밍을 비롯한 소련파를 청산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확립하여, 1945년 7차 공산당 당 대회 때 당헌에 이를 기입함으로써, 마오쩌둥은 공산당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마오쩌둥은 권력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를 강조하였는데, 총대와 붓대, 즉 군사력과 이념(선전의 힘)이다. 여기에 경제력까지 더해지면 거의 완전한 권력이 될 수 있다.

 

무명의 일개 당원에서 출발한 마오쩌둥이 군벌과 국민당 그리고 일제와 싸우며,  공산 혁명을 성공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현실에 맞는 이념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킬 군사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인문 고전 강의>

 

 

 

 

 

16세기 피렌체 공국의 마키아벨리는 군주 메디치에게 바친 『군주론』 에서 강력한 군주는 'Armed Prophet, 무장한 예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언가란 이념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여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상가라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총대와 붓대가 '무장한 예언가' 이다.

 

아무 생각 없는, 이념 없는 정치 지도자와 총대 즉 힘이 없는 통치권자는 국민을 피로하게 하고 국가를 아무 곳으로나 끌고 간다.  

 

 

 

 

 

 

 

 

 

 

마오쩌둥은 이렇게 권력 공고화의 선례를 만들었다. 이후 정풍 운동은  덩샤오핑 시대 3차례를 비롯 정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시대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어 났다.

 

정풍 운동은 반부패 운동과 함께 실시되어 공산당을 정화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한다.  일당 독재 아래 생겨나기 마련인 각종 부패와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척결과 처벌을 강력하게 시행함으로써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공산당 영도를 지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는다.  또한 최고 지도자에 반대하는 세력을 일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16강. 권력 공고화 ② : 사례

 

 

 

 

 

 

 

 

 

집단 지도 체제 아래의 권력 공고화도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다만 군사력은 여기에서 제외한다. 이유는 공산당 총서기는 보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기 때문이다. 물론 군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권력 공고화의 주요 요소로 넣을 필요는 없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 모두 권력 공고화의 3단계를 거쳐 권력을 장악했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혁명적 카리스마가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해 줄 자파 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장쩌민 시대에는 상하이방이, 후진타오 시대에는 공청단이, 시진핑 시대에는 시진핑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정풍 운동과 부패 척결 운동은 세 시대 모두 마오쩌둥이 확립한 방식에 따라 거의 그대로 일어났다. 장쩌민은 '삼강 교육 운동', 후진타오는 '선진성 교육 운동'. 시진핑은 '군중 노선 활동' 이라는 이름으로 정풍 운동을 실시하였다.

 

정풍 운동의 여세를 몰아 자신의 통치 이념을 공산당 지도 이념으로 명문화함으로써 권력 공고화는 완성된다.

 

 

 

 

 

 

 

시진핑은 현재 중국에서 인기가 아주 높다. 그 까닭은 그 어떤 시대보다 반부패 운동이 제도적으로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풍 운동시 자기 검토서를 작성하고 상호 비판과 자기 비판이 이루어지는데,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각 지역에 파견되어 직점 참관한다. 비판을 당하는 사람들이 '가슴이 뛰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철저하고 혹독하다.

 

중앙 순시조라는 것을 만들어서 당국가의 각 기관을 모두 관리 감독 및 감찰한다. 여기서 시진핑 시대의 무수히 많은 부패 당정간부들이 발각되어 처벌당했다.

 

 

 

 

 

 

 

1년에 평균 88명씩 5년 동안 처벌되었다.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받는 장쩌민 시대의 5배 가까이 증가할 만큼, 중국 현대사에 유래가 없는 부패 척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시진핑의 막강한 권력이 있기에 가능하고, 이 결과가 또한 시진핑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16강에 걸쳐 우리가 몰랐던 중국에 대해 상세하고 재미있는 강의를 해 주신 조영남 교수님께 감사 드린다.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는, 너무나 거대해서 위압감을 주는, 우리의 이웃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흥미가 있다면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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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내면서 <천국>편을 읽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자료를 조금 찾아 보았다. 최소한 각 곡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신곡』은 소설처럼 읽으면 순례자 단테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놓칠 때가 많다. 내용이나 표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승 세계의 구조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좋은 글 하나를 찾았다. <토요 클래식>이라는 사이트에 번역되어 있는 글이다.  참고로 여기는, 카페 회원제라 잘은 모르겠지만, 『신곡』을 토요일마다 한 곡씩 아주 상세하게 공부하면서 정리해 놓는 것 같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십 년 가까이 몇 차례에 걸쳐서 완독하는 것 같다. 『신곡』을 깊고 꼼꼼이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될 사이트다.  

 

https://cafe.daum.net/danteclub/JlGL/1?svc=cafeapi

 

 

피터 호킨스라는 분이 쓴 'Dante & the Bible' 이다.  이에 따르면 『신곡』에는 성서가 575회 인용되었다.

 

성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연옥>편이다. 연옥은 현실의 우리 세계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한정된 시간이 있고, 죄를 씻어서 천국에도 갈 수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천국과 지옥은 영원한 축복이나 영원한 고통이 있을 뿐 인간의 의지가 어찌 할 수 없는 곳이다. 

 

연옥은 성서의 장면이 비유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의 해안가에 영혼들이 도착하는 것은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장면과 같은데,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탈이집트'를 한 것이다. 연옥 11곡은 주기도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고, 연옥 27곡부터는 성서의 에덴 동산이 펼쳐진다.  

 

단테는 『신곡』을 마치 성서처럼 썼다.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영감으로 제3의 성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신의 시를 읽으려면 성서를 읽듯 네 겹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신곡』은 성서를 은유적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단테가 저승을 여행하는 순례 자체가 성서적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순례 중 곳곳에서, 본 모든 것을 잘 기억하여 세상으로 돌아가 전할 것을 다짐한다. 마치 예언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단테는 하느님의 빛을 응시하고 돌아와 『신곡』을 노래한다. 단테는 성서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재창조하여 문학으로 완성하였다. 

 

 

 

 

 

 

 

 

<천국> 편에는 여러 군데 시인 단테를 직접 드러내는 표현이 나온다.  하느님의 예언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만 같다.  5곡 16행에 "나의 베아트리체가 이 곡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었다." , 5곡 139행에 "노래를 부르듯 다음 곡에서 내게 대답했다.", 10곡 7행에 "그러니, 독자여!"라는  식이다.  2곡은 앞 부분 전체가 그렇다.

 

 

내 얘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여러분은 조각배를 타고

노래하며 항해하는 내 배를 뒤따라왔구려.

 

깊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해안을 볼 수 있는 지금 돌아가시오.

나를 잃고 길도 잃을 수 있으니.

 

나는 아무도 지나친 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려 하니,

미네르바가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아폴론이 이끌어 주며

아홉 뮤즈가 큰곰자리를 가르쳐 준다오.

                                                    (2곡 1~9)

 

 

 

 

하느님의 사도, 예언가로 제3의 성서를 들려주는 단테를 따라 가기는 정말 어렵다. 단테가 탄 조각배보다 백 배는 부실한 뗏목을 타고 저 깊은 바다로 들어서는 것은 차라리 무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마지막 하느님의 빛을 보아야 하지는 않겠는가, 비록 망막에 빛이 부서지는 잔상만 남긴다고 하더라도.

 

 

 

 

 

 <28곡 주9) >

 

 

 

 

단테에게는 세 명의 길잡이가 있다.  지옥과 연옥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 꼭대기의 지상 낙원부터 천국의 원동천까지는 베아트리체가,  하느님이 계신 최고천(정화천/ 엠페리오)에서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빛을 응시할 때까지는 베르나르두스가 단테를 인도한다.  '훌륭한 말'로 단테를 이끈 베르길리우스와 '거룩한 말'로 단테를 고양시킨 베르나르두스도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아서 단테의 인도자가 되었다.

 

베아트리체가 임무를 마치고 정화천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후 단테는 그녀를 이렇게 찬미한다.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나의 구원을 위해 지옥의 문턱에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를 한 나의 여인이여!

 

당신의 힘을 통해, 당신의 미덕을 통해,

그동안 내 눈으로 본, 그 많고도 많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가능한 모든 길들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하여

당신은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을 지녔습니다.

 

당신의 큰 사랑을 내 안에 간직하여

당신이  치료해 준 나의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날 때

당신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

                                              (31곡 79~90)

 

 

 

이렇게 베아트리체는 '구원의 여성상'이 되었는가 보다.  여성을 생물학적 성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구원의 여성'이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많은 여자들이 '구원의 여성'이 되기 위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면서,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로,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는가. 여성 페미니스트가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사실 놀랍지는 않다. 데이트 폭력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데이트 폭력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두운 숲에서 이 위험한 남자를 구해낼 구원의 여인으로서 말이다.

 

 

 

 

<귀스타브 도레>

 

 

 

 

단테는 베르나르두스의 기도와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마침내 하느님, 그 영원한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영원한 빛을 응시하도록 허락하신

풍요의 은총이시여! 저의 눈은 그 빛 속에서

저 가능성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33곡 82~84)

 

 

 

 

 

 

 

 

내 소망과 의지는 이미, 일정하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었다.

                                                  (33곡 143~145)

 

 

 

단테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다. 神化, Deificaton 되었다. 불멸을 열망하는 인간은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인문 고전 강의>

 

 

 

 

필멸의 인간이 불멸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식을 낳는다?  유전자는 영원히 이어지니 불멸하는 것일까? 우리가 모두 아담의 자손이고, 아담이라는 큰 나무의 하나의 잎이라면 그럴 것 같다. 잎이 지고 다시 피는 한 나무는 죽지 않는다. 

 

명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영원한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처럼. 나는 이 방법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관조.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다.  우주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이고, 존재들은 왜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무엇일까?  朝聞道夕死可矣.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반복하면서 늙어 가다 보니, 내 존재의 목적이 궁금하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物化이고, 신적 진리를 일별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神化일 것 같다.  

 

단테는 지혜와 함께 은총으로, 훌륭한 말과 함께 거룩한 말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신적 진리를 보았다.  사랑은 무엇인가?

 

 

 

무수한 물음들에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지며 100곡의 『신곡』 읽기를 마친다.  공자는 未知生. 焉知死. 삶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했다. 사람의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의 진리를 알리오, 라고 말장난이라도 치고 싶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모든 글은 결국 사람이 한 것이다. 천국을 말하든 지옥을 말하든 사람이 한 말이니, 그 신적 진리 역시 사람의 길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다만 아둔한 머리와 침침한 눈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 그 하늘에 별 하나가 빛난다면 참으로 좋겠다.

 

 

 

쉽게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지한지요!

증거도 증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어떤 약속이든 쉽게 하고 쉽게 매진하지요.

 

 

                                            (29곡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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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함께 읽는 분들 중 두 분과 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천국쯤 오니 지겹다는 의견이 공통이었다.  <천국> 편은 우리 같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정말 그런 것 같다.  <지옥>편과 <연옥>편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서양의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 피렌체의 정쟁, 단테의 정적 등은 새로울 것이 없고,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을 빌려와 갖가지 표현법을 구사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훌륭한 작품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어서 좀 쉬었다가 <천국>편을 읽을까 싶었지만,  손을 놓으면 또 언제 읽을까 싶기도 하고, 이것 저것 새로운 일들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끝내려고 꾸역꾸역 읽는 중이다.

 

물론 가슴을 쿵하게, 무릎을 탁하게 만드는 깊은 통찰과 아름다운 표현은 여전하다. 다만 스콜라 철학과 신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대학이 중세에 탄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1세기 말에 볼로냐 대학을 시작으로 12세기 옥스포드 대학, 13세기 파리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등이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학문의 방법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강의에 더하여 토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스승을 논박하고 눈부신 명성을 획득하는 학생도 있었다.

 

 

 

 

 

 

 

 

중세 최고의 스캔들을 일으킨 아벨라르두스가 그 중 한 사람이다.  학문의 도시 파리에서 무림의 고수처럼 이름난 스승들을 찾아 다니며, 한 사람도 남김 없이 토론으로 물리쳤던 최고의 스콜라 철학자였으나, 제자 엘로이즈와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비운의 천재였다.

 

 

 

 

 

 

 

 

그리고 스콜라 철학의 완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스승 알베르투스가 있다. 중세 최고의 학문은 신학이었지만, 신학을 공부하는 도구는 믿음만이 아니라 이성이 함께였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이성을 사용하여 깊이를 알기 힘든 신의 사랑과 의지에 최대한 가까이 닿으려고 하는 것은 의무이기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최고에 이르른 중세 학문의 결정체이다. ....라고 한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신학 대전 >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 알지 못함 때문에 『신곡』읽기가 아주 힘들어서이다.  『신곡』을 토미즘(신학 대전)의 완벽한 문학화라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지옥>편을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연옥>편부터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더니, <천국>편에서는 아, 이것이 중세 철학이구나, 아, 아퀴나스가 이렇게 논증했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게 만드는 내용들이 줄줄이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생각을 굳히네 어쩌고 하는 말이 우습지만 그래도 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니까, 그렇지 싶은 것이다.

 

 

 

 

 

 

 

 

 

 

 

 

여덟 번째 하늘인 항성천에서 단테는 차례대로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요한에게 신앙을 검증 받는다.  성 베드로는 믿음에 대해, 성 야고보는 소망에 대해, 성 요한은 사랑에 대해 질의한다. 단테는 세 개의 주제로 교리에 대한 지식과 신앙을 검증 받은 후에야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의와 응답의 방식이 중세 대학의 학문 방법인 토론을 금방 떠오르게 한다.

 

 

스승이 결론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질 때까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신 무장을 하는 학생처럼,

 

나 역시 그녀가 말하는 동안

마음을 모아 내 논점을 정리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을 주기 위해 준비했다.

 

"말하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여! 무엇이

믿음인가?"

                                                   (24곡46~5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것을 저는 믿음의 본질로 생각합니다.

                                                  (24곡 64~66)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논리적 증거는

이런 믿음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논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24곡 76~78)

 

 

그런 기적들이 있었음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너는 증명될 필요가 있는 것을

증거로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세상이 기적들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기적보다도 훨씬 더 큰 기적일 것입니다.

                                                   (24곡 103~108)

 

 

 

베드로는 단테의 답에 아주 만족하였지만 나는 모르겠다.  믿음은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의 증거이고, 그 성경에 적힌 기적이 실제 있었다는 것의 증거라고 한다.

 

여기서 내가 놀란 것은 문답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베드로는 내가 이성적으로 말이되나?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서 똑 같이 질문을 던진다.  기적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 라고. 

 

성경이 믿음의 근거라는 단테의 말에는 베드로가 성경의 내용은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지 증거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나도 그렇게 묻고 싶다.

 

믿음이 없는 나는 단테의 답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질문도 답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중세의 신학자들도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신약은 희랍어로 쓰여진 경전이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라 보편 종교로 확장된 것은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가 결합하면서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날개를 단 것이지만, 사상적으로는 희랍 철학과의 결합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희랍식의 이성적 사유와 논증을 요구 받았던 것이다. 스콜라 철학이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천 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대립되는 듯 보이는 이성과 믿음을 일치시키려 꾸준히 노력해 왔던 결과인 것이다. 

 

 

 

 

 

 

 

 

 

 

물론 믿음과 이성의 조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믿기 위해 이해한다."와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사이에서 끝없이 충돌했다. 서양 정신의 역사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불가능한 조화를 향한 불가능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 불가능성이 지칠 줄 모르는 열망과 탐구의 원동력으로 서양 정신을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문 고전 강의>

 

 

<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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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국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옥과 연옥을 거쳐 오느라 꽤 피곤했나 보다. 천국인데도 열망이 솟구치지 않았다.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 급히 하면서 짧게 정리한다.

 

 

 

 

 

 

 

 

 

 

 

 

단테의 천국에는 문이 없다.  지옥에도 문이 있고, 연옥에도 있는데, 천국은 없다. 천국의 하늘들은 그 경계가 잘 감각 되지도 않는다. 단테는 언제 어떻게 올랐는지도 모르고  천국의 하늘들을 한 단계씩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에 배워 어렴풋하지만,  불연속적 양자 도약처럼 말이다.  

 

 

천국은 열 개의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 2곡 112행부터 123행까지 개략적인 구조가 설명되어 있다.

 

 

 

하느님의 평화가 깃든 높은 하늘은

계속 돌아가는 몸체 하나를 품고 있는데, 그 힘은

자체를 포함한 하늘의 모든 진수들을 감싸고 있어요.

 

수많은 별들을 거느린 그 다음의 하늘은,

그 하늘과는 다르지만 또한 그 하늘에 포함된

많은 본질들을 통해 그 힘을 퍼지게 합니다.

 

그렇게 또 다른 하늘들은 가지가지 색다른

모양을 지니면서도 가장 높은 하늘의

원래의 특성을 줄곧 유지합니다.

 

이렇게 우주의 조직은 그대가 보듯,

단계별로 진행하지요. 즉

위에서 힘을 받아 밑에서 작동합니다.

 

 

 

 

 

 

 

 

 

제1천인 달의 하늘은 2곡~4곡까지, 제2천인 수성의 하늘은 5곡~7곡, 제3천인 금성의 하늘은 8곡과 9곡, 제4천인 태양의 하늘은 10곡부터 13곡까지(이후로는 읽지 않았음)에 걸쳐 노래되고 있다.  

 

 

 

 

 

 

 

 

 

천국은 기독교 신자, 그중에서도 교리를 잘 알고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비신자들에게는 제일 어려울 것 같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한 구원, 자유 의지와 신의 섭리 등 복잡한 교리들이 논의되는데, 순례자 단테는 한번의 설명으로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단테의 의심과 질문을 베아트리체가 격려하며, 그 자신 혹은 영혼들이 단테에게 답을 하는데, 이성으로 논박하고 실험과 증명을 설득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인간의 성급한 판단과 오만을 엄중히 경계한다. 11곡과 13곡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단테와 대화를 나누는데, 중세 최고의 철학자 아퀴나스는 이렇게 조언한다.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다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쉬우니 하는 말이에요.

 

급하게 내놓은 의견들은 때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서, 인간의 교만이

지성을 묶어 놓게 되거든요.

 

재주가 없이 진리를 낚으러 해안으로

떠나는 것은 불필요를 넘어서 나쁜 일입니다.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로 돌아올 거예요.

(13곡 115~123)

 

 

 

진리 탐구가 아니라도 그렇다. 『신곡』을 읽었다고 이렇고 저렇고 떠들다가는 '나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제4천인 태양의 하늘에는 철학자들이 많다. 토마스 아퀴나스뿐 아니라 로마의 철학자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아퀴나스는 11곡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을, 보나벤투라는 12곡에서 도미니쿠스 성인을 각각 칭송하고 있다.

 

 

5곡의 자유 의지와 창조주의 의지, 7곡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한 인간의 구원 등과 같은 문제는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깊이 알고 싶지만 잘 이해되지 않고, 심오한 듯하지만 꼬리를 무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서사시로 압축된 이 책을 통해서는 사실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힘들어서 아쉽다. 언젠가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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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 집단 지도의 등장

 

 

 

 

 

 

 

현재 중국의 엘리트 정치는 집단 지도 체제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시대와는 달리 첫째, 권력이 평화적으로 승계되고 둘째, 새로 선출된 당서기가 빠르게 권력을 장악하여 정치를 안정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는 권력 분점과 당내 민주화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집단 지도 체제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국내외의 정치적 변화와 심각한 위기 상황이 있다.

 

집단 지도 체제가 본격화한 것은 장쩌민 시대부터이지만, 집단 지도의 기초를 놓은 것은 문화 대혁명 이후 복귀한 덩샤오핑과 혁명 원로들이다.

 

문화 대혁명은 당정 기구를 무력화하고 법과 제도를 무시하며 초법적으로 시행되었다.  문화 대혁명으로 숙청되었던 혁명 원로들이 마오쩌둥 사후에 복권되어 권력을 장악하고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공산당과 국가 기구를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문화 대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슬로건 아래 당헌과 당규를 제정 또는 수정하였고 이에 따라 공산당은 법과 제도에 따라 운영되는 정당으로 탈바꿈 하게 된다.

 

 

집단 지도를 가능하게 한 두 번째 배경은 혁명 원로들의 퇴진이다. 

 

얼마 전에 들었던 주원준의 <구약의 사람들> 강의가 생각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드디어 약속의 땅 앞에 섰을 때,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해 주시어 제가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저 좋은 땅 저 아름다운 산악 지방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라 기도했지만, 신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모세의 시대는 요르단 강 앞에서 끝났고, 강 건너 약속의 땅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당치않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연달아 들은 강의라서 그런지 불쑥 연상이 된다. 

 

혁명 원로들이 집단 지도의 씨를 뿌렸지만, 정작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혁명 원로들이 물러나야만 했다. 각자에게는, 각 세대에게는 저마다의 몫이 있다. 후세의 몫을 탐내는 것은 노욕이고, 윗세대의 노고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오만이다.

 

1992년 덩샤오핑은 집단 지도의 장애물이 될 원로들의 합법기구 '중앙 고문 위원회' 마저 폐지해 버린다.  개인적 권위를 가졌던 혁명 세대가 모두 물러나자 정치적 권위는 오직 제도적으로만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배경은 통치 엘리트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위기에 있다.  위기 상황 속에서 분열과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협상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집단 지도 체제가 정착할 수 있었다.

 

1989년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촉발된 천안문 사건은 공산당 최대의 위기를 몰고왔다.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사실은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의 지휘관이 항명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공산당 중앙의 최고 엘리트들은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왔고, 중국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중국 붕괴론이 횡횡했다.

 

덩샤오핑은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되, 할 바는 하라." 등의 유명한 말을 남기며 통치 엘리트들의 위기 의식을 고조시키고, 단결을 촉구했다.

 

 

 

 

 

 

1990년대는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빈부격차도 심화되었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론"이 정식 이론으로 채택되어 도시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개혁·개방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했다. 기간 산업 이외의 국유 기업이 처분되자 실업자가 대량 발생했고 노동자·농민의 시위가 잇달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동시 다발적인 국내외적 위기상황은 통치 엘리트들을 긴장시켰고,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상과 타협을 이루어 낼 수밖에 없었다.

 

 

 

 

 

 

 

 

 

집단 지도 체제는 과두제의 일종이다. 법과 제도에 따라 통치되지만,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 의해 법과 제도가 제정, 운용되기 때문이다.

 

집단 지도 체제 또한 '과두제의 딜레마'를 갖고 있다.  과두제는 일인 통치를 방지하는 제도이다. 독재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을 막을 수는 있지만 협의와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권력 분산이 잘 되면 리더십이 약해지고, 리더십이 강해지면 독재 권력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과두제의 이러한 딜레마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문제였고, 사회주의 붕괴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집단 지도에서 일인 독재로 나아간 대표적인 사례이고, 베트남은 과두제의 딜레마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평을 듣지만 사실상 리더십은 약한 사례이다.

 

중국의 집단 지도는 어떤 모델을 따를 것인가? 중국의 집단 지도도 집권형과 분권형으로 나눌 수 있다.  후진타오 시기가 분권형인 반면 시진핑 시기는 집권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시진핑을 '시황제' 라 부르는 것은 중국 엘리트 정치에 무지하기 때문이지만, 시진핑이 집권형 총서기라는 점에서 분권형 총서기보다 당 장악력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내외적인 환경도 중국의 집단 지도 체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소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중국 인민들도 단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열망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강한 리더십을 원하는 환경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새로 선출될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중국 집단 지도 모델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강. 집단 지도의 구성과 원칙

 

 

 

 

중국의 정치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강의를 듣다가도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집단 지도니, 엘리트 정치니 할 때 주체는 당이라는 사실이다.

 

집단 지도의 특징은 권력 분점과 당내 민주의 확대다. 이 두 요소는 두 가지 선행 조건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공산당 권력기구가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권력 기구의 운영에 관한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나의 세력이 모든 기구를 장악하거나 권력 운용이 자의적이면 권력의 분점도 당내 민주의 보장도 불가능하다.

 

 

 

 

 

 

 

 

공산당 권력 기구의 구성과 운영 규칙을 살펴 봄으로써 중국의 집단 지도 체제가 어떤 제도적 틀 안에서 움직이는지 알아볼 수 있다.

 

공산당 조직의 핵심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이 조직들이 어떻게 구성 되는지를 보면 권력 분점이 이행되고 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조직의 구체적 구성은 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대해서만 간단히 정리한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 5대 권력 기구의 수장들로 구성된다. 마오쩌둥이 마음대로 누구든 상무위원에 임명했던 것과는 달리 인물이 아니라 직위가 구성요소가 된다.  

 

 

 

 

 

 

 

시진핑 시대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은 당정 권력 기구의 현직 책임자들이 맡고 있다. 가장 일이 많은 공산당 중앙에서는 총서기와 서기, 국무원에서도 총리와 상무 부총리,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권력 기구에서는 각각 수장들로 총 7명이다.

 

 

 

 

 

 

 

당에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합의하거나 표결에 부쳐야 한다.  공산당 총서기가 중국의 최고 지도자임에는 틀림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공산당 내에서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이와 달리 국무원이나 군은 수장 책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총리나 주석이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결정은 집단으로 하는 한편 집행과 책임은 개인이 분담한다. 과두제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각자의 고유 업무가 있다.

 

 

 

 

 

 

 

공산당 총서기는 군사, 외교, 개혁 총괄이라는 세 가지 고유 업무를 담당한다.

 

 

 

 

 

 

 

국무원 총리는 경제와 행정을 담당한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인대 위원장은 입법을 맡는다.

 

 

집단으로 결정한 일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일에 고유 권한을 가진 상무 위원이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 분담의 원칙이다.  효율적이고 책임있는 정책 집행을 위해서 도입된 제도이다.

 

 

 

 

 

 

 

11강. 집단 지도와 파벌 정치

 

 

 

 

 

 

 

 

"엘리트 정치는 파벌 정치다."라는 통념이 퍼져 있다. 그런데 파벌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 파벌 정치를 폄훼하는 것은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파벌정치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정치학자들은 생물학의 기본 단위가 세포이고, 물리학의 기본 단위가 원자(입자)이듯 정치학의 기본 단위는 파벌이라고 말한다.

 

파벌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후견인-수혜자 관계' 혹은  '특정한 정치 지도자와 추종자 간에 충성과 호혜의 교환으로 맺어진 인간적 관계, 개인적 관계'로 정의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정치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켜야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파벌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렇게 뭉친 핵심 세력이다. 이 세력은 사적으로 형성되며, 충성의 대가는 획득한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의 경우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외부 인사를 대표로 영입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이미지 전환용으로 이용된 후 힘을 잃는데, 당내 파벌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파벌 없이는 어떠한 비전도 정책도 지지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벌을 동원하는 것을 파벌 정치라고 한다. 파벌은 사적인 관계이므로 파벌 정치는 비공식 정치이다.  권력을 획득한 경우 파벌들에게 공적인 직위를 나누어 주게 되므로, 비공식 정치인 동시에 공식 정치의 외양을 띠기도 한다.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파벌 정치를 유독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까닭은 '꽌시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예전에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었다.  중국을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그 인기가 광풍과 같았는데,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단언한다.  메시지는 단 하나, '꽌시가 중국의 모든 것이다.' 였다.  줄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라, 바꾸어 말하면 줄만 있으면 모든 것이 통하는 나라가 소설 속의 중국이었다. 

 

조영남 교수는 조정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지만,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차라리 '꽌시는 무시하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꽌시는 진짜 중요하다.  그러나 꽌시는 소수의 극도로 친밀한 사람들 안에서만 맺어지는 관계이다.  보통의 사회적 관계로는 꽌시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중국사람들도 대부분은 꽌시 밖에서 인간 관계를 맺고 사회 생활을 한다. 어설프게 꽌시를 맺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관계를 망칠 뿐이다.

 

 

 

 

 

 

 

 

중국의 파벌 정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차라리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정치의 내재적 요소로서 파벌 정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중국은 다당제가 아니라 공산당 일당제로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일당제의 문제점은 인사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고, 주요 정책이 갈등을 겪을 때 해소할 수 있는 기제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당국가 기구의 임면권은 상급 기관이 갖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장관급은 정치국이, 차관급은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갖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파벌을 많이 임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파벌이 우세해야 협의와 타협이 쉽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4:3으로 구성되느냐, 6:1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총서기의 권력은 엄청난 차이를 갖게 된다. 따라서 파벌 정치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파벌 정치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 파벌은 다양하게 얽혀 있다. 지연, 학연, 혈연, 기관 등 파벌을 나누는 기준이 많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파벌로 분류될 수 있다.  학연상으로는 반대 파벌이지만, 지연상으로는 동일한 파벌일 수도 있고 등등의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파벌은 생각보다 응집력이 강하지 않다. 일의 사안에 따라 필요에 따라 중복된 파벌 중 하나의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의 특성을 보려면 파벌이 아니라 세대별 특징을 보는 것이 더 용이하고 합리적이다.

 

 

 

 

 

 

 

 

 

12강. 집단 지도는 어떻게 운영 되는가?

 

 

 

 

집단 지도의 실례로  공산당 최고 지도자의 선출과 퇴임이 타협되는 방식을 살펴 본다.

 

 

 

 

 

 

 

중국은 공산당 최고위직에 대해 연령제와 임기제가 적용된다. 임기는 통상 5년씩 2회이고, 최고 지도자의 연령은 70세 규범 혹은 68세 규범에 따라 제한된다.

 

단, 규범이란 국가 및 공공 기관의 공식 절차에 따라 제정된 법과는 달리 합의로 도출된 가치 판단과 행위의 기준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고, 언제든지 합의에 의해 파기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연령제와 임기제는 엘리트 정치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첫째 권력 투쟁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신제 국가에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평화적으로 등장할 수 없다. 독재자들이 주로 혁명이나 암살, 쿠데타로 종말을 맞는 이유도 파국 없이 권력이 이양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인 독재를 겪었고 중국도 마오쩌둥의 일인 통치 체제를 겪었지만, 중국은 연령제와 임기제를 도입하여 1992년 이후부터 평화적인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정치적 활력을 높이고, 새롭고 유능한 통치 엘리트들을 충원하기 위해 필요하다.  연령제와 임기제는 세대 교체를 의미한다.  나이가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아니지만 대체로 새로운 세대는 구 세대보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연령제가 도입된 구체적 배경은 권력 투쟁과 관련이 있다. 파국 없이 타협을 통해 권력을 분점하기 위해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지만, 이후 권력 교체의 과정에서 비교적 잘 지켜졌고 결과적으로 중국 엘리트 정치의 안정과 성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민주 추천제는 공산당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던 것을 차기 지도자 선출과 관련하여 당 중앙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민주 추천제란 당정의 직위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 상부 기관이 후보들에 대한 평가를 소속 단위나 그 지역의 당정 간부들에게 물어보는 제도다.  투표를 하거나  조사조를 파견하여 심층 질의를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상해시 당서기를 뽑을 때, 상해시 공산당원들에게 후보 리스트를 제시하고 투표를 해보라고 하거나, 후보들에 대한 당원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다. 상부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민주 추천제라고 불린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상부 기관에 있으므로, 추천제일 뿐이다.

 

 

 

 

 

 

 

 

지방에서 적용하던 민주추천제를 공산당 당중앙에 도입하게 된 것은 차기 최고 지도자 선출과 관련한 파벌의 대립 때문이다. 

 

2007년은 후진타오 집권 2기가 시작되는 해로 당시 관례에 따르면 차세대 후보자를 뽑아야 했다. 이때 최종 후보로 시진핑과 리커창이 올라 왔는데,  파벌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진핑은 짱저민의 상하이방과 태자당이 지지하고,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밀고 있었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지방에서만 실시하던 민주 추천제를 중앙에 도입하기로 했고, 그 결과 400여 명의 투표를 통해 후보들의 순위가 결정되었다.

 

5세대 최고 지도자 후보들은 이 순위에 따라 선출되었다. 1위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 후보, 2위 리커창이 국무원 총리 후보가 되어서, 5세대를 이끌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연령제와 민주 추천제는 집단 지도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파벌간의 대립으로 엘리트 정치가 파국의 위기에 처할 때, 집단 지도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소수 중앙의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범위를 확대하여 다수의 공산당 엘리트들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당내 민주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규범을 도입하여 협상의 여지를 만들어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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