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중일 삼국지 - 갈팡질팡 한국, 허겁지겁 중국, 아등바등 일본
우수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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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나라! 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너무도 가깝지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오만함에 치를 떤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이다. 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은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교류하며 살아야한다. 신숙주가 죽으며 왕에게 남긴 유언이있다.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아니되옵니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끊는다면,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숙주의 예견은 놀랍게도 적중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조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안된다는 신숙주의 유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다. 신숙주의 마지막말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해야합니다."로 고쳐야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며,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수출 못하게하여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붕괴시키려했던 만행도 기억해야한다. 적의 한손을 잡고 있어야, 다른 한손으로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적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을 친구로 만든다면, 동아시아의 번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를 펼쳐들었다.

 

1. 내뱉는 문화를 가진 중국과 삼키는 문화를 가진 일본, 그 중간의 한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국과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한국은 두 나라의 가운데에 있는듯한 모습들을 많이 본다. 집안에서 여성의 권위가 강한 중국과 순종적인 이미지의 일본 여성, 두 나라의 중간 지대에 있는 한국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내뱉는 문화'라고 지칭하고, 일본의 문화를 '삼키는 문화'라고 이름 붙인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부터 높이는 중국인들에 비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동아시아 3국의 사회 문화가 비슷한듯하면서도 이리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걸어온 역사의 차이에서 찾고 싶다.

  중국의 경우, 거대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인 들은 "꽌시"를 중시하게 되었다. 어떠한 "꽌시"를 맺느냐에 따라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성공의 길이 순탄할 수도 있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와 꽌시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반역을 저지르면 3족을 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9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연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락제로 등극할때의 일이다. 영락제는 유명한 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조서를 쓰도록 했다. 방효유는 이를 거절하며 붓을 집어던졌다. 반역을 하면 보통은 9족을 멸하는데, 영락제는 10족을 멸했다. 친족뿐만아니라, 870명에 달하는 방효유의 친구와 문생까지도 도륙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 잘못하면 자신과 꽌시를 맺고 있는 친구들까지도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유튜브'우수근의 한중일 TV'에서 우수근은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시여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잘못을 인정시키려 몰아붙이지 말것을 당부한다.

  일본은 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까? 이것도 역시 일본의 역사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일본은 천년 이상 칼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섬나라 일본에서는 패배자는 할복을 하거나 승자에게 무릎꿇고 목숨을 구걸해야했다. 사무라이만이 칼을 휴대할 수 있는 에도막부 시기에는 사무라이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죽일수도 있었다. 어느 사무라이의 아들이 자신의 떡을 훔쳐 먹었다며 떡값을 요구하자, 사무라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창자를 꺼내 떡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 상인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할복을 한다.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 들으며, 사무라이 정신이 녹아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붓이 지배해온 우리의 감성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러한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평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이 없으면서도 무조건 사무라이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야했다. 일본인의 과잉 친절도 그들만의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를 보면 우리의 상식은 무너진다. 우리에게 했었던 수 많은 역사적 죄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속에서 일본인이라는 개인은 목소리를 낮춘다. 강대국인 미국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만은 근거없는 자신감과 오만으로 다가온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본인이 많이 읽는 고전은 "손자병법"이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은 미국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강자이며, 한국은 손만까딱하면 제압할 수있는 약자로 보이나보다.

 

2. 한국과는 다르지만, 일본과 중국은 너무도 닮은 것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인은 놀랍도록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중국 TV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공원에서 아이를 납치하는데,공원에 있었던 그 어떤 사람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러한 충격적인 모습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는 저자가 겪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추운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아무도 도우려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 사람을 건물안으로 옮기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같이있었던 일본인 친구들은 자리를 피했다. 일본에서 고 이수연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야기에 일본인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괜히 잘못 남의 일에 엮이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다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타인의 일에 나서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도 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어하고, 신세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극단적인 문화가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삭막한 일본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어떠한가?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가 필요한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며, 보리쌀과 마스크를 물물교환하자는 인터넷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은 한 시민이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마스크를 선물하고 왔다는 훈훈한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4월이 올때까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한국인의 문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시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은 잘살게 되어 나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과 관계 없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물론, 나의 생각은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일본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가 무서워서 시위를 하지 못한다. 단, 자신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상방'이라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할까?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세계인들이 놀라는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촛불 문화재를 열며 박근혜 최순실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조선왕조를 당파싸움만하다가 멸망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붓이 지배하는 나라이기에, 자신의 주장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꿋꿋하게 했다. 사약을 받아 마시면서도 자신의 말을 하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선비정신은 21세기 한국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를 '역사적 무의식'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역사적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우리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에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의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위를 이야기 했으니, 한중일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투표 제도 자체가 후진적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접적어야한다. 한지역구에서 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집안이 있을 정도이다. 마치 에도막부시기 지방의 다이묘들을 보는듯하다.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공산당 독재를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코로나 19를 강력한 통제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코로나 19에 대해서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리원량이라는 의사는 중국 당국에 잡혀가 다시는 이와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그리고 리원량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코로나 19에 걸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점이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지만, 너무도 둘은 정치적으로 닮아 있다.

  반면, 한국은 이명박근혜 시기의 어둠을 뚫고, 촛불혁명의 민주주의를 완성해가고 있다. 중국식 통제 방식으로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자율성을 살려가며 코로나 19와 싸워가고 있다. 한국의 극복사례와 중국의 극복사례는 단순히 두가지의 코로나 19 극복사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자율성과 공산주의의 통제정책의 대결이다. 우리 한국은 그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3. 한중일의 공통점

한중일이 서로 다른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근은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까지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수근이 소개하는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 잦은 동거와 쉬운 이혼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성문화 역시 예전부터 개방적이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부가 13세 혹은 15세 정도의 '동정' 청소년에게 성 관계를 위해 접근할 때 사용하던 의식을 소개한 부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성진국'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이밖에도 신주쿠의 성문화 소개는 우리의 상상 그이상의 것들이었다.

  중국 또한 자본주의 물결이 넘실되면서, 이혼이 쉽게 되었다. 부부사이의 문제가 없는데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문화도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 호텔 주변에서 쉽게 하룻밤을 자자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은 축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를 부러워한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공산주의 중국도 성문화 만큼은 빠른 속도로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쉬운 이혼과 결혼, 빠르게 퍼져나가는 동거문화, 성에 대한 개방화는 한중일 3국이 각자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발점은 다르지만, 개방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는 듯하다. 다시 전통시대 유교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개방화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개인 자유의 확대와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긍정해야할까? 아니면 성의 문란과 안정적인 가정의 해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아야할까?

 한중일의 공통점 중에서는 씁쓸한 것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교육 분야의 문제점과 영어를 숭배하는 문화이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에서 어설푼 일본어를 하기 보다는 영어를 하는 것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란고 우수근은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질때가 많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마쳐도 영어에 주눅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언제쯤, 한중일 삼국이 영어 숭배에서 벗어날지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중국이 G1으로 우뚝 솟는다면 가능할까?

  교육 분야도 한중일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붕괴, 엄벌주의의 문제를 보면서, 미국식 경쟁교육을 따라하며, 많은 교육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한중일 삼국이 머리를 맞대고 참다운 교육을 위해서 고민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이용한 국가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젊은 교사들의 용기있는 행동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1인자를 추종하는 '대세주의적 영합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침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잘못을 직시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가야할 길이 멀지만, 좌절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웃한 나라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가까이 있기에 서로 살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편견을 갖기도 했다. 이제 21세기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서로를 알아가야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발자국 더 다가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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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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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에 대한 기초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이 책을 펼쳤다. 한일관계사의 쟁쟁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를 한꼭지씩 집필했다. 총 18꼭지의 글들은 상당히 깊이가 있었다. 깊이가 있는 만큼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18번꼭지의 '일본의 외교 안정보장 전략의 변천과 한국'이라는 글을 이해가 힘들어서 저자를 살펴보았더니, 국제정치 전공자였다. 암튼, 18번꼭지의 산을 넘어 책을 다읽었으니, 다행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가지 생각할 꺼리가 던져졌다.

첫째, 허동현이라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허동현 교수는 과거 새누리당 국회의원 대상 강의에서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강의를 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과 친하다는데 허동현은 뉴라이트 학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글 '12. 오늘의 시점에서 본 한일관계'를 읽으며 그의 명확한 관점을 알고 싶었다. 글의 내용은 열린 민족주의에 대해서 논한 큰 무리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었던 뉴라이트에 대한 그의 명확한 견해는 없이, 혼란만 계속되는 글이었다.

 

  "최근 우리 지식사회는 정치지향과 세계인식을 기준으로 불때 크게 세 그룹의 지식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략) 민중적 민족주의 담론을 지향하는 지식인 집단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중략)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사학자 또는 정치사학자들이다. 마지막 하나는 (중략) 세계 시민 또는 민중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는 서양사학자와 역사사회학자들이다. (중략) 호랑이에 쫓겨 나무 위에 오른 누이와 같은 오늘의 우리 눈앞에 드리워진 동아줄 세 가닥 중 어떤 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릴 생명줄일지 못내 궁금하다."-202쪽

 

허동현도 궁금하니, 나는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허동현!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둘째, 일본 지식인은 살아있는가? 일본의 지식인들은 천황제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천황을 비판했다가 총격을 받은 나가사키 시장의 예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기도하다.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참으로 신기하다.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주자을 하기도 한다. "가토는 천황의 이름으로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의 희생자'에 대한 가해책임은 '일본 국민'에게 있으며 천황의 전쟁 책임은 천황의 이름 아래 죽은 300만의 '자국의 전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다. 이 무슨 괴변인가? 천황이 아시아인에게 저지른 만행은 죄가 아니란 말인가? 천황앞에서는 작아지는 일본 지식인의 나약함에 경의를 표한다. 더 나아가서, 미국과한 태평양전쟁 즉, 1941년 '선전조칙의 서명자'로서 책임만 천황의 책임으로 인정한 것도 그들의 빈약한 의식을 드러낸다.

셋째,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메이리인가?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 최고 책임자인 천황이 처단되지 않았고, 강대국 민국의 입맞에 맞는 재판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A급 전범에 대한 사형집행되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그들 상당수가 일본 정계와 사회분야에서 다시 등장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강조되는 이유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도쿄 전범재판은 이를 반증한다.

 

이 책을 통해서, 한일관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학계의 전문적인 글들을 대중을 위해서 쉽게 풀었느다고 했는데, 이를 쉽게 읽을 대중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전문적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저자들이 쉬운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것이고, 여러 저자의 글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저자들의 쉬운 글쓰기 역량이 균질하지도 않았다. 쉬운 글쓰기를 하는 전문 저자를 섭외해서 이 책을 쉽게 풀어쓰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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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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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시아인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될까?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동아시아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서아시아에서 부터 시작하여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하나로 묶는 '아시아'라는 개념이 과연 타당할까? 이러한 의문을 가질 정도로 아시아라는 개념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광대한 지역이다. 그리고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조차도 타지역의 아시아인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아시아네트워크)'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1. 그것은 거짓말일까?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라는 얇은 책을 읽는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책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기존 나의 지식을 무참히 짓밟는 주장들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간디는 성자인가?'라는 질문이다. '간디 자서전'을 읽은 나로서는 간디는 당연히 성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지옥에 내려간 사람이 "발가벗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릴린 먼로가 정을 통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와, 마하트마는 행운이야. 좋은 일 한 걸 되돌려받는 모양인데, 바로 저거야. 내가 원하는 벌도...."  그러자 천사가 귀띔했다. "저건 간디가 벌받는 게 아니라 마릴린 먼로가 벌받는 거야."-16쪽

 

 '유명한 인도 우스개'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농담을 읽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위대한 성자 간디를 간디인들이 이러한 농담소재로 삼을 수 있는가? 간디를 비판하는 자들은 무슨 근거로 간디를 비판할까?

  간디를 비판하는 자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간디에게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혁할 조언을 구하러온 노동자에게 간디는 협력과 조정을 권한다.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적극적 투쟁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간디의 조언을 따른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고, 간디를 따르지 않은 노동자들의 생활은 개선되었다. 노동문제 뿐만 아니다. 간디는 매혹적인 젊은 아가씨를 옆에 재우면서 어떻게 자제했는지를 장황하게 묘사하는 일로 '금욕주의'를 설파했다. 그런데, 그 실험 대상이 된 여성의 인권은 짓밟은 꼴이 되었다. 간디는 종교의 벽도 넘지 못했다.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간디의 투쟁 방식이 비폭력적이었다. 이것은 영국 자본가의 눈에 과격한 노동투쟁을 하는 자들에 비해서 간디가 성자로 보일 수도 있다.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다보니, 그 인물의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간디가 비록 흠결이 있지만, 그의 전체적인 삶을 살펴볼때 그는 경멸의 대상이 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다. 진보진영에서 과도하게 도덕성을 강조하여 탁월한 진보의 리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간디는 완벽한 성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를 존경하지 못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도 인간이니까?

 두번째 '인권 투사 코라손'은 과연 인권투사였는가?라는 질문이다. 1986년과 2001년 피플파워의 주인공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을 우리는 필리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과연 인권투사였는가라는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까? 그녀가 집권하고 나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성과가 미미했다. 군부세력의 쿠데타 위협속에서 군부세력과 타협하며 적극적인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것은 그녀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힌 결과일 뿐이지, 이를 두고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987년 '멘디올라 학살' 사건은 그녀를 더 이상 변호할 수 없었다. 토지개혁을 외치던 농부가 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보기만 했던 대통령'을 변호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이라 자평하는 포괄적 토지개혁법이 무력화 되기도 했다. 자신의 일가친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지주들이 빠져나갈 구멍들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피플 파워"를 통해서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지 못한 무능한 아키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지금의 문재인 정권도 '촛불 혁명'을 통해서 집권했다. '촛불 혁명'의 힘을 이용해서 적폐세력을 몰아내는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촛불 혁명'을 주도했던 국민들은 힘이 되어주기도 해야겠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매서운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실패를 우리의 반면 교사로 삼아야한다.
 세번째. ''킬링 필드'의 전설을 끊는다.'이다.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주에 의해서 캄보디아에서 300만명이 학살당한 사건이라 기억한다. "'킬링필드'의 전설"이라는 제목 자체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킬링필드'는 거짓이라는 말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킬링필드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킬링필드는 1969년 부터 1973년까지로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이 캄보디아를 폭격하면서 40만~8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다. 2차 킬링필드는 1975년 부터 1979년까지로, 크메르루즈를 이끄는 폴 포트에 의해서 처형 10만~30만명에다가 기아와 질병, 중노동으로 사망한 이들을 합쳐 최대 약 80만~100만명이 사망했다. 1차와 2차를 합쳐 10년 동안 약 150만~160만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즈에 의해서 이뤄진 학살만을 떠올린다. 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이뤄진 죽음은 애써 외면한다. 국제사회가 학살자 처벌을 주장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만 호출하여 재판하려한다. 강자의 학살에는 눈감고, 약자의 학살에는 단호한 것이 정의란 말인가? 강자든 약자든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면 모두 재판대에 올라야하지 않는가?

 이책을 읽으며 가장 읽는 시간이 많이 걸렸던 부분이다. 나의 고정관념을 수정해야했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는 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시아'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무지했다.

 

2. 혁명의 시련과 고통의 아시아.

  우리에게 5월은 민주화의 시기이자, 고통의 시기이다. 5.18 민주화 운동부터 시작하여, 5.16 군사쿠데타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5월에 일어났다. 5월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태국에도 5월 혁명이 있었으며, 필리핀에도 5월 항쟁이 있었고, 인도네시아의 5월도 뜨거웠다. 그러나 이들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민주화를 위한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 구질서를 말끔히 제거하지 못했다. 마치 5.18민주화 운동 이후에 신군부세력의 폭압정치가 이어졌듯이 그들도 계속 혁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눌 스님이 '돈오점수'를 말하지 않았던가! 돈오! 깨달았다면, 점수! 수행해야한다. 한번의 혁명으로 시대가 바뀌지 않는다. '시민의 힘이 조직되지 않는다면 혁명은 납치 당한다.'라는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시민은 조직되어 계속 혁명을 이어가야한다.

  이들 나라들이 혁명의 첫발을 이뤘다면, 동티모르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는 혁명의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구스마오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의 기쁨도 잠시, 인도네시아와의 독립투쟁을 해야만했다. 많은 동지와 동포들이 죽어갔고, 그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감옥에 갖혀 혹독한 심문을 받아야만했다. 국제사회의 관심으로 독립의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인도네시아에 매수당한 반독립파들이 동족을 죽이는 현실을 보며 울분을 토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되돌아와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게릴라 동지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빌 것임을 분명히 약속했다."-251쪽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없다. 진실은 승리한다." 촛불 집회 때 불렸던 노래 가사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진실이 승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직시하면 많은 슬픔이 밀려온다. 인도네시아에 빌붙어 동족을 죽였던 반독립파를 끌어 안아야만 하는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할까? 진실이 힘을 갖지 못한다면,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구스마오가 독립과 혁명의 기쁨을 누렸다면, 그 기쁨을 위해서 달려가는 두 사나이가 있다. 한명은 민주화를 위해서 밀림으로 간 의사 나잉옹이다. 다른 한사람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다. 버마에서 안락한 의사생활을 할 수도 있었던 나잉옹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밀림으로 들어가 게릴라가 되었다. 승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이어가며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는 인간 나잉옹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국경지대의 소수민족과 유대를 지켜가며 자신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모습은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독립투사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나잉옹은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타국의 민주화를 지원해줄 정도의 성숙된 모습을 가지는 못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아흐메드 야신! 그는 나잉옹 처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야했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다 쓰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다. 이러한 나약한 몸의 소유자가 강력한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1948년 "대학살"을 겪고,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술과 마약, 섹스로 펠레스타인 젊은 이들을 유혹하여 정보를 빼내는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책을 쓰고, 무장단체 하마스를 조직한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잡혀 자신의 눈 앞에서 아들이 고문당하고, 자신의 육체가 부서져도 그는 이스라엘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몸도 망가졌다. 그러면서 한국의 독자에게 말한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시절을 돌아보자. 한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순결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들의 난동으로 불러왔던가?"-264쪽

 

  아흐메드 야신의 이말에 나는 숨이 멈졌다. 자신의 삶의 터젼을 잃어버린 이들의 절규가 느껴졌다. 야신은 "과연 누가 테러리스트고 누가 희생자였던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답해야한다.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강자의 폭력인 전쟁, 약자의 폭력인 테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악한가? 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한다면 그 세력이 나쁜 것이 아닐까? 나치의 박해를 경험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면 분쟁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너무 큰 희망사항일까?

  아시아는 아파하고 있다. 한번의 혁명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계속 혁명을 위해서, 혹은 독립과 혁명을 위해서 부단히 몸부림치고 있다. 아파서 울고 있는 아시아에 너무도 무지했던 우리는 이제 관심을 갖아야하지 않을까?

 

3. 아시아의 여성과 성

미투운동이 한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억눌렸던 여성들이 이제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의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당당히 밖으로 나온 것일까?

  여성의 지위를 말할때 그 사회의 대통령 혹은 수상이 여성출신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이 질문에 아시아는 당당히 있다고 말한다. 여성을 억압한다고 평가 받아온 이슬람 사회에서도 여성 대통령과 총리가 선출되었으며, 스리랑카와 필리핀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활약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여성의 인권은 높지 않다. 왜? 일까? 문제는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가보다 여성이 어떠한 정치를 하는가에 있다. 치마를 입은 남성이 정치를 한다면 현실정치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성다운 정치를 하지는 못했다. 스리랑카의 쿠마라퉁가는 남편이 암살된 후, 가정주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대통령이 된 그녀는 타밀 호랑이와 전쟁을 확대한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결국, 그녀도 몰락한다.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여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했으며, 남성의 마초적인 정책을 흉내내려했다. 이는 스리랑카에서만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다른 나라의 여성정치인에게서 나타난다.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 지위에 올라가지 않고, 가문이나 혈통의 후광에 기대어 최고 위치에 올라가다 보니, 남성 정치를 흉내낼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아시아의 여성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하이힐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이스라엘군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여성이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이다. 독립만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에 안주가히 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 용감히 현실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2천개의 율법"으로 여성을 옥죄고 있는 레바논의 경우를 보면서, 여성의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레바논 여성들은 최소한 교육에서는 외형상 성평등을 이뤘으니 말이다.

  "오럴 섹스"를 하면 종신형에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것도 강소국 싱가포르에서 말이다. 아시아에서 '성'은 억압의 대상이다. 태국의 경우, 성산업을 황색 저널리즘으로 이용할 뿐, 성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성애 교범인 카마수트라를 남긴 인도 역시 성을 금기시한다. 서구에 비해서 아시아는 성에 대해서 억압적이고 수줍어한다. 물론, 성진국 일본은 예외이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억압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섹스를 장려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억압할 필요도 없다. 건전한 성문화는 사회를 밝게 만들테니 말이다.

 

 

4. 민족주의는 악마인가?

 민족주의를 악마화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주의를 말하면, 히틀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1민족 1국가의 역사가 깊지 않은 서구와 남아시아 사람들에게 민족은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민족을 순수 혈통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악마일까?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거짓말을 진실로 믿기 때문이라 말한다. '종교'와 '민족'이 사피엔스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민족을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면, 민족주의에 쏟아지는 비난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아직 민족을 만들지 못한 국가의 민족 만들기는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치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민족을 호출했듯이 말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독립투쟁을 '민족주의'를 만드는 핵심 신화로 이용했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1965년 9월 공산주의자 박멸을 '민족주의'를 만드는 신화로 이용했다. G35S가 인도네시아의 주요장군을 살해한 사건을 수하르토가 격퇴하면서 그는 민족의 영웅이 되어 독재정치를 한다. 기존의 인도네시아 교과서에서도 수하르토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주요 장군들이 신체 중요부위가 잘라진체 죽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주요 장군들은 공산주의자에게 신체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없으며, 신체 중요부위가 절단되지도 않았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 현대사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설 때만이 인도네시아는 보다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올바른 민족만들기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민족을 만드는데, 민족의 문화유산은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재를 돌볼 경제적 여유가 없고,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문화재를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아시아의 현실이다.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은 도굴과 약탈, 파괴를 겪어야했다. 그리고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에서 발굴되는 유물은 이스라엘의 입맛에 맛는 유물만 살아남고 있다고 이책에서는 말한다. 약자의 힘은 단결에 있다고 한다. 약소국들이 많은 아시아가 하나로 단결하여 문화재 도굴, 약탈, 파괴 문제를 다룰 때만이 해결의 실마를 얻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시아의 민족만들기는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잘못된 신화와 싸워야하며, 강대국의 약탈과 파괴에 맞서야한다. 아시아의 연대는 요원한 걸까?

 

 

 6.25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내전? 강대국의 대리전? 등등 수많은 평가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6.25가 아시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본에게는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인도는 비동맹의 리더로서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필리핀은 파병을 강요당했으며, 타이의 경우 군부가 부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많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6.25는 아시아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말이다..... 나는 질문한다. 혹시, 당신에게서 아시아도 6.25와 같은 잊혀진 존재는 아닌가? 힘있는 강대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 갖으면서, 우리의 이웃인 아시아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심이 없다. 아시아는 제2의 6.25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시아는 바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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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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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경계인의 예민한 눈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 그 매서운 눈길에 때로는 감탄을 하고, 때로는 강한 반발을 하기도한다. 2002년 월드컵때 붉은 악마들에게 파시즘의 모습이 보인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으며, 안중근 의사를 인종주의에 매몰된 인물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강한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박노자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우물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서 밖의 드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경계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그의 글이 필요했다. 인간 박노자의 생각을 탐구해보기 위해서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꺼내들었다. 경계인인 그의 내면속에는 어떻한 생각들이 펼쳐질까?

 

1. 여린 마음을 가진 박노자.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쓰디쓴 독설을 내뱉는 박노자의 글들을 보면서, 그는 강한 투쟁정신으로 무장한 투사의 이미지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읽기를 읽노라면, 그가 얼마나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소년인지를 알게 된다. 그가 소련과 독일이 싸운 '조국전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영화를 보면서 느낀 소감은 그의 여린 마음을 알기에 충분하다. 박노자는 소련군 남성이 독일군 중년 여성을 죽이는 클라이막스를 보며 '뿔쌍하게 죽은 여성'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보통의 남성들이 힘에 대한 숭배, 화려한 전투씬에 대한 감탄을 하는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섬세하면서도 여린 그의 심성이 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했다. 나아가 수많은 폭력에 대한 가열찬 저항을 하게 했다.

  그는 군대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폭력과 권위주의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있다. 군대, 폭력, 권위주의는 전체주의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나키스트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러나, 아나키스트 단체인 의열단에 의해서 이뤄진 의열 투쟁에 대해서 박노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의 총알받이가 된 이국의 최하급 관리를 폭사시키는 것보다 그들에게 이 세계의 실상을 설명하여 계급운동으로 이끄는 것이 도덕적인 차원이든 운동 논리의 차원이든 훨씬 낫지 않았을까."-162쪽

 

  개인을 억압하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아나키스트 단체 의열단에 대한 그의 평가는 너무도 박하다. 박노자는 '일제 군대의 시베리아 출병 때 고려인 공산주의자들이 선전 선동을 펼쳐 큰 성과를 얻은 경우'도 있음을 근거로 폭력에 의한 투쟁보다 일본인들에 대한 '세계의 실상을 설명'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이러한 박노자의 주장을 읽으면서 그가 완벽한 '낭만주의자'임을 확신했다. '김산의 아리랑'의 주인공 장지락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이유도, 3.1운동 시기 일제의 총칼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나약한 기독교 인들에 대한 모습을 보고 난 이후부터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를 설득시키려했으나 그들은 무참히도 총칼을 휘둘렀다. 독립은 감상적인 행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만국공법에 따라서 포로 수용소에 적군포로를 가두든지, 아니면 풀어주어야한다는 원칙을 지켰던 안중근이 결국은 자신이 풀어준 포로의 밀고에 의해서 처절한 패배를 맞이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박노자의 평화주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독립운동의 방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평화주의적 방법이 항일 투쟁의 일부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나 이를 항일투쟁 전체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박노자는 의열투쟁보다 공산주의 투쟁을 더욱 효율적이라고 본다.

 

  "폭력을 주된 도구로 하는 '소수 영웅들'의 투쟁인 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성이 확보된 공산주의적 투쟁, 즉 노조와 당 건설, 파업 주도 등은, 이에 비해서 훨씬 덜 폭력적이면서도 더 효율적이었다."-164쪽

 

  의열투쟁보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뤄진 투쟁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박노자의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을 건설하고 노조를 결성해서 일제에 투쟁하려했으나, 그들의 분파 투쟁으로 인해서 당은 제대로 된 생명력을 갖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분파를 위해서 상대 분파를 해치는 일도 있었다. 그들에 의해서 이뤄진 파업도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지도 못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박노자의 사회주의에 대한 편애가 역사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듯하다. 그의 여린 마음이 감상적 항일투쟁이 효과적이라는 편견을 만들었다.

 

2. 그가 불교를 사랑한 이유

  박노자의 글을 읽다보면,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불교 용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박노자는 어려서 '법구경'과 '수타니파타' 초역본을 읽으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고교시절에 "법구경"과 "수타니파타"의 초역본을 읽고서야 자기 내면의 분노와, 그 원천인 탐욕 아집 어리석음을 없애고 자기와 남을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남성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남을 칼로 찌를 생각과 능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이었다."-48쪽

 

  폭력이 여린 소년 박노자를 괴롭혔고, 그 번뇌에서 불교가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하나를 좋아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한다. 박노자는 그러하지 않다. 그는 '불교는 평화의 종교?'라는 의문을 던지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불교를 매섭게 비판한다.

 

"'이단인'과 종교 전쟁을 하지 않는 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승불교든 상좌부 불교든 국가의 폭력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국가를 보호자로 삼는 것은 불교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 (중략) 신라말기부터 있었던 한반도에서의 승병 동원 등은 어떤가?"-278쪽

 

  박노자의 철저한 비폭력주의에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임진왜란 시기 승병이 목탁을 집어던지지 않았다면 평화가 지켜졌을까? 일본군의 칼날 앞에 도륙되는 조선의 민초를 살리기 위해서 칼을 들 수밖에 없는 조선의 승병들을 박노자는 이해하지 못하는가? 집안에 강도가 들어 가족을 위협하는 상화에서도 박노자 당신은 몽둥이를 들고 대항하지 않을 것인가? 자신의 가족이 눈앞에서 유린당한다해도???

  박노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우리 보두에게 "나는 살인기술을 배우지 않겠다"고 외칠 용기가 생기기를' 기원했다. 군대에가서 살인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세상의 모든 악이 사멸되는 시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 때가 도래하기를 바래본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현실은 이상사회가 될 수 없다. 단지 이상사회에 다가가려 노력할 뿐이다.

 

3. 박노자는 한국을 사랑하는가?

  박노자는 '한국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권력과 지배, 돈이라는 일차적인 맥락을 무시한 '한국 전체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성립이 될 수 없는 개념인 듯하다."-213쪽

 

  박노자는 한국이 안고 있는 폭력성과 순치되고 있는 노예성등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철학자 강신주가 한사람을 사랑하려면 그 사람의 아픔까지도 사랑해야한다고 말했다. 박노자가 한국을 사랑하려면 한국의 아픈 곳까지 사랑해야한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순치되고 있는 노예성도 보듬어야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 폭력성과 노예성을 긍정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폭력성을 줄이고 노예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보듬고 치유하려해야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부분만 사랑하려는 박노자의 모습은 한국을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선으로 옮겨진다.

 

"북한 대중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통치자간의 야합을 '통일'로 생각하는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권으로서야 백낙청과 같은 현대판 '산림'의 협력은 하늘로부터의 선물일 테다. (중략) (강만길 선생이) 이름뿐인 '친일 청산'의 수장 역할을 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략) '민족'까지 잘 모르지만, 개인의 '정기'를 바로잡자면 학교에서 머리를 마음대로 기르고 키스를 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은가 싶다."-126쪽

 

"노무현 정부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이 한반도의 민초들을 자본의 영원한 예속민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231쪽

 

  소년시절을 소련에서 자란 박노자에게 어린시절 공산 소련사회는 추억의 장소이다. 그 추억의 장소는 빵배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사회이지만, 공동체 사회가 해체되지 않은 안식의 장소였다. 박노자는 그 안식의 장소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공산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절대 좋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박노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없다. 거대악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미시적 악도 제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박노자는 알고 있을까? 친일 청산을 위해서 '친일 인명사전'을 편찬하고, 북한과 화해 협력을 이뤄내려는 일련의 노력이 없이는 북한 주민들의 억압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박노자는 알지 못하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남북통일을 위한 노무현정부의 일련의 노력을 '자본의 영원한 예속'으로 비춰진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나의 오만일까?

  한국사회가 일제강점기 아픔을 지금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순을 없애지 않는다면 불의가 승리하는 추악한 역사를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박노자는 알지 못한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푼 역사를 어루만지는 사랑이 없다면 햇볕 정책도 친일 청산 노력도 부질 없는 것이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아픔까지 사랑한다면 우리의 노력을 이렇게 매몰차게 비판할 수 없다.

 

4.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민족'인가?

박노자는 '민족'과 '국가'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다.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박노자에게 '민족'과 '국가'는 폭력의 대상이었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천여년 동안을 나라없는 민족으로 유랑해야했다. '국가'는 그들을 학살하거나 차별했다.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민족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었던 스탈린 시대가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기라는 역설이 벌어졌다. 이러한 그의 배경은 대한민국에 귀화하면서 더 강력하게 '민족'과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그의 글이 신선함으로 다가왔지만, 그에게는 생명이 위협받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사회의 진정한 문제점은 '민족'이 아니라, '마을'이라고 토로한다.

 

  "가족이든 동창이든 친한 지인이든 정말 '관계'가 있는 사이라면 한국인만큼 잘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완전한 타인들이 익명으로 서로 접촉하는 인터넷이라면 바로 정반대가 된다. (중략) '마을의식'이라 할가? 자기 마을 안에서는 예의범절을 다 챙기지만, 바같에 나가면 속을 풀대로 푸는 전근대적 '소속 소집단 중심의 사회적 연대'인 셈이다. 글쎄, 나 같은 사람들은 '민족주의' 등의 거대담론들을 자꾸 문제 삼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범주는 사실 무슨 '민족' 보다도 이 '마을(가족, 동창집단, 친구들 등 가가운 사람들)'인 듯하다."-110족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혈연과 지연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박노자는 이를 '마을의식'이라 표현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6.25, 산업화를 거치면서 커지는 불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도와줄 끈이 필요했다. 그 끈을 혈연과 지연으로 대표되는 '마을의식'에서 찾았다. 이러한 '마을 의식'은 부정과 부패, 불합리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박노자의 말대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마을의식'일지도 모른다. 이 마을 의식이 인터넷과 만나면 악성 댓글로 표출된다. 그 악성 댓글에 목숨을 끊는 연애인이 발생하기도한다.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찾는 우리의 모습을 언제쯤 찾아볼 수 있을까?

 

 

박노자의 글을 언제나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소련붕괴 직후의 러시아에가서 점령군 행세를 하는 한국의 유학생들과 목사들의 모습에서 통일 북한 지역에서 벌어질 통일 남한 사람들의 점령군 모습을 본다는 박노자의 견해와, 현실 정치에 관심없는 일본대중의 모습에서 일본의 평화와 안전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문이라는 그의 견해는 나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때로는 통쾌하기도 하지만, 박노자의 글은 항상 불편하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글과 불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없는 글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의 글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를 덮고 있는 껍질을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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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1
조승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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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개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개의 영혼을 갖는 것과 같다." 샤를마뉴의 말이다. 청소년기!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면서 어학공부의 재미를 알지 못했다. 언어에는 우리의 혼이 담겨 있기에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우리말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말의 참의미도 깨닫지 못했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을 읽으며 알았다. 샤를마뉴의 말처럼, 새로운 언어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영혼을 갖는 일이기에, 우리의 언어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도 이해가 갔다. 언어천재 조승연의 언어를 통해서 인문학의 재미에 빠져보자.

 

  조승연은 다양한 영어 어원들을 탐구하며 그 본래의 뜻과 그 뜻이 변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단어에도 인문학이 녹아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조승연의 안내를 받아 탐구하는 언어 인문학의 세계는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학생들에게 바로크 미술과 로로코 미술을 가르칠 때, '바로크'와 '로코코'의 뜻을 설명해준다면 학생들의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해서, 인터넷에서 그 뜻을 검색했던 적이 있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여드름'이고, '로코코'는 '조개껍질'이라는 뜻이었다. 어원을 알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역효과를 불러냈다. 결국, 어원을 학생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수업을 했다. 왜? 절대왕정기의 바로크 양식과 귀족적인 로코코 양식이 이렇게 초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의문을 해소할 길은 없었다.

  그 의문을 해소한 것은 바로 이책을 읽고서 해소되었다. '바로크'가 포르투칼어로 '찌글찌글한 여드름 같다.'라는 뜻인데, 해녀들이 흔히 쓰는 도저히 팔수 없는 못생긴 진주라고 하는 말을 가져다 붙인 이름이고, 로코코는 '조개껍질'이라는 뜻으로 당시의 미술이 조개껍질 같다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즉, 미술은 한시대를 앞서가기에 기존의 미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미술양식이 추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미술 사조에 대한 이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나의 머리는 상쾌해졌다. 어원을 통해서 한단어를 인문학적으로 탐구하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문화와 예술, 신화, 역사에 대한 공부가 자연스럽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언어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아는 것이다.

   Thank you라는 말을 통해서도 서양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thank는 think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Thank you"는 네가 해준 일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겠다.라는 뜻이다. You're welcome라는 말의 welcome는 well과  come라는 뜻이 합쳐진 말로써, 너는 손님이니 빛이 아니다.라는 듯이 담겨있다. "excuse me"라는 말에는 제발 법적인 조치에서 저를 빼주세요. 라는 뜻이 담겨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기계적 암기를 했다면 그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에서는 그 어원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이를 통해서 서양인들의 정신세계에는 "Give and take"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조승연은 여기에 그들이 부부사이에도 조그만 일에 "please"와 "Thank you"를 붙이지 않으면 화났다고 생각한다는 일화를 곁들인다. 결국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은 문화차이를 극복못하고 이혼한다. Do ut des.(도 우트 데스.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단어다. 서구법의 기본원리가 된 이 원칙이 그들의 삶에도 녹아 있었다. 모든 것에 공짜는 없다. 상호성의 원칙이 언어와 삶에 녹아있다는 사실은 우리와 다른 점이다. 다르기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 인문학을 알아야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일으면서도 왜? 영어 제목이 "The Prince"인지에 대해서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저자가 의역을 해서 우리에게 '군주론'으로 알려졌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prince의 어원이 premier이라는 사실과 The prince of Monaco(모나코 국왕), Charles, prince of wales(찰스 왕자)라는 표현을 알고 나서야 "Prince"라는 단어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Prince라는 단어가 국왕에서 왕자로 의미가 변천된 연원이 영국이 웨일스를 병합하기 위해서 즉, 에드워드 왕이 자신의 아들 찰스를 웨일스 계승자로 정하면서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그 단어의 역사를 알아야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Booting라는 단어를 조승연은 문차우젠 백작의 일화에서 생겨난 단어라 설명한다.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 끌어올렸다는 일화에서 생겨난 단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는 말을 타기 전에 부츠를 신어야 한다는 것에서 온 것이라 설명했다. 말을 타기위해서 부츠를 신어야하듯이, 컴퓨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버튼을 눌러야하기에 부팅이라는 단어가 컴퓨터에 사용되었다는 설명이다. 조승연의 설명보다 이어령 교수의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이해가 잘되었다. 아마도, 단어의 어원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 두사람의 주장은 학설의 차이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이라는 책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새로운 영혼을 얻는 길이며,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특히, 언어를 배울 때는 단순 암기식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인문학을 탐구하듯이 그 단어의 어원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해주었다. 조승연의 '비즈니스 인문학'이라는 책도 읽고 싶어졌다. 그래, 단어의 어원을 공부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자.

 

ps. 옥에도 티가 있듯이, 이 책에도 약간의 오류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는 간접민주국가였다."

=> 아테네는 직접 민주국가이다. 인구가 적었던 아테네는 직접 민주정치를 할 수 있었으나, 현대국가에서는 장소와 많은 인구수로 인해서 국민의 대표가 정치를 하는 간접민주정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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