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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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에 꼭 한권 이상의 심리학 서적을 읽으려 노력한다. 심리학 서적을 읽어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치지만, 심리학 서적을 읽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성찰했다는 위안을 얻는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도 그러한 책이다. 학부모와 학생을 상담해야하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책에 빠져들면서 공감 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정혜신은 이책에서 공감의 위력과 공감의 방법을 자세히 서술한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공감은 곧 준중을 뜻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상담활동을 해온가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책을 내 놓았다. '적정 심리학'을 달리 말하면 '실전 심리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전쟁과 같은 현장에서 그녀가 내놓은 절규를 살펴보자. 


1. 우리를 진단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왜 우리는 아픈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고단한 우리 현실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정혜신은 '존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와 인기를 한몸에 거머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는 이유도, 오랜 세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지혜를 얻었을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태극기 부대가 된 이유도, 청년 고독사가 벌어지는 이유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소멸의 벼랑끝에서 벌어지는 아픈 사건들이라 정혜신은 진단한다. 

  그렇다. 우리는 빠르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성장을 일궈왔다. 농업사회의 전통적 공동체는 해체 되었다. 도시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는 지연과 학연에 의지해서 고립을 피하고 안정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원자화된 개인은 현대 도시의 정글에서 고독히 살아남아야했다. 그러면서 존중받지 못하고, 군중속의 이름없는 한사람으로 쓸쓸히 고립되어간다. 그 고립이 심할수록 쉽게 태극기 부대에 합류하기도하고, 고독사하기도한다. 이에는 청년도 예외가 아니다. 강북에 비해서 강남에서 청년 고독사가 비율이 더 높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가장 부유한 곳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러한 원자화된 개인들은 자기 소멸의 벼랑끝에서 공황장애를 얻기도한다. 그러하다면, 정혜신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당신이 옳다.'는 공감이라 제시한다. 우선 위기에 처한 우리가 우리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무엇일까?


2. 심리적 응급처치 방법

  정혜신은 심리적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무관심의 문제를 지적한다. 어느 한사람이 죽어도 이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누군가는 응급처치를 해야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려한다. 정혜신은 이를 '일상의 외주화'라고 말한다. 자격증이라는 제도를 만든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 만들었는데, 오히려 자격증 있는 사람만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격증은 우리 일상의 외주화를 정당화하고 이에 의존하는 가장 좋은 제도가 되어버렸다.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응급처치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해야한다. 여기에는 자격증이 필요치 않다. 

  정혜신은 현대 정신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일상적인 우울증조차도 질병으로 규정하고 약으로 이를 쉽게 해결하려는 아닐한 모습에 질문을 던지며 기본으로 돌아올 것을 절규한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라고 말하며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약을 먹기 보다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라는 상식적인 말을 한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존재가 희미해지는 이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강하게 몸부림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응급처치 방법은 "'나'가 또렷하게 돌아올 때까지 그의 '나'가 위치한 바로 그곳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따뜻한 감정에 관심을 갖는 질문을 건넬것을 제안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즉, 충조평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집중하며 경청하라 말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 그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임에도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교사 첫발령을 중학교로 받았을 때 일이다. 학교에서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쾌활한 기술선생님이 계셨다. 부인과 사별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았는데, 전혀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서도 발견되었다. 그 선생님의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자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밝은 모습의 선생님이라 어느 누구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존재에 관심을 갖았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는 미련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렇다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공감의 힘에 대해서 살펴보자. 


3. 공감의 정석

  정혜신은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이 바로 '공감'이라 말한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해야할까? 과녁을 정확히 맞혀야한다. 세상사에서 그 자신으로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 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그를 보아야한다. 그렇다고 "칭찬이나 좋은말 대잔치와는 다르다."때로는 잘못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어야한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다보면,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치 문이 존재 자체라면, 문고리는 감정이며, 문고리를 돌리는 힘은 공감이 된다. 이 공감이 피흘리고 상처입은 그에게 공감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매스이자, 상처부위를 치유하는 연고가 된다. 

  마음과 행동은 별개이기에 범죄자라도 공감을 해준다. 바꿔말하면 감정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범죄자에게 공감을 해며 그 행동뒤의 마음을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의 행동을 정당화해줄수는 없는 것이다. 

  정혜신이 제시한 공감의 방법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니, 우리의 상식에 기초해있다. '모모의 시간여행'이라는 소설에서도 모모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준다. 상대방은 스스로 말을하며 모모에게 공감을 얻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간다. 이러한 모모의 상담방법은 우리가 상담연수를 받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상담의 절차와도 일맥상통한다. 경청을 통해 공감해주고 이를 통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안내해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정혜신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인생의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속에 정답이 있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그의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절교할 용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은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라는 조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진리는 우리 주변에 있었다. 


4. 나를 보호하기.

  상담을 하고 나면 기운이 쪽빠진다. 나의 머리는 엄청난 과부하로 복잡해져있다. 그러하기에 전문 상담사분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일명 '전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도 느끼게 되어 괴로움을 겪는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 물에 뛰어 들었다가 같이 허우적되는 듯한 기분을 여러번 느낀다. 이러한 위기에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무엇일까?

  정혜신은 상대방에게 공감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의 출발점을 우리는 모두 개별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모두 존중 받아야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부모라 할지라도 결혼, 진로와 같은 개별적 존재로 준중받아야할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 또한 갑을 관계에서도 존중받아야할 개별적 존재인 나를 중심에 두고 행동해야한다. 그리고 때로는 관계를 끊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된다. 부모라는 이유로 헌신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자식이라할지라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한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자만이 타인을 구해줄 수 있다. 스스로를 구해줄 수영도 하지 못하는 자가 무모하게 물속에 뛰어든다면, 친구도 죽고 스스로도 죽게 된다. 

  정혜신이 상담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시한 원칙들은 철학자 강신주가 대중강연에서 말한 '단독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존중받아야하는 단독적 존재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같이 가슴 아파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수는 있지만, 그 고통에서 오롯이 벗어나야할 책임은 그에게 있다. 그가 존중받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일에 주인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5. 공감의 장애물 걷어차기

  정혜신은 진정한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걷어차는 방법을 소개한다. 정혜신은 먼저 '다정한 전사'가 되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존중받아야하는 존재라는 점을 유념하며 무엇에 다정하고 무엇에 전사가 되어야하는지 명확히 분별하라고 조언한다. 감정에는 고정된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으며, 감정은 나를 점검하는 신호란점을 명심하자. 가까운 연인이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을 하고 심하면 이혼을 하듯이 가까운 사람이기에 더욱 공감이 힘들다. 충족되지 않는 사랑의 욕구는 더욱 심해지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더욱 관심을 갖자. 가까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에 앞서 혹시 내 안에 남아 있는 컴플렉스가 있는지 점검하자. 내 안에 있는 나의 컴플랙스를 먼저 치유해야만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잊지 말자. 우리는 개별적 존재이다. 단독적 존재이다. 개별성을 지우는 집단적 사고에 맞서고, 유형과 조건으로 사람을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다. 

  정혜신이 제시한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 중에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마라."라는 말이 있음을 확인하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많이 해왔던 말이다. 문과와 이과 선택, 선택과목 변경시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너의 선택이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해주었던 말이 학생들의 퇴로를 막는 말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정혜신의 지적에 뼈가 아파왔다. 학교에서 다음 학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학생의 과목변경을 들어줄 수 없다. 이것은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마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말을 해야할까? "너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기를 선생님도 바란다."라고 말하면 될까?


6. 이제 실전이다. 

  효과적인 공감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정혜신은 진심으로 궁금해야 질문이 나온다고 말한다. 아들의 애인을 물어 보듯이 관심을 갖고 질문하자. 상대방과 똑같은 감정을 느낒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 안는것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존재 전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러한 공감을 할때 반드시 '나'에 대한 공감을 해야한다. 먼저 자신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치유할 수 없다. 나의 사과가 필요하다면 상처받은 아이에게 온 체중을 실어 사과하자. 부모, 교사, 상사라 할지라도 잘못을 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사과하자.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총조평판'은 하지 말자. 때로는 거짓 공감도 위대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감하자. 

  상담연수를 받았을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있다. "천명의 아이를 잡아먹어라." 천명의 아이를 상담하면서 상담의 노하우를 쌓아가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탁월한 상담가가 될 수는 없다. 훌륭한 상담가가 아니라고 상담을 회피하면 영원히 초보자로 머물수밖에 없다. 끊임 없이 상담하며 끊임 없이 배우고, 끊임 없이 갈고 닦자. 그것이 좋은 상담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시중에는 수많은 심리학 서적이 있다.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로 가득찬 심리학 서적이지만, 우리 생활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현실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상담의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정혜신이 제시한 공감의 방법과 공감의 필요성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심리학 책에서, 상담 심리 연수에서 들어왔던 정보였다. 그러나 그때는 '공감'이라는 두글자가 가슴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통해서 '공감'이라는 두글자가 나의 가슴이 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준중 받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공감을 원한다. 공감을 통해서 타인에 관심을 갖고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이 책을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학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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