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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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케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프랑케인슈타인 박사를 떠올리기 보다는 프랑케인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프랑케인슈타인 박사는 괴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괴물의 이름을 프랑케인슈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괴물이라기 보다는, 그 괴물을 창조한 프랑케인슈타인 박사이다. 프랑케인슈타인 박사의 어리석은 도전이 괴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프랑케인슈타인 박사보다는 괴물에 집중한다. 히틀러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히틀러라는 괴물은 수많은 집시와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였고, 수많은 유럽인들과 소련인들을 살상했다. 그러나, 괴물 히틀러가 활약하는 무대 뒤에서 그를 만들었던 자본가와 금융가라는 프랑케인슈타인 박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책은 자본가와 금융가라는 프랑케인슈타인 박사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다른 2차 세계 대전 관련 서적과 차별화 된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히틀러 집권기 독일인들은 행복했는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 나치의 정식 명칭이다. '신성로마제국'이 신성하지도, 로마답지도, 제국도 아니었듯이,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노동자의 고통에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사회주의를 싫어했으며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시위나 파업이 벌어질 조짐만 있어도 즉가 무장한 게슈타프가 개입하고, 뒤이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심지어 체포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19396월 뤼셀스하임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 오펠공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 집권 시기 독일 노동자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있다.

그런데, 1960년대 까지도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는 잘했고, 그의 '유일한' 잘못은 유대인학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 뿐이라는 망상을 하는 자가 있었다. 무척 놀라운 것은 독일 노동자를 비롯한 '힘없는' 독일인들까지 히틀러의 통치가 독일의 약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회색분자를 조심해야한다.'라는 말이 있다. 합리적 중도론자 일수도 있지만, 그들은 히틀러처럼 교묘히 자신의 이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대중이 좋아하는 수사로 자신을 속이는 선동가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이라는 명칭이 겉으로는 친노동자, 친사회주의로 보이지만, 히틀러는 친사회주의자 행세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친구처럼 보이도록 독일 노동자들을 속이며 노동자들의 표를 갈취했다. 그리고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유대인 마르크스가 만든 공산주의를 현실에서 실현하려한 소련을 공격하며, 자본가들에게 정치자금을 모았다.

히틀러 집권시기 노동자들은 행복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이 신화를 믿는자들 중에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너무도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이다. 박정희 개발독재시기 저곡가정책으로 시골 땅을 버리고 서울에 올라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하며 가장 많은 수탈을 당한 노동자들 중에는 '박정희 덕분에 잘살게 되었다.'며 박정희를 숭배하는 사람이 꾀있다. 인질범에게 강금당한 사람들이 인질범을 이해하고 오히려 인질범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스톡홀롬'증후군이 우리 현실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스스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간과 지적 능력이 없는 그들에게 강자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퍼트린 프로파간다를 그들은 내면화한다. 대중체면에 걸린 '불쌍한' 노동자들은 히틀러 신화와 박정희 신화를 내면화하며 그들을 옹호하는 집회에 나가 쇠사슬을 벗어던지지 못한 '노예'처럼 울부짖는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은 주인이 사라져도 노예의 삶을 청산할 수 없다.

 

2. 히틀러의 출현은 역사의 우연한 사고였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높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높았다면 역사는 바뀌었다고 단언한 파스칼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송사리 한마리가 바꿀 수 없듯이, 히틀러라는 미꾸라지 한마리가 없었다고 나치즘이 출현하지 않을 수는 없다.

히틀러가 저지른 가장 큰 악행을 꼽으라면, 단연 '유대인 학살'을 말할 수 있다. 히틀러가 없었다면, '유대인 학살'은 없었을까? 특정 인종을 절멸 시키는 것은 역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미국의 백인종들은 '붉은 피부(red skin)을 절멸에 가깝게 말살했다.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호주의 선주민인 어보리진을 백인종들이 인간 사냥을 통해서 절멸에 가깝게 없애버렸다. 히틀러는 미국의 인종주의 이론뿐만 아니라, 미국이 인디언들을 말살한 '실천'까지 영향을 받았다. 히틀러와 미국의 백인들이 달랐던 점은 백인들이 인디언(Native Americans)들이 알콜중독과 자살자들이 증가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만든 반면, 히틀러의 유대인 절멸 계획은 실패했으며, 유대인들이 미국을 등에 엎고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 뿐이다. 힘없는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는 철저히 무관심의 영역에 잠들어 있는 것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자들이 인디언들을 학살한 백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계획이 미국에서 이뤄진 인디언 절멸에서 영향을 받았다면, 히틀러의 집권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단독으로 국회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적이 없다. 돈도 없었던 오스트리아 상병이 맥주집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히틀러의 뒤에는 자본가와 금융가가 있었다. 그들은 확산하는 '혁명'의 분위기와 소련을 필두로하는 공산세력의 확산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이 사업하기 편리하도록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공산세력을 청소할 인물로 "히틀러가 채용되었다." 히틀러가 자본가와 금융가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와 금융가가 "히틀러를 채용했다."

자본가와 금융가에게 채용된 히틀러는 그들이 원하는 노동자 탄압, 반공산주의 정책을 펼친다. 그리고 자본가와 금융가가 히틀러를 채용하도록 도운세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침묵하는 다수의 독일인이었다. 아일랜드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소수의 노동자들과 공산주의 세력이 히틀러의 집권에 반발했지만, 절대다수는 현실에 순응했다. 저자 자크 파워은 프로테스탄트 목사인 마르틴 니묄러의 유명한 시를 인용한다.

 

"처음에 그들이 공산주의를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들은 사회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70

 

히틀러는 가정폭력 남편이 아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먼저 차단하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듯이, 독일의 약자들을 고립화시켰다. 독일의 약자들은 어리석게도 현실에 순응했다. 단결하지도 않았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독재에 맞서려했던 우리의 민주화 투사들과는 달리, 독일의 지식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오늘 자신의 일만을 열심히 했을뿐, 히틀러라는 괴물에 지배당하는 독일을 구하려 일어서지 않았다. 우익독재는 허약한 민주주의에서 발생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행동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독일은 히틀러라는 괴물을 헤치울 수 없었다. 그 결과 자본가와 금융가의 지원을 받은 히틀러가 집권했다.

저자 자크 파월은 "이 모든 일에 대해 히틀러 한 사람에게만 또는 히틀러와 소수의 나치 '악당'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단언한다. "히틀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부와 권력을 가진 독일의 지배층은 또다른 히틀러를 찾아냈을게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역사를 바라볼 때, 거시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미시적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히틀러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며 히틀러라는 괴물은 그의 특이한 성격과 가정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라 서술한 책들이 있다. 미시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이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히틀러의 탄생은 우연이 아닌,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렇다. 히틀러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히틀러는 자본가와 금융가들이 원하는 일을 충실히 이행했다. 독일의 재무장화와 아리아화를 통해서 많은 자본가와 금융인들이 이익을 보았다. 독일 자본과 독일 금융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와 금융인들이 이익을 보았다. 창고에 쌓인 무기들을 없애고 새로운 투자지를 필요로하자,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3. 히틀러만의 전쟁이었을까?

2차 세계 대전은 히틀러라는 정신병자가 일으킨 단순한 사건이었을까? 히틀러만 없었다면, 2차 세계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히틀러가 없었어도 제2차 세계 대전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라고 말했듯이, 전쟁을 바랬던 수많은 자본가와 은행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고용된 히틀러는 주인의 뜻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자크 파월이 이 책에서 금융가와 자본가들이 나치에 협력하고 이를 통해서 엄청난 이익을 벌어들인 것은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책에 소개된 악마의 상인들을 일부만 살펴보자.

나치 친위대에 협력했던 기업가를 꼽자면, 지멘스, 다임러-밴츠, 메엄베를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유명한 기업들이다. 도이치 뱅크 터키점은 유대인의 죽음과 맞바꾼 금을 거래해 수수료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도이치 뱅크는 지금도 유명한 독일의 은행이다.

파시즘을 사랑하고 호의적이었던 것은 독일 기업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기업가 상당수는 히틀러가 프랑스로 와 "상황을 바로 잡아 주기"를 바랬다. 1939년에서 40, 전쟁초기 프랑스 정치 권력자와 군 고위간부들이 의도적으로 패전을 했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돈에는 국적이 없다."라는 말이 냉철하게 현실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럼, 독일과 맞서 싸워 파시즘에 대항해서 자유주의를 수호했던 미국은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미국은 히틀러에 호의적이었다. 많은 미국의 기업가들은 히틀러를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을 박멸할 인물로 꼽았다. 대표적 친나치 인물로, 헨리 포드를 꼽을 수 있다. 심지어 독일의 승전 축하 행사에 미국의 기업가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제너럴 모터스 해외 투자 책임자 제임스 D. 무니가 전승 축하 행사에 참여했고, 텍사코 최고 경영자 리버는 직접 전승 축하 행사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절 포드와 이스트먼 코닥운영진 등의 미국 산업계의 거물들이 참석했다.

미국 자본가와 금융가의 친나치적인 모습은 미국과 독일이 전쟁을 했을 때도 이어진다. 저자 자크 파월은 미국의 기업가들이 고용한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미국 기업가들과 금융가들이 나치를 위해서, 아니, 자신의 자본 증식을 위해서 얼마나 집요하게 친나치 행위를 하였는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전쟁시기 미국 독일 기업가와 그들의 일류변호사, 은행가들이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종의 사교 모임의 기능을 한 국제 결제은행의 예를 소개한다. 돈 앞에 국적이 없었다.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적국에게 이익을 주는 반역행위도 그들은 서슴치 않고 했다. 그리고 전후에 그들은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슈피겔 기자는 1997년 다음과 같은 기사를 냈다.

 

"자국병사들이 전선에서 서로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동안 은행가들은 멀리 떨어진 목가적인 풍경의 중립국에 많은 돈을 받으며 더할 나위 없이 잘지내고 있었다."-313

 

"전쟁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빈자들은 시신을 내어줄 뿐"이었다. '독일인들의 생활영역 확대''자유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 앞에 독일과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과 금융가들은 돈을 벌었다. 심지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히틀러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자본가와 금융가들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했다. 히틀러는 자본가와 금융가의 충견이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은 자유주의를 수호하고, 이를 세계에 전파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의 자유는 노동자를 위한 자유가 아니다. 자본가와 금융가를 위한 자유이다. 쉽게 노동자를 해고하고, 보다 자본가와 금융가가 쉽게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하는 자유주의이다. 미국이 전후, 미국 기업의 자회사가 나치를 위해서 전쟁물자를 생산한 것을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가와 금융가가 미국 행정부를 장악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해결하려면, 비우량 은행과 우량은행을 구별해서, 비우량 은행은 청산하고, 우량은행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어야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월가의 금융인 세력에 장악되어 있었다. 월가의 반대로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만들어 비우량 은행과 우량은행을 구별하지 않고 달러를 살포했다. 자본가와 금융가에 의해서 미국 행정부가 완벽히 장악되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금벌세력은 역사라는 집단 기억도 장악하려 한다. 자본가와 금융가의 입맛에 맛는 제2차세계대전 서적들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교수자리를 얻는다. 금벌의 추악한 모습을 파헤치는 역사학자는 배고픔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헨리 포드는 '역사는 허풍'이라고 주장하며 배고픈 역사가들을 조롱한다. 만약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나치의 만행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금벌세력에 의해서 나치의 만행도 덮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선한 세력이 악한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자본의 증식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금벌세력의 민낯을 마주하며, 배고픈 창자를 움켜쥐며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을 때만이, 역사의 정의는 지켜질 수 있다.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만이 헨리 포드와 같은 자본가와 금융가들이 '역사는 허풍'이라 조롱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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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16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네요! 눈 앞에 괴물에 관심을 가졌을 뿐 괴물을 만든 배경에는 소홀했던 점 반성해 봅니다! 시원한 저녁시간 되세요!ㅎ

강나루 2020-08-16 21:15   좋아요 1 | URL
지적 충격을 많이주는 책입니다. 오늘 다 읽고 무척 행복했습니다.
막시무스님도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NamGiKim 2020-09-1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입니다. 미국과 나치독일간의 협력관계를 잘 알 수 있는 좋은 책.^-^

강나루 2020-09-11 18:44   좋아요 1 | URL
금벌세력에 맞선 책이지요
 
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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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작품을 소개하며 이 책은 말문을 연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져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진속 첸치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 존속치사 혐의로 사형을 당하기 전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작품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더욱이 엘리자베타 시라니라는 작가는 아버지가 스파르타식 그림 교육을 시키는 등 강압적으로 양육되었다는 사실은 "베아트리체 첸치"를 단순한 작품이 아닌, 위대한 작품으로 느끼게 했다. 단순한 그림 한조각으로 볼 수도 있는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자,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자 김소울은 그 이름 처럼 나의 영혼(soul)을 흔드는 작품들을 연이어 소개했다. 저자 김소울의 안내를 받아,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만나보자.

 

1. 홀로선 여인과 홀로서지 못한 화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가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 의존하는 삶은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내몰 수도 있다. 치유 미술관에 소개된 여성화가들은 자신의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치유 받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의 여성 화가이다. 우울증과 PTSD를 호소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화가 아버지 덕분에 화실에 다니며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친구인 그림 선생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한다. 성폭행의 고통 속에서 젠틸레스키는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손가락이 으스러질 정도의 고문을 참고 견뎌야 했다. 남성 우월주의 시대는 피해자가 고통을 겪어야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서 강제 결혼을 당하고, 아버지와 의절한다. 그녀가 다시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를 아버지와 협업으로 완성하면서 부터이다. 미술을 통해서 그녀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진정한 예술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젠틸레스키의 고통도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너무도 힘든 경우인데, 그녀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프리다 칼로이다. 6살 때 소아마비를 겪고, 18살에 교통사고로 30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고, 세차례 유산과 잦은 남편의 외도로 그녀는 고통을 받았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작품 속의 프리다 칼로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눈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연이어서 닥치는 불행은 그녀를 너무도 괴롭게 만들었다. "헨리포드 병원""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라는 작품은 그녀가 얼마나 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 쳤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면서도 그녀의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희망의 나무, 굳세거라"라는 작품에는 두명의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보인다. 한명은 수술용 침대에 누워서 칼자국이 보이는 등을 드러내고 있다. 한명은 당당히 앉아서 정면을 응시한다. 현실 속의 나는 침대에 누워 지낼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영혼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살아있는 듯하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의지와 그녀의 위대성을 더욱 돋보여주었다.

젠틸레스키와 프리다 칼로와 대비되는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조현병과 망상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이다. 그녀의 불행은 잘못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사쿤탈라"라는 작품에서 보이듯이, 그녀는 로뎅의 사랑을 절실히 바랬다. 그러나, 로뎅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탐닉했을 뿐,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았다. 로뎅이 떠난 이후, 그녀는 드뷔시와 새로운 사랑을 한다. "왈츠"라는 작품에서 보이듯이, 그녀는 행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성들의 사랑을 받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여성이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카미유 클로델은 드뷔쉬가 동거녀에게 가버리자, 다시 추락하였다.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홀로설 수 없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행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젠틸레스키와 프리다 칼로가 그림에게 힘을 얻어 홀로서기를 했다면, 카미유 클로델은 남성의 사랑에 의지해서 자신의 소망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젠틸레스키와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서 힘을 얻었지만, 카미유 클로델은 예술 작품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일뿐, 작품을 통해서 힘을 얻지 못했다. 같은 예술작품도 홀로서기가 가능한 자에게만 무한한 힘을 주는가 보다.

 

2.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고통이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일까? 수 많은 작품들 중에서 화가의 애절한 삶이 작품을 더욱 숭고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폴 세잔, 에드가 드가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들의 삶의 무게가 어떻게 그들을 짖눌렀을까? 그리고 명작은 어떻게 잉태된 것일까?

치유 미술관을 읽으며, 가장 기대를 했었던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이다. 그는 너무도 유명하기에 그의 삶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창녀를 사랑하고 조현병과 알콜중독에 시달리다 권총 자살을 한 고흐. 그의 삶을 짖눌렀던 마음속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저자 김소울은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음"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죽은 형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고흐의 가슴 속에는 울고 있는 내면 아이가 있었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기에 그는 사랑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그는 저 많은 고독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감자 먹는 사람들""구두 한 켤레"라는 작품에서 보이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사실 상처받은 내면 아이에 대한 자기애일지도 모른다. 고흐의 대표적 명작 "별이 빛나는 밤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레스 나무가 저 하늘의 별과 만날 수 있을 것 처럼 크고 높게 그려져 있다. 그는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이상과 만나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재미있는 사실은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태호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형의 이름인 빈센트 반 고흐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태호의 아들은 미술관을 만들어 삼촌의 작품을 모두에게 선물해주었다. 태호의 아들 빈센트 반 고흐의 내면 아이는 울지 않고 인류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물해주었다.

잘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에 비해서, 에드가 드가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자두""카페-콩세르에서:개의 노래" 속의 여성은 우스광스럽게 그려져 있다. 드가가 여성 혐오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드가의 어머니가 삼촌과 육체적 관계를 하고 있을 때, 13세의 드가가 그 광경을 목격한다. 모든 여성은 드가의 어머니의 복사판으로 보였다. 드가에게 여성은 부정한 여성일 뿐이었다. 일평생을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그림자 때문이다. 말년에 들어서서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후, "회복기 환자"라는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어머니의 그림자는 점점 사라진다. 여성의 얼굴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상처가 완벽히 치유된 것은 아니다. 평생을 혼자 살았던 것에서 그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에드가 드가가 어머니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폴 세잔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다.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았다. 그 상처는 세잔의 가슴을 후벼팠다. 결국, 그는 아내와 친구 모두에게 가슴을 닫아 버렸다. 아내와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한 것도, 친구들의 말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것도 아버지가 남긴 상처였다. 그의 대표작 "생 빅투아르산"이 탄생한 것도 타인과 교류없이 산만을 마주한 결과였다. 아버지가 남긴 상처는 "생 빅투아르산"이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에드가 드가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에드가 드가와 폴 세잔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긴 상처로 고통받았다면, 에드바르트 뭉크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로 고통받았다. 5살에 어머니가 사망했고, 13살에 누나 소피가 사망했다. 32살에 남동생 안드레아가 사망했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는 내면을 드러낸 듯하다. "죽은 어머니", "병실에서의 죽음"이라는 작품은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뭉크에게 큰 고통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림이 가족을 상실한 그에게 치유의 힘을 주었다. "태양"이라는 작품은 죽음의 공포를 밝은 태양이 몰아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80세까지 살면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상처받은 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듯이, 상처받은 작가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들에게 상처는 명작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상처가 없었다면, 그들은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을까? 상처받은 그들이 작품을 통해서 인류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면, 그들이 고통에 괴로운 것인 인류에게는 행운일까?

 

 

"치유미술관"은 예술 작품의 기교에 눈길을 돌리기 보다는 명작에 녹아있는 화가의 고통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서 명화에 공감하며 명화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소설가 스탕달이 산타크로체성당에서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에 빠졌다. 이를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속에 소개된 작품을 보면서 '스탕달 신드롬'에 빠져있었다. 명화를 통해서 감동의 물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치유 미술관이 선사한 아주 커다란 선물이다. 그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ps. 물론, 이책에도 아쉬움은 있다.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스페인 독립전쟁을 그린, 프란시스코 고야의 대표작 '180853'을 소개하지 않은 것과 베르트 모리조가 조현병과 알콜 중독을 겪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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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이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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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일본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이다. 주변 나라를 침략하고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면, 주변국에 사죄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안한 감정은 가져야하지 안을까? 강한 놈에게 덤볐다가 패배했다면, 속으로는 강한 놈에 대한 복수를 보통은 꿈꾸지 않을까? 2차세계 대전 전범국이라는 독일과 일본은 너무도 대비적인 전후 처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은 후쿠시마 핵사고 때의 일본인들의 침착함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후쿠시마 식품을 먹어서 응원하자라고 외치는 그들을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필요했다. 그러던차에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책의 두께가 적어도 600페이지 정도는 될 줄 알았던 나는 너무도 얇은 두께에 놀랐다. 그러나, 이책은 얇지만 무거운 내용이 쉽게 적혀있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미국의 속국 일본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다.' 라는 말은 번역 전쟁이라는 책에서 처음 보았다.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번역 전쟁이라는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것이 많았기에 더 많은 자료를 탐독한 후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일본 관련 자료를 볼수록,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번역 전쟁의 주장은 진실로 다가왔다.

교토세이카 대학 총합인문학과 교수인 시라이 사토시는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은 놀랍게도 '북방 4개섬(구나시리 섬, 에토로후 섬, 시코탄 섬, 하보마이 제도)'에서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장 제2조에 "일본국은 지시마 열도와 일본국이 190595일 포츠머스 조약의 결과로 주권을 획득한 가라후토 일부 및 이곳에 근접한 여러 섬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방기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제도 및 시코탄 섬을 일본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북방 4개섬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가만있지 않았다. 미 국무장관 덜레스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장관에게 "이 조건으로 일소 평화조약 체결을 밀어붙인다면 미국은 오키나와를 영구히 반환하지 않겠다."라고 협박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적인 소련과 일본이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가까워진다면, 일본에서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소련과 일본은 대립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첨예한 '영토 분쟁'이 분쟁꺼리로서 남아있어야했다. 일본을 주권국가로 생각한다면, 덜레스의 협박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다. 사춘기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모와 대립한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녀는 홀로설 수 없다. 일본 극우파에게 미국은 천황제라는 '국체'를 유지시켜준 은인이다. 미국 굴종외교를 하면서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 측은함이 밀려온다. 그들은 영원히 홀로설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놀라운 사실은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일본인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라이 사토시의 말을 들어보자.

 

"일본이 미국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가 대등하다(적어도 대등에 접근하고 있다.)고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는다. 이런 말은 국민에게 일본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한편에서 '우리나라는 훌륭한 주권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이것이 새빨간 거짓임을 은연중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 문제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아시아 다른 나라와의 관계라면 '우리나라에 대한 주권 침해'라는 관념으로 과도하게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정신구조에 있다."-147

 

입밖으로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시라이 사토시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일본은 미국 덕택에 천황제라는 국체를 보존했다. 그리고,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에 동의하는 댓가로 경제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기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일본은 주인이 주는 찌꺼기에 행복해하며 주인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2. 노예를 길러 내는 일본

주한미군 사령관이던 위컴이 한국민은 레밍(들쥐)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에도 '레밍'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인의 절대 다수는 레밍이기를 거부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어 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헌법상으로만 존재했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을 현실에서 증명했다. 진정한 '레밍'은 일본에 있었다.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이 미국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사실을 당시 일본인들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앞장서서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다. 소위 '대세 순응형 일본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자,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대신은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원폭을 2개나 맞았는데, '하늘이 도왔다'니 무슨 해괴한 말인가? 원폭이 본토 결전을 회피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혁명'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1억 총 옥쇄를 부르짖으며,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치루겠다는 지배층들에게 그 누구도 '아니오'를 외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형 사회. 마치 레밍 떼처럼 파국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할 결의라도 굳힌 것일까?"라는 사토 에이사쿠의 푸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 사회는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의를 많이한다. 좋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 회의의 목적일텐데, 일본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의를 많이한다. 그리고 그렇게 회의를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레밍처럼 앞사람을 따라갈뿐이다. 앞서가던 레밍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레밍들은 계속해서 절벽으로 뛰어내린다. 용기 있게 "NO"를 외치지 못하는 일본인의 노예 근성은 레밍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일본에 왜? 레밍과 같은 노예들이 많을까? 그 이유를 나는 일본식 교육에서 찾고 싶다. 유치원에서부터 가장 강조해서 배우는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슬픔을 극도로 자제하도록 강요받는다. 같은 회사에서도 동료에게 가족의 부고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며, 묻지도 않는다. 같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그는 왕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일본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보는 것도 전체 조직에서 잘 융화될 수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섬나라라는 특성과 천년이 넘도록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타인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대세 순응형의 일본인들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을 띄기도 했다. 조선병합 => 만주사변 => 중일전쟁 =>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길을 그들은 막지 못했다. 그리고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일본의 레밍 근성은 사라졌을까? 일본에는 '마스고미'라는 신조어가 있다. 번역하자면, 기레기라고 말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와 쓰레기의 합성어 '마스고미'라는 말은 일본의 언론이 얼마나 죽어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아베정권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어용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언론에게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마스고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레밍의 모습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노예 근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지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나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아니오"를 외칠 수 있어야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성실한 아이히만이 수만명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로 보냈다는 지적을 우리는 겸허히 되새겨야할 것이다. 앞사람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레밍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진실과 마주할 용기 없는 자들

'영속패전'이라는 말은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말이다. 1945815일을 일본은 '패전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날은 '종전일'일 뿐이라 믿는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잘못된 전쟁을 일으켜 자국민과 수많은 아시아 태평양 사람들을 죽음에 내몰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그 책임을 지고 일본 사무라이의 '영광'스런 죽음의 형태인 '셋푸쿠(할복)'를 해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1945815일은 '패전일'일 수가 없다. 단지 '종전일'일 뿐이다.

베를린을 여행하던 시라이 사토시는 무슬림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절대로 용서 못해. 모든 문제는 미국이라고. 우리 무슬림이 살인자라고? 그놈들이야말로 살인자지."

"우리는 절대 용서 못 해. 너희도 그렇지? 그놈들이 원자폭탄을 떨어트렸으니까. 다음에 미국이라 붙을 때 꼭 같이하자고!"-199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2개나 받은 일본은 당연히 미국에 대한 앙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무슬림의 말에 시라이 사토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적국이었던 나라에 빌 붙어 적국의 군대가 주둔하기를 촉구하면서 까지 자기 보신을 도모한자들"이 바로 일본의 극우파였다. 한반도와 대만이 냉전의 최전선에서 일본을 막아주고 있었기에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어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일본은 아시아 각국이 공산주의의 침략에 무너질 수 없는 군부독재국가의 탄생을 용인한다는 로스토우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권력을 잡은 일본 극우파는 일본의 원죄와 마주하기 보다는 기억을 부정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이기 보다는 배부른 돼지로서 살라고 일본인을 '교화'시켰다. 그리고 대세 순응형인 일본인들은 이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그때의 향수에 젖어있는 일본 국우파 단체 재특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고 짖꺼린다.

누구나 자신의 아픈 과거와 마주할 때는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아픈 과거를 마주할 때, 진실을 직면해야만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일본 극우파는 자신들의 원죄와 마주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에 패전을 하고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종전'일 뿐이라고 믿는다. 성장통이 무서워 정신적 성장을 포기한 일본인들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시라이 사토시가 100%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샌프란 시스코 조약에 한국이 초청받지 못한 이유가 일본의 반대였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않고, "한국은 전쟁 당시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의 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기도 했으며, 미국 행정부가 미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스크 서한을 근거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을 우리가 읽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책의 엮자 정선태는 '옮긴이 글'에서 "일본 현대사의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이 '영속패전론'이라면 한국 현대사의 그것은 '영속식민지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지적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들고 나오는 그들을 보면 '영속 식민지론'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는 레밍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일본 의류를 입어서 응원하자고 말하는 일부 일베들과 일본편에 서서 저자세 외교를 정부에 건의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영속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일부분을 본다. "우리의 지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나태를 연로로 삼고"있는 "영속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 없이 지적 탐구를 하고, 불의에 대해서는 용기 있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전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에게 "우리는 레밍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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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야기 - 그들은 어떻게 부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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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유대인!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마빈 토케이어가 쓴 '탈무드'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자선을 베풀줄 아는 사람들이며, 부유한 그들을 시기 질투하는 유럽인들에게 박해를 받았고, 마침내, 2천년 동안의 유랑을 끝내고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을 세운 민족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운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친구에게 유대인 편에서 반박했을 정도로 유대인에 대한 친근감은 높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 폭탄이 쏟아지는 모습을 언덕위에 올라가 감상하면 환호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그들을 비판하는 기자가 쫓겨나는 현실을 보면서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연민의 정에서 시작하여 두려움을 주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벽돌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600페이지를 자랑하는 '유대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1.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은 정당한가?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좋은 곳에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한 사람일까? 로마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지자, 유대인들은 현실의 성전을 짓는 것보다 시간 속에 성전을 짓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바리세인들은 율법을 중시여기고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치고 읽었다. 중세 유럽인의 90% 이상이 문맹자였던 그때에 유대인들은 토라와 탈무드를 읽기 위해서 글을 배웠다.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유럽 정세를 파악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런데, 땅을 소유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천시여기는 금융업, 시체처리하는 일, 동물의 가죽을 베끼는 일 등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이라도 해야했다. 유대인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들은 유럽의 금융을 장악해갔다. 때로는 밀수와 노예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유니대인 출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아미스타드'에 노예무역의 잔혹함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노예무역에 유대인들이 참여했다.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배안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때로는 바다에 던져져 죽었고, 때로는 노예시장에 팔려 책찍을 맞으며 설탕과 목화를 생산하도록 내몰렸다.

  최영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말을 했다. 드비어스의 창공에 있는 다이야몬드 원석 모드가 세상에 나온다면 "다이아몬드"는 "돌값으로 폭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야몬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이야몬드를 채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노예처럼 다루고, 어린 소년들에게 살인을 하도록 시킨다. 그리고 다이야몬드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드비어스가 소개된다. 드비어스! 유대인에 의해서 세워진 공룡 기업!! 그 실체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드비어스가 '블러드 다이야몬드'를 만들도록 강요한 적은 없다. 전체 유통구조를 드비어스가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다이야몬드에 피를 덧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다이야몬드를 갖기 위해서 피를 뭍히고 있다. 탐욕의 유통구조 정점에 드비어스가 있었다. 내가 결혼 반지로 다이야몬드를 거부한 이유도 영화 '블러드 다이야몬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피묻은 다이야몬드를 건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충실히 다이야몬드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드비어스는 '블러드 다이야몬드'에 대한 책임이 없을까? 우리 손에 끼워져 있는 다이야몬드가 사람의 핏값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이야몬드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유대인들은 약속을 중시여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빌헬름 9세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 4만 탈레르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한다. 자신의 재산보다 빌헬름 9세의 신용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러한 유대인의 신용은 그들이 금융업계의 대부가 되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 그런데, 모든 유대인이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유대인 록펠러 형제는 동료 정유업자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여 신디케이트를 형성한다. '클리블랜드 대학살'로 알려진 기업 인수 작전을 저자 홍익희는 '합병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말년의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개같이 벌어들인 돈을 사회를 위해서 쓴다. 상도를 지키며 돈을 벌어 사회를 위해서 그 돈을 사용한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스쿠루지 영감처럼 돈을 모아,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새인간이 되어서 세상을 위해서 돈을 쓰는 록펠러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IMF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누가 생각나는가? 고 김영삼 대통령? 고 김대중 대통령? 고통받는 서민들의 모습? ...... 나는 조지 소로스가 생각난다. 헤지펀드들이 아시아 국가를 사냥하고 다녔고, 그 마수에 대한민국도 걸려들었다.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린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물론, 나는 군대에 있었기에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는 없었다. 헤지펀드를 이용해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조지 소로스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약탈자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31개국에 재단을 설립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로로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79년에는 '열린사회 기금'을 설립해서 옛 소련 및 동유럽권의 순조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매년 3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헝가리에는 중앙유럽대학을 설립해서 해마다 2천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나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라는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도를 지키며 돈을 벌어야하며, 정당한 돈을 선하게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록펠러나 조지 소로스를 존경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니가 돈을 못버는 거야!" 모두가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되어, 집값 올리는데 뛰어든다. 이를 거부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려는 나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돈이 인생의 전부일수는 없다. 돈은 나의 하인일뿐이다. 하인의 수가 많을 필요는 없다.

 

2. 유대인 성공의 비밀은?

  유대인들이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를 휘어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곳곳에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지만,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경제적 부를 이룩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시기에 폴 존슨은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질 것을 미리알고 공매도를 하여 엄청난 돈을 거머쥐었다. 성공하는 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만, 실패하는 자는 위기에 두려워하며 무너진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경제 위기라는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혜안은 평소 갈고 닦은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렇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위기에 닥쳤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지혜를 평소에 준비해 놓자.

  유대인들이 성공한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휘저우 상인에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화교가 진출하면 그 지역의 상권을 장악한다. 중국 상인들 중에서도 휘저우 상인은 특히 유명하다. 휘저우 상니들이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상인들이 공동 출자하고, 이익을 배분하여 자본을 키운다면, 유대인들은 "헤부르이 무이자 대부업체"를 통해서 자본금을 마련한다. 휘저우 상인들의 자제들이 관료가 되어 가문의 신용을 높이고, 고급 정보를 가문에 준다면, 유대인들은 권력의 길목을 지키며 권력의 주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인다. 휘저우 상인들이 동향인들기리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획한다면, 유대인들은 랍비를 중심으로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다. 휘저우 상인과 유대인 모두 독과점을 형성하여 경쟁자를 도퇴시키고 시장을 장악한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휘저우 상인과 유대 상인들이 대결한다면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거대 공룡 중국을 배경으로한 중국상인이 유리할까?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들이 유리할까? 유대 상인과 중국상인의 상술 중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었일까?

  유대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학자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시장을 해석하는 방법을 터특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기존 경제학을 비웃는다. "수요와 공급이 주어졌다는 가정은 현실과 동덜여진 것이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판맨자와 구매자의 기대에 따라 좌우된다."는 그의 소신은 그를 세계적인 투자자로 만들었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 헤셔웨이 주주 총회에서 MBA에서 배우는 것은 현실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어렵게 표현하고, 99%밖에 들어 맞지 않는 경제학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워런 버핏은 나머지 1%에 투자하여 돈을 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아탑의 소리를 듣기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경제를 분석하고 현장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갖아야 세계적 투자자로 성공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시장과 돈의 노예가 되지말고 시장과 돈의 주인이 되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장과 경제 학자들을 하인으로 부릴 때만이 위대한 투자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3. 경제를 지배한 그들! 세계 정치를 지배하다.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것은 유대인이다. 금융을 지배한 그들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정치를 지배한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를 이들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홍익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대인들은 권력자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다가, 정치인들과 인연을 맺는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부터 시작하여, 존 볼톤, 키신져 등등... 수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정치의 중요참모로 활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가 유대인 쿠시너이며, 쿠시너의 머릿속에서 트럼프의 정치 외교 전략이 나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유대계 자본에 의해서 설립된 골드만 삭스가 지도자를 공급하는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계는 물론이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도 골드만 삭스 출신이 진출해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골드만 삭스의 문화 때문에 이들은 골드만 삭스 사관학교 후배들을 잘 이끌어 준다. 대한민국에 학연, 지연, 혈연이 만연해있고, 이것의 폐해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있는 모습들이 골드만 삭스를 중심으로한 미국사회에서 목격되고 있다. 골드만 삭스 출신들은 미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중국 인민 은행 부행장도 골드만 삭스 출신이라는 사실은 골드만 삭스가 대단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드려움을 준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애교에 불과하다. 부시행정부의 실세 볼튼은 1994년에서 1999년 골드만 삭스 유럽 법인 책임자였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유대계 금벌세력에 의해서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가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한다면,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당연히 한반도에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많지는 안다. 저자 홍익희는 '맺는 말'에서 "소송을 무기로 유대인 연구를 감시하는 유대인 비방 대응기구(Anti Defamation League, ADL) 때문에 서구에서는 유대인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반유대인 정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저작들을 싹부터 자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였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말과 경쟁하기 보다는 말에 올라타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유대인과 경쟁하기 보다는 유대인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남북관계를 유리한 쪽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상상을 해본다.

 

 

  저자 홍익희의 '유대인 이야기'는쉬운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유대교에 조로아시터교가 스며든 이유를 역사적으로 잘 서술하였고, 어려운 성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유대인의 역사만 서술하지 않고 기술의 역사는 물론이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던 역사도 서술하고 았다.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어렵게 서술되어 있는 은과 금의 유통도 쉬운 설명으로 이해가 쉽도록 했으며, 동양에서 회취법이 발견되기 전에 유럽에서는 '수은 아말감공법'으로 은을 추출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알았다. 세계사에서 빠져 있었던 유대인의 역사와 교과서에서도 빠져있는 세게 경제사의 깨알 같은 지식을을 이 책은 쉽게 서술하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갖는다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왜? 벌어졌으며, 그 시위가 왜? 실패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혜안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한다.

  ps. 이 책에 '옥의 티'가 있다. 이는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1. 250쪽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칼 마르텔이 투르 근처에서 이들을 격퇴해 프랑크 왕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카롤루스 대제 때의 일이다." => 카롤루스 대제 이전의 일이다. 마르텔은 메로베우스 왕조, 카롤루스 대제는 카롤루스 왕조 시기의 인물이다.

2. 110쪽 "헬레네스'는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인 헤라 여신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 헬렌의 자손이라는 듯이다. 그래서 EU 깃발에 헬렌이 제우스가 변한 황소를 타고 있는 것이다.

3. 520쪽 "1917년 4월 6일 미국은 특별한 사유도 없이 1차 3대전에 참전했다." =>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의 민간배가 침몰하자, 이를 이유로 미국이 참전했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4. 48쪽 "요즘 관광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 대부분이 그때 유대인 건설 노예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 피라미드와 신전을 짓는데, 이집트는 노예를 상용하지 않았다. 농한기에 농민들에게 급료를 주면서 일을 시켰다. 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5. 223~224쪽 성소피아 성당 캡션 오류 "콘스탄티 누스 황제가 세운 성소피아 성당" => 불타버린 성 소피아성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한 것은 유스티니아 누스 대제이다.

   "콘스탄티 누스 황제에 의한 성소피아 성당 건설" => 성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 누스 2세때 건립되었다가 소실되었다. 테오도 시우스 2세때 다시 재건 되었으나, 니카의 반란으로 소실되어 유스티니아 누스 1세때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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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gjsrll 2023-08-1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른 유대인책 복붙한거네요 ㅋㅋ 제가 안읽어본줄 아십니까?

강나루 2023-08-13 20:12   좋아요 0 | URL
어떤책을 붙여 넣기했나요?
읽어 보셨다면 책이름과 저자를 알려줘요.
 
독살의 세계사
미즈호 레이코 지음, 장점숙 옮김 / 해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독살의 세계사'라는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독살'이라는 주제로 세계사를 정리하는 재미있는 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밀려온 것은 단순한 독살 사례 모음집이라는 회의감이었다. 기대감이 높았기에 실망의 골도 깊었다.

 

1.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 헤셔웨이 주주 총회에서 즐겨쓰는 표현이 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는 말이다. 독살이라는 주제로 세계사를 살펴보니, 모든 사람들이 독살로 죽었다는 인상을 책에서 받았다. 특히 옥타비아누스가 독살을 당했다는 글귀를 보면서, 처음 들어본 주장이라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관련 내용이 없어 신빙성이 없어보였다. 빈센트 반 고흐 조차도 독살로 죽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들었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을 비판적으로 의심하면서 읽었다. 저자의 강한 주장은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마치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내자, 조선사 전공 학자들이 강한 반발을 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말한 것처럼 조선의 왕들이 수없이 독살되었다면, 조선은 독살 왕조였다. 미즈호 레이코의 주장처럼 독살이 이뤄졌다면, 세계사는 독살의 역사일 것이다.

 

2.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키다.

  알렉산드로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주장과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들어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미즈호 레이코가 알렉산더가 아름다운 인도 아가씨를 자신의 침상으로 데리고 와서 입을 맞추는 순간 온몸에 독이 퍼져 마침내 죽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웃음이 나왔다. 어려서부터 이불 밑에 독초를 깔아 여자 아기를 독에 달련시키고, 온몸을 독덩어리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가 독을 가까이 하면 어려서 죽을 것이 자명한데 이러한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주장을 책에다 쓰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책은 너무도 짧은 토막들이 대다수이다. 역사적 배경과 등장인물을 파악하기에는 책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너무도 적었다. 단편적인 글들에게서 책을 읽는 맛을 느낄 수 없었으며, 독살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세계사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판타시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그 판타지 소설도 성의없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식힐겸, 얇고 재미있는 책을 골랐다. 그러나, 내가 내가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단지 수확이 있다면, '오리는 독을 먹어도 멀쩡히 살아 있다'라는 글귀이다. 독극물을 먹어도 오리는 죽지않는다는 주장은 '유황오리'를 알고 있었기에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독을 먹었을 때, 오리 피를 마신다던지, 동상에 오리피를 바른다는 주장을 현실에 실천할 수는 없지만, 오리고기가 '체내의 세포나 장기 속에 침착된 독도 해독시켜준다.'는 주장은 믿기로 했다. 왜냐고? 오리 먹을 때 맛있게 먹기 위해서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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