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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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ogia를 '변명'이라고 번역해야 하는지 '변론'이라고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일반적이지만, 언젠가부터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이 책은 '변명'을 옹호하는 철학과 교수 강철웅의 2020년 번역판이다.

 

 

 

변명(辨明)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또는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을 의미한다.  변론(辯論)은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짐' 또는 '소송 당사자나 변호인이 법정에서 주장하거나 진술함. 혹은 그런 주장이나 진술'을 뜻한다.  두 단어 모두 '옳고 그름을 따지고 사리를 밝힌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같은 말이다. 

 

 

 

 

 

 

<미주7>

 

 

 

학술적 논쟁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겠지만, 문제는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있는 것 같다. 변명은 잘못에 대한 인정이라는 통념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배치되고, 변론은 말을 잘한다는 느낌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의도와는 어긋난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덕(德)이라고 말한다.

 

 

 

 

<미주7>

 

 

 

변명과 변론의 '변'은 한자가 다르긴 하다. 변명은 '분별할 辨', 변론은 '말잘할 辯'이 쓰인다.  변명이 되었건 변론이 되었건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옳고 그름을 가리고' 무엇의 '사리를 밝혔'는가 이다. 

 

 

 

 

 

 <작품안내>

 

 

 

고전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책은 내용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작품의 구성도 눈여겨 보려고 노력한다. 고전은 첫 문장이나 서사(序詞)에 주제가 축약되어 있다.  고전 강의에서 강유원 선생은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책의 전체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그 분노가 해소되는 것으로 끝난다.  호메로스는 이 철없는 영웅의 분노를 따라가며 한 인간의 성장과 트로이 전쟁의 전말과 인간세계는 물론 신의 세계까지 모두 담아낸다.

 

 

 

 

 

<17a 주> 

 

 

 

 

『소크라테스의 변명』(이하 『변명』)은 '모른다'로 시작해서 '모른다'로 끝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너 자신을 알라' 이다. (물론 이 명언의 출처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이고,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비틀어 써먹었다.)  그런데 정작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할 때, 진짜 아무것도 몰라도 단 하나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든 '모른다'에는 이 앎이 내포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거나, 아예 그 대상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의 지혜롭다고 소문난 시민들을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소위 논박술을 구사하여 막다른 골목으로 끝까지 몰고가 실토하게 만든 단 하나의 진실도 바로 '나는 모른다' 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에는 생략된 것이 있는데, '무지' 이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이 '너'에는 소크라테스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인간이 알아야만 될 단 하나의 진실이 바로 무지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신이 부여한 자신의 소명이자 아테나이 시민에 대한 자신의 봉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자는 거의 없다. 수많은 청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참하게 논박당하여 어쩔수 없이 승복했다 하더라도 가슴속에는 불타는 증오가 이글거릴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 시민의 분노와 적개심이 생명의 위협이 됨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칠순의 나이에 재판정에 불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소명과 봉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피고 진술 즉 항변(apologia) 자체를 일종의 논박으로 바꾸고, 배심원에 대한 호소를 아테나이 시민에 대한 마지막 유언으로 삼아서, 소크라테스는 무지에 대한 지를 역설한다.

 

 

 

 

<해설>

 

 

왜 '나는 모른다' 에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앎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신은 앎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에 무지한 자는 앎을 갈망하지 않는다.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소크라테스적 맥락에 접목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라면 앎을 욕망한다.  앎에 대한 욕망은 無知에 대한 知에서 시작되니, 인간이라면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경구, "너 자신을 알라."는 신이 아니라 한갓 인간임을 잊지 말라는 신의 경고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경구의 숨은 뜻을 멋지게 바꾸어 놓는다. 인간은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동물적 한계에서 벗어나 신적 앎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인간은 동물과 신의 중간자이다.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신을 향할 수는 있다.  육체의 불로와 영생이 신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의 앎이 신적인 것이다. 앎을 추구한 인간의 학문이  philo-sopia로 불린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중간자인, 인간의 운명을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42a 주>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세 번의 연설을 한다. 첫 번째는 유무죄에 관련된 항변 연설이다. 배심원으로 구성된 재판관들은 유죄를 결정한다. 둘째 연설은 형량 제안 연설이다.  원고가 형량을 제안하면, 피고는 대안 형량을 제시한다. 배심원들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테나이 시민들에 대한 훈계와도 같은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연설은 원고가 제안한 사형이 채택되게 만든다. 재판이 끝난 후 행정 절차를 밟는 잠깐의 빈 시간 동안 소크라테스는 사형 투표자와 무죄 투표자에게 각각 마지막 연설을 한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연설을 끝맺는다. 신이 아닌 인간은 삶이 좋은지 죽음이 좋은지 모른다. 아테나이라는 덩치 크고 굼뜬 말(馬)의 등에가 되기로 결심한 소크라테스는 전 생애를 '나는 모른다' 를 위해 살았고, 그의 사형을 선고한 재판정에서의 연설 또한 '나는 모릅니다'로 시작해 '그 누구에도 분명치 않습니다.' (누구도 모른다)로 끝낸다.

 

 

 

『변명』은 고전의 전형적 구조인 ring composition이며, 이 원환 구성은 소크라테스 사상의 거의 유일한 핵심인, 無知의 知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른다.'는 부끄러운 고백이 아니다. 앎이 최고의 덕인 진정한 인간이 되겠다는 존엄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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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대개 文史哲로 구성되어 있다. 우연인지 기획인지 모르겠지만 문사철의 조합 순서는 희랍 문화가 전성한 순서이기도 하다. 기원전 8C에서 기원전 5C 사이에는 문학,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역사, 기원전 4세기에는 철학이 꽃피었다. 서양 고전 읽기는 희랍 고전에서 출발하고, 희랍 고전은 문학 - 역사 - 철학의 순서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반인에게 희랍의 역사는 적잖이 버겁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읽어야 할텐데 , 번역본으로 800~900쪽에 이른다. 분량보다 둘 다 특정한 전쟁을 상세히 다루고 있고, 지중해 세계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이합집산을 파고들어야 하니 여간 머리가 아프지 않다. 숲 출판사의 천병희 선생 번역판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읽고 있는데, 등장하는 폴리스와 그들의 식민시만 해도 구분하기가 벅차다. 총 8권 중 4권까지 읽었는데, 전쟁을 독려하는 연설이나 동맹과 화해 등을 위한 사절단의 연설 등, 어느 폴리스를 막론하고 기본으로 구사하는 그 화려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연설이 아니었다면 계속 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 고전 읽기 모임은 서사시와 비극 다음으로 역사를 건너뛰고 철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언뜻 듣기에는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 역사보다 철학이 더 어렵다는 것은 통념이 아닌가. 칸트나 헤겔을 생각하면 물론 그렇다. 하지만 플라톤은 조금 다르다. 철학의 양대 산맥이라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고 철학을 말할 수도 없지만, 이들의  철학은 완전히 접근 불가는 아니다. 특히 플라톤은 더 그렇다. 일단 문학의 형식을 빌고 있기 때문에 플라톤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읽는다면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이 참 많고, 너무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주인공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고, 누구 말이 맞는지도 아리송해서 다 읽고 난 뒤에도 좀 찜찜한 느낌이 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가 옳은지를 작가가 가르쳐 주는 것보다 내가 다시 추론하고 판단해 볼 수 있으니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희랍 철학 읽기의 계획은 대충 이렇다.  시대적 배경을 조금 알아보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아주 조금만 공부한 다음 바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일 것 같다.   『향연』은 훌륭한 문학 작품인 동시에 플라톤의 '형상론'을 배워 볼 수 있는 철학 텍스트이다. 두 책 모두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해줄 뿐 아니라 철학함의 태도에 대한 실천적 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를 빼놓고 플라톤을 읽었다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클 수밖에 없지만, 철학 초보자들에게 『국가』가 당장은 무리임에도 틀림이 없다.  아쉽지만 일단 『국가』는 강좌를 통해 개략적인 이해를 하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 다행히 플라톤에 대한 공신력 있는 강의는 대부분 『국가』를 주제로 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독서는 '꼼꼼히 읽기' , 한때 close reading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여튼 한 줄 한 줄 다 같이 읽으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https://youtu.be/cf75J4GhuhY

https://youtu.be/zSSQ8YI7v8U

 

 

 

 

1. 시대적 배경

 

 

 

 

청동기 문명이 끝나고 철기 시대로 이행하면서 희랍 세계는 300~400년 동안의 암흑기를 거쳤다. 도리에이스족으로 대표되는 침입자에 저항하며 작은 규모의 정치 공동체가 에게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암전 이후 갑자기 환한 불빛이 쏟아지듯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폴리스 시대는 눈부신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에게해의 세계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기원전 5세기 초, 거대 제국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며 고대 희랍 세계는 절정을 맞이한다. 승리의 주역 아테나이는 희랍의 맹주로 부상하고, 안으로는 민주정을 밖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인류가 깜짝 놀랄만한 성숙된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스 지도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테나이 제국의 팽창은 희랍 폴리스 세계에 내분을 일으키고, 결국 양분된 희랍 세계는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27년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게 된다.

 

 

 

 

 

전쟁은 '난폭한 교사'로,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아테나이가 자랑했던 민주정은 순식간에 탐욕에 사로잡힌 시민과 그들을 부추겨 권력을 탈취하려는 야심가들의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한다.  페리클레스의 죽음 이후 아테나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클레온은 전형적인 민중 선동가였다.

 

 

 

 

 

말은 믿을 것이 못되고, 정의보다는 사적 이익이, 정당한 판결보다는 보복이, 법보다는 폭력이 난무했다.  

 

 

 

 

 

 

희랍 세계 전체가 타락했다. 이렇게 27년이 지나자 전쟁은 끝났지만 폴리스는 더 이상 폴리스가 아니었다.  폴리스는 정치 형태일 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였고, 시민의 목소리였고, 시민의 자부심이자, 시민의 삶 그 자체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희랍 폴리스 시대는 급속히 몰락하고 있었으므로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2세가 아니었다 해도 폴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패배한 아테나이는 파괴를 가까스로 면했지만, 30인 참주정과 민주정의 부활을 겪으며 공포와 복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년을 채 못간 참주정을 이끈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외당숙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민주정 옹호자들의 보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은 이 때문이다.  플라톤이 민주정을 참주정 다음으로 나쁜 정체로 생각했던 것도 민주정이 몰고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실상과 폴리스의 붕괴를 뼈져리게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2.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469)년에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말은 '너 자신을 알라'로 회자되지만, 이 경구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맥락을 덧붙여 즐겨 사용했던 말일 뿐이다. 델포이 신전의 아폴론은 너 자신이 '인간'임을 알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너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한다며 돌아다녔다.

 

 

 <강유원의 인문고전강의>

 

 

 

소크라테스가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훌륭한 격언을 공손히 전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가 기진맥진하여 두 손을 들때까지 몰아 붙이는 방식으로 상대의 자복을 받아냄으로써 그들의 무지를 입증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무지를 깨달은 시민들 중 열에 아홉은 분노와 적개심에 이를 갈았을 것이고, 한 명쯤은 소크라테스의 추종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기술을 변증술이라고 한다.  변증술은 논박술과 산파술로 구성되어 있다. 논박술은 꼬치꼬치 캐묻는 대화법인데, 상대를 몰아 붙이는 소피스트적인 현란한 기교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소피스트' 였다.

 

 

 

 

 

소크라테스가 무너뜨리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믿고 있던 상식과 전통 즉 에토스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신화, 서사시, 비극 등의 작품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를 진리라 생각했다. 또한 경험적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순투성이다. 희랍의 신들은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서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싸우기 일쑤이고, 아테나이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올바름과 동맹국들에게 요구하는 올바름을 정반대로 규정하면서도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경험이나 관습이 서로 모순됨을 보여줌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즉 귀납적인 논구를 통해 보편적 정의를 확립함으로써, 삶의 기준을 에토스에서 로고스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아고라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던 이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끝까지 몰아 붙이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은 끓어 오르는 적개심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였다.  설득보다는 분노를 자아내는 논박술이 소크라테스의 목적에 적절한 대화법인지를 물어 볼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런 고민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완전히 합의되지 못한 점들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한 권의 책도 저술한 적이 없고 오직 아고라를 돌아 다니며 사람들을 붙들고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특히 플라톤에 의해 전해지는 것들 뿐이다.

 

 

 

 

 

가장 일반적인 구분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늙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데 거의 소크라테스 자신의 사상에 가까운 반면, 중기 이후의 대화편들은 젊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다가 마지막에는 소크라테스가 사라지는데, 점차 플라톤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것임이 분명한 명제 하나는 덕은 곧 앎(지식)이라는 것이다. 덕(arete)은 탁월함인데, 기능적 탁월함과 더불어 도덕적 탁월함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희랍 철학은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사물은 나름의 탁월함을 가지는데,  인간의 탁월함은 바로 앎이다. 앎은 행복한 삶의 토대이다.  신적 앎에 이르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의 무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것이고, 플라톤은 진정한 앎은 영혼이 이데아를 보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 안에서 그 앎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3. 플라톤

 

 

 <세상의 모든 철학>

 

 

 

기원전 427년 전통적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기원전 347년에 죽었다. 귀족 출신답게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과두정과 민주정의 혼란을 겪고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정 아테나이의 동료 시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정치의 뜻을 버리고,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엘리트 교육에 헌신했다.  원형 극장의 비극 공연 등에 의한 대중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국가』에서 보여준 이상적인 철인 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에 직접 나섰던 것일까?

 

 

 

 

 

 

 

 

 

 

 

 

 

 

 

 

 

 

플라톤을 통해 그리스 문화를 이해하고 싶든, 그리스 문화를 통해 플라톤에 친근히 접근하고 싶든, 최근에 출간된 이 책이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암 학당이 기획하고 운영한 <크로스토크 고전인문학 강좌>의 일부를 정리하여 출간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이름이 있어 특히 반가웠다.

 

이 책에 의하면 플라톤의 대화편 dialogos는 "logos를 주고 받는 것" 이란 의미이다. 등장 인물들이 대화하는 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 때문에 플라톤을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저술가인 동시에 천재적인 극작가"로 평하는 학자도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총 36편인데 위작 논란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30편으로 추정된다. 대화편의 제목은 대개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상대의 이름이다. 저술 연대가 명확하지 않고, 흔히 나누는 초기, 중기, 후기 작품으로의 분류도 학자들간 이견이 여전하다.

 

 

 

 <세상의 모든 철학>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형상론이다.  세계는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현상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경험적으로 보고 감각할 수 있는 사물들의 세계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영혼으로 보고 누스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의 세계, 즉 이데아가 진짜 세계이다.  현상의 세계에 사는 인간이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로고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박종현 해설>

 

 

 

소크라테스가 논박술을 통해 경험과 관습의 모순을 드러냈던 이유는 현상의 세계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귀납적 논구의 과정을 거치면 보편적 정의, logos에 이를 수 있다.  logos는 다양한 뜻을 가진다. 말, 논리, 이성, 보편 정의된 개념 등이다.

 

대상에 대한 개념은 대상의 형상을 보여준다.  경험적 올바름은 수없이 많지만, 올바름 그 자체를 구현하지는 못한다. 어딘가 부족한 면들이 있다. 그러나 올바름이라는 개념은 올바름 그 자체를 정의해 준다. 대상에 대한 보편적 정의(logos)를 통해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형상을 인식할 수 있다.

 

 

 

 

 

 

 

이데아는 이 땅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플라톤도 알았다.  『국가』에서 올바름을 정의(定義)하기 위해 이상 국가를 수립하는 긴 작업을 수행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말을 순순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본(本. paradeigma)처럼 하늘에 바쳐져 있다.

 

 

 

 

 <국가. 박종현 해설>

 

 

 

 

 

 

 

 

 

 

 

 

 

 

 

本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다르다. 누구든 그것을 보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따라 걷는다. 우리는 올바름의 logos를  本으로 삼아 올바름 그 자체의 개념에 가깝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 앎은 경험이 아니라 보편 개념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 보편 개념이 우리를 형상들이 있는 이데아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아테나이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자의 세계를 저 너머 이데아의 세계로 이끄는 길(道)이라고 플라톤은 말하고 있다.

 

 

 

 

 

 

 

플라톤의 형상론은 계서적이다. 모든 대상은 각각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대상은 개념 정의되어 있다.  이 형상들은 하나의 질서 아래 위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체계의 정점에는 '좋음 agathon의 형상' 이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돈을 벌든, 교육을 하든, 정치를 하든, 예술을 하든, 봉사를 하든, 궁긍적으로는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다시 말해 좋음을 향해 있는 것이다. 좋음의 형상이  삶의 본(本)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먼저 좋음 그 자체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음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플라톤이 형상들이 모여 있는 이데아의 세계를 만든 것은 여기 현상계를 버리고 저기 이데아의 세계로 날아 오르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 현상계의 삶이 누구에게나 '좋음' 일 수 있도록 저기 이데아의 형상들을 本 삼아 살아 가자고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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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누르면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하는 란이 있다.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웃음이 났다. 스포일드 안된 고전이 있나!  고전을 읽게 된 이유 자체가 그 무지막지한 후광을 가진 '스포일러' 때문인데.  

 

 

 

 

 

 

내게 『모비 딕』의 스포일러를 준 것은 강유원의 『문학 고전 강의』이다.  『모비 딕』은 강유원 선생의 '고전 강의'라는 긴 항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이 강의들을 따라 古典을 읽는 법을 배운 나도 감회가 남다른데, 정작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선생 자신이야. 아마도 그 마음이 『모비 딕』에 담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멜빌이 말하듯 "우리가 더는 닻을 올리지 않아도 될 마지막 항구"는 없으니, 강유원 선생은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모비 딕』은 리뷰를 쓸 수가 없다.  이 거대한 고래가 피쿼드호를 향해 곧장 돌진해 순식간에 침몰시켰듯이 태평양만큼이나 광대한 이 책은 곧장 나를 덮쳐 사로잡았다. 하지만 고래잡이 배는 커녕 크루즈선도 타본 적이 없는 나는 이슈미얼처럼 거대한 심연 속에 살아남아 "당신께 고하러 왔나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성경을 옆에 놓고 읽었고, 고래와 고래잡이에 대한 논문같이 길고 해박한 설명이 놀랍게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울렁이는 파도 위에 작살을 치켜들고 고래를 쫓는 생생한 느낌 속에 몇 날을 보냈다고는 할 수 있다.

 

황유원이 옮긴 문학동네 완역본을 선택한 이유는 우연이겠지만 옮긴이의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해양학은 몰라도 종교와 철학을 모르고서는 『모비 딕』을 옮길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피쿼드호가 무엇이고, 모비 딕이 무엇이고, 에이허브가 무엇이고, 스타벅이 누구이고, 이슈미얼이 누구인가는 읽는 사람마다 수많은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하지만 특히나 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리뷰를 쓸 수가 없다.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도 고난은 끝이 없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짧지만 달콤한 휴식이 주어졌다.  그러나 『모비 딕』을 쫓는 근대인에게는 페넬로페의 침대가 없다. 

 

근대인이 신을 살려둔 것은 휴식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항구'를 기원하는 간절함이 지친 육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식의 아버지"는 어딘가에 숨어 있기는 한가?

 

 

 <오뒷세이아 23권>

 

 

<모비 딕 1 p135>

 

<모비 딕 2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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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읽고 있다.  철학자 강대진의 강의에 따른 것으로 1부는 젊은이의 성장을 주제로 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다. 1권부터 4권까지다. 2부는 5권부터 12권까지로 본격적인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이다.  13권에서 24권까지인 3부는 고향 이타케로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전체 서사시의 반을 차지하는 많은 분량이 고향 안에서의 고난이 밖에서의 고난보다 크고 어려움을 보여준다. 

 

 

 

 

 

 

 

파이아케스족의 나라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자신의 모험 이야기를 모두 마친 오뒷세우스는 많은 선물과 함께 안전하게 이타케로 호송받는다. 드디어 오뒷세우스가 고향땅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 귀향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귀향을 위한 모험이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만큼 신들이 많이 등장하거나 개입하지는 않지만,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신들이다.  신들의 회의로 시작한  『오뒷세이아』는 사태의 진전과 해결 모두 신들에 의해 좌우된다.  신들점점 멀어져 가는 시대의 인간 예찬을 노래한 서사시라고 평가되는 『오뒷세이아』임에도 그렇다. 서사시는 기본적으로 신들과 영웅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열렬히 성원하고 도와주는 신은 아테나이다.  『오뒷세이아』의 첫 부분에서 텔레마코스의 성장을 이끄는 멘토르가 되었던 아테나는 종반부의 시작인 13권에서 처음으로 오뒷세우스 앞에 나타난다. 13권부터 24권까지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 옆에는 늘 아테나가 함께 한다.

 

 

 

 

 <주세페 보타니. 18세기>

 

   

오뒷세우스는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 더욱 신중해 진다. 고향을 떠난 20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카이오이족 사이에 떠들썩한 아가멤논의 죽음이 자신에게도 준비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자신의 궁전에는 아내의 구혼자들이 매일 같이 몰려와 먹고 마시며 결혼 상대를 선택하도록 페넬로페를 강압하고 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3권 329~338> 

 

 

  

아테나 여신과 나란히 앉아 계책을 세운 오뒷세우스는 충직한 하인인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간다.  그 사이 아테나는 스파르테에 있는 텔레마코스를 찾아가 이타케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텔레마코스는 귀향하여 에우마이오스를 찾아 온다. 

  

4권 마지막에서 갑자기 중단한 텔레마코스의 모험 이야기를 15권에서 다시 이어가는 것이다.  


즉 1권~4권은 텔레마코스의 모험 이야기를, 4권~15권은 오뒷세우스의 모험이야기를 각각 해주다가, 16권에서 마침내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마지막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오뒷세우스』 의 구성은 참으로 조직적이다.  

 

 

 

 <16권 186~193>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 "I'm your father"의 원조가  오뒷세우스일까? 정체를 감추고 아들의 마음을 시험하던 오뒷세우스가 참고 참았던 '내가 니 애비다'를 선언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확인함으로써 한마음이 되어 집안을 되찾으러 나선다.

 

 

 

 

 

 

한편 남편 오뒷세우스를 기다리던 페넬로페는 궁지에 몰려 있다. 구혼자 무리들을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고, 승낙할 수도 없다. 오뒷세우스의 생사는 확실치 않고,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아들은 장성하여 어머니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시간을 벌어주던 '수의'의 비밀도 들키고 말았다. 낮에는 짜고, 밤에는 풀던 '페넬로페의 수의'는 3년 만에 완성 된다.

 

 

 

 

 

 

수의가 완성되자 페넬로페는 결혼을 결심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수의가 완성되면 아내가 재혼을 했다고 한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아니라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는 것으로 노래된다. 

 

 

  

 

 

 

딱 이 시점에 오뒷세우스가 돌아온다.  늙은 거지로 변장한 오뒷세우스는 페넬로페를 만나 아내의 마음을 떠보고, 페넬로페는 그가 전해주는 남편의 귀향 소식의 진위를 시험한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그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오뒷세우스의 발을 씻겨주던 늙은 유모가 그를 알아보지만 오뒷세우스는 그녀의 입을 막고 페넬로페에게 알리지 못하게 한다. 아내의 진심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1권 1~14>

  

 

21권 <활>은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이다.  13권부터 서서히 고조되던 긴장이 불꽃처럼 폭발한다.   


활 시합은 아폴론의 축제일에 맞춰 준비된다. '멀리 쏘는' 명궁이란 별칭을 가진 아폴론은 오뒷세우스를 암시한다. 오뒷세우스는 태양을 은유하는 대머리다. 구혼자들 중 하나가 "아무튼 내 눈에는 저기 저 횃불의 불빛은 바로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 같소. 거기에는 짧은 머리카락 하나 없으니 말이오."  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아폴론 - 활 - 오뒷세우스' 의 조합은 이 시합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구혼자들의 축제인 듯 보이는 아폴론 축일의 활 시합은 오뒷세우스의 귀향 선언을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축제이다.  




 

 

 


 

수의를 완성한 페넬로페는 더 이상 결혼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구혼자들에게 활 시합을 제안한다. 남편 오뒷세우스가 사용하던 활로 12개의 도끼를 꿰뚫는 구혼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21권 67~81>


 

구혼자들은 누구도 오뒷세우스의 활에 시위를 얹지도 못하고 물러난다. 오뒷세우스는 활을 손에 넣어 익숙하게 매만진 후 열 두개의 도끼 자루를 모두 꿰뚫는다. 

 


<21권 42~434> 


 

 

이제 진짜 축제의 시간이다. 오뒷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신호를 보낸다.  오뒷세우스의 충직한 하인인 돼지치기와 소치기 그리고 텔레마코스가 명령에 따라 계획대로 움직인다. 


 

 


 


 

오뒷세우스의 궁전은 폐쇄된다.  궁 밖 백성들은 아폴론 축일을 만끽하며 떠들석한 소란에 겨워 있고, 궁 안 구혼자들은 쇠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마치 웅장한 교향곡 속에 칼춤을 추는 킬러들의 영화처럼 백성들의 축제와 오뒷세우스의 축제는 하나로 어우러 진다. 

 


<22권 226~235>


 

그러나 네 명만으로 백 명이 넘는 구혼자들을 처치하는 것이 오뒷세우스에게도 쉽지는 않다. 트로이아 전장보다 힘겹다. 

 


<아가멤논의 살해. 1817.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아가멤논도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간부의 손에 죽지 않았는가. 


 

 



마침내 구혼자들에 대한 살육이 끝나고 오뒷세우스의 궁전은 정화되었지만, 페넬로페는 오뒷세우스에게 달려가 안기지 않는다. 

 


<23권 183~208>


 

둘만이 알고 있는 올리브 나무 침상의 비밀을 확인하고서야 페넬로페는 울음을 터뜨린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린 올리브 나무의 밑둥을 기둥 삼은 결혼 침상은 어떤 고난에도 변하지 않는 부부의 믿음이다.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 프리마티초. 1563.> 



 

달콤한 사랑과 휴식으로 축제는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23권 248~255>


 

고난은 끝이 없다. 잠깐의 휴식이 있을 뿐이다.  어릴 때의 운동회처럼, 전력 질주를 하고 나면 숨을 헐떡이며 엄마 품에 안기지만, 우리는 곧 운동장으로 돌아가 멀리 던지고 높이 뛰고 춤을 춘다. 삶은 엄마의 품 안에 있지 않다.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버지 오뒷세우스처럼 꼭 그렇게 오뒷세우스는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만나야 한다.  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아들임을 입증해야 하고, 인정 받아야 한다.  고대 희랍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아버지의 아들로 더 즐겨 불리었다. 오뒷세우스는 폴뤼페모스에게 외치지 않았던가!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라고 말하시오!" 

(9권 504~505)

 

오뒷세우스는 모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의 파괴자'가 되었고, 귀향에 성공하여 고향 '이타케'로 돌아왔으며,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라에르테스'의 아들임을 인정 받는다.  

 

불멸의 신과 달리 필멸의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불멸이 있다. 자식을 낳는 것, 불멸의 명성을 얻는 것, 신적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나는 나인 동시에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또 그 아버지의....로 거슬러 올라가 모든 조상의 나임을 각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태곳적 최초의 인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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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도 좋을텐데, 인간들의 문제는 신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일까? 인간들의 은원은 끝이 없는 업보를 쌓는다는 것일까?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로 갚아온 인간들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오뒷세우스에 의해 몰살 당한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무장하고 라에르테스의 집을 공격한다. 라에르테스-오뒷세우스-텔레마코스, 3대가 무장하여 나선다. 

 

 

 

<24권 472~486>

 

 

제우스와 아테나는 이타케의 복수와 살육을 끝내기로 결정한다.  아테나가 전쟁을 중지시키고 양편의 화해를 중재한다. 

 

" 그러자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의 딸과 팔라스 아테나가

  마침내 양편이 서로 맹약을 맺게 하니

  그녀는 생김새와 목소리는 멘토르와 같았다." 

  (24권 546~548) 

 

『오뒷세이아』는  1권 신들의 회의에서 시작하여 24권 다시 신들의 결정으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이후로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타케에는 잠깐의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 서양 고전의 뿌리, 호메로스의 서사시 공부는 4차례에 걸친 오뒷세이아』 스타디로 일단락을 맺는다. 

 

 다음은 희랍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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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우스의 세 번째 모험 이야기는 퀴클롭스들의 섬이다.

 

 

 

 

 

 

 

퀴클롭스는 신화상으로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외눈박이 거인들'이다. 여기서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그려진다. 

 

 

 

 

 <모험3. 퀴클롭스>

 

   

 

퀴클롭스들은 저마다 각자의 동굴에서 서로 참견하지 않고 따로 살고 있다.  오뒷세우스는 그들 중 폴뤼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모험3. 퀴클롭스>

 

 

 

폴뤼페모스는 오뒷세우스라는 자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폴뤼페모스는 운명의 날에 크고 용맹한 영웅이 나타나 자신과 대적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스스로를 '아무도 아닌 자 - 우티스 (outis) 라고 말한다.  이름을 밝혔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영웅이 아니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영웅적 가치가 오뒷세우스의 세계에서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과 귀향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자, 가장 비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오뒷세우스를 구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계략이다.

 

 

 

 

<9권 364~367 / 502~505 / 511~518>

 

 

 

하지만 오뒷세우스도 영웅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 내지는 못한다. 동굴 밖으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자랑한다.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 라고 외친다.

 

폴뤼페모스는 뒤늦게 오뒷세우스의 이름을 알고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기도한다.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소서."

(9권 530~531)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10년 만에야 귀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욕망을 끝까지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험4. 아이올로스>

 

 

 

바람을 다스리는 아이올로스가 살고 있는 아이올리에 섬은 오뒷세우스 일행에게 한 달간의 휴식을 준다.  아이올로스는 바람자루에 사방으로 울부짖는 바람을 담아 꽁꽁 묶어 가두고,  오뒷세우스의 고향 이타케로 부는 서풍만 남겨서 귀향길을 도와준다.

 

하지만 이타케섬을 눈앞에 두고 바람자루가 풀리고 일행은 다시 먼바다로 내동댕이쳐 진다. 바람자루를 황금과 같은 보물로 오인한 전우들이 오뒷세우스가 잠에 빠진 사이에 자루를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보의 독점과 일방적 명령 등 상하 관계에서의 불신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모험이다.

 

 

 

 

<모험5. 라이스트뤼고네스족>

 

 

 

아이올로스에게 되돌아 갔으나 신의 미움을 받은자라는 이유로 쫓겨나  다섯 번째로 도착한 곳이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나라이다.

 

퀴클롭스들처럼 사람을 먹는 식인 거인들이 살고 있다. 여기서 오뒷세우스 일행은 배 11척을 잃고 오뒷세우스가 탄 1척만 구사일생한다.

 

처음 트로이아를 떠날 때 오뒷세우스가 이끄는 전우들의 배는 모두 12척이었다. 퀴클롭스들과 거의 비슷한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을 추가한 것은 모험 이야기에 적합하도록 배를 1척만 남기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모험6. 키르케>

 

 

 

살아남은 한 척의 배가 도달한 곳은  아이아이에 섬이다. 약초를 잘 다루는 여신 키르케가 살고 있다. 키르케는 오뒷세우스가 보낸 정탐조를 약을 탄 음식을 먹여 모두 돼지로 만들었다.

 

이들을 구하러 나선 오뒷세우스에게 신들의 정령 헤르메스가 다가와 키르케를 제압하고 동료들을 구할 방법을 가르쳐 준다. 오뒷세우스는 1년 동안 키르케와 함께 살면서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고향을 잊고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퀴클롭스들 이후 오뒷세우스가 더욱 신중해지는 모습이다. 퀴클롭스들을 정탐할 때는 오뒷세우스가 맨먼저 나섰다가 폴뤼페모스의 동굴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포구에 들어갔을 때는 전우들을 뽑아 정탐을 보내고 자신이 타고 온 배는 포구의 맨 바깥에 정박한다. 덕분에 그 배만 탈출에 성공한다. 키르케의 섬에서도 전우들을 먼저 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맨 앞에 나서는 영웅들과는 달리 모험이 거듭될수록 오뒷세우스는 척후병을 먼저 보내고 뒤에 남아 상황을 신중하게 살핀다. 전우들의 희생을 방패삼아 생존하는 전략을 선호하는 것이다.  영웅에 비하면 비겁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알레고리로 읽으면 작은 것을 내주면서 큰 것을 지키는 신중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모험7. 저승>

 

 

 

키르케는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에게 먼저 하데스로 가서 유명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나 귀향의 성공 여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데스에서 오뒷세우스는 테이레시아스뿐 아니라 어머니를 만나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여러 영웅들을 만난다.

 

오이디푸스왕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에피카스테(이오카스테),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 등이 이미 하데스에 있다는 것은 테바이 신화가 트로이아 신화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일리아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만난다. 오뒷세우스는 살아서뿐 아니라 죽어서도 사자들의 강력한 통치자가 된 아킬레우스를 칭송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죽어서 모든 사자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살아서 가난한 이의 머슴이라도 되고 싶다고 한다. 

 

 

 

<일리아스>

 

 

 

단명을 받아들이고 희랍의 영웅이 되겠다던 트로이아의 아킬레우스를 기억한다면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하데스의 아킬레우스는 충격이다.  두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수십 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호메로스가 한 입으로 이렇게나 다른 두 명의 아킬레우스를 낭송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실이 어떠하건 두 작품은 아킬레우스를 통해 희랍인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웅들의 모험에 저승이 필수 코스가 되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처음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영웅 길가메쉬가 첫 저승 여행자일까?  서양 문학에서는 오뒷세우스 이후 로마의 아이네아스가 저승에서 아버지를 만나 로마의 미래를 예언받는다. 로마제국의 첫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하기 위한 『아이네이스』는 저승에서의 예언이라는 장치를 통해 황제 권력의 탄생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이 있다. 저승 문학의 백미라고 해야 할까.  희랍-로마 신화를 알지 못하면 『신곡』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이 '저승 여행'의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승은 그 어떤 장치보다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기 좋은 방법이다. 죽어본 자보다 더 삶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자기 서사를 위해서는 자기를 타자화해야 하는 것처럼 삶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겪어 보아야 한다. 죽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 있으므로 삶은 빛나는 것이 된다.

 

 

 

 <모험8. 세이렌>

 

 

 

저승에 다녀온 오뒷세우스에게 키르케는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에 대해 들려준다.  키르케의 예언대로 오뒷세우스는 남아있는 고난을 차례로 겪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도 세이렌일 것이다.

 

 

 

<모험8. 세이렌>

 

 

 

세이렌 자매의 노래는 인간을 미치게 한다. 파멸의 유혹임을 알면서도 그 노래는 미치도록 달콤하여 기둥에 온몸을 묶여서라도 들어야만 한다.

 

 

 

<12권 184~196>

 

 

"칭찬이 자자한 오뒷세우스여, 아카이오이족의 위대한 영광이여!"

 

이름을 버려야만 생존과 귀환이 가능하지만, 오뒷세우스는 명예에 대한 칭송에 눈이 돌아간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살아남은 자, 오뒷세우스도 칭송받는 이름을 몸부림치며 갈망한다.  칭송은 인간의 영원한 유혹이다.

 

 

 

 

 

오바마 케어를 반대한 공화당에 대한 재미있는 패러디이다. 

 

 

 

<모험9. 스퀼라와 카륍디스>

 

 

 

세이렌 자매들 뒤로 카륍디스와 스퀼라가 보인다. 아홉 번째의 무시무시한 시련이 다가온다.

 

 

 

<모험9. 스퀼라와 카륍디스>

 

 

 

"Between Scylla and Charybdis"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쪽에는 머리가 여섯 달린 괴물이 있고, 한쪽에는 빨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인다.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를 이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오뒷세우스는 스퀼라에게 전우 여섯 명을 희생시키고 이 바위들 사이를 빠져 나온다.

 

 

 

<모험10. 헬리오스의 섬>

 

 

 

헬리오스의 섬은 평화롭고 풍요롭다. 사투 끝에 기진맥진한 오뒷세우스의 일행에게 헬리오스 섬의 유혹은 강렬하다. 하데스에서 테이레시아스도, 키르케도 그렇게도 강력히 경고했지만, 오뒷세우스는 헬리오스 섬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시달릴 대로 시달린 전우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이다. 

 

바람 때문에 한 달간이나 헬리오스 섬에 체류하게 된 오뒷세우스의 전우들은 키르케가 준 식량이 바닥이 나자 오뒷세우스와의 맹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떼를 잡아 먹는다.  시름시름 굶어 죽는 것보다 차라리 신의 분노로 단번에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모험11. 칼륍소>

 

 

 

 

다시 항해에 나선 오뒷세우스의 배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제우스의 천둥과 번개를 맞고 산산이 부서진다.  전우들은 모두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혼자 살아난 오뒷세우스는 아흐레 동안 바다 위를 떠밀려 다니다가, 열흘째 되는 날 오귀기에 섬의 칼륍소에게 닿는다.

 

 

 

 

<12권 447~453>

 

 

 

12권의 마지막은 오뒷세우스의 1인칭 회고담이 끝나는 시점이다.  11번째 모험지인 칼륍소의 동굴에 도착한 이 마지막 이야기는 이미 9권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회고담이 시작될 때 제일 먼저 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원은 닫혔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모험, 12번째의 모험은 바로 이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인 것도 알고 있다.

 

 

 

<13권 1~6>

 

 

 

12가지 고난을 모두 겪은 후 오뒷세우스는 마침내 고향 이타케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한다.  『오뒷세이아』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13권은 이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타케로의 물리적 귀향에 성공한 오뒷세우스에게는 아직도 기나긴 고난이 남아 있다.  오뒷세우스의 완전한 귀향은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로부터 서로가 같은 마음임을 확인받고, 정체성을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오뒷세이아』의 절반을 차지하는 13권에서 24권까지의 이야기는 그 기나긴 여

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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