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리커버 특별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9월부터 동네 아이들 한두 명씩과 고전을 읽기로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고전이 가당키나 할까, 회의적이었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 아이들이 천천히 책을 읽을 시간은 초등학생 때 이외는 없다. 중학생만 되면 부모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쁘다. 그 바쁜 시간 안에 무엇을 담는지 모르겠지만,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 천천히 시간을 들인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알아도 몰라야 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우리는 책 한권을 꼼꼼이, 깊이,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 된다. 

 

 

아이들과 책을 읽는 목적은 하나다. 책 읽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것이다. 어려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가며 끝까지 읽어 보는 것이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느껴보는 것이다. 분석하지 못해도 울어보는 것이다.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이 예전에 트윗에 이런 글을 남기셨다. 내가 쓴 글에 인용해 두었던 것이 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았다. 

 

 

“문학공부 : 세월호 참사로 슬퍼하는 한국인에 대한 글을 쓰라는 숙제에서 초등학생이 ‘오빠와 나는 울었다’ 로 썼다. 오빠와 네가 한국을 대표하냐고 묻는 바보도 있다. 대표는 무슨 대표, 표본이라면 모를까. 시에서는 이런 표현을 뭉뚱그려 옛날에는 상징이라”

 

“했고, 오늘날에는 보통 환유라 한다. 부분으로 전체가 아니라, 단순한 사실의 서술로 거대하거나 복잡한 현상의 징후를 드러내는 장치. 가장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은 은유가 아니라 환유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남매와 함께 울어야 아는 것이라서.”

 

“은유는 보통 자기에게는 확실하나 다른 사람은 아직 감지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한다. 환유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뭉크가 불안한 사람을 그릴 때 그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겠는가. 고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은유는 의미를 내포한다. 환유에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좋은 환유는 사실상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환유에서 의미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다면 그 환유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전체다. 그래서 환유를 읽기 위해서는 좋은 감각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환유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함께 울면 좋겠다. 함께 웃으면 좋겠다. 함께 조그맣고 동글란 얼굴을 찡그리면 좋겠다. 

 

 

 

 

 

 

 

우리의 첫 책은 『어린 왕자』 이다. 황현산 선생님이 2015년에 마지막으로 고친

번역본을 2020년에 특별판으로 간행한 예쁜 책이다. 

 

 

언제 읽어도 펑펑 울게 되는  『어린 왕자』는 내게도 특별히 특별하다.  울음으로 환유된 독해로도 충분하지만, 오늘은 나름대로 구성을 짚어 보았다.

 

 

 

 

 

 

 『어린 왕자』도 고전의 구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장미와의 불화로 별을 떠난 어린 왕자가 여러 별들과 여러 사람들을 겪으며 지혜를 얻고 자신의 장미가 있는 별로 다시 돌아가는 원환 구조이다.  화자인 비행기 조종사의 관점에서도 원환 구조는 반복된다.  어린 시절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 잃어 버렸지만 어린 왕자와의 만남과 긴 이야기를 통해, 그 간접의 겪음을 통해 지혜를 얻고, 다시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 원환 구조가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떠나온 별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와 잃어 버린 어린 마음을 다시 찾은 '나'를 통해 우리로 어디론가 돌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전의 영웅은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pathei mathos!" 

pathos- passion은 겪음이며 고난이자 열정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겪음을 함께하는 것, compassion - 공감하는 것이다.  영웅의 여정을 함께하며 영웅이 얻은 지혜를 나누어 가지는 것, 그것이 고전 읽기의 궁극 목적이다.

 

 

 

 

 

 

'어른들을 위한 『어린 왕자 해설』에서 황현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 이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막에서 불쑥 사라지는 것은 세상이 사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막은 아름답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별들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어린 왕자가 있기 때문이지. 너의 마음 속에도 어린 왕자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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