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화된 희생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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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log.naver.com/chanwoolee/221618153604>

 

 

 

<오이디푸스 왕> 은 그냥, "원전 완역을 읽었다." 로 리뷰를 끝내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니 읽을 것도 볼 것도 너무 많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에 너무도 다양한 해석이 더해져 수천 년 동안 오이디푸스가 사로잡은 정신이 얼마나 많았는 지를 짐작하게 한다.

 

 

 

 

 

 

 

'숲' 출판사의 '푸른시원'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의 끝에는 철학자 양운덕이 쓴 '『오이디푸스 왕』을 읽는 몇 가지 방식' 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다. 여기서 ' 몇 가지'는 베르낭의 해석, 지라르의 해석, 구스의 해석을 말한다. 이 세가지 해석을 엮어서 양운덕 본인의 해석을 만들어 냈으니, 이 책에만 벌써 네 가지 해석이 소개되어 있다.

 

해석은 언감생심이고 해설도 턱없지만, 여기 저기 주워 듣고 읽은 것을 짜집기 해서 읽은 흔적을 남겨둔다.

 

 

 

 <낙소스 스핑크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https://www.dailian.co.kr/news/view/452680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유래했지만 희랍으로 건너와 다른 의미를 획득했다. 인간을 해치는 괴수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고, 인간의 사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https://news.v.daum.net/v/20140720181008209

 

https://www.dailian.co.kr/news/view/452680

 

 

희랍 각 지역에서 기원전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스핑크스 상이 발굴되었다. 특히 희랍 최고의 신탁으로 숭배되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보물창고 앞, 원주 위에 서 있던 '낙소스의 스핑크스' 는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낙소스인들이 아폴론에게 봉헌한 것으로 길이 12m의 높다란 원주 위에 세워져 있다.

 

 

 

 앵그르,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08

 

 

오이디푸스가 만난 스핑크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신탁이 내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나,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스핑크스였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에게는 매우 익숙한 문제였다.  오이디푸스는 '발을 아는 자' 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30쪽>

 

 

 

오이디-푸스의 'pous'는 발이다.  'oidi'는 부은(oidos) 혹은 아는 (oida) 이다. Oidi-pous는 발이 부은 자이지만, 발을 아는 자이기도 하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바로 그 '발pous을 아는oida가' 였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답했다. 스핑크스는 자살하고, 테바이의 재앙은 사라졌다. 정답인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을 알았다. 인간에 관한 한 가장 지혜로운 인간으로 인정받은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 되고 전왕의 부인을 왕비로 얻었다. 오이디푸스의 지혜가 테바이를 구하고 오이디푸스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런데 스핑크스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오이디푸스의 무의식으로 억압되었다. 마주보고 있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마치 거울상과 같다. 이제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가 된다. 오이디푸스는 누구인가?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37쪽>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를 구한 대가로 받은 선물인 이오카스테는 전왕 라이오스의 왕비인 동시에 오이디푸스의 엄마이다. 둘은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는다. 이 네 명은 오이디푸스의 자식인 동시에 형제이다. 선물은 재앙이 되고 3세대가 뒤섞인다.

 

 

 

https://blog.naver.com/ccr124/80027071939

 

  

 

1세대는 세 발, 2 세대는 두 발, 3 세대는 네 발 이라고 생각해 보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진정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말하기 전에 오이디푸스 자신이라고 답해야 했다.  수수께끼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 "나는 무엇인가" 로 귀착된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37쪽>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생각한 자기와 정반대인 자기를 대면하고 파멸한다. 테바이의 영웅이 테바이의 재앙이고, 수수께끼를 푼 자가 수수께끼 자체이고, 가장 지혜로운 자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눈 먼자이다.

 

 

 

 <문학 고전 강의>

 

  

 

점토판에 갈대 끝으로 새긴 인류 최초의 영웅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도 질문 한다. "너는 누구인가?" 혹은 "너는 무엇인가?" "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적어도 4천년 전 무렵 길가메쉬 서사시가 토판에 쓰이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길가메쉬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너 자신을 알라고 무수히 외친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만을 알았을 뿐이다.

 

오이디푸스는 무엇을 알았는가? 이집트인의 수수께끼는 이집트인에게도 수수께끼이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하면서 인간은 인간에게 수수께끼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비유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사유이다. 의식이 인간의 주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무의식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발견을 한 이래 인간은 스스로의 주인의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쫓아낸 코페르니쿠스, 특별한 창조물의 지위에서 인간을 추방한 다윈, 그리고 인간 자신의 주인의 위치마저도 빼앗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인간의 굴욕이 완성되었다.

 

(이 책의 해설이 소개하는 '구스의 해석'에는 스핑크스를 무의식으로 보지만, 프로이트의 무의식과는 다르다. 의식적인 주체만이 무의식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며, 프로이트와 선을 긋는다 . p301~2)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40쪽>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질문을 종결짓지 못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답해지지 못했고, 오이디푸스는 그 자신이 질문이 되었다.

 

 

* 덧붙임 (2020.10.22)

 

1. 구조에 관해 :  원환적?

 

 

 

2. 주요 문제

 

 1) Who am I ? : reflection

 2) 자유 의지 : 귀책성과 윤리

 3) 희생양의 역사 : 재앙과 정화

 

 

 

 

* 여기에 사진찍어 올린 이 책의 해설 내용은 모두 베르낭의 해석에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베르낭의 해석을 따라 쓰인 것은 아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을 뿐이므로, 베르낭의 견해를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양운덕의 해설과도 거리가 있다. 그냥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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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기 위하여
    from 말리 2020-08-20 21:31 
    희랍 문화는 고대 아테나이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하여 민주정이 발전하기 시작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5세기 초에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절정기를 맞는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희랍 세계를 호령하면서 아테나이는 제국의 길로 들어선다. 아테나이의 야망에 두려움과 시기심을 느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한다. 양분된 희랍 세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27년 간의 내전을 겪
 
 
 
오이디푸스라는 수수께끼, <오이디푸스 왕>
신격화된 희생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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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 문화는 고대 아테이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하여 민주정이 발전하기 시작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5세기 초에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절정기를 맞는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희랍 세계를 호령하면서 아테나이는 제국의 길로 들어선다. 아테나이의 야망에 두려움과 시기심을 느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한다. 양분된 희랍 세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27년 간의 내전을 겪고 몰락의 길을 간다.

 

 

 

 

 

 

아테나이 문화는 페르시아 전쟁부터 펠로폰네소소 전쟁까지 이어진 기원전 5세기 전 기간에 걸쳐 피어난 눈부신 문명의 결정체다.  아테네 민주정을 정점으로 끌어 올린 페리클레스, 희랍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 서양 철학의 표상 소크라테스가 동시에 출현하였다.

 

 

 

 

 

 

 

 

서양 정신은 서사시 → 비극 → 철학으로 이어진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를 노래했던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인물로 추정된다. 서사시가 쇠퇴하고 서정시가 등장했다가 기원전 5세기에 비극의 시대를 맞는다.

 

 

 

<서양 고대사 강의>

 

 <그리스 비극 걸작선>

 

 

 

희랍 3대 비극 작가는 모두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하였다. 기원전 5세기 말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희랍의 폴리스 시대가 쇠퇴하면서 아테나이 시민들의 공적 활동도 위축되었다. 희랍에서 철학의 시대는 폴리스의 쇠퇴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테나이의 비극은 민주정과 함께 발달했다. 비극 공연은 신에게 봉헌하는 정화 의례인 동시에 시민의 덕성을 훈련시키는 교육의 장이었다.

 

 

<서양 고대사 강의>

 

 

 

비극은 수 백년 전의 신화를 소재로 하여 당대의 정치 현안과 전쟁 등을 쟁점으로 삼았다. 아테네 시민은 자신들이 참전한 전쟁을 함께 관람하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오이디푸스 왕의 가혹한 운명을 슬퍼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함께 하였다.

 

 

 

 

 

 

비극 (Tragedy)은 '염소의 노래' 란 뜻이다. 비극은 아테나이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 축제  때 경연 형식으로 상연되는데,  비극 공연 시작 전에 염소를 제물로 바친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

 

<김헌의 그리스 비극 '서구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2016>

 

 

 

비극이 공연된 극장과 비극의 구성은 현대까지 공연장과 공연물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희랍 비극의 중심은 코로스이다. 코로스가 서서 합창을 하는 자리를 오케스트라라고 하는데, 현대에는 반원형의 저 위치에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관현악단이 자리한다. 무대에는 2명 혹은 3명의 배우가 자리해 대화를 주고 받는데 코로스와 코로스 사이의 대화를 에페이소디온 이라고 한다.

 

 

 

<그리스 비극 걸작선>

 

 

 

 

도입부와 마지막 대화를 뻬면 합창 - 대화 - 합창으로 이어지는데, 이 세트는 여러번 반복된다. 희랍 비극은 코러스가 극의 흐름이나 의미를 설명하고, 배우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므로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비극 뿐 아니라 서사시에서도 주로 다루는 소재는 청동기 미케네 문명의 두 가지 전쟁이었다.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 전쟁이다. 

 

 

 

 

 

 

 

테바이 전쟁에 참여했던 영웅과 그 자식들이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테바이 전쟁이 트로이 전쟁보다 앞서있다. 기원전 13세기 경에 있었던 전쟁으로 추정된다.

 

 

 

 <오뒷세이아>

 

 

 

이 이야기들이 구전되다가 그 중 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에 의해, 테바이 전쟁은 소포클레스에 의해 탁월한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물론 여러 작가들이 이들보다 앞서 그리고 이후에도 이 전쟁에 관한 작품들을 남겼다. 테바이 전쟁에 관한 작품은 비극 이전에 서사시로 먼저 만들어진 바 있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희랍 비극의 최고 걸작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로 <오이디푸스 왕>을 극찬하면서 일찌감치 판가름이 났다. 소포클레스는 테바이의 오이디푸스 가문을 배경으로 세 편의 작품을 남겼다.  

 

 

 

 

 

 

 

 

테바이 3부작 혹은 오이디푸스 3부작으로 불리는 것으로 사건의 흐름 순으로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안티고네>가 있다.

 

 

 

 <변신 이야기>

 

 

 

테바이는 희랍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다섯 개의 폴리스들 중 하나로 카드모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오뒷세이아>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아버지 라이오스가 저지른 범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라이오스는 자신이 몸을 의탁하고 있던 궁전의 아름다운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강간을 저지르는데, 왕자의 아버지가 원한에 가득차 라이오스를 저주했기 때문이다. 라이오스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오이디푸스를 죽이려고 했으나, 그 행동이 바로 저주를 실현하는 방아쇠가 되어 오이디푸스 가문은 희랍에서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고 파멸하게 된다.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 푸랑수아 자비에 파브르> 

 

 

 

희랍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이 가문의 저주는 소포클레스의 손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비극 작품으로 탄생한다. 이제 테바이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 을 읽어 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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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독해 두 번째 책으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기로 했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오뒷세이아』' 가 입에 붙었고, 사건의 흐름으로도 『일리아스』가 먼저 이지만, 고전 초보자들인 우리는 보다 읽기 쉬운 『오뒷세이아』를 선택했다. 『일리아스』는 너무 빈번하고 상세하게 묘사되는 전투 장면들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미케네 문명 말기이고, 신화적으로는 영웅의 시대이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걸출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영웅이지만 영웅의 운명과 고난은 신에게서 기인하므로, 희랍의 신화를 알지 못하고 이 서사시들을 읽기는 어렵다.  신화를 따로 공부하기는 힘에 부칠 것 같아서 TV 강의로 대신하기로 했다. 좀 더 주의 깊게 듣기 위해서 강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강의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을 연구하는 김헌이 <EBS특강 지식의 기쁨>에서 5회에 걸쳐 방송한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강의 '최초의 신들' 을 정리하였다.

 

 

 강의는 크게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째는 왜 그리스 · 로마 신화인가?  둘 째는 서사시가 무사 여신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 · 로마 신화는 다르지만 같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기원전 8세기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다.  서양의 고대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먼저 전성기를 구가한 것은 희랍이다. 희랍은 페르시아 제국과 대결하며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기원전 4세기 경 두 세계 모두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당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짧은 통치가 끝나고 분열된 제국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대부분 (?) 로마의 영토로 병합된다.

 

희랍을 정복한 로마는 눈부신 희랍 문명에 압도당하여 헬레니즘화 한다. 이때 희랍의 신들도 이름만 로마식으로 바뀐 채 그대로 로마의 신들이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첫 번째 주제인  '왜 그리스 · 로마 신화인가?' 는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약 3천 년 전의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왜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근대화 이후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하나의 세계로 되었다는 의미는 global standardization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구가 만든 근대가 우리 시대의 표준이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고 있는 집부터 생각하는 방법까지 조선의 전통이 아니라 서양의 전통 위에 살고 있다.

 

서양의 전통을 만든 서양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문명이다. 이 문명의 핵심은  그리스 · 로마 신화이다. 신화의 상상력과 교훈이 서양 역사를 이끈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대의 서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서양 그리고 미래의 서양도 이해할 수 없다. 현재의 서양과 가까운 미래의 서양은 우리의 현재와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 자신의 오늘을 잘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내일을 잘 모색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 천년 전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이 신화는 무척 재미있다. 아무런 목적없이 읽어도 그 기발함과 분방함 그리고 심오함에 놀란다.

 

 

 

 

 

두 번째 주제는 무사 여신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무사 여신에 대한 명령으로 시작한다.  1권 1행에서 5행까지는 김헌의 번역이다. 

 

"진노를 노래하라,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진노를.

 이는 수만의 고통을 아카이아인들에게 주었고

 영웅들의 수많은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내던졌으며,

 그들 자신들은 먹이거리로 만들고 있었으니,

 개들과 온갖 새들에게,

 그리고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었나이다. "

 

 

호메로스뿐 아니라 『신들의 계보』를 쓴 헤시오도스도 무사 여신과의 만남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무사 여신은 누구인가?

 

 

 

 

 

9명의 무사 여신들은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의 딸들이다. 므네모시네는 기억의 여신이다.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 태어난 티탄 신족 가운데 하나이다. 제우스와는 고모 혹은 이모 관계이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와 전쟁을 하고 권력을 잡았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의미하므로 제우스는 시간을 극복한 신이다. 시간을 극복한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결합으로 태어난 무사 여신들은 '시간을 극복한 기억' 을 상징한다.

 

 

 

 

영원한 기억을 가진 무사 여신들이야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일 수밖에 없다. 유한한 수명의 시인들이 옛날 옛날의 신화를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무사 여신들이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무사 여신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매일 듣는 음악, Mousike는 Mous(무사여신) + ike(기술) 이다. '무사 여신들의 기술' 이 Music 이다.   

 

박물관, Museum은 무사 여신들의 신전이다. 뮤세이온은 공동체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간직하여 들려주는 박물관이 무사 여신의 집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무사 여신이 있다. 이야기가 인간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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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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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읽은 것은 책이 아니다. 점토판이다. 4,800년 전에 있었던 역사를 바탕으로 최소 4,600년 전부터 토판에 새겨 온 이야기다. 거듭 거듭 다듬고 다듬으며 전해지는 수 천년 동안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고, 그 중 가장 완성된 형태의 판본이 19세기 말, 영국인에 의해, 2,600년 전 서아시아를 통일했던 앗시리아 제국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12개의 토판 중 11개의 토판은  3,6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카시트족의 대서기관 신-리키-운니니가 개작한 판본이다. 현대의 <길가메쉬 서사시>는 대개 이 운니니 판본을 토대로 하고 있다.

 

4,600년 → 3,600년 → 2,600년 전까지 끊이지 않고 전승되었던 인류 최초의 영웅, 길가메쉬가 홀연히 나타나 오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곰을 만나기도 훨씬 전의 그 이야기가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류가 남긴 혹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문학 -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가 문학의 원형 (原型)인 동시에 완성태라고 한다면 과장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엉터리없는 감탄사에 불과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가 고전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EBS 특별기획 <통찰>에서 길가메쉬 서사시 강연을 한 배철현 교수는  영웅 이야기는 세 단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첫 째 단계가 집을 떠나는 것, 둘 째는 온갖 고생을 하며 고통을 겪는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떠났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떠날 때 얻고자 했던 것, 그 욕망을 성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떠날 때의 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그를 영웅으로 부른다. 한낱 욕망으로 가득했던 철부지를 성숙한 영웅으로 만든 것은 passion, 희랍어로 pathos 즉 겪음, 고통, 고난 이다. 고통이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한 인간의 깨달음이다.

 

 

 

 

 <문학 고전 강의>

 

 

'pathei mathos' 는 희랍에 널리 퍼진 격언으로 희랍 비극의 주제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길가메쉬 서사시』 의 序詞에 해당하는 1장도  'pathei mathos' 로 시작한다.

 

 

 

  <길가메쉬 서사시>

 

 

'모든 지혜의 정수'는 악카드어로 'nagbu/naqba' 이다. 심연 'the Deep' 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지혜'로 번역하기도 한다.  길가메쉬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nagbu를 본 자' 로,  '지혜기 망토처럼 그에게 붙어 다녔다.'  이 지혜는 '모든 것을 경험' 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는 명성을 얻고자 철없이 날뛰던 길가메쉬가 지혜로운 영웅 길가메쉬가 되어 돌아오기까지의 고난, 겪음에 관한 이야기다.

 

 

 

 

길가메쉬가 얻은 깨달음, 최고의 지혜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길가메쉬는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하던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서야 아무리 뛰어난 인간일지라도 결국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인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길가메쉬는 영생을 찾아 떠난다. 손에 넣을 뻔했던 영생은 뱀에게 도둑맞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르크에 성벽을 쌓고, 자신이 겪은 고난을 돌기둥에 새긴다. 길가메쉬는 126년 동안 우르크를 다스렸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스스로를 특수자로 인식한다. 나는 다르다는 생각, 나는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 타인들,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 겪음을 통해, 인간 일반의 성질들 즉  보편성을 획득한다. 다양한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은 말랑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인 동시에 열정이다. 지혜는 안락한 여행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잠을 잘 수 없는 고뇌 속에서 문득 깨달아지는 '가시박힌 식물' 같은 것이다. 이 가시에 찔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다. 나는 특수자인 동시에 보편자로서 인간 존재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개별자의 겪음, passion이 compassion이 될 수 있어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compassion은 'com + passion' , 고난을 함께 겪는 것이다. 함께 겪으며 함께 고통을 나누다 보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compassion을 동양에서는 慈悲, 同情이라 한다. 

 

 

 

 

 

 

 

함께 고통을 나누면  공통 감각 sensus communis 즉 공감 능력이 발달하고, 공동체의 공감 능력이 발달할수록 공동체는 공공의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얻는 지혜란 무엇인가? 무엇에 대한 지혜인가? the Deep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길가메쉬는 바닷속 심연으로 내려가서 nagbu/naqba를 보았으나 그것을 가지고 오지는 못했다. 길가메쉬가,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잃어버린 nagbu/naqba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시황이 입증했듯 불로초는 없다.) '모든 지혜의 정수'는 손에 잡히는 실체적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을 인간의 지혜로, 우리 공동체의 지혜로 삼을 것인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합의하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희랍에서는 아레테라고 불렀다. 아레테는 덕 혹은 탁월함이라고 해석한다.  커피의 미덕은 맛이고, 바이올린의 탁월함은 소리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인간의 미덕은 지혜이다. 무엇에 대한 지혜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지혜를 인간의 아레테라고 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시대의 아레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겪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고전의 기능이 있다. passion을  compassion化 하는 것이 고전의 오래된 역할이었다.  수 천 년에 걸쳐 『길가메쉬 서사시』 가 다양한 판본으로 개작되어 전승되어 온 것은 길가메쉬를 통해 시대가 추구해야 할 美德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희랍 전역에서 음송되었던 것도 아킬레우스의 영웅적 희생이 폴리스 시대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폴리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텍스트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는 축제나 각종 행사를 통해 폴리스가 직접 시민의 덕성을 담당하면서 민주정을 발달 시켰다. 그 절정이 바로 희랍 비극이다. 안티고네를 관람하면서 아테나이 시민들은 폴리스가 인간의 법 위에 서야 하는지 신의 법 위에 기초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논쟁했다.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 키토>

 

 

이것을 이데올로기 교육이라고 폄훼한다면 극단의 개인주의자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zoon politikon' 이다. 희랍의 맥락에서는 폴리스에 살지 않는 인간, 폴리스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라는 뜻이다. 현대적으로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로 의역된다.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에게는 반드시 사회적 의식이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겪음과 공감에 의해 형성되는 시대 정신이 없는 세계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거나 인간의 '세계'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개인주의는 인간을 점점 그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은 많아도 공통의 경험은 부재하고, 개별 감성은 풍부해도 공통의 감각, 공감의 능력은 부족하다. 루카치의 유명한 개탄처럼 '별이 빛나는 하늘'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고전은 우리에게 부재한 공통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제공하는 소중한 텍스트이다.  시대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이 고전의 미덕이다.  당대의 가치관을 제시하고 시대를 날카롭게 묘파할 뿐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 인간이란 존재 자체의 근원과 본질을 질문하며 탐색하고 있다.

 

고전의 질문을 이어받아 인간 일반의 보편성에 우리 시공간의 특수성을 결합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아레테, 미덕, '하늘의 별'을 합의해 낼 수 있다면, 영원한 진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고전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 되어 줄 것이다.

 

 

  <문학 고전 강의>

 

 

길가메쉬는 우르크로 돌아와 성벽을 쌓았다.  필멸의 인간이란 한계 속에서 불멸의 인간성을 공공의 영역에 새긴 것이다. 죽지 않는 인간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간의 이름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의 아킬레우스도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죽음이 예고된 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길가메쉬 이후 인간의 '불멸'은 그 이름 앞에 새겨 졌으니, 우리에게도 '불멸의 이순신' 이 있다.  공동체가 불멸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별이 빛나는 하늘' 이 있다는 것이다.  별빛을 따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동체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동네 이웃들과 4주간에 걸쳐  『길가메쉬 서사시』 를 읽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다음에 읽을 고전을 준비하는 마음은 설레인다.

 

 

 

 

추기 :

플라톤 아카데미 <지혜의 향연> 중

주원준의 길가메쉬 서사시 강의에서 캡춰.

 

https://youtu.be/JJxj0ziaFgk

 

 

1. 길가메쉬는 역사적 인물인가? : 기록들

 

 

 

2. 토판본들 

 

 

 

3. 점토문자 해독 

 

 

 

4. 최초의 '서사시' 인가?

토판본의 아카드어는 '작품' 으로 표현

 

 

 

5, 지혜는 '가시' 

 

 1) "네게 비밀을 말해주겠다. 길가메쉬, 음 ..... 무언가 하면 ..... 식물이 하나 있는데 ....... 가시덤불 같은 .......그 가시는 장미처럼 네 손을 찌를 것이다. 네 손이 그 식물에 닿으면 너는 다시 젊은이가 될 것이다!"

 2) "손은 찔렸지만 식물을 움켜잡았다."

 3) "그때 뱀 한마리가  식물의 향기를 맡고 몰래 올라와 그것을 갖고 달아났다."  (김산해 편역, p31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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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네요! 즐건 주말되십시요!

말리 2020-08-08 17:24   좋아요 1 | URL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개념들을 마구 흩뿌린 부끄러운 글입니다. 전문가 아니라는 것을 방패 삼아서 미숙하나마 이런 개념들을 한 번 다루고픈 욕심을 부려 보았습니다. ^^;; 전국이 비에 젖었지만 막시무스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그냥 2020-08-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좋은글이네요. 길가메시 서사시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한 사람으로 이렇게 꼼꼼하고 쉽게 내용을 설명해주는 글을 읽으니 참 고마운 생각이 드네요. 이글을 쓰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관계 되는 사진과 동영상을 찾았겠으며... 하여간 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말리 2020-08-09 12:54   좋아요 0 | URL
격려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길게 쓰는 편이지만 설익은 글들이라 읽어 주시는 분들께 조금 죄송하고 많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서 읽은 것들, 본 것들을 조금씩 모아 놓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서 맥락화하려 노력하는데 아직 매끄럽지 못합니다. ^^;;
 

세계사 공부는 흔히 4대 문명을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9785>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열어젖힌 것은 수메르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615

 

 

 

수메르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다. 기원전 3500년경에 본격 시작된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는 우르크였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수메르 문명은 인간이 이룩한 '최초의 성숙한 문명' 이다. 수메르가 발명한 것들의 목록에는 현재 인간이 누리고 있는 '인공물'의 원형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신화와 종교를 비롯해 군사적·행정적 제도, 관개시설과 도시, 무엇보다 문자와 학교와 서사시가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어는 쐐기문자 (설형문자)라고 불린다. 점토판에 갈대나 금속으로 새겨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뜻을 나타내는 그림문자였으나 점차 음절을 나타내는 표음문자로 바뀌어 갔다. 쐐기문자에는 수메르어 이후 서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었던 악카드문자 등이 있다.  수메르어는 악카드어의 위세에도 소멸되지 않고 신성한 문자로서 학교와 신관에 의해 전승되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점토판에는 왕의 목록이나 관직, 토지 소유권, 재산 내역, 청구서, 영수증 따위의 간단한 기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신화이자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가 있다.

 

 

 

 

 

 

 

 

 

 

 

 

 

 

 

 

 

 

 

길가메쉬는 기원전 2,800년 경 우르크 제1왕조의 5번째 왕으로 즉위하여 수메르 문명의 전성기를 이끈 역사적 인물이다.  길가메쉬에 대한 영웅담은 수메르 문명이 쇠퇴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해지며 개작을 거듭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문명의 초창기, 먹고 입고 싸우는 것만이 전부였을 것 같은 먼먼 옛날에 기껏해야 진흙 위에 갈대 끝으로 새긴 이야기가 읽을꺼리나 될까 보냐 싶다면 정말로 놀랄 것이다.  서양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원형이 여기 있으니 말이다.

 

이제 한 달에 걸쳐 천천히 지인들과 함께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을 예정이다.

 

 

 

 

  <아틀라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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