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바리에떼>를 읽는 데는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술을 마시고 안하던 연구를 하느라 시간을 빼앗긴 탓도 있지만, 책에 실린 문장 한줄 한줄을 음미하느라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한 게 더 큰 이유였다. 복거일의 ‘친일예찬론’을 비판하는 글을 비롯해 여기 실린 글의 3분의 1 가량을 다른 지면에서 읽었음에도.


그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다음 표현을 보라.

그가 이따금씩 툭 던지는 한마디는, 한 방울의 와사비가 회 맛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듯, 그 술자리의 맛을 화들짝 돋운다(297쪽).”

내가 그를 더 좋아하는 건,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겸손 때문이다. 예컨대 복거일이 “독립을 꿈꾸지 않으면, 식민지 조선은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세상이었다.”라고 했다손 치자. 예전의 강준만이라면 이렇게 응수했을 거다. “정말이지 소가 웃을 말이다.” 진중권이라면 더 심한 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진중권의 재치를 흉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저승에 있는 안중근 의사가 벌떡 일어날 말이다” 정도로 했지 않았을까. 하지만 고종석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에는 어쩌면 한 조각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137쪽).”

그런 황당한 주장에서도 한 조각의 진실을 발견해 주는 태도, 그래서 그의 글이 갖는 설득력은 더 높아진다. “끝까지 읽어낼 끈기와 지성이 내게 없”기에 <자본론>을 읽지 않았다는 겸손 역시 저자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다. 글쓰기 책을 웬만큼 읽어 봤지만, 그런 책 몇권보다 고종석의 책을 읽는 게 문장력 강화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고종석의 <바리에떼>를 두 번 읽으라고 대답할 거다.


* 저자가 쓴 <제망매>에서도 그랬지만, 고종석의 소설에선 가끔씩 친척에 대한 연정이 느껴졌었다. 이 책에서 알았는데 그 연정의 대상은 사촌 누이이자 절세 미녀인 ‘고경숙’ 씨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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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26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에떼..바리에떼..기억해둘랍니다..두번 읽게 하면 한번 읽을지 모르지만 암튼 권해 봐야겠네요..전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으니 한번만 읽어 보겠구요..
저 글귀 참 맘에 들어요.."한방울의 와사비가...

마늘빵 2007-03-2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은지 오래됐는데 리뷰를 아직 안썼어요.

비로그인 2007-03-2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판 관심이 없었던 책이었는데, 마태우스 님 덕분에 보관함으로 이동시킵니다.

하늘바람 2007-03-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네요 님 감사해요

moonnight 2007-03-2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부끄럽지만, 첨 들어보는 책이에요. 흑. ㅠㅠ; 얼른 보관함으로. ;;;

stella.K 2007-03-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고종석의 문장이란 참 감탄할만 하죠. 제가 고종석을 언제 읽고 안 읽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원...이 책 읽어야 할텐데...ㅜ.ㅜ

깐따삐야 2007-03-2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글 쓰는 사람들 중에선 보기 드문 겸손인데요. 대개는 잘 읽어보면, 더 많은 칭찬을 미리 계산한 겸손함일 때가 많은데. 읽어봐야겠어요.

홍수맘 2007-03-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종석? 실은 첨 듣는 이름인지라...... 님의 추천책은 꼭 챙겨봐야 겠어요.^ ^

2007-03-26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oldhand 2007-03-2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문장은 문자 그대로 "유려하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립니다.

짱꿀라 2007-03-2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의 글은 익히 몇권을 읽어선지 항상 책을 세심하고 본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가넷 2007-03-2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마태우스^^

마태우스 2007-03-27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요즘 마니 어려웠는데 큰 힘이 되옵니다^^
산타님/아 네... 근데 전 감염된 언어를 아직 안읽었어요. 대표작이라고 알고 있는데 읽을 자신이 없어요... 언제 읽어볼 생각이긴 한데...
속삭님/어 그 말씀은 연인들이나 한다는 리뷰쓴 사람 띄워주기....?^^
올드핸드님/맞습니다. 정말 유려하죠
속삭이신 ㅎ님/님은 이미 글을 잘 쓰시면서...조카분한텐 좋은 선물이 될 듯...하지만 책에 나온 내용-친일, 분당 등-에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
홍수맘님/음, 제 추천책 중 쓸만한 게 많진 않지만...고종석은 자신있어요!
깐따삐야님/요즘 병아리가 삐약삐약 울 때마다 깐따삐야님을 생각한다는...^^ 하여간 진중권의 재기발랄보다 고종석의 겸손이 전 좋아요
스텔라님/제가 선물해 드릴까요?
달밤님/나온지 얼마 안되는데요 모를 수도 있죠.
하늘바람님/태은이가 어서 커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드님/미모에 글까지 잘쓰시는 주드님, 더 잘쓰시려고요?^^
아프님/영화 리뷰도 안쓰시고 책 리뷰도 안쓰시는군요!!!!!
배꽃님/그가 쓴 발문 중엔 저런 주옥같은 표현이 도처에 있답니다 머리를 꽉 차게 만드는 그런 책이죠..

2007-03-27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음장수 2007-03-28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신입생 때 고종석을 읽으면서 문장에 반해 쉴새없이 노트에 옮겨적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아직까진 진중권의 재기발랄함이 좋긴 합니다만,^^;

stella.K 2007-03-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태님! 말씀만 들어도 고맙슴다.^^

JTL 2007-04-0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에떼’는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을 뜻하는 말이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