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진보적 역사선생님들 중에서 박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던져주는 한국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은 너무도 아프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우리의 다른 모습을 성찰하게 해준다. 제국주의 국가의 피해자로 스스로를 자리메김하고 우리사회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 대해서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였던 나를 되돌아 보았다. 지금까지 읽은 박노자의 책중에서 이 책이 가장 탁월했다. 그의 조국인 러시아에서 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조국인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고, 현자 자신의 터전인 노르웨이와 그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고 미쳐 보지 못한 치부를 들춰냈다. 박노자의 매력속으로 들어가 보자.

 

1. 하얀가면을 벗는 방법.

 책장을 펼치자 "우리 모두의 스승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글 귀가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그의 날카로움은 에드워드 사이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서구인들이 동을 바라보는 편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인이 서양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편견을 뜻하는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창을 통해서 박노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진실들을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노자의 글을 통해서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을 살펴보자.

 

"1. 우리의 통념은 대개 19세기 서구 중심적 - 그리고 보통 자본주의 옹호론적 - 사회과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당연한 '것도 자연발생적인 것도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중략)

 2. 우리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경정짓는 가장 주용한 기구인 국가는, 사회적 폭력을 독점하는 만큼 늘 각종 폭력을 행사하거나 잠재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위험하고 몰도덕적인 것이다. (중략)

 3. 근대의 서구 중심 세계 체제 전체가 문제시된다면 근대 패러다음 속의 대립적 개념들의 이분법들 - 예컨대 '반동'과 '혁명'의 이분법 - 도 상대화, 지양돼야 할 것이다. (중략)

 4. 하얀 가면에 갇힌 눈들은 늘 '중심' - 즉 서구적인 부강 과학 합리성을 가장 가시적으로 표상하는 쪽 - 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하얀 가면을 벗어던지려면 '중심'의 주술에서 깨어나고 지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반란적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하략)"20-24쪽

 

  박노자가 제시한 하얀가면을 벗는 방법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관념을 의심하고 국가를 의심하고 국가가 제시한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며, 중심에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한 한다. 주입된 이데올로기를 맹신하고 국가를 절대선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런 고통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갈 수 있다.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에 의한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박노자가 제시한 방법에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면 우리는 기존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느꼈던 혼란과 놀라움을 견뎌내야한다. 아이가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려면 좁은 산도를 거쳐야한다. 그리고 어머니 배속을 힘겹게 나와야만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서는 박노자가 제시한 방법을 따라가 보려 한다.

 

2. 가면을 벗은 진실들

박노자는 세상의 모든 가면들을 벗겨 버린다. 박노자에 의해서 벗겨진 가면들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미쳐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는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박노자가 벗겨버린 가면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이 쓰고 있는 가면이다. 박노자 자신이 소련출신의 유대인이 아닌가? 유대인들에게 홀로코스트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질문 자체가 위험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박노자는 당당히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벗어던진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말할 때,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박노자는 말한다. 과연? 홀로코스트에서 벌어진 대학살이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일까? 아니었다. 절대왕권과 자본주의 국가들이 비서구권에 대해 저질러온 학살, 유럽인들이 미주 대륙의 토착 인구에 쓴 무기와 이들을 노예화한 것, 영국의 지배로 인한 인도의 황폐화(19세기 아사자 수는 1천만 명 이상), 영국의 아편 강매로 인한 중국의 아편 중족 유행(희생자 수를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은 홀로코스트를 능가한다. 어디 그뿐이랴? 박노자가 예로들지 않았지만, 일제의 난징 대학살, 일제의 남한 대토벌작전, 한국의 보도연맹 사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규모 살육이 행해졌다.

  역사는 선택적으로 호출된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말했듯이, 역사는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호출된다.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홀로코스트 만을 호출했다. 이때 히틀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이름없는 집시와 공산주의자들은 제외되었다. 박노자는 말한다.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란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이 조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한다. 그 폭력이 사회적으로 합리적 폭력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합리화된 폭력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그 많은 폭력중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합리화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만을 호출했다.

  박노자의 이스라엘 가면 벗기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대인의 역사에 덧씌워진 가면마져 벗겨 버린다. 이스라엘은 서유럽에서 박해받은 유대인들의 역사만을 정통역사로 가르친다. 아랍인들과 평화롭게 지낸 세파르디의 역사를 외면하고, 동유럽에 살고 있었던 아슈켄나지의 역사도 무시한다. 특히 아슈켄나지가 쓰고 있었던 이디시어와 이디시어 문학작품을 말살한다. 이스라엘의 말살 정책은 세파르디의 갓난 아이를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에게 입양하는 '2세 동화작전'에서 극에 달한다. 박해의 역사를 설별해서 '박해받은 유대인'이라는 신화를 만들고,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세파르디와 아슈켄나지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히틀러와 전체주의 일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러한 역사만들기, 아니 가면 씌우기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쏘아올린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광경을 보며 환호하는 비극을 낳았다. 박해의 역사를 잊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다시는 박해의 역사를 겪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서는 더욱 간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가 되듯이, 박해받은 민족이 힘을 가지면 더 잔혹해질 수 있는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박해의 역사를 평화와 공존의 역사로 만들지 못한 한계를 그들은 직시해야한다.

 박노자의 가면 벗기기는 유럽과 미국으로 이어진다. 독일에 비해서 서유럽과 미국은 더 도덕적일까? 라는 질문을 한다. 우선, 히틀러가 우생학을 근거로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선전했다는 실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나치 독일의 '인종위생법률'을 미국의 우생학자들이 극찬했으며, 서구를 비롯한 일본에서 우생학의 광풍이 불어닥쳤다는 사실을 박노자는 지적한다. 우생학이 식민지를 열등하게, 백인 제국주의를 우등하게 포장하는 사이비 과학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과학은 객관적인 학문이라는 말이 얼마나 의미없는 말인지, 정치와 학자들이 유착되어 서구의 하얀가면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우리는 직면해야한다. 박노자는 말한다. "아랍 문화의 후진성을 늘 들먹이는 유럽중심주의적 학자들은 지금도 정학유착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말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가면을 벗기 위해서......

  독일에 비해서 서유럽과 미국이 더 도덕적이지 않다는 박노자의 또 다른 근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에 대한 처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독일 포로를 '살려주기 부담스러워서' 라인 강 근처 '임시 간이 수용소'에 10만명씩을 집어 넣었다. 그결과 수많은 독일 포로들이 죽었다. 프랑스의 경우, 식량을 비현실적으로 적게 줌으로서 '외인부대'에 지원 입대를 유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때 베트남 전에 동원된 외인부대에는 독일 포로 출신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소련의 경우는 독일인을 강제노동, 강간, 살해했다. 이 광경을 본 솔제니친은 소련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심을 하게 된다. 선과 악이라는 쉬운 이분법에 익숙한 우리에게 박노자의 글을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가 하얀가면을 벗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견뎌내야한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그의 관점은 우리가 특정 역사관에 입각해서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스라엘과 서유럽에 덧씌워진 가면을 벗긴 박노자는 불교로 눈을 돌린다. 선불교라하면 동양의 정신이 서양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일으켜 전형적인 밝은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선불굘르 서구에 소개한 스즈키와 엘리아데가 전체주의 경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지적을 한다. 특히 스즈키는 '무사도 다도 선불교를 동양 정신의 최고 표현'으로 평가한다. 즉 불교를 "폭력화 어용화"하여 "복고적 수구주의적 문명론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박노자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 왜? 벽안의 백인들이 선불교에 더 관심을 갖는가? 슬럼가의 흑인들이 경제적 이유로 선불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선불교를 접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박노자는 직시한다.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 현상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직면하려는 그의 날카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하기에 박노자의 글과 말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빨간약을 먹은 듯한 느낌과 가면을 벗은 상쾌함을 그의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3. 가면을 벗은 후에..

박노자의 글을 통해서 세상에 덧 씌워진 수많은 가면들을 벗었다. 가면을 벗은 후에 상쾌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남모른 당황스러움도 느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박노자는 소련은 전체주의 국가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소련은 전체주의 국가'라는 가면을 벗겨버린다. 예전에 뉴라이트 교수가 지금의 세계사 교과서가 전체주의 국가에 소련을 빼먹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소련도 전체주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제대로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박노자는 공산주의 악마화에 황금의 기회를 준 독일계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이 1968년 재판을 내면서 "소련을 더 이상 전체주의 국가로 불러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고 말한다. 즉 전체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핵화돼 무기력해져 천편일률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기 꺾인 개인'이 1950년대 초 소련 사회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도 미국 관학자는 '사회주의에 악마의 얼굴 씌우기' 위해서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남용한다. 전체주의 연구의 권위자가 소련은 더 이상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관학자들은 소련에 가면을 씌우고 있으며, 한국의 뉴라이트들도 이를 따르고 있었다.

  박노자의 가면 벗기기가 '전체주의' 용어에서 처럼 상쾌함만을 주지는 않는다. 그는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수탈론' 뿐만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론', '동학 혁명론'까지도 비판한다. 모든 가면을 부숴버리는 그의 글에 나는 당혹감을 느낀다. 모든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깨부순다면 한국사에서 무엇이 남는가?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불완전한 창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는데, 이마져도 부숴버리면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아야할까? 박노자는 어떠한 틀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새로운 역사를 바라보는 창을 만든다면, 박노자는 이마져도 깨부술 것이다. 그 창도 배제와 왜곡이 있다고.....

 가면을 벗었다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할까? 박노자는 가면을 벗은 러시아 음악계의 천제 유리한인과 제국주의 국가 네덜란드의 위선을 맹렬히 폭로한 물타툴리, 스탈린 체제에 저항한 알렉슨도르 지노비예프를 소개한다. 가면을 벗어던진 용기있는 이들의 삶은 너무도 힘겹다. 때로는 박해와 가난에 시달려야했다. 우리 사회에도 가면을 벗어던진 용감한 사람이 많이 있다. 수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정의로운 일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무관심과 보복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가면을 벗지 않고 살 것인가? 가면을 벗고 고통받으로 살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 밀려온다.

  가면을 벗는 상쾌함과 가면을 벗은 후의 고통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가면을 벗지 않는다고 모두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박노자는 폴란드 유학생들이 노르웨이에서 보인 굴종적인 모습을 소개한다. 박노자와 수업을 들은 폴란드 급우들은 교실에서 발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수많은 간호사와 선원, 학자들을 받아들여준 노르웨이 관민에 '뜨거운 감사'를 표했고, 자기 나라를 후원해준 유럽국가에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제3세계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얀피부의 유럽국가에는 굴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자신보다 힘이 약해보이는 제3세계에 대해서는 거만한 지배자의 모습을 보이는 폴란드 급우들의 모습은 안쓰러워보인다. 마치 시집살이를 당한 시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욱 억척스럽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처럼. 소련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에게 가혹한 분할 통치를 받은 폴란드가 강대국에게는 굴종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제3세계에 대해서는 멸시를 보내는 듯하다. 서구에 의해서 띄워진 하얀 가면을 벗지 못한다면, 굴종적으로 살수밖에 없다. 떳떳하게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면을 벗어 던져야한다. 폴란드 유학생은 우리가 가면을 왜? 벗어 던져야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노자의 글은 충격적이면서도 불편하다. 박노자에 의해서 가면을 벗어지만, 나에게 펼쳐지는 세계는 당혹스러운 낯선 모습이다. 이를 삶에 어떻게 녹여내야할지는 또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나의 서재에 읽고 싶은 책이 추가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프란츠 파농의 "검은피부 흰가면"이 그 책이다. 박노자의 안내를 받아서 새로운 고전들을 읽고 나 자신도 모르는 또다른 가면들을 벗어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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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1-17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읽으러 왔을 때 1번까지만 글이 있었는데, 드디어!!!^^

2020-01-17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딸 외우고픈 감동영어 101
열린기획 엮음, 이윤선 감수 / 열린생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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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문장, 혹은 일주일에 한문장을 읽고 쓰기를 하고 있다. '논어'가 공자의 어록을 모아 놓은 것이라면, 영어 명문장을 모아 놓는다면 이 또한 21세기의 논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을 읽는데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때로는 너무 길고 어려운 문장이라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의역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어 번역기를 돌려 직역한 문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나에게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 문장을 살펴보자.

 

1. 교육을 생각하다.

'딸딸 외우고픈 감동여어 101'에는 우리 교육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있다. 그 몇가지 문장을 살펴보자.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그들은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결코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로다. 그러므로 비록 그대들과 지금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니니라.)

 

자녀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학부모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자녀를 자신의 악세사리로 생각하며, 자녀의 꿈보다는 자신의 한을 풀어줄 판사나 검사를 하기를 바라는 부모를 아름답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담임 했던 학생중에서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 자녀는 실업계로 전학하여 요리사가 되고 싶지만, 부모는 자신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 판사나 검사가 되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자녀의 요구를 "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라고 무시한다. 결국, 그 학생은 징계가 누적되더니, 2학년에 올라가서 학교를 자퇴했다. 부모가 자녀를 망친 전형적인 예이다. 우리 학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감동영어이다.

 

One who is generous to others and strict to himself is happy while the other who is strict to others and generous to himself is unhappy.(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부드러운 사람은 행복하고 자기에게 후하고 남에게 가혹한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부드러운 사람이 행복할까? 동의할 수 없는 문장이다. 특히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행복할까?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남들에게는 너무나 예의바르고 올바른 학부모인데, 자녀는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한예로 내가 담임했던 반의 학생이 시험 전주만 되면 아파서 보건실에 누워있었다. 상담선생님에게 학생 상담을 의뢰했다. 상담선생님은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해야한다는 상담선생님의 말에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생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학부모의 입에서는 "그럼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아야겠네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학부모에게 그래야한다고 알려주었다. 그후, 학부모를 통해서 알게된 사실은 문제는 부모에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녀가 타인에게 폐를 끼칠까봐 엄격히 키웠고, 학부모 자신도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삶을 살아왔다. 부모의 이러한 모습이 결국 학생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서 자녀의 이상증세로 표출된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하지 않았던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라, 그렇다고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지 말라, 타인에게도 너무 엄격하지도, 너무 관대하지도 말자.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니까.

 

Try  to be better than yourself(지금의 나보다 잘하자.)

 

타인과 비교하기 이전에 과거의 나와 비교하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발전했다면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면 우리는 더욱 불행해진다. SNS를 통해서 넘쳐나는 타인의 삶은 나의 삶과 비교하며 나를 불행하기 만든다. 학교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과 타인을 끊임 없이 비교하면서 학교현장에서는 1등 조차도 1등을 놓칠까봐 불안해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나아지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발전한다면 나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있지 않을까?

 

2. 현실의 불공평함에 맞설 것인가? 

  이 책을 읽다보면, 인생을 생각하게하는 문장들이 많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할까?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여라.)-빌 게이츠

 

유명한 인물이 한 말은 모두 옳다는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고등학교에서 한 이 말도 과연 옳을까?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응하며 살아야할까? 아니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에 저항할까? 빌 게이츠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숙명론자가 되거나 현실에 잘 적응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에 반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불평분자라는 말을 듣거나, 혁명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까? 현실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사회 변혁을 이룰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나는 그렇게 본다. 현실이 불공평하다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현실을 변혁시킬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의 우리 주변에 있다.

 

Champions arent' made in gyms. Champions are made from something they have deep inside them - a desire, a dream, a vision.(참피언이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 있는 - 소망, 꿈, 이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무하마드 알리

 

불량배들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 권투를 배워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노예 출신 흑인 이라는 이유로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캐시어스 클레이의 말이다.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사건은 그의 삶을 바꿔 놓는다. 현실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현실을 변혁하려 했다.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주인의 성을 땄던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는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더 이상 캐시어스 클레이가 아니다. 무하마드 알리로 다시 태어났다. 월남 참전 징집 명령을 거부하고, 현실과 투쟁했다. 파킨스씨병 투병중에도 세계 빈곤국과 장애인 지원 사업에 앞장섰고 2005년 유엔 평화상을 수상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현실을 변혁하고 있었다.

 

You could build the embankment stretching from the sky to the ground after you have completed a castle in the clouds. One who starts his foundation only on the ground never builds a house that reaches the clouds.(구름 위에 궁전을 지어놓은 다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탄탄한 축대를 쌓을 수도 있다. 시작을 오로지 땅에서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구름까지 닿는 집을 짓지 못한다.)-린다 김(로비스트)

 

유명한 로비스트 린다 김의 글이 이 책에 등장할 줄은 미쳐 몰랐다. 린다 김은 구름 위의 꿈의 궁전을 짓고 그 후에 축대를 쌓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집을 오직 땅으로부터 지어 올려야 한다는 것은 땅을 가진 자의 논리라고 주장하는 린다 김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땅이 마땅치 않다고 꿈조차 초라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가슴을 아리게한다. 불행한 현실을 냉철하게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구름위의 궁전을 짓는다는 말은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로비스트 린다 김의 삶을 본다면, 더욱이 동의할 수 없다.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지 못한 삶은 행복할 수 없다.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한다는 진리는 앨리슨 래퍼의 삶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I cannot be mentally disabled even though I am physically disabled.(장애인이지만 정신마저 불구일 수는 없다.)-앨리슨 래퍼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생후 6주 만에 생모에게 버림받고,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괴물'이라 놀림받으며 살았던 앨리슨 래퍼의 말이다. 남편에게 버림 받기까지 했지만,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려 브라이튼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여성 성취상을 수상하며 대영제국 국민훈장까지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했다. 현실은 그녀에게 너무도 불공평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했다. 타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예술과 미소로 승화시키는 삶을 살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직면'이다.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는 것, 과거의 고통과 직면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다. 현실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이 현실을 변혁시킬 방법을 찾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각오를 해야한다. 무하마드 알리와 앨리슨 래퍼의 삶은 현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값진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3. 어떠한 평가를 받고 싶은가?

  인생을 살아가며, 혹은 인생을 마치고 나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 책에는 어떠한 평가를 받는 삶을 살 것인지에 관한 글들이 있다.

 

When you were born, you cried and the world rejoiced, Live your life so that when you die, the world cries and you rejoice.(네가 태어났을 때, 네가 울고 세상이 기뻐했단다.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이 울고 네가 기뻐할 수 있도록 세상을 살아라.)-체로키 인디언 속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죽을 때 자신은 기뻐하며 죽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삶!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할까?

 

Love means to be their feet toward happiness excluding me.(사랑은 나 이외의 사람에 대한 행복을 위해서 발이 되는 것이다.)-톨스토이

 

톨스토이의 말에 동의하는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는 삶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눈을 띄워드리기 위해서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팔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를 효녀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 때문에 인당수에 빠진 심청 아버지는 행복할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다. 자신이 행복해지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경지가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자녀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기만해도 좋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어느 일방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사랑을 주는 쪽도 사랑을 받는 쪽도 모두 행복해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The best time to plant a tree is twenty years age; The second best time is right now.(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중국 속담

 

매번 후회하는 학생들에게 해주면 좋은 명언이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명언이다. 지금 아쉬움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일을 시작하자. 그러면, 20년 후의 자신은 행복해할 것이다.

 

We fought - we fought as hard as we could. And though we feel short, the failure is mine, not yours. I wish God speed to the man who was my former opponent and will be my president.(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비록 아쉬움은 있지만, 실패는 나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반대편에 섰던, 그리고 나의 대통령이 될 오바마의 행운을 빕니다.)-존 매케인

 

어리석은 친구보다 현명한 적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경합한 존 매케인이 바로 그러한 존재이다. 자신의 경쟁자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도량 넓은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경쟁자에게 덕담을 건넬 수 있는 도량과 여유를 가질 때에 우리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Beautiful young people are accidents of nature, but beautiful old people are works of art.(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다.)-엘리노어 루즈벨트

 

자신을 이롭게하면서도 타인을 행복하게 하며,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면, 지금 당장 그 일을 시작하고, 자신의 경쟁자에게 패하더라도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의 노년은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둘때, 자신은 행복해하고, 세상사람들은 슬퍼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If we do not live as we think, we think as we live.(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스콧 니어링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남는 문장이다. 스콧 니어링은 유복한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대학교수 시절 아동 노동 착취와 세계 대전에 반대했다. 1932년 미국 버몬트의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직접 집을 짓고, 농사지으며 검소하게 살아간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시간만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명상으로 보낸다. 최대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섭취하고 육식을 금하고, 적게 먹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1983년 100살에 스스로 죽음이 다가왔음을 느끼고는 일절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성자와 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어찌 이런 삶이 가능할까? 라는 경외감마져 든다. 아마도 해답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상적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때만이 살아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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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 - 사회인식과 사상
김용덕 / 지식산업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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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역사를 추동하는 것일까? 역사가 사상을 낳은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고루한 질문 같지만, 역사와 사상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상이 역사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도하고, 때로는 시대적 필요속에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기도한다. 이를 일본사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를 꺼내들었다.

 

1. 역사가 사상을 낳다.

급격한 역사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현실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사상을 필요로한다. 일본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조큐의 난 이후의 사상의 변화이다. 무사정권이 일본 덴노 정권을 무력으로 제압한 조큐의 난 이후, 기존의 하늘의 자손이 군주가 된다는 신손위군설을 대체할 사상이 필요했다. 무사정권은 유교의 덕치 사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즉, 천황가를 떠받치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하치만신의 백왕수호에 대한 의구심은 군왕이 덕이 없으며 하늘이 그를 폐할 수 있다는 덕치 사상과 쓰루카오카 하치만이 무가정권의 수호신으로 부상한다. 사상이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호출된 사건이다.

두번째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전국시대에 '도리'와 '천도'를 강조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극상의 시대! 무사들은 하극상을 예방하거나, 자신의 하극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을 필요로했다. 무사들은 '도리'와 '천도'라는 유교적 정치 사상을 호출한다. 특히 오다노부나가는 '천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어국의식'과 다른 자신만의 의식을 드러냈다. 오다노부나가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를 호출했다.

셋째, 막부말기 부터 메이지 유신시기에 있었던 '정한론'이다. 쓰시마주 개항을 둘러싸고 막부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서 조선 정벌론이 대두되었고, 이후, 메이지 정부에서 나약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외부의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자, 이를 조선 정벌을 통해서 내부의 문제를 숨기고 단결을 강화시키고자하는 그들의 의도가 섬득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를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은 급속히 쇄락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를 숨기기 위해서 일본의 아베정권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기 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라한다. 이상 살펴본 세번의 사례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상을 호출한 사례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거나 호출된 사상이 이후의 역사에 불행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 사상이 역사를 이끌다.

위대한 사상이 새시대를 열기도한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BC 800~AD200, Achsenzeit)에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 인도, 그리스, 페르시아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시기 발생한 사상은 이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첫째, 메이로쿠샤를 중심으로한 일본 지식인들의 치열한 논쟁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의 쟁쟁한 지식인들이 '서양인의 국내 여행'문제를 비롯해서 '대의기관 수용'문제와 같은 심도 깊은 문제에 대한 논쟁을 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지식인들이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가야할 변혁의 시기에 일본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의 근대화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사례는 "수양"이라는 책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라는 책을 저술해서 서양에 일본도 서양의 "기사도"에 필적할 만한 나름의 일본정신이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다. 메이지 유신의 급성장 시기를 지나서,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서양학문을 배운다는 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청년들에게 다양한 글을 통해서 새로운 위안을 준이가 바로 이토베 이나조 이다.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저술한 김난도 교수와 같은 일을 니토베 이나조가 한다. 니토베 이나조가 말한 수양의 한계를 살펴보자.

 

  "계속 노력하였음에도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서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생긴다. 수양의 목적은 '공명과 부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역경에 빠지더라도 일상생활에 완벽을 추구하며 그 속에 행복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이 바로 니토베 수양론의 핵심이었다. 급속한 계층상승이 더 이상 불가능한 사회에서, 청년들이 사회적 불만세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논리, 사회의 문제를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내면의 문제로 바꾸는 논리, 그것이 체제의 안전장치로서 니토베 수양론의 역할이었다."-276쪽

 

 니토베 이나조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은 공자가 말한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열심히 현실 권력에 등용되길 바랬던 공자가 말년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스스로 던진 위안의 말이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은 더이상 계층 상승을 할 수 없는 일본의 상황에서 현실에 만족하라는 니토베 이나조의 말과 상통한다. 공자의 말은 이후, 수많은 군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현실에 만족하며 잘못된 현실정치에 분노하지 않고 사회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식물청년들을 양산해냈다. 그렇게 일본의 정치발전 가능성은 니토베 이나조 시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사상은 현실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호출되지만, 호출된 사상은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 메이지 유신 시기 근대화된 일본을 만든 지식인들은, 이후 자민당 일당지배 시스템을 만들드는데 일조했다.  한시기의 성공이 이후 시기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했다.

 

3. 일본을 발견하다.

일본을 모르는 사람은 일본을 쉽게 무시한다. 일본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을 모르는 우리가 놀라는 일본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일본 고대 역로의 모습이 놀랍다. 일본 고대 역로는 최소 9m, 최대 20m라는 넓은 폭을 가지 도록였다.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면서 직선으로 개설된 도로였다. 일본 고대를 낮추어 보았던 나에게, 율령지배가 세밀히 갖춰진 일본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우리 고대에는 이러한 역로를 가지고 있었는가? 세밀한 발굴을 통해서 삼국시대 역로의 모습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둘째, 일본의 존왕양이론, 주전론의 진실이다. 우리의 위정척사파 처럼 일본의 존왕양이론자들도 일본과의 통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러했다. 그러나, 일본의 주전론, 양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적 주장일뿐 시대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못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변화를 읽고 있었다. 대표적인 양이론자인 도쿠가와 나리아키역시 전쟁을 주장하거나 화친을 선택지에서 배제시키지 않았다. 그는 무모한 주전론자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외교가이자 술책자였다.

  서양세력을 막을 구체적 방법 없이 무모한 개항반대, 개화반대를 주장했던 우리의 위정척사파와 다른 일본인들의 대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손자병법'을 신봉하는 무사와 주자학에 경도된 유학자의 차이가 아닐까? 현실을 냉철히 파악한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일본의 사무라이와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여기는 조선의 유학자의 차이가 서양 제국주의자의 충격에 너무도 다른 대처를 했다.

  셋째, 다이쇼 데모크라시시기 '모성보호논쟁'이다. 좋은 집안의 라이초와 기쿠에를 비롯해서, 빈농출신으로  해외 배춘부로 팔려갔다가 탈출하여 남편에게서 글을 배운 야마다 와카가 "주부지우"라는 잡지에 자신의 주장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마치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한국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물론, 우리의 6월 민주항쟁이 민주주의의 진보로 이어졌다면,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1930년대 군부 집권으로 싹이 잘려나간다. 그러하더라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벌어진 '모성보호논쟁'의 치열함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이 역사가 일본 여성운동의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시대와 소통하며 발전한다. 시대를 떠난 사상이 없듯이, 사상 없는 시대도 존재할 수 없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치열히 사상과 역사가 호흡했다. 역사가 사상을 호출하기도하지만, 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호출하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사상을 호출하여 새로운 시대를 만들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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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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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천년고도 시안, 용문석굴로 유명한 뤄양, 찬란한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 남송의 낭만이 깃든 항저우, 육조 문화가 꽃을 피운 난징, 농경민족이 세운 명나라와 유목민족이 세운 원나라,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서술했다. 특히 각 도읍지의 문화 유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중국 도읍지를 답사 혹은 관광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중국의 도읍지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이번책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중국의 여섯 도읍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가지가 나의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번째는 용문석굴의 많은 불상들이 불법적으로 뜯겨져 외국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딱딱한 돌들을 쪼아서 외국에 팔어버린 중국인과 이를 사들여 자국에 전시하는 뻔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낸다. 용문석굴의 불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나라는 1위가 일본이고 2위가 미국이다. 대부분 반환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문화재도 외국을 떠돌고 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도덕보다는 힘이 앞서는 국제사회의 냉엄함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이러한 양심없는 국가에 비해서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간경사 마하가섭상이 불법 반출되어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진해서 중국에 문화재를 돌려주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이 칭찬을 받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다보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할 장물을 돌려주었을 뿐인데 칭찬을 받는다. 언제쯤이면 장물을 취득한 사람들이 이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례가 미담으로 신문에 나오지 않는 날이 올까? 아마도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는 판관 포청천의 일화이다. 카이펑을 대포하는 포증, 즉 포청천은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비춰진 것과 같은 박진감 넘치는 일화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황제가 총애하는 장귀비가 장요좌를 포증이 탄학할 때는 그 당당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포증은 황제에게 침을 튀어가며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채 부끄러움을 모르니 진실로 깨끗한 조정의 오물이고 대낮의 도깨비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는 마음이 좋을 리 없다. 황제는 침을 닦으며 자리를 떴다. 결국 장요좌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직간을 하는 신하의 말을 달게 듣는 인종의 어진 마음과 목숨을 걸고 옳은 말을 하는 포증의 당당함이 카이펑의 풍요를 가져왔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과연 그러한가 물어본다.

  한국사회는 독재정권시기에 너무도 부정부패가 넘쳐났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는 깨끗해지고 있다. 하지만, 깨끗해야한다는 윤리가 진보세력에게 너무도 가혹하게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노회찬을 잃었다. 그리고 조국을 법무장관에서 떠나보내야했다. 당시에는 사회적 관행이었을 수도 있고, 한국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당연시 누리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예전의 관행과 특권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보수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진보세력의 티끌들을 맹렬히 공격한다. 성인 군자와 청렴한 성직자가 아닌 이상, 한국의 인사 청문회를 온전히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 사회는 윤리적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윤리가 상대파를 밀어내기 위한 작두가 아니라, 사회를 아름답게 요리하기 위한 요리칼일 수는 없을까?

 

중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법은 중국의 역사를 태고적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방법은 역사를 시간순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잇점은 있지만, 역사책이 딱딱하고 재미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주제별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제별로 역사를 살필 경우, 역사의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을 수는 있으나,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을 빛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는 통사의장점인 시간 흐름 파악과 주제별 서술의 장점인 재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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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1-07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이펑이 어딜까 하며 읽다보니 개봉부군요 ㅋㅋ 포청천하면 개봉부^^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오노 가즈모토 옮김 / 살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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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투자가이기에 앞서 역사가로 세상에 기억되고 싶다."-8쪽

 

세계적 투자자 짐로저스의 말이다. 우리는 그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역사전공자이다. '예일대에서 미국사와 유럽사를, 옥스퍼드대에서 영국사를 전공했다.' 우리는 두가지에 놀란다. 첫째, 돈을 벌려면 경제학을 전공해야하는데, 그는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다. 둘째, 그는 돈버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세계적 투자자가 되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글로벌 투자사인 퀀텀펀드를 설립하고 10년 동안 4,200퍼센트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올렸다. 역사를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가둬 놓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역사학자들과는 달라, 그는 역사의 교훈을 이용해서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읽고 투자한다. 그의 성공비결이 알고 싶다.

 

1. 역사는 답을 알고 있다.

짐 로저스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과거 대폭락이 일어났던 역사적 시기를 조사하게하고, 폭락장세가 나타나기 이전에 시장에서 나타난 전조를 조사하게 했다. 짐 로저스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투자에 이용했다. 보통 우리는 역사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천년왕국의 건설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발전이 역사의 최종 목적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짐 로저스는 순환사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언제나 반복되기에, 이번은 예전과는 다르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반복되기에, 그 어리석음을 예측한다면 투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짐 로저스는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학을 투자와 연결시킨 탁월한 투자가이다. 밤하늘의 별만보는 천문학자에게 돈도 벌지 않고 밤하늘의 별만본다고 핀잔을 주자, 그 학자가 포도주기계를 모조리 샀다. 그러자 그해에 포도주 농사가 잘되어 그 천문학자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그해 풍년이 들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천문학을 천문학으로만 공부하느냐, 천문학을 우리 경제와 연결시키느냐에 따라서, 천문학자만이 될 수도 있고, 천문학자이자 투자자가 될 수도 있다. 역사학도 마찬가지였다. 짐 로저스는 역사를 투자와 연결시키는 몇 안되는 투자가이다.

 

2.  다이아몬드를 보기보다 원석을 봐라.

 

  "다들 싫어하고 꺼리는 것을 사랑하려고 한다."-189쪽

 

  마더 테레사의 말이 아니다.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의 말이다. 그는 무엇을 사랑한다는 말일까? 그는 "누가 봐도 빛깔 좋게 가공된 다이아몬드보다 세상이 쳐다보지 않는 원석이 내눈 길을 사로잡는 진짜 보석이다."라고 말했다. 짐 로저스는 투자가의 기본자질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들과 달리 세상을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똑 같이 사고하지 마라. 변화에 대응하라."-15쪽

 

  짐 로저스가 퀀텀펀드를 설립하고 400%가 넘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타인과 달리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타인이 보는 것을 본다면 그는 보통 투자가로 살았을 것이다. 때로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던 그는 역사를 공부한 역사가로서 역사의 변화를 읽고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하락장세를 예측하고 공매도를 했다. 성장이 예상되는 나라의 주식에 투자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커다란 수익률로 이어졌다.

  남들이 하는데로 휩쓸려서 투자하는, 묻지마 투자자와 어제 주식이 올랐으니, 내일도 주식이 오를 것 이라는 근시안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그는 외친다. 거시적으로 세상을 보라고, 현실의 파도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흐름을 보라고 말한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자신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일치하는가 스스로 물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짐 로저스는 말한다. 당당하게 자신의 관점을 갖고 살라고...

  그럼, 짐 로저스는 무엇을 원석으로 보고 있을까?  농업에 주목하고 있다.

 

  "농업 종사자는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라는 그의 지적이 충격적이다. 영국은 1주일에 한명씩 자살하고, 인도는 20 몇년 동안 30만명이 자살했다.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직종을 유망산업이라 소개하는 것이 의아스럽다. 짐 로저스는 말한다. 농업은 절대 없어질 직업이 아니다. 생산량과 소비량을 보면, 소비량이 생산량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의 현실 속에서 곡물값 폭등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돈을 벌려면 농업에 종사하라고 짐 로저스가 말했던 것이다. 너무도 암울한 농촌현실을 보면서, 과연 농업이 유망직종이 될 수 있는지 회의적인 생각이든다.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은 멀지 않았듯이, 농업이 암울할 수록 농업에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가 보다.

 

3. 북한과 중국에 주목하라.

 

  "나는 지금 딸들에게 표준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데 그것만 아니면 북한으로 이사할지도 모른다."-74쪽

 

  짐 로저스가 한국인이라면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어 감옥에 갈 말을 했다. 세계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 예상한 짐 로저스가 중국에 가서 살기 보다는 북한에 이사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짐 로저스는 중국보다 북한에 기회가 더 많이 열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짐 로저스는 2번이나 북한에 간 적이 있었다. 첫번째 방북과 두번째 방북 사이에 북한의 변화를 읽었다. 그리고 양질의 노동력과 자원이 있는 북한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개방을 이용해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일으키려는 구상과 맥을 같이하는 시각이다.

 트럼프의 몽니로 문제인 정부의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고 있다. 답답한 남북관계를 보면서, 언제 통일이 될 것인지 아득함을 느낀다. 그런데, 짐 로저스는 그러한 부침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거대한 흐름을 보라고 말한다. 남과 북은 통일 될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해제해도 미국만은 마지막까지 제재를 풀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북한과 종전선언을 할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하노이 노딜을 하고, 아직까지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트럼프를 보며, 짐 로저스의 안목에 감탄한다. 강대국들의 우리의 통일을 싫어한다해도, 우리가 이를 어떻게 뚫고 통일을 이루는가는 우리의 역량에 달려있다. 짐 로저스의 예측이 맞아 떨어질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가 돌파력을 발휘하길 바래본다.

 

4. 최첨단 기술에 주목하라.

  워런 버핏은 최첨단 분야 투자에 소극적이다. 애플 주식을 사는 것도 타인에 비해서 늦었다. 빌 게이츠가 소개한 최첨단 주식을 사는 것보다, 코타콜라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에 반해서 짐 로저스는 최첨단 기술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핀테크와 AI, 블록체인에 특히 관심이 많다.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말도 한다.

 

  "가격이 싸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AI 조차 보지 못하는 주식에 직접 리서치해 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크게 성강할 것이다."-227쪽

 

  AI 조차도 보지 못하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원석을 찾아 투자하라는 짐 로저스의 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진정한 투자자가 되려면 이러한 열정과 포부가 있어야한다. 워런 버핏도 경제이론이 99%를 맞투고 1%를 틀린다면, 자신은 1%에 투자하여 돈을 번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1%를 보고, AI 도 발견하지 못하는 원석을 바라보겠다는 짐 로저스!! 단순히 최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첨단 기술이 보지 못하는 곳도 보겠다는 짐념이 그를 세계적인 투자자로 만들었다.

 

5. 짐, 로저스 그만의 시각

 이 책에는 짐 로저스만의 시각이 녹아 있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파산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파산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없는 기독교"-프랭크 보먼

 

  한개의 기업과 은행도 문닫게 만들지 안으려고 하다가 좀비 기업과 은행을 만든 일본의 사례를 비판하면서 짐 로저스는 프랭크 보먼의 말을 인용하고 나서 "지옥에 보내야하는 인간을 방치하면 이 세상이 지옥이 된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온정주의를 배격하고 차가운 자본주의 논리를 강조하는 모습이 냉혹해보인다. 그러나 그의 안목은 정확하다. 한개의 기업도 한개의 은행도 문닫게 만들지 않으려다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있는 일본을 보며, 차가운 메스를 사용했다면 지금의 일본경제는 보다 나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2008년 경제 위기에서 감옥에 보내져야할 사람들에게 공적자금을 투하해서 보너스 잔치를 벌인 금융재벌들을 보면서 짐 로저스는 개탄한다. 이 조치가 더 큰 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일본의 사례를 본다면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독재를 절대악으로 보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일당독재, 일본의 일당시스템을 사례로 들면서, "독재체제가 경제에 반드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독재자의 그릇에 달렸다."고 외친다. 독재가 무조건 나쁘다는 우리의 상식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물론, 박정희 개발독재 시기에 경제 발전이 이뤄졌으며, 히틀러나 스탈린 시기에도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이러한 독재가 '절대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짐 로저스도 동의할 것이다. 독재하에서 경제가 발전할 수 있으나, 그 치하에서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리를 향유할 수 없다. 또한 산업화시기에는 개발독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창의성이 중요시하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개발독재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 그의 말중에서 나의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글귀가 있다.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외국인을 배제하고 문호를 닫은 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말이다.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폐쇄적인 일본은 '갈라파고스화' 되고 있다. 일본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을 예상하고, 통일 한국의 부상을 그는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폐쇄적이 되면 안된다. 개방적이어야한다. 인재를 받아들이고, 같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북한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통일한국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통일 한국을 담을 그릇을 키울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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