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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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예술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시가 더 이상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하고, 소설도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던 내가, 대학 진학후 소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이상문학상 작품집 '마음의 부력''을 꺼내들었다. 비평가들에게 대중의 눈에 맞추라고 요구할 수 없기에 나의 눈에 맞는 작품을 뽑아 보기로 했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소개된 작품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을까?


  제44회 당선작들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대상 수상작도 가족간에 있을 수 있는 어머니와 아들,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을 소재로한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이다. 우리 영화에서 흥행 코드는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희생을 소재로한 작품은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치매 초기의 어머니와 먼저 저세상으로 간 형이라는 소재는 흥행에 적격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단서들을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전개 형식은 독자를 빨려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승우 작가의 서술방식은 '부재증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이를 부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담긴 소설 '부재증명'을 읽으며, 주인공이 혹시 헤리성 성격장애이거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이 금천에 실존했을 가능성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만의 흡입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방식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는 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신과 함께 1'에서 보았던 내용이고, 단서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가는 전개방식은 외국의 많은 영화들에게 흔히 보았던 전개 방식이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상의 반열에 올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수작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SF 소설을 읽는 듯한 박형서 작가의 '97의 세계'는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부성에가 느껴졌다. 윤성희 작가는 누가나 가진 가해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소재로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블랙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장은진 작가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작품을 읽는 동안 아련한 짝사랑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운영 작가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라는 작품은 희생자로만 비춰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을, 어머니 입장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감동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작들은 모두 훌륭했지만, 나의 마음에 깊숙히 다가왔던 작품은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었다. 어머니로 알았던 존재가 아버지였으며, 우토로라는 공간을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전개와 한일간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소재, 성 소수자에 대한 성찰 등은 타작품과 분명히 비교되었다. 조그만 일상에 갖혀서 오늘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과는 달리, 한일관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색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전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 이후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섞인 말을 자주 듣는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대상 작품에 공감하기 보다는 깊은 성찰을 하도록 나를 끌어 당기는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라는 작품에 대상을 주고 싶다.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걱정은 당신들의 안목이 대중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지수!! 그녀의 '야심한 연극반'을 내가 뽑은 대상작품으로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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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1 1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한지수 작가님의 ‘야심한 연극반‘ 때문이라도 이번 44회 작품집 꼬옥! 읽어봐야 겠네요

강나루 2021-08-21 12:13   좋아요 4 | URL
빗소리를 들으며 읽기 좋은 단편소설입니다^^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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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왜? 사랑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지? 어린시절,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랑이야기가 고리타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랑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기에 사랑을 해야한다. 그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일수도 있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이 어떠한 형태이든,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한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4'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쉐량-쑹메이링-장제스의 삼각관계부터 시작해서 황푸군관학교 교장인 장제스와 그의 제자 린뱌오의 사랑,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간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야기가 대하드라마 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 신중국 탄생 이야기를 김명호는 배치했다. 어찌보면 수많은 사랑 덕분에 신중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도 있다. 이들 사랑 이야기 중에서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삼각관계와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자. 


  중국 대륙을 뒤흔든 사랑이야기를 꼽으라면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장쉐량과 장제스의 삼각관계일 것이다. 쑹메이링은 송자수의 3자매 중에서 막내이다. 첫째는 중국 최고의 부자와 결혼했고, 둘째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과 결혼했다. 셋째 쑹메이링은 한때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었던 장제스와 결혼했다. 송씨 세자매가 한명은 부를 선택했고, 한명은 명예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했다. 신은 한사람에게 모든 행복을 다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하기 보다는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운명이 그녀에게 권력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쑹메이링은 1925년 상하이에서 운명적 만남을 했다. 콧대가 높았던 쑹메이링은 중국 4공자 중에 한명인 장쉐량이 주는 술잔을 거부하지 않았다. 8일간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둘을 헤어졌다. 장쉐량에게는 아버지가 맺어준 부인이 있었기에 쑹메이링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는 없었다. 장셰량이 떠난 사이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제스가 그녀에게 접근한다. 쑨원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요구하며 4차례에 걸쳐서 결혼요구를 한다. 심지어는 일본가지 쫓아가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다. 장제스도 2명의 부인과 1명의 첩이 있었다. 장제스는 이들 여성과 이혼했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 승락을 얻어낸다. 

  장제스가 쑹메이링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것은 사랑이기 보다는 쑨원부인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제스에게는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 배출된 군대는 있어도 정치적 자산은 없었다. 그 빈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쑨원의 후광이다. 반면, 쑹메이링도 장제스의 앞날을 예상하며 권력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장쉐량과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었다면 장셰량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것은 101세의 장쉐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104세의 쑹메이링이 통곡했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장쭤린이 일본군에 의해서 폭살당하고 나서, 장쉐량은 항일의 기치를 올리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 합류한다. 장제스도 장쉐량의 풍모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장제스와 장쉐량은 항일이 먼저냐, 공산당 토벌이 먼저냐를 두고 갈라선다. 1936년 그 유명한 시안사건이 발발한다.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려온 장제스를 장쉐량은 감금하며 국공합작을 종용한다. 장쉐량의 부하들은 장제스를 죽이자고 했다. 그런데 왜? 장쉐량은 장제스를 죽이지 않았을까?


  "나는 쑹메이링을 과부로 만들수는 없었다. 쑹메이링만 아니었다면 장제스는 그때 죽을 목숨이었다."-45쪽


  장쉐량이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단한사람, 바로 쑹메이링이었다. 장제스는 쑹메이링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장제스는 장쉐량을 죽이려 했으나, 쑹메이링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장쉐량을 죽이지 않았다. 쑹메이링이 장쉐량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장제스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쑹메이링이 시안에 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 시안에서 자신의 남편을 감금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시안 공항에 내려 장쉐량을 만난 쑹메이링의 얼굴은 공포보다는 옛 애인을 만난듯이 활짝 웃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안에서 풀려난 장제스는 장쉐량을 가택연금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갈 때도 그를 끌고갔다. 쑹메이링은 자신의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합친 것보다 많은 편지를 가택연금 되어 있는 장쉐량과 주고 받았다. 운명이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결합을 이루지 못하게 했지만, 둘 사이의 사랑마져 갈라 놓지는 못했다.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제간의 사랑도 있다. 황포군관학교 4기생 중에서 가장 탁월한 학생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린뱌오이다. 장제스는 린뱌오를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 린뱌오가 편지를 두고 떠나고 나서도 장제스는 린뱌오를 잊지 못했다. 린뱌오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제스는 상당한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의 애제자 린뱌오는 장제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제스의 사랑의 경쟁자 장쉐량의 평가에 정답이 있다. 


  "지도자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한다. 장제스는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항상 노예를 구하느라 혈안이 돼있다."-43쪽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린뱌오는 장제스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했다. 그러나, 린뱌오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목숨바칠 가치가 있는 존재를 선택했다. 내가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말하기 이전에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쑹메이링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가 혁명기 중국을 뒤흔든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면, 아이쉰져러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 이야기는 진정한 부부관계는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괴뢰 만주국의 황제 푸이는 일본의 강요로 새로운 여자를 선택하게 된다. 일본여자를 싫어했던 그는 여학교 교장이 보내온 사진 속에서 리위친이라는 여학생을 자신의 신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신분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다. 신분이 낮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성이어서 리위친을 선택했다. 리위친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푸이의 부인이 되어야했다. 푸이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담은 문서에 서명을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푸이의 몽둥이질을 당해야했다. 푸이와 리위친의 관계는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가 아니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다. 

  일본이 패망하자, 푸이는 부인을 내팽개 치고 도망치다가 소련군에 넘겨진다. 신중국이 세워지고 나서 전범관리소에서 리위친은 푸이를 다시 만난다. 푸이는 리위친이 가져온 사탕과 과자를 허겁지겁먹는다. 자신의 부인 리위친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청나라와 만주국이 멸망했음에도 푸이는 아직까지 리위친을 노예로 보고 있었다. 리위친은 신중국에서 각성한다. 당당히 황제였던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낸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어 방송국 녹음 기술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노예의 삶을 청산하고 자유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CF광고에 "저렇게 많은 아파트 중에서 왜? 내 아파트는 없을까?"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총각이었던 나는 '저렇게 많은 여성들 중에서 왜? 내 여자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총각들과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을 하던 중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외모기) 김태희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눈을 낮춰야하겠다. 조건을 낮춰 결혼하면 (상대는) 열쇠를 많이 가져와야해" 

  글쎄, 그 친구가 듣기 싫어할까봐, 아무말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평등한 부부의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황제이니 가난한 국수집 딸 리위친의 관계처럼 말이다. 똑똑하고 미남인 그 친구도 결혼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연예인 수준의 미모를 가진 여성인지는 모르지만, 부디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인연을 맺길 바란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다보면, "혁명"이니, "민족주의", "항일",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거창한 용어를 자주 듣는다. 나도 모르게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그러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창한 이념과 명분 이면에는 인간의 사랑이 있었다. 송씨 3자매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서 혁명시기 중국에서 청춘남녀가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했다. 어떤이는 사랑 이야기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야사"로 비하하기도한다. 특히 근대에는 인간의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의 무한한 진보를 확신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특정 이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보다는 사랑으로 역사를 재해석 하는 것이 역사가 움직인 근본적 이유를 밝혀내는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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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8-11 1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사랑 이야기라.ㅋ

강나루 2021-08-11 21:04   좋아요 4 | URL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사랑이 압권이지요.
2010년 선양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주목을 끈 것도 이들의 삼각 관계였다고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중국사 관련 컨텐츠를
검색하면 신문 기사로 나오더라구요.

1권인가는 읽었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해서 나오는 줄 몰랐네요.

강나루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지금 8권까지 나왔어요^^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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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에 꼭 한권 이상의 심리학 서적을 읽으려 노력한다. 심리학 서적을 읽어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치지만, 심리학 서적을 읽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성찰했다는 위안을 얻는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도 그러한 책이다. 학부모와 학생을 상담해야하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책에 빠져들면서 공감 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정혜신은 이책에서 공감의 위력과 공감의 방법을 자세히 서술한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공감은 곧 준중을 뜻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상담활동을 해온가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책을 내 놓았다. '적정 심리학'을 달리 말하면 '실전 심리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전쟁과 같은 현장에서 그녀가 내놓은 절규를 살펴보자. 


1. 우리를 진단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왜 우리는 아픈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고단한 우리 현실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정혜신은 '존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와 인기를 한몸에 거머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는 이유도, 오랜 세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지혜를 얻었을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태극기 부대가 된 이유도, 청년 고독사가 벌어지는 이유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소멸의 벼랑끝에서 벌어지는 아픈 사건들이라 정혜신은 진단한다. 

  그렇다. 우리는 빠르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성장을 일궈왔다. 농업사회의 전통적 공동체는 해체 되었다. 도시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는 지연과 학연에 의지해서 고립을 피하고 안정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원자화된 개인은 현대 도시의 정글에서 고독히 살아남아야했다. 그러면서 존중받지 못하고, 군중속의 이름없는 한사람으로 쓸쓸히 고립되어간다. 그 고립이 심할수록 쉽게 태극기 부대에 합류하기도하고, 고독사하기도한다. 이에는 청년도 예외가 아니다. 강북에 비해서 강남에서 청년 고독사가 비율이 더 높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가장 부유한 곳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러한 원자화된 개인들은 자기 소멸의 벼랑끝에서 공황장애를 얻기도한다. 그러하다면, 정혜신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당신이 옳다.'는 공감이라 제시한다. 우선 위기에 처한 우리가 우리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무엇일까?


2. 심리적 응급처치 방법

  정혜신은 심리적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무관심의 문제를 지적한다. 어느 한사람이 죽어도 이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누군가는 응급처치를 해야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려한다. 정혜신은 이를 '일상의 외주화'라고 말한다. 자격증이라는 제도를 만든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 만들었는데, 오히려 자격증 있는 사람만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격증은 우리 일상의 외주화를 정당화하고 이에 의존하는 가장 좋은 제도가 되어버렸다.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응급처치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해야한다. 여기에는 자격증이 필요치 않다. 

  정혜신은 현대 정신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일상적인 우울증조차도 질병으로 규정하고 약으로 이를 쉽게 해결하려는 아닐한 모습에 질문을 던지며 기본으로 돌아올 것을 절규한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라고 말하며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약을 먹기 보다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라는 상식적인 말을 한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존재가 희미해지는 이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강하게 몸부림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응급처치 방법은 "'나'가 또렷하게 돌아올 때까지 그의 '나'가 위치한 바로 그곳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따뜻한 감정에 관심을 갖는 질문을 건넬것을 제안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즉, 충조평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집중하며 경청하라 말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 그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임에도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교사 첫발령을 중학교로 받았을 때 일이다. 학교에서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쾌활한 기술선생님이 계셨다. 부인과 사별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았는데, 전혀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서도 발견되었다. 그 선생님의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자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밝은 모습의 선생님이라 어느 누구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존재에 관심을 갖았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는 미련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렇다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공감의 힘에 대해서 살펴보자. 


3. 공감의 정석

  정혜신은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이 바로 '공감'이라 말한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해야할까? 과녁을 정확히 맞혀야한다. 세상사에서 그 자신으로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 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그를 보아야한다. 그렇다고 "칭찬이나 좋은말 대잔치와는 다르다."때로는 잘못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어야한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다보면,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치 문이 존재 자체라면, 문고리는 감정이며, 문고리를 돌리는 힘은 공감이 된다. 이 공감이 피흘리고 상처입은 그에게 공감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매스이자, 상처부위를 치유하는 연고가 된다. 

  마음과 행동은 별개이기에 범죄자라도 공감을 해준다. 바꿔말하면 감정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범죄자에게 공감을 해며 그 행동뒤의 마음을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의 행동을 정당화해줄수는 없는 것이다. 

  정혜신이 제시한 공감의 방법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니, 우리의 상식에 기초해있다. '모모의 시간여행'이라는 소설에서도 모모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준다. 상대방은 스스로 말을하며 모모에게 공감을 얻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간다. 이러한 모모의 상담방법은 우리가 상담연수를 받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상담의 절차와도 일맥상통한다. 경청을 통해 공감해주고 이를 통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안내해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정혜신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인생의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속에 정답이 있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그의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절교할 용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은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라는 조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진리는 우리 주변에 있었다. 


4. 나를 보호하기.

  상담을 하고 나면 기운이 쪽빠진다. 나의 머리는 엄청난 과부하로 복잡해져있다. 그러하기에 전문 상담사분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일명 '전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도 느끼게 되어 괴로움을 겪는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 물에 뛰어 들었다가 같이 허우적되는 듯한 기분을 여러번 느낀다. 이러한 위기에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무엇일까?

  정혜신은 상대방에게 공감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의 출발점을 우리는 모두 개별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모두 존중 받아야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부모라 할지라도 결혼, 진로와 같은 개별적 존재로 준중받아야할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 또한 갑을 관계에서도 존중받아야할 개별적 존재인 나를 중심에 두고 행동해야한다. 그리고 때로는 관계를 끊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된다. 부모라는 이유로 헌신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자식이라할지라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한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자만이 타인을 구해줄 수 있다. 스스로를 구해줄 수영도 하지 못하는 자가 무모하게 물속에 뛰어든다면, 친구도 죽고 스스로도 죽게 된다. 

  정혜신이 상담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시한 원칙들은 철학자 강신주가 대중강연에서 말한 '단독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존중받아야하는 단독적 존재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같이 가슴 아파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수는 있지만, 그 고통에서 오롯이 벗어나야할 책임은 그에게 있다. 그가 존중받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일에 주인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5. 공감의 장애물 걷어차기

  정혜신은 진정한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걷어차는 방법을 소개한다. 정혜신은 먼저 '다정한 전사'가 되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존중받아야하는 존재라는 점을 유념하며 무엇에 다정하고 무엇에 전사가 되어야하는지 명확히 분별하라고 조언한다. 감정에는 고정된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으며, 감정은 나를 점검하는 신호란점을 명심하자. 가까운 연인이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을 하고 심하면 이혼을 하듯이 가까운 사람이기에 더욱 공감이 힘들다. 충족되지 않는 사랑의 욕구는 더욱 심해지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더욱 관심을 갖자. 가까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에 앞서 혹시 내 안에 남아 있는 컴플렉스가 있는지 점검하자. 내 안에 있는 나의 컴플랙스를 먼저 치유해야만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잊지 말자. 우리는 개별적 존재이다. 단독적 존재이다. 개별성을 지우는 집단적 사고에 맞서고, 유형과 조건으로 사람을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다. 

  정혜신이 제시한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 중에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마라."라는 말이 있음을 확인하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많이 해왔던 말이다. 문과와 이과 선택, 선택과목 변경시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너의 선택이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해주었던 말이 학생들의 퇴로를 막는 말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정혜신의 지적에 뼈가 아파왔다. 학교에서 다음 학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학생의 과목변경을 들어줄 수 없다. 이것은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마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말을 해야할까? "너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기를 선생님도 바란다."라고 말하면 될까?


6. 이제 실전이다. 

  효과적인 공감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정혜신은 진심으로 궁금해야 질문이 나온다고 말한다. 아들의 애인을 물어 보듯이 관심을 갖고 질문하자. 상대방과 똑같은 감정을 느낒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 안는것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존재 전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러한 공감을 할때 반드시 '나'에 대한 공감을 해야한다. 먼저 자신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치유할 수 없다. 나의 사과가 필요하다면 상처받은 아이에게 온 체중을 실어 사과하자. 부모, 교사, 상사라 할지라도 잘못을 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사과하자.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총조평판'은 하지 말자. 때로는 거짓 공감도 위대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감하자. 

  상담연수를 받았을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있다. "천명의 아이를 잡아먹어라." 천명의 아이를 상담하면서 상담의 노하우를 쌓아가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탁월한 상담가가 될 수는 없다. 훌륭한 상담가가 아니라고 상담을 회피하면 영원히 초보자로 머물수밖에 없다. 끊임 없이 상담하며 끊임 없이 배우고, 끊임 없이 갈고 닦자. 그것이 좋은 상담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시중에는 수많은 심리학 서적이 있다.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로 가득찬 심리학 서적이지만, 우리 생활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현실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상담의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정혜신이 제시한 공감의 방법과 공감의 필요성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심리학 책에서, 상담 심리 연수에서 들어왔던 정보였다. 그러나 그때는 '공감'이라는 두글자가 가슴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통해서 '공감'이라는 두글자가 나의 가슴이 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준중 받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공감을 원한다. 공감을 통해서 타인에 관심을 갖고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이 책을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학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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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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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름은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와 함께 보내고 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김명호의 흥미진진한 중국인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땅도 드넓고 사람도 많다. 다양한 중국인들이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한권에 담을 수 없는 드라마이다.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 책을 덮고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인 이야기3'의 시작은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타이완은 중국과 통일을 추구하는 외성인과 타인완 독립을 추구하는 본성인으로 나뉜다. 김명호는 타이완 독립을 추구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한채, 통일을 추구하는 외성인의 이야기만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보는 시각을 저자가 가지고 있어서인지, 단순한 서술상에서 발생한 우연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김명호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자'라는 주제로 덩샤오핑과 위유런을 소개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1인자로 등극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낸 지도자이다. 그는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을 바라며, 타이완의 모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미국의 타이완 투자는 계속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나라에 두개의 체제를 의미하는 '일국양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이 시기부터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덩샤오핑이 말한 '일국양제'는 현실에서 무너지고 있다. 홍콩이 바로 그 증거이다. 홍콩 시민의 민주화요구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이 타이완에게 했었던 일국양제의 약속은 타이완을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 발언에 불과했을까?

  덩샤오핑이 정치적으로 타이완과 통일을 위한 한걸음을 나아갔다면, 정신적인 통일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위유런이다. 중국과 타이완 사람들이 쑨원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위유런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했다. "조국을 두 동강 낸, 못난 조상 소리 들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고 말하며 중국 대륙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산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관음산에 그가 묻혀 있다. 타이완 인은 이것도 모자라서 해발 3,997미터 옥산 정상에 대륙을 향해 위유런의 동상을 건립했다. 그가 죽자 "심지어 건달들까지도 위유런의 '망대륙'을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김명호는 서술하고 있다. 

  김명호는 철저히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있다. '중국인 이야기3'을 읽으면, 타이완의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는 것 처럼 오해를 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중국이 중화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전랑'외교를 구사하면 할 수록 중국의 반감이 높아진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수록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다. 일국양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타이완인들은 중국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위유런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의 중국이 올은 것일까? 타인완 독립도 타당한 주장일까? 중국은 우리의 이웃이기에 타이완과 중국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의견을 준비해야한다. 중국이 이 질문에 대답을 요구할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높아져가는 이유는 중국의 '전랑'외교 때문이기도하지만, 또하나의 이유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믿음이 전세계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부정할지라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는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우한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 수많은 의료진의 활약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안위보다는 생명을 살려야한다는 의료인의 사명감을 가진 영웅이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10년대 중국 동북 3성에서 활약한 페스트 사냥꾼 우롄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롄더는 페스트를 잡기 위해서는 쥐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서구 의학계의 통념을 깨고, 세계 최초로 폐페스트를 발견했다. 호흡기에 의해서 페스트가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롄더가 발견했음에도 동양인 의사에 대한 편견으로 백인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헌신적 노력으로 동북 3성에 급속도로 퍼진 페스트를 잡아낼수 있었다.1937년 일본군의 중국침략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우롄더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말레이시아 벽촌에 돌아와서 화교들의 열대병을 치료하닥 생을 마감한다. 조국을 위해서 중국으로 달려와 수많은 생명을 살려고, 명예를 소중히 여겼지만, 명예를 쫓지 않은 영웅 우롄더를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우롄더는 중국만의 영웅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이 땅의 수많은 우롄더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우롄더가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영웅을 기억해야한다. 

  '중국인 이야기2'에서는 홍색 연예를 살펴보면서 너무다도 얽히고 설킨 그들의 연예 이야기에 혀를 내둘렀다. '중국인 이야기3'에서도 중국인들의 자유로운 연예이야기가 등장한한다. 그중에서 후스의 이야기는 짜증날 정도로 복잡했다. 우리는 후스는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지식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장동슈라는 본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이런쓰라는 백인여성과 친척인 차오페이셩을 비롯한 쉬팡등의 다양한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 때로는 한꺼번에 두명 이상의 여성과 연예를 하기도했다. 본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장동슈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장동슈는 칼을 들고 잠자고 있는 아들들을 죽이려하자 후스가 싹싹빌었기에 이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스는 몸은 결혼상태였지만, 마음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이런 천하의 바람둥이를 보면서 그를 비난하는 나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은 후스의 비도덕적인 모습에 분노해서일까? 아니면 나도하지 못한 일들을 그가 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암튼, 후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주체할 수 없는 바람끼 때문에 후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인물이라면, 루신은 형제간의 의가 상한 이유가 궁금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루신 3형제는 사합원에서 각각 가정을 이뤄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루신과 동생 저우쭤런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갈라섰다.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있다. 루신이 동생 부부의 모습을 밤에 훔쳐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저우쭤런의 헤픈 씀씀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팟캐스트에서는 루신과 저우쭤런의 부인 사이에 어떠한 문제가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추측을 할 필요는 없다. 

  난 이 이야기에서 고슴도치 가족의 지혜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에 고슴도치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 너무 가까우면 고슴도치는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받는다. 너무 멀면 겨울 추위에 고통을 받아야한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야하는데 루신의 삼형제는 사합원이라는 너무도 좁은 공간에 모여살면서 서로의 가시에 찔렸다. 노자는 이를 '허(虛)'라고 표현했다. 그릇은 빈공간이 있어서 쓰임새가 있다. 방도 빈공간이 있어 방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우리에게도 적당한 빈공간이 필요하다.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우리가 우리로 기능하기 위한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김명호는 40년 가까이 중국을 연구했다. 그에게 중국은 놀이터였다.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즐기면서 중국을 연구한 그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중에는 중국과 북한의 끈끈한 인연을 소개한 부분도 있다. 김일성을 '조선족 김일성'이라 부르는 중국인 역사학자의 주장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 그러면서도 다민족 국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김일성을 '조선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음이 이해갔다. 어느 시각에서 역사를 발보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명호는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서 중국인의 색다른 관점과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중국인 이야기' 4권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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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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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이라는 장소는 억압의 장소이다.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여 고통을 주는 장소이다. 그러나, 세상이 나의 자유를 빼앗아 고통을 주려할지라도, 나의 내면의 자유까지 빼앗지는 못한다. 감옥을 '대학'이라고 말한 고 김대중 대통령,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통해서 주옥과 같은 글들을 남긴 고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영혼의 자유를 지켰다. 감옥이라는 고통의 공간에서 영혼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 처절한 노력을 한 빅터 프랭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서 제3의 심리학을 탄생시켰다. 감옥에서 절망하지 않고 영혼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한 소설이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바로 그 책이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어떻게 수용소에서 영혼의 자유를 지켰을까?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었을 때, 수용소가 군대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은 알렉신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 곳곳에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죽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그릇과 숫가락까지 싹삭 핱는 모습에서 수용인들의 배고픔이 읽혔다. 그리고 군복무 시절,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팟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초코파이 하나를 먹기 위해서 가지도 안던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휴가를 나오면 그렇게도 맛있어 보였던 초코파이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수용소와 군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고, 그러한 억압속에서 생존이라는 너무도 기본족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본능에 집착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도 역시 생존이라는 본능에 집착했다. 그러나, 본능에만 집착하는 동물이 되지는 않았다. 소련 공산당이 그를 동물 취급하며 수용소라는 우리안에 갖아두었지만, 이반 데니소비치는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었다. 수용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모자를 벗었으며, 뇌물을 주어 좀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뇌물을 주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뇌물이라는 것을 줘본 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없다. 수용소에 들어와서도 그짓만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이것이 이반 데니소비치가 동물취급을 받으면서도 인간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이다. 

  수용소에서 혹은 군대에서 동물 취급을 받는다. "너희는 전쟁에서 한번 써먹기 위해한 소모품이야"라는 당직사관의 말을 들으면서도 소모품이 되기 싫었다. 사수가 되어 부사수에게 경계근무에 나설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재발리 PX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왔다. 부사수에서 지금 당장 먹으라며 먹을 것을 주었다. 경계 근무지에서 경계근무 원칙을 부사수에게 외우도록 했고, 그러지 못하면 무척이나 면박을 주었다. 당직사관이 경계근무에서 복귀하는 우리에게 물어볼 것이 뻔하기에 경계근무 2시간 동안 부사수를 교육시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미안해서 부사수에게 물었다. 내가 밉지 않냐고.... 부사수는 의외의 말을 했다. 근무지에 가기전에 맛있는 먹을 것을 주어서 오히려 좋았다며 부사수는 웃었다. 그랬다. 먹을 것에 집착하는 동물적 본능에 우리는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나 혼자만 먹는 동물이 되기 싫어서 부사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먹을 것을 나눠먹는 인간적인 모습에 부사수는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수용소에서도 군대에서도 우리는 인간으로 존재하려 노력했다. 

 수용소와 군대가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담배한대를 피우며 상념에 잠기며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추운 수용소에서 작업을 하기 전에 난로를 쬐며 몸을 녹인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난로가 없어도 이 순간의 자유로움이란 너무도 행복한 것"이라며 이 순간을 즐긴다.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순간의 행복을 잃지 않는다. 이 모습은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볼 수 있었던 수용소에서 수용자가 찾는 조그마한 즐거움과 너무도 일치하는 모습이다. 물론, 교회에 나가서 초코파이 하나를 얻어 먹으며 행복해하던 우리들도 마냥 행복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좋더라도 희망을 잃는다면 지옥을 맛보는 것과 같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하루를 마감하며 "그렇다. 오늘 하루는 왠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들떠서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라며 행복감에 취한다. 누구에게는 수용소 혹은 감옥이 하루도 있기 싫은 지옥일 텐데, 이반 데니소비치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벌이는 강압과 통제 속에서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느끼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감옥에서 독서를 통해서 엄청난 지식을 얻었고, 고 신영복 선생은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풀려날 수 있다는 기약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고전을 읽으며 마음 수양의 장으로 감옥을 이용했다. 일체유심조라했던가! 나의 심지가 굳을 수록 외부의 강압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자전적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얇지만, 절대 얇지 않은 책이다. 스탈린치하의 소련 수용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탁월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책에 1962년 소련에서 발표되었고, 1964년 레닌 문학상 후보에 추천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1974년 소련에서 추방되기 전까지 작가로 소련에서 생활을 했다. 우리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기억하고 있다. 만약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같은 소설을 펴낼 수 있었을까? 북한이라는 곳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소련에서는 가능했다. 그것이 그나마 소련과 북한의 차이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켠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쌓여져갔다.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 박노자는 대중강연에서 소련시절 자신의 추억을 솔직하게 말했다. 빵을 구하려면 줄을 서야했지만, 소련시절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공동체(미르) 속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꼈던 아련한 추억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소련에 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반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 비친 소련의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의 제국이다. 박노자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기억하는 소련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물론, 소련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던 박노자와, 조국 전쟁에서 제2급 훈장 및 붉은별 훈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소 선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8년 교정 노동형을 선고받은 솔제니친이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는없다. 과연, 누구의 기억이 현실에 존재했던 소련의 실제 이미지에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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