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이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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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일본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이다. 주변 나라를 침략하고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면, 주변국에 사죄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안한 감정은 가져야하지 안을까? 강한 놈에게 덤볐다가 패배했다면, 속으로는 강한 놈에 대한 복수를 보통은 꿈꾸지 않을까? 2차세계 대전 전범국이라는 독일과 일본은 너무도 대비적인 전후 처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은 후쿠시마 핵사고 때의 일본인들의 침착함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후쿠시마 식품을 먹어서 응원하자라고 외치는 그들을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필요했다. 그러던차에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책의 두께가 적어도 600페이지 정도는 될 줄 알았던 나는 너무도 얇은 두께에 놀랐다. 그러나, 이책은 얇지만 무거운 내용이 쉽게 적혀있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미국의 속국 일본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다.' 라는 말은 번역 전쟁이라는 책에서 처음 보았다.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번역 전쟁이라는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것이 많았기에 더 많은 자료를 탐독한 후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일본 관련 자료를 볼수록,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번역 전쟁의 주장은 진실로 다가왔다.

교토세이카 대학 총합인문학과 교수인 시라이 사토시는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은 놀랍게도 '북방 4개섬(구나시리 섬, 에토로후 섬, 시코탄 섬, 하보마이 제도)'에서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장 제2조에 "일본국은 지시마 열도와 일본국이 190595일 포츠머스 조약의 결과로 주권을 획득한 가라후토 일부 및 이곳에 근접한 여러 섬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방기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제도 및 시코탄 섬을 일본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북방 4개섬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가만있지 않았다. 미 국무장관 덜레스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장관에게 "이 조건으로 일소 평화조약 체결을 밀어붙인다면 미국은 오키나와를 영구히 반환하지 않겠다."라고 협박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적인 소련과 일본이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가까워진다면, 일본에서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소련과 일본은 대립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첨예한 '영토 분쟁'이 분쟁꺼리로서 남아있어야했다. 일본을 주권국가로 생각한다면, 덜레스의 협박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다. 사춘기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모와 대립한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녀는 홀로설 수 없다. 일본 극우파에게 미국은 천황제라는 '국체'를 유지시켜준 은인이다. 미국 굴종외교를 하면서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 측은함이 밀려온다. 그들은 영원히 홀로설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놀라운 사실은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일본인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라이 사토시의 말을 들어보자.

 

"일본이 미국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가 대등하다(적어도 대등에 접근하고 있다.)고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는다. 이런 말은 국민에게 일본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한편에서 '우리나라는 훌륭한 주권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이것이 새빨간 거짓임을 은연중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 문제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아시아 다른 나라와의 관계라면 '우리나라에 대한 주권 침해'라는 관념으로 과도하게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정신구조에 있다."-147

 

입밖으로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일본이 미국의 속국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시라이 사토시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일본은 미국 덕택에 천황제라는 국체를 보존했다. 그리고,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에 동의하는 댓가로 경제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기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일본은 주인이 주는 찌꺼기에 행복해하며 주인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2. 노예를 길러 내는 일본

주한미군 사령관이던 위컴이 한국민은 레밍(들쥐)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에도 '레밍'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인의 절대 다수는 레밍이기를 거부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어 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헌법상으로만 존재했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을 현실에서 증명했다. 진정한 '레밍'은 일본에 있었다.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이 미국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사실을 당시 일본인들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앞장서서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다. 소위 '대세 순응형 일본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자,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대신은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원폭을 2개나 맞았는데, '하늘이 도왔다'니 무슨 해괴한 말인가? 원폭이 본토 결전을 회피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혁명'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1억 총 옥쇄를 부르짖으며,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치루겠다는 지배층들에게 그 누구도 '아니오'를 외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형 사회. 마치 레밍 떼처럼 파국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할 결의라도 굳힌 것일까?"라는 사토 에이사쿠의 푸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 사회는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의를 많이한다. 좋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 회의의 목적일텐데, 일본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의를 많이한다. 그리고 그렇게 회의를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레밍처럼 앞사람을 따라갈뿐이다. 앞서가던 레밍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레밍들은 계속해서 절벽으로 뛰어내린다. 용기 있게 "NO"를 외치지 못하는 일본인의 노예 근성은 레밍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일본에 왜? 레밍과 같은 노예들이 많을까? 그 이유를 나는 일본식 교육에서 찾고 싶다. 유치원에서부터 가장 강조해서 배우는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슬픔을 극도로 자제하도록 강요받는다. 같은 회사에서도 동료에게 가족의 부고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며, 묻지도 않는다. 같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그는 왕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일본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보는 것도 전체 조직에서 잘 융화될 수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섬나라라는 특성과 천년이 넘도록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타인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대세 순응형의 일본인들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을 띄기도 했다. 조선병합 => 만주사변 => 중일전쟁 =>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길을 그들은 막지 못했다. 그리고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일본의 레밍 근성은 사라졌을까? 일본에는 '마스고미'라는 신조어가 있다. 번역하자면, 기레기라고 말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와 쓰레기의 합성어 '마스고미'라는 말은 일본의 언론이 얼마나 죽어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아베정권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어용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언론에게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마스고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레밍의 모습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노예 근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지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나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아니오"를 외칠 수 있어야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성실한 아이히만이 수만명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로 보냈다는 지적을 우리는 겸허히 되새겨야할 것이다. 앞사람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레밍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진실과 마주할 용기 없는 자들

'영속패전'이라는 말은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말이다. 1945815일을 일본은 '패전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날은 '종전일'일 뿐이라 믿는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잘못된 전쟁을 일으켜 자국민과 수많은 아시아 태평양 사람들을 죽음에 내몰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그 책임을 지고 일본 사무라이의 '영광'스런 죽음의 형태인 '셋푸쿠(할복)'를 해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1945815일은 '패전일'일 수가 없다. 단지 '종전일'일 뿐이다.

베를린을 여행하던 시라이 사토시는 무슬림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절대로 용서 못해. 모든 문제는 미국이라고. 우리 무슬림이 살인자라고? 그놈들이야말로 살인자지."

"우리는 절대 용서 못 해. 너희도 그렇지? 그놈들이 원자폭탄을 떨어트렸으니까. 다음에 미국이라 붙을 때 꼭 같이하자고!"-199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2개나 받은 일본은 당연히 미국에 대한 앙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무슬림의 말에 시라이 사토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적국이었던 나라에 빌 붙어 적국의 군대가 주둔하기를 촉구하면서 까지 자기 보신을 도모한자들"이 바로 일본의 극우파였다. 한반도와 대만이 냉전의 최전선에서 일본을 막아주고 있었기에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어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일본은 아시아 각국이 공산주의의 침략에 무너질 수 없는 군부독재국가의 탄생을 용인한다는 로스토우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권력을 잡은 일본 극우파는 일본의 원죄와 마주하기 보다는 기억을 부정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이기 보다는 배부른 돼지로서 살라고 일본인을 '교화'시켰다. 그리고 대세 순응형인 일본인들은 이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그때의 향수에 젖어있는 일본 국우파 단체 재특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고 짖꺼린다.

누구나 자신의 아픈 과거와 마주할 때는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아픈 과거를 마주할 때, 진실을 직면해야만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일본 극우파는 자신들의 원죄와 마주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에 패전을 하고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종전'일 뿐이라고 믿는다. 성장통이 무서워 정신적 성장을 포기한 일본인들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시라이 사토시가 100%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샌프란 시스코 조약에 한국이 초청받지 못한 이유가 일본의 반대였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않고, "한국은 전쟁 당시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의 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기도 했으며, 미국 행정부가 미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스크 서한을 근거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을 우리가 읽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책의 엮자 정선태는 '옮긴이 글'에서 "일본 현대사의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이 '영속패전론'이라면 한국 현대사의 그것은 '영속식민지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지적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들고 나오는 그들을 보면 '영속 식민지론'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는 레밍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일본 의류를 입어서 응원하자고 말하는 일부 일베들과 일본편에 서서 저자세 외교를 정부에 건의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영속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일부분을 본다. "우리의 지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나태를 연로로 삼고"있는 "영속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 없이 지적 탐구를 하고, 불의에 대해서는 용기 있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전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에게 "우리는 레밍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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