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고전 읽기 모임, 두 번째 책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통해 신들의 계보에 조금은 익숙해 졌다.  마지막 준비로 시대적 배경과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를 간단히 정리하고 『오뒷세이아』 읽기를 시작하려 한다.  

 

 

 

 

 

 

 

 

서양 문명은 지중해에서 발달했다.  지중해에서도 에게해의 크레타섬에서 서양의 첫 문명이 탄생한 것은 동방의 선행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제일 가까이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타 (미노스/미노아) 문명의 흔적은 크노소스 궁전 유적과 벽화, 신화 등으로 남아 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BCE. 6C).  항아리 그림>

 

 

지중해 문명은 기원전 1400년 이후 미케네 문명으로 중심지가 이동한다. 크레타 문명은 희랍 본토에서 내려온 미케네인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역사, 윌리엄 맥닐>

 

 

 

기원전 1500년을 전후로 유라시아 전대륙에 걸쳐 청동 전차 군단을 거느린 유목민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튼튼히 뿌리 내린 서아시아와 이집트 문명은 멸망을 면하고 회복했지만, 지중해와 인도 그리고 중국은 최초의 문명이 몰락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  미케네 문명도 이때 탄생한다.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 오디세이아. 플라톤 아카데. 강대진 https://youtu.be/jTvwnGE-anY>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하여 유목민들의 대대적인 침략이 또 한번 일어난다. 이 침략으로 청동기 시대는 끝나고 철기 시대가 도래한다. 지중해도 청동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약 400년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기원전 8세기 에게해 주변의 소아시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에는 놀랍도록 완숙한 문화가 피어난다. 고대 희랍의 이른바 폴리스 시대이다.  암전 이후의 화려한 무대처럼, 갑자기 등장한 찬란한 문화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서양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후 고대 희랍의 폴리스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문자가 없어서 기록된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의 시기에는 선문자 B라는 음절 문자가 있었던 반면, 문자 없는 암흑기를 거쳐 고대 희랍 시대는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한 음소 문자가 만들어졌다.

 

 

 

 

 

<차이나는 클라스. 강대진. 희랍 비극>

 

 

여기서 잠깐, 그리스를 희랍으로 번역하는 학자들이 많다.  Greece는 로마인들이 발칸 반도의 서남쪽 희랍인들을 라틴어로 Graecia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영어식 명칭이다. 희랍인들은 스스로를 Hellas (물론 이것이 희랍문자는 아니지만;;)라고 부른다.  헬레네스들(헬라스 사람들)이 헬라스라고 하는데 남들이 굳이 그리스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헬라스를 음차한 것이 희랍이니 특히 원전 번역에서는 책에 나오지도 않는 그리스보다는 음차하여 희랍으로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EBS 지식의 기쁨>

 

 

 

 

헬라스는 헬렌의 후손이란 뜻으로 희랍의 홍수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제우스의 분노로 인간을 절멸시킬 대홍수가 발생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아들 데우칼리온 부부에게 미리 대비하라고 말해준다.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데우칼리온 부부의 아들이 헬렌이고, 희랍인들은 자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헬라스, 헬레네스, 헬레니즘은 모두 헬렌에 그 어원이 있다.

 

 

 

 

 

 

희랍의 폴리스 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되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했다. 전성기는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한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까지인 기원전 5세기 이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후에는 로마가 패권을 차지했다가, 중세가 되어서야 서유럽이 서구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동양 문명의 빛이 가장 일찍 도달한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 반도, 유럽 서북부로 중심지가 이동하고 있다.

 

 

 

 

 

고대 희랍의 전성기에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수백 개의 폴리스가 세워졌다.  

 

 

 

 

 

고대 희랍 문명의 중심지는 아테나이다. 아테나이는 민주정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도 만개했다.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와 함께 완결되었고, 이후 서정시를 거쳐, 기원전 5세기에는 비극의 시대가 구가되었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서사시와 서정시는 궁전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음송된 반면, 비극과 희극은 시민들이 원형 공연장에서 다 같이 관람하였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장르의 변천은 특정 시기 역사적 상황과 그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비극 공연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성과일 뿐 아니라 민주정체를 위한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는 교육이었다.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가 대표작이고, 희랍 비극은 3명의 비극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데, 그 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희랍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희랍 세계는 전체적으로 몰락하는데, 희랍의 쇠퇴와 함께 전성기를 맞는 것이 희랍 철학이다.

 

 

 

 

 

 

 

희랍의 서사시와 비극은 기원전 8세기 이후에 발전하였으나, 이 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신화들이다. 특히 미케네 문명기의 헤라클레스 신화, 테바이 전쟁,  트로이 전쟁에 관한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천이다.

 

 

 

 <일리아스 해설. 천병희 역>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미케네 문명이 파괴된 이후 이른바 암흑기 동안 여러 형태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이 폴리스 시대에 와서 호메로스에 의해 완벽한 구성을 가진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호메로스 시기에는 음송되던 서사시들이 정확히 언제 기록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메로스는 실존 여부에 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8세기에 이오니아 지방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가 서양 정신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동양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호메로스가 서양 최초의 서사시 작가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최초의 서사시는 수메르인의 것이라는 말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반인 반신의 인간, 영웅의 성장담, 필멸의 신과 불멸의 인간, 죽음에 대한 고뇌와 수용, 공동체를 구하는 명예 등의 주제 뿐만 아니라, 구성에 있어서도 집을 떠나 온갖 고난을 겪고 지혜로움을 얻어 귀향하는 원환적 구조도 상당히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역사』에서 윌리엄 맥닐은 문명의 발생과 전파, 상호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여기에서 문명의 선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명의 중심지는 변화하고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서양 문명을 비롯한 각종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메소포타미아가 우등하다는 것도 길가메쉬가 최고라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우열로 문명을 가리는 것부터가 미개하다.

 

 

 

 

 

 

『일리아스』를 읽지 않았다고 『오뒷세이아』를 못 읽는 것은 아니다.  고전기 희랍 문학을 전공한 강대진은 여러 강의에서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일리아스』 읽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중  『일리아스』가 전쟁 자체를 다루고, 『오뒷세이아』가 전쟁 이후의 귀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더 좋기는 하다. 

 

그렇다고 두 서사시가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서사시권'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데,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서사시 총 8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온전히 전하고 나머지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서사시권을 트로이아권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테바이 신화를 다루는 테바이권과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2%AC%EC%8B%9C%EA%B6%8C

 

 

 

 

 

서사시권들은 미케네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신화에 따르면 영웅 종족은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을 끝으로 인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김헌. 지식의 기쁨>

 

 

 

트로이아 전쟁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과 아버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이 결혼식장에 던지고 가버린  '황금 사과'가 최초의 원인이 된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씌어진 황금 사과를 차지하려고 여신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고, 골치가 아파진 제우스가 이 문제를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기는 바람에 졸지에 신들의 싸움에 인간 세상이 끌려 들어간 사건이다.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넨 대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아로 달아나는데 성공하고, 격분한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희랍 동맹군을 형성하여 10만의 희랍군이 트로이아 원정에 나선 것이 이른바 트로이아 전쟁이다.

 

 

 <일리아스>

 

 <일리아스>

 

 

 

황금사과가 던져진 결혼식에서 탄생한 영웅이 아킬레우스이니, 호메로스가 이 전쟁을 노래하며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초점을 맞춘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절묘하다. 아킬레우스는 이 전쟁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다.

 

 

 

 <일리아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영웅들의 능력보다는 신들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 희랍인들에게 신이란 어떤 의미인지, 신이 인간의 내면을 외형화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를 생각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를 읽기 전에 희랍 신화를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의 아주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 전쟁의 원인이 된 황금사과와 파리스의 심판도, 헬레네와의 도주도, 전쟁을 끝낸 트로이아의 목마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탄생과 종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일리아스>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전체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우주의 원리까지 담아낸 총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전쟁 중간 중간에 묘사된 인간의 모습 특히 죽어가는 자의 가족과 일상에 대한 감성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에 대한 사유와 반성을 촉구하게 된다.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이라는 대립 구도는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우주의 원리에 대한 사유이자,  인간 존재의 한계 속에 참다운 인간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뇌 어린 질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수용하는 아킬레우스의 명예로운 행위는 불멸의 신이 아닌 필멸의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가치이다.  짐승과 같은 욕망으로 날뛰던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복수의 일념으로 적장 헥토를 죽이고 그 시신을 끌고 다니며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만나며 모든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고 시신을 넘겨주는 것도, 모두 인간이기에 가능한 변화하는 모습이다. 이미 완벽한 신은 무엇으로 변화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고, 끝나지 않는 영겁의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지만 또한 축복이기도 하다.

 

 

 

 <향연>

 

 

 

플라톤의 『향연』에도 지혜를 추구하는 중간자로서의 에로스를 찬양하고 있다.  인간은 중간자이다.  짐승과 신의 중간자로서 한계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욕망, 그 에로스가 인간을 변화와 성장으로 이끄는 동력, 인간적 가치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가 뚜렷한 고대 희랍의 사유에서 이 에로스적 열망과 궁극적 좌절이 비극을 만들어 낸다.

 

 

 

<일리아스>

 

아킬레우스는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간 아가멤논에 분노하여 전쟁에 나가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청하여 자신이 참전하지 않는 한 희랍군이 패배하도록 제우스를 설득하게 만든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희랍군의 수많은 영웅들을 개떼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

 

 

 

 

 

제우스의 뜻에 따라 전쟁은 혼전의 양상을 거듭하다가 아킬레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희랍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자 아킬래우스의 분노는 적장 헥토르를 향한다.

 

 

 

 <일리아스>

 

 

헥토르를 죽이고 희랍군을 파멸에서 구해내는 것은 아킬레우스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다.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헥토를 죽이면, 그 다음 죽음의 차례는 아킬레우스 그 자신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로 파괴된 공동체를 자신의 죽음으로 구해내고 신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긴 수명 보다 높은 명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전쟁 최고의 영웅인 것은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최고의 인간은 겪음(고난)을 통하여 지혜로워진 성숙한 인간이며, 그 지혜의 핵심은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고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것' 이다.  아테나이 민주정이 시민의 덕성으로 훈련시키려 했던 것이 이러한 가치가 아닐까?

 

 

 

 

 

 

 

『일리아스』는 내용이나 주제뿐 아니라 그 구조에 있어서도 완벽한 문학 작품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Ring Composition, 원환 구조를 갖고 있다. 

 

강대진에 따르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전투 준비, 두 번째는 나흘 간에 걸친 전투, 세 번째는 전투 정리이다.

 

첫 번째 전투 준비와 세 번째 전투 정리 부분은 각각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권들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1권은 마지막 24권에서 모든 분노가 해소되어 헥토르의 시신을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뿐만 아니라 역병과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원인이 되었던 크뤼세이스와 트로이 전쟁을 실질적으로 끝내는 헥토르의 시신이 대구를 이룬다.  1권에서는 희랍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노예로 잡혀온 딸 크뤼세이스를 찾으로 아폴론 신전의 사제인 머리 하얀 노인이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찾아 오는데 반해,  24권에서는 머리 하얀 노인인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아가멤논은 크뤼세이스를 돌려주기를 거절하고 이때문에 희랍군에는 역병이 돌고 그 과정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희랍군에게 파멸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줌으로써 분노를 완전히 극복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다.

 

2권과 23권은 현재 영화에 빗대면 opening credit과 ending credit에 해당하는 것으로 2권 함선들의 목록은 트로이아 전쟁을 위해 희랍에서 출발한 영웅들과 함선의 수를, 23권은 헥토르를 죽이고 난 후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 참여한 영웅들을 열거함으로써, 이 전쟁에 참여한 희랍군의 면모를 일일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겐 길고 지루한 이름의 나열에 지나지 않지만,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폴리스와 지역, 집안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가슴 두근거리며 귀를 세웠으리라 짐작된다.  영화에 우리 아버지나 우리 마을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3권과 22권은 이 전쟁의 원인과 결말을 각각 상징하는 결투가 배치되어 있다. 3권의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는 헬레네의 현 남편과 전 남편의 대결로 이 전쟁의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22권은 양 진영의 최고의 영웅들의 결투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희랍군의 최종 승리를 암시하고 있다.

 

4권부터 21권까지는 나흘간의 전투 장면인데, 이 전투를 통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경과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 모습과  인간과 신으로 구성된 우주의 원리에 대한 통찰까지 담아내고 있다. 

 

나흘 간의 전쟁의 양상도 균형있게 묘사하고 있다. 첫째 날은 지난 9년 간의 전투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둘째 날부터 세째 날은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를 묘사한다.

 

둘째 날은 트로이아의 우세, 셋 째날은 각축전으로 쌍방이 3번씩 밀고 밀린다. 넷째 날은 희랍군의 우세로 끝나면서 희랍군의 최종적 승리를 보여준다.

 

 

 

 

『일리아스』에 관한 책과 강의 영상이 참 많다. 고전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든든하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파고들면 들수록 발견할 것들이 많은 텍스트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내 수준에 맞게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독해의 수준을 향상시켜 나가려고 한다.  이미 있는 것들에 보탤 것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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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9-0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겁나 알찬 페이퍼군요.... 이런 게 그냥 ‘준비‘라니....
좋아요 30개 누르고 싶습니다만 30번 누르면 0개라서;

말리 2020-09-06 20:23   좋아요 0 | URL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식으로 공부한 적 없이 끙끙거리며 고전을 읽으려니 이것 저것 찾을 때마다 새롭게 아는 것이 생기고, 이전에 잘못 안 것도 발견하니 또 부끄러워지고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읽으주시기 바랍니다. ^^;;

막시무스 2020-09-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와 신들의 계보 페이퍼를 넘어서는 역작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어요!ㅎ

말리 2020-09-06 20:27   좋아요 0 | URL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좋은 글 읽으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