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곡

 

 

18곡은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말레볼제'로 시작한다. 말레볼제는 단테가 만들어 낸 이름으로, '사악한 구렁' 이라는 뜻이다.

 

게리온의 등을 타고 내려온 높고 험한 절벽과 웅덩이(아마도 아홉 번째 고리인 코기토스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이에 놓인 열 개의 깊은 구렁들이 말레볼제.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다.

 

 

 

 

 

 

 

앞서 11곡에 설명된 바에 따르면, 지옥의 맨 아래쪽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고리에는 배반자들이 있다.

 

우리는 양심을 찢어지게 하는 배반의 죄를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나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저지를 수 있지

                                               (11곡 53~54)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저지른 배반의 죄가 여덟 번째, 말레볼제에 떨어지는 죄이다.

 

 

 

 

 

 

이 배반의 죄는 정도에 따라 열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 진다. 그 첫 번째 구렁(24)에는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있다. 뿔난 마귀들의 채찍질을 받으며 벌거 벗은 채 두 줄을 지어 마주 보며 걷고 있다.

 

두 번째 구렁(103)에는 아첨꾼들이 똥물 속에 잠겨 있다. "혓 바닥이 지칠 줄 모르고 알랑거린 탓"이다.

 

 

 

 

 

19곡

 

 

 

 

 

 

그런데 구렁과 구렁 사이는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구렁의 양쪽에는 둔덕이 있고, 둔덕과 둔덕 사이에는 활꼴형 다리가 놓여 있다. 순례자는 둔덕을 따라 걷거나 다리 위에서 구렁 속의 죄인들을 살피고, 대화도 나눈다.  첫 번째 둔덕과 두 번째 둔덕 사이에 첫 번째 다리가 놓이고, 첫 번째 다리 아래로 첫 번째 구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에 그리기가 쉽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유수 (1309~1377)>

 

 

세 번째 구렁(5)에는 충격적인 죄인들이 있다. 추기경과 교황들이다. 중세의 지옥에 성직자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불경할 듯한데, 이 지옥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14세기 초반에 사람들은 부패한 교회의 실상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성물이나 성직을 매매한 자들이 바위 구멍마다 처박혀 발바닥이 불타오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

 

단테와 대화를 나누는 죄인은 교황 니콜라우스 3세이다. 1280년에 죽어서 20년 째 단죄를 받고 있는 그가 곧 자기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교황들에 대해 예언한다. 3년 뒤에는 보나파키우스 8세가, 뒤이어 클레멘스 5세가 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말이다.

 

교황들을 줄줄이 지옥에 처박을 만큼 14세기는 교황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이다. 세계사에 간략히 요약되는 내용만으로도 이 혼란상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은 두 개의 권력이 다투는 시기다.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 혹은 교황권과 황제권이, 두 개의 칼로 비유되며 맞섰다. 하지만 중세를 '기독교 공화국'이라고 할만큼 전성기의 중세는 교권이 강했다. 봉건제도 아래서 세속의 정치 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지만, 로마 교회라는 보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권은 강력한 위계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역사 고전 강의>

 

 

교황권의 성쇠는 1077년 카노사의 굴욕과 1309년~1377년의 아비뇽 유수가 집약하고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무릎 꿇린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권은 날로 성장하여, 십자군 전쟁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패배하며 쇠퇴하기 시작한 교황권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주도한 아비뇽 유수로 땅에 처박혔다.

 

 

 

 <필리프 4세>

 

 

 

단테가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나파키우스 8세는 교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들에게 교회에 과세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최초로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이에 대항하였고, 교황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우고 보나파키우스 8세를 체포하였다. 여론에 의해 석방은 되었으나, 심한 모욕을 당하였던 보나파키우스 8세는 한 달만에 분사하였다.  이때가 1303년이다.

 

1305년에 즉위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필리프 4세와 손잡았다. 1309년에 필리프 4세는 아비뇽에 교황청을 지었고, 이후 일곱 명의 교황이 1377년까지 아비뇽에 머물렀다.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아비뇽 유수라고 불렸다. 이 시기 교황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었다.

 

이 보나파키우스 8세와 클레멘스 5세를 단테는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에 처박으려고 하는 것이다.

 

 

 

 

 

 

 

 

 

137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로마로 복귀했지만, 다음해 이탈리아인 우르바누스 6세가 교황에 선출되자 프랑스 추기경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클레멘스 7세를 교황으로 새로 선출하면서 교회 대분열이 시작된다. 이후 40년간 교황이 두 명 혹은 세 명 존재하는 혼란이 연출된다.

 

 

 

 

 

 

 

 

교회 대분열의 시기에 후스, 위클리프 같은 개혁가들이 등장하여 성서 중심의 교회 개혁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화형을 선고 받는다. 교회는 1414년~ 1418년에 콘스탄츠 공의회를 개최하여 혼란을 수습하지만, 근본적 개혁에 눈을 감으면서 16세기의 '종교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20곡

 

 

 

 

<요한 울리히 크라우스, 제우스와 헤라와 함께 있는 테이레시아스>

 

 

 

 

네 번째 구렁(19곡133)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다. 암피아라오스, 아론타, 만토, 그리고 누구보다 테이레시아스가 있다. 이들은 고대 희랍-로마 신화의 예언가들이다.  20곡에서는 이들을 점쟁이(122)나 마술사(123)로 부른다.

 

등을 가슴으로 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봐라!

너무나 앞을 보고 싶었기에

뒤를 바라보며 거꾸로 가고 있구나. (37~9)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러 저승에 간 오뒷세우스>

 

 

성경에도 예언자들이 나오는데, 이들 신화 속의 예언가들은 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걸까? 테이레시아스는 희랍 신화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도 꼽힌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에도,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도 눈 먼 예언자로 나온다.

 

 

 

 

 

 

20곡의 백미는 콘트라파소다.  앞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예언가들에 상응하는 벌은 뒤만 보도록 하는 것이다.  얼굴과 몸통이 반대로 붙어서 뒤를 보며 거꾸로 걸어야 한다.

 

 

 

 

 

21곡

 

 

 

 

 

 

다섯 번째 구렁(4)은 탐관오리들(38/42)이 끓는 역청(10)과 말레브란케의 갈고랑쇠(38/57)에 살이 찍히는 벌을 받는 지옥이다.

 

말레브란케는 단테의 조어로 '사악한 앞발'이란 의미이며, 다섯 번째 구렁을 지키는 마귀들을 가리킨다.

 

말레브란케는 여섯 번째 구렁으로 연결된 여섯 번째 다리의 바닥이 무너졌다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하고, 길 안내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23곡에서 밝혀지는 바, 거짓말이었다.

 

 

 

 

22곡

 

 

말레브란케들의 안내를 받아 둔덕을 걸어가다가 역청 속에서 고개를 내민 치암폴로라는 죄인을 만난다.  꾀가 많은 치암폴로는 말레브란케들에게 내기를 걸어 도망쳐 버린다. 말레브란케 둘이 그 바람에 역청에 빠져 죽는데, 이 혼란을 틈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다섯 번째 구렁을 빠져 나온다.

 

 

 

 

 

23곡

 

 

 

 

 

화가 난 말레브란케들에게 쫓겨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어린애처럼 안고 둔덕을 뛰어 넘어 여섯 번째 구렁의 한쪽 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섯 번째 구렁을 벗어나면 힘을 쓸 수 없는 말레브란케들에게서 벗어나 여섯 번째 구렁(53)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여섯 번째 구렁의 슬픈 위선자들(91)은 화려한 금빛의 망토를 입고 느린 걸음으로 맴돌고 있다. 겉은 금빛이지만 무거운 납으로 된 망토(65)이다. 바닥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111)들도 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일곱 번째 구렁으로 넘어갈 돌다리가 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닥과 기슭에 쌓인 바위 조각들을 밟고 건너가야 한다. 말레브란케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베르길리우스는 노기를 띠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말레볼제의 일곱 번째 다리가 끊어진 지옥 구조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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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다가 도표까지! 거기에 공부하신 강유원박사님의 역사고전강의까지! 정말 대단하네요! 오늘도 신곡 공부 잘 했습니다!ㅎ 잘 엮어서 라벤나에 있는 단테 무덤에 헌정했으면 좋겠네요!ㅎ 즐건 주말되십시요!

말리 2021-01-24 17:18   좋아요 0 | URL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은 직접 그려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삼아 그려봅니다. 그래서 정확하지가 않을 거예요. 천 년이 넘게 연구된 작품이고, 이 한 작품만 강의하는 교수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는 정밀하고 정확하게 해석된 글들이 많이 있겠지만, 저같은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서, 조악하나마 그려봅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