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처음 우리 학교에 부임했을 때, 학생들은 무척 충격을 받았으리라.
나이 서른셋, 그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몸매-그때의 난 진짜 날씬했다-에
학생들보다 더 뛰어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고
의대 과목 중 극히 드물게 예정시간보다 일찍 끝내줄 뿐 아니라
학생들이 “오늘 휴강해요!”라고 하면 진짜로 휴강을 해주는 사람,
그들은 날 교수라기보단 ‘형’ 혹은 ‘선배’로 봤을거다.
그 학기, 5점 만점에 4.9에 육박한 내 강의평가 점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강의는 잘 못하지만 인간 중심의 교육이 먹혔다고 믿은 난
의대 평균으로 적힌 4.2를 보며 ‘저것도 점수냐’고 비웃어 줬다.
하지만 내 점수는 해마다 떨어져, 4년이 지난 뒤에는 내가 비웃던 평균점에 육박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배신을 때리다니!”
지금사 깨달았지만 난 뚜껑을 딴 3년산 와인처럼 상해 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날 신선하게 여기지 않았고
부임 당시엔 하지 않던 예과 강의를 맡으면서 내 과목의 신선도는 급속히 떨어져 갔다.
그들은 인간적인 면을 배제하고 학문적인 견지에서만 날 평가했고
의견란에 “인간성은 참 좋은데..”라고 쓰면서 5점 만점에 2점을 주곤 했다.
“휴강해요”라는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휴강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고
그들 중 일부는 힘들게 낸 등록금을 생각했을 거다.
천안 지역에서 우리 학생들의 기생충학 지식이 2위에 그친 것도,
본2 때가 되면 이미 기생충을 하나도 모르게 된 것도
학생들 탓은 아니었다.
어제, 우연히 2006년 2학기 강의평가 점수를 봤다.
4년 전에는 그래도 평균은 되었지만 이번 점수는 4.08로 평균에 미달해 있었다.
그건, 뭐 하나 제대로 가르쳐 준 게 없는 나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였다.
3점대로의 추락이 눈에 선했고,
강의평가가 2점대라 강의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한 시간강사의 사례가 떠올랐다.
물론 전임교원은 2점대라고 강의를 빼앗기진 않지만,
그리고 학생 때 2점대의 학점을 무수히 받아봤지만,
이상하게 강의평가점수 4점대는 내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화가 있다.
작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학생이 있어서 친구들이 문상을 왔다.
그 학생은 휴학중이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다음날 시험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학생들의 대답, “걱정 마. 기생충학은 오픈 북이야!”
오픈 북은 원래 책을 펴도 답이 없는 공대에서나 시행해야 옳겠지만
스스로의 강의에 자신이 없던 난 어느 해인가
가르쳐준 것도 없는 게 미안하니 오픈 북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결과가 기생충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본과 2학년이다.
해서, 이번 학기엔 정말 학생들을 놀게 해주기보단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신경을 쓸 생각이다.
선생의 임무는 아이들을 놀게 하는 게 아니라
잘 알게 만드는 데 있다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