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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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자라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시골이 싫었다. 답답했다. 무엇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기회가 박탈된 곳이 시골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도시로 도시로 가려했다. 도시는 나에게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 기회는 대도시로 갈 수록 더 커진다. 수원에서 살았을 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을 보러 갔고, 국립 중앙박물관 주변을 산책삼아 걸어보기도했다. 오페라와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축복의 장소가 도시였다. 다락방 '교사와 수업 사이'의 두번째 책으로 메트로폴리스를 선택했다. 책을 받아들고 650페이지라는 두께감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러나 재미 있는 책이라면 두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벤 윌슨이 한국의 도시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등장하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송도 신도시를 최첨단 도시로 소개했으며, 도시 녹지를 복원하는 훌륭한 사례로 서울의 청개천을 소개했다. 송도 신도시는 어느 가정의 수도꼭지가 잠겨있지 않은지도 파악할 수 있는 도시라며 긍정적이기 보다는 다소 어두운 미래도시를 보는 듯이 서술했다. 반면 청개천 복원에 대해서는 도시 열섬효과를 낮추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자원의 낭비를 막는 스마트한 도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사례인 청채천 복원공사를 긍정적으로 소개한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청개천에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 모터를 돌려 한강물을 끌어들인다. 청개천 바닥은 흙이 아니라 돌이 깔려있다. 전형적인 인공하천이다. 이것을 어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회의 장소라는 이미지와 함께 범죄와 공해라는 이미지가 같이 떠오른다. 도시라는 공동체는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만든 집합체이기에 기회도 있지만,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도시에는 위생처리가 필요한 만큼 오물도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성인용품점, 도박장, 스트립쇼장 등등이 필요악임을 서술하고 있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를 없앨 수는 없을까? 이를 없애려한다면 미국에서 제정한 금주법이 오히려 마피아 세력을 확대시킨 결과를 낳았듯이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강화시킬까?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려한 도시계획이 있었다. 지금의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대한 평가는 서로 대립적이다. 구불구불하고 도시의 오염물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파리를 오스만은 방사선의 깔끔한 도시로 개혁했다. 파리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비판할 이유가있을까? 그런데, 시인 샤를 발레트는 오스만을 "잔인한 파괴자"라고 말했다. 파리의 조그만 산들을 없앴다. 그 산에 있었던 유적들도 같이 없어졌다. 고풍스러운 파리는 획일적인 파리로 바뀌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많은 유물과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의 도시들과 비슷하다. 오스만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도시팽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결되어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도시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도 많다. 그러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도시들이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다시 살아난다. 1945년 포로 수용소의 독일 장교는 "쾰른에는 여러번 분산 명령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한때 '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잡석 무더기로 되돌아 간다."고 했다. 자신의 도시, 삶의 터전에 대한 회귀 본능은 불가사의한 힘을 부러일으킨다. 죽음을 목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터전인 도시로 회귀한다. 그래서 도시는 빠르게 재건된다. 

  불가능한 부활을 이룬 대표적 도시가 있다. 바르샤바가 바로 그 대표적 도시이다. 히틀러는 바르샤바를 철저히 파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도시 건물 하나하나를 파괴했고 사람들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런데, 생명이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바르샤바인들은 도시가 파괴될 것을 예측하고 문서를 대조하고 역사적 건물도면을 남겨두었다. 이러한 도시 재건을 할 수있는 자료를 암호화하여 외부에 반출하거나, 수도원 혹은 포로 수용소에 숨겨두었다. 전쟁이 끝나자 도시를 재건하기기 위해서 바르샤바인들은 문서, 엽서, 사진, 도면, 그림등의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그들의 바르샤바를 재건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기억해두고, 전쟁이 끝나자 예전 모습대로 재건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불가사의하면서도 경의감을 불러 일으킨다. 도시의 생명력은 강했다. 그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이었다. 


  도시의 삶에 젖어 있으면서도 인생의 말년은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이가들수록 병들어가는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큰병원 가까이에 살아야하기에 그 소망은 소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도시는 디스토피아이면서 유토피아이기에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도시를 떠날 수없다. 전원생활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도시를 떠날 수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에 더욱 아름다워보일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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