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의 기쁨,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마지막 강의는 110회 영웅의 시대다.

영웅 종족은 반인반신이다. 모계나 부계 둘 중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니 혼혈인 셈이다. 기원전 13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 이후 지상에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철의 종족은 처절한 인간의 시대를 연다. 역사상으로도 철기의 시대는 전쟁과 제국의 시대이다. 값싸고 단단한 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는 인구의 증가와 전쟁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전쟁의 확대는 영토의 확대로 이어져 드넓은 제국이 탄생했다.
탁월한 개인보다 잘 훈련된 조직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아마도 영웅은 설 자리를 잃었으리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마지막 영웅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아킬레우스는 단명-명예와 장수-평범이란 두 운명 사이에서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영웅의 길을 선택했다.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귀향에 성공하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서사시에서도 영웅은 사라지고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영웅의 종족은 사라졌으나, 영웅은 서사시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희랍적 영웅은 "인간의 한계 너머를 열망하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나, 그 한계에 부딪혀 파멸하는 비극적 존재" 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한계 너머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그 열망이 없다면 인간은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세계를 구원한다는 마블 코믹스의 근육질 OO맨들이 영웅 행세를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자기 안의 영웅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희랍의 대표적 영웅,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정화 의례이다.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인 헤라클레스는 자식들을 죽이는데, 이 죄를 씻기 위해 12가지 과업을 수행한다. 영웅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었으나, 죽음으로 정화되어 신이 된 존재이다.

희랍 비극의 기원인 디오뉘소스이다. 올림포스 12신에도 들어가지만 태생은 반인반신의 영웅 종족이다. 역시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여 방랑하지만 포도주의 신, 농업의 신, 생산의 신이 된다. 희랍 비극은 농사를 시작하기 직전 디오뉘소스 축제 때 신에게 바쳐진 찬가이자, 정화 의례이다.

조금 낯설지만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헤라클레스, 디오뉘소스, 아스클레피오스 모두 영웅으로 태어나 죽었다가 신이 된 존재들이다.


페르세우스보다 더 유명한 존재가 메두사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오는 미션을 성공한 영웅으로,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유의할 점은 영화는 신화와 많이 다르다.

페르세우스가 타이탄 즉 티탄 신족들하고 무슨 상관인지 의아하지만, 영화는 이것 저것 신화를 뒤섞어 놓았다.

오뒷세우스가 고향 앗티케로 돌아오는 10년 동안 겪은 고난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오뒷세우스는 엄마와 아버지 모두 인간이다. 엄격히 말해 영웅 종족은 아니다. 물론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혈통이긴 하다. 신의 혈통이 아닌 인간이 어디 있기는 할까. 우리도 환인의 아들 환웅의 아들 단군의 자손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가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의 잔꾀에 그 모험(겪음. 파토스)을 치중하고 있는 것도 오뒷세우스가 영웅 종족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일까?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스』 의 아이네아스도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다. 패배한 트로이아의 영웅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10년간 방황한 끝에 로마에 정착한다.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조합하여 『아이네이스』 란 건국 신화를 창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첫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하기 위해서였다. 로마공화정에서 로마제국으로의 이행이 신이 정해 놓은 로마의 운명이며 번영의 길임을 노래했다.

기원전 13세기의 아이네아스를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된 로마의 시조로 만들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로물루스 형제의 혈통을 아이네아스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었다. 희랍보다 문명이 뒤진 로마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