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EBS 특별기획 <통찰>의 이태수 교수의 <오디세이아>에는 "생존과 귀환을 위해서 필요한 인내와 지혜"가,  플라톤 아카데미의 강대진 교수의 <오디세이아>에는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와 "오뒷세우스의 귀환 -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을 향하여" 가, 강유원의 <문학고전강의>에는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한 겪음"이라는 문구가 이 고전을 정의하고 있다.

 

 

 

 

 

복잡해 보이는데 간단히 그려보면 'pathei mathos' 이다. 고난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획득된다는 것이다.  고대 희랍인들의 이 유명한 격언이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판타지적 모험을 더하여 흥미 진진하게 펼쳐진 것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오뒷세우스는 마지막 영웅 세대이다. 트로이아 전쟁 이후 청동기 미케네 문명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영웅들은 인간 세상에서 사라진다.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영웅' 서사시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이스』와 『오뒷세이아』 이후 서사시 장르가 쇠퇴한 것은 영웅이 더 이상 인간적 가치의 표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호메로스는 영웅에 대한 마지막 찬가로서의 『일리아스』와  반영웅적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오뒷세이아』라는 두 작품을 통해 스스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오뒷세우스는 영웅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영웅적 존재가 아니다. 영웅은 목숨을 버리고 명예를 얻어서 불멸의 신에 가까워 지려 하지만, 오뒷세우스의 모험은 신과 멀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신과 멀어진 인간, 영웅적 가치를 버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뒷세우스는 새로운 시대에 인간 존재란 무엇이고,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야만 한다. 

 

고대 희랍인들이 찾아낸 하나의 답이 '고난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 기나긴 오뒷세우스의 여정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는 불멸의 신이나 신과 같은 영웅보다 모험을 통해 인내와 지혜를 배우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는 인간적 삶이 더 가치있다고 선언한다.

 

 

 

 

 

 

 

『오뒷세이아』도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두 부분 혹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분으로 나눌 때는 절반으로 잘라 앞 12권은 오뒷세우스의 귀향 이전, 뒤 12권은 귀향 이후의 이야기이다.

 

 

 

 

 

세 부분으로 나눌 때는 1:2:3으로 배분되는데, 첫 4권은 텔레마코스의 이야기, 중간 8권은 오뒷세우스가 들려 주는 귀향길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 마지막 12권은 오뒷세우스가 이타케로 돌아와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고 정체성을 인정받는 이야기이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중간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지금도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 등 온갖 매체에서 즐겨 사용하는 회상 장면이 약 3,000년 전에 발명된 구성 기법이다. 

 

『오뒷세이아』에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 있는 이 모험 이야기가 분량으로는 1/3밖에 차지하지 않는 것이 낯설기도 하다.  완역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오뒷세이아』의 전체라고 생각하기 쉬울테니 말이다.

 

 

 

 

 <오뒷세이아>

 

 

『오뒷세이아』도 시인이 무사 여신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일리아스』와는 다르게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 이름이 없다.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 (a man) 이다. 

 

 

 <일리아스>

 

 

신이 정한 운명에 따라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아킬레우스와는 달리  스스로 겪은 고난과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만든 이름이 오뒷세우스이다. 처음에 그는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 목마를 고안한 최고의 지략가이다. 그러나 트로이아성을 함락한 이후에도 9년 이상 바다 위를 떠돌아 다니고 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쉽게 귀향하지 못한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55XX51600077

 

 

 

오뒷세우스가 모험을 겪은 곳은 실제하는 곳은 아니다.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지도를 그려 놓았는데,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중해 전역을 누비고 다닌 것만은 비슷하게 그렸다. 기원전 8세기 이후 희랍 폴리스들은 역사적으로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를 반영한 상상 지도일 것이다.  

 

 

  <오뒷세이아>

 

 

시인의 간청에 따라 무사 여신이 그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뒷세우스는 현재 시점에 요정 칼륍소에게 붙들여 있다. 귀향에 나선지 9년이나 지나버렸다.

 

 

  <오뒷세이아>

 

 

 

신들은 포세이돈이 먼곳에 간 틈을 타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한다. 『오뒷세이아』는 신들의 회의로 시작하는 셈이다.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각각 이타케 섬의 텔레마코스와 오귀기에 섬의 요정 칼륍소에게 파견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이야기는 먼저 이타케로 파견된 아테나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북돋우어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알아보기 위해 필로스와 스파르테로 모험을 떠나는 것을 보여준다. 

 

1권에서 4권까지가  젊은이의 성장을 주제로 하는 텔레마코스의 모험담이다. 구혼자들에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 페넬로페를 보면서도 무기력한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텔레마코스가 이 여정을 통해 청년으로 성장한다.

 

텔레마코스의 성장은 오뒷세우스의 청년 시절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되고,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미리 보여주는 배치로 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어린 아이는 집을 떠나 고난을 겪어야만 어른이 될 수 있고, 귀환에 성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텔레마코스의 귀환을 보여주지 않은 채, 칼륍소에게 7년간이나 붙잡혀 있는 오뒷세우스에게로 갑자기 시선을 돌려 버린다. 

 

4권은 이타케 섬으로 귀환하는 텔레마코스를 죽이기 위해 구혼자 무리들이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끝난다. 텔레마코스의 운명은 15권에나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1권에서 4권까지에 걸친 초반부의  젊은이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끝났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중반부의 시작인 5권은 칼륍소에게 파견된 헤르메스가 신들의 결정을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칼륍소는 어쩔 수 없이 오뒷세우스를 떠나보내고,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머물며 지난 9년간 겪은 모험에 대해 알키노오스 왕에게 이야기 한다. 5권부터 12권까지의 중반부 '뱃사람의 모험' 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다양한 알레고리를 품고 있는 이 모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나씩 정리할 예정이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종반부 '귀향' 은 서사시 전체의 1/2을 차지할 만큼 분량이 많다. 단 몇 일 간에 벌어지는 간단한 이야기가 이렇게 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진정한 귀향' 즉 '정체성의 인정'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경고되던 아가멤논의 죽음과 같은 두려움이 있다. 20년 만에 돌아온 오뒷세우스는 과연 이타케의 진정한 왕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사랑하는 남편으로, 믿음직한 아들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는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정체성은 그 모든 과정들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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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오뒷세이아』 는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학생이 "선생님, 도서관에는 한 권밖에 없던데요." 하더라는 강대진 교수의 농담이 우습다기 보다는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은 책 이름만 유명하지, 책 자체는 본 적도 없기 십상이다.  책을 넘겨 보지 않고서야 책 한 권 안에 24권이 다 들어 있는 줄 알 리가 없다.

 

 

 

<오뒷세이아, 해설 p626>

 

 

 

『일리아스』이든  『오뒷세이아』이든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소재가 아니라 플롯이 중요하다. 이야기 자체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던 것들이다. 호메로스의 탁월함은 이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 즉 구성에 있다.

 

 

<인문고전 강의. 강유원>

 

 

 

서사시 고유의 형식은 "in medias res" 이다.  시간의 순서나 사건의 흐름를 차근히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건의 한가운데로 직진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일리아스』는 다짜고짜 '아킬레우스가 열받았어! '로 시작하고,  『오뒷세이아』는 칼륍소에게 붙잡혀 있는 오뒷세우스를 귀향시키기 위한 신들의 회의로 시작한다.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나 희랍 연합군에 대한 설명도 없고, 오뒷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 귀향길에 오르는 모습도 묘사하지 않는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시작하자마자 아킬레우스는 9년이나 트로이아에서 전쟁 중이고, 오뒷세우스는 귀향길에 오른지 9년이나 지나 있다. 하지만 곧바로 치고 들어간  핵심 안에 트로이아 전쟁의 전모가 담겨있고, 오뒷세우스의 고난의 여정이 모두 담겨 있다. 핵심을 통해 전체를 보여주는 탁월함이 호메로스의 솜씨이며, 호메로스 이후 모든 고전의 전범이다.

 

 

 

 

 

 

숲 출판사, 천병희 번역의 『오뒷세이아』 에는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라는 해설이 실려 있다. 『일리아스』에도 동일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우리 독서팀은 먼저 이 해설을 읽고 본문을 읽기로 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오뒷세이아』에 관하여 중요한 것들만 정리해 두겠다.

 

 

 

 

 

 

소위 트로이아 서사시권과 테바이 서사시권이 있다.  현존하는 서사시들이 주로 이 두 신화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트로이아 서사시권은 8편이 있는데, 이것들을 이으면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 즉 트로이아 전쟁과 그 뒷이야기가 완성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두 번째 작품이고, 『오뒷세이아』는 일곱 번째 작품이다.

 

 

 

 

 

 

현재 남아 있는 온전한 형태의 서사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밖에 없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이 두 작품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가장 뛰어난 서사시이다.  통일성과 총체성을 획득하여 탁월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서사시의 운율을 헥사메터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오뒷세이아』 에는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직업 가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직업 가인은 언제부턴가 음송자에 의해 대치된다.

 

 

 

 

 

 

직업 가인은 손에 악기를 듣고 '노래' 하였다. 반면 음송자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낭송' 한다.  

 

 

 

 

<호메로스의 대관식. 1827. 장 도미니크 앵그르>

 

 

 

노래가 낭송으로 바뀌면서  "노래에 적합한 간단한 운율은 서사시에 적합한 복잡하고 긴 헥사메터가 되고, 짤막한 영웅 찬가는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는 영웅 서사시로 변모" 했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장단단 (혹은 장장단)의 운율이 6번 반복되면 1행이 된다.  『일리아스』는 15,000행 정도,  『오뒷세이아』는 12,000행 정도의 방대한 서사시이다.

 

 

 

 

  <EBS 특별 기획 통찰. 고전 인간을 말하다. 오디세이아>

 

 

 

『일리아스』가 역사적 사실에 얼마만큼 근거한 작품인가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다. 기원전 13세기경 트로이아의 멸망은 발굴된 유적과 서사시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사실로 추정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핵심적 사건에 문학적 허구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는 여러 전설들이 상당수 첨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오뒷세이아』는 역사적 사실의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성장, 뱃사람의 모험, 귀향 등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통해  『오뒷세이아』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리아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이지만,  『오뒷세이아』는 영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사시이다.  명예로운 이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영웅과는 달리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서라도 살아남아 귀향하기를 갈망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외눈박이 거인인 폴뤼페모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outis 라고 말한다.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거인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nobody로 속여서, 스스로의 이름을 버려서,  살아남는 것이다.  거친 세상을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헤쳐가야 하는 시대에는 명예보다 사고의 유연함과 기민한 판단력이 이상적 가치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영웅의 시대가 끝나고 이상적 인간에 대한 가치관이 변모하면서 문학 장르도 변천을 겪는다.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영웅'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지혜와 교훈을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 교훈시와 서정시이다. 특히 서정시는 개인의 내면을 노래함으로써 서사시적 문체와는 완전히 결별한다. 

 

 

 

 <일리아스 해설>

 

 

 

서사시에서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다. 행위는 내면을 나타내고, 내면은 곧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은 죽고 나서이다.  죽음과 동시에 분리된 영혼은 하데스로 내려가고, 육체는 매장되어 소멸된다.

 

서정시 이후가 되어서야 서양인들은 외면과 내면이 분리된, 갈등과 분열을 겪게 되는 것이다. 헴릿처럼 말이다.  갈등이 없다는 의미에서 호메로스적 인간은 단순하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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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고전 읽기 모임, 두 번째 책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통해 신들의 계보에 조금은 익숙해 졌다.  마지막 준비로 시대적 배경과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를 간단히 정리하고 『오뒷세이아』 읽기를 시작하려 한다.  

 

 

 

 

 

 

 

 

서양 문명은 지중해에서 발달했다.  지중해에서도 에게해의 크레타섬에서 서양의 첫 문명이 탄생한 것은 동방의 선행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제일 가까이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타 (미노스/미노아) 문명의 흔적은 크노소스 궁전 유적과 벽화, 신화 등으로 남아 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BCE. 6C).  항아리 그림>

 

 

지중해 문명은 기원전 1400년 이후 미케네 문명으로 중심지가 이동한다. 크레타 문명은 희랍 본토에서 내려온 미케네인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역사, 윌리엄 맥닐>

 

 

 

기원전 1500년을 전후로 유라시아 전대륙에 걸쳐 청동 전차 군단을 거느린 유목민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튼튼히 뿌리 내린 서아시아와 이집트 문명은 멸망을 면하고 회복했지만, 지중해와 인도 그리고 중국은 최초의 문명이 몰락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  미케네 문명도 이때 탄생한다.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 오디세이아. 플라톤 아카데. 강대진 https://youtu.be/jTvwnGE-anY>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하여 유목민들의 대대적인 침략이 또 한번 일어난다. 이 침략으로 청동기 시대는 끝나고 철기 시대가 도래한다. 지중해도 청동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약 400년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기원전 8세기 에게해 주변의 소아시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에는 놀랍도록 완숙한 문화가 피어난다. 고대 희랍의 이른바 폴리스 시대이다.  암전 이후의 화려한 무대처럼, 갑자기 등장한 찬란한 문화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서양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후 고대 희랍의 폴리스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문자가 없어서 기록된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의 시기에는 선문자 B라는 음절 문자가 있었던 반면, 문자 없는 암흑기를 거쳐 고대 희랍 시대는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한 음소 문자가 만들어졌다.

 

 

 

 

 

<차이나는 클라스. 강대진. 희랍 비극>

 

 

여기서 잠깐, 그리스를 희랍으로 번역하는 학자들이 많다.  Greece는 로마인들이 발칸 반도의 서남쪽 희랍인들을 라틴어로 Graecia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영어식 명칭이다. 희랍인들은 스스로를 Hellas (물론 이것이 희랍문자는 아니지만;;)라고 부른다.  헬레네스들(헬라스 사람들)이 헬라스라고 하는데 남들이 굳이 그리스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헬라스를 음차한 것이 희랍이니 특히 원전 번역에서는 책에 나오지도 않는 그리스보다는 음차하여 희랍으로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EBS 지식의 기쁨>

 

 

 

 

헬라스는 헬렌의 후손이란 뜻으로 희랍의 홍수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제우스의 분노로 인간을 절멸시킬 대홍수가 발생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아들 데우칼리온 부부에게 미리 대비하라고 말해준다.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데우칼리온 부부의 아들이 헬렌이고, 희랍인들은 자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헬라스, 헬레네스, 헬레니즘은 모두 헬렌에 그 어원이 있다.

 

 

 

 

 

 

희랍의 폴리스 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되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했다. 전성기는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한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까지인 기원전 5세기 이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후에는 로마가 패권을 차지했다가, 중세가 되어서야 서유럽이 서구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동양 문명의 빛이 가장 일찍 도달한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 반도, 유럽 서북부로 중심지가 이동하고 있다.

 

 

 

 

 

고대 희랍의 전성기에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수백 개의 폴리스가 세워졌다.  

 

 

 

 

 

고대 희랍 문명의 중심지는 아테나이다. 아테나이는 민주정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도 만개했다.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와 함께 완결되었고, 이후 서정시를 거쳐, 기원전 5세기에는 비극의 시대가 구가되었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서사시와 서정시는 궁전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음송된 반면, 비극과 희극은 시민들이 원형 공연장에서 다 같이 관람하였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장르의 변천은 특정 시기 역사적 상황과 그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비극 공연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성과일 뿐 아니라 민주정체를 위한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는 교육이었다.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가 대표작이고, 희랍 비극은 3명의 비극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데, 그 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희랍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희랍 세계는 전체적으로 몰락하는데, 희랍의 쇠퇴와 함께 전성기를 맞는 것이 희랍 철학이다.

 

 

 

 

 

 

 

희랍의 서사시와 비극은 기원전 8세기 이후에 발전하였으나, 이 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신화들이다. 특히 미케네 문명기의 헤라클레스 신화, 테바이 전쟁,  트로이 전쟁에 관한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천이다.

 

 

 

 <일리아스 해설. 천병희 역>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미케네 문명이 파괴된 이후 이른바 암흑기 동안 여러 형태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이 폴리스 시대에 와서 호메로스에 의해 완벽한 구성을 가진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호메로스 시기에는 음송되던 서사시들이 정확히 언제 기록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메로스는 실존 여부에 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8세기에 이오니아 지방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가 서양 정신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동양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호메로스가 서양 최초의 서사시 작가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최초의 서사시는 수메르인의 것이라는 말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반인 반신의 인간, 영웅의 성장담, 필멸의 신과 불멸의 인간, 죽음에 대한 고뇌와 수용, 공동체를 구하는 명예 등의 주제 뿐만 아니라, 구성에 있어서도 집을 떠나 온갖 고난을 겪고 지혜로움을 얻어 귀향하는 원환적 구조도 상당히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역사』에서 윌리엄 맥닐은 문명의 발생과 전파, 상호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여기에서 문명의 선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명의 중심지는 변화하고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서양 문명을 비롯한 각종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메소포타미아가 우등하다는 것도 길가메쉬가 최고라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우열로 문명을 가리는 것부터가 미개하다.

 

 

 

 

 

 

『일리아스』를 읽지 않았다고 『오뒷세이아』를 못 읽는 것은 아니다.  고전기 희랍 문학을 전공한 강대진은 여러 강의에서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일리아스』 읽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중  『일리아스』가 전쟁 자체를 다루고, 『오뒷세이아』가 전쟁 이후의 귀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더 좋기는 하다. 

 

그렇다고 두 서사시가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서사시권'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데,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서사시 총 8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온전히 전하고 나머지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서사시권을 트로이아권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테바이 신화를 다루는 테바이권과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2%AC%EC%8B%9C%EA%B6%8C

 

 

 

 

 

서사시권들은 미케네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신화에 따르면 영웅 종족은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을 끝으로 인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김헌. 지식의 기쁨>

 

 

 

트로이아 전쟁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과 아버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이 결혼식장에 던지고 가버린  '황금 사과'가 최초의 원인이 된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씌어진 황금 사과를 차지하려고 여신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고, 골치가 아파진 제우스가 이 문제를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기는 바람에 졸지에 신들의 싸움에 인간 세상이 끌려 들어간 사건이다.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넨 대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아로 달아나는데 성공하고, 격분한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희랍 동맹군을 형성하여 10만의 희랍군이 트로이아 원정에 나선 것이 이른바 트로이아 전쟁이다.

 

 

 <일리아스>

 

 <일리아스>

 

 

 

황금사과가 던져진 결혼식에서 탄생한 영웅이 아킬레우스이니, 호메로스가 이 전쟁을 노래하며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초점을 맞춘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절묘하다. 아킬레우스는 이 전쟁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다.

 

 

 

 <일리아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영웅들의 능력보다는 신들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 희랍인들에게 신이란 어떤 의미인지, 신이 인간의 내면을 외형화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를 생각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를 읽기 전에 희랍 신화를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의 아주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 전쟁의 원인이 된 황금사과와 파리스의 심판도, 헬레네와의 도주도, 전쟁을 끝낸 트로이아의 목마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탄생과 종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일리아스>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전체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우주의 원리까지 담아낸 총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전쟁 중간 중간에 묘사된 인간의 모습 특히 죽어가는 자의 가족과 일상에 대한 감성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에 대한 사유와 반성을 촉구하게 된다.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이라는 대립 구도는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우주의 원리에 대한 사유이자,  인간 존재의 한계 속에 참다운 인간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뇌 어린 질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수용하는 아킬레우스의 명예로운 행위는 불멸의 신이 아닌 필멸의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가치이다.  짐승과 같은 욕망으로 날뛰던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복수의 일념으로 적장 헥토를 죽이고 그 시신을 끌고 다니며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만나며 모든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고 시신을 넘겨주는 것도, 모두 인간이기에 가능한 변화하는 모습이다. 이미 완벽한 신은 무엇으로 변화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고, 끝나지 않는 영겁의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지만 또한 축복이기도 하다.

 

 

 

 <향연>

 

 

 

플라톤의 『향연』에도 지혜를 추구하는 중간자로서의 에로스를 찬양하고 있다.  인간은 중간자이다.  짐승과 신의 중간자로서 한계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욕망, 그 에로스가 인간을 변화와 성장으로 이끄는 동력, 인간적 가치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가 뚜렷한 고대 희랍의 사유에서 이 에로스적 열망과 궁극적 좌절이 비극을 만들어 낸다.

 

 

 

<일리아스>

 

아킬레우스는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간 아가멤논에 분노하여 전쟁에 나가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청하여 자신이 참전하지 않는 한 희랍군이 패배하도록 제우스를 설득하게 만든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희랍군의 수많은 영웅들을 개떼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

 

 

 

 

 

제우스의 뜻에 따라 전쟁은 혼전의 양상을 거듭하다가 아킬레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희랍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자 아킬래우스의 분노는 적장 헥토르를 향한다.

 

 

 

 <일리아스>

 

 

헥토르를 죽이고 희랍군을 파멸에서 구해내는 것은 아킬레우스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다.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헥토를 죽이면, 그 다음 죽음의 차례는 아킬레우스 그 자신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로 파괴된 공동체를 자신의 죽음으로 구해내고 신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긴 수명 보다 높은 명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전쟁 최고의 영웅인 것은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최고의 인간은 겪음(고난)을 통하여 지혜로워진 성숙한 인간이며, 그 지혜의 핵심은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고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것' 이다.  아테나이 민주정이 시민의 덕성으로 훈련시키려 했던 것이 이러한 가치가 아닐까?

 

 

 

 

 

 

 

『일리아스』는 내용이나 주제뿐 아니라 그 구조에 있어서도 완벽한 문학 작품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Ring Composition, 원환 구조를 갖고 있다. 

 

강대진에 따르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전투 준비, 두 번째는 나흘 간에 걸친 전투, 세 번째는 전투 정리이다.

 

첫 번째 전투 준비와 세 번째 전투 정리 부분은 각각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권들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1권은 마지막 24권에서 모든 분노가 해소되어 헥토르의 시신을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뿐만 아니라 역병과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원인이 되었던 크뤼세이스와 트로이 전쟁을 실질적으로 끝내는 헥토르의 시신이 대구를 이룬다.  1권에서는 희랍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노예로 잡혀온 딸 크뤼세이스를 찾으로 아폴론 신전의 사제인 머리 하얀 노인이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찾아 오는데 반해,  24권에서는 머리 하얀 노인인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아가멤논은 크뤼세이스를 돌려주기를 거절하고 이때문에 희랍군에는 역병이 돌고 그 과정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희랍군에게 파멸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줌으로써 분노를 완전히 극복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다.

 

2권과 23권은 현재 영화에 빗대면 opening credit과 ending credit에 해당하는 것으로 2권 함선들의 목록은 트로이아 전쟁을 위해 희랍에서 출발한 영웅들과 함선의 수를, 23권은 헥토르를 죽이고 난 후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 참여한 영웅들을 열거함으로써, 이 전쟁에 참여한 희랍군의 면모를 일일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겐 길고 지루한 이름의 나열에 지나지 않지만,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폴리스와 지역, 집안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가슴 두근거리며 귀를 세웠으리라 짐작된다.  영화에 우리 아버지나 우리 마을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3권과 22권은 이 전쟁의 원인과 결말을 각각 상징하는 결투가 배치되어 있다. 3권의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는 헬레네의 현 남편과 전 남편의 대결로 이 전쟁의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22권은 양 진영의 최고의 영웅들의 결투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희랍군의 최종 승리를 암시하고 있다.

 

4권부터 21권까지는 나흘간의 전투 장면인데, 이 전투를 통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경과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 모습과  인간과 신으로 구성된 우주의 원리에 대한 통찰까지 담아내고 있다. 

 

나흘 간의 전쟁의 양상도 균형있게 묘사하고 있다. 첫째 날은 지난 9년 간의 전투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둘째 날부터 세째 날은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를 묘사한다.

 

둘째 날은 트로이아의 우세, 셋 째날은 각축전으로 쌍방이 3번씩 밀고 밀린다. 넷째 날은 희랍군의 우세로 끝나면서 희랍군의 최종적 승리를 보여준다.

 

 

 

 

『일리아스』에 관한 책과 강의 영상이 참 많다. 고전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든든하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파고들면 들수록 발견할 것들이 많은 텍스트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내 수준에 맞게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독해의 수준을 향상시켜 나가려고 한다.  이미 있는 것들에 보탤 것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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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9-0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겁나 알찬 페이퍼군요.... 이런 게 그냥 ‘준비‘라니....
좋아요 30개 누르고 싶습니다만 30번 누르면 0개라서;

말리 2020-09-06 20:23   좋아요 0 | URL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식으로 공부한 적 없이 끙끙거리며 고전을 읽으려니 이것 저것 찾을 때마다 새롭게 아는 것이 생기고, 이전에 잘못 안 것도 발견하니 또 부끄러워지고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읽으주시기 바랍니다. ^^;;

막시무스 2020-09-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와 신들의 계보 페이퍼를 넘어서는 역작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어요!ㅎ

말리 2020-09-06 20:27   좋아요 0 | URL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좋은 글 읽으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어린 왕자 (리커버 특별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9월부터 동네 아이들 한두 명씩과 고전을 읽기로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고전이 가당키나 할까, 회의적이었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 아이들이 천천히 책을 읽을 시간은 초등학생 때 이외는 없다. 중학생만 되면 부모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쁘다. 그 바쁜 시간 안에 무엇을 담는지 모르겠지만,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 천천히 시간을 들인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알아도 몰라야 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우리는 책 한권을 꼼꼼이, 깊이,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 된다. 

 

 

아이들과 책을 읽는 목적은 하나다. 책 읽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것이다. 어려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가며 끝까지 읽어 보는 것이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느껴보는 것이다. 분석하지 못해도 울어보는 것이다.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이 예전에 트윗에 이런 글을 남기셨다. 내가 쓴 글에 인용해 두었던 것이 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았다. 

 

 

“문학공부 : 세월호 참사로 슬퍼하는 한국인에 대한 글을 쓰라는 숙제에서 초등학생이 ‘오빠와 나는 울었다’ 로 썼다. 오빠와 네가 한국을 대표하냐고 묻는 바보도 있다. 대표는 무슨 대표, 표본이라면 모를까. 시에서는 이런 표현을 뭉뚱그려 옛날에는 상징이라”

 

“했고, 오늘날에는 보통 환유라 한다. 부분으로 전체가 아니라, 단순한 사실의 서술로 거대하거나 복잡한 현상의 징후를 드러내는 장치. 가장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은 은유가 아니라 환유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남매와 함께 울어야 아는 것이라서.”

 

“은유는 보통 자기에게는 확실하나 다른 사람은 아직 감지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한다. 환유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뭉크가 불안한 사람을 그릴 때 그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겠는가. 고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은유는 의미를 내포한다. 환유에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좋은 환유는 사실상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환유에서 의미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다면 그 환유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전체다. 그래서 환유를 읽기 위해서는 좋은 감각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환유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함께 울면 좋겠다. 함께 웃으면 좋겠다. 함께 조그맣고 동글란 얼굴을 찡그리면 좋겠다. 

 

 

 

 

 

 

 

우리의 첫 책은 『어린 왕자』 이다. 황현산 선생님이 2015년에 마지막으로 고친

번역본을 2020년에 특별판으로 간행한 예쁜 책이다. 

 

 

언제 읽어도 펑펑 울게 되는  『어린 왕자』는 내게도 특별히 특별하다.  울음으로 환유된 독해로도 충분하지만, 오늘은 나름대로 구성을 짚어 보았다.

 

 

 

 

 

 

 『어린 왕자』도 고전의 구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장미와의 불화로 별을 떠난 어린 왕자가 여러 별들과 여러 사람들을 겪으며 지혜를 얻고 자신의 장미가 있는 별로 다시 돌아가는 원환 구조이다.  화자인 비행기 조종사의 관점에서도 원환 구조는 반복된다.  어린 시절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 잃어 버렸지만 어린 왕자와의 만남과 긴 이야기를 통해, 그 간접의 겪음을 통해 지혜를 얻고, 다시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 원환 구조가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떠나온 별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와 잃어 버린 어린 마음을 다시 찾은 '나'를 통해 우리로 어디론가 돌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전의 영웅은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pathei mathos!" 

pathos- passion은 겪음이며 고난이자 열정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겪음을 함께하는 것, compassion - 공감하는 것이다.  영웅의 여정을 함께하며 영웅이 얻은 지혜를 나누어 가지는 것, 그것이 고전 읽기의 궁극 목적이다.

 

 

 

 

 

 

'어른들을 위한 『어린 왕자 해설』에서 황현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 이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막에서 불쑥 사라지는 것은 세상이 사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막은 아름답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별들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어린 왕자가 있기 때문이지. 너의 마음 속에도 어린 왕자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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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의 기쁨,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마지막 강의는 110회 영웅의 시대다.

 

 

 

 

 

영웅 종족은 반인반신이다.  모계나 부계 둘 중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니 혼혈인 셈이다. 기원전 13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 이후 지상에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철의 종족은 처절한 인간의 시대를 연다. 역사상으로도 철기의 시대는 전쟁과 제국의 시대이다.  값싸고 단단한 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는 인구의 증가와 전쟁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전쟁의 확대는 영토의 확대로 이어져 드넓은 제국이 탄생했다.  

 

탁월한 개인보다 잘 훈련된 조직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아마도 영웅은 설 자리를 잃었으리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마지막 영웅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아킬레우스는 단명-명예와 장수-평범이란 두 운명 사이에서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영웅의 길을 선택했다.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귀향에 성공하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서사시에서도 영웅은 사라지고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영웅의 종족은 사라졌으나, 영웅은 서사시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희랍적 영웅은 "인간의 한계 너머를 열망하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나, 그 한계에 부딪혀 파멸하는 비극적 존재" 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한계 너머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그 열망이 없다면 인간은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세계를 구원한다는 마블 코믹스의 근육질 OO맨들이 영웅 행세를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자기 안의 영웅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희랍의 대표적 영웅,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정화 의례이다.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인 헤라클레스는 자식들을 죽이는데, 이 죄를 씻기 위해 12가지 과업을 수행한다.  영웅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었으나, 죽음으로 정화되어 신이 된 존재이다.

 

 

 

 

 

 

희랍 비극의 기원인 디오뉘소스이다.  올림포스 12신에도 들어가지만 태생은 반인반신의 영웅 종족이다. 역시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여 방랑하지만 포도주의 신, 농업의 신, 생산의 신이 된다.  희랍 비극은 농사를 시작하기 직전 디오뉘소스 축제 때 신에게 바쳐진 찬가이자, 정화 의례이다.

 

 

 

 

조금 낯설지만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헤라클레스, 디오뉘소스, 아스클레피오스 모두 영웅으로 태어나 죽었다가 신이 된 존재들이다.

 

 

 

 

 

페르세우스보다 더 유명한 존재가 메두사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오는 미션을 성공한 영웅으로,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유의할 점은 영화는 신화와 많이 다르다.

 

 

 

 

 

 

페르세우스가 타이탄 즉 티탄 신족들하고 무슨 상관인지 의아하지만, 영화는 이것 저것 신화를 뒤섞어 놓았다.

 

 

 

 

 

 

오뒷세우스가 고향 앗티케로 돌아오는 10년 동안 겪은 고난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오뒷세우스는 엄마와 아버지 모두 인간이다. 엄격히 말해 영웅 종족은 아니다. 물론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혈통이긴 하다.  신의 혈통이 아닌 인간이 어디 있기는 할까. 우리도 환인의 아들 환웅의 아들 단군의 자손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가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의 잔꾀에 그 모험(겪음. 파토스)을 치중하고 있는 것도 오뒷세우스가 영웅 종족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일까?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스』 의 아이네아스도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다. 패배한 트로이아의 영웅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10년간 방황한 끝에 로마에 정착한다.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조합하여 『아이네이스』 란 건국 신화를 창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첫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하기 위해서였다. 로마공화정에서 로마제국으로의 이행이 신이 정해 놓은 로마의 운명이며 번영의 길임을 노래했다.

 

 

 

 

 

기원전 13세기의 아이네아스를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된 로마의 시조로 만들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로물루스 형제의 혈통을 아이네아스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었다.  희랍보다 문명이 뒤진 로마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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