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 - 사회인식과 사상
김용덕 / 지식산업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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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역사를 추동하는 것일까? 역사가 사상을 낳은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고루한 질문 같지만, 역사와 사상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상이 역사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도하고, 때로는 시대적 필요속에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기도한다. 이를 일본사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를 꺼내들었다.

 

1. 역사가 사상을 낳다.

급격한 역사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현실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사상을 필요로한다. 일본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조큐의 난 이후의 사상의 변화이다. 무사정권이 일본 덴노 정권을 무력으로 제압한 조큐의 난 이후, 기존의 하늘의 자손이 군주가 된다는 신손위군설을 대체할 사상이 필요했다. 무사정권은 유교의 덕치 사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즉, 천황가를 떠받치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하치만신의 백왕수호에 대한 의구심은 군왕이 덕이 없으며 하늘이 그를 폐할 수 있다는 덕치 사상과 쓰루카오카 하치만이 무가정권의 수호신으로 부상한다. 사상이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호출된 사건이다.

두번째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전국시대에 '도리'와 '천도'를 강조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극상의 시대! 무사들은 하극상을 예방하거나, 자신의 하극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을 필요로했다. 무사들은 '도리'와 '천도'라는 유교적 정치 사상을 호출한다. 특히 오다노부나가는 '천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어국의식'과 다른 자신만의 의식을 드러냈다. 오다노부나가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를 호출했다.

셋째, 막부말기 부터 메이지 유신시기에 있었던 '정한론'이다. 쓰시마주 개항을 둘러싸고 막부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서 조선 정벌론이 대두되었고, 이후, 메이지 정부에서 나약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외부의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자, 이를 조선 정벌을 통해서 내부의 문제를 숨기고 단결을 강화시키고자하는 그들의 의도가 섬득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를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은 급속히 쇄락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를 숨기기 위해서 일본의 아베정권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기 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라한다. 이상 살펴본 세번의 사례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상을 호출한 사례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거나 호출된 사상이 이후의 역사에 불행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 사상이 역사를 이끌다.

위대한 사상이 새시대를 열기도한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BC 800~AD200, Achsenzeit)에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 인도, 그리스, 페르시아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시기 발생한 사상은 이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첫째, 메이로쿠샤를 중심으로한 일본 지식인들의 치열한 논쟁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의 쟁쟁한 지식인들이 '서양인의 국내 여행'문제를 비롯해서 '대의기관 수용'문제와 같은 심도 깊은 문제에 대한 논쟁을 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지식인들이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가야할 변혁의 시기에 일본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의 근대화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사례는 "수양"이라는 책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라는 책을 저술해서 서양에 일본도 서양의 "기사도"에 필적할 만한 나름의 일본정신이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다. 메이지 유신의 급성장 시기를 지나서,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서양학문을 배운다는 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청년들에게 다양한 글을 통해서 새로운 위안을 준이가 바로 이토베 이나조 이다.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저술한 김난도 교수와 같은 일을 니토베 이나조가 한다. 니토베 이나조가 말한 수양의 한계를 살펴보자.

 

  "계속 노력하였음에도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서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생긴다. 수양의 목적은 '공명과 부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역경에 빠지더라도 일상생활에 완벽을 추구하며 그 속에 행복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이 바로 니토베 수양론의 핵심이었다. 급속한 계층상승이 더 이상 불가능한 사회에서, 청년들이 사회적 불만세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논리, 사회의 문제를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내면의 문제로 바꾸는 논리, 그것이 체제의 안전장치로서 니토베 수양론의 역할이었다."-276쪽

 

 니토베 이나조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은 공자가 말한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열심히 현실 권력에 등용되길 바랬던 공자가 말년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스스로 던진 위안의 말이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은 더이상 계층 상승을 할 수 없는 일본의 상황에서 현실에 만족하라는 니토베 이나조의 말과 상통한다. 공자의 말은 이후, 수많은 군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현실에 만족하며 잘못된 현실정치에 분노하지 않고 사회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식물청년들을 양산해냈다. 그렇게 일본의 정치발전 가능성은 니토베 이나조 시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사상은 현실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호출되지만, 호출된 사상은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 메이지 유신 시기 근대화된 일본을 만든 지식인들은, 이후 자민당 일당지배 시스템을 만들드는데 일조했다.  한시기의 성공이 이후 시기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했다.

 

3. 일본을 발견하다.

일본을 모르는 사람은 일본을 쉽게 무시한다. 일본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을 모르는 우리가 놀라는 일본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일본 고대 역로의 모습이 놀랍다. 일본 고대 역로는 최소 9m, 최대 20m라는 넓은 폭을 가지 도록였다.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면서 직선으로 개설된 도로였다. 일본 고대를 낮추어 보았던 나에게, 율령지배가 세밀히 갖춰진 일본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우리 고대에는 이러한 역로를 가지고 있었는가? 세밀한 발굴을 통해서 삼국시대 역로의 모습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둘째, 일본의 존왕양이론, 주전론의 진실이다. 우리의 위정척사파 처럼 일본의 존왕양이론자들도 일본과의 통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러했다. 그러나, 일본의 주전론, 양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적 주장일뿐 시대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못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변화를 읽고 있었다. 대표적인 양이론자인 도쿠가와 나리아키역시 전쟁을 주장하거나 화친을 선택지에서 배제시키지 않았다. 그는 무모한 주전론자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외교가이자 술책자였다.

  서양세력을 막을 구체적 방법 없이 무모한 개항반대, 개화반대를 주장했던 우리의 위정척사파와 다른 일본인들의 대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손자병법'을 신봉하는 무사와 주자학에 경도된 유학자의 차이가 아닐까? 현실을 냉철히 파악한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일본의 사무라이와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여기는 조선의 유학자의 차이가 서양 제국주의자의 충격에 너무도 다른 대처를 했다.

  셋째, 다이쇼 데모크라시시기 '모성보호논쟁'이다. 좋은 집안의 라이초와 기쿠에를 비롯해서, 빈농출신으로  해외 배춘부로 팔려갔다가 탈출하여 남편에게서 글을 배운 야마다 와카가 "주부지우"라는 잡지에 자신의 주장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마치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한국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물론, 우리의 6월 민주항쟁이 민주주의의 진보로 이어졌다면,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1930년대 군부 집권으로 싹이 잘려나간다. 그러하더라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벌어진 '모성보호논쟁'의 치열함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이 역사가 일본 여성운동의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시대와 소통하며 발전한다. 시대를 떠난 사상이 없듯이, 사상 없는 시대도 존재할 수 없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치열히 사상과 역사가 호흡했다. 역사가 사상을 호출하기도하지만, 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호출하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사상을 호출하여 새로운 시대를 만들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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